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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함

왕국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함

왕국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함

이 땅에는 인간의 출구가 없을 것입니다. 인류는 이 땅에서 행복하게 영원히 살도록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 소식은 가장 높은 권위에 근거한 것이며 가장 신빙할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 말은 이 소식이 현 20세기의 과학자들에게서 나왔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수십억년 안에 우주에 대격변이 일어나서 이 땅은 태양이나 기타 우주의 발열체로부터 뜨거운 열을 받아 지구의 거민들은 타죽게 되고 까맣게 탄 지구는 생명 없는 혹성으로서 태양의 주위를 돌게 될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이와 같이 먼 장래에 우주의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는 견해는 현 인류 세대에게 아무런 불안감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한 과학자들은 가까운 장래에 인류가 멸절될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현재 살고 있는 세대가 당하고 있는 위협 때문에 오늘날 사람에게는 참으로 불안해할만한 이유가 있읍니다. 그러므로 현대 과학자들의 견해로 볼 때 인류의 매우 가까운 장래도 대단히 불길합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심각한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권위자가 단순한 인간 과학자들입니까? 새로운 사실과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현 과학자들의 실험으로 보아 그들이 인류가 이 땅에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권위있게 증명할 자들입니까?

과학자들까지도 인류의 창조주만이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을 아신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읍니다. 그렇습니다. 그 분만이 이 땅 자체가 창조된 목적을 아십니다. 창조주만이 인류를 지구 위에 두신 이유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창조주께서 가장 높은 권위자이십니다. 그는 결코 거짓이 증명된 일이 없으며 그만이 가장 신빙할 만한 소식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창조주로부터 우리 인류가 미화된 땅에서 행복하게 영원히 살도록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우리가 망상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기운을 내고 기쁜 희망을 가질 수 있읍니다.

그러면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마음을 놓고 아무런 염려도 할 필요가 없읍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제목 자체가 우리 인류가 말살될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인류의 존속 여부가 단순한 일반 사람들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세상사를 아는 사람들, 세계적인 지성인들에 의해서 의문시되고 있읍니다. 재난이 박두하고 있읍니다. 달은 피난 길을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는 일이 그대로 방치된다면 인간은 자멸을 초래할 것입니다. 인간이 하고 있는 일은 이 진보된 과학 시대인 오늘날 가장 파멸적입니다.

인간이 하는 일이란 비단 고속도로 대량 살육을 가능하게 하는 핵무기나 기타 현대 전쟁 무기만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고 있는 일들 가운데는 또한 평화시에도 땅을 망하게 하는 일들이 있읍니다. 즉 인간의 거주지 정리 방법, 인간 생명을 위한 식료품 생산 방법, 이러한 식료품의 공급 방법, 큰 공장에서 나오는 오물 처리 방법, 지구의 천연 자원 개발 방법, 그리고 인류의 자연 환경의 오염 등이 그것입니다. 몇해 안에 세계적 기근이 도래할 것이라는 경고는 결코 근거없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평화와 안전 기구로서의 국제 연합의 약체성과 제한된 능력은 더욱 더 증명되고 있읍니다. 열국들에게 10년 안에 그들의 불화를 해결하고 적대 행위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세계적인 재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거듭되는 경고는 건전한 판단과 역사적 교훈에 기초한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이러한 문제에 관련되어 있읍니다.

인간의 견해로 볼 때, 기대되는 일은 과학적 구원이 아니라 인류의 멸망입니다. 우리는 결코 과학자들이 말하는 “인간의 진화”에게 우리의 구원을 기대할 수 없읍니다. 수백만년의 세월이 더 걸린다 해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세계 모든 심리학자들과 정신병학자들이 인류의 사고 방식을 변화시켜 사람들로 새로운 성품을 발전시키게 하여 일치 연합해서 대 재난을 방지하게 할 것을 기대할 수 없읍니다. 우리는 강력한 국제 경찰력이 이루어져서 독립적으로 그리고 공평하게 나라들의 행위를 견제해서 이 지구를 살기에 안전한 곳으로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할 수 없읍니다.

물론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인간 자신이 아닌 그리고 이 땅이 아닌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음이 명백합니다. 물론 이 말은 다른 혹성에서 신비적인 “화성인”이 우리의 재난의 신호를 보고 우리를 도우러 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우리의 우주 비행사들이 달 저쪽에 있는 어떤 혹성에 발을 디디고 너무 늦기 전에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초지성적이고 초인간적인 우주인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을 위하여 인간이 아닌 실재하고도 인류 모두를 합한 것보다 더 큰 어떤 지성적인 분을 바라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는 다만 지혜와 능력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긴급히 필요할 때에 우리에게 도움을 베풀기 위하여 올 만큼 사랑이 있는 분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창조주 이외에 또 누구에게 이것을 기대하는 것이 더 이치적이며 더 건전하며 더 지성적이겠읍니까? 만일 인류가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면 인류보다 높으신 창조주께서도 틀림없이 오늘날 살아 계실 것입니다.

