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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거부하는 듯한 대답에 대처하는 방법

대화를 거부하는 듯한 대답에 대처하는 방법

해설: 사람들의 생명의 전망은 여호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그분의 왕국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하느님의 왕국 소식은 매우 감동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인류에게 알려 줍니다. 그것은 생활을 변화시키는 소식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깊은 인식을 가지고 그 소식을 받아들일 것임을 알고 있지만, 사람들이 지식에 근거한 선택을 하려면 그들이 적어도 그 소식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기꺼이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들에게 강요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분별력을 나타내면, 대화를 거부하는 듯한 대답을 좀 더 이야기를 나눌 기회로 바꾸는 것이 종종 가능합니다. 일부 경험 있는 증인들이 합당한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사용해 온 얼마의 예들이 여기 있습니다. (마태 10:11) 우리가 권하는 것은 이러한 대답하는 말들 중 어느 것이라도 암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말로 바꿔서,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전달하려는 방법으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올바른 성향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듣고 생명을 위한 사랑에 찬 마련으로 그들을 이끌기 위해 여호와께서 하고 계신 일에 인식 깊은 반응을 나타낼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요한 6:44; 사도 16:14.

‘나는 관심이 없다’

● ‘실례지만, 성서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일반적으로 종교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말씀인가요?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는 한때 종교를 가지고 있었지만 교회 내의 많은 위선 때문에 (또는 종교가 돈벌이하는 사업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또는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등)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는 분들을 많이 만나보았기 때문입니다. 성서도 그러한 행위 중 어느 것도 승인하지 않습니다. 또한 성서는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근거를 알려 줍니다.’

● ‘다른 종교에는 관심이 없으시다는 뜻이라면, 잘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핵 전쟁의 위협을 생각할 때 (또는 자녀들을 어떻게 마약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겠는지, 또는 우리가 두려움없이 거리를 거닐 수 있도록 하려면 범죄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할 때 등) 우리의 미래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상당히 관심이 있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적인 해결책이 있으리라는 무슨 전망이 보이는지요?’

● ‘이미 종교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인가요? ·⁠·⁠· 모든 사람이 언젠가 다 같은 종교를 가질 때가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 무엇이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런 일이 뜻깊은 것이 되려면, 무슨 기초가 필요하겠습니까?’

● ‘이해하겠습니다. 몇년 전만해도 저도 그렇게 느꼈으니까요. 그런데 성서를 읽어보고 문제를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점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 ‘만일 제가 성서에서, 사별한 가족을 다시 만나볼 수 있는 길을 (또는 인생의 참다운 목적이 무엇인지를, 또는 우리의 가족이 연합을 유지하도록 돕는 방법을 등) 보여드릴 수 있다면 관심이 있지 않으시겠습니까?’

● ‘무엇을 팔러온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고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외판원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참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질병과 범죄가 없는 지상 낙원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하여는 관심이 있으시겠지요?’

● ‘여호와의 증인이 방문하면 늘 그렇게 말씀하시나요? ·⁠·⁠· 여호와의 증인이 왜 계속 이렇게 방문하는지 혹은 그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궁금하게 생각해 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 간단히 말씀드리면, 제가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꼭 아셔야 할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꼭 한번 들어보도록 하시지요.’

‘나는 종교에 관심이 없다’

● ‘저도 그러한 느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종교들이 이 세상을 살기에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있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실례지만 항상 지금처럼 생각하셨는지요? ·⁠·⁠· 그렇지만 하느님은 믿으시는지요?’

●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군요. 종교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까요. 그 점이 바로 저희가 방문하고 있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교회들은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인류를 위한 그분의 훌륭한 목적에 대한 진리를 가르쳐오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 ‘그렇지만 자신의 장래에 관해서는 틀림없이 관심이 있으시리라고 믿습니다. 성서에서는 오늘날의 세상 상태를 꼭 그대로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 또한 성서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도 알려 주지요.’

