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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라들이 하나님과 정면으로 충돌할 때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과 정면으로 충돌할 때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과 정면으로 충돌할 때

재난을 초래하는 충돌, 그것은 결코 웃을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과 충돌한다는 이 책자의 제목은 우스운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것은 사실입니다. 바로 이 책자의 제목은 수백만의 남녀로 하여금 웃게 할지 모릅니다. 바로 지금은 웃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그들의 머리에 이전에 떠오른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 그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나 일어날 만한 경우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만일 그러한 일이 일어날 만하며 그러한 일이 머지 않은 장래, 바로 우리 세대 안에 일어난다고 하면 어떠합니까? 그런 경우,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생각이 우스워 보일지 모르지만 현시대는 이러한 이상한 생각을 심각하게 검토해 보아야 할 가장 적절한 때일 것입니다. 충돌한 한쪽만 재난을 당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치지 않는 편으로 피할 수 있으며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행복한 미래를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장차 있게 될 충돌 때문입니다. 상태가 이러함으로 다행히도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이 때에 이 문제에 대하여 검토해 보는 것은 확실히 가치있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이 지구에 매어 있으며 그러므로 지구와 함께 움직이고 있읍니다. 우리 발 밑에 있는 이 지구에게는 영화로운 장래가 있읍니다. 그러나 현재 이 지구 위에 살고 있는 현 세대의 인류 사회는 어떠합니까? 이 세대는 영원한 유익을 얻게 될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읍니까? 박식한 많은 과학자들과 역사가들 및 장래를 내다보는 정치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심지어 젊은이들까지도 그들이 토로하는 미래에 대한 공포 때문에 때때로 폭력적인 시위로써 아니라고 말합니다. 앞에 놓여져 있는 재난을 인식하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진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인류의 운동의 타성은 방향을 옆길로 갈 수 없게 할 정도로 되어 있읍니다. 언제인가는—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인류는 무엇인가 혹은 누구인가로부터 책임을 추궁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따라서 하나님 앞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자들은 무엇인가로부터 책임 추궁을 당하는 일은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추궁을 당하는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그러한 자들이 사는 이 지구는 참으로 미소한 물체입니다. 천문학자들이 발견한 이 우주를 잠간 생각해 보십시오!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우주 전체와 비교할 때 이 지구는 참으로 보잘것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작기 때문에 살펴볼 가치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성적 피조물 즉 사람과 같은 도덕 감정을 가진 피조물이 살고 있는 혹성으로서 알려진 것은 이 지구 뿐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에 의한 것이겠읍니까? 아니면 설계에 의한 것이겠읍니까? 사람이 스스로 이 지구에 살게 된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사람이 생겨나기도 전에 그가 살기에 이렇게 훌륭한 환경을 가진 지구 표면을 그가 만들지 않았음은 분명합니다. 지구 전체의 무게는 6.5해(亥) 소 ‘톤’이 넘습니다. 사람이 이러한 지구를 만들지 않았음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지구가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닙니다. 지구가 저절로 동물과 새와 물고기와 함께 사람을 그 위에 살게 하지 않았읍니다. 지구는 사람보다 지성이 더 높은 창조주를 필요로 하였읍니다. 그 창조주가 그리고 모든 생명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나라들과 하나님 사이에 충돌이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존재해야 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창조주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하신 그의 말씀이 참됨을 증명하실 것입니다. 시편 14:1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신세계역 성경」을 보면 ‘히브리’ 원어로부터 이 성귀를 이렇게 번역하였읍니다. “지각없는 자는 그의 마음에 ‘여호와가 없다’고 말하였다.” 오늘날 모든 나라들은 말로나 행동으로 “하나님이 없다” 즉 여호와가 없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모든 나라들은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는 것입니까? 나라들이 하나님과 충돌하기 위하여 꼭 그분을 보아야 할 이유는 없읍니다. 우리는 캄캄한 밤에 보지 못하는 물건과 얼마든지 충돌할 수 있읍니다. 캄캄해서 우리가 무엇과 충돌했는지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가 부딪친 물건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충돌은 우리에게 거기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고통스러은 방법으로 알려 줍니다. 사실상 어둠이 우리로 하여금 그것과 충돌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정면으로 충돌하려면, 두 가지 사물이 같은 길을 달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라들은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읍니까? 그리고 같은 길을 달리고 있읍니까? 그들이 같은 길을 달리고 있다면 거기에는 하나의 쟁점, 공통된 논쟁점이 있어야 합니다. 양편은 이 쟁점에 대하여 의견이 상충되어야 하며 타협의 여지가 없어야 합니다. 반드시 대결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현 상태입니다. 그러면 논란되고 있는 결정적 쟁점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왜 그 쟁점이 거의 해결될 때에 와 있읍니까? 그것은 어떻게 해결될 것입니까?