인류가 현재 여기 있다는 바로 이 사실은 창조주께서 이 땅을 까맣게 탄 생명없는 혹성으로서 우주에서 돌고 있거나 돌게 하려고 창조하시지 않으셨음을 증명합니다. 창조주께서는 인류가 마침내 자멸하거나 마치 ‘도오도’새와 같이 멸절되어 버리도록 창조하시지 않았읍니다. 창조주께서 이 땅을 창조하시고 그 위에 인간을 두셨을 때 그는 자기의 일이 헛되게 되거나 자기의 목적이 실패되게 하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땅 위에 인류를 두신 훌륭한 목적을 설명하시면서 창조주는 친히 이렇게 선언하셨읍니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을 고하느니라.”—이사야 45:18, 19.

누가 지상에서 이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읍니까?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에 의하면 오래 전에 살던 한 사람이 들었읍니다. 그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라는 사람으로서 그는 유명한 도시 ‘예루살렘’에서 여러 왕들이 다스리는 동안 그 도시에 살고 있었읍니다. 그는 영감 즉 영 혹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활동력을 통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읍니다. (이사야 1:1) 그는 그가 들은 것, 그가 환상에서 본 것, 그리고 그 당시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일들을 한 책에 기록하였으며 그 책을 그의 이름을 따서 「이사야서」라고 부릅니다. 이 책은 성서라는 거룩한 책 가운데 들어 있는 66권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인용한 말은 이 「이사야서」 45장 18절과 19절에 나옵니다. 「이사야서」가 들어 있는 성서는 온 인류에게 매우 소중한 책으로 고려되므로 이미 244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그 외에도 이 성서의 여러 부분들이 1,169개의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읍니다. 심지어 역사적인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도 예언자 ‘이사야’의 말을 영감받은 진리의 말씀으로서 자주 인용하셨읍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에게 그가 이 땅을 헛되이 창조하시지 않고 사람으로 거하게 창조하셨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선언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인류의 첫 조상 즉 첫 남녀를 창조하신지 약 33세기 후에 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인간의 창조주께서 그 때까지도 살아 계실 뿐 아니라 그는 아직도 이 땅과 땅의 거민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셨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 분은 자기의 창조물인 인류를 포기하시고 인간사에 무관심하심으로 죽은 자라는 말을 들을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하나님이 죽었다”고 말함으로써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읍니다. 그는 불멸이십니다. 그는 영구히 살아 계십니다. 그는 영원까지 하나님이십니다. (시 90:2) 인간 창조 이래 창조주께서는 인간 피조물에게 관심을 가져 오셨으며, 인간에 대한 그의 영원한 목적이 실패되는 일이 없도록 인류의 행동을 살펴 오셨읍니다. 그는 27세기 전인 예언자 ‘이사야’ 당시의 인류의 상태를 살피고 계셨읍니다. 그는 오늘날도 인류의 상태에 대해서 똑 같이 살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는 적절한 행동을 취하실 것입니다.

「더는 하나님이 없다」라는 책을 쓰고 그 안에서 “만일 하나님이 있다면 우리는 더는 그를 지존자로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 종교 교직자는 곧 큰 잘못을 저질렀음이 증명될 것이며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이 교직자의 말과는 정반대로 인간의 창조주에게 드린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기도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저희로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놀라게 하시며 낭패와 멸망을 당케 하사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시 83:17, 18) 그는 과거 인류 역사상 결코 실패하신 일이 없으십니다. 그는 또한 온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현 위기에 있어서도 결코 실패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가 최악의 경우에 도달하였을 때에 그는 인류를 구원하셔야 합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현재의 인간의 노력은 실효를 거두고 있지 못하며, 비실질적이며, 실패할 운명에 있읍니다. 인간 창조물을 구원하시려는 여호와의 방법은 실효를 거두는 것이며, 실질적이며, 성공할 것입니다. 그의 구원 방법은 왕국을 통하는 것입니다.

