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3:1-52
연구 노트
지역 통치자 헤롯: 마 14:1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를 섬기며: 이 구절에 사용된 그리스어 레이투르게오는 「칠십인역」에서 히브리어 원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 구절들을 번역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칠십인역」 대하 13:10에서는 “여호와를 섬기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을 번역할 때 행 13:2에 사용된 그리스어 표현과 동일한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대하 35:3에서 ‘여호와를 섬기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을 번역할 때에도 동일한 그리스어 표현을 사용했다.—삼상 2:11; 3:1; 겔 45:4; 욜 2:17. 부록 다3 소개; 행 13:2 참조.
섬기며: 또는 “공적 봉사를 행하며”.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는 레이투르게오인데,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단어들로는 레이투르기아(공적 봉사)와 레이투르고스(공적 봉사자; 공복)가 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 단어들을 국가나 행정 당국을 위해 수행되며 일반 대중에게 유익을 주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일이나 봉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롬 13:6(각주)에서는 세속 권위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봉사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공복”(레이투르고스의 복수형)이라고 불린다. 눅 1:23(연구 노트 참조)에서는 레이투르기아가 침례자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가 수행한 봉사와 관련하여 사용되어 “거룩한 봉사”(또는 “공적 봉사”)로 번역되었다. 그 구절에서 레이투르기아가 사용된 방식은 「칠십인역」에서 레이투르기아 및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단어들이 사용된 방식과 비슷하다. 「칠십인역」에서는 그 단어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장막이나 (출 28:35; 민 1:50; 3:31; 8:22) 성전에서 (대하 31:2; 35:3; 욜 1:9, 13; 2:17) 수행한 봉사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한 봉사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봉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문맥에서는 그 봉사에 거룩함이라는 개념도 들어 있었는데, 레위 제사장들이 하느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대하 15:3; 말 2:7) 백성의 죄를 덮는 희생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다. (레 1:3-5; 신 18:1-5) 이 구절(행 13:2)에서 레이투르게오는 시리아 안티오크의 회중에서 그리스도인 예언자들과 가르치는 사람들이 수행한 봉사를 가리키는 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하느님께 정성을 바치고 그분을 섬기기 위해 하는 다양한 일을 가리키는데, 그 가운데에는 기도하고 전파하고 가르치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의 여러 부면이 포함된다. 이 예언자들과 가르치는 사람들이 수행한 봉사에는 틀림없이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일이 포함되었을 것이다.—행 13:3.
셀레우키아: 시리아 안티오크를 위해 사용되던 지중해의 항구 요새 도시. 안티오크에서 남서쪽으로 2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두 도시는 도로만이 아니라 뱃길로도 오갈 수 있었다. 오론테스강이 안티오크를 지나 셀레우키아에서 남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지중해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 중 하나인 셀레우코스 1세(니카토르)가 이 도시를 건설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을 지었다. 바나바와 동행한 바울은 기원 47년경에 셀레우키아에서 배를 타고 1차 선교 여행을 시작했다. 셀레우키아는 오늘날 튀르키예의 수베이디예 즉 사만다그 바로 북쪽에 있었다. 오론테스강에서 밀려온 진흙과 모래 때문에 고대 셀레우키아 항구가 있던 곳은 습지가 되었다.—부록 나13 참조.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갔다: 키프로스는 약 20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1세기 당시 배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는 순풍이 불 경우 150킬로미터쯤 되었다. 상황이 좋지 않으면 훨씬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었다. 키프로스는 바나바의 고향이었다.—부록 나13 참조.
살라미스: 키프로스섬의 동쪽에 있는 도시. 로마의 관할 아래 있던 이 섬의 수도는 서쪽 해안에 있던 파포스였다. 하지만 바나바와 사울은 키프로스에서 전파 활동을 시작할 곳으로 살라미스를 선택했는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살라미스는 그들이 출발한 시리아 안티오크 근처 셀레우키아에서 더 가까웠으며 키프로스섬의 문화, 교육, 상업의 중심지였다. 살라미스에는 꽤 많은 유대인이 있었으며 적어도 2개의 회당이 있었다. 키프로스 태생이었던 바나바는 그 섬에서 봉사하는 동안 뛰어난 안내자 역할을 했을 것이다. 어떤 경로로 이동했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바나바와 사울 일행은 그 섬 전역에서 전파하면서 적어도 150킬로미터를 걸었을 것이다.—부록 나13 참조.
