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1-31

16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에게 한 관리인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고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그를 불러 말했습니다. ‘당신에 대한 이 소문이 어찌 된 일이오? 장부를 내놓으시오. 당신은 더 이상 이 집의 관리인으로 일할 수 없소.’  그러자 관리인은 속으로 말했습니다. ‘주인이 내게서 관리인직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해야 할까?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구걸하자니 창피하구나.  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다. 이렇게 하면 내가 관리인직에서 쫓겨날 때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들 집으로 맞아들여 주겠지.’  그리고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번째 사람에게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습니다.  ‘올리브기름 100통입니다’ 하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관리인은 ‘당신의 계약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앉아서 어서 50이라고 쓰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다음에, 그는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밀 100가마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관리인은 ‘당신의 계약서를 받아 80이라고 쓰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주인은 그 관리인이 불의하긴 하지만 그를 칭찬했습니다. 그가 실용적인 지혜를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기 세대 사람들을 대하는 면에서는 이 세상 제도의 아들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실용적인 지혜가 더 뛰어납니다.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여러분 자신을 위해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사귀십시오.+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 친구들이 여러분을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일 것입니다.+ 10  가장 작은 것에 충실한 사람은 큰 것에도 충실하고, 가장 작은 것에 불의한 사람은 큰 것에도 불의합니다. 11  그러므로 여러분이 불의한 재물과 관련해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여러분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습니까? 12  또 여러분이 남의 것과 관련해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몫을* 주겠습니까?+ 13  어떤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14  돈을 사랑하는 자들인 바리새인들이 이 모든 것을 듣고 그분을 비웃기 시작했다.+ 15  그래서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들의 마음을 아십니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는 혐오스러운 것입니다.+ 16  율법과 예언서는 요한의 때까지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하느님의 왕국이 좋은 소식으로 선포되고 있으며, 모든 부류의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17  율법에 있는 글자의 한 획이 성취되지 않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쉽습니다.+ 18  누구든지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간음하는 것이며, 남편에게 이혼당한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간음하는 것입니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자주색 옷과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기며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20  사람들이 그의 집 대문에 나사로라는 거지를 데려다 놓곤 했는데, 그는 온몸이 부스럼*투성이였습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고 싶어 했습니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의 부스럼*을 핥기까지 했습니다. 22  마침내 그 거지가 죽어서 천사들에 의해 아브라함 곁으로 옮겨졌습니다. 부자도 죽어서 묻혔습니다. 23  부자가 무덤에서 심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보니, 저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나사로가 보였습니다. 24  그래서 그가 외쳤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제게 자비를 베푸셔서 나사로를 보내어 그가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타오르는 이 불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25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얘야, 너는 평생 좋은 것을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나쁜 것을 겪었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래서 이제 나사로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26  그뿐만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에 큰 구렁이 있어서,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는 사람도 갈 수 없고 그곳 사람들도 우리에게 건너올 수 없다.’ 27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부탁드립니다. 나사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는 다섯 형제가 있으니, 그가 그들에게 철저히 증언해서 그들만은 이 심한 고통의 장소에 들어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된다’ 하고 말했습니다.+ 30  그러자 그는 ‘아닙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군가가 그들에게 가면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31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에게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다 해도 그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각주

또는 “여러분 자신의 것을”.
또는 “궤양”.
또는 “궤양”.

연구 노트

관리인: 또는 “집안 관리인; 집사”.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 오이코노모스는 종의 신분이면서, 다른 종들 위에 임명된 사람을 가리킨다. 고대에는 대개 충실한 종에게 그런 직분이 주어졌으며 그에게는 주인의 일들을 관리하는 책임이 맡겨졌다. 따라서 관리인은 크게 신임받는 직분이었다. “[아브라함이] 가진 모든 것을 관리”했던 그의 종이 그러한 관리인 즉 집사였다. (창 24:2) 창 39:4에서 알려 주는 것처럼 요셉도 그러한 위치에 있었다. 예수께서 이 비유에서 사용하신 “관리인”이라는 말은 단수형으로 되어 있다. 단수형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 관리인이 특정한 사람 하나만을 가리킨다고 볼 수는 없다. 성경에는 단수 명사가 하나의 집단을 가리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여호와께서는 하나의 집단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의 증인들[복수형], 내가 선택한 나의 종[단수형]이다.” (사 43:10) 그와 마찬가지로 이 비유에서도 “관리인”은 하나의 집단을 가리킨다. 비슷한 비유가 나오는 마 24:45에서, 이 관리인은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으로 언급된다.