인류를 위한 한 정부 형태인 왕국은 오늘날 그리 유명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제 1차 세계 대전이 종말되기 전인 1917년에보다 인간을 다스리는 왕국이 매우 소수입니다. 왕국은 국민의 정부 형태로 대치되었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왕국을 통한 방법이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방법에 대하여 우리 생각이나 마음에 편견을 갖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정치적 왕국들이 실패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 정체도 실패하였읍니다. 아직 남아있는 인간 왕국들이나 민주주의 정체도 오늘날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왕들은 그들의 주장대로 결코 “하나님의 은혜로” 통치한 일이 없읍니다. 이 왕국들은 이 세상 다른 모든 왕국들과 같이 인간 왕국들 즉 인간이 세운 왕국들이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는 방법으로서 그러한 왕국들을 결코 사용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국을 통한 하나님의 방법은 결코 인기 없는 방법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실 왕국은 무슨 왕국입니까? 그 왕국은 19세기 전에 예수께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오르내리면서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선포하신 그 왕국입니다. (마태 4:17, 23; 10:7) 이 말은 “하나님의 왕국은 가까이 왔읍니다”라는 뜻입니다. (마가 1:14, 15, 신세) 기원 4세기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 때의 그리스도교국의 설립은 이 하나님의 왕국의 전파를 사실상 더는 듣지 못하게 만들었읍니다. 종교 교직자들이 그리스도교국의 인간 왕국들을 마치 하나님의 왕국의 구성체인양 찬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파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참 왕국의 기쁜 소식이 현 사물의 제도의 끝이 올 때까지 온 세계에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 고난에 찬 사물의 제도의 끝이 오기 전에 있을 징조에 관한 그의 놀라운 예언 가운데서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 천국[즉 왕국]의 기쁜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 (마태 24:14, 신세) 오늘날 이 끝은 분명히 가까왔읍니다. 그리고 이 예언대로 우리는 왕국이 전파되고 있음을 듣습니다.

기원 제 1세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왕국은 가까이 왔읍니다”라고 전파하셨다는 사실은 지상 인간이 세운 것이 아닌 이 왕국의 중요한 특징을 지적해 줍니다. 그 특징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때 땅에 가까이 와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나님의 왕국에서 다스릴 자로 널리 전파된 하나님의 임명을 받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죽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희망은 좌절되어 버리지 않았읍니까? 그가 죽임을 당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왕국을 전파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예수를 선동자로 몰아 그를 죽이라고 요구한 자들은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라고 웨치지 않았읍니까? (누가 23:1, 2) 그러나 하나님의 임명 받은 왕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희망은 그가 ‘예루살렘’ 성 밖에서 부당하게 형주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좌절되지 않았읍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결코 실패하실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지 사흘 만에 그에게 보상으로서 불멸성을 주어 하늘의 영의 생명으로 그를 일으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으로써 자기의 부활을 증명하셨읍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라고 하고 그의 정부를 “왕국”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인간 왕들은 주로 상징적 국가 원수로서 상징적 역할만 하고 실제 정부를 운영하는 일은 수상이나 국무 총리가 하고 율법은 의회나 국회에서 제정합니다. 그러나 과거 인류 역사를 보면 “절대군주” 즉 1인 통치 정부로서 다스린 왕들이 있었읍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라고 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는 한 왕의 후손으로서 법적 후계자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더 크신 ‘다윗’ 왕의 아들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들리는 음성으로 예수를 자기 아들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천적 왕의 아들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지상에 선택된 백성의 왕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상 8:7; 12:12) 따라서 절대 군주이신 지존자 하나님에 관하여 ‘이사야’의 예언 33장 22절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의 왕국의 영원한 후사로 일으키시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분입니다.

지존자이신 하나님의 숭배를 위하여 ‘예루살렘’에 거대한 성전을 건축하려는 ‘다윗’ 왕의 열망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와 영원한 왕국을 위한 엄숙한 약속 즉 언약을 맺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예언자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네 집과 네 나라[왕국]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사무엘 하 7:1-17)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죽었고 ‘예루살렘’의 보좌를 이은 그의 후계자들도 죽어서 그들 중 아무도 ‘다윗’의 왕국을 영원히 보존할 ‘다윗’의 영원한 후계자임을 증명하지 못하였읍니다.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왕국 언약을 성취시키기 위하여는 그 왕국의 영원한 후계자가 될 ‘다윗’의 죽지 않는 후손이 필요하였읍니다. 이 영원한 후사는 ‘다윗’의 후계자로서 “왕”으로 불리울 것입니다.