요한: 요한 마가를 가리킨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로, “바나바의 사촌”이자 (골 4:10) 마가복음의 필자이다. (마가복음 책명 연구 노트 참조) 행 13:13에서도 요한이라고 언급된다. 하지만 사도행전에서 그가 언급되는 다른 세 구절에서는 “마가라고 하는”이라는 표현이 함께 들어 있다. 마가는 그의 로마식 별명이다. (행 12:12, 25; 15:37) 요한은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셨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를 의미하는 여호하난 또는 요하난이라는 히브리어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제자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서는 “마가”라고 불린다.—골 4:10; 딤후 4:11; 몬 24; 벧전 5:13.
마가: 라틴어 이름인 마르쿠스에서 나왔다. 마가는 행 12:12에 언급된 “요한”의 로마식 별명이다. 요한 마가의 어머니는 예루살렘에 살았던 초기 제자인 마리아이다. 요한 마가는 “바나바의 사촌”(골 4:10)이며 그와 함께 여행했다. 또한 바울이나 다른 초기 그리스도인 선교인들과도 함께 여행했다. (행 12:25; 13:5, 13; 딤후 4:11) 이 복음서에는 필자가 누구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만 기원 2세기와 3세기의 저술가들은 마가가 이 복음서의 필자라고 생각한다.
속주 총독: 또는 “프로콘술”. 프로콘술은 로마 원로원의 관할 아래 있는 속주의 총독을 가리킨다. 유대와 같은 로마의 일부 속주들은 황제가 총독을 임명하는 황제 관할 속주였다. 키프로스는 기원전 22년에 원로원 관할 속주가 되어 프로콘술이 다스리고 있었다. 키프로스에서 발견된 한 주화는 앞면에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두상과 칭호가 (라틴어로) 새겨져 있고 뒷면에 “키프로스 주민들의 속주 총독[프로콘술], 코미니우스 프로클루스의 통치 중에”라는 글이 (그리스어로) 새겨져 있다.—용어 설명 참조.
바울: 그리스어로는 파울로스. 이 이름은 “적은; 작은”을 의미하는 라틴어 파울루스를 그리스어로 옮긴 것이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원문에서 파울로스는 사도 바울을 가리키는 데 157회 사용되었으며, 키프로스의 속주 총독 세르기오 바울로를 가리키는 데 1회 사용되었다.—행 13:7.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 이 시점 이후로 사울은 바울이라고 불리게 된다. 히브리인이었던 이 사도는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행 22:27, 28; 빌 3:5) 따라서 어릴 때부터 그에게는 사울이라는 히브리식 이름과 바울이라는 로마식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그처럼 두 개의 이름을 가지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는데, 특히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의 경우에 그러했다. (행 12:12; 13:1) 바울의 친족들 중에도 히브리식 이름에 더해 로마식 이름이나 그리스식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롬 16:7, 21) 바울은 “이방 사람들에게 보내진 사도”로서 비유대인들에게 좋은 소식을 선포하라는 임명을 받았다. (롬 11:13) 그는 로마식 이름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 같은데, 아마도 이방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하기에 그 이름이 더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 있다. (행 9:15; 갈 2:7, 8) 일부 사람들은 그가 로마식 이름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 세르기오 바울로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울이 키프로스를 떠난 뒤에도 계속 그 이름을 사용한 것을 보면 그러한 주장은 타당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가 하면 바울이 히브리식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이 그 이름의 그리스식 발음이 으스대며 걷는 사람(또는 동물)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단어와 비슷하게 들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행 7:58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의 바른길: (10, 11절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이 유대인 주술사 바예수에게 한 말 가운데에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나온 표현들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이 구절에서 ‘길을 왜곡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은 「칠십인역」의 잠 10:9(“자기 길을 구부리는”)에 나온다. “여호와의 바른길”이라는 표현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들도 「칠십인역」의 호 14:9에 나온다. 호 14:9의 히브리어 원문에서 “여호와의 길은 올바르니”에 해당하는 표현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었다.—부록 다3 소개; 행 13:10 참조.
여호와의 손: 행 11:21 연구 노트 및 부록 다3 소개; 행 13:11 참조.
여호와의 가르침: “여호와의 가르침”이라는 표현은 행 13:5에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표현과 의미가 비슷하다. 그 구절에서는 바울과 그의 일행이 키프로스에 도착하여 “유대인의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널리 전하기 시작했다”고 알려 준다. 그 결과 속주 총독 세르기오 바울로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행 13:7) 바울의 말을 듣고 그가 한 일을 목격한 세르기오 바울로는 자신이 여호와 하느님에 대해 알게 된 점과 그분에게서 나온 가르침에 크게 놀랐다.—부록 다3 소개; 행 13:12 참조.