관리인: 또는 “집안 관리인; 집사”.—눅 12:42 연구 노트 참조.

100통: 또는 “100바트”. 일부 학자들은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바토스가 히브리 사람들이 사용한 바트와 동일한 단위라고 생각한다. 고대 히브리어 문자로 “바트”라는 단어가 새겨진 항아리 조각들을 근거로 계산하면, 1바트는 약 22리터인 것으로 추정된다.—용어 설명 “바트” 및 부록 나14 참조.

100통: 또는 “100바트”. 일부 학자들은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바토스가 히브리 사람들이 사용한 바트와 동일한 단위라고 생각한다. 고대 히브리어 문자로 “바트”라는 단어가 새겨진 항아리 조각들을 근거로 계산하면, 1바트는 약 22리터인 것으로 추정된다.—용어 설명 “바트” 및 부록 나14 참조.

100가마: 또는 “100코르”. 일부 학자들은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코로스가 히브리 사람들이 사용한 코르와 동일한 단위라고 생각한다. 1코르는 10바트에 해당한다. 1바트를 22리터로 계산하면 1코르는 220리터가 된다.—눅 16:6 연구 노트; 용어 설명 “바트”, “코르” 및 부록 나14 참조.

슬기로운: 그리스어 원어에는 이해력을 나타낸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데, 여기에는 통찰력, 분별력, 앞날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태도, 실용적인 지혜, 신중한 태도가 포함된다. 동일한 단어가 마 7:2425:2, 4, 8, 9에도 사용되었다. 「칠십인역」창 41:33, 39에서 요셉을 묘사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슬기로운 사람: 또는 “지혜로운 사람”.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형용사 프로니모스에는 이해력을 나타낸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데, 여기에는 통찰력, 분별력, 앞날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태도, 실용적인 지혜, 신중한 태도가 포함된다. 눅 16:8에서는 이 그리스어 단어의 변화형이 사용되었는데, “실용적인 지혜가 더 뛰어나다”로 번역되었다. 프로니모스마 7:24과 25:2, 4, 8, 9에도 사용되었다. 「칠십인역」창 41:33, 39에서 요셉을 묘사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실용적인 지혜를 나타냈기: 또는 “영리하게(슬기롭게) 행동했기”. 그리스어 프로니모스는 이 구절에서 “실용적인 지혜”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형용사의 변화형이 이 구절의 뒷부분에서는 실용적인 지혜가 더 뛰어나다로 번역되었으며, 마 7:24; 24:45; 25:2과 눅 12:42에서는 “슬기롭다”로 번역되었다.—마 24:45; 눅 12:42 연구 노트 참조.

이 세상 제도: 그리스어 원어 아이온의 기본 의미는 “시대”이다. 이 단어는 특정한 기간이나 시대를 구분 짓는 상태나 특징을 가리킬 수 있다. 이 구절에서는 불의한 현 세상 제도와 세상적인 생활 방식을 가리킨다.—용어 설명 “세상 제도(들)” 참조.

재물: 그리스어 마모나스(셈어에서 유래)는 대개 “맘몬”으로 번역되지만 “돈”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여기서 “재물”은 주인 또는 일종의 거짓 신으로 의인화되어 있지만, 이 표현이 특정한 신의 이름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불의한 재물: 직역하면 “불의의 맘몬”. 그리스어 마모나스(셈어에서 유래)는 “맘몬”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돈이나 재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마 6:24 연구 노트 참조) 예수께서 이러한 부 즉 재물을 불의하다고 하신 것은, 그러한 재물이 죄 많은 인간에 의해 사용되고, 일반적으로 이기적인 목적에 기여하며, 불의한 행동을 통해 그러한 재물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물질적 부를 소유하거나 갈망하면 불법적인 행동을 하게 될 수 있다. 문자적인 부는 가치를 잃게 될 수 있으므로, 그러한 부를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딤전 6:9, 10, 17-19) 그는 사람을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여 주실 수 있는 분들인 여호와와 예수를 친구로 사귀는 데 자신의 부를 사용해야 한다.

