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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가 올 때가 밝혀지다

메시아가 올 때가 밝혀지다

제11장

메시아가 올 때가 밝혀지다

1. 여호와는 위대한 시간 엄수자이시므로, 우리는 무엇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여호와는 위대한 시간 엄수자이십니다. 그분의 활동과 관련 있는 때와 시기는 모두 그분의 관할 아래 있습니다. (사도 1:7) 그분이 이 때와 시기에 맞추어 정해 놓으신 모든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야 말 것입니다. 실패하는 법이 없을 것입니다.

2, 3. 다니엘은 어떤 예언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그때는 어느 제국이 바빌론을 통치하고 있었습니까?

2 부지런한 성경 연구생인 예언자 다니엘은, 일어날 일들을 미리 정하시고 제때에 일어나게 하시는 여호와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다니엘이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예루살렘의 황폐와 관련된 예언들이었습니다. 그 거룩한 도시가 얼마 동안 황폐되어 있을 것인지에 관한 하느님의 계시를 예레미야가 기록하였는데, 다니엘은 이 예언을 주의 깊이 고려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썼습니다. “메디아 사람의 씨인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우스칼데아 사람들의 왕국을 다스리는 왕이 된 첫해, 곧 그의 통치 제일 년에, 나 다니엘은 책들을 통해서 예루살렘의 황폐가 만료되는 햇수를 분별하였다. 그것과 관련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바 있었으니, 곧 칠십 년이었다.”—다니엘 9:1, 2; 예레미야 25:11.

3 그때는 메디아 사람 다리우스가 “칼데아 사람들의 왕국”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벽에 쓰인 손글씨를 해석하면서 다니엘이 한 예언은 이미 신속히 성취되었습니다. 바빌로니아 제국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제국은 기원전 539년에 “메디아 사람들과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주어졌”습니다.—다니엘 5:24-28, 30, 31.

다니엘이 여호와께 겸손하게 청원하다

4. (ㄱ) 하느님의 구출을 경험하려면, 무엇이 필요하였습니까? (ㄴ) 다니엘은 어떻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갔습니까?

4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70년간의 황폐 기간이 끝나 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그 자신이 직접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나는 얼굴을 참 하느님 여호와께로 향하여, 기도와 간청으로, 단식과 자루천과 재로 그분을 찾았다. 나는 나의 하느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고백하[였다].” (다니엘 9:3, 4) 하느님의 자비로운 구출을 경험하려면, 올바른 마음 상태가 필요하였습니다. (레위 26:31-46; 열왕기 첫째 8:46-53) 믿음, 겸손한 영, 유배와 노예 상태를 초래했던 죄들에 대한 온전한 회개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죄 많은 자신의 민족을 위해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였습니까? 단식하고, 애통해하고, 회개와 성실한 마음의 상징인 자루천 옷을 입음으로써 그렇게 하였습니다.

5.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다니엘이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예레미야의 예언은 다니엘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 예언은 유대인들이 얼마 안 있으면 고국인 유다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임을 암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5:12; 29:10) 키루스라는 사람이 이미 페르시아의 왕으로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니엘은 틀림없이, 예속되어 있던 유대인들에게 구원이 이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예루살렘과 성전을 재건하는 데 키루스가 사용될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지 않았습니까? (이사야 44:28-45:3) 그러나 다니엘은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될 것인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께 계속 간구하였습니다.

6. 다니엘은 기도 가운데서 무엇을 인정하였습니까?

6 다니엘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의 친절에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유대인들이 반역하고 여호와의 계명에서 벗어나고 그분의 예언자들의 말을 무시함으로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정당하게도 “그들의 불충실함 때문에” 그들을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오 여호와여, 우리에게는, 우리의 왕들과 방백들과 조상들에게는 얼굴의 수치가 있으니, 우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느님 여호와께는 자비와 용서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반역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하느님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고 그 종 예언자들의 손을 통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대로 걷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당신의 율법을 어겼고, 빗나가서 당신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당신이 참 하느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저주와 맹세를 우리 위에 쏟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다니엘 9:5-11; 탈출 19:5-8; 24:3, 7, 8.

