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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미래—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

안전한 미래—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

안전한 미래—어떻게 발견할 있는가?

1. 당신은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어떤 안전을 바랍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안전을 염원합니다. 당신도 틀림없이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안전을 원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앞으로 언젠가 더 나은 상태가 올 것이라는 단순한 약속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긴급한 삶의 문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에도 진정한 안전을 얻게 해 주고 앞으로도 계속 안전하게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안전이 가능합니까?

2. (ㄱ) 성서 이사야 32:17, 18은 안전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ㄴ) 당신은 그러한 상태 아래서 살기를 원합니까?

2 온 땅에 사는 모든 인종 가운데는 그것이 가능함을 믿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안전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감받은 한 예언자는 오래 전에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으[리라].” (이사야 32:17, 18) * 전세계에 사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은 현 세상의 소란 가운데서도 평화로운 안전을 이미 즐기기 시작하였으며, 그들에게는 더욱 빛나는 장래를 바라볼 만한 이유가 있읍니다. 당신도 그들과 함께 그러한 유익에 참여할 수 있읍니다.

3. 성서에는 인류에게 안전을 가져다 줄 또 다른 어떠한 약속들이 있읍니까? (계시 21:4, 5)

3 이 사람들은 ‘사람들이 두렵게 할 자가 없을’ 때 즉 범죄가 없어질 때, 재산과 사람이 위험에 처하는 일이 없어질 때, 그것도 이제 매우 가까운 그러한 때를 바라보고 있읍니다. (미가 4:4) 그들은 “산 꼭대기의 땅에도 화곡이 풍성”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살아 있는 많은 사람들이 더는 굶주리는 일이 없는 날을 보게 될 것을 믿을 만한 건전한 이유를 가지고 있읍니다. (시 72:16)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고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라는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직접 볼 날을 바라보고 있읍니다. (계시 21:3, 4) 그들은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있을 것을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읍니까? 이러한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들어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성서를 기록하는 데 사람들이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디모데 후 3:16, 17)

4 우리의 미래에 관한 성서의 내용은 단순히 역사의 경향을 해석하려는 인간의 노력의 결과가 아닙니다. 성서를 기록하는 데 사람들이 사용되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기록하였읍니다. 그리하여 그 소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성서 내용의 근원에 관하여 성서 자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의 어떤 예언도 아무런 사사로운 해석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십니다. 왜냐 하면 예언은 언제나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요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는 대로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후 1:20, 21, 신세)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외계를 여행한 우주 비행사들까지도 땅으로 소식을 전하였고 그러한 소식들은 아주 놀라웁게 명료하게 들렸읍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더욱 훌륭한 방법을 사용하여 자기와 뜻이 일치한 충실한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달해 주실 수 없겠읍니까? 물론 그렇게 하실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이 안전한 미래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에 관하여 성서가 알려 주는 바를 검토해 보도록 권하는 바입니다.

어디에서 참다운 도움을 발견할 있는가?

5. 성서는 돈과 기타 재산에 대해 어떠한 실제적 견해를 갖도록 우리를 격려합니까? (전도 7:12)

5 성서는 우리로 인생을 실제적인 면으로 보도록 도와 줍니다. 우리의 영속적인 복지를 생각해서, 성서는 우리로 가치있는 것에 확신을 두도록 권고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재산을 의지합니다. 성서는 돈의 가치와 기타 재산의 가치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성서는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다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를 알려 줍니다. (누가 12:15) 재산은 그 가치를 상실할 수 있읍니다. 재산은 도적맞을 수도 있고 파괴될 수도 있읍니다. 돈을 가진 사람의 생명이 그 돈을 훔치려는 자에 의하여 위험에 처하는 수도 있읍니다. 그러므로 다른 곳에서 참다운 안전을 찾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찾아 보아야 합니까?

6. 우리의 미래에 대한 모든 희망을 인간 지도자들의 약속에 두는 것은 왜 이치적이 아닙니까?

6 장래에 대한 모든 희망을 인간 지도자들의 약속에 두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당신도 그러합니까? 특정한 지도자들의 정직 여부나 능력 여부는 불문하고, 성서는 그들 모두가 죽을 운명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그 문제의 핵심을 지적합니다. 성서는 현명하게도 이렇게 주의를 시킵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시 146:3, 4) 그러므로 인간 지도자들이 일부 사람들의 문제에 영향을 끼친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몇년 동안에 불과합니다. 장기적 안전에 관한 한 그들 자신이 안전을 얻을 수 없는 것 같이 우리에게도 안전을 베풀어 줄 수 없읍니다.

