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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여호와’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여호와’

1, 2. 예언자 이사야는 어떤 환상을 받았으며, 그 환상은 여호와에 관해 어떤 점을 알려 줍니까?

 이사야는 자기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외경심에 휩싸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는 환상은 마치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후에 이사야는 자기가 높이 들린 왕좌에 앉아 계시는 “여호와를 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길게 드리워진 여호와의 옷자락이 예루살렘에 있는 거대한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이사야 6:1, 2.

2 또한 이사야는 자기가 들은 노랫소리 때문에 외경심에 휩싸였습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성전이 기초까지 흔들렸습니다. 지위가 매우 높은 영적 피조물인 스랍들이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화음을 맞추어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의미가 담긴 다음과 같은 노래를 웅장하게 불렀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여호와.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 (이사야 6:3, 4) 노래에서 “거룩하시다”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한 것은 그 말을 특별히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가장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의 거룩함을 강조한 것은 적절했습니다. (요한 계시록 4:8) 여호와의 거룩함이 성경 전체에 걸쳐 강조되어 있습니다. 수백 개나 되는 구절이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시다” 혹은 “거룩함”이라는 단어와 연관 짓습니다.

3. 많은 사람들은 왜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보다는 그분과 멀어지고 있습니까?

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고 싶어 하시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그분이 거룩하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거룩함이라는 개념 자체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룩함이라고 하면 독선적이거나 경건한 척하는 태도를 떠올립니다. 또한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거룩함에 호감보다는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 같은 사람은 결코 거룩하신 하느님의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은 하느님의 거룩함 때문에 오히려 그분과 멀어집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에 대해 잘 알면 더욱더 그분의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거룩함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거룩함이란 무엇인가?

4, 5. (ㄱ) “거룩함”은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어떤 두 가지 중요한 면으로 “분리되어” 계십니까?

4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다는 것은 그분이 잘난 체하거나 거만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실, 그분은 그러한 특성들을 미워하십니다. (잠언 16:5; 야고보서 4:6) 그러면 “거룩하다”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성경 히브리어에서 그 단어는 “분리하다”를 의미하는 말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숭배에서 “거룩하다”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과 분리된 것 혹은 신성하게 여겨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거룩함은 깨끗하고 정결하다는 사상을 강하게 전달합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거룩하시다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분이 불완전한 인간들로부터 “분리되어” 아주 멀리 떨어져 계신다는 의미입니까?

5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신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가 많기는 하지만 자신이 그들 “가운데” 거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12:6; 호세아 11:9) 따라서 그분이 거룩하시다고 해서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그분은 어떤 의미로 “분리되어” 계십니까? 두 가지 중요한 면으로 그러하십니다. 첫째, 그분만이 홀로 가장 높으신 분이라는 면에서 그분은 모든 창조물과 분리되어 계십니다. 그분의 정결함과 깨끗함은 절대적이고 무한합니다. (시편 40:5; 83:18) 둘째, 여호와께서는 모든 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계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6. 여호와께서 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계신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거룩함을 거의 볼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인간 사회에 속한 모든 것은 어떤 면으로인가 오염되어 있으며, 죄와 불완전성으로 더럽혀져 있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는 내면의 죄와 싸워야 하며, 방심할 경우 쉽게 죄를 지을 위험이 있습니다. (로마서 7:15-25; 고린도 전서 10:12) 하지만 여호와께는 그러한 가능성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죄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계시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죄로 인해 더럽혀지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그분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이며, 우리는 그분이 가장 훌륭한 아버지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 아버지들과는 달리, 여호와께서는 결코 부정직하거나 타락하거나 힘을 남용하는 일이 없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결코 그런 일을 하실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거룩함보다 더 신뢰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분은 때때로 자신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기도 하셨습니다. (아모스 4:2) 이런 점을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까?

7. 거룩함이 여호와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 거룩함은 여호와의 매우 본질적인 특성입니다. 이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를 들어, “인간”이라는 말과 “불완전하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불완전하다”라는 말을 빼고는 “인간”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불완전성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불완전성이 묻어납니다. 이제 그와는 전혀 다른 두 단어 즉 “여호와”와 “거룩하시다”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는 거룩함으로 충만해 계십니다. 그분과 관련된 모든 것은 깨끗하고 정결하고 올바릅니다. “거룩하시다”라는 말에 들어 있는 깊은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거룩함은 여호와께 속해 있다”

8, 9. 불완전한 인간이 상대적인 의미에서 거룩해지도록 여호와께서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8 여호와는 전적으로 거룩하신 분이므로, 그분이 모든 거룩함의 근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분은 이 귀중한 특성을 이기적으로 혼자만 독점하지 않고 다른 창조물에게도 아주 관대하게 나누어 주십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께서 불이 붙은 가시덤불에서 천사를 통해 모세와 말씀하셨을 때, 그분이 비유적으로 그곳에 와 계셨기 때문에 모세가 서 있던 땅까지도 거룩해졌습니다!—출애굽기 3:5.

