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John)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셨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를 의미하는 여호하난의 그리스어 형태에서 유래]
1. 스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인 침례자 요한. 예수의 선구자. 요한의 양친 모두 아론의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다. 스가랴는 아비야 조에 속한 제사장이었다.—누 1:5, 6.
기적으로 출생하다 기원전 3년에, 아비야 조가 봉사하도록 지정된 기간에, 스가랴가 신성한 곳에서 분향하는 드문 특권을 누릴 차례가 되었다. 그가 향단 앞에 서 있는데,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그가 아들을 두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 아들은 삼손처럼 평생 나실인이 될 것이었다. 그는 여호와 앞에 큰 자가 되고 그분에 앞서 가서 “여호와를 위하여 준비된 백성을 마련할 것”이었다. 요한은 하느님의 기적에 의해 태어나게 될 것이었는데, 스가랴와 엘리사벳은 둘 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다.—누 1:7-17.
엘리사벳이 임신 6개월이 되었을 때, 성령으로 임신한 친족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였다. 마리아의 인사말을 엘리사벳이 듣자마자, 엘리사벳의 아기가 태 속에서 뛰었다. 그러자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리아가 낳을 아기가 자기의 “주”가 될 것임을 인정하였다.—누 1:26, 36, 39-45.
엘리사벳의 아기가 태어났을 때, 이웃과 친족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의 이름을 지으려고 했지만, 엘리사벳은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아기를 무엇이라 부르기를 원하는지 그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전에 천사가 말한 대로, 스가랴는 가브리엘이 그에게 그 소식을 알린 때부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서판에다 “요한이 그 이름입니다”라고 썼다. 그러고 나서 스가랴는 입이 열려서 누 1:18-20, 57-66.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모든 사람은 여호와의 손이 그 아이와 함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봉사의 직무를 시작하다 요한은 부모가 살던 유대 지방의 구릉성 산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자라면서 영이 강해져 갔으며, 자기를 이스라엘에 드러내어 나타내는 날까지 계속 황야에 있었다.” (누 1:39, 80) 누가에 의하면, 요한은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통치 제15년에 봉사의 직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요한은 그때 30세가량 되었을 것이다. 요한이 성전에서 제사직 봉사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30세라는 나이는 제사장들이 정식으로 직무를 보기 시작하는 나이였다. (민 4:2, 3) 아우구스투스는 기원 14년 8월 17일에 죽었으며, 티베리우스는 로마 원로원에 의해 9월 15일에 황제로 지명되었다. 따라서 그의 통치 제15년은 기원 28년 후반부터 기원 29년 8월이나 9월까지가 될 것이다. 예수께서(역시 30세가량 되셨을 때) 침례를 받기 위해 자신을 제공하신 때가 가을이었으므로, 6개월 일찍 태어난 요한은 봉사의 직무를 기원 29년 봄에 시작했음에 틀림없다.—누 3:1-3, 23.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기 시작하며 “회개하십시오. 하늘 왕국이 다가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마 3:1, 2) 그는 예언자 엘리야의 복장과 비슷하게,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었다. 요한의 양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왕둘 1:8; 마 3:4; 막 1:6) 그는 교사였으며, 따라서 그의 제자들은 그를 “랍비”라고 불렀다.—요 3:26.
그의 활동의 목적 요한은 회개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침례를 전파했으며, 유대인들과 유대교 개종자들에게만 침례를 베풀었다. (막 1:1-5; 행 13:24) 하느님이 요한을 보내신 것은 유대인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의 친절의 표시였다. 그들은 여호와와의 계약 관계 안에 있었지만, 율법 계약을 범한 죄가 있었다. 요한은 그들이 그 계약을 어겼다는 사실에 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며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들이 받는 물 침례는 그 회개를 상징하였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메시아를 받아들일 입장에 있게 되었다. (행 19:4)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침례를 받으려고 요한에게 왔는데, 그 가운데는 창녀들과 세금 징수원들도 있었다. (마 21:32)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침례를 받으러 왔는데, 요한은 그들에게 통렬한 질책의 소식을 퍼부었고 그들에 대한 심판이 임박했다고 말하였다. 그는 가차 없이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이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이라는 사실에 의존해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지적하였다.—마 3:7-12.
요한은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물건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고 강탈하지 말며 자기의 급여로 만족하고 아무도 괴롭히지 말라고 하였다. (누 3:10-14) 그는 또한 침례받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하느님께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누 11:1) 이때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었고, 모두가 요한에 대하여 ‘혹시 그가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고 마음 속으로 추리하고 있었”다. 요한은 그것을 부인하며 자기 뒤에 오실 분은 훨씬 더 위대한 분일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누 3:15-17)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요르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 있는 그에게 와서 그가 엘리야인지 또는 “예언자”인지 물었을 때, 그는 아니라고 사실대로 말하였다.—요 1:19-28.