7. (ㄱ) 우리에게 장기적 안전을 마련해 줄 수 있는 분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 17:28) (ㄴ) 우리가 그러한 안전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7 그러나 그러한 안전을 베풀어 줄 수 있는 분이 있읍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십니다. 이 땅이 형성되기 전에 그분은 존재하셨고, 이 20세기가 지난 오랜 후에도 그분은 계속 존재하실 것입니다. 그분에 관하여 시편 90:2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생명의 근원이시고, 이 지구에 생물들이 살 수 있는 기능을 주신 분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현재의 복지와 미래에 대한 전망은 그분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다운 안전을 얻으려면 그분과 선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8. (ㄱ)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종류의 사람들을 원하십니까? (ㄴ)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그 조건에 일치하기 위하여 기꺼이 어떻게 하려고 해야 합니까? (마태 7:21-23)

8 이것은 우리 생애에 필요한 것이란 어떤 종교를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까? 그러한 결론은 잘못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호의적 관계를 갖도록 허락하시는 사람들은 특정한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어떠한 종류의 사람들입니까? 성서는 그들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와 같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고 계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에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요한 4:23, 24, 새번역) 당신은 하나님께 “진리”로 예배 즉 숭배를 드리는 분입니까? 당신은 믿는 교리들이 “진리의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바와 온전히 일치한지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검토해 본 일이 있읍니까? (시 31:5) 당신은 기꺼이 그렇게 해 보겠읍니까? 진리와 일치하지 않은 가르침과 행실은 아무에게도 영속적인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사람들로 실재적인 것들을 무시하게 하며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합니다. 참으로 진리를 알기 원하고, 생활을 진리와 일치시키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것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만 참다운 안전으로부터 오는 만족을 얻을 수 있읍니다. 가장 중요한 진리 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9. (ㄱ)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은 무엇입니까? (ㄴ) 친구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기 위하여 어떤 성귀를 사용할 수 있읍니까?

9 당신은 그분의 고유한 이름을 아십니까? “하나님” 혹은 “주”는 고유한 이름이 아닙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칭호입니다. “씨” 또는 “왕”이 칭호인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서에 보면 시편 83:18에는 이러한 말이 있읍니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이것은 사람이 지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2:8) 일부 원 「히브리어 성경」 번역판들은 그 이름을 “야훼”라고 번역합니다.

10. (ㄱ)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까? (사도 15:14) (ㄴ) 우리가 여호와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 이름을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사용해야 합니까? (이사야 43:10)

10 일부 번역자들은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좋아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어떠한 이름보다도 훨씬 더 많이 원본에 나오는 그 이름을 숨기려고 한다면 어떻게 번역자들로서 정직하다고 할 수 있겠읍니까? 참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을 알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고대 ‘애굽’의 통치자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그때까지 살려 두신 이유를 알려 주라고 자기의 종 ‘모세’에게 말씀하셨을 때 이 사실을 명백히 하셨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하나님께서는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출애굽 9:16) 우리가 존경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의 숭배자들임을 밝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11. 하나님께서는 숭배를 위하여 형상을 사용하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시 115:3-8; 신명 7:25)

11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승인하시지 않는 것과 연결시키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에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요한 4:24, 새번역) 우리가 “하나님은 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분을 “영” 곧 영적인 방법으로 예배 즉 숭배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물질적 대상물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 복음 1:18에 의하면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므로 그분의 형상을 그리거나 조각할 수 없읍니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그 앞에서 숭배하는 자들을 도우려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형상이 결코 살아계신 하나님을 올바로 대표할 수 없읍니다. 물론 어떤 형상들은 하나님을 대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종교적 숭배의 대상물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 그분은 그러한 목적으로 어떠한 형상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읍니다. 그분의 명령은 이러합니다. “너는 ··· 어떤 물건 새긴 것이나 그린 것도 도무지 만들지 말찌니라. 너는 그들을 숭배하지도 말찌며 그들을 섬기지도 말찌니[라].” (출애굽 20:4, 5, 천주교역) 진리에 대한 사랑은 여호와께서 승인하시지 않는 대상물을 사용하게 하지 않고 우리로 하나님께서 실제 어떠한 분이신가를 알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2. (ㄱ) 여호와는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ㄴ) 특히 그분의 어떠한 특성을 당신은 좋아합니까?

12 그분의 특성들은 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확신을 둘 만한 그러한 것들입니다. 그러한 특성들 중의 몇가지 즉 어떠한 인간의 것보다도 월등한 전능하심과 지혜는 물질적 창조물에서 분명히 볼 수 있읍니다. 석양의 아름다움이나 새들의 지저귀는 노래 소리, 꽃들의 향기, 그리고 우리가 즐기는 여러 가지 맛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반영이 아닙니까?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에 관하여 이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성서는 여호와께서 옳은 것을 옹호하시지만 또한 그분은 동정적이시고 사려깊으신 분임을 알려 줍니다. 성서는 그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으리라].” (출애굽 34:6, 7) 그리고 성서는 하나님께서 여러 세기 동안 고대 ‘이스라엘’ 민족을 다루신 방법을 알려 주는데 그것은 이러한 특성들을 명백히 나타내 줍니다. 또한 그 기록은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분이심을 증명해 줍니다. (사도 10:34, 35) 그분은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그분과 선한 관계를 갖기를 원하시며 친절하게도 그것이 가능하도록 마련하셨읍니다.