친구들: 하늘에 있는 친구들 즉 여호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분들만이 사람들을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실 수 있다.

영원한 처소: 직역하면 “영원한 천막”. 영원한 신세계에서의 완전한 처소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러한 처소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하늘 왕국일 수도 있고 그 왕국이 다스리는 땅의 낙원일 수도 있다.

미워하지: 성경에서 “미워하다”라는 단어는 몇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악의를 품고 남에게 해를 입히려 하는 적대감을 가리킬 수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이나 사물과 아무런 관련도 맺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로 몹시 싫어하는 마음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 단어는 단지 덜 사랑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야곱이 레아를 ‘미워하고’ 라헬을 사랑했다는 표현은 그가 라헬보다 레아를 덜 사랑했다는 의미이다. (창 29:31, 각주; 신 21:15, 각주) 다른 고대 유대 문헌에도 이 단어가 그러한 의미로 사용된 예가 나온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제자들이 가족이나 스스로에 대해 적대감이나 혐오감을 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의 다른 가르침과 모순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막 12:29-31; 엡 5:28, 29, 33 비교) 이 문맥에서 “미워하다”라는 단어는 “덜 사랑하다”로 번역할 수 있다.

재물: 그리스어 마모나스(셈어에서 유래)는 대개 “맘몬”으로 번역되지만 “돈”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여기서 “재물”은 주인 또는 일종의 거짓 신으로 의인화되어 있지만, 이 표현이 특정한 신의 이름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섬길: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는 종으로 일하는 것을 가리킨다. 종은 한 주인만을 섬겼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소유물을 모으는 데 정신을 쏟으면서 동시에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전적인 정성을 바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신 것이다.

미워하고: 정성을 덜 바친다는 의미이다.—눅 14:26 연구 노트 참조.

재물: 마 6:24 연구 노트 참조.

섬길: 마 6:24 연구 노트 참조.

예언서와 율법: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는 “율법과 예언서”라고 되어 있는데, (마 5:17; 7:12; 22:40; 눅 16:16) 이 구절에서만 순서가 바뀌어 있다. 기본 의미는 같지만 (마 5:17 연구 노트 참조) 이 표현은 성경에 들어 있는 예언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또한 이 구절은 율법도 예언을 했다고 표현함으로 율법의 예언적 성격을 강조한다.

율법과 예언서: “율법”은 성경에서 창세기부터 신명기에 이르는 책들을 가리킨다. “예언서”는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글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두 단어가 함께 사용될 때는 히브리어 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마 5:17; 7:12; 22:40. 마 11:13 연구 노트 참조.

힘쓰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는 기본적으로 힘을 써서 어떤 행동을 하거나 노력을 기울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부 성경 번역자들은 이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폭력적인 행동을 하거나 폭행을 당하는 것)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 표현 앞에 나오는 하느님의 왕국이 좋은 소식으로 선포되고 있으며라는 말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이 단어를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추구하다; 열렬히 구하다”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단어는 하느님의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이 전파될 때 그 소식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하거나 노력을 기울인 것을 묘사하는 것 같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들은 왕국의 성원이 될 전망을 갖게 되었다.

글자의 한 획: 예수 시대에 사용되던 히브리어에서 일부 글자는 작은 획 하나 차이로 다른 글자가 되기도 했다. 예수께서는 과장법을 사용하셔서 하느님의 말씀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다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하신 것이다.—마 5:18 연구 노트 참조.

획 하나: 일부 히브리어 글자는 작은 획 하나 차이로 다른 글자가 되기도 했다. 예수께서는 과장법을 사용하셔서 하느님의 말씀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다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하신 것이다.

간음해서는: 배우자에 대해 성적 불충실을 저지르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어 동사 모이큐오를 번역한 것이다. 이 표현은 출 20:14과 신 5:18에서 인용한 것인데, 그 구절들에는 히브리어 동사 나아프가 사용되었다. 성경에서 간음은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자발적으로 “성적 부도덕”을 저지르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어 포르네이아에 해당하는 표현인 “성적 부도덕”에 관해 설명하는 마 5:32 연구 노트와 비교) 모세 율법 아래서는 다른 사람의 아내나 약혼자와 자발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것이 간음으로 여겨졌다.