7. 여호와께서 유대인들이 사로잡혀 가게 허락하신 행동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느님께 불순종하고 그분과 맺은 계약을 무시할 때 오게 될 결과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레위 26:31-33; 신명 28:15; 31:17) 다니엘은 하느님께서 하신 행동이 정당함을 인정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우리를 재판하는 재판관들에게 하신 말씀을 이행하시어 우리에게 큰 재앙을 내리셨으니, 온 하늘 아래에서 예루살렘이 당한 것과 같은 일은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우리에게 닥쳤는데도, 우리는 우리 하느님 여호와의 얼굴을 부드럽게 해 드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잘못에서 돌아서지 않고 당신의 진실함에 대하여 통찰력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재앙을 살펴보시다가 마침내 그것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하시는 모든 일에서 의로우신데, 우리가 그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다니엘 9:12-14.

8. 다니엘은 무엇에 근거하여 여호와께 호소합니까?

8 다니엘은 자기 민족이 한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유배된 것은 당연히 그럴 만한 일이었습니다. 다니엘이 기꺼이 이렇게 고백하는 바와 같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고, 우리가 악하게 행하였습니다.” (다니엘 9:15) 다니엘의 관심사는 또한 단순히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니엘은 여호와 자신의 영광과 영예에 근거하여 호소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유대인들을 용서하여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심으로,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약속을 성취시켜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탄원합니다. “오 여호와여, 당신의 모든 의의 행동에 따라, 부디 당신의 분노와 격노를 당신의 도시 예루살렘에서,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돌이켜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잘못 때문에, 예루살렘과 당신의 백성이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치욕거리가 되었습니다.”—다니엘 9:16.

9. (ㄱ) 다니엘은 어떤 간청으로 자기의 기도를 끝맺습니까? (ㄴ) 다니엘은 무엇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으며, 하지만 하느님의 이름에 대한 존중심을 어떻게 나타냅니까?

9 다니엘은 열렬한 기도 가운데서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 이제, 오 우리 하느님, 당신의 종의 기도와 간청을 들어 주시고 당신의 얼굴을 황폐한 당신의 신성한 곳에 비추어 주십시오. 여호와를 위하여 그리하십시오. 오 나의 하느님,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태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던 도시를 보아 주십시오. 우리의 의로운 행동에 따라서가 아니라 당신의 많은 자비에 따라서, 우리가 당신 앞에 간청을 드립니다. 오 여호와여, 들어 주십시오. 오 여호와여, 용서해 주십시오. 오 여호와여, 주의를 기울여 주시고 행동하여 주십시오. 오 나의 하느님, 당신 자신을 위하여 지체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도시와 백성이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9:17-19) 만일 하느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백성을 유배된 상태로 내버려 두시며, 그분의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무한정 황폐한 상태로 있게 놔두신다면, 나라들이 그분을 우주의 주권자로 여기겠습니까? 여호와에게는 바빌로니아의 신들의 위력을 대적할 힘이 없다고 그 나라들이 결론 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치욕을 당하게 될 것이며, 다니엘은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름 여호와가 다니엘서에서는 19회 발견되는데, 그 중 18회가 이 기도와 관련하여 나옵니다!

가브리엘이 신속히 오다

10. (ㄱ) 다니엘에게 누가 보냄을 받았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다니엘이 가브리엘을 가리켜 “사람”이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다니엘이 아직 기도하고 있을 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납니다. 그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이해력과 함께 통찰력을 얻게 하려고 나왔다. 네가 간청하기 시작할 때에 말씀이 나왔기에, 내가 알려 주려고 왔다. 너는 매우 보배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일을 생각해 보고, 보는 것에 대한 이해를 얻어라.” 그런데 다니엘은 왜 그 천사를 가리켜 “그 사람 가브리엘”이라고 말합니까? (다니엘 9:20-23) 다니엘이 이전에 받은 숫염소와 숫양에 대한 환상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남자같이 보이는 자”가 다니엘 앞에 나타났었습니다. 그는 다니엘에게 통찰력을 주려고 보냄을 받은 가브리엘 천사였습니다. (다니엘 8:15-17) 다니엘이 기도를 마치자,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 천사가 사람같이 보이는 모습으로 다니엘에게 다가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말하였던 것입니다.