약 2천년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한 처녀를 택하여 그의 천적 아들의 인간 어머니가 되게 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가에서 한 처녀를 택하셨읍니다. 그 때 이 처녀는 역시 ‘다윗’의 왕손인 한 사람과 약혼 중에 있었으며 그는 이 처녀가 낳은 아들을 맏아들로 입양시켜 ‘다윗’의 왕국의 왕권을 그에게 전달함으로써 그의 양부가 될 수 있었읍니다. (누가 3:23-31; 마태 1:1-18) 이들 두 사람 즉 ‘마리아’와 ‘요셉’이 부부가 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천사 ‘가브리엘’을 처녀 ‘마리아’에게 보내서 그에게 이 사실을 설명해 줌으로써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영 즉 보이지 않는 활동력으로 그에게 잉태시키실 것에 대한 동의를 얻게 하셨읍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왕국]가 무궁하리라.”—누가 1:26-38; 마태 1:18, 19; 로마 1:3, 4.

‘마리아’에 대한 이와 같은 선언은 이 예수가 ‘다윗’과의 하나님의 왕국 언약을 성취시키기 위한 ‘다윗’ 왕의 영원한 후사임을 보증하는 것이었읍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천적 아들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그가 ‘다윗’ 왕에게 출생하도록 처녀 ‘마리아’의 태로 그의 생명이 옮겨졌읍니다. 미가 5:2의 하나님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다윗’ 자신의 출생지인 ‘로마’ ‘유대’도 ‘베들레헴’으로 ‘마리아’와 ‘요셉’을 가게 하였읍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목자노릇을 하였었으며 ‘마리아’가 기적으로 그의 첫 아들을 낳을 때에도 그곳에 목자들이 있었읍니다. 이 사건은 온 인류에게 중요한 일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 인류 중에 목격자가 있어서 그들에 의하여 증명되어야 할 만한 가치있는 일이었읍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출생지에서 예수가 출생하던 밤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천사를 보내서 ‘베들레헴’ 들에서 양을 치고 있던 목자들에게 그의 아들의 인간 탄생을 발표하게 하셨읍니다. 영광스러운 천사는 놀랜 목자들의 두려움을 안심시키면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누가 2:1-12.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의 성명을 들을 수 있읍니다. 즉 이 새로 탄생한 예수는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 즉 그의 조상 ‘다윗’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을 다스릴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것과 같이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될 분이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는 ‘다윗’보다 더 큰 왕이 되실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는 시편 110:1, 2의 예언을 성취시킬 ‘다윗’의 “주”가 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한 “구주”가 되실 분이었읍니다. 만일 이것이 그가 우리 인류의 구주이심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온 백성”이 그의 탄생의 좋은 소식을 듣고 “큰 기쁨”을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읍니까? 이미 거룩한 하늘에서는 우주적 중요성을 가진 이 기적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큰 기쁨”이 있었읍니다. 이 증거를 우리는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살던 한 사람의 기록 문서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읍니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선의자들, 신세]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누가 2:13, 14.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선의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 땅에서 좋은 소식으로서 “큰 기쁨”을 가지기 시작할 때가 왔읍니다. 영광스러운 천사는 그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알려 주었으며, 이제 그들은 가서 ‘다윗’의 도시 ‘베들레헴’에 있는 구유에 누인 새로 출생한 아기를 목격하여 이 좋은 소식의 역사적 근거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천사는 그들에게 그날 밤 ‘베들레헴’ 안팎에서 새로 출생하였을 다른 사내 아기들과 이 신생아를 구별할 수 있는 “표적”을 알려 주었읍니다. 그들은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였읍니까? 혹은 “표적”을 확인하여 지상에서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 출생에 대한 책임있는 목격 증인이 되기를 원하였읍니까? 정직한 조사자의 기록은 그 대답을 이렇게 말하여 줍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누가 2:15-20.

