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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가진 하나님이 계신가?

관심을 가진 하나님이 계신가?

관심을 가진 하나님이 계신가?

1, 2. (ㄱ) 첫째 항에 나오는 질문들은 이미 당신도 가지고 있었던 질문입니까? (ㄴ) 어떠한 상태를 보고 사람들은 그러한 의문을 품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인류 역사를 통하여 왜 그토록 여러 가지 참혹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해 오셨는가? 그분이 우리에게 참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면, 왜 악과 고통이 계속되도록 허락하시는가?

2 어디엘 가나 생각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들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할 만도 합니다. 왜냐 하면 여러 세기 동안 인류는 무참한 전쟁들, 식량 부족, 빈곤, 범죄, 질병 등 수많은 고통을 겪어왔기 때문입니다. 불공평과 압제 또한 엄청난 슬픔을 일으켜 왔읍니다. 홍수나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도 마찬가지입니다. 빈번히 무죄한 사람들이 자기의 잘못이 아닌데도 고통을 받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하여 관심이 없으시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더 나은 세상, 우리가 지상에서 참으로 생명을 즐길 수 있고,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그런 세상에 대한 진정한 희망이 있읍니까?

3.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왜 이치적입니까?

3 그러한 질문들은 진실하고 만족을 줄 만한 대답을 요합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든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하는 말은 진실하고 만족할 만한 대답이 못됩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질서가 존재하는 장엄한 우주를 창조하셨다면, 인간들에게 이토록 무질서한 상태를 허용하신 데에는 분명히 어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그분이 악을 허락해 오신 이유를 말씀해 주실 만큼 자신의 인간 피조물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지 않겠읍니까? 만일 그분이 이 악한 상태를 시정하실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적당한 때에 가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이치적이 아닐까요? 사랑이 있는 아버지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면,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그렇게 할 것입니다. 확실히,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 있으신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지적 자녀들을 위하여 더우기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누가 가장 훌륭한 대답을 할 있는가?

4. 하나님께서 악을 허락하신 이유를 우리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입장에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4 하나님께서 왜 악을 허락하셨는가 하는 이 문제에 대하여 누가 가장 훌륭한 대답을 할 수 있읍니까? 당신이 만일 어떤 잘못에 대한 비난을 받게 된다면 그 문제에 대하여 사람들이 남들의 말만 듣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진실하게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심을 명백히 풀어 주기 위하여 당신 자신이 설명해 주기를 원하십니까? 악을 허락하신 일에 대하여 비난을 받고 계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악을 허락하신 이유를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 자신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것이 공정한 일이 아니겠읍니까? 인간들에게 대답을 구하는 것으로는 결코 만족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흔히 상충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께서 성서를 지으셨다고 믿는 것은 이치적입니까? (베드로 후 1:21; 하박국 2:2)

5 하나님께서는 어디에서 그 대답을 알려 주십니까? 어떤 일이 발생하였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 주도록 창조주께서 인정하신 유일한 근원이 있읍니다. 그 근원은 성서(聖書)이며, 거기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디모데 후 3:16) *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장엄한 우주를 창조하실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한 책의 저자도 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미약한 인간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 방송을 통하여 ‘라디오’나 ‘텔레비젼’ 수상기에 소리나 생각, 심지어 영상을 전달할 수 있읍니다. 그렇다면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충실한 인간 필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그들이 정확하게 기록하도록 하시는 일은 별로 큰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읍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데살로니가 전 2:13.

6. 성서 역사는 얼마나 멀리까지 소급하여 올라가며,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떠한 지식을 알려 줄 수 있읍니까? (누가 1:1-4; 또한 누가 3:23-38 참조.)

6 아마 당신은 성서를 살펴본 일이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서에 가장 완전하고 연대가 확실한 역사 기록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신은 흥미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실상, 제 1세기의 역사가이며 의사인 ‘누가’는 ‘나사렛’ 예수의 조상을 차근차근 이름을 밟아 올라가 사천년을 소급하여 첫 사람에게까지 올라갈 수 있었읍니다. 성서는 인간 존재 시초에까지 소급하여 올라가기 때문에, 악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하나님께서 왜 악을 허락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개선될 것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가?

7. 죄를 범하는 일이 있으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읍니까?