11, 12. (ㄱ) 바빌론에는 성전도 여호와의 제단도 없었지만, 경건한 유대인들은 율법에서 요구하는 제물에 대한 존중심을 어떻게 나타냈습니까? (ㄴ) 다니엘이 “매우 보배로운 사람”이라고 불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가브리엘은 “저녁 예물을 드릴 시간에” 도착합니다. 여호와의 제단은 예루살렘 성전과 함께 이미 파괴되었으며, 유대인들은 이교를 믿는 바빌로니아 사람들에게 포로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빌론에 있는 유대인들은 하느님께 희생을 드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빌론에 사는 경건한 유대인들은 합당하게도, 모세의 율법 아래 희생을 드리도록 정해진 시간에 여호와께 찬양과 간구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은 하느님에 대한 헌신의 정도가 깊은 사람으로서 “매우 보배로운 사람”이라고 불렸습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신 여호와께서는 다니엘을 기뻐하셨고, 그래서 다니엘의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기 위해 가브리엘이 신속히 보냄을 받았습니다.—시 65:2.

12 여호와께 기도하는 것이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었을 때에도,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하느님께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 6:10, 11) 여호와께서 다니엘을 매우 보배롭게 여기셨던 것도 당연합니다! 기도에 더하여,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으로 인해 다니엘은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꾸준히 기도하였고, 자기의 기도가 응답되도록 하기 위해 여호와께 합당하게 가까이 가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의를 강조하였습니다. (다니엘 9:7, 14, 16) 그리고 다니엘의 적들이 다니엘에게서 아무런 허물도 찾지 못했지만, 다니엘은 자신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죄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속히 자기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다니엘 6:4; 로마 3:23.

죄를 끝내기 위한 “칠십 주”

13, 14. (ㄱ)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무슨 중요한 지식을 알려 주었습니까? (ㄴ) “칠십 주”는 얼마나 되는 기간이며, 그 점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3 기도에 힘쓰던 다니엘은 참으로 놀라운 대답을 듣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다니엘에게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예언된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통찰력까지 갖게 해 주십니다. (창세 22:17, 18; 이사야 9:6, 7)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민족과 네 거룩한 도시에 대하여 칠십 주가 정해졌다. 그것은 범법을 그치게 하고, 죄를 끝내고, 잘못을 속죄하고, 한정 없는 때까지 의를 가져오고, 환상과 예언자 위에 인장을 찍고, ‘성소 중의 성소’에 기름을 붓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네가 알고 통찰력을 가져야 할 것은, 예루살렘을 회복시키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나온 때부터 지도자인 메시아가 오기까지 칠 주와, 또 육십이 주가 지나리라는 것이다. 그 도시가 복원되고 재건되어 광장과 해자를 갖추게 될 것인데, 그때의 곤경 중에 그렇게 될 것이다.”—다니엘 9:24, 25.

14 이것은 참으로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재건되고 새로운 성전에서 숭배가 회복될 뿐 아니라, 특정한 때에 “지도자인 메시아”가 나타날 것입니다. “칠십 주” 내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가브리엘이 날수를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칠십 주는 각각 칠일로 이루어진 주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칠십 주는 490일, 단지 1과 3분의 1년이 될 것입니다. 예언된 대로 “광장과 해자를 갖”춘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걸렸습니다. 이 칠십 주의 주들은 햇수로 이루어진 주들입니다. 각 주의 길이가 칠 년이라는 점은 여러 현대 번역판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대인 출판 협회에서 발행한 「타나크—성경」(Tanakh—The Holy Scriptures)의 다니엘 9:24의 각주에는 “햇수로 칠십 주”라는 번역문이 실려 있습니다. 「미국역」(An American Translation)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네 민족과 네 거룩한 도시를 위해 햇수로 칠십 주가 정해져 있다.” 모팻과 로더럼의 번역판들에도 이와 비슷한 번역문들이 실려 있습니다.

15. “칠십 주”는 어떤 세 기간으로 나누어지며, 언제 시작될 것입니까?

15 천사의 말에 의하면, “칠십 주”는 다음의 세 기간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1) “칠 주”, (2) “육십이 주”, (3) 한 주. 이것들은 각기 49년, 434년, 7년이 되어, 전부 합하면 490년이 될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개역 영어 성서」(The Revised English Bible)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네 민족과 네 거룩한 도시를 위하여 칠 년의 칠십 배가 정해졌다.” 바빌론에 유배되어 70년 동안 고통을 당한 후에, 유대인들은 490년 동안 즉 70년을 일곱 배 한 기간 동안 하느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작점은 “예루살렘을 회복시키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나온 때”가 될 것입니다. 그때는 언제일 것입니까?

