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1-21
연구 노트
그러고 나서 14년 뒤에: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여기서 바울은 만 14년 뒤가 아니라 “14년째 되는 해에” 즉 “햇수로 14년이 되는 때에”라는 의미로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일 수 있다. (왕상 12:5, 12 비교. 갈 1:18 연구 노트 참조) 그 기간은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한 때인 기원 36년부터 그가 디도와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곳의 사도들과 장로들과 함께 할례 문제를 논의한 때인 기원 49년까지인 것 같다.—행 15:2.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여기서 바울은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는 나오지 않는 점을 언급한다. (행 15:1, 2) 그리스도인 회중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이 할례라는 중요한 문제를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가져가도록 계시를 통해 인도하신 것 같다. (엡 5:23) 이 역사적인 모임은 기원 49년경에 있었다. 바울은 그가 진정한 사도가 아니라고 말하던 유대교 복귀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또 하나의 증거로 이 계시를 언급했다. 예수께서 바울에게 직접 임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계시를 통해 그를 인도하셨다는 사실은 그가 진정한 사도라는 점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갈 1:1, 15, 16.
전파하고 있는: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기본적으로 “공식 사자로서 소식을 선포하다”를 의미한다. 이 표현은 선포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공개적으로 널리 알리는 것을 가리킨다.—마 3:1 연구 노트 참조.
디도는 …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안티오크에서 할례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을 때 (기원 49년경) 디도도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갔다. (행 15:1, 2; 갈 2:1) 디도는 “그리스인” 즉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이 구절에 나오는 그리스인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2절에 나오는 “크게 존경받는 형제들”은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구절 즉 3절에서 “강요하다”라는 동사가 사용된 것을 볼 때 일부 유대교 복귀주의자들 즉 유대교 신앙과 관습을 옹호하던 사람들이 디도에게 할례를 받도록 압력을 가했을 수 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모임에서 사도들과 장로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 (행 15:23-29) 여기서 바울이 디도의 경우를 언급한 것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모세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디도는 주로 할례받지 않은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전파 활동을 했으므로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고후 8:6; 딤후 4:10; 딛 1:4, 5) 따라서 그의 경우는 바울이 할례를 베풀었던 디모데의 경우와는 달랐다.—행 16:3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인: 디도는 그리스인(헬렌)으로 언급된다. 이것은 그가 단지 그리스인의 혈통이라는 의미일 수 있다. 하지만 1세기의 일부 저술가들은 그리스인은 아니지만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인 사람들을 가리킬 때 이 단어의 복수형(헬레네스)을 사용했다. 이 구절에서는 디도를 그런 넓은 의미로 그리스인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롬 1:16 연구 노트 참조.
거짓 형제들: “거짓 형제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프세우다델포스)는 이 구절과 고후 11:26에만 나온다. 한 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으로 정의한다. 갈라디아 회중들의 유대교 복귀주의자들은 영적인 사람인 것처럼 행세했지만 사실은 회중이 다시 모세 율법을 엄격히 따르게 하려고 했다. (갈 1:6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그들이 “슬며시 들어온” 자들, 그리스도인 자유를 “염탐하려고 슬그머니 들어온 자들”이라고 말함으로 그들이 자신들의 위험한 가르침을 퍼뜨리려고 교묘한 책략을 사용한다는 점을 밝혔다.—고후 11:13-15 비교.
좋은 소식의 진리: 이 표현은 14절에도 나오는데, 하느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그리스도교 가르침 전체를 가리킨다.
하느님: 그리스어 사본들에는 이 부분이 “하느님”으로 되어 있지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나 그 밖의 언어들로 옮긴 일부 번역본에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다.