● ‘항상 그렇게 느껴오셨나요? ·⁠·⁠· 그러면 장래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는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관심이 없다’

●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와 같은 사람들이 자원해서 이렇게 방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에스겔 9:1-11의 요지를 말하고, 왕국 소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근거하여, 각 사람은 큰 환난을 통과하여 보존되든지 아니면 하느님에 의해 멸망되든지 둘 중 하나의 ‘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 ‘잘 이해하겠습니다. 저도 늘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러나 다만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그들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들어보니 그들에 관해서 제가 알고 있던 것은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거짓 비난을 말한 다음 우리가 믿는 것을 설명한다.)’

● ‘얼마 전만 해도 저 역시 우리 집을 찾아온 증인에게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증인이 떠나기 전에, 틀림없이 그가 대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한 가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그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 (예로서 카인은 아내를 어디에서 구했는가?)’ (실제로 이런 경험이 있는 전도인들이 이렇게 할 수 있다.)

● ‘종교인이시라면 잘 이해하겠습니다. 누구나 자기 종교에 대하여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나 우리 모두가 ·⁠·⁠· 에 관해서는 관심이 있다는 데 동의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적절한 제목을 말한다.)’

● ‘그러면 종교를 가지고 계시겠군요. 무슨 종교인지 여쭈어 보아도 괜찮을까요? ·⁠·⁠· 저희는 그 종교를 가진 분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 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대화를 위한 제목을 말한다.)’

● ‘예,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방문한 이유는 우리 모두는 함께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저녁마다 싸우고 고통당하는 일에 관한 뉴스 보도를 듣는 데 지쳐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 하지만 무엇이 그런 일이 없는 세상을 가져올 수 있을까요? ·⁠·⁠· 저희는 성서의 약속으로부터 격려를 받았습니다.’

● ‘어떻게 느끼시는지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증인에 대하여 관심이 없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좀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 성서를 보여드리는 것 때문입니까? 아니면 이렇게 찾아오는 것 때문입니까?’

‘나는 내 종교가 있다’

● ‘실례지만, 믿으시는 종교에서는 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가르치는지요? ·⁠·⁠· 그것은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끄는 생각이 아닙니까? ·⁠·⁠· 바로 그 점을 성서 여기에서 알려 줍니다. (시 37:29; 마태 5:5; 계시 21:4)’

● ‘저도 종교 문제에 있어서는 각자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참 숭배자가 될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여기 요한 4:23, 24을 좀 보실까요? 하느님을 “진리로” 숭배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 알도록 돕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 (요한 17:17) 그리고 그것이 우리 개개인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여기를 보시지요. (요한 17:3)’

● ‘어려서부터 그 종교를 가지고 계셨습니까? ·⁠·⁠· 인류가 언젠가 하나의 종교로 연합될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저는 계시록 5:13에 기록된 말씀을 보고 그 점에 관해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 우리가 이 내용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 ‘영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지신 분을 만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요즈음에는 그런 데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지 않으니까요. 하느님께서 모든 악을 일소하시고 이 땅을 의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살 장소로 만드시겠다는 성서의 약속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소식이 아닙니까?’

● ‘교회 일에 매우 적극적이십니까? ·⁠·⁠· 요즈음 교회에는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입니까? ·⁠·⁠· 그런데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일상 생활에 적용하려고 성실하게 노력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또는 세계가 직면한 문제들의 해결책에 대하여 모든 신자들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저희는 개인 가정 성서 교육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자신의 종교에 대하여 매우 만족해 하시는 모양이군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 상태에 대해서는 만족해 하지 않습니다. 아마 그 점에 대하여는 동의하시겠지요? ·⁠·⁠· 우리의 미래는 도대체 어떠할 것입니까?’

● ‘성서 읽기를 좋아하십니까? ·⁠·⁠· 정기적으로 성서를 읽을 시간을 내고 계시는지요?’

● ‘그 점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종교적 배경이 어떠하든지, 우리 모두가 세계 평화에 매우 관심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또는 우리의 자녀를 나쁜 영향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 또는 사람들이 참으로 서로 사랑하는 이웃을 갖는 일, 또는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는 일, 누구나 압력을 받고 있을 때에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는 일이 하나의 도전이 된다.)’