피시디아의 안티오크: 로마 속주 갈라디아에 있던 도시. 이 도시는 프리지아와 피시디아의 경계에 있었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프리지아에 속하기도 하고 피시디아에 속하기도 한 것 같다. 오늘날의 튀르키예 얄바츠 근처에 이 도시의 유적이 있다. 피시디아의 안티오크는 이 구절과 행 14:19, 21에 언급된다. 지중해 해안 근처의 도시 페르가에서 피시디아의 안티오크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피시디아의 안티오크는 해발 약 1100미터에 있었으며 (부록 나13 참조) 그곳까지 가려면 강도가 자주 출몰하는 험한 산길을 지나야 했기 때문이다. “피시디아의 안티오크”는 시리아의 안티오크와는 다른 도시이다. (행 6:5; 11:19; 13:1; 14:26; 15:22; 18:22) 사도행전에 나오는 안티오크는 대부분 피시디아 안티오크가 아니라 시리아 안티오크이다.
율법과 예언서의 공개 낭독: 기원 1세기에는 “안식일마다” 이러한 공개 낭독이 행해졌다. (행 15:21) 회당에서 드리는 숭배의 한 부분은 셰마 즉 유대교 신앙 고백문에 해당하는 것을 암송하는 일이었다. (신 6:4-9; 11:13-21) 그 고백문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이여, 잘 들으십시오[셰마].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한 분인 여호와이십니다.” 그 구절의 첫 히브리어 단어에서 셰마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신 6:4)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토라 즉 모세 오경을 낭독하는 일이었다. 많은 회당에서는 1년 동안 율법 전체를 읽었으며, 3년에 걸쳐 읽는 회당들도 있었다. 또한 예언서의 일부를 읽고 해설하는 일도 있었다. 공개 낭독이 끝나면 강연이 있었다. 피시디아 안티오크의 회당에서 공개 낭독이 있은 뒤에 바울은 모인 사람들에게 격려의 말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눅 4:16 연구 노트 참조.
약 450년 동안에: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맨 먼저 언급한 중요한 사건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을 선택하신” 일이었다. (행 13:17) 바울은 이삭이 약속된 자손으로 실제로 태어난 때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창 17:19; 21:1-3; 22:17, 18) 이삭이 태어났을 때 하느님께서 누구를 약속된 자손으로 인정하실 것인지에 관한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었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 문제가 사래(사라)의 불임 때문에 의문에 싸여 있었다. (창 11:30) 바울은 그때를 시작으로 하여 하느님께서 자신이 선택하신 민족을 위해 하신 몇 가지 일을 언급한 다음, 그 후에 그분이 예언자 사무엘 때까지 그들에게 재판관들을 주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여기 언급된 “약 450년”은 기원전 1918년에 이삭이 태어난 때부터 기원전 1467년까지의 기간을 가리키는 것 같다. 기원전 1467년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시작한 기원전 1513년으로부터 46년이 지난 때이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한 뒤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랑했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데 6년이 걸렸으므로 바울이 말한 “약 450년”의 기간이 그때 끝났다고 보는 것이 이치적이다.—민 9:1; 13:1, 2, 6; 신 2:7; 수 14:6, 7, 10.
자손: 또는 “후손”. 직역하면 “씨”.—부록 가2 참조.
기둥: 또는 “나무”.—행 5:30 연구 노트 참조.
무덤: 또는 “기념 무덤”.—용어 설명 “기념 무덤” 참조.
하느님을 섬기다가: 또는 “하느님의 뜻(목적)을 행하다가”.—행 20:27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을 숭배하는: 여기서 “하느님을 숭배하는”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세보마이는 “숭배하다; 숭상하다; 숭앙하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독실한”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행 13:50 연구 노트 참조) 시리아어 「페시타」에서는 이 부분을 “하느님을 두려워하는”으로 번역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한 번역판(부록 다4에 J18로 표기됨)은 이 구절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며, 그 표현을 번역하면 “여호와를 두려워하는”이 된다.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 바울이 과거에 예수와 제자들을 심하게 반대했던 것을 생각해 볼 때, (행 9:3-5) 그가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을 강조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용어 설명 “과분한 친절” 참조) 바울은 자신이 봉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 덕분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고전 15:10; 딤전 1:13, 14) 그는 에베소의 장로들을 만났을 때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을 두 번 언급했다. (행 20:24, 32) 또한 바울은 “과분한 친절”을 다른 어떤 성경 필자보다도 많이 언급했다. 14통의 편지에서 약 90회나 언급한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히브리서를 제외한 모든 편지의 서두 인사말에서 하느님이나 예수의 과분한 친절을 언급했으며, 각 편지의 맺음말에서도 그 표현을 사용했다.