어떤 공동 사회의 사람들이 서로 불화하고 서로 논쟁하다가도 만일 공동의 적이 나타나면 하나의 적을 대항하여 모두 연합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로서 매우 흥미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나라들의 상태입니다. 그들은 국가주의적 이기심 때문에 모두 서로 한 가지 점이나 여러 가지 점으로 부딪치고 있읍니다. 각자가 주장하고 있는 한 가지 쟁점은 국가적 주권입니다. 소수의 몇 나라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들은 세계적 쟁점에 있어서 두 가지 반대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읍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계 지배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급진주의 진영인 ‘러시아’ 지도자들은 그들이 1975년까지는 전세계를 공산화할 것을 기대한다고 공언하여 왔읍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들 즉 민주진영은 1975년까지든지 다른 어느해까지든지 그러한 정치적 발전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결심하고 있읍니다. 그렇다면 이 지구는 영원히 분열된 지배 아래 있게 될 것입니까? 그것은 사람이 결정할 문제입니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세계적 평화와 안전을 위한 기구인 국제 연합의 존속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결코 핵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지구의 보이는 거주자이기 때문에 온 지구에 대한 지배권을 당연히 가지고 있읍니까? 어떤 정치 이념을 가진 나라들의 한 집단이 군사력으로 강하고 수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세계적 지배권을 가지고 있읍니까? 혹은 그러한 모든 나라들 외에 아니, 인류 자체 외에 어떤 다른 분이 세계 지배에 대한 우선권을 가지고 있읍니까? 지구와 지구의 거주자인 인간을 창조하신 분은 어떠합니까? 온 땅의 지배권을 하나님보다 더 가지고 있는 자가 누구이겠읍니까? 온 세계 인류가 생명과 생명의 마련에 대한 빚을 지고 있는 생명의 근원되시는 그분보다 세계 지배권을 더 가지고 있는 자가 누구이겠읍니까?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으로서 그분은 제한된 국부적 국가의 주권이 아니라 우주 주권을 정당히 가지고 계십니다.

1914-1918년에 있었던 제1차 세계 대전은 세계 지배라는 쟁점을 가지고 싸웠읍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래 나라들이 세계 지배라는 쟁점을 추진시키고 있음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해 왔읍니까? 창조주이시며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그렇게 해 왔읍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나라들로 이루어진 정치 집단 중 하나로 대표된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해 왔읍니다!

나라들은 자신들만 생각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세계 지배에 대한 하나님의 양도할 수 없는 우월한 권리를 무시하고 있읍니다. 이러한 일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읍니까? 결코 그럴 수 없읍니다. 이러한 상반된 권익의 충돌은 언제인가 절정에 이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언제인가를 누가 결정할 것입니까? 어떤 특정한 나라들의 집단이나 국제 연합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평화와 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쟁점을 해결할 하나님의 때가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정면 충돌로써 그것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세계를 흔드는 이 충돌에서 한 편만이 생존하게 될 것이며, 그들은 지금 이 충돌에서 다치지 않을 한 쪽 편에 서고 있읍니다.

생각있고 관찰력 있는 남녀들은 한쪽 집단에 의한 전체주의적 세계 지배를 두려워합니다. 오늘날 정부가 운영되는 방법을 통하여 그들은 인간 통치자들의 집단에 의한 세계 지배가 어떠할 것인가를 잘 상상할 수 있읍니다. 그들은 그것을 무서워합니다. 그러한 것은 조금도 바랄 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한 세계 지배라면 어떠할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록케 하시고 거기에 인간에 대한 자신의 목적과 국제적 논쟁, 폭력, 무정부 상태를 지금까지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책을 검토해 보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읍니다. 그 책은 영감에 의하여 기록된 성서입니다. 그 책에서 그분은 재삼 재사 자신이 그 책의 저자이심을 주장하셨으며, 자신의 이름 여호와로써 그렇게 하셨읍니다. 우리가 이 신성에 의하여 마련된 책을 살펴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무지의 어둠 속에 갇혀 있을 것입니다. 그 무지는 죽음으로 인도합니다.