“칠십 주”의 시작

16. 키루스가 내린 포고령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키루스가 유대인들을 고국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16 “칠십 주”의 시작점과 관련하여 세 가지 주목할 만한 사건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기원전 537년에 있었는데, 그 해에 키루스는 유대인들을 고국으로 다시 돌려보내라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그 포고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페르시아 키루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땅의 모든 왕국을 나에게 주시고,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그분을 위하여 집을 지으라고 나에게 명하셨다. 너희 가운데 있는 그분의 백성된 모든 자에게는 누구나 그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러므로 그로 하여금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의 하느님 여호와의 집을—그분은 참 하느님이시니—재건하게 하여라. 누구든지 그 남아 있는 사람이 외국인으로 거주하고 있는 그 모든 곳을 떠나면, 그곳 사람들은 은과 금과 소유물과 가축으로, 또한 예루살렘에 있는 참 하느님의 집을 위한 자원 제물로 그를 도와 주도록 하여라.’” (에스라 1:2-4) 이러한 포고령을 내리는 특별한 목적은, 성전—“여호와의 집”—이 이전에 있던 장소에 재건되도록 하려는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17. 에스라에게 주어진 서한은 그가 예루살렘으로 여행할 무슨 이유를 제공하였습니까?

17 두 번째 사건은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들) 통치 제7년에 일어났습니다. 그때 필사자인 에스라는 바빌론에서 예루살렘까지 4개월이 걸리는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는 왕이 보낸 특별 서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루살렘을 재건하도록 인가하는 서한은 아니었습니다. 에스라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런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집을 아름답게 하”는 일로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 서한에는 금과 은 그리고 신성한 그릇들이 언급되어 있고 또 성전에서 드리는 숭배를 지원하기 위해 밀과 포도주와 기름과 소금을 기부하는 일이 언급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성전에서 섬기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면제해 주는 일도 언급되어 있었습니다.—에스라 7:6-27.

18. 느헤미야는 무슨 소식을 듣고 심란해졌으며, 아닥사스다 왕은 그 점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18 세 번째 사건은 13년 후,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제20년에 일어났습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수산 성”에서 왕에게 술잔을 올리는 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바빌론에서 돌아온 남은 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흡족한 상태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그 성문들은 불에 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느헤미야는 몹시 심란해졌고, 마음이 침울해졌습니다. 슬퍼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느헤미야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왕께서는 한정 없는 때까지 사십시오! 그 도시, 저의 조상의 매장지의 집이 황폐되고, 그 성문들이 불에 삼켜졌는데, 어찌 제 얼굴이 침울하지 않겠습니까?”—느헤미야 1:1-3; 2:1-3.

19. (ㄱ) 아닥사스다 왕에게 질문을 받자, 느헤미야는 제일 먼저 무엇을 하였습니까? (ㄴ) 느헤미야는 어떤 요청을 하였으며, 그 일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역할을 어떻게 인정하였습니까?

19 느헤미야와 관련된 기록은 다음과 같이 계속됩니다. “그러자 왕은 나에게 ‘그대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오?’ 하고 말하였다. 그 즉시 나는 하늘의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그런 다음 왕에게 말하였다. ‘왕께서 좋게 여기신다면, 또 당신의 종이 당신 앞에 좋게 여김을 받는다면, 저를 유다로, 제 조상의 매장지의 도시로 보내셔서, 그 도시를 재건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닥사스다는 이 제안을 좋게 여겼고, 더 나아가 느헤미야의 다음과 같은 요청도 들어 주었습니다. “왕께서 좋게 여기신다면, ‘강’[유프라테스 강] 건너편 총독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저에게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제가 유다에 이를 때까지 저를 통과시키도록 해 주십시오. 또 왕께 속한 정원을 지키는 사람 아삽에게 보내는 편지를 주셔서, 그로 하여금 저에게 나무를 주게 하여, 목재로 그 집에 속한 ‘성’의 문들도 만들어 세우고 그 도시의 성벽과 제가 들어갈 집에도 사용하도록 해 주십시오.” 느헤미야는 이 모든 일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역할을 인정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은, 내 위에 있는 내 하느님의 선한 손으로 말미암아, 나에게 [편지들을] 주었다.”—느헤미야 2:4-8.

20. (ㄱ) “예루살렘을 회복시키고 재건하라는” 말씀은 언제 효력을 발생하였습니까? (ㄴ) “칠십 주”는 언제 시작되었으며, 언제 끝났습니까? (ㄷ) “칠십 주”가 시작되고 끝나는 날짜가 정확함을 어떤 증거가 알려 줍니까?