13. 참으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그의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됩니까? (잠 3:5, 6)

13 우리가 참 하나님의 여러 가지 훌륭한 특성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에게 더욱 깊은 뜻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되며, 그 결과 보호를 받게 됩니다. 잠언 18:10에 있는 말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14. (ㄱ) 우리의 미래는 왜 여호와께 달려 있읍니까? (ㄴ) 각자는 어떠한 심각한 결정을 해야 합니까? (신명 30:19, 20)

14 이러한 안전에는 미래에 대한 전망도 포함되어 있읍니다. 모든 인류의 미래는 참으로 여호와께 달려 있읍니다. 그 이유는? 이 땅은 그의 창조물이며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생명을 지속케 하는 그분의 마련에 의존해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에서 그분은 자기의 백성을 위하여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상태를 마련해 주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어떠한 것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목적을 수행하시는 것을 방해할 수 없읍니다. 그러한 그 목적이 우리의 자유 의지를 빼앗아 가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 선택도 할 수 없게 우리 각자의 운명에 맞게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심각한 결정을 내리게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모든 일과 앞으로 하실 일에 대한 인식이 우리의 생활을 그분의 뜻과 일치하게 합니까? 누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변경시키거나 그분의 목적을 좌절시킬 수 없읍니다. 다만 자기가 사랑에 근거한 이 목적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할 따름입니다. 이 선택은 사실상 생명과 사망의 문제입니다.

인간 생활을 고통스럽게 하는 위험의 이유

15. 오늘날 우리의 생활을 위험케 하는 것들 중에는 어떠한 것이 있읍니까?

15 여호와의 목적이 어떻게 참다운 안전을 가져올 수 있는가를 인식하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오늘날 우리 생활을 위험케 하는 것들 몇 가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 중에는 사랑의 결핍, 법의 경시, 다른 사람의 재산에 대한 불경, 그리고 목적 달성을 위한 사기와 폭력의 조장 등이 있읍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질병과 언젠가는 사람이 죽는다는 현실을 망각할 수 없읍니다. 개인적인 경험과 관찰로부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인간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알고 있읍니다. 그러면 이러한 모든 일들이 있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대답을 성서에서 발견할 수 있읍니다.

16. 처음에, 어떠한 환경이 ‘아담’과 ‘하와’로 안전을 즐기게 하였읍니까? (창세기 1:31; 2:8, 15)

16 성서의 맨 첫째 책은 여호와께서 우리의 첫 인간 조상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그분의 하신 일이 매우 좋았었음을 알려 줍니다. 그들이 창조되었을 때 그들에게는 질병을 가져올 만한 아무런 결함도 없었읍니다. 그들 앞에는 영원히 살 전망이 놓여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시게도 그들에게 ‘에덴’ 낙원을 주셔서 그곳에서 살게 하셨읍니다. 그분은 그들의 집인 그 동산에 풍부하게 씨 맺는 채소와 그들의 식물이 될 열매 맺는 나무들을 마련해 주셨읍니다. 그분은 또한 그들에게 물고기와 새들 그리고 모든 동물들을 지배하고 땅을 경작하고 온 땅이 그들이 사는 낙원과 같이 될 때까지 그들의 후손으로 번성하도록 지시하심으로써 목적있는 생활을 하게 하셨읍니다. 그러한 환경하에서는 안전감이 있을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안전을 계속 즐기려면 그들이 해야 할 조건이 있었읍니다.

17. (ㄱ) ‘아담’과 ‘하와’가 계속 안전하게 살기 위하여는 어떠한 요구에 달해야 하였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순종을 어떻게 시험하셨으며, 이것이 왜 중요한 문제입니까? (누가 16:10)

17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들의 위치를 인정해야 하였읍니다.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들의 창조주의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들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실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계셨읍니다. 생명 자체는 조건부의 선물이었읍니다. 즉 ‘아담’과 ‘하와’는 그들이 계속 그들의 천적 아버지께 사랑에 근거한 순종의 요구에 달해야 한다는 조건하에 그것을 계속 즐길 수 있었읍니다. 이 요구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그 남자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읍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세 2:16, 17) 순종은 사람이 하나님을 통치자로서 받아들인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불순종은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배척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 법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내포되어 있지 않았읍니다. 그 법은 사람에게서 아무 것도 필요한 것을 뺏은 것이 없고, 매우 효과적이면서도 간단한 시험 곧 그가 살고 있는 환경에 적합한 시험이 되게 하였읍니다. 그것은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에게 그들의 천적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나타낼 기회를 제공해 주었읍니다.

18. (ㄱ) ‘아담’과 ‘하와’의 죄와 관련해서 그리고 그 후에 위험의 원인이 되는 어떠한 것들이 처음으로 나타났읍니까? (ㄴ) 로마서 5:12의 설명과 같이 ‘아담’의 모든 후손에게는 어떠한 영향이 미쳤읍니까?