그 책으로부터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지구를 창조하신 이유와 이 지구 위에 사람을 두신 이유를 배움으로써 우리는 오늘날 모든 나라들이 이 지상에 있는 우리 세대 생전에 하나님과 치명적 충돌을 하기 위하여 달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읍니다. ‘아폴로’ 계획에 의하여 우주선을 타고 달을 왕래하는 도중 우주 비행사들이 외계에서 이 지구를 볼 때, 이 지구는 그들에게 참으로 아름다웠읍니다. 하나님께서 인류가 이 지구에 존재한지 7,000년이 차게 하시면 이 지구는 더욱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지구의 상태는 오물 처리장이 아름다운 낙원으로 변한 것처럼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낙원 즉 ‘에덴’ 동산에서 출발하게 하셨읍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점에 관한 하나님 자신의 보고가 성서 첫째 권 제2장에 나와 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 나무도 있더라.”창세 2:8, 9.

인간이 존재한지 6,000년이 된 오늘날, 우리는 “인구 폭발”에 관한 절규에도 불구하고, 이 땅은 부분적으로만 사람이 살고 있고, 동물들은 멸종되어 가거나 멸절되어 가고 있음을 보고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두신 처음 사람이 이 낙원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땅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목적은 이 지구 전체가 마침내 낙원 상태로 되게 하는 것이었읍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과 그의 아내를 축복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 분은 이 목적을 발표하셨읍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세 1:27, 28) 하나님께서 처음 남녀를 창조하시기 전에 온 지구를 난원으로 만드시지 않았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 표면의 대부분은 경작되지 않은 상태로 두셨으며, 첫 인간 부부가 우선 돌보기에 충분할 정도의 동산만 가꾸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첫 남녀인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 난원을 동서로 즉 동서가 서로 마주칠 때까지, 남북으로 즉 남북이 서로 만날 때까지 확장시키게 하셨읍니다.

오늘날 인간의 자연 환경을 보고, 우리는 얼른 하나님의 목적이 실패하셨다거나 어느 정도 방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추측할 필요가 없읍니다. 하나님의 기록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낙원이 온 땅에 퍼지는 것을 막으셨읍니다. 그것은 자가당착이 아니었읍니까? ‘아담’과 ‘하와’에게 명령한 것과 자신이 한 일은 서로 모순되지 않았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그 낙원으로부터 경작되지 않은 땅으로 쫓아내셔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충돌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충돌은 그들을 낙원에서 쫓겨나게 하였읍니다.

이제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도록 합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완전성을 가진 인간을 이 지구 위에 두셨을 때, 그는 인간이 지구의 소유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읍니다. 다만 인간이 땅에서 살고 땅에서 일하도록 하셨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낙원의 소유권과 지구의 모든 부분의 소유권을 양도하시지 않았읍니다. 지구의 창조주로서 그분은 소유권을 가지고 계셨고 그분은 항상 지구의 창조주로 계십니다. 사람이 창조된지 2,900여년 후에 ‘베들레헴’의 시편 필자 ‘다윗’은 이렇게 기록하였고 노래불렀읍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해 건설하셨도다.” (시 24:1, 2) 이것이 바로 오늘날 모든 나라들이 무시하고 도외시한 점입니다. 그들의 첫 조상과 얼마나 같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무시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실과를 먹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복종과 순종의 시험에 낙제하였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죄였읍니다. 그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계속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자기의 주권을 택하고 주권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과 충돌하였읍니다.—창세 3:1-14; 로마 5:12.

하나님께서는 반역적인 죄인들이 ‘에덴’ 동산을 땅끝까지 퍼지게 하거나, 심지어 그러한 일을 시도하는 것까지도 허락하시고자 하지 않았읍니다. 정당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자기 소유지인 낙원에서 쫓아내셨으며, 경작되지 않은 땅으로 보내서 “생명 나무”로부터 떨어져 있게 하셨읍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반역적인 죄에 대한 선고된 형벌대로 죽음의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창세 2:15-17; 3:16-24) 그리하여 약 6,000년 전에 낙원이 확장되는 일이 중단되었읍니다. 낙원 밖에서 인간은 자치를 할 수 있었고, 원하는 대로 자주권을 행사할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생명 나무가 있는 낙원 안에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읍니다. 낙원 밖에서 사람은 지구의 소유자가 되지는 않았읍니다. 그것은 사람이 죽을 곳이요, 영원한 소유자처럼 영원한 거주권을 행사할 곳이 아니었읍니다. (창세 5:1-5) ‘아담’은 땅에서 영원한 생명의 가능성을 가진 완전한 인간으로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930세를 살았으나, 마침내 죽었읍니다. 그는 지구 어느 곳에서 더 잘 살 수 없었읍니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은 죄와 죽음의 단죄 아래 출생하였기 때문에 역시 임시적 거주자들이었읍니다. 나라들 역시 그러합니다.