베드로가: 여기서 바울이 한 말을 보면 회중에서 인도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갈 2:9 연구 노트 참조) 예루살렘의 중앙장로회는 베드로가 주로 유대인에게 전파할 책임을 맡았으며 바울은 주로 비유대인들에게 전파할 책임을 맡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울은 비유대인에게만, 베드로는 유대인에게만 전파한 것은 아니었다. 이방 사람들에게 전파할 길을 처음으로 연 사람은 베드로였다. (행 10:44-48; 11:18) 또한 바울도 많은 유대인들에게 전파했다.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이방 사람들에게 그리고 …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파하라는 사명을 주셨기 때문이다. (행 9:15) 두 사람 모두 순종하는 태도로 자기가 받은 사명을 수행했다. 예를 들어, 후에 베드로는 동쪽으로 가서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유대 학문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던 바빌론에서 봉사했다. (벧전 5:13) 바울은 서쪽으로 아주 먼 곳까지 여행하며 선교 봉사를 수행했다. 그는 스페인까지 갔을 수도 있다.
할례받은 사람들: 직역하면 “할례자들”.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 직역하면 “무할례자들”. 비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사도직을 수행할 능력을 베드로에게 주신 … 나에게도 능력을 주셨는데: 그리스어 동사 에네르게오가 여기서는 “능력을 주다”로 번역되었다. 다른 구절들에서는 이 동사가 “활동하다”, “작용하다”, “힘을 주다”로 번역되기도 했다. (엡 2:2; 3:20; 빌 2:13; 골 1:29) 이 구절에서 이 동사는 하느님께서 베드로와 바울에게 사도로서 활동할 권위만이 아니라 책임을 수행할 능력도 주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기둥: 문자적인 기둥이 건물을 지탱해 주는 것처럼, 여기서 기둥으로 비유된 사람들은 회중을 지탱해 주고 회중에 힘을 주는 역할을 했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 회중을 “진리의 기둥과 버팀대”로 언급할 때도 사용되었으며 (딤전 3:15) 천사의 불기둥 같은 다리를 묘사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계 10:1-3)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마치 기둥처럼, 회중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영적으로 강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믿음직하게 회중을 지탱하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다.
게바: 사도 베드로의 이름 중 하나.—고전 1:12 연구 노트 참조.
뜻을 함께한다는 표시로 오른손을 내밀어: 또는 “동료 관계의 표시로 오른손을 내밀어; 친교의 표시로 오른손을 내밀어”. 다른 사람과 악수를 하거나 그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어떤 일에 동참하거나 동료가 되거나 친교를 맺는다는 표시였다. (왕하 10:15) 기원 49년경에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1세기 중앙장로회가 할례 문제를 논의하는 데 참여했다. (행 15:6-29) 그때 바울은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좋은 소식을 전파하라는 사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행 9:15; 13:2; 딤전 1:12) 여기서 바울은 그 모임과 그 이후에 그들이 나타냈던 서로 연합하고 협력하는 태도를 떠올린 것이다. 형제들은 그들 모두가 동일한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은 할례받은 사람들 즉 유대인들에게 전파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뜻을 모았다.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고: 기원 49년경에 바울과 그의 동료인 바나바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서 한 가지 임무를 받았다. (갈 2:9) 그들은 이방 사람들에게 전파하면서,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의 물질적 필요를 돌보는 일을 잊지 말아야 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그렇게 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해 왔다고 말한다. 후에 유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바울은 다른 지역의 회중들을 격려하여 그들이 가진 물질적인 것들로 예루살렘의 가난한 형제들을 돕게 했다. 바울이 쓴 편지들은 그가 이 문제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음을 보여 준다. 그는 고린도 전서와 후서에서 (기원 55년경) 이 기부금에 관해 쓰면서 자신이 이미 “갈라디아의 회중들에게” 이 문제에 관한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고전 16:1-3; 고후 8:1-8; 9:1-5. 고전 16:1, 3; 고후 8:2 연구 노트 참조) 기원 56년경에 쓴 로마서에서는 기부금을 모으는 일이 거의 완료되었다는 점을 밝혔다. (롬 15:25, 26) 얼마 뒤 그가 그 임무를 완수했다는 점은 나중에 그가 로마 총독 펠릭스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저는 동족에게 자선기금을 전달하[려고] 돌아왔습니다.” (행 24:17) 그처럼 사랑에서 우러나와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1세기 그리스도교를 식별하게 해 주는 한 가지 표였다.—요 13:35.
게바: 사도 베드로의 이름 중 하나.—고전 1:12 연구 노트 참조.