18 창세기 3장에 있는 성서 기록은 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였음을 알려 줍니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하나님께서 “금지”시키신 나무로부터 따 먹었읍니다. 이전에 인간 부부가 즐겼던 안전이 사라졌읍니다. 오늘날 위험하게 하는 모든 일들이 바로 그때 처음으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결핍과 그분의 법에 대한 경시 그리고 그분의 재산에 대한 불경이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승인을 받지 못한 ‘아담’과 ‘하와’는 ‘에덴’으로부터 쫓겨났읍니다. 낙원 밖에서 그들의 아들 ‘가인’을 포함한 많은 후손들은 폭력을 의지하게 될 정도로 타락하였읍니다. 하나님의 법을 고의적으로 무시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죄의 유전의 결과를 자기 몸에서 느끼게 되었읍니다. 로마서 5:12에 설명된 바와 같습니다.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9. (ㄱ) ‘에덴’에서 반역은 누구로부터 시작하였읍니까? (계시 12:9) (ㄴ) 그는 어떻게 ‘사단’ 마귀가 되었읍니까? (야고보 1:14, 15)

19 그러나 반역이 처음 시작했을 때 그것이 ‘아담’과 그의 아내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성서는 한 “뱀”이 ‘하와’에게 말을 걸어 하나님의 법을 어기도록 속임으로써 그를 유혹하였음을 알려 줍니다. 물론 문자적인 뱀은 말을 할 수 없읍니다. 그리고 성서는 후에 그 뱀 배후에 있는 힘이 보이지 않는 영자(靈者)였음을 알려 줍니다. 이 영자는 악하게 창조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이 영자는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기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선택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나쁜 욕망을 자라게 함으로써 그는 교만심을 발전시켰으며, 그는 다른 피조물들이 자기를 신으로 숭배하게 되기를 원하였읍니다. 그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자신을 마침내 하나님의 대항자를 의미하는 ‘사단’과 중상자를 의미하는 마귀가 되게 하였읍니다.

20. (ㄱ) ‘사단’은 ‘하와’에게 말할 때에 어떠한 주장을 하였읍니까? (ㄴ) 그 여자는 왜 ‘사단’의 말을 들음으로써 자기의 상태를 호전시키지 못하였읍니까?

20 그는 ‘하와’에게 접근하여 먼저 질문을 한 다음, ‘하와’에게 하나님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읍니다. “[금단의 나무로부터 따 먹는다 할지라도]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 3:1-5) 이 말은 여자에게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 같이 들렸읍니다. 그러나 그 말을 믿음으로써 그 여자는 참으로 더 큰 안전을 얻었읍니까? 그의 남편은 자기 아내의 죄에 가담함으로써 자기를 더 좋은 상태에 있게 하였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었읍니다. 이 사실은 그들이 죽음으로써 결정적으로 증명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계속 죽어 왔읍니다.

21. (ㄱ) 어떠한 중요한 쟁점들이 ‘에덴’에서 일어났으며, 이러한 쟁점들은 모든 창조물의 안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읍니까? (ㄴ) ‘욥’의 시대에 어떠한 주장이 또 있었으며, 그것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었읍니까? (욥 1:7-12; 2:1-5)

21 ‘에덴’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들이 야기되었으며, 이들은 모든 창조물의 안전에 영향을 미쳤읍니다. 하나님의 충실성이 도전을 받았으며,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의 정당성과 의로움에 의문을 일으켰읍니다. 사람이 자기가 세워놓은 표준에 따라 선과 악을 결정하고 자기 스스로 통치자가 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임이 암시되었읍니다. ‘사단’의 반역과 첫 인간 남녀가 하나님께 충성을 지키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지성있는 다른 피조물들은 어떠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일으켰읍니다.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을 지킬 자들이 있을 것인가? 후에 ‘욥’이라는 사람의 시대에 ‘사단’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사랑의 이유가 아니라 다만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읍니다. ‘사단’은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하고 반문하였읍니다. (욥 1:9) 만일 하나님의 적인 자기가 누구든지 시험만 할 수 있다면 아무도 여호와의 통치권에 성실을 유지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그는 암시하였읍니다. 이러한 쟁점들이 해결될 때까지는 인류는 결코 다시 완전한 안전을 즐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쟁점들이 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온전히 만족할 만큼 해결될 수 있음을 아셨으며, 그 점을 생각하고 여러 가지 마련들을 하셨읍니다.

안전한 미래를 가능케 할 마련들

22. (ㄱ) 우리의 첫 조상에게 심판이 내려졌을 때,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무엇이 가능하게 하셨읍니까? (베드로 후 3:9) (ㄴ) 인류의 미래를 위한 여호와의 마련이 누구를 중심으로 작용합니까?

22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첫 조상이 심판을 받았을 때,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출생하지 않은 후손들을 잊지 않으셨읍니다. 인자하시게도 그분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기를 원할 것인가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목적을 세우셨읍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작용합니다.

23. (ㄱ) 예수께서 인간이 되시기 전에는 어떠한 종류의 생명을 가지고 계셨읍니까? (ㄴ) 우리는 왜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거나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까? (요한 17:3)

23 이 아들은 하늘 영역에서 여호와께 제일 먼저 창조된 분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 만물이 그를 통하여 창조되었”다고 성서는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골로새 1:15-17, 새번역) 그러나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그분의 아들은 하늘에 영광을 떠나 기적으로 지상에서 인간으로 태어나셨읍니다. 이 탄생을 미리 알리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천사 ‘가브리엘’은 그 태어날 아기가 하나님일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을 발표하였읍니다. (누가 1:35)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일이 없읍니다. 그는 숭배를 받으려고 한 ‘사단’과 같이 행동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진실하게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4: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즐기려면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으로 생각한다거나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생각하므로 그분의 아들의 지위를 다르게 돌려서는 안 됩니다.