하나님과 충돌하지 않는 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낙원 밖에서 출생한 ‘아담’과 ‘하와’의 대부분의 후손들은 하나님과 반대로 걸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자로 태어났읍니다. 성서는 ‘아담’으로부터 칠대손인 ‘에녹’이 “[참]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365세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알려 줍니다. (창세 5:21-24; 유다 14, 15) ‘에녹’ 시대에 인류 세계는 참으로 “경건하지 않”았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에녹’을 죽이려고 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 하나님께서 ‘에녹’을 옮기셔서 그들의 손에 폭력적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하셨읍니다. (히브리 11:5) 그는 죽음으로부터 부활될 희망을 가지고 있읍니다.

또한 ‘아담’의 십대 손이 그의 창조주와 동행하였읍니다. 그에 관하여 성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참]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창세 6:9) 이 경우에도 ‘에녹’의 경우와 같이 보상이 있었읍니까? 그렇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아무런 충돌도 하지 않았읍니다. 이것은 그와 그의 가족이 경건치 않은 모든 인류 사회를 익사케 한 온 땅을 덮은 홍수를 살아남았다는 놀라운 사실로써 증명되었읍니다. (창세 6:13-9:20; 히브리 11:7; 베드로 전 3:20; 베드로 후 2:5; 3:5, 6) 이 세계적 물의 범람은 북극과 남극에 만년빙을 생기게 하였을 뿐 아니라 땅에 있던 원 낙원을 없애버렸읍니다. 그러나 홍수로 낙원을 쓸어 버리신 거룩한 창조주이신 낙원의 소유자께서는 또한 그것을 회복시키실 수 있읍니다. 그분은 바로 그렇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읍니다. 그 분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근본 목적을 실패케 하신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그 목적을 영화롭게 성취시키실 것이며, 온 지구를 인류가 영원히 행복하게 살 집으로 미화하실 것을 확증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형주에 달리셨을 때에 바로 이 회복된 낙원을 언급하셨읍니다.

누가복음 23:38-43의 성서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그의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고] ···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그의 왕국 아래 세계 전역에 세워질 이 낙원을 믿으셨읍니다. 그는 또한 ‘노아’ 시대의 홍수도 믿으셨읍니다. 우리가 만일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세상 나라들은 그것을 믿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 24:38, 39; 누가 17:26, 27) 나라들이 믿지 않는 또 다른 것은 예수께서 이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관하여 말씀하신 예언입니다. 그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홍수 전에 지상에 있었던 사물의 제도가 세계적 재난의 홍수로 인하여 종말된 바와 같이 오랫 동안 존재해 온 현 사물의 제도도 세계적인 재난으로 인하여 종말될 것을 말씀하셨읍니다.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나라들의 종교적 주장에 의한다면 그들은 소위 이교국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교국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국 역시 하나님과 충돌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고대 ‘이스라엘’ 나라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한 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살았읍니다. (에스겔 20:6; 출애굽 3:8, 17; 13:5; 33:3) 그 땅은 ‘팔레스타인’이었읍니다.

기원전 20세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도덕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전에도 ‘요단’ 강 지역은 거의 낙원과 같았읍니다. 성서 첫째 책은 그곳이 “여호와의 동산”과 같았다고 말합니다. (창세 13:10) 기원전 15세기에 그 땅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데려오시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레위 25:2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아름답고 생산적인 땅을 하나님의 소유지처럼 다루었읍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예언자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우상 숭배와 부도덕한 행위, 폭력, 및 유혈로써 그 거룩한 땅을 더럽혔읍니다. 그들의 종교적 행로 때문에 예언자 ‘미가’는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였읍니다. (미가 6:8)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았읍니다.