간음하는: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모이큐오는 배우자에 대해 성적 불충실을 저지르는 것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간음은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자발적으로 “성적 부도덕”을 저지르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어 포르네이아에 해당하는 표현인 “성적 부도덕”에 관해 설명하는 마 5:32 연구 노트와 비교) 모세 율법 아래서는 다른 사람의 아내나 약혼자와 성관계를 갖는 것이 간음으로 여겨졌다.—마 5:27; 막 10:11 연구 노트 참조.

이혼당한 여자: 성적 부도덕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이혼당한 여자를 가리킨다.—마 5:32 연구 노트 참조.

성적 부도덕: 그리스어 포르네이아는 성경에서 불법으로 규정하는 모든 성관계를 두루 일컫는 용어이다. 여기에는 간음, 매춘, 미혼끼리의 성관계, 동성애, 수간이 포함된다.—용어 설명 참조.

아내를 거슬러 간음하는: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랍비들의 가르침을 배척하신 것이다. 그 가르침은 “무엇이든 근거만 있으면” 아내와 이혼하는 것을 허용했다. (마 19:3, 9) 아내를 거슬러 간음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다. 랍비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남편이 간음을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아내를 거스르는 행동이 아니었다. 불충실은 오직 여자만 범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남편에게도 아내와 동일한 도덕적 의무를 지우심으로 여성의 존엄성과 지위를 높여 주셨다.

성적 부도덕: 그리스어 포르네이아는 성경에서 불법으로 규정하는 모든 성관계를 두루 일컫는 용어이다. 여기에는 간음, 매춘, 미혼끼리의 성관계, 동성애, 수간이 포함된다.—용어 설명 참조.

나사로: 아마도 히브리어 이름 엘르아살(“하느님이 도우셨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형태일 것이다.

거지: 또는 “가난한 사람”. “거지”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매우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을 가리킬 수 있다. 예수의 비유에서 이 단어는 같은 비유에 나오는 부자라는 표현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마 5:3에도 이 단어가 나오는데, “영적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로 번역된 표현에서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표현은 문자적으로 “영에 대해 가난한(빈곤한; 궁핍한; 구걸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영적으로 가난하고 하느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의식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전달한다.—마 5:3 연구 노트 참조.

영적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가난한(빈곤한; 궁핍한; 구걸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 문맥에서는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고 그 점을 깊이 인식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눅 16:20, 22에서 나사로를 “거지”라고 묘사할 때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었다. 일부 번역판에서는 이 그리스어 어구를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번역하는데, 영적으로 가난하고 하느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의식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눅 6:20 연구 노트 참조.

개들: 모세 율법에 의하면 개는 부정한 동물이었다. (레 11:27) 나사로의 상처를 핥은 개들은 거리를 헤매며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개들이었을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개”라는 표현은 종종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신 23:18, 각주; 삼상 17:43; 24:14; 삼하 9:8; 왕하 8:13; 잠 26:11) 마 7:6에서는 “개”라는 표현이 영적 보물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개가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동물이었고 성경에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므로, 이 비유에서 “개들”이라는 표현이 언급된 것은 거지 나사로의 매우 비천한 처지를 잘 나타내 준다.—마 7:6; 15:26 연구 노트 참조.

자녀 ··· 강아지: 모세 율법에 의하면 개는 부정한 동물이었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개라는 단어를 종종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레 11:27; 마 7:6; 빌 3:2; 계 22:15) 하지만 마태의 기록과 마가의 기록(7:27)에 나오는 이 대화에서 예수께서는 개를 의미하는 단어에 작다는 뜻이 더해진 형태인 지소형을 사용하셨다. 이것은 “강아지”나 “집에서 기르는 개”를 의미하는 좀 더 부드러운 표현이었다. 어쩌면 그분은 비유대인 가정에서 애완동물을 부를 때 쓰는 애정이 담긴 표현을 사용하신 것일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을 “자녀”에, 비유대인을 “강아지”에 비함으로 누가 우선순위에 와야 하는지를 알려 주시려고 한 것 같다.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강아지를 기르고 있다면, 당연히 자녀에게 먼저 먹을 것을 줄 것이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 진주를 돼지들 앞에: 모세 율법에 따르면 돼지와 개는 부정한 동물이었다. (레 11:7, 27) 들짐승이 죽인 동물의 고기는 개에게 줄 수 있었다. (출 22:31) 하지만 유대인의 전통은 “거룩한 고기” 즉 희생 제물로 바친 동물의 고기를 개에게 주는 것을 금지했다. 마 7:6에서 “개”와 “돼지”라는 표현은 영적 보물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돼지처럼, 영적 보물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그러한 보물을 전해 주는 사람에게 해를 가하려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 곁으로: 직역하면 “아브라함의 품으로”. 누군가의 품에 있다는 것은 특별한 호의를 누리고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요 1:18 연구 노트 참조) 이 비유적인 표현은 식사할 때 침상에서 매우 친밀한 친구의 품, 즉 가슴에 등을 댈 수 있는 자세로 기대앉는 관습에서 유래했다.—요 13:23-25.