7 다른 사람이 죄를 범하였는데 당신에게 그 누명이 돌아간다면 어떻게 느끼겠읍니까? 당신은 그것을 매우 부당한 일로 생각할 것입니다. 공정하려면 죄지은 자는 벌을 받고, 무죄한 자는 누명을 벗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자동차 운전자가 혼잡한 교차로에서 정지 신호를 무시하였기 때문에 큰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법률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폭식을 하여 그로 말미암아 병이 났다면 그것은 식량을 재배한 농부의 잘못이 아닙니다. 만일 어떤 젊은이가 훌륭한 교훈을 받고도 집을 나가서 자기 아버지의 훌륭한 훈계를 무시하다가 문제에 빠지게 된다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아버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인류가 잘못을 범했을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셔야 할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책임을 져야 할 자는 죄를 범한 쪽이 아닙니까?

8. 악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돌린다면, 어떤 모순이 생깁니까?

8 또한, 고려해야 할 다른 문제가 있읍니다. 만일 우리가 식량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과 같은 불행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돌린다면, 많은 나라에서 그 많은 곡식을 생산해 내는 생산적인 들과 과수원에 대하여는 누구에게 영예를 돌려야 합니까? 질병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돌린다면 인체의 경이로운 치료 구조에 대하여는 누구에게 영예를 돌려야 합니까? 도시 빈민굴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돌린다면, 장엄한 산들, 깨끗한 호수, 즐거움을 주는 꽃들, 아름다운 나무들에 대하여는 누구에게 영예를 돌려야 합니까? 이 세상의 고통에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고, 동시에 지구상의 좋은 것들에 대하여 그분께 영예를 돌린다는 것은 분명히 모순입니다. 인자하신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을 동시에 조장하시지 않습니다.

9. 인간이 악한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논리적입니까? (이사야 45:18)

9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이 지구와 그 위의 생물이 우연히 생겼다고 믿는 것은 사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지구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것을 어떤 집보다도 더 잘 갖추고 있읍니다. 그리고 집들은 모두 지성을 가진 설계자와 건축자가 있읍니다. 그렇다면, 대기권과 육지 및 바다에 더욱 엄청난 생명 유지 체계를 갖추고 있는 이 지구는 어떠합니까? 성서에서는 논리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브리 3:4)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악한 일을 행한다는 것을 들어, 그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악한 일을 행함으로 그 집의 설계자나 건축자가 없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악한 일을 행함으로 그에게는 아버지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10. 우리는 악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을 어디로 돌려야 합니까?

10 그러면 인간 가족에게 발생해 온 참혹한 사건들에 대하여 책임질 자는 누구입니까? 대부분의 책임은 인간 자신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인간의 부정직과 욕구불만은 범죄의 원인이 됩니다. 인간의 자존심과 이기심은 결혼 파탄, 증오, 인종적 편견의 원인이 됩니다. 인간의 과오와 무관심은 오염과 불결의 원인이 됩니다. 인간의 오만함과 우둔성은 전쟁의 원인이 됩니다. 그리고 전국민이 정치적 지도자들에게 이끌려 맹목적으로 그러한 전쟁에 가담한다면, 그들이 그러한 고통에 대한 책임을 함께 져야 합니다. 굶주림과 빈곤은 주로 인간의 태만과 탐욕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현재, 세계는 매년 전쟁 장비를 위하여 2,000억 ‘달러’ 이상을 지출하고 있읍니다. 만일 이 모든 돈을 식량을 생산하고 골고루 분배하며 빈민굴을 없애는 데 올바로 사용한다면 어떤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11. 종교 교직자들이 자국의 군대를 위하여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러한 군대들이 싸우는 전쟁에 책임을 지셔야 합니까? (이사야 1:15; 잠언 28:9)

11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악행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종교 교직자들은 자국의 전쟁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종종 상대편이라고 해서, 병사들은 같은 종교에 속한 사람들끼리 서로 죽입니다! 그런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돌릴 수는 없읍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자기를 섬기는 자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의 행위를 단죄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 13:34, 35) 그들이 이러한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가인’ 같”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왜냐 하면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 3:10-12) 종교 재판에서든지 전쟁에서든지 간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거짓 신들에게 자녀를 희생으로 바치던 고대 종교 의식과 비슷한 행위입니다. 그런 일에 대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명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지도 아니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예레미야 7:31.