정면으로 반대했습니다: 또는 “대면하여 나무랐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비유대인 형제들과 더는 교제하려 하지 않자, 그 사실을 알게 된 바울은 주저하지 않고 그를 “정면으로 반대했다.” 바울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를 책망했다. “반대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반대편에 서다”를 의미한다.—갈 2:11-14.
이방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것은 친교를 나눌 기회였으며 식사할 때는 일반적으로 기도를 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보통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남아 있던 이방 민족들과 결코 섞여서는 안 되며 그들의 신들을 언급해서도 안 된다는 명령을 받았다. (수 23:6, 7) 하지만 기원 1세기에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만들어 낸 부가적인 제한 규정들이 지켜지고 있었다. 그러한 규정들에 따르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는 사람은 의식상 부정해졌다.—요 18:28.
할례받은 그 사람들: 직역하면 “할례에서 나온 사람들”. 예루살렘 회중에서 온 몇몇 할례받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다른 구절들에서는 이 그리스어 표현이 “할례를 지지하는 사람들”, “할례받은 사람들”, “할례에 고착하는 사람들”로 번역되었다.—행 11:2; 골 4:11; 딛 1:10.
더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이방 사람들을 멀리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인 베드로는 기원 36년에 “하늘 왕국의 열쇠들” 중 세 번째 열쇠를 사용하여, 고넬료와 그의 집안이 유대인도 아니고 유대교 개종자도 아닌 사람들 중에서는 최초로 그리스도인이 될 기회를 열어 주었다. (마 16:19 연구 노트 참조) 당시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며칠 동안 머물렀는데, 그러는 동안 틀림없이 그 집에 살던 이방인들과 여러 차례 함께 식사를 했을 것이다. (행 10:48; 11:1-17) 그리고 그 이후에도 당연히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식사를 하곤 했다. 그런데 약 13년 뒤 시리아 안티오크에 있을 때 베드로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더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온 일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던 것이다. 그들은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예루살렘에 있던 야고보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행 15:13 연구 노트 참조) 그들은 변화를 신속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모세 율법과 몇몇 유대 관습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었다. (행 10:28 연구 노트 참조) 베드로가 한 행동은 그가 시리아 안티오크를 방문한 때와 같은 해인 기원 49년경에 중앙장로회가 내린 결정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중앙장로회는 그 결정을 통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모세 율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이미 확증한 바 있었다. (행 15:23-29) 여기서 바울이 안티오크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한 것은 베드로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그를 따라서 그런 가식적인 행동을 했으며 … 가식적인 행동에 휩쓸렸습니다: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시니포크리노마이와 명사 히포크리시스는 어근이 같다. 두 단어 모두 원래 가면을 쓰고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그리스의 배우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여기서 두 번째로 나오는 “가식적인 행동”이라는 표현은 명사 히포크리시스를 번역한 것이다. 이 명사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6번 나오는데, 이 구절을 제외한 다른 구절들에서는 “위선”으로 번역되었다. (마 23:28; 막 12:15; 눅 12:1; 딤전 4:2; 벧전 2:1. 이와 어근이 같은 단어인 히포크리테스[“위선자”]에 대해 알아보려면 마 6:2; 눅 6:42 연구 노트 참조) 일부 사전에 따르면 “~를 따라서 가식적인 행동을 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연기에 참여하다” 또는 “위선에 참여하다”를 의미하며, 이 구절에서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게바: 사도 베드로의 이름 중 하나.—고전 1:12 연구 노트 참조.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동사 디카이오오와 그와 어근이 같은 명사들인 디카이오마와 디카이오시스는 일반적으로 “의롭다고 인정하다”, “의로운 행위”로 번역된다. 이 단어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혐의든 없애 주는 것, 무죄로 간주하는 것, 따라서 의롭다고 선언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롬 3:24 연구 노트 참조) 갈라디아 회중들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모세 율법을 따르는 행위를 통해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고 하는 유대교 복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갈 5:4. 갈 1:6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완전한 생명을 희생하심으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실 근거를 마련하셨다.—롬 3:19-24; 10:3, 4; 갈 3:10-12, 24.