여호와의 말씀: 행 8:25 연구 노트 및 부록 다3 소개; 행 13:44 참조.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사 49:6을 인용한 것이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사 49:6의 문맥을 보면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여호와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사 49:5. 사 42:6 비교) 이사야의 이 예언은 여호와의 종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의 활동을 통해 성취될 것이었다.—사 42:1. 눅 2:32 연구 노트 및 부록 다3 소개; 행 13:47 참조.
땅끝까지: 또는 “땅의 가장 먼 곳까지”. 이 예언은 사 49:6을 인용한 것이다. 그리스어 「칠십인역」은 사 49:6을 번역할 때 동일한 그리스어를 사용한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이 “이방 사람들의 빛”이 되고 하느님의 “구원이 땅끝까지 미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피시디아 안티오크에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서, 그 예언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방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야 한다는 여호와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이 구절에서 “땅끝까지”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이 행 1:8에서도 사용되었는데 (연구 노트 참조) 그 구절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이 땅의 가장 먼 곳까지 이르러 그분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알려 준다.
여호와의 말씀: 행 8:25 연구 노트 및 부록 다3 소개; 행 13:48 참조.
합당한 성향을 가진: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소식을 듣고 신자가 된 피시디아 안티오크의 이방 사람들을 묘사한 표현이다. 여기서 “합당한 성향을 가진”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동사 탓소의 한 형태)는 “정하다; 두다; 정렬하다; 지정하다”라는 의미를 포함하여 폭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확한 의미를 알려면 문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행 13:46에서는 피시디아 안티오크의 일부 유대인들을 이 구절(행 13:48)에 언급된 이방인들과 대조한다. 그 전 안식일에 바울은 감동적인 연설을 하여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철저히 증거했다. (행 13:16-41) 바울과 바나바의 말에 따르면, 그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고집 세게 배척했으며, 자신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판단”했다는 점을 말과 행동으로 나타냈다. (행 13:46) 하지만 그 도시에 있는 이방 사람들은 전혀 다른 태도를 나타냈다. 이 구절에서는 그들이 기뻐하며 여호와의 말씀에 영광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알려 준다. 따라서 이 문맥에서 그리스어 동사 탓소는 안티오크의 비유대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는 태도나 경향이나 성향을 나타냄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자신들을 두었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절에서 그 단어는 “합당한 성향을 가진”으로 번역되었다. 하지만 많은 성경 번역판에서는 “정해진; 선택된”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한 번역 표현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생명을 얻을 사람들로 미리 정해 두셨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절의 문맥과 성경의 나머지 부분을 살펴보면 안티오크의 그 이방인들이 생명을 얻도록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곳의 유대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바울은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도록 유대인들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그 소식을 배척하기로 스스로 선택했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하도록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왕국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행동으로 나타낼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 (눅 9:62) 그런가 하면 좋은 소식에 “합당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는데, 안티오크의 이방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다.—마 10:11, 13.
여호와의 말씀: 행 8:25 연구 노트 및 부록 다3 소개; 행 13:49 참조.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또는 “하느님을 숭배하는”. 그리스어 세보마이는 “숭상하다; 숭앙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시리아어 「페시타」에서도 이 부분을 “하느님을 두려워하는”으로 번역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일부 번역판(부록 다4에 J7, 8, 10, 18로 표기됨)은 이 구절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며, 그 표현을 번역하면 “여호와를 두려워하는”이 된다.
두 사람은 그들을 향해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마 10:14; 막 6:11; 눅 9:5에 기록된 예수의 지침대로 행동한 것이다. 당시 독실한 유대인들은 이방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올 때면 유대인의 영토로 들어가기 전에 신발에 묻은 먼지를 부정하다고 여겨 털어 내곤 했다. 하지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지침은 분명 그와는 다른 의미였던 것 같다. 먼지를 털어 버리는 행동은 하느님께서 가져오실 결과에 대해 제자들에게 책임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그와 비슷한 동작인 옷을 터는 행동을 하면서 그 의미를 이렇게 밝혔다. “여러분의 피가 여러분의 머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나는 깨끗합니다.”—행 18:6 연구 노트 참조.