20 허락이 내려진 것은 아닥사스다 통치 제20년 초인 니산월이었지만, 실제로 “예루살렘을 회복시키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나”와 효력을 발휘한 것은 여러 달 후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회복 작업을 시작했을 때 비로소 효력이 발생한 것입니다. 에스라의 여행은 4개월이 걸렸는데, 수산은 바빌론에서도 동쪽으로 322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훨씬 더 멀었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은 필시 아닥사스다 제20년 말경, 즉 기원전 455년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언된 “칠십 주” 즉 49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기간은 기원 36년 후반에 끝날 것이었습니다.—197면의 “아닥사스다의 통치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참조.

“지도자인 메시아”의 출현

21. (ㄱ) 처음 “칠 주” 동안에 무슨 일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으며, 어떤 상황인데도 그러하였습니까? (ㄴ) 메시아는 몇 년에 나타나게 되어 있었으며, 누가의 복음서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다고 말합니까?

21 예루살렘이 실제로 재건될 때까지 몇 년이 걸렸습니까? 그 도시의 회복은 “그때의 곤경 중에” 이루어질 것이었는데, 유대인들 자체 내에서 생긴 어려운 문제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을 비롯한 여러 나라 사람들의 반대 때문이었습니다. 회복 작업은 아마 기원전 406년경에는—“칠 주” 즉 49년 내에—필요한 만큼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다니엘 9:25) 그 후 62주 즉 434년 기간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 기간마저 끝나면, 오래 전부터 약속되어 온 메시아가 나타날 것입니다. 기원전 455년에서 483년(49년 더하기 434년)을 계산하면 기원 29년이 됩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복음서 필자인 누가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통치 제십오 년, 본디오 빌라도유대의 총독으로, 헤롯갈릴리의 지역 통치자로 ·⁠·⁠· 있을 때에, ·⁠·⁠· 하느님의 선언이 광야에서 스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그는 요르단 강 주위 모든 지방에 와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상징인 침례를 전파하였다.” 그때 “사람들이”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누가 3:1-3, 15.

22. 예수께서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예언된 메시아가 되셨습니까?

22 요한은 약속된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자기가 기원 29년 가을에 나사렛 예수에게 침례를 베풀 때 목격한 것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영이 하늘에서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영이 그분 위에 머물렀습니다. 나도 그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물에서 침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바로 그분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그의 위에 영이 내려와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보면, 그가 바로 성령 안에서 침례를 베푸는 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보았으므로 나는 이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요한 1:32-34) 예수는 침례시에 기름부음받은 자—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요한의 제자인 안드레는 기름부음받은 예수를 만난 뒤 시몬 베드로에게 “우리가 메시아를 찾았네” 하고 말하였습니다. (요한 1:41) 그리하여 “지도자인 메시아”는 정확한 때에—69주 끝에—나타났습니다!

마지막 주에 있었던 일들

23. “지도자인 메시아”는 왜 죽어야 하였으며, 그 일은 언제 일어나게 되어 있었습니까?

23 70번째 주에는 무슨 일이 이루어질 것이었습니까? 가브리엘은 “칠십 주” 기간이 정해진 것은, “범법을 그치게 하고, 죄를 끝내고, 잘못을 속죄하고, 한정 없는 때까지 의를 가져오고, 환상과 예언자 위에 인장을 찍고, ‘성소 중의 성소’에 기름을 붓기 위해서”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려면, “지도자인 메시아”가 죽어야 하였습니다. 그는 언제 죽었습니까? 가브리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육십이 주 후에 메시아가 끊어질 것인데, 그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 그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한 주 동안 반드시 계약의 효력을 지킬 것이며, 그 주의 절반이 지날 때에 희생 제물과 예물을 그치게 할 것이다.” (다니엘 9:26ㄱ, 27ㄱ) 중요한 시점은 “그 주의 절반이 지날 때” 즉 햇수로 된 그 마지막 주의 중간 시점이었습니다.

24, 25. (ㄱ) 예언된 대로, 그리스도는 언제 죽었으며, 그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무엇이 끝나게 되었습니까? (ㄴ) 예수의 죽음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였습니까?