● ‘신앙심이 깊은 분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더군요.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하느님이 없다고까지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배우신 바에 따르면, 하느님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성서에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고유한 이름을 알려 준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탈출 6:3; 시 83:18)’

● ‘예수께서 전파하도록 제자들을 보내셨을 때, 그분은 땅의 가장 먼 곳까지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종교가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전파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사도 1:8) 예수께서는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그들이 전파하는 소식을 들을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 시대에 전파되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소식은 무슨 소식이었습니까? (마태 24:14) 그 왕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인이다’

● ‘그 점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시다면 예수께서 친히 사람들의 집집을 방문하시면서 이와 같은 일을 하셨으며, 또한 제자들에게도 이런 일을 하라는 사명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전파하던 주제를 알고 계시는지요? ·⁠·⁠· 그 주제가 바로 저희가 오늘 이렇게 방문해서 말씀드리려고 하는 점입니다. (누가 8:1; 다니엘 2:44)’

● ‘그러시다면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내용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실 때 매우 솔직하셨지만 또한 사랑이 많으셨습니다. ·⁠·⁠· (마태 7:21-23) 이제 우리가 자문해 보아야 할 점은,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한 17:3)’

‘나는 바쁘다’

● ‘그러시다면 매우 간단히 말씀드리죠. 저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방문하였습니다. (약 두 문장으로 대화를 위한 화제의 요점을 말한다.)’

● ‘그러시군요. 좀 더 편리한 다른 시간에 기꺼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러면 떠나기 전에, 생각해 볼 만한 중요한 점을 알려 주는 단 하나의 성구만을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 ‘이해하겠습니다. 저 역시 가정 주부로서 (또는 직장인으로서, 또는 학생으로서) 바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성서에서는 하느님께서 현 사물의 제도를 멸하실 날이 매우 가까운 때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하지만 생존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생존자들 가운데 포함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그 문제에 대하여 알려 줍니다. (스바냐 2:2, 3)’

● ‘제가 방문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모두들 바쁜 생활을 하다보니 아주 중요한 것들을 소홀히 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아주 간단히 말씀드리죠. 틀림없이 이 성구에는 관심이 있으시리라고 믿습니다. (누가 17:26, 27) 우리 중 아무도 우리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성서의 가르침을 고려할 시간을 낼 필요가 있습니다. (출판물을 제공한다.)’

● ‘그러면 이웃 분들을 방문하고 나서 약 반 시간 후에 다시 오면 괜찮겠습니까?’

● ‘그러시다면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날에 방문할 수 있습니다. 다만 떠나기 전에 이 특별한 출판물을 받아보실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달의 제공 출판물을 보여 준다.) 이 출판물에는 (단지 한 두 가지만 말한다.)와 같은 질문에 대한 성서의 답을 얻게 해주는 연구 과정이 들어 있습니다.’

● ‘폐가 되는 때에 와서 죄송합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저는 성서에 있는 한 가지 중요한 내용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들으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제목을 말한다.)을 설명하는 이 전도지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전도지를 읽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매우 흥미 있는 점을 발견하시게 될 것입니다.’

●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도대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다할 시간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만일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달라질 것인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영원히 산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실 줄 압니다. 그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명해 주는 한 가지 성구만 보여드렸으면 합니다. (요한 17:3)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에 관한 지식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저희는 바로 이 출판물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왜 그렇게 자주 방문하는가?’

● ‘저희는 성서에서 말한 마지막 날에 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현 상태의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두 가지 최근 사건 또는 널리 알려진 상황을 말한다.) 문제는 이 사물의 제도의 끝을 생존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 ‘저희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나는 이미 여러분이 하는 일을 잘 알고 있다’

● ‘대단히 반갑습니다.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 중에 증인이 있으신가요? ·⁠·⁠· 그러면 한 가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저희는, 우리가 지금 “마지막 날”에 살고 있다는 것, 머지않아 하느님께서 악을 멸하시겠다는 것, 이 땅은 참으로 서로 사랑하는 이웃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완전한 건강 가운데 영원히 살 수 있는 낙원이 된다는 것을 성서로부터 가르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믿으시는지요?’

‘우리는 돈이 없다’

● ‘저희는 모금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무런 보수 없이 가정에서 성서를 연구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있는 중입니다. 연구할 수 있는 한 가지 제목은 (최근 출판물에서 한 장의 제목을 보여 준다.) 입니다. 몇분간만 허락해 주시면 어떻게 연구하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돈은 한푼도 들지 않습니다.’

