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의 언어로 된 성서

일상 생활의 언어로 된 성서

일상 생활의 언어로 된 성서

“만일 성서가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의사 소통을 하고 계심을 의미한다. ·⁠·⁠· 종교가 우리 생활 전체에 영향을 미치려면, [성서의] 언어는 일상 생활의 언어가 아니면 안 된다.” 학자 앨런 더시는 저서 「성서 번역판들과 그 선택 방법」(Bible Translations: And How to Choose Between Them)에서 그와 같이 기술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이 말에 동의한다. 그들은 “모든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가르치고 책망하고 사물을 바로잡고 의로 징계하는 데 유익”하다고 열렬히 믿는다. (디모데 둘째 3:16) 성서는 결코 케케묵은 종교적 상투 문구로 된 책이 아니다. 성서는 “살아 있고 힘을 발휘하며” 일상 생활의 문제에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히브리 4:12) 하지만 독자들이 그 거룩한 책을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하여는, 그 책이 일상 생활의 언어로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상, 이른바 신약이라는 책이 기록된 언어는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이 쓰던 고전 그리스어가 아니라, 코이네라고 하는 일상적인 통용 그리스어였다. 그렇다. 성서는 보통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되었다.

이런 목적으로, 근년에 여러 언어로 많은 현대 번역판들이 발행되었다. 그 결과는 대체로 상당히 유익하였다. 일반적으로 대중은 더 쉽게 성경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새로운 번역판들 중 상당수가, 편견 없는 정확성과 일관성에 관하여는 애석하게도 수준에 못 미치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일부 번역판들은 죽은 사람의 상태, 인간 영혼의 실체, 참 하느님의 이름에 관한 성서의 명백한 가르침을 모호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국어로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신세계역」(New World Translation of the Christian Greek Scriptures)이 발표된 것을 환영한다. 여호와의 증인은 1994년 지역 대회에서 이 현대 번역판을 발표하였다. 「신세계역」은 종교적 신조에 구애됨 없이 번역문에서 유례 없는 정확성을 나타냄으로써, 이전에 고대 언어에 생소한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깊이 있는 성서 이해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궁금한 점이 있을 것이다. 과연 이 뛰어난 번역의 책임을 맡은 사람은 누구인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 번역자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신세계역」이 한국어를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롭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미 1950년에 나온 책이다. 당시에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성서 출판의 오랜 역사를 가진 국제 성서 협회—는 영어로 「신세계역」을 발표하였다. 이 새로운 번역판의 이름은—성서를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난 것으로—이 번역판의 여러 가지 독특한 특징 중 하나에 불과하였다. 「파수대」 1950년 9월 15일 호(영문)는 이렇게 말하였다. “번역 위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 익명으로 남겠다는 바람을 시사한 바 있으며, 특히 그들은 생전이나 사후에 이름이 공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번역의 목적은 살아 계신 참 하느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다.”

한 권으로 된 성경 전서(영어)인 「신세계역 성경」(New World Translation of the Holy Scriptures)이 1961년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번역자들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그들의 동기나 정성의 깊이에 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1984년판 머리말은 이렇게 밝힌다. “성경을 번역한다는 것은 여호와 하느님의 생각과 말씀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 성경의 신성한 저자를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이 책의 번역자들은 하느님께 대해 그분의 생각과 선언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전달할 특별한 책임을 느낀다.”

동기는 좋았다 하더라도, 번역 위원들은 그 작업을 수행할 자격이 있었는가? 불만을 품은 일부 학자들은 번역자의 이름과 학력을 공개하지 않는 한, 그 번역은 비전문가들의 작업으로 가차없이 묵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모든 학자가 그런 비합리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다. 앨런 S. 더시는 이렇게 기술한다. “만일 우리가 어떤 성서 번역판의 번역자나 발행인이 누구인지 안다면, 그 번역판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각 번역판 자체의 특징을 조사해 보는 일을 대신할 것은 없다.” *

수많은 독자가 바로 그런 조사를 해보았다. 지금까지 「신세계역」은 전부 혹은 그 일부가 20개 언어로 8100만 부 이상 세계적으로 인쇄되었다. 많은 독자는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는가?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번역판