12. 왜 성서에는 종교 교직자들을 “위선자들”이라고 부릅니까? (마태 15:7-9)

12 종교 교직자들의 정치 참여, 전쟁 지지 및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고통에 책임이 있다거나 또는 그분이 사람들을 실제적인 지옥불에서 영원히 타게 한다는 거짓 가르침은 이치적인 사람에게나 하나님께 불쾌감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들을 가르치거나 행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위선자들”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그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읍니다. “너희는 회칠한 무덤과 같아서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하다.” (마태 23:27, 28, 새번역) 사실상 예수께서는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에 대하여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하셨읍니다.—요한 8:44.

13. (ㄱ) 그러면 인간들, 종교 지도자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 그 책임이 하나님께 있읍니까? (ㄴ) 그러나 아직 어떤 질문들이 해결되어야 합니까?

13 결코 하나님께는 인간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주장하지만 진리를 말하지 않고 그것을 행치 않는 종교 교직자들이 축복한 악행에 대하여도 책임이 없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데에 어디엔가 잘못이 있었읍니까? 그분은 인류에게 불행한 출발을 하게 하셨읍니까?

완전한 출발

14. 하나님께서 우리의 첫 조상에게 어떠한 출발을 하게 하셨는지 설명하십시오. (창세 1:26-31; 2:7-9, 15)

14 「창세기」의 처음 두 장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을 때 그들에게 완전한 출발을 하게 하셨음이 매우 분명히 나타납니다. 그분은 그들을 완전한 육체와 정신을 갖도록 창조하셨읍니다. 그렇게 해서 병과 죽음이 그들에게 결코 재난이 되는 일이 없게 하셨읍니다. 그들의 집은 즐거움을 주는 꽃들, 싱싱한 채소, 열매맺는 나무들로 가득찬 사랑스러운 공원과 같은 동산이었읍니다. 거기에는 부족한 것이 없었읍니다. 그와는 반대로 모든 것이 풍부하였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첫 조상 앞에 흥미있는 일과 고무적인 목표를 세워 놓으셨읍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그 낙원과 같은 상태를 온 지구상에 확장시키도록 지시하셨읍니다. 때가 되면 그들에게서 출생한 수많은 완전한 자녀들이 그 일을 도울 것이었읍니다. 인간 가족은 마침내 완전한 인류로서 지상 낙원에서 살며, 영원히 생명을 즐기며 사랑으로 다스림을 받는 동물들을 갖게 되어 있었읍니다.

15. 인간 완전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까?

15 그러면 왜 일이 이토록 비참하게 변하였읍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인간을 시초에 완전하게 만드시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신명기 32:4에 보면 하나님에 관하여 “그의 활동은 완전하시다”고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 완전성이란 첫 인간 부부는 모든 것을 알았다든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든가, 나쁜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완전한 피조물일지라도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예를 들면, 신체적인 한계가 있었읍니다. 만일 그들이 음식을 먹지 않고 물을 마시지 않고 숨을 쉬지 않는다면 죽을 것입니다. 그들이 아주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 중력의 법칙을 범하는 일을 하면서도 다치지 않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정신적인 한계가 있었읍니다. 분명히 ‘아담’과 ‘하와’는 아무런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워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배웠다 할지라도, 창조주 만큼 많이 알 수는 결코 없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완전하였다 할지라도 인간이라는 영역에 제한되어 있었읍니다. 완전이란 단지 그들이 온전하였다는 것, 육체적 정신적 구조에 결함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16. 어떠한 테두리 안에서 인간의 자유는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있었읍니까? (베드로 전 2:16)

16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단순히 본능에 지배되는 동물처럼 창조하시지 않고 자유 도덕 행위자로 창조하셨읍니다. 그리고 당신은 분명히 그러한 자유의 가치를 인식할 것입니다. 당신은 일생 동안 당신이 해야 할 일을 누가 일일이 지시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읍니다. 다시 말하면, 한계가 없는 것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 테두리 안에서 행사되어야 하였읍니다. 그러한 훌륭한 법은 몇 가지 안 되었고 단순하였으며, 전 인간 가족의 최대한의 행복을 염두에 두고 제정된 것이었읍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에게 그분의 법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는 데서 나타났읍니다. 왜냐 하면 그분은 그러한 법들을 존중하는 것이 그들에게 무한한 유익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법을 존경하지 않는 행위는 그들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 주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상, 그것은 재난을 초래하는 것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면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 2:17) 그러므로 살기 위하여 그들은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고 숨을 쉬어야 하는 것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과 그분의 법의 인도를 받아야 하였읍니다.