미디어
시리아 안티오크는 로마 속주 시리아의 수도였다. 1세기에 시리아 안티오크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였다. 안티오크는 오론테스강(1)의 동쪽에 세워진 도시였으며 원래는 그 강에 있는 섬(2)도 도시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강 하류에는 셀레우키아 항구가 있었다. 안티오크에는 경마와 전차 경주를 위한 경기장(3)이 있었는데, 이것은 당시에 규모가 가장 큰 경기장 중 하나였다. 안티오크는 주랑이 있는 웅장한 거리(4)로 유명했는데, 헤롯 대왕이 그 거리를 대리석으로 포장했다. 나중에 티베리우스 황제가 지붕이 있는 주랑을 세웠으며 거리를 모자이크와 조각상으로 장식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던 이 도시에는 규모가 큰 유대인 공동체(5)가 있었다. 이 공동체에 속해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안티오크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행 11:26)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이방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기원 49년경에 할례 문제가 제기되자 형제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포함하는 대표단을 예루살렘에 있는 중앙장로회에 보내 지침을 구하게 했다. (행 15:1, 2, 30) 사도 바울은 안티오크를 근거지로 하여 세 차례에 걸쳐 선교 여행을 했다. (행 13:1-3; 15:35, 40, 41; 18:22, 23) 이 지도에는 여러 세기에 걸쳐 존재했던 도시 성벽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사진에 나오는 것은 오늘날 튀르키예의 안타키아라는 도시의 모습이다. 이곳은 로마 속주 시리아의 수도인 고대 도시 안티오크가 있었던 곳이다. 기원 1세기에 시리아 안티오크는 로마 제국에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였다. 일부 학자들은 당시 그곳의 인구가 25만 명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예루살렘에서 스데반이 폭도들에게 살해되고 예수의 제자들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자, 그들 중 일부가 안티오크로 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그리스어를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행 11:19-21) 후에 사도 바울은 안티오크를 근거지로 하여 여러 차례 선교 여행을 했다. 또한 “안티오크에서 처음으로 제자들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행 11:26) 시리아 안티오크는 행 13:14; 14:19, 21; 딤후 3:11에 나오는 피시디아(튀르키예 중부)의 안티오크와는 다른 도시이다.
사건은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1. 바나바와 사울이 시리아 안티오크에서 선교인으로 파견되다.—세 차례에 걸친 바울의 선교 여행을 보여 주는 지도를 보려면 부록 나13 참조 (행 13:1-3)
2. 바나바와 사울이 셀레우키아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의 살라미스로 가다. 그곳의 회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널리 전하다 (행 13:4-6)
3. 파포스에서 사울이 기록상 처음으로 바울로 언급되다 (행 13:6, 9)
4. 키프로스 속주 총독인 세르기오 바울로가 신자가 되다 (행 13:7, 12)
5. 바울과 그의 일행이 팜필리아의 페르가에 도착하다. 요한 마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다 (행 13:13)
6. 바울과 바나바가 피시디아 안티오크의 회당에서 전파하다 (행 13:14-16)
7. 안티오크에서 많은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의 말을 들으려고 함께 모이다.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다 (행 13:44, 45, 50)
8. 바울과 바나바가 이코니온의 회당에서 전파하다. 많은 유대인과 그리스인이 신자가 되다 (행 14:1)
9. 이코니온의 일부 유대인들이 형제들을 반대하여 도시 사람들이 편이 나뉘다.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치려고 하다 (행 14:2-5)
10. 바울과 바나바가 리카오니아의 도시인 리스트라로 가다. 사람들이 그들을 신으로 잘못 생각하다 (행 14:6-11)
11. 안티오크와 이코니온의 유대인들이 리스트라로 와서 바울을 맹렬하게 반대하다. 바울이 돌에 맞았지만 살아남다 (행 14:19, 20ㄱ)
12. 바울과 바나바가 데르베에서 좋은 소식을 전하다. 많은 사람이 제자가 되다 (행 14:20ㄴ, 21ㄱ)
13. 바울과 바나바가 리스트라와 이코니온과 안티오크의 새로 생긴 회중들로 돌아가 제자들을 강하게 하다. 각 회중에 장로들을 임명하다 (행 14:21ㄴ-23)
14. 바울과 바나바가 페르가로 다시 가서 말씀을 전하다. 아탈리아로 내려가다 (행 14:24, 25)
15. 아탈리아에서 배를 타고 시리아 안티오크로 가다 (행 14:26, 27)
키프로스에서 발견된 이 주화는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통치 기간에 주조된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기원 47년경에 키프로스를 방문했을 당시 로마 황제는 클라우디우스였다. 이 주화의 한쪽 면에는 클라우디우스의 두상과 칭호가 새겨져 있고 다른 쪽 면에는 그 섬의 총독을 가리키는 “프로콘술”이라는 그리스어가 나온다. 이 주화에 새겨진 글을 보면 누가가 세르기오 바울로를 키프로스의 “프로콘술”이라고 언급한 기록이 정확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행 13:4. 또한 행 13:7 연구 노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