● ‘저희는 돈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계속한다. 출판물을 하나 보여 주면서 그 출판물이 그들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들이 진정한 관심을 나타내고 읽어 보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출판물을 남긴다. 적절할 경우, 우리의 세계적인 전파 활동이 어떻게 재정적으로 지원되는지를 설명한다.)’

‘나는 불교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

● 그 사람이 믿는 것이 다른 모든 불교인들이 믿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불교의 가르침은 모호하며 그 해석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일본의 불교는 동남 아시아의 불교와는 매우 다르다. 또한 개인마다 견해가 다르다. 그러나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점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1) 불교는 외재(外在)하는 하느님, 인격적인 특성을 지닌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불교인들은 부처의 형상과 유물을 숭배한다. (2) 불타라는 칭호를 받은 고타마 싯다르타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종교적 이상으로 간주되었으며, 그들은 그를 본받으려고 하였다. 그는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을 연구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것과 속세의 욕망을 모두 제거하기 위하여 정신을 제어함으로써 고통의 근원을 제거할 것을 권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환생하여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이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3) 불교인들은 그들의 조상을 숭배한다. 그 이유는 조상을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화를 위한 제안: (1) 불교인과 대화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사람들이 아님을 강조할 것이다. (2) 불교인들은 “경전”을 존중하며 대체로 그들은 그러한 이유로 성서를 존중한다. 불교의 철학을 길게 논할 것이 아니라, 성서의 적극적인 소식을 전해줄 것이다. 그들에게 성서는 단순한 인간의 철학이 아니라, 인류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느님의 권위있는 말씀임을 알게 할 것이다. 그 경전인 성서에서 한 가지 흥미 있는 점을 보여 드려도 되겠는지 정중하게 물어볼 것이다. (3) 많은 불교인들은 평화와 가정 생활에 예리한 관심이 있으며 도덕적인 생활을 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흔히 좋은 반응을 얻는다. (4)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실제적인 해결책으로 성서에서는 땅을 관리할 의로운 하늘 정부를 지적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성서는 땅의 장래와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훌륭한 전망을 알려 준다. (5) 성서는 생명의 기원, 삶의 의미, 죽은 자의 상태와 부활의 희망, 악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의 명료한 진리를 친절히 설명해 준다면 양 같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인식 깊은 반응이 생길 것이다.

「아버지를 찾아서」(In Search of a Father) 소책자가 진실한 불교인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되었다.

‘나는 힌두교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

● 힌두교의 철학은 매우 복잡하며 정상적인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의 요점들을 염두에 두면 도움이 될 수 있다. (1) 힌두교에서 가르치는 신 브라만은 세 가지 형태로 되어 있다. 즉 창조자인 브라마, 보존자인 비슈누 그리고 파괴자인 시바로 되어 있다. 그러나 힌두교인들에게는 독립된 실체로서의 인격적인 특성을 지닌 신의 개념이 없다. (2) 힌두교인들은 자연계의 모든 물체는 결코 죽지 않는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그 영혼은 실제로 끝없는 재생의 순환을 경험하며, 그것이 다시 태어나는 형태는 업(카르마)에 의해서 결정되며, 이러한 “끝없는 바퀴”로부터의 해탈은 모든 육체의 욕망을 끊어버림으로써만 가능하며, 그것이 이루어지면 그 영혼은 우주의 영과 합쳐진다고 믿는다. (3) 대체로, 힌두교인들은 다른 종교를 존중한다. 힌두교인들은 여러 종교들이 상충되는 교리들을 가르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모든 종교는 동일한 진리에 이른다고 믿는다.