그리하여 언제인가는 대결이 있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국가적 언약을 깨뜨리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언약을 깨뜨리는 자에 대하여 언약에 명시되어 있는 형벌을 마땅히 받아야 하였읍니다. 기원전 9세기에 이미 하나님의 예언자 ‘아모스’가 일어났읍니다. 온 지구의 창조주께서는 그를 통하여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취하실 행동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읍니다.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대저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폭풍으로]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자는 그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니라.”—아모스 4:11-13.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이것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군대 사령관의 도전적 명령입니다. 그것은 군사적 대결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민수 20:18, 20; 21:23, 33; 사무엘 하 10:9, 10, 17) 여기에서, ‘이스라엘’ 나라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라는 도전을 받았읍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농담이나 어리석은 말이 아니었읍니다. 보이지 않는 이 분은 그가 실재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산들과 같은 보이는 창조물들을 가지고 계셨읍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땅에 있는 가장 높은 산보다도 더 높으신 분이었읍니다. 그분은 바람을 창조하실 수 있었고, 바람을 조종하실 수 있었읍니다. 그리고 아침 일찌기 폭풍으로 아침 빛을 어둡게 하실 수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주신 거룩한 땅을 더럽혀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 나라에게 그의 심판을 집행하도록 그의 보이는 대행자로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사용하실 수 있으셨읍니다. 그분은 ‘유다’와 ‘예루살렘’ 땅으로 ‘바벨론’ 제국의 군대를 이끌어 오심으로써 기원전 609-607년에 바로 그렇게 하셨읍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다했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군대로 대표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대항할 수 없었읍니다. ‘예루살렘’은 무너졌읍니다. ‘유다’ 땅은 황폐되었읍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은 영적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합니다. (갈라디아 6:16) 그리스도교국은 고대 ‘이스라엘’이 숭배하던 같은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을 맺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성서를 받았읍니다. 성서의 모든 필자들은 육적 ‘이스라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나라들은 성서와 함께 유혈 전쟁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인류 역사상 이전 어느 시대에 전세계가 무장했던 것보다도 더 무겁게 무장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대결할 준비를 하려고 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고대 ‘이스라엘’의 현대적 실체인 그리스도교국에게도 마땅히 하나님의 군사적 대결의 도전이 있게 됩니다.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환경은 바로 이것을 요구합니다!

이 대결의 확실성은 천문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감에 의한 성서인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이 세상 나라들의 일부입니다. 세상적 국제 연합에 속한 약 반수의 나라들이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나라들이며, 나머지 나라들은 비그리스도교국 즉 이교국입니다. 사실상 그리스도교국은 이 세상 나라들 사이에서 지배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국은 이 세상 모든 나라들이 당할 일을 피할 수 없읍니다. 성서의 예언의 말씀은 거듭 이 세상 모든 나라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마지막 대결을 할 것에 관하여 지적하고 있읍니다.

우선 기원전 606년에 있었던 이 성서 예언을 고려해 보십시다. 이 예언이 주어진 것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시와 그 성전을 멸망시킴으로써 탁월한 세계 통치자가 된지 둘째 해였읍니다. 그럼으로 그 예언은 “이방인의 때” 혹은 “열국의 지정된 때”의 둘째 해에 주어졌읍니다. 이 “때”는 ‘예루살렘’ 도시 즉 그것이 대표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이 비‘유대’인 즉 이방인들에 의해서 짓밟힘을 받게 되어 있는 기간입니다. 성서 시간표에 의하면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되고 황폐됨으로써 시작한 이 이방인의 때는 2,520년간 계속되어 기원 1914년 이른 가을에 끝나게 되어 있었읍니다. (누가 21:24) 기원 1914년 이방인의 때가 끝나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었읍니까? ‘예루살렘’이 황폐한지 둘째 해에 주어진 예언이 그 답을 알려 줍니다. 영감에 의한 예언자 ‘다니엘’이 그것을 설명해 줍니다.

‘바벨론’ 세계 강국의 왕은 ‘다니엘’이 그에게 해석해 준 한 예언적 꿈을 꾸었읍니다. 그는 금속으로 된 한 무서운 형상을 보았는데, 그 형상의 머리는 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다리는 철이요 발은 철과 진흙으로 되어 있었읍니다. ‘다니엘’은 금 머리는 ‘바벨론’ 왕조를 대표한다고 말하였으므로 은 가슴과 팔은 그 다음 세계 강국인 ‘메데-바사’ 강국을 상징하였고,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는 그 다음 세계 강국인 희랍을 의미하였으며, 철 다리는 ‘로마’ 세계 강국을 그리고 진흙이 섞인 발은 ‘로마’ 제국에서 나와 성장할 여러 가지 정부 형태를 의미하였읍니다. 이들 중에서 영국과 미국 두 부분으로 된 세계 강국이 우위를 차지합니다. 이 정치 세계 강국의 상징적 형상은 ‘예루살렘’이 황폐됨으로써 이방인의 때가 시작된 기원전 607년부터 그 “때”의 마지막 해인 기원 1914년까지 정치적 세계 강국을 총망라하였읍니다. 그러면 이 결정적인 해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었읍니까?