24. 예수께서 지상에서 인간으로서 큰 압력 아래 성실을 입증하심으로써 무슨 결과를 가져왔읍니까?

24 이 지상에서 예수께서는 이전에 결코 경험해 본 일이 없는 일들을 겪으셨읍니다. 하늘에서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아무런 흠이 없으셨읍니다. 그러나 그 분은 지상에서도 인간으로서 계속 충성을 증명할 것입니까? 특히 그가 고통과 부당한 멸시를 받으면서도 그렇게 할 것입니까? ‘사단’은 아무도 심지어 하나님의 이 탁월한 아들까지도 시험하에서 충실할 수 없음을 증명하려고 결심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에 고착하셨으며 그것을 지침으로 삼고 그것을 인용하여 유혹을 물리치셨읍니다. 그분은 나쁜 일을 행하게 하려는 압력을 단호하게 물리치셨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여호와]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태 4:10) 예수께서는 죽음을 당하실 때까지 통치자이신 여호와께 대한 충성을 유지하셨으며, ‘아담’이 당했던 시험보다도 훨씬 더 심한 시험 아래서 그렇게 하셨읍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께서는 ‘사단’이 야기시킨 거짓 비난으로부터 아버지의 이름을 깨끗케 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본으로써 우리에게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과 우리가 또한 여호와의 통치권의 충성스러운 옹호자임을 나타내는 방법을 보여 주셨읍니다.

25.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죽음으로 또 어떠한 결과가 왔으며,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능케 하여 주었읍니까? (디모데 전 2:3-6)

25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에게 훌륭한 본이 되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친히 설명하신 바와 같이 그분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오셨읍니다. (마가 10:45) 인류가 죄로 말미암은 질병과 사망으로부터 구제를 받으려면 반드시 대속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칙에 의하면 대속(代贖)의 값은 ‘아담’이 상실한 완전한 인간 생명에 상응하는 완전한 인간 생명이어야 합니다. ‘아담’의 불완전한 후손은 아무도 그것을 마련할 수 없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시게도 그 마련을 해 주셨읍니다. 그분은 자기의 친 아들을 지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시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생명으로 일으키셨읍니다. 그는 이제 영자(靈者)가 되셨으며, 그의 인간 생명의 가치는 인류를 위한 희생으로써 바쳐졌읍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담’이 잃은 것을 다시 찾을 기회를 열어 주었읍니다. 다음과 같은 성서의 설명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16)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가르침을 배워 알고, 그것과 온전히 일치하게 생활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을 실천한다면 우리 앞에는 참으로 놀라운 전망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26. (ㄱ) 예수께서는 왜 정치적인 일에 관여하지 않으셨읍니까? (요한 18:36) (ㄴ) 예수께서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정부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갖도록 가르치셨읍니까? (마태 22:17-21)

26 그러한 믿음에는 여호와께서 그 아들에게 주신 다스리는 역할을 인식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예수께서는 그 당시 정치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어떠한 인간 정부도 여호와의 통치권을 옹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통치자들이 하나님을 믿는 데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간에 그들은 모두 선과 악에 대한 그들 자신의 표준을 세워놓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인정하든지 않든지 간에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원수 ‘사단’ 마귀의 인도를 따르고 있는 것이며, 성서는 그를 “이 세상 통치자”라고 알려 줍니다. (요한 14:30, 새번역)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인간 정부의 존재를 허락하시는 한, 세금을 납부하고 법을 준수하라고 가르치셨읍니다. 그러나 그분은 안전한 미래를 위한 유일한 희망은 하늘에서 직접 운영되고 온 인류를 위해 권위를 행사할 참으로 의로운 정부인 하나님의 왕국에 의해서만 올 수 있음을 명백히 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나라[왕국]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성서에 나와 있는 그 왕국의 법과 일치하게 생활하라고 권고하셨읍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모든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할 사명을 주셨읍니다.—마태 6:10; 24:14, 신세.

27. 하나님의 왕국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고 있음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마태 6:33)

27 그 왕국이 바로 여호와의 뜻을 수행할 그분의 대행 기관입니다. 그 왕국이 여호와의 왕권 아래 모든 지성있는 창조물들을 다시 연합시킬 것입니다. 이 하늘 정부의 성원에는 이 땅에서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포함될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주권 즉 그분의 통치권을 충성스럽게 받든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적은 무리”라고 합니다. (누가 12:32) 성서의 마지막 책은 그들이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으로 제한되어 있음을 알려 줍니다. (계시 14:1, 3) 그러나 왕권을 가진 주요한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예언 성취로서, 여호와께서 그분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다니엘 7:13, 14) 우리 각자가 이 하나님의 마련과 온전히 일치하게 생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영원히 방해하도록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28. (ㄱ) 얼마 동안이나 인간이 통치해 왔으며, 이제 왜 더는 오래 계속되지 않을 것입니까? (예레미야 17:5) (ㄴ) 이것은 ‘사단’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입니까? (ㄷ) 인간 정부들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ㄹ) 악한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ㅁ) 여호와의 통치권에 대해 무관심한 자들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데살로니가 후 1:6-9)