17. 인간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할 또 다른 심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 146:3; 예레미야 17:5-9)

17 우리의 첫 조상이 반드시 하나님께 의뢰했어야 할 불가피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읍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자기들의 일을 성공적으로 처리하도록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할 권리 또는 능력을 부여하지 않으셨읍니다. 성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예레미야 10:23) 그러기 때문에 성서에서는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라고 선언합니다.—잠언 28:26.

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8. 우리의 첫 조상에게 어떠한 잘못이 있었읍니까? (야고보 1:14, 15; 시 36:9)

18 그러한 훌륭한 출발을 하였는데 무엇이 잘못되었읍니까? 이러한 일이 있었읍니다: 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의 선택의 자유를 잘못 사용하였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에 복종하는 대신 자기들의 길을 가기로 결정하였읍니다. 사실상, 그 여자는 자기들이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창세 3:5) 그들은 자기들의 사고 능력에 의지하여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자기들 스스로 결정하기를 원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러한 생각이 초래할 중대한 손실을 내다보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결과가 오고 말았읍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디도 1:2)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권으로부터 이탈하였을 때 일어난 결과는 넓은 의미에서, 선풍기의 ‘플러그’를 뺐을 때 일어나는 결과와 같았읍니다. 전원에서 ‘플러그’를 빼면, 선풍기의 회전은 느려지다가 결국에 가서는 멈추어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첫 인간 부부가 생명의 원천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하였을 때, 그들은 마침내 타락하여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대로 죽었읍니다.

19. 왜 인류 전체가 불완전하게 출생하였읍니까? (로마 5:12)

19 우리의 첫 조상이 자녀를 갖기 전에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첫 자녀가 출생하기 전에 불완전성이 시작되었읍니다. ‘아담’과 ‘하와’는 결함이 있는 주형과 같이 되었읍니다. 그들로부터 출생한 모두는 마찬가지로 결함이 있었읍니다. 그들이 자녀들에게 전해줄 수 있었던 것은 이제 그들이 지니게 된 것 즉 불완전한 육체와 정신뿐이었읍니다. 그들은 완전성과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원천이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 완전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성서 로마서 5:12에서 알려 주는 바와 일치하게 그 이후 출생한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게 출생하였으며, 병들고 늙고 죽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 데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돌릴 수 없읍니다. 신명기 32:5(신세)에서는 “그들은 그들 스스로 파멸적으로 행동하였다. 그들은 그의 자녀가 아니고, 흠은 그들 자신의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전도서 7:29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20. 소수의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읍니까?

20 그러나 단 두 사람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에게 그러한 비극적 결과가 와야 한다는 것이 이치적입니까? 그 점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건물을 지을 때 어떤 작은 안전 요인을 다루는 한 사람의 부주의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읍니다. ‘댐’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와 비슷한 부주의가 ‘댐’의 파열을 가져올 수 있고, 어마어마한 파괴를 유발할 수 있는 홍수를 일으킬 수 있읍니다. 어떤 통치자가 저지르는 단순한 부패 행위가 정부 내에서의 연쇄적인 악행에 대한 반응을 유발하여 수백만명의 국민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읍니다. 가족 내에서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잘못된 결정을 할 경우, 자녀들에게 고통을 주게 되는 심각한 결과에 이를 수 있읍니다. 우리의 첫 조상은 잘못된 결정을 하였읍니다. 그 결과로 전 인간 가족이 불완전성과 재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21. 하나님께서는 왜 사망의 형벌을 옹호하셨으며, 그러나 어떻게 자비를 나타내셨읍니까?

21 하나님의 법이 관련되었고 또한 그분의 성실성이 관련되었기 때문에, 그분은 그 법을 시행치 않고 거역하는 일을 그대로 내버려 두실 수 없었읍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러한 범법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신다면, 사람들이 그분이나 그분의 법에 대하여 무슨 존경심을 갖겠읍니까? 오늘날 우리는 자국의 법률을 지키지 않는 통치자들을 존경합니까? 또는 국민이 고의적으로 법을 어기는 것을 묵인하고 아무런 징벌도 하지 않는 그런 통치자들을 존경합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발표한 불순종에 대한 형벌, 즉 죽음을 시행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비로우시게도 처음 부부에게 자녀를 갖는 것을 허용하셨으며, 그 점에 대하여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태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아담’과 ‘하와’의 잘못으로 인하여 우리가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습니까?