이것이 일어날 일이었읍니다. 즉 꿈을 꾼 ‘바벨론’ 왕은 한 돌이 사람의 손에 도움을 받지 않고 우주적 산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 예언적 돌은 어떻게 되었읍니까? 그것은 금속으로 된 형상을 향하여 떨어지고 있었읍니다. 대결이 있어야 하였읍니다. 형상에게 ‘돌 만나기를 예비하라!’고 말한 것과 같았읍니다.

철로 된 발은 떨어지는 돌을 격퇴시킬 수 있을 것입니까? 그럴 수 없읍니다. 발은 깨어졌읍니다. 형상은 붕괴되었읍니다. 형상 전체는 돌로 말미암아 부숴져 가루가 되어 날려져버렸읍니다. 돌은 자라서 온 땅을 채우는 태산이 되었읍니다.—다니엘 2:1-43.

이것은 모두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지금 진흙과 철이 섞인 발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영의 감동을 받은 ‘다니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정확한 해석을 해 줍니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다니엘 2:44, 45) 이 해석을 볼 때 우리 세대 안에 나타나야 할 이 대결의 쟁점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우주 주권과 관련된 세계 지배의 쟁점임을 명백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지상의 왕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국을 대항하는 사건입니다! 누가 온 지구를 다스릴 것인가? 하는 논쟁은 이제 마침내 해결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예언이 성취될 때에 살고 있읍니다. 온 땅에 사는 온 인류가 관련되어 있읍니다.

우주적 산에서 떨어져 나온 돌로 상상된 이 왕국은 실제로 언제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떨어져 나왔’으며, 세력을 잡았읍니까? 그 일은 세계 지배 문제로 이 땅에서 전쟁이 발발하였던 해 곧 이방인의 때의 끝에 일어났읍니다. 우리 모두는 그해 1914년을 잘 알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집권하신 왕국은 중동에 있는 구‘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에 세워졌읍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신 그곳입니다. 그 당시 세계 상태에 직접적 관련이 있었던 이방인의 때의 끝은 1917년 후기에 심지어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에 의하여 세계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까지 하였읍니다. 1917년 12월 9일 영국 군대가 구‘예루살렘’을 점령한 때를 가까히 해서 ‘지. 캠벨모간’ 박사와 ‘에프. 비. 메여’ 박사 및 저명한 여섯 명의 다른 영국 교직자들은 한 성명서를 발표하였는 데 그것은 전세계를 통하여 재발행되었으며, 그 내용의 일부는 이러하였읍니다.

“(1) 현 위기는 이방인의 때의 종말을 지적해 준다. ··· (5) 재건을 위한 모든 인간의 계획은 우리 주의 재림에 대한 보조가 되어야 한다. 온 나라들은 그때 그의 다스림에 복종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1918년 2월호 「커렌트 오피니온」.

수십년 동안이나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왙취타워협회’ 출판물들을 통하여 1917년이 아니라 1914년이 ‘이방인의 때’의 끝임을 미리 지적하여 왔읍니다. (누가 21:24) 이방인의 때의 끝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보좌에 앉은 아들에게 시편 110:1, 2에 있는 ‘다윗’ 왕의 예언의 성취로서 명령을 발하실 결정적인 때였읍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따라서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왕국인 상징적 “돌”은 1914년에 정치 세력의 상징적 “형상”을 치지 않았읍니다. 그 왕국은 단지 원수 중에서 다스림을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 돌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떼어져 나왔읍니다. 그것은 지금 정치적 형상을 향해서 날아오고 있는 중입니다. “형상”의 발로 대표된 “이 열왕”에 끼어 있는 그리스도교국의 나라들에 대하여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는 여호와의 군사적 대결의 도전은 외쳐지고 있읍니다.—아모스 4:12.

정치적 “형상”의 발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무 나쁜 일도 하지 못하는 데 왜 그것이 맞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그 “형상”이 우상이며, 전세계 백성들이 이 정치 제도를 우상화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우상의 발은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났으므로 이제 그들은 마땅이 서서는 안될 곳에 서 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에 의하여 통치되고 있는 하나님의 왕국을 대항해서 서 있읍니다. 이 왕국은 온 땅을 다스릴 권리를 가진 유일한 정부로서 1914년에 하늘에 탄생하였읍니다.—계시 12:1-10.