28 ‘에덴’에서 반역이 일어난 이후 인간은 거의 6천년 간이나 인간 통치의 열매를 맛보아 왔읍니다. 그것은 재난의 기록이었읍니다. 적절하게도 성서는 이 세대 중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집행하실 것임을 알려 줍니다. 이것은 인류의 대적 ‘사단’ 마귀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입니까? 그와 그의 악귀들이 인류를 미혹할 수 없도록 ‘무저갱에 던짐을 받아’ 완전히 활동할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시 20:1-3) 하나님의 심판 집행은 인간 정부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할 것입니까? 성서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이것[왕국]은 ···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다니엘 2:44) 그것은 거짓말장이들과 도둑질하는 자들과 폭력을 일삼는 자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할 것입니까?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찌라도 없으리로다.” (시 37:10) 그것은 여호와의 통치권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입니까?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사용하여 공의를 집행하실 때인 오늘날에도 그와 비슷할 것입니다.—마태 24:39.

29. 이 모든 일들은 여호와의 통치권에 대한 충성스러운 옹호자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할 것입니까? (계시 7:9, 10, 13, 14)

29 그러면 이 모든 일들은 여호와의 통치권을 충성스럽게 지지한 자들임을 증명한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의미할 것입니까? 하나님의 의로운 새 질서로 구출될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 민족을 다루실 때에 이 일이 생활에 미칠 영향의 본을 예시해 주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시하여 “너희가 ···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 거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로 너희 사방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로 평안히 거하게 하실 때”에 관하여 말하게 하셨읍니다.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졌읍니다. (신명 12:10) ‘솔로몬’ 왕 통치 기간의 상태에 관하여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먼 북쪽] ‘단’에서부터 [남쪽]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 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열왕 상 4:25) 모든 세대는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경작할 땅이 있었으며,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읍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그분의 축복을 얻게 하였으며, 그 축복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와 같이 ‘비를 적당한 때에 내려’주시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읍니다. (신명 11:13-15) 거기에는 경제적 안전이 있었던 것입니다.

30. 시편 72편에 묘사되어 있는 바와 같이 안전에 공헌할 어떠한 상태가 하나님의 왕국 하의 온 땅에 펼쳐질 것입니까?

30 이러한 것은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격려를 위하여 성서에 기록되었읍니다. 여호와께서 온 땅을 다스리도록 왕으로 임명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 “‘솔로몬’보다 더 큰 이”라고 묘사되어 있읍니다. (누가 11:31) 그리스도의 통치하의 상태는 ‘솔로몬’ 시대의 ‘유다’와 ‘이스라엘’의 상태보다 더 나은 상태가 온 땅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시편 72편은 그 축복을 이와 같이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라]. 저희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하리니 저희 피가 그 목전에 귀하리로다. 산꼭대기의 땅에도 화곡이 풍성하[리로다].” (시 72:7, 8, 14, 16) 그때 펼쳐질 상태는 예수 그리스도께 그가 왕국에 들어가실 때에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요청한 사람에게 예수께서 대답하신 말에 묘사된 바와 같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누가 23:43.

31. (ㄱ) 어떻게 죽은 자들까지도 이 웅대한 마련으로부터 유익을 받을 수 있읍니까? (ㄴ) 부활받은 자들은 어디로부터 돌아올 것입니까? (에스겔 18:4; 욥 14:13)

31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죄로 말미암아 이미 죽은 사람들까지도 그때 잊혀져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의 희생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성서에는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다 같이 부활한다”는 격려적인 예언이 있읍니다. (사도 24:15, 새번역)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서는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였읍니다. (전도 9:5) 그들은 생명없이 무덤에 있읍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생명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적 생명에 참여할 “적은 무리”에 속한 사람들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형태로 일으킴을 받을 것이며, 바로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전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32. (ㄱ) 어떻게 질병과 죽음이 제거될 것입니까? (마가 2:1-12) (ㄴ) 당신은 여호와께서 안전한 미래를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것으로부터 유익을 얻기 원합니까?

32 이것은 인간 가족이 새롭게 되는 때임을 의미할 것입니다. 천적 왕국의 지도 아래 예수의 희생의 가치가 믿음을 실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됨으로써 죄의 모든 흔적과 죄의 모든 영향력이 제거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그분은 이것이 인류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인지를 예시하셨읍니다. 그분은 모든 종류의 병을 고쳐 주셨으며, 맹인에게 시력을 회복해 주셨고 절름발이를 고쳐 주셨읍니다.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 땅은 그와 같은 축복을 경험할 사람들로 가득찰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러합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 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 21:4) 그렇습니다. 우리로 위험에 처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제거될 것입니다. 얼마나 웅대한 전망입니까!

33. 바로 지금 즐길 수 있는 참다운 안전이 있읍니까?