내가 이미 헐어 버린 것을: 바울은 한때 모세 율법을 따르는 행위를 통해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유대교에 열심이었다. (갈 1:13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러한 잘못된 믿음을 비유적으로 말해 헐어 버렸다. (갈 2:15, 16)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율법을 엄격히 지켜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갈 1:9; 5:2-12) 여기서 바울은 만약 자신이나 다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모세 율법의 영향력 아래 다시 들어간다면, “이미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렇게 한다면 율법의 정죄를 받게 되어 다시 자신을 범법자로 만드는 셈이 될 것이었다.—갈 3:19 연구 노트 참조.
나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죽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율법의 행위”로는 하느님 앞에 의로운 신분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이 말을 했다. (갈 2:16) 모세 율법은 바울을 죽어 마땅한 죄인으로 정죄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롬 7:7-11)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율법에 대해 죽었다”고 말한다. 율법 계약은 예수께서 형주에서 죽으심으로 법적 효력을 상실했다. (골 2:13, 14)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율법에 대해서 죽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롬 7:4)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해 믿음을 나타냄으로 “율법에 대해 죽게” 되었다. 율법은 바울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했으므로 그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율법에 대해 죽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갈 3:24; 3:25 연구 노트 참조.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기둥에 못 박혀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그리스어 동사 신스타우로오는 문자적으로 예수와 함께 처형된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마 27:44; 막 15:32; 요 19:32. 롬 6:6 연구 노트 참조) 다른 그리스도인들처럼 바울도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으로 살았다. (갈 3:13; 골 2:14)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처형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나타냄으로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게 된다.—롬 10:4; 고후 5:15. 갈 2:19 연구 노트 참조.
육체로 사는: 인간으로 사는 것을 가리킨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자신을 넘겨주신: 여기서 바울은 “나”라는 대명사를 사용함으로 예수에게 믿음을 나타내기로 선택하는 사람 각자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이 주는 유익을 강조한다. (요 3:16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큰 사랑을 나타내셨다는 점을 이해했으며 그 사랑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사랑에 마음이 감동된 그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따뜻하고 관대한 태도를 나타내게 되었다. (고후 5:14 연구 노트 참조. 고후 6:11-13; 12:15 비교)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는데도 예수께서 자신을 이끌어 제자가 되게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다. 바울은 예수께서 의로운 사람들뿐만 아니라 죄에 짓눌린 사람들을 위해서도 자신의 생명을 내주심으로 사랑을 나타내셨다는 점을 이해했다. (마 9:12, 13 비교) 바울은 그리스도의 희생이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대속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실로 헛되이 죽으신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을 통해서 즉 모세 율법을 따르는 행위를 통해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이 구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노력으로 생명의 선물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을 저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롬 11:5, 6; 갈 5:4.
미디어
시리아 안티오크는 로마 속주 시리아의 수도였다. 1세기에 시리아 안티오크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였다. 안티오크는 오론테스강(1)의 동쪽에 세워진 도시였으며 원래는 그 강에 있는 섬(2)도 도시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강 하류에는 셀레우키아 항구가 있었다. 안티오크에는 경마와 전차 경주를 위한 경기장(3)이 있었는데, 이것은 당시에 규모가 가장 큰 경기장 중 하나였다. 안티오크는 주랑이 있는 웅장한 거리(4)로 유명했는데, 헤롯 대왕이 그 거리를 대리석으로 포장했다. 나중에 티베리우스 황제가 지붕이 있는 주랑을 세웠으며 거리를 모자이크와 조각상으로 장식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던 이 도시에는 규모가 큰 유대인 공동체(5)가 있었다. 이 공동체에 속해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안티오크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행 11:26)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이방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기원 49년경에 할례 문제가 제기되자 형제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포함하는 대표단을 예루살렘에 있는 중앙장로회에 보내 지침을 구하게 했다. (행 15:1, 2, 30) 사도 바울은 안티오크를 근거지로 하여 세 차례에 걸쳐 선교 여행을 했다. (행 13:1-3; 15:35, 40, 41; 18:22, 23) 이 지도에는 여러 세기에 걸쳐 존재했던 도시 성벽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