22. 악에 대하여 그밖에 누구에게 더 큰 책임이 있읍니까? (마태 4:1-11; 에베소 6:12)

22 이것은 악이 전적으로 인간에게서 기원하였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또 다른 사연이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지성있는 피조물은 인간만이 아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찌기 하늘에 무수한 지성있는 아들들 즉 영물(靈物)들을 창조하셨읍니다. 그들도 자유 도덕 행위자들이었지만, 그들 역시 계속 생존하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이치적인 법에 복종하여야 하였읍니다. 그러나 이 영물들 중 하나가 옳지 않은 생각을 품게 되었읍니다. 어떤 사람이 옳지 않은 것을 자꾸 생각하면 그는 마침내 그가 생각하는 옳지 않은 일을 행하게 될 수 있읍니다. 이 영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도전할 만큼 욕망을 자라게 하였읍니다. 그는 ‘아담’의 아내 ‘하와’에게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하고도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였읍니다. (창세 3:4) 그는 지속적인 생명과 행복을 위하여 그들이 꼭 창조주를 의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가에 의문을 일으켰읍니다. 사실상 그는 그들에게 불순종이 그들을 하나님과 같이 되게 함으로써 그들의 문제를 실제적으로 개선시켜 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는 하나님의 진실성에 의문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에 의심을 품게 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다스리는 방법—사실상 하나님의 다스리는 권리에 대하여 의혹을 품게 하였읍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반항자를 의미하는 ‘사단’ 그리고 비방자를 의미하는 마귀라고 불리우게 되었읍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허락해 오셨는가?

23, 24. 이 쟁점들이 해결되는 데는 왜 시간이 걸릴 것입니까?

23 하나님은 훨씬 더 강한 분이시므로, 그분은 시초에 이들 인간과 영물 반항자들을 쉽사리 제거해 버릴 수 있으셨읍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셨다면 문제가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도전받은 것은 하나님의 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야기된 쟁점들은 도덕적인 것들이었읍니다. 그러한 것들 중 중요한 쟁점 하나는 이것이었읍니다. 즉 반역의 길이 성공할 것인가? 하나님을 무시하는 통치권이 전체 인간 가족에게 영원한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인가?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통치권이 더 나을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통치권이 더 나을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지혜로써 이러한 그리고 다른 야기된 쟁점이 해결되기 위하여는 시간이 걸릴 것임을 아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인간에게 확정적인 기간을 허락하심으로 그들이 정치, 사회, 산업 및 과학적 업적의 정점에 이르도록 충분한 기회를 부여하셨읍니다.

24 그 기간이 단지 며칠이나 몇 년일 수는 없읍니다. 의문의 여지없이 대답이 드러나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려야 할 것입니다. 단지 두 사람이 관련된 법정 사건의 경우에도 여러 주일 아니 여러 달이 걸릴 수 있읍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관련된 이 큰 쟁점들은 어중간한 해결이 아니라 온전한 해결을 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러한 쟁점들의 해결이 미래에 언젠가 다시 반복되는 일이 결코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수락하실 수 있는 것은 단지 완전한 해결뿐입니다. 우리 역시 그러한 해결을 기뻐할 수 있읍니다. 그러한 해결만이 하늘과 땅에 있는 하나님의 우주 가족에 속한 모두에게 끝없는 평화와 안전의 길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5. 물질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인간의 독립은 참다운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주었읍니까?

25 이 쟁점들이 처음 야기된 때부터 지금까지 약 6,000년이 경과하였읍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으로부터의 독립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읍니까? 온갖 종류의 정부, 온갖 종류의 사회 질서, 온갖 종류의 경제 제도, 온갖 종류의 종교를 시험해 보았읍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참다운 평화와 안전, 영원한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였읍니다. 제 2차 세계 대전만도 5,000만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갔는데 누가 물질적 진보를 자랑할 수 있겠읍니까? 사람을 달로 보낸 같은 ‘로케트’에 장치된 핵탄두가 인류를 전멸시킬 수 있고, 인간이 달 위를 걷고 있는 동안에도 지구상에는 수십억의 인류가 굶주림과 빈곤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인간을 달에 보내는 것을 진보라고 할 수 있겠읍니까? 가족들의 의견 충돌로 분열되고 있고, 이혼 건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고, 주택가에서의 범죄의 두려움이 퍼지고 있고, 공해와 빈민굴이 늘어나고 있고, 경제 불황이 수백만명에게 직업을 잃게 하고 있고, 폭동과 민중 봉기 또는 정부 전복이 매년 발생하여 가정과 생활을 위협하고 있는 이 때에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로 집안을 채운다고 해서 무슨 만족이 있겠읍니까?