33 그러나 안전을 가져올 모든 것들이 미래만을 위하여 보존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지금도 많은 것을 즐길 수 있읍니다.

지금 즐길 있는 안전

34. 여기에 언급된 어떠한 것들이 사람들의 안전에 상당히 기여할 수 있읍니까?

34 사람이 어떠한 생활 환경을 당하든지 간에 일용할 양식과 충분한 옷만 보장된다면 상당한 안전을 느낄 수 있는 상태라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가 주로 사귀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것은 또 다른 면으로 더욱 안전감을 갖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자기 앞에 어떠한 미래가 있는가를 안다면 불확실한 감정을 최소한도로 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안전감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들어 있는 안전에 대한 약속이 다만 미래에 국한 된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혹은 이러한 약속에 믿음을 두고 그것과 일치하게 생활함으로써 현재에도 안전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현재 모두가 연합해서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읍니까?

35. (ㄱ) 어떠한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바로 지금도 일용할 양식과 옷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ㄴ) 누가 그러한 안전을 즐기고 있으며 그들은 어떻게 이러한 마련을 얻고 있읍니까? (에베소 4:28)

35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을 그들의 생활에 적용시킬 때에 바로 지금도 놀라운 유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 왔읍니다. 그러한 유익은 일상 생활에서 영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데서 오게 됩니다. 물론 영적인 경향을 가진 사람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땅의 소산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읍니다.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섬기는 일을 첫째로 두는 사람들의 복지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알려 줍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 6:31-33) 그러면 이들은 육체적 생활에 필요한 것들인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얻습니까? 이것은 그리스도인 회중이 그들을 재정적으로 돕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모두 기꺼이 일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참으로 여호와의 왕국과 그의 의를 그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면 하나님께서 생활 필수품을 얻으려는 그들의 노력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마태 6:11)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종들에게 현 세상이 존재하는 한, 물질적 풍부를 약속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을 확증하십니다. 그리고 그분만이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돌보실 수 있는 분입니다.

36. (ㄱ) 어떠한 행실과 태도가 위험을 느끼게 합니까? (ㄴ) 그러한 사람 가운데 주로 결핍한 특성은 무엇입니까? (ㄷ) 예수께서는 어디에서 그러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36 물질적 필수품을 마련해 주시는 위대하신 분께서는 또한 현재 안전에 중요한 다른 것도 마련해 주십니다. 당신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진정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생활의 물질적 필수품이 우리에게 만족감과 안전감을 갖게 하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생각하지 않고 마구 말을 하고, 재산이나 피부색 혹은 국적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흔히 숨겨진 이기적 동기로 “친절”을 베푸는 일이 있다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결핍한 것은 사랑 곧 다른 사람에 대한 비이기적 순수한 관심입니다. 참으로 그러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읍니까?—다만 몇 사람에게서만이 아니라 한 단체의 사람들 전체의 현저한 경향이 그러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읍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이 가능함을 우리에게 보증해 주십니다. 그분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 시대에 그러한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아셨읍니다. 왜냐 하면 제자들에게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요한 13:35; 마태 28:20.

37. 성서는 누가 그러한 사랑을 가진 사람인가를 알아 내도록 우리를 어떻게 돕습니까? (요한 1서 4:20, 21)

37 만일 당신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사랑이 없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다른 곳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성서는 요한 1서 4:8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지침을 이렇게 알려 줍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그러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읍니다. 이 말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그것을 발견할 것이라는 뜻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당신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당신은 유일하시고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아는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존경심을 가지고 다루고 그들의 생활을 그분의 뜻에 일치시키려고 진실하게 노력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과의 교제로부터 얻을 유익은 명백합니다.

38. 그러한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안전과 생활의 즐거움에 공헌할 어떠한 일을 할 수 있읍니까?

38 물론 이러한 교제를 한다고 해서 그가 이 세상의 불법적 행실의 영향으로부터 면역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가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신뢰를 인정하고 성서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선악의 표준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그는 큰 유익을 얻게 됩니다. 그는 마음의 고통과 슬픔만 가져 오게 될 일에 말려드는 일이 없도록 보호를 받습니다. 잠언 1:33의 말씀과 같습니다. “오직 나를 듣는 자[곧 하나님의 지혜]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그가 창조주의 뜻과 일치하게 살기만 한다면 그의 생활은 참으로 뜻있는 것이 될 수 있읍니다. 오늘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겪는 욕구 불만이 아니라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곧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배우도록 도움으로써 오는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일에 관하여 이렇게 예언하셨읍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태 24:14.

39. 여호와의 증인들은 미래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누가 21:28-32)

39 이 전파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미래를 바라 볼 때 그들에게 두려움이 없읍니다. 성서를 연구해 보고 성서의 내용을 믿는 그들은 미래가 어떠할 것인가를 압니다. 세상 일들이 더욱 불쾌하게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좌절감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이러한 일들이 이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에 관한 성서 예언의 성취임을 이해합니다. 그들은 머지 않아, 이 세대 안에 계속 하나님의 정당한 통치권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활의 즐거움을 파괴하는 모든 자들을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실 것임을 압니다. 그들은 베드로 후서 3:13에 있는 희망이 성취될 날을 확신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읍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 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40, 41. (ㄱ) 여호와의 증인들은 고난으로 가득찬 세상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왜 바로 지금도 상당한 안전을 즐기고 있읍니까? (ㄴ) 여호와의 증인들이 즐기고 있는 안전이 바로 당신도 원하는 것입니까?