아무도 이 점을 잘못 이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성서는 지상의 정치적 통치자들인 “이 열왕”이 하나님의 설립된 왕국과 싸우고 있음을 솔직이 말하고 있읍니다. 이제 성서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 17장을 열어 봅시다. 거기에서 우리는 상징적 언어로 지상의 정치적 통치자들이 고대 ‘바벨론’에서 출발한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을 어떻게 멸망시킬 것인가를 알 수 있읍니다. 큰 ‘바벨론’이 멸망될 때까지 타고 있을 붉은 빛 짐승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징되었읍니다. 이들 일곱 머리는 고대 애굽으로부터 시작해서, ‘앗수르’, ‘바벨론’, ‘메데-바사’, 희랍, ‘로마’ 및 영-미 세계 강국을 통한 인류 역사상 일곱 개의 연속적 세계 강국을 지적합니다. 11절에서는 짐승 자신이 “여덟째 왕” 즉 여덟째 세계 강국이라고 알려 줍니다. 이 여덟째 세계 강국은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 기구로서 우상의 “발”을 그들이 마땅히 더는 서 있지 못할 곳에 계속 서 있게 하려고 노력하는 국제 연합입니다.—계시 17:11; 다니엘 2:33, 34.

국제 연합 기구는 하나님에 의한 세계 지배가 아니라 사람에 의한 세계 지배를 위하여 서 있읍니다. 이 기구 안에는 두개의 반대 집단을 형성하는 나라들이 사람이 만든 정치 제도와 이념에 의한 세계 지배를 위하여 서 있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왕국의 세계 지배를 원치 않으며 그것을 실질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우주 주권보다도 그들 자신의 정치적 주권을 원합니다. 지구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그들은 우리에게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계속 지킬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정치적 통치자들이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을 일단 없애버리면 그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욱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임을 나타낼 것입니다. (사도 5:39) 계시록 17장 12-14절은 우리가 그때 기대해야 할 일을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보도록 합시다. 계시가 주어진 사도 ‘요한’에게 이러한 말이 들렸읍니다.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요한’ 시대에] 나라[즉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기구의 회원권]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국제 연합]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국제 연합]에게 주더라. 저희가 어린 양(예수 그리스도)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는 이기리로다.”

이제 이러한 질문이 생길 것입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늘의 영자이시며 그의 왕국도 하늘에 설립되었는데 이 땅에 있는 이들 상징적 뿔들과 짐승이 어떻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가? (요한 1:29, 36; 계시 5:6-13) 그들은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왕국에게 자리를 양도하기를 거절하고, 그에게 그들의 국가적 주권을 양도하기를 거절하고, 그리하여 지상에 그들의 정치적 지위를 영속시키려고 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그들은 또한 그의 왕국의 좋은 소식의 지상의 선포자들인 “그리스도의 사절”들을 탄압하고 박해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마태 24:14) 이들은 계시록 17:14에서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라고 한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 부음을 받은 추종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이들 헌신하고 침례받은 기름 부음을 받은 추종자들에게 편지할 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권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요청합니다. 하나님과 화해하시오.”—고린도 후 5:20, 새번역.

사도 ‘바울’은 또한 이들 그리스도의 사절들에게 또 다른 신분을 줍니다. 그는 “천만 천사”와 함께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에 관하여 말합니다. (히브리 12:22) 또한 그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에 관하여 설명한 다음에 그는 그들에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하늘을 지적합니다. (빌립보 3:14, 20) 그러므로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의 시민입니다.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나라들과 이 세상의 다른 나라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하며 그리스도에 의한 그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것으로 이미 명성을 떨쳤읍니다. 따라서 이 나라들이 큰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다음에 이들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충성스러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에게 위협적으로 돌이켜서 이들 “그리스도의 사절”에 대하여,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의 시민에 대하여 불경한 행동을 감행할 것입니다. 그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이들을 대항하여 싸움으로써 그들은 비록 만왕의 왕이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나 여호와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싸우게 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보다 더 명백한 싸움이 또 어디 있겠읍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관한 그의 마지막 예언 가운데서 이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 25:40; 24:3.

하나님과 충돌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나라들이 결전장에 도달할 것입니다. 즉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할-마게돈’, 신세)이라 하는 곳”이라고 예언적으로 언급된 세계적 변천의 결정적 단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계시 16:14-16.