26. 허락된 기간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인간의 독립에 관하여 무엇을 나타내 주었읍니까? (시 127:1)

26 실상은 국제 연합의 ‘쿠르트 발트하임’ 사무총장이 시인한 바와 같습니다. “물질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인간 생명이 오늘날처럼 안전성이 없는 때는 과거에 없었다.” * 「환경 윤리」라는 책도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깨끗한 공기를 호흡하고, 맑은 물을 마시며 즐기고, 자연 환경을 탐험하는 즐거움을 갖도록 창조된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변경시켜 놓았으나 스스로 적응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의 집단 처형을 준비하고 있다.” * 참으로 악에 대한 오랜 허락은 생각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를 떠나서는 자신의 일을 성공적으로 처리해 나아갈 능력을 갖게끔 창조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닫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육천년간의 인간의 실패는 아무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실험해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허용하시지 않았다고 정당하게 비난할 수 없게 할 증거입니다. 허락된 기간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길이 절대적인 재난의 길이라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기간이었읍니다.

악이 곧 끝날 것임

27.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오실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까? (잠언 2:21, 22; 로마 16:20)

27 인간 가족은 더 나은 상태로의 변화를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사실상, 우리에게는 전적으로 새로운 제도가 필요합니다.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이 시인한 바와 같이, 사회악은 “과거 역사 6,000년간 존재해 온 전체 제도가 근본적으로 다른 제도로 대치될 수 있을 때에만” * 시정이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생각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이 다 차면, 그분은 현존하는 악한 사물의 제도 전체를 그것을 좋아하는 모든 자들과 함께 일소하실 것을 보증하셨읍니다.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시 145:20.

28. 성서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무엇이라고 부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디모데 후 3:1-5, 12, 13, 새번역; 마태 24:3-14)

28 언제 이러한 일이 있을 것입니까? 바로 곧 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1914년 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래 인류를 괴롭혀 온 전례 없던 고통이 성서에서 말하는 “마지막 날”을 알리는 표징을 이룬다고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성서에는 이 “마지막 날”에 세계 대전, 범죄의 증가, 굶주림, 질병, 대부분의 사람들이 쾌락을 추구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돌아서고 종교적 위선과 부패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읍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 세대가 하나님께서 그러한 참상을 참고 계시는 마지막 세대라는 것을 확실히 알리는 지문과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시대가 지금 지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물의 제도의 종말을 볼 것이라고 예언하셨읍니다.

29. 우리는 이 제도의 끝이 가까왔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29 예수께서는 또한 1914년에 “마지막 날”의 시작을 본 사람들의 세대에 관하여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마태 24:34) 이것은 1914년에 제 1차 세계 대전이 시작하였을 때 살아있던 얼마의 사람들이 현 사물의 제도의 끝을 살아서 목격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 제 1차 세계 대전을 목격한 세대는 지금 매우 연로하며, 이것은 악의 종말이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30. 현재 땅을 지배하고 있는 인간의 모든 통치 제도들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까? (스바냐 3:8; 이사야 1:28)

30 끝이 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강력한 능력을 나타내실 것이며, 인간사에 직접 개입하실 것입니다. 그분을 적대하는 모든 인간 제도들은 멸망될 것입니다. 다니엘 2:44에 있는 예언은 이점을 알려 줍니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모든 해로운 인간 제도들이 사라질 것이므로 땅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림이 온전한 통치권을 장악할 것입니다.

31.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위하여 어떤 정부를 마련해 주실 것입니까? (마태 6:9, 10)

31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다스림은 새로운 정부, 천적 정부 즉 하나님의 왕국에 의하여 시행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요점인 정부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때가 되면 그 정부만이 지구 전체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읍니다. 그 왕국은 하나님의 지도하에 하늘에서 다스릴 것이기 때문에, 이기적인 인간에 의하여 부패될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치 세력은 그 본래 속한 곳인 하늘에 하나님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다스리심으로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울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 입니다. (이사야 26:9) 거기에는 거짓 종교가 없을 것이므로 아무도 거짓 종교에게 잘못 인도받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에 관하여 배울 것이므로, 온전한 의미로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입니다.—이사야 11:9.