9 불완전한 인간이 여호와의 도움을 받으면 거룩해질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상대적인 의미로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거룩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9:6) 그분은 거룩하고 깨끗하고 정결한 숭배 제도를 마련해 주심으로 그 나라를 축복하셨습니다. 거룩함은 모세의 율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대제사장은 터번 앞쪽에 금패를 달았는데, 그 금패가 빛을 받아 번쩍이는 모습을 모두가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패에는 “거룩함은 여호와께 속해 있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8:36)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일상생활에서 깨끗함과 정결함에 관한 높은 표준을 지켜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 (레위기 19:2)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완전했지만 최선을 다해서 하느님의 교훈에 따라 사는 한 상대적인 의미로 거룩할 수 있었습니다.

10. 거룩함과 관련해서 고대 이스라엘과 주변 나라들에는 어떤 큰 차이가 있었습니까?

10 이처럼 거룩함을 강조한 것은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의 숭배와는 크게 달랐습니다. 그 이교 나라들이 숭배하던 신들은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는 신이었을 뿐 아니라 난폭하고 탐욕스럽고 난잡했습니다. 그 신들은 어느 모로 보나 거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신들을 숭배하는 사람들도 거룩하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이교 숭배자들과 그들의 더러운 종교 관습들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라고 경고하셨습니다.—레위기 18:24-28; 열왕기상 11:1, 2.

11. 여호와의 조직의 하늘 부분의 거룩함을 (ㄱ) 천사들 (ㄴ) 스랍들 (ㄷ) 예수를 통해 어떻게 분명히 알 수 있습니까?

11 여호와께 택함받은 나라인 고대 이스라엘은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때에도, 하느님의 조직의 하늘 부분의 거룩함을 결코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수많은 천사들을 가리켜 “수만의 거룩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신명기 33:2; 유다서 14) 그들은 하느님의 거룩함의 정결하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반영합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환상에서 본 스랍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이 부른 노래의 가사는 이 위력 있는 영적 피조물들이 여호와의 거룩함을 우주 전역에 알리는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영적 피조물이 있는데, 그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이십니다. 예수는 여호와의 거룩함을 가장 탁월하게 본받으시는 분입니다. 적절하게도, 성경은 그분을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라고 부릅니다.—요한복음 6:68, 69.

거룩한 이름, 거룩한 영

12, 13. (ㄱ)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하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하느님의 이름에 치욕이 돌아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하느님의 이름은 어떠합니까? 이 책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분의 이름은 단지 칭호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 하느님이 어떤 분이고 어떤 특성들을 가지고 계신지 알려 줍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하다고 말합니다. (이사야 57:15) 모세 율법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행위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였습니다. (레위기 24:16) 또한 예수께서는 기도할 때 언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해지게 하십시오.” (마태복음 6:9) 어떤 것을 거룩하게 한다는 말은 그것을 신성한 것으로 구별하여 숭상하거나 그것을 거룩한 것으로 받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이름은 이미 본질적으로 정결한데, 그 이름이 거룩해질 필요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은 거짓말과 중상으로 공격을 받아 명예가 훼손되고 더럽혀져 왔습니다. 에덴에서 사탄은 여호와에 대해 거짓말을 했고 그분이 불공정한 주권자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창세기 3:1-5) 그때 이래로, 이 타락한 세상의 통치자인 사탄은 하느님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렸습니다. (요한복음 8:44; 12:31; 요한 계시록 12:9) 종교들은 하느님이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무정하고 잔인한 분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질 때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이 자기 편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창조 활동에 돌아가야 할 영예가 우연이나 진화에 돌아갔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악의적인 공격을 받아 왔습니다. 그 이름은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 이름에 합당하게 돌아가야 할 영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에 돌아간 모든 치욕을 깨끗이 없애실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이 다스리는 왕국을 통해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처럼 중대한 하느님의 목적에 기여하게 된 것을 기뻐합니다.

14. 하느님의 영을 거룩하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 매우 심각한 죄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여호와에게서 나오는 것으로서 거의 언제나 거룩하다고 불리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영 즉 활동력입니다. (창세기 1:2)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이 힘을 사용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든 거룩하고 정결하고 깨끗한 방법으로 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활동력을 성령 혹은 거룩함의 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합니다. (누가복음 11:13; 로마서 1:4) 성령을 모독하는 것 즉 고의적으로 여호와의 목적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하는 죄입니다.—마가복음 3:29.

여호와의 거룩함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

15. 우리는 여호와의 거룩함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합니까?