40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그리스도인 숭배자들 곧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 드리는 자들이 즐기고 있는 안전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의로운 표준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생활에 적응시킴으로써 오는 결과입니다. 이사야 32:17, 18의 예언과 같습니다.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으[리라].” 이들은 여호와의 주권에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입니다. 이들은 선악에 대한 자신의 표준을 세우지 않습니다. 이들은 세계 문제들을 그들 자신이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사랑으로써 마련하신 것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집권하시는 그의 왕국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지지합니다.

41 당신도 그들이 즐기는 안전에 참여하기를 원합니까?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당신이 할 일은 무엇인가?

42.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 참석해 봄으로써 무엇을 알게 될 것입니까?

42 첫째 단계 중 한 가지는 그러한 안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그것이 바로 당신이 찾고 있던 것인지를 직접 볼 수 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당신이 이웃에 있는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그들의 집회에 참석해 보는 것을 따뜻하게 환영합니다. 당신은 그들의 집회가 의식으로 가득차 있지 않으며, 연보를 걷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것이 우리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뜻깊은 토론이 있읍니다. 성서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 10:24, 25) 당신은 왕국회관에서 이러한 정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43. (ㄱ) 당신이 왕국회관에 모인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안전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ㄴ) 우리는 왜 아무도 그러한 관계를 소홀히 생각할 수 없으며, 그러한 관계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읍니까?

43 그러한 집회에 참석해 보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안전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며, 틀림없이 그러한 교제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러한 안전을 가지려면 그 이상이 요구됩니다.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승인받은 관계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현재의 복지와 미래에 대한 모든 전망이 달려 있는 분입니다. 그러한 관계는 우리 중 아무도 소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관계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읍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 ‘아담’의 후손이며,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 가족 가운데 태어났읍니다. 여호와의 은혜를 얻기 위하여 우리는 그분과 화목해야 하며 그것은 그분의 아들의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진 인자하신 마련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 14:6.

44. (ㄱ) 우리는 첫째로 생명에 관하여 무엇을 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의 생명을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계시 4:11) (ㄴ)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분에 관하여 어떻게 느껴야 합니까? (ㄷ) 물의 침례는 왜 중요하며, 침례를 받기 전에 무엇이 필요합니까? (마태 28:19, 20)

44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과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사용하지 못한 일을 진실로 후회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나쁜 길을 배척하고 돌아서서 우리의 생활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 즉,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마태 16:24) 이렇게 하는 사람은 더는 하나님의 뜻을 고려함이 없이 자기의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지시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길이 옳기 때문에 그리고 여호와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는 선하고 의로운 목적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가 의를 사랑한다면 우리에게 축복의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그는 참으로 ‘온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합니다. (마가 12:29, 30) 마음 가운데 그러한 공약을 함으로써,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받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지시하신 바에 순종하여 공개적으로 물의 침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하나님의 말씀에 나와 있는 대로 참 하나님과 승인받은 관계를 갖게 될 수 있으며 그의 종들이 즐기는 안전에 참여할 수 있읍니다.

45.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참으로 여호와를 우리의 통치자가 되시기를 원함을 나타낼 수 있읍니까?

45 그렇게 한 후 당신은 ‘사단’이 옹호한 독립적인 길을 참으로 배척하였으며, 선악에 대한 자신의 표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참으로 여호와께서 당신의 통치자가 되시기를 원한다는 것을 계속 증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은 잠언 3:5, 6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 대로 행해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그렇습니다. 그분은 참되고 영속하는 안전의 길로 당신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46. 참으로 여호와의 인자하신 마련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안전이 있을 것입니까?

46 여호와께서 인류를 위하여 인자하게 마련하신 것들을 참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 앞에는 얼마나 웅대한 축복이 있을 것입니까!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굳건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그들은 지금도 보호를 받고 있으며, 그들은 미래에 대한 확고한 기대를 가지고 있읍니다.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과 그의 참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집권하신 하나님의 왕국 아래 인류에게 오게 될 온전히 만족한 안전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각주]

^ 2항 이 책자에 인용된 성귀는 다른 표시가 없는 한 모두 「성경 전서 개역 한글판」 으로부터이다.

[연구 질문]

[4면 삽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더는 굶주리는 일이 없는 날을 보게 될 것이다

[7면 삽화]

우리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에게 달려 있다

[13면 삽화]

첫 조상에 관한 성서 기록은 오늘날 인간 생활을 고통스럽게 하는 위험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22면 삽화]

하나님의 왕국 하에서는 범죄가 없어지고 재산과 사람이 위험에 처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24면 삽화]

하나님의 말씀은 병과 죽음이 없어질 것을 약속한다—그렇다 이미 죽은 사랑하는 가족들까지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