의로운 새 질서

32. 하나님의 왕국의 다스림 하에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까? (이사야 2:2-4)

32 하나님의 왕국의 다스림 하에서는 전혀 새로운 인간 사회, 경건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발전할 것입니다. 이 새 질서 내에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써 우리에 대한 그분의 큰 관심이 나타날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인간의 평화와 행복을 해치는 전쟁이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현 악한 세상의 종말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이미 평화의 길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새로운 인간 사회는 평화스럽게 출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새 질서에서 살게 되는 모든 사람들은 계속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똑같은 교육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서의 약속 즉 하나님께서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신다고 하신 약속은 확실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시 46:8, 9) 그것은 얼마나 완전한 평화일 것입니까?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 37:11.

33. 땅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까?

33 이에 더하여, 그 새 질서에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원래 목적하신 대로 땅을 낙원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것은 인류에게 얼마나 만족을 주는 일이겠읍니까! 그리고 회복된 낙원에서 사람들은 호수, 강과 대양, 언덕과 산, 평야와 계곡, 아름다운 꽃과 초목, 그리고 흥미있는 동물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결코 다시는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땅이 그 소산을 내”고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산꼭대기의 땅에도 화곡이 풍성”할 것입니다.—시 67:6; 72:16.

34. 어떠한 육체적 고침이 있을 것입니까?

34 영속적인 평화와 풍부한 식량은 활기에 넘치는 건강을 가져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절뚝발이를 고치고, 맹인으로 보게 하고, 귀머거리로 듣게 하기 위하여 해야 할 일과 또 질병과 노쇠와 사망을 제거하는 방법을 어느 의사보다도 정확하게 더 잘 아십니다. 이와 같은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 하나의 표상으로 또는 소규모적으로 나타내셨읍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기더라].”—마태 15:30, 31.

35, 36. 죽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 살 기회를 받을 것입니까? (요한 5:28, 29; 누가 7:11-15)

35 예수께서는 그분 옆에 달린 사람에게 말씀하실 때 이 지상 낙원에 관하여 말씀하셨읍니다.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 23:43) 그렇지만 그 사람은 죽었읍니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낙원에 들어갈 수 있읍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를 나타내는 또 다른 놀라운 마련 즉 죽음에서 부활시킴으로써 입니다. 성서 사도 행전 24:15(새번역)에서는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다 같이 부활”한다고 알려 줍니다.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하나님의 왕국 통치 하에서 이러한 일을 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기 위하여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키셨던 것입니다.

36 당신은 부활이라는 생각을 믿기 어렵다고 느끼십니까? 그러나 당신은 현재에도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을 ‘텔레비젼’에서 볼 수 있읍니다. 당신은 그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그들의 활동을 볼 수 있으며, 그들의 성격을 관찰할 수 있읍니다. 미약한 인간도 ‘텔레비젼 테이프’에 그러한 것들을 보존할 수 있다면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재창조하기를 원하는 사람의 성품과 특성들에 대한 소상한 자취를 기억해 두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과거에 그런 일을 하셨으며, 또 다시 죽은 자들을 생명으로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 역시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 생명을 즐길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덤들이 비게 되고, 유전받은 질병과 노쇠, 사망으로부터 사람들이 치유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25:8) 그렇게 하여 사람들이 영원히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7. 어떻게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부당하게 당하였던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게 하실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37 하나님께서는 왕국을 통하여 그토록 오랫동안 만연했던 악한 상태를 완전히 바꾸어 놓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우리가 받았던 여하한 고통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는 축복을 내리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그분의 큰 관심을 쏟으실 것입니다. 현존하는 제도에서 우리가 겪었던 이전의 고통들은 우리가 전혀 기억하고 싶지 않다면, 그때에는 완전히 잊혀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새 하늘[모든 인류를 다스릴 새로운 천적 정부]과 새 땅[의로운 인간 사회]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찌니라.” (이사야 65:17, 18) 눈앞에 다가온 그러한 웅대한 축복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리라고 성서에 말씀하신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읍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계시 21:4.

하나님께서는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우리도 그러한가?

38. 어떠한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새 질서에서 살게 하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까? (시 37:37, 38)

38 하나님께서 곧 악을 끝내시고 환희에 찬 새 질서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그분께서 참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께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까? 그러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어떻게? 성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 1서 2:17) 하나님께서 그분의 새 질서에서 살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들이란 그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의로운 통치권에 순복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의 법에 복종하고 “새 땅”을 살기 좋은 장소로 만드는 데 기여할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적대하는 자들은 다만 문제만 일으키는 자들이므로 거기에서 사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39. 영원한 생명을 원한다면, 무엇을 탐구해야 합니까? (잠언 2:1-6)

39 당신은 하나님의 의로운 새 질서에서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나친 요구입니까? 당신이 공원과 같은 주위 환경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집을 무료로 받는다면, 어떻게 그러한 자격을 갖출 수 있는지 알기 위하여 시간을 내지 않겠읍니까? 만일 우리가 우리들에 대한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고, 또 그것을 행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보다 더한 것 즉 낙원이 될 땅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제시합니다. 성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 17:3.