15 그러므로 성경에서 사람이 하느님의 거룩함에 대해 외경심과 경건한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시편 99:3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이름이 외경스럽고 거룩하니, 그들이 당신의 크신 이름을 찬양하게 하십시오.” 이러한 외경심은 깊이 숭상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은 우리보다 훨씬 월등하기 때문에, 그러한 느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은 눈부실 정도로 깨끗하고 영광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거룩함 때문에 하느님에게서 멀어져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거룩함을 올바로 이해하게 되면 그분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6. (ㄱ) 거룩함은 아름다움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ㄴ) 성경은 거룩하신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16 한 가지 이유는 성경이 거룩한 것을 아름답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3:15은 하늘이 하느님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또는 “아름다운”, 각주] 높은 거처’라고 알려 줍니다. 우리는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끌립니다. 예를 들어, 33면의 사진을 보십시오. 이러한 풍경에 마음이 끌리지 않습니까? 이 풍경에 호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이 정말 깨끗해 보입니다. 하늘이 파랗고 햇살이 반짝이는 것으로 보아 공기도 맑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풍경에 변화가 생겨서 흐르는 시냇물이 쓰레기로 막히고, 나무나 바위에 보기 흉한 낙서가 있고, 공기가 스모그로 뿌옇게 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 풍경에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눈살을 찌푸릴 것입니다. 아름다움이라고 하면 우리는 자연히 깨끗하고 정결하고 밝고 환한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동일한 단어들을 여호와의 거룩함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환상 가운데 묘사된 여호와의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분은 환하게 빛을 비추시고, 보석처럼 반짝이시고, 최고의 순도와 광택을 가진 귀금속이나 타오르는 불처럼 찬란한 빛을 발하시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거룩하신 하느님이 지니고 계신 영광 즉 아름다움입니다.—에스겔 1:25-28; 요한 계시록 4:2, 3.

우리는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리듯이 거룩함에도 마음이 끌린다

17, 18. (ㄱ) 이사야는 환상을 보고 처음에 어떻게 느꼈습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스랍을 사용해 이사야를 위로해 주셨으며, 스랍의 행동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습니까?

17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함 때문에 우리가 그분에 비해 미천하다고 느껴야 합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보다 열등한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우리를 대단히 높이 평가해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에게 거리감을 느껴야 합니까? 스랍들이 여호와의 거룩함을 찬양하는 것을 듣고 이사야가 어떤 반응을 나타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에 내가 말했다. ‘나에게 화가 있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고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는데, 왕이신 만군의 여호와를 내 눈으로 뵙다니!’” (이사야 6:5) 그렇습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얼마나 거룩한 분인지 보고서 자신이 정말 죄 많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그는 크게 낙심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충실한 이사야가 계속 낙심한 채로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18 스랍 하나가 신속히 그 예언자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그 위력 있는 천사는 제단으로 날아가 숯을 하나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술에 갖다 댔습니다. 그러한 행동은 이사야의 마음을 가라앉히기는커녕 오히려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상징적 의미가 가득 담긴 환상임을 기억하십시오. 충실한 유대인인 이사야는 성전의 제단에서 속죄를 위해 매일 희생 제물이 바쳐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랍은 예언자 이사야를 돕기 위해 그가 “입술이 부정”하고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하느님 앞에서 깨끗한 신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 것입니다. a 여호와께서는 불완전하고 죄 많은 사람을 적어도 상대적인 의미로 거룩하게 여겨 주셨습니다.—이사야 6:6, 7.

19. 우리가 불완전한데도 어떻게 상대적인 의미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까?

19 오늘날에도 상황은 동일합니다. 예루살렘의 제단에 바쳐진 그 모든 희생은 더 큰 것 즉 기원 33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단 한 번의 완전한 희생의 그림자였습니다. (히브리서 9:11-14) 우리가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릇된 행로를 바로잡고 예수의 희생에 대한 믿음을 나타낸다면,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요한 1서 2:2) 그러면 하느님 앞에서 깨끗한 신분을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상기시켜 줍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1:16)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분만큼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그분은 결코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시편 103:13, 14) 그런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거룩하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받는 자녀로서”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분을 본받으려고 노력합니다. (에베소서 5:1) 따라서 우리는 거룩해지기 위해 계속 노력하며, 영적으로 발전하면서 매일매일 “거룩함을 완성”해 나갑니다.—고린도 후서 7:1.

20. (ㄱ) 우리가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깨끗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이사야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20 여호와께서는 올바른 것과 정결한 것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하박국 1:13) 하지만 우리를 미워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 그분과 같은 견해를 가져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완전한 발걸음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한,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아모스 5:15; 베드로 전서 2:21)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우리가 깨끗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우리는 매우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처음에 이사야는 여호와의 거룩함을 보고 자신의 부정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에게 화가 있다!” 하지만 그가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이해하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원해서 임명을 수행할 사람이 있는지 물으셨을 때 이사야는 신속히 대답했습니다. 어떤 임명이 주어질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십시오!”—이사야 6:5-8.

21. 우리가 거룩함을 길러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1 우리는 거룩하신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그분의 특성을 본받고 그분과 가까워질 수 있는 역량이 있습니다. (창세기 1:26) 우리 모두에게는 거룩해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함을 계속 길러 나갈 때 여호와께서는 기꺼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거룩하신 하느님과 훨씬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또한 이어지는 장들에서 여호와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면, 그분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a “입술이 부정한”이라는 표현은 매우 적절하다. 종종 성경에서 “입술”은 비유적으로 말이나 언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사람이 짓는 죄는 많은 경우 말과 관련이 있다.—잠언 10:19; 야고보서 3: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