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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길르앗 제1기 학급에 참석한 메리 래리머 자매와 같은 학급 학생들, 1943년 6월 23일에 메리가 받은 졸업장, 메리의 2017년 모습

2024년 1월 23일
미국

길르앗 제1기 졸업생 중 마지막 생존자가 103세의 나이로 사망하다

길르앗 제1기 졸업생 중 마지막 생존자가 103세의 나이로 사망하다

2023년 11월 23일에 워치타워 길르앗 성서 대학 제1기 졸업생인 메리 M. 래리머가 사망했습니다. a 메리는 1920년 6월 4일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시너리힐에서 태어났습니다. 1935년에 그는 15살의 나이로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대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4년 뒤에 메리 래리머 자매는 정규 파이오니아 봉사를 시작했고 곧 열정적인 전파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42년 12월에 메리는 당시 조직을 이끌던 네이선 노어 형제로부터 워치타워 길르앗 성서 대학이라는 새로운 학교에 지원해 보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 대학의 목적은 성직 임명을 받은 봉사자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선교 활동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 교육 과정은 5개월 동안 진행될 것입니다. …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이 과정을 마치려면 부지런히 집중해서 공부와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메리는 곧바로 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1943년 2월 1일에 메리는 미국 뉴욕주 사우스랜싱에서 99명의 동료 학생들과 함께 길르앗 학교 과정의 첫날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약 5개월간의 교육 과정 내내 메리는 성경에 대해 더 많이 배우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메리는 학교 과정을 잘 마치고 1943년 6월 23일에 졸업했습니다.

당시 길르앗 학교는 미국 뉴욕주 사우스랜싱에 있었습니다. 메리와 동료 학생들이 길르앗 학교 시설의 입구 위쪽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메리는 졸업한 후 쿠바에서 선교 봉사를 하라는 임명을 받았습니다. 메리는 새로운 임지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너무 가난했어요. 봉사할 때 우린 걸어 다녀야 했죠. … 차가 없었으니까요.” 메리는 계속 임지에서 봉사하다가 심하게 다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1948년에 펜실베이니아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메리는 독신으로 살면서 봉사와 그 밖의 신권 활동을 하며 계속 바쁘게 지냈습니다. 메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 있는 한 회중에서 섬기던 중에 사망했습니다.

메리는 쿠바에서 선교인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봉사를 즐겼습니다

메리(왼쪽)와 친자매인 헬렌 페라리와 그의 남편 살비노 페라리. 페라리 부부는 길르앗 제2기 학급을 졸업했고 쿠바에서 봉사했습니다

워치타워 길르앗 성서 학교는 현재 뉴욕주 패터슨에 있으며, 지금은 그곳에서 155기 학급이 열리고 있습니다. 길르앗 강사인 마크 누매어 형제는 메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은 마을 출신의 젊은 자매인 메리 래리머는 여호와에 관해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려고 했습니다. 어디로 가게 될지, 가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메리와 같은 길르앗 선교인들은 세계적인 전파 활동이 성장하는 기초를 놓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이사야 6:8.

a 1946년에 워치타워 길르앗 성서 대학의 명칭이 워치타워 길르앗 성서 학교로 바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