40. 성서는 현재에도 어떠한 부가적인 유익을 줍니까? (디모데 후 3:16, 17)

40 성서를 배우는 일은 또한 당신과 가족에게 이 고난에 찬 세상에서 일상 생활을 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실용적인 지침을 알려 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성서에서는 상태가 왜 이토록 악하며, 어떠한 미래가 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에 참다운 정신적 평화를 갖게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성서는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을 자라게 해줄 수 있고,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알게 할 것입니다.—히브리 11:6.

41. 여호와의 증인들은 무료로 당신을 위하여 어떠한 도움을 베풀 것입니까?

41 여호와의 증인들은 기꺼이 그리고 무료로 자신들의 시간을 내서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마련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배우도록 도움을 베풀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성서에 대하여 여러 가지 다른 질문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당신의 집에서 당신 자신의 성서를 가지고 이러한 문제들을 기꺼이 토론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독립적인 생활 행로를 따르거나 불완전한 인간의 생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가장 가치있는 지식의 인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시간이 있는 동안, 당신은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이 알려 주는 다음과 같은 권고를 받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여러분 자신을 겸손히 하십시오 ··· 왜냐 하면 그분은 여러분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베드로 전 5:6, 7, 신세.

[각주]

^ 5항 다른 표시가 없는 한,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을 사용한 것이다.

^ 26항 「뉴우요오크 타임즈」 1972년 11월 6일자, 5면.

^ 26항 ‘도날드 R. 스코비’ 저 「환경 윤리」 (1971년), 17면.

^ 27항 「뉴우요오크 포우스트」 1974년 3월 30일자, 35면.

[연구 질문]

[22면 도표]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모든 일이 한 세대 내에

1914

세계 전쟁

광범위한 기근

질병

폭력 범죄

지구 오염

이 제도의 끝

[6면 삽화]

만일 인간의 빈곤과 불결함에 대한 책임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면 ···

[7면 삽화]

··· 지상의 아름다움과 그 풍요한 들에 대한 영예는 누구에게로 돌아가야 하는가?

[9면 삽화]

지구는 생명 유지를 위하여 어떤 집보다 훨씬 잘 갖추어져 있다

[9면 삽화]

집마다 지은 이가 있는데, 지구는 더욱 지은 이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13면 삽화]

성서에서 알려주는 바는 하나님의 목적은 온 땅이 인류가 영원히 즐길 아름다운 공원 즉 낙원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14면 삽화]

선풍기가 전원에서 떨어지면, 회전이 느려지다가 정지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하였을 때 결국 타락하게 되었다

[16면 삽화]

조그맣게 보이는 안전 요인이 무시될 때, 거대한 ‘댐’도 붕괴될 수 있다. 우리의 첫 조상이 하나님의 법을 어겼을 때, 악과 고통의 홍수가 시작되었다

[19면 삽화]

단지 두 사람이 관련된 법정 사건도 여러 주일이 걸릴 수 있다. 하나님의 통치권이 관련된 쟁점들은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해결되어야 하며, 그렇게 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 요한다

[24면 삽화]

하나님께서 “전쟁을 쉬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새 질서에는 전쟁이 없을 것이다

[25면 삽화]

다시는 굶주림이 인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25면 삽화]

땅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부하게 소산을 낼 것이다

[26면 삽화]

늙은 사람들도 젊음과 완전한 건강이 가져다 주는 활기를 되찾게 될 것이다

[27면 삽화]

하나님의 기억 속에 보존되어 있는 죽은 모든 사람들이 살아돌아와 그들이 사랑하던 자들과 연합하게 될 것이다

[29면 삽화]

하나님의 왕국의 다스림 하에서는, 생활이 매우 즐거운 것이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부당하게 겪고있는 여하한 고통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31면 삽화]

만일 즐거운 주위 환경 가운데서 살 생명을 선물로 받게 된다면, 어떻게 그러한 자격을 갖추는지 알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는 그보다 더한 것을 제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지 배우기 위하여 시간을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