모든 나라들은 현재 ‘할-마겟돈’으로 진군하고 있읍니다. 이것은 성서의 시간표에 따라 그리고 성서 예언 성취의 세계적 사건들에 따라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과의 대결은 임박해 오고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모든 나라들을 합한 것도 그에게는 빈 물통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과 같습니다. (이사야 40:15) 하나님께서 행동을 취하실 때가 왔기 때문에 그분은 요엘 3:9-12에 있는 예언의 언어로써 모든 나라들에게 접전하자고 도전적으로 외치십니다. 그들이 얼마나 철저히 준비하였든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의한 그의 정부를 멸시할 수 있도록 얼마나 강하게 무장하였든지 간에, 나라들의 상태는 마치 철로 위에 붙어 있는 한 마리의 개미가 달려 오는 거대한 ‘디젤’ 기관차에게 ‘정지하라, 너는 나를 결코 넘어갈 수 없다, 내가 여기 있는 데 감히 어디로 달려오고 있느냐!’ 하고 도전적으로 소리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충돌!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저 국제 연합 기구를 보십시오. 그것은 그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공격을 격퇴할 수 있을 것입니까? 하나님의 예언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알려 줍니다. 하나님의 우주적 산에서 떼어져 나와 하나님 자신의 손에 의하여 던져진 왕국 돌은 지금 지상의 인간 지배의 상징적 “형상”을 칩니다. 돌이 철을 맞혀 깨뜨리면 귀청이 터질듯한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들어 보십시오! 무엇인가 부숴지고 있읍니다. 부숴진 것은 돌입니까? 아닙니다. 인간 통치자들에 의한 세계 지배의 철같은 모든 경쟁자들을 그 돌이 쳐부숩니다. 이제 맷돌 소리와 같은 귀에 거스리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그것은 ‘바벨론’의 금 “머리”로 시작한 마귀의 조종을 받는 정치적 통치의 쓰러진 전체적 “형상”을 그 돌이 가루로 만드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의 폭풍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정치적 “형상”의 가루가 된 모든 형적을 타작 마당의 겨와 같이 날려버릴 것입니다. 낡은 사물의 제도의 모든 흔적은 영원히 없어질 것입니다. 성서 마지막 책(계시록 19:11-21)에 묘사된 바와 같이 ‘할-마겟돈’에서의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군만이 전장에 남게 되는 영광스러운 승리로서 끝나게 될 것입니다. 세계 지배의 쟁점은 여호와의 편으로 영원히 해결될 것입니다.

이 굉장한 충돌이 일어날 때 안전한 곳이 있을 것입니까? 이 충돌을 살아 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만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선 자들일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 편에 서고 그리스도에 의한 그의 왕국 편에 선 자들에게만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이 적용될 것입니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리라].” (시 91:8-10) 지금 여호와의 우주 주권을 지지하여 굳게 선 사람들은 다만 옆에 서서 보기만 하며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에 활동적으로 가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는 피난처에서 여호와와 그의 그리스도께서 반항해 오는 모든 나라에 대하여 승리를 거두시는 것을 목도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저가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도다”라는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시 68:30) 그들은 하나님의 적에 대한 시편 83:17, 18에 있는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볼 것입니다.

“저희로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놀라게 하시며 낭패와 멸망을 당케 하사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상징적 형상의 발을 친 돌로 상징된 하나님의 승리적 왕국은 이제 마치 그 돌이 “태산”을 이루어 온 땅에 가득해지는 것과 같이 성장할 것입니다. (다니엘 2:35) 하나님의 그리스도에 의한 왕국은 이 지상 어느 곳에나 미칠 것입니다. 나라들이 하나님과 마지막 충돌을 할 때 살아남아 이 왕의 산에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특권일 것입니까!

이 산에서 같이 살 행복한 사람들에 관하여 이사야 11:9의 예언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에 더하여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켜 주는 예언은 이러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 연회를 베푸시리니 ···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이사야 25:6-8.

그러므로 당신이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와 그리스도에 의한 그의 왕국 편에 서기 때문에 지금 사람들에게 모독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반대 방향에서 오고 있어서 앞으로 어쩔 수 없이 충돌하게 될 나라들과 동행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모독을 도외시하고 “참 하나님과 동행한” 순종적인 사람 ‘노아’와 같이 되십시오. (창세 6:9) 그러면 당신도 그와 같이 이 국제적 사물의 제도의 종말을 살아남아 그의 통치하는 왕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아래 있을 영원한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살 희망을 즐길 것입니다. 거기에서 당신은 하나님께서 죽음까지도 없애시는 것을 볼 것이며, 당신은 영원한 생명을 즐기고 온 땅을 덮은 결코 쇠퇴하지 않을 낙원에서 완전한 건강과 행복으로 그를 섬기고 숭배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