요한은 엘리야처럼 기적을 행하지는 않았지만(요 10:40-42),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가지고 왔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의로운 사람들의 실용적인 지혜로 돌아오게 하”는 강력한 일을 수행하였다. 그는 자기가 파견된 목적 즉 “여호와를 위하여 준비된 백성을 마련”하는 목적을 완수하였다. 참으로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하느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였다. (누 1:16, 17) 그는 여호와의 대리자인 예수 그리스도에 앞서 갔다.
요한이 “하느님의 ‘어린 양’”을 소개하다 기원 29년 가을에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려고 요한에게 오셨다. 요한은 처음에 반대했는데, 자신은 죄인이고 예수는 의로운 분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물러서지 않으셨다. 하느님은 이전에 요한에게 그가 하느님의 아들을 식별할 수 있게 해 줄 하나의 표징을 약속하신 적이 있다. (마 3:13; 막 1:9; 누 3:21; 요 1:33)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그 표징이 성취되어, 요한은 하느님의 영이 예수 위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하느님 자신의 음성이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선언하시는 것을 들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 자리에 없었던 것 같다.—마 3:16, 17; 막 1:9-11; 요 1:32-34; 5:31, 37.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신 뒤에 약 40일 동안 광야에 계셨다. 그분이 돌아오셨을 때, 요한은 자기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심을 지적하였다. (요 1:29) 그다음 날 안드레와 또 다른 제자—아마도 세베대의 아들 요한—는 하느님의 아들에게 소개되었다. (요 1:35-40) 이렇게 하여 침례자 요한은 이스라엘 양 우리의 충실한 “문지기”로서, 자신의 제자들을 “훌륭한 목자”에게로 넘겨 드리기 시작하였다.—요 10:1-3, 11.
예수의 제자들이 유대 지방에서 침례를 베푸는 동안,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서 침례를 베풀고 있었다. (요 3:22-24)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고 있다는 보고가 요한에게 들어갔을 때, 요한은 질투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러한 나의 기쁨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분은 증가해 가야 하지만 나는 감소해 가야 합니다.”—요 3:26-30.
봉사의 직무 말기 요한의 그러한 말은 참됨이 증명되었다. 1년 또는 그 이상 활동적으로 봉사의 직무를 수행한 뒤에, 요한은 활동 무대에서 강제로 떠나게 되었다. 헤롯 안티파스가 자기 형제 빌립에게서 빼앗은 헤로디아와 불륜의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요한이 그를 책망했는데, 그 때문에 안티파스는 요한을 투옥시켰다. 명목상으로 유대교 개종자였으므로 율법을 지킬 책임이 있던 안티파스는 요한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두려워하였다.—막 6:17-20; 누 3:19, 20.
요한은 감옥에 있을 때 (아마도 티베리아스였을 것임) 예수께서 나인에서 과부의 아들을 부활시킨 것을 포함하여 강력한 일들을 행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예수께서 직접 확증해 주시는 말을 듣고 싶어서, 제자 두 명을 보내어 예수께 이렇게 여쭈어 보게 하였다. “당신이 ‘오실 분’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예수께서는 그에 대해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요한의 제자들 앞에서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셨고 심지어 악귀들을 쫓아내기까지 하셨다. 그다음에 그분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눈먼 사람들과 귀먹은 사람들과 저는 사람들이 고침을 받고 좋은 소식이 전파되고 있다고 보고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하여 요한은 단지 말로가 아니라 예수의 활동에 관한 증거를 통해, 위로를 받고 예수께서 참으로 메시아(그리스도)라는 것을 재차 확신하게 되었다. (마 11:2-6; 누 7:18-23) 요한의 사자들이 떠나간 뒤에, 예수께서는 요한이 예언자보다 뛰어난 사람이며, 사실 여호와의 예언자 말라기가 예언한 사람임을 무리에게 밝혀 주셨다. 예수께서는 또한, 이전에 요한의 아버지 스가랴도 그랬던 것처럼, 이사야 40:3의 예언을 요한에게 적용시키셨다.—말 3:1; 마 11:7-10; 누 1:67, 76; 7:24-27.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자신의 제자들에게 요한의 등장은 말라기 4:5, 6에 나오는 예언, 즉 여호와의 크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날이 오기 전에 하느님이 예언자 엘리야를 보내실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임을 설명해 주셨다. 그렇지만 요한이 큰사람이기는 해도(“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중에 침례자 요한보다 더 큰사람이 일으킴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왕국에서 통치할 “신부” 반열의 성원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계 21:9-11; 22:3-5) 예수께서 “하늘 왕국에서는 작은 자라도 그 사람보다 큽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마 11:11-15; 17:10-13; 누 7:28-30) 예수께서는 또한 요한이 악귀가 들렸다는 비난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요한을 변호해 주셨다.—마 11:16-19; 누 7:31-35.