만일 이 일이 남편과 성적 관계를 가진 한 여인에 의하여 잉태된 보통 출생이라면, 하나님과 천사들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건이 되겠읍니까? 우리는 오늘날, 목자들이 사실로서 입증한 “표적”을 논박하며, 예수가 처녀에게서 출생하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교직자들에게 가담할 것입니까? 우리는 목격자들인 목자들에게 가담하여 그들이 본 “표적”으로써 “큰 기쁨”을 느끼며 우리가 이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릴 것입니까? 혹은 그 당시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던 ‘헤롯’ 대왕과 같이 될 것입니까? 약 2년 후에 그는 예수의 탄생의 소식을 듣자 자기 자신의 왕국에 대하여 두려워한 나머지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읍니다. 그는 다만 ‘베들레헴’에서 두 살 이하의 사내 아기들을 죽이는데 성공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어린 예수는 피하였고 ‘헤롯’ 왕은 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패배시키려는 자신의 노력에 실패하였읍니다.—마태 2:1-23.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은 참으로 이들 ‘베들레헴’의 목자들과 같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교국의 거의 10억에 달하는 교인들은 매년 ‘크리스마스’를 축하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며 “큰 기쁨”을 나타내고 있지 않습니까? 역사에 의하면 이들 ‘베들레헴’의 목자들은 그들이 구유에 누인 어린 예수를 방문한 이후에 매년 ‘크리스마스’를 축하하지 않았읍니다. ‘마리아’도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난 후에 그 날을 ‘크리스마스’로 축하하지 않았읍니다. 예수의 사도들과 그 외의 제자들도 그의 생일에 많은 선물과 술과 성찬을 베풀면서 매년 ‘크리스마스’를 축하하지 않았읍니다. 사실 그의 기적의 탄생에 관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고 그가 탄생한지 거의 100년 후에 완성된 성서는 우리가 그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도록 그의 탄생 일자를 알려 주고 있지 않습니다. 성서에는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조차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 이름은 제 4세기에 그리스도교국이 설립된 후에 그리스도교국이 만들어 낸 것이며 그것은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제정한 한 날과 희랍 정교회가 제정한 다른 날인 조작한 날짜에 축하되고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으로 말미암아 “온 백성”이 “큰 기쁨”을 갖게 할 만한 어떠한 소식을 그들에게 주어 왔읍니까? 그리스도교국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신분으로 말미암아 “큰 기쁨”으로 가득차 있으며, 그러한 이유로 오래 전에 그가 탄생하신 것을 “크게 기뻐”하고 있읍니까? 오늘날 온 백성이 오래 전에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큰 기쁨”을 갖는다는 것은 그들이 그 탄생의 결과로서 오늘날 그가 가지신 신분으로 말미암아 “큰 기쁨”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서에서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고 한 바와 같습니다. (전도 7:1, 8) 예수 그리스도는 천 구백년 전에 새로 출생한 아기였을 때보다 오늘날 훨씬 더 나은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순교의 죽음을 당하기까지 하나님의 왕국의 이익을 위하여 충성을 지킨 보상으로서 여호와 하나님께 죽은 자 가운데서 하늘의 불멸의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읍니다. (빌립보 2:5-11) 그러나 ‘크리스마스’의 축하자인 그리스도교국은 어떠합니까? 오늘날 그리스도교국도 지존자이신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하여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고 있읍니까? 탄생일의 축하자인 그리스도교국은 그의 혀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주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읍니까? 20세기의 역사는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국은 그리스도의 왕국이라는 그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읍니다. 그리스도교국에서 통치하고 다스리는 자는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정치적 왕, 대통령 또는 총독들이 다스리며 그들은 어느 인간이나 인간이 만든 왕조에서 왔거나 일반 사람들의 선출로써 그 직책을 갖게 되었거나 군사적 혹은 정치적 ‘쿠데타’로 집권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정치적 통치자들은 그들의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지만 그들의 주권을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양도하지 않습니다. 국민들은 그들 자신이 나라의 통치권을 갖기를 주장하며 아무 왕들도 원치 않습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정치적 통치자들이나 국민이나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는 왕으로서 가지고 계신 그의 직책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 탄생 이래 때는 멈추지 않았읍니다. 예수께서 희생으로 죽으시고 부활을 받으신 후 하늘의 하나님의 우편으로 올라가신 이래 때는 멈추지 않았읍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도 멈추지 않았읍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 통치자들이 아무리 지상 거민들의 통치권을 계속 장악하려고 노력한다 할지라도 그 전적 통치권을 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인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한 대속물로서 죽으신 때는 오랜 옛날입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대로 위에 앉아 통치를 하기 시작할 때가 왔읍니다.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우편에서 통치하는 왕으로서 즉위 하실 날을 오랫 동안 기다려 오셨읍니다. 이제 그의 기다리는 기간은 끝났읍니다.

오래 전에 ‘다윗’ 왕은 영감을 받아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즉 주 그리스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시 110:1, 2) 기원 33년 오순절 날에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있는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형주]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고 말하였읍니다. (사도 2:36) 여러 해 후에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영감 받은 말씀이 히브리 10:12, 13에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라].” 이와 같이 기다리시는 때는 여러 해 전에 끝났읍니다.