마태 6:9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이름이 거룩해지게 하십시오.” 그런데도, 대부분의 번역판에서 하느님은 이름 없는 존재로서 “하느님” 혹은 “주”라는 칭호로만 식별된다. 하지만 원래는 그렇지가 않았다. 하느님은 원래의 히브리어 성경에서 7000번 가까이 “여호와”라는 고유한 이름으로 분명하게 식별되어 있었다. (출애굽 3:15; 시 83:18) 세월이 흐른 후, 유대인들은 미신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기를 중지하였다. 예수의 사도들이 사망한 뒤에, 이 미신적 견해가 그리스도인 회중을 물들였다. (비교 사도 20:29, 30; 디모데 첫째 4:1) 성경의 그리스어 부분의 복사자들은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인 여호와를 키리오스테오스라는 그리스어 단어로 대치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단어는 각각 “주”와 “하느님”을 의미한다.

다행히도, 「신세계역」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신약”)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복원하는 과감한 조처를 취하였으며, 그 이름은 그 가운데 237회 나온다. 이런 복원은 번역자들의 일시적인 기분이 아니라 철저하고 주의 깊은 학술적 연구에 근거한 것이다. 이를테면, 누가 4:18이사야 61:1에 있는 말을 인용한다. 원래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이사야의 그 구절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온다. * 따라서 적절하게도, 「신세계역」은 누가 4:18을 이렇게 번역하였다. “여호와의 영이 내 위에 있다. 그분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 가난한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한 번역은 독자들이 여호와 하느님을 그분의 유일하게 태어난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구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번역판은 마태 22:44을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라고 번역한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 이 구절은 시편 110:1에서 인용한 것인데, 원래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시편의 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신세계역」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한다. “여호와께서 내 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 적들을 네 발 밑에 둘 때까지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성경에서 여호와 하느님과 그 분의 아들을 구별 짓는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학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마가 13:32; 요한 8:17, 18; 14:28) 그것은 개인의 구원에 결정적인 문제이다. 사도 2:21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정확성과 명료성

그 밖에도 「신세계역」에는 두드러진 특징들이 더 있다. 웨스트콧과 호트의 엄밀하게 다듬어진 그리스어 정본이 이 번역판의 주된 대본으로 선택되었다. 원래의 그리스어를 쉬운 현대어로, 되도록이면 정확하게 직역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한 결과, 성서 원문이 풍기는 맛과 생생함이 많이 보전되었을 뿐 아니라, 이해의 폭이 아주 넓어지게 되었다.

로마 13:1의 성구를 예로 들어 보자. 거기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하라고, 즉 세속 정부에 복종하라고 권고하였다. 많은 번역판은 이어서 그런 정부들이 “하느님의 정하신 바” 혹은 “하느님께서 임명하신” 것으로 말한다. (「제임스 왕역」; 「예루살렘 성서」) 일부 군주들은 자기 독재 정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런 번역 표현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신세계역」은 그 특유의 직역 원칙 및 정확성을 반영하여 그 구절을 이렇게 번역하였다. “현존하는 권위는 하느님에 의하여 그들의 상대적 지위에 놓여 있습니다.” *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친히 세상 통치자들을 선택하지는 않으시지만 그러한 인간들이 서로 상대적—그러나 그분 자신보다는 언제나 낮은—권위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을 허락하신다는 점을 이해할 수가 있다.

「신세계역」은 또한 그리스어 동사의 미묘한 차이를 전달하려고 노력하였다. 현대의 많은 언어에서는, 동사의 동작이 이루어지는 시점—즉 과거, 현재, 혹은 미래—을 알리기 위해 동사가 활용을 한다. 그리스어에서 동사는 어떤 종류의 동작이 관련되어 있는지—순간적인 동작인지, 완료된 동작인지, 계속되는 동작인지—역시 표현한다. 마태 6:33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을 고려해 보자. “구하다”를 의미하는 그 그리스어 동사는 계속되는 동작의 개념을 전달한다. 따라서 예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번역문 가운데 그 온전한 의미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왕국과 그분의 의를 계속 첫째로 구하십시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더하여질 것입니다.” 마태 7:7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번역하였다. “계속 청하십시오. 그러면 주어질 것입니다. 계속 찾으십시오. 그러면 발견할 것입니다. 계속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열릴 것입니다.”—또한 로마 1:32; 6:2; 갈라디아 5:15 참조.