아버지의 곁에: 직역하면 “아버지의 품에”. 누군가의 품에 있다는 것은 특별한 호의를 누리고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비유적인 표현은 당시의 식사 관습에서 유래한 것 같다. 사람들은 식사할 때 침상에서 친밀한 친구의 품, 즉 가슴에 등을 댈 수 있는 자세로 기대앉았다. (요 13:23-25) 따라서 이 구절에서는 예수를 여호와의 가장 친밀한 친구, 즉 여호와에 대해 누구보다도 온전하고 자세하게 설명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마 11:27.

무덤: 또는 “하데스”. 인류의 공통 무덤을 가리킨다.—용어 설명 참조.

그의 곁에: 직역하면 “그의 품에”.—눅 16:22 연구 노트 참조.

아브라함 곁으로: 직역하면 “아브라함의 품으로”. 누군가의 품에 있다는 것은 특별한 호의를 누리고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요 1:18 연구 노트 참조) 이 비유적인 표현은 식사할 때 침상에서 매우 친밀한 친구의 품, 즉 가슴에 등을 댈 수 있는 자세로 기대앉는 관습에서 유래했다.—요 13:23-25.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여기서 “모세와 예언자들”은 모세와 예언자들의 글을 가리킨다. 모세와 예언자들의 글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낭독되었으며, (행 15:21) 따라서 그 말씀을 들은 그들은 예수를 하느님의 메시아이자 왕으로 받아들였어야 했다.

미디어

빚을 인정하는 계약서
빚을 인정하는 계약서

예수께서는 불의한 관리인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사업 거래 내용을 계약서에 기록하는 관행에 대해 언급하셨다. (눅 16:6, 7) 사진에 나오는 파피루스 문서는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기원 55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는 유대 사막에 있는 마른 강바닥인 와디무라바트에 위치해 있는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이 문서에는 하닌의 아들 압살롬과 여호하난의 아들 스가랴 사이의 채무 관계와 두 사람이 합의한 상환 조건이 쓰여 있다. 사람들은 예수의 비유를 들었을 때 이런 종류의 문서를 떠올렸을 수 있다.

자주색 염료
자주색 염료

자주색 염료는 뿔소라와 같은 연체동물에서 얻었다. 사진에 나오는 뿔소라는 무렉스 트룬쿨루스(Murex trunculus)(왼쪽)와 무렉스 브란다리스(Murex brandaris)(오른쪽)이다. 이 뿔소라류의 껍데기는 길이가 5센티미터에서 8센티미터이다. 속살의 목 부분에는 작은 분비선이 있는데 그 분비선은 ‘꽃’이라고 하는 액체를 단 한 방울만 함유하고 있다. 이 액체는 처음에는 겉모양과 농도가 크림과 비슷하지만, 공기와 빛에 노출되면 점차 짙은 자주색이나 붉은보라색으로 변한다. 이 뿔소라류는 지중해 연안에서 발견되며, 채취하는 지역에 따라 얻어 낼 수 있는 색조도 다양하다. 큰 뿔소라는 하나하나 껍데기를 쪼개어 필요한 액체를 주의 깊이 추출한 반면, 작은 뿔소라는 절구에 넣고 찧었다. 한 개의 뿔소라에서 적은 양의 액체밖에 채취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양을 모으려면 큰 비용이 들었다. 따라서 이 염료는 값이 비쌌으며, 자주색으로 염색한 옷은 부유하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표가 되었다.—더 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