그 때는 언제였읍니까? 이 20세기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의 때” 혹은 “열국의 지정된 때”라고 부르신 기간이 끝난 1914년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당시 ‘예루살렘’ 도시가 멸망되고, 계속 이방 나라들이 짓밟는 이 이방인의 때가 끝날 때까지 계속 짓밟힘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읍니다. (누가 21:20-24) 예수 당시에도 ‘로마’ 세계 강국으로 대표된 이방 나라들이 ‘예루살렘’이 대표하고 있는 ‘다윗’ 왕가의 여호와 하나님의 왕국을 짓밟고 있었읍니다. ‘로마’ 제국 이전에는 ‘바벨론’ 제국이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멸망시킴으로써 짓밟기 시작하였으며, 그 다음에는 ‘메데’-‘바사’ 제국과 그 다음에는 ‘로마’ 세계 강국이 ‘예루살렘’을 지배하게 된 때까지 희랍 제국이 짓밟았읍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 왕의 지상의 보좌를 ‘예루살렘’에 회복시키려고 하시지 않았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예루살렘’이 기원 70년에 ‘로마’에 의하여 멸망될 것을 예언하셨는데 그렇게 하실 이유가 어디 있겠읍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전파하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통치하는 왕이 되기까지는 기다리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아셨읍니다. 예수 자신이 “이방인의 때”라는 문제를 말씀하셨으므로 그는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두 번째로 멸망한지 1844년 후인 “열국의 지정된 때”가 끝나기까지 하나님의 우편에서 기다리시지 않으면 안됨을 아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계사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를 바꾸실 수 없었으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치도 않으셨읍니다. 예수께서 기다리시던 그 오랜 기간에 그는 여호와의 대제사장으로서 섬기셨으며 생명을 구원하는 자기의 대속 희생의 혜택을 자기의 교회 즉 회중을 형성할 지상에 있는 자기의 충실한 제자들을 위하여 적용시키셨읍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자기와 함께 하나님의 천적 왕국에서 공동 후사 즉 연합 왕들이 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3:1; 6:18, 19; 10:10-22; 로마 8:16, 17) 그러나 2,520년간의 이방인의 때가 1914년에 끝났을 때, 예수께서 메시야 왕국을 받으실 것을 기대할 적당한 때였읍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그곳은 그 때 ‘터키’ 제국이 점령하고 있던 지상의 ‘예루살렘’이 아니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1914년에 ‘다윗’의 메시야 왕국의 영원한 후사가 되신 곳은 저 위 하늘이었읍니다. 그는 물질화된 인간 몸으로서 땅으로 내려와 ‘예루살렘’이 이방 나라들에게 짓밟히는 것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지상의 ‘예루살렘’에서 왕으로서 즉위하실 필요가 없었읍니다. 도대체 누가 그 곳에서 그를 왕으로 즉위시킬 것입니까? 그 당시 제 1차 세계 대전의 와중에 들어있던 회회교국인 ‘터키’가 아니었으며, 1917년 12월 9일에 ‘터키’로부터 고대 ‘예루살렘’ 성을 점령한 영국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사람에 의하여 지상의 물질적 보좌에 앉도록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우편으로부터 낮아지실 분이 아닙니다. 1914년 10월 4/5일경에 이방인의 때가 끝날 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히브리 12:22에서 하늘의 ‘시온’ 산에 있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른 곳에 계셨읍니다. 그곳이 바로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즉위하실 곳이며 그를 그곳에 즉위시킬 유일하신 분은 지존하신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그 때 이방 나라들은 ‘예루살렘’ 즉 ‘예루살렘’이 대표한 것을 짓밟는 일을 중단하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그때 세계 지배를 위한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그들이 싸운 것이 그 사실을 증명하였읍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의 왕손에게 속한 통치권을 짓밟는 일을 중지시키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의 ‘예루살렘’”에 왕으로 즉위시키심으로써 메시야의 통치권이 행사되게 하셨읍니다. 그때 이래 메시야 왕국을 대표하는 의미로서의 “예루살렘”은 이방 나라들에게 짓밟히는 일이 끝났읍니다. 이제 이들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발등상이 될 때가 왔읍니다. 이 때가 바로 메시야 왕이 ‘그의 원수 중에서 다스리’는 때입니다.—시 2:1-9; 110:1, 2.