「신세계역」은 주요 용어의 번역이 일관성 있고 통일되도록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그리스어 프시케는 나올 때마다 “영혼”으로 번역하였다. 그 결과 독자는, 종교 이론들과는 반대로, 영혼이 불멸이 아님을 쉽게 분별할 수 있다. 영혼은 죽어, 소멸될 수 있다.—마태 2:20; 마가 3:4; 누가 6:9; 17:33.

하느님의 말씀을 전세계에서 볼 있게 함

한국어로 된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발표는 시작에 불과하다. 적절한 시일 내에 성서 전체를 번역하려는 계획이 이미 세워져 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한국어 번역판이 영어판과 동일한 정확성과 일관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물론, 그렇다. 그 번역 작업이 워치 타워 협회의 면밀한 감독하에 수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현명하게도, 외국어 성서 번역은 팀 작업으로 수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정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세계 도처의 많은 나라에 성서 번역 팀들이 구성되었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워치 타워 협회 본부에는 번역 봉사부가 설립되어, 그러한 팀들의 필요에 부응하고 문의에 대답하는 한편 「신세계역」의 다양한 언어 번역판들이 서로 일치 조화되도록 돌본다. 워치 타워 협회는 성서 번역자들을 돕기 위해 대단히 유용한 도구, 즉 컴퓨터 시스템도 개발하였다. 아직도 번역 작업에 인간의 노력이 엄청나게 요구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컴퓨터 시스템 덕분에 성서 번역 팀들의 높은 목표, 즉 「신세계역」을 영어판과 동일한 정확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번역하는 일이 훨씬 더 간단해졌다. 특히, 그 번역 시스템은 각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가 영어판에 어떻게 번역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므로, 번역자들이 그에 해당하는 자국어를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 마련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그 결과를 보기만 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신세계역」을 꼭 검토해 보기 바란다. 이 잡지의 발행소에서 구할 수 있다. 그 성서의 여러 가지 특징들 역시 즐기게 될 것이다. 그런 특징 가운데는 또렷하고 보기 쉬운 활자체, 알고 있는 구절을 더 빨리 찾는 데 도움이 되는 난외 표제, 상세한 지도, 부록에 수록된 흥미 진진한 내용 등이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이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를 일상 생활의 언어로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확신을 갖고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각주]

^ 9항 흥미롭게도, 「신 미 표준역」(New American Standard Bible) 참조주판(1971년)의 책가위에서는 그와 비슷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이 그 자체의 진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참조나 추천을 위해 어느 학자의 이름도 사용하지 않았다.”

^ 13항 이른바 신약에 인용된 히브리어 성경의 대본으로 그리스어 칠십인역이 사용된 것은 사실이다. 「칠십인역」의 후기 사본들에 하느님의 이름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도 그 이름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러나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칠십인역」 사본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원래의 히브리어 형태로—들어 있다. 이 사실은 그리스어 성경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복원하는 일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준다.

^ 17항 G. 애벗-스미스의 「신약 그리스어 소사전」(A Manual Greek Lexicon of the New Testment)과 리들과 스콧의 「그리스어-영어 사전」(A Greek-English Lexicon) 참조. 이 사전들과 기타 믿을 만한 자료에 따르면, 그 그리스어 용어는 문자적으로 “질서 있게 늘어놓다, 제자리에 배열하다”를 의미한다.

[16, 17면 삽화]

「신세계역」의 특징들:

원래의 그리스어를 쉬운 현대어로, 되도록이면 정확하게 직역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자료 제공]

By courtesy of the Director and University Librarian, The John Rylands University of Manchester

보기 쉬운 활자체로 되어 있어서 읽기가 즐겁다

난외 표제가 있어서 알고 있는 구절을 더 빨리 찾을 수 있다

상세한 지도가 있어서 독자들이 성서 지리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

[14면 삽화]

사도 바울과 같은 성서 필자들은 일상 생활의 언어로 기록하였다

[18면 삽화]

「신세계역」의 명료성은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에 대단히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