복잡한 힌두교 철학을 가지고 이야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성서에 나오는 만족스러운 진리를 제시할 것이다. 생명을 위한 여호와의 사랑에 찬 마련은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열려 있으며, 그분의 말씀에 있는 간명한 진리는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것이다. 성서만이 장래에 대한 실로 훌륭한 기초가 있는 희망을 알려 주며, 성서만이 모든 인류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참으로 만족스러운 대답을 준다. 그들이 그러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야 한다. 힌두교의 「리그베다」경 10. 121에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목이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어떤 경우에는 사도 바울이 아테네에서 “알려지지 않은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을 언급한 것처럼 그 점을 언급하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도 17:22, 23) 흥미롭게도, 힌두교의 신 비슈누(Vishnu)의 이름은, ㅂ(v)음이 빠지면, 이슈누(Ish-nuh)가 되며, 이 칭호는 칼데아에서 “사람 노아”를 뜻했다. 노아 시대에 있었던 세계적인 홍수의 의미에 관하여 성서가 말하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끝없는 환생의 전망으로 인해서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환생” 제하 437-438면의 내용을 사용함으로 도움을 받을 것이다.

「해방으로 인도하는 하느님의 진리의 길」(The Path of Divine Truth Leading to Liberation) 소책자와 「쿠룩세트라에서 아마겟돈까지—그리고 우리의 생존」(From Kurukshetra to Armageddon—And Your Survival) 소책자에는 진실한 힌두교인들에게 매우 유익한 내용이 들어 있다.

‘나는 유대교인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

● 먼저, 그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유대교인이라고 생각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은 매우 드물다. 많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유대교인이란 단순히 민족적 호칭에 불과하다.

염두에 두면 유익할 몇 가지 점들이 있다. (1) 신앙심이 두터운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이 금지된 것으로 생각한다. (2) 많은 유대인들은 “성서”(the Bible)를 그리스도교의 책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 “성경”(the Scriptures), 또는 “토라”(the Torah)라고 한다면, 그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3) 그들의 믿음의 핵심은 전통이며 신앙심이 두터운 많은 유대인들은 전통을 권위에 있어서 성경과 대등한 것으로 여긴다. (4)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교국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유대인들이 겪은 잔인한 박해와 관련지을지 모른다. (5) 그들은 흔히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안식일을 지킬 것을 요구하시며, 거기에는 그날에 돈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다.

공통 기초를 놓기 위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1) ‘틀림없이 우리의 배경에 관계없이, 우리 모두는 오늘의 세계에서 동일한 많은 문제들을 직면해 있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이 세대가 직면해 있는 커다란 문제들에 대해 영속적인 해결책이 과연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 37:10, 11, 29; 시 146:3-5; 다니엘 2:44)’ (2) ‘저희는 그리스도교국에 속해 있지 않으며, 삼위일체의 신을 믿지 않습니다. 저희는 아브라함의 하느님을 숭배합니다. 특히 종교적 진리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한 가지 여쭈어 보겠는데요. 유대인들 사이에도 상이한 믿음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어느 것이 참된 것인지를 어떻게 결정하실 수 있으신지요? ·⁠·⁠· (신명 4:2; 이사야 29:13, 14; 시 119:160)’ (3) ‘저희는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축복을 받으리라는 아브라함과의 하느님의 약속에 예리한 관심이 있습니다. (창세 22:18)’

그 사람이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가 항상 그렇게 생각했었는지 물어볼 수 있다. 그런 다음 하느님께서 악과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치 대학살의 기억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은 그 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먼저 상대방이 그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볼 것이다. 탈출기 20:7은 하느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즉 무가치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지만, 그 이름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런 다음 탈출기 3:15(또는 시 135:13), 열왕기 첫째 8:41-43; 이사야 12:4; 예레미야 10:25; 말라기 3:16과 같은 성구들을 사용하여 추리할 것이다.

메시아에 관하여 논할 때, (1) 그가 누구인가보다는, 먼저 그의 통치 아래 있을 미래의 축복들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2) 그런 다음에 메시아 개인을 지적하는 성구들을 놓고 추리할 것이다. (창세 22:17, 18; 스가랴 9:9, 10; 다니엘 7:13, 14) (3) 두 차례의 메시아의 오심에 관하여 논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비교 다니엘 7:13, 14과 다니엘 9:24-26) (4) 예수에 관하여 언급할 때, 하느님의 목적의 점진적인 특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때는 하느님께서 두 번째 성전이 다시는 재건되지 못하도록 멸망되게 하실 때가 가까운 때였음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의 성취 및 그러한 것들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인도할 영광스러운 장래를 강조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