이제 이방 나라들은 새로 출생한 한 아기 즉 그리스도교국의 나라들이 ‘크리스마스’ 때에 그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그 아기와 관계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메시야 왕 즉 지금 즉위하여 왕권을 잡으셨고 지상에 대한 그의 통치권을 반대하는 모든 자들에 대하여 활동을 취하실 것이 인정된 분과 관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왕국은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일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방 나라들은 점진적으로 인류의 종국적 멸망을 위하여 일해 왔지만 이 천적 불멸의 왕은 모든 인류에게 완전하고 의로운 통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적 국가들은 멸절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 하면 현재 되어가고 있는 세계 상태로 볼 때 정치 국가들의 멸망, 혹은 인류의 멸망, 어느 쪽인가? 라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중 한 가지를 택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1914년에 “하늘의 ‘예루살렘’”에 메시야 왕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하늘의 ‘예루살렘’”에 즉위시키신 것은 상징적 “산”에서 뜨인 “돌”에 관한 ‘다니엘’의 예언의 성취의 시작을 의미하였읍니다. 그 예언은 이러합니다. “[세계 강국의]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삽나이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바와 같사옵나이다].”—다니엘 2:35, 44, 45.

이제 기원 1914년 이방인의 때 끝에 여호와 자신의 정부인 산에서 왕 메시야의 돌이 떨어져 나온지가 56년이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메시야 돌이 지상의 현 사물의 제도 전체의 모든 정치적 정부인 목표물을 칠 때는 매우 가까왔읍니다. 그것이 바로 다니엘 12:1에서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이라고 한 때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관한 그의 예언에서 그것이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큰 환난”의 일부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 위험성을 알리기 위하여 그는 계속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태 24:21, 22.

예수의 이 뒤의 말씀은 “환난 때”를 직면한 오늘날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아닙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큰 환난”이 “아무 육체도 구원을 얻지 못할” 정도로 계속되게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 왕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공동 후사가 될 그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날들을 짧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육체들을 구원하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인류가 지상에서 멸종되는 일이 없이 땅에서 계속 살게 하실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인류는 거의 일소될 뻔하였읍니다. 그때 ‘노아’가 세계적 대홍수를 견디기 위하여 지은 거대한 방주에서 여덟명만 살아 남았읍니다. (마태 24:38, 39; 베드로 전 3:20) 장차 올 “큰 환난”은 아직까지 없었던 최대의 세계적 대격변이 될 것이지만 인류는 비교적 소수이나마 하나님의 “선의자들”의 보존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통과하여 살아서 구원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그들은 어느 왕국 통치 아래 있게 될 것입니까?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한 이 세상 왕국들은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돌로 말미암아 부숴져서 멸망되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예언의 성취로서 그 왕국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땅에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이 사물의 제도의 신”인 ‘사단’ 마귀는 이 “산”에서 무력하게 될 것이며 있을 곳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와 그의 악귀들은 결박되어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기간에 무저갱에 감금될 것입니다. (계시 20:1-3, 7) 따라서 살아 남은 “선의자들”은 새로운 하늘 정부 통치 아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정부는 ‘다윗’ 왕의 영원한 후사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왕국이며, 이 하늘 왕국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공동 후사들과 함께 다스리십니다. 이제 이 땅의 상태는 반드시 변화될 것입니다. 마치 ‘노아’ 시대의 대홍수 후에 ‘노아’와 그의 가족이 인류의 의로운 새 출발을 한 바와 같이 의로운 새 인간 사회가 땅 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사도 ‘베드로’는 미리 지적하여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말하였읍니다.—베드로 후 3:13.

그리하여 이 땅은 이방인의 때가 끝난 1914년 이래 전파하여 온 천적 선포의 온전한 효력을 느낄 것입니다. 그 선포는 이러합니다. “세상 나라[왕국]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왕국]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계시 11:15) 이 선포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장차 올 정부의 선의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편에 선 현 세대의 사람들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상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전쟁을 통하여 구원된데 대하여 깊이 감사하므로 그들은 하늘에서 있었던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말을 되풀이 할 것입니다.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여호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전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계시 11:15-18.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 자신이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 즉 ‘할-마겟돈’에서 멸망되었을 때 하나님의 “선의자들”은 얼마나 기뻐할 것입니까! (계시 16:14-16)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자들 가운데 끼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으로서 섬겨 왔음을 그들은 얼마나 기뻐할 것입니까! 그들은 이미 여호와의 보호없이는 결코 육체로 살아 남을 수 없을 “큰 환난”을 통하여 육체로 살아서 구원되었으므로 그의 이름을 두려워하는데 대하여 크게 보상을 받았음을 느낄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이 열국의 황폐시키는 행로로 인하여 황폐된 상태로 있는 것을 보고 만족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땅의 회복자가 되려고 열망할 것입니다. 지상 낙원이 그들의 목표가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에덴’ 낙원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오래 전에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것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목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창세 1:26-28) 이러한 지구 전체의 낙원을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기를 원할 것입니다. 누구와 함께 말입니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 가운데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실 때라고 한 말에 암시된 사람들입니다. 즉 “죽은 자들”입니다. 물론 죽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인류를 다스릴 그의 왕국에 참예하기 위하여 천적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들 외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한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무론 대소”의 수많은 인간의 죽은 자들입니다. 인간의 죽은 자들이 완전하고 의로운 하늘 정부에 의하여 심판을 받으려면 그들은 땅의 무덤이나 바다의 물 무덤으로부터 부활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들 모두를 위하여 인간 대속물의 희생으로서 죽으셨읍니다. (디모데 전 2:5, 6) 그러므로 인류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목적은 단순히 얼마의 인간 육체를 세계적 “큰 환난”을 통하여 그의 왕국의 사물의 제도로 들어가도록 구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든 죽은 자들을 위해서도 완전한 인간 희생으로 죽으셨으므로 그들을 부활시키심으로써 구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속의 공로 즉 그 희생의 가치를 가지고 계시므로 그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대제사장으로서 섬길 수 있으며 그의 희생의 혜택을 부활된 인류에게 베푸실 수 있읍니다.

