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사니아
(Lysanias) [“풀다, 풀어 주다”와 “비탄, 괴로움”을 의미하는 어근들에서 나온 복합어]
티베리우스 누 3:1) 로마의 분봉 영지인 아빌레네의 수도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가까운 아빌라였다. 그곳에서 발견된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의 한 비문은 “분봉왕 루사니아”의 한 해방 노예가 신전을 봉헌한 일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어 명문 전집」 Corpus Inscriptionum Graecarum, 3권, 4521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의 부추김을 받고 기원전 34년경에 루사니아를 처형했다고 요세푸스가 기술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누가의 기록이 부정확하다고 비난해 왔다. (「유대 고대사」 Jewish Antiquities, XV, 92 [iv, 1]) 하지만 누가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누가가 언급한 루사니아는 그 이전에 살았던 루사니아(프톨레미의 아들)와 동일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살았던 루사니아는 처형되기 전에 아빌레네가 아니라 칼키스 근처에서 통치했으며 분봉왕이라고 불리지도 않는다.
카이사르 통치 제15년, 침례자 요한이 봉사의 직무를 시작한 때(기원 29년)의 아빌레네의 지역 통치자 즉 분봉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