24 예수 그리스도의 공개 봉사의 직무는 기원 29년 후반에 시작되어 3년 반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예언된 대로, 그리스도는 기원 33년 초에 “끊어”졌습니다. 그때 그분은 고통의 기둥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의 인간 생명을 인류를 위한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이사야 53:8; 마태 20:28) 부활된 예수께서 자신이 희생한 인간 생명의 가치를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바쳤을 때, 율법에 규정된 대로 동물 희생과 예물을 드릴 필요가 더는 없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제사장들이 기원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될 때까지 계속 제물을 바치기는 했지만, 그러한 희생은 더는 하느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희생은 더 나은 희생, 결코 반복해서 바칠 필요가 없는 희생으로 대치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희생을 영구히 바치[셨습니다]. ·⁠·⁠· 그는 한 번의 희생을 바치심으로써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하셨습니다.”—히브리 10:12, 14.

25 죄와 죽음이 인류를 계속 괴롭혀 왔지만, 예수께서 죽음으로 끊어진 일과 하늘 생명으로 부활된 일은 예언을 성취시켰습니다. 그 일은 “범법을 그치게 하고, 죄를 끝내고, 잘못을 속죄하고, ·⁠·⁠· 의를 가져”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죄인임을 드러내고 죄인이라고 정죄하는 역할을 한 율법 계약을 폐지하셨습니다. (로마 5:12, 19, 20; 갈라디아 3:13, 19; 에베소 2:15; 골로새 2:13, 14) 이제 회개한 범죄자의 죄는 지워질 수 있게 되었으며, 죄로 인한 형벌도 면제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메시아의 화목 희생을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선물인 “그리스도 예수에 의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을 고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로마 3:21-26; 6:22, 23; 요한 첫째 2:1, 2.

26. (ㄱ) 율법 계약은 폐지되었지만, 무슨 계약이 “한 주 동안 ·⁠·⁠· 효력을 지”켰습니까? (ㄴ) 70째 주 끝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2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기원 33년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율법 계약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메시아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한 주 동안 반드시 계약의 효력을 지킬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메시아가 아브라함과의 계약의 효력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70째 주가 끝날 때까지 아브라함의 히브리인 자손들에게 그 계약의 축복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햇수로 된 “칠십 주”의 끝인 기원 36년에, 사도 베드로는 독실한 이탈리아 사람 고넬료와 그의 집안 사람들을 비롯하여 다른 이방인들에게 전파하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좋은 소식은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선포되기 시작하였습니다.—사도 3:25, 26; 10:1-48; 갈라디아 3:8, 9, 14.

27. 어떤 “‘성소 중의 성소’”가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어떻게 받았습니까?

27 이 예언은 또한 “‘성소 중의 성소’”에 기름을 붓는 일도 예언하였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 즉 성전의 맨 안쪽 칸에 기름을 붓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언급된 “‘성소 중의 성소’”라는 표현은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신성한 곳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아버지께 자기 인간 희생의 가치를 바쳤습니다. 예수께서 기원 29년에 받은 침례는 지상의 장막에 있던, 나중에는 성전에 있던 지성소로 대표되는 그 하늘의 영적인 실체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따로 구별하였습니다.—히브리 9:11, 12.

하느님께서 확언하신 예언

28. “환상과 예언자 위에 인장을 찍”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였습니까?

28 가브리엘 천사가 메시아에 관해 한 예언은 또한 “환상과 예언자 위에 인장을 찍”는 일에 관해서도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메시아와 관련하여 예언된 모든 일—메시아가 자신의 희생과 부활과 하늘에 나타남을 통해 달성한 모든 일은 물론이고, 70째 주에 일어나는 그 밖의 여러가지 일들—은 하느님의 승인의 인장이 찍힐 것이고, 참됨이 증명될 것이며, 따라서 신뢰할 수 있음을 의미하였습니다. 이 환상은 봉인되어, 메시아와 관련해서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환상은 메시아에게 그리고 메시아를 통한 하느님의 일에 성취될 것입니다. 오로지 예언된 메시아와 관련해서만 이 환상의 정확한 해석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환상의 의미를 밝혀 주지 못할 것입니다.

29. 재건된 예루살렘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었으며,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었습니까?

29 가브리엘은 앞서 예루살렘이 재건될 것이라고 예언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그는 그 재건된 도시와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도시와 거룩한 곳을, 오고 있는 한 지도자의 백성이 멸할 것이며, 그것의 끝이 홍수에 의해서 있게 될 것이다. 끝까지 전쟁이 있을 것이니, 결정된 것은 황폐이다. ·⁠·⁠· 그리고 혐오스러운 것들의 날개 위에 황폐케 하는 자가 있을 것이며, 진멸되기까지, 그 결정된 것이 황폐되어 있는 것 위에 계속 쏟아질 것이다.” (다니엘 9:26ㄴ, 27ㄴ) 이 황폐는 “칠십 주”가 끝난 후에 일어날 것이지만, 마지막 “주”에 일어난 일의 직접적인 결과일 것입니다. 그 주에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그분을 죽게 하였습니다.—마태 23:37, 38.