부활될 죽은 자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 옆 형주에서 죽은 동정적인 행악자가 있을 것입니다.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라는 푯말이 붙은 형주에 달리신 예수에게 그가 무엇이라고 말하였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는 희망을 가지고 “예수여, 당신이 당신의 왕국에 들어가시면 나를 기억하십시오”라고 말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날의 상태와는 반대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진실로 내가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 (누가 23:38-43, 신세) 예수께서 그의 왕국에 임하셔서 지상에 낙원을 회복하기 시작하실 때 그는 이 행악자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셔야 할 것입니다.

부활된 이전 왕들과 황제들과 대통령들과 총독들과 독재자들은 자동적으로 한 때 그들의 신민인 혹은 동료 시민들이었던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을 회복할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사물의 제도의 신”인 ‘사단’의 통치 아래 있던 낡은 사물의 제도는 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 아래 있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물의 제도가 온 땅 위에 완전히 설립됩니다. 필요에 따라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조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민족적으로 종족적으로 인종적으로 분리된 조직이 아닐 것입니다. 이 왕국의 모든 땅의 신민들은 한 인종으로서, 한 인간 가족으로서, 한 몸으로서, 모두가 대속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동등하게 대속을 받은 한 인류로서 처우되고 조직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의 천적 왕국은 지상에 보이는 인간 대표자들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임명에 의할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하셔야 할 임무와 권위가 시편 45:6, 7, 16에 이와 같은 예언적인 말로 기록되어 있읍니다.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의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 왕의 아들들이 왕의 열조를 계승할 것이라 왕이 저희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히브리 1:7-9.

국가주의적 민주주의적 통치는 실망과 환멸을 준 과거의 것이 될 것입니다. 신권 통치가 편만할 것입니다. 이 통치는 통일과, 연합, 공평, 평화를 가져 올 것입니다. 이들 임명된 대표자들은 국민들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왕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들의 직무 수행에 대한 대답을 할 것입니다. 이분은 그의 예언된 칭호 즉 “훌륭한 고문, 능한 하나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으로서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의 평화스러운 정부를 보존하시므로 충실하게 다스리실 것입니다.—이사야 9:6, 신세, 7.

“영원한 아버지”라는 그의 칭호는 얼마나 의미심장합니까? 이것은 그의 경건한 정부가 그의 신민들에게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그의 정부는 아버지와 같은 정부이며 그의 대속을 받은 신민들은 그가 양육하고 돌보고 그들을 치료하고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도록 그들을 인간의 완전성으로 향상시킬 그의 자녀들이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의 영원한 아버지가 될 수 있으며 그들은 그의 영원한 자녀들이 될 수 있읍니다.

이러한 모든 사실은 왕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는 방법이 우리 인류를 지상에서의 생명을 임시적으로 소생케 하는 구원이 아님을 얼마나 확증합니까? 이것은 지상 낙원에서 행복스럽게 경건하게 사는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인류의 구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는 인류가 위협을 당하는 일 즉 무서운 멸망의 위협을 당하는 일을 허락지 않으실 것입니다. 인간은 이 땅에서 살도록 창조되었지 언젠가 이 땅을 떠나도록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완전하게 된 지상 낙원에서 인류는 결코 이 지구를 잃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왕국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방법이 결코 쇠퇴하지 않는 성공과 멸하지 않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사실이 가장 신빙할만한 근원으로부터 나온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멀리 널리 알리십시오. 여러분의 소식을 듣고 믿는 모든 사람들이 이 참다운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하나님의 “선의자들”이 되어 생활하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