30. 역사 기록이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위대한 시간 엄수자의 명령은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30 역사 기록이 알려 주는 바에 의하면, 시리아의 총독이었던 케스티우스 갈루스 휘하의 로마 군단들이 기원 66년에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우상과도 같은 기 즉 군기를 앞세운 이 로마 군대는 도시를 뚫고 들어가 성전 북쪽 벽의 기초를 허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군대는 그곳에 서 있게 됨으로 인해, 철저히 황폐케 할 수 있는 “혐오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마태 24:15, 16) 기원 70년에, 티투스 장군 휘하의 로마 군대는 “홍수”처럼 밀어닥쳐서 그 도시와 성전을 황폐시켰습니다. 아무 것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은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것, 다시 말해서 그분에 의해 “결정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시간 엄수자 여호와께서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말씀을 성취시키셨습니다!

어떤 점을 알게 되었습니까?

● 예루살렘의 70년간의 황폐 기간이 끝나 가고 있을 때, 다니엘은 여호와께 어떤 간청을 하였습니까?

● “칠십 주”는 얼마나 되는 기간이었으며, 언제 시작하여 언제 끝났습니까?

● “지도자인 메시아”는 언제 나타났으며, 어느 중요한 시점에서 “끊어”졌습니까?

● 어느 계약이 “많은 사람을 위하여 한 주 동안 ·⁠·⁠· 효력을” 지켰습니까?

● “칠십 주”가 끝난 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연구 질문]

[197면 네모와 삽화]

아닥사스다의 통치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통치가 시작된 해와 관련하여 역사가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일부 역사가들은 아닥사스다의 즉위년을 기원전 465년이라고 생각해 왔다. 아닥사스다의 아버지 크세르크세스가 기원전 486년에 통치를 시작해서 통치 제21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닥사스다가 기원전 475년에 왕좌에 올라 그의 첫 재위년이 기원전 474년에 시작되었다는 증거가 있다.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에서 발굴된 비문들과 조각물들은 크세르크세스와 그의 아버지 다리우스 1세가 공동으로 통치하였음을 알려 준다. 이 공동 통치 기간이 10년이고, 다리우스가 기원전 486년에 사망한 후 크세르크세스 혼자 통치한 기간이 11년이라면, 아닥사스다 통치 제일 년은 기원전 474년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증거는 아테네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와 관련이 있다. 그는 기원전 480년에 크세르크세스의 군대를 격퇴시켰다. 그는 나중에 그리스 국민의 인기를 잃어 반역죄로 고발당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도망하여 페르시아 궁정에 보호를 요청했고, 거기서 정중한 대우를 받았다.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에 의하면, 이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닥사스다가 “왕좌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테미스토클레스가 기원전 471년에 사망했다고 말한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닥사스다 왕을 알현하기 전에 페르시아어를 배울 수 있도록 일 년간의 여유를 달라고 요청하였으므로, 그는 늦어도 기원전 473년에는 틀림없이 소아시아에 도착하였을 것이다. 제롬의 「유세비우스 연대기」(Chronicle of Eusebius)도 그 해를 지지한다. 테미스토클레스가 기원전 473년에 아시아에 도착했을 때는 아닥사스다가 “왕좌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때”였으므로, 독일의 학자 에른스트 헹슈텐베르크는 「구약의 그리스도론」(Christology of the Old Testament)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른 자료들과 마찬가지로, 아닥사스다의 통치가 기원전 474년에 시작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아닥사스다 제이십 년은 그리스도 전 455년이다.”

[삽화]

테미스토클레스의 흉상

[188, 189면 도해와 삽화]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칠십 주”

기원전 455년 기원전 406년 기원 29년 기원 33년 기원 36년

“예루살렘을 예루살렘의 메시아가 메시아가 “칠십 주”의

회복시키라는 재건 나타나다 끊어지다 끝

·⁠·⁠· 말씀”

7주 62주 1주

49년 434년 7년

[180면 전면 삽화]

[193면 전면 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