이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에,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품고 있던 앙심을 실행에 옮겼다. 헤롯의 생일을 축하할 때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했기 때문에, 헤롯은 그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맹세하였다. 그 딸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여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하였다. 헤롯은 자기가 서약한 것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생각하여, 그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요한이 감옥에서 목 베임을 당하여 그의 머리가 쟁반에 얹혀져 그 소녀에게 전달되자, 그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갖다 주었다. 후에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요한의 시체를 옮겨다가 묻고, 그 일을 예수께 알렸다.—마 14:1-12; 막 6:21-29.
요한이 죽은 뒤에 헤롯은 전파하고 병을 고치고 악귀들을 쫓아내는 예수의 봉사의 직무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그는 예수가 사실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은 요한이 아닐까 하고 무서워하였다. 그 이후로 그는 예수를 몹시 보고 싶어 했는데, 예수가 전파하는 것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내린 판단에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마 14:1, 2; 막 6:14-16; 누 9:7-9.
요한의 침례가 끝나다 요한의 침례는 성령이 부어진 때인 기원 33년 오순절까지 계속되었다. 그때부터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침례가 전파되었다. (마 28:19; 행 2:21, 38) 그 후에 요한의 침례를 받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으려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재침례를 받아야 하였다.—행 19:1-7.
2. 사도 시몬 베드로의 아버지. 시나이 사본과 “고대 라틴어” 역본들에 의하면, 요한 1:42과 21:15-17에서 그는 요한이라고 불린다. 일부 사본들과 역본들은 그를 요나(Jona)라고 부른다. 예수께서는 마태 16:17에서 그를 요나(Jonah)라고 부르신다.
3. 사도 요한. 세베대의 아들. 어머니는 살로메인 것 같다. (마 27:55, 56; 막 15:40 비교) 사도 야고보의 형제. 아마 야고보의 동생일 것이다. 두 형제가 모두 언급될 때는 대개 야고보의 이름이 먼저 나오기 때문이다. (마 10:2; 막 1:19, 29; 3:17; 10:35, 41; 누 6:14; 8:51; 9:28; 행 1:13) 세베대는 다윗의 집 출신인 살로메와 결혼했는데, 살로메는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친자매인 듯하다.
배경 요한의 가족은 꽤 유복했던 것 같다. 그의 가족이 했던 고기잡이 일은 동업자들이 있고 고용인들을 둘 정도로 규모가 컸다. (막 1:19, 20; 누 5:9, 10) 세베대의 아내인 살로메는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 그분을 따르며 섬기던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마 27:55, 56; 막 15:40, 41 비교), 예수의 시체를 장사 지낼 준비를 하려고 향료를 가지고 온 여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막 16:1) 요한은 자기 소유의 집이 있었던 것 같다.—요 19:26, 27.
세베대와 살로메는 충실한 히브리인들이었으며, 증거를 보면 그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요한을 양육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요한은 침례자 요한의 제자로서 침례자 요한이 “보십시오. 하느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하고 소개해 주었을 때 안드레와 함께 있었던 사람으로 일반적으로 이해된다. 그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쉽게 받아들인 것을 보면 그가 히브리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 1:35, 36, 40-42) 세베대는 침례자 요한이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는 언급이 전혀 없지만, 자기의 두 아들이 전 시간 전파자가 되어 예수를 따르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요한과 베드로는 유대인 지도자들 앞에 끌려갔을 때,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들”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말은 그들이 전혀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읽고 쓸 수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랍비 학교에서 훈련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한편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그들에 대하여, 그들이 예수와 함께 지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행 4:13.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다 기원 29년 가을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소개받은 뒤에, 요한은 예수를 따라 갈릴리로 갔으며 가나에서 행한 그분의 첫 번째 기적을 목격했음에 틀림없다. (요 2:1-11) 그는 예수를 따라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갔을 것이며, 사마리아를 지나 다시 갈릴리로 돌아올 때도 따라왔을 것이다. 그의 기록의 생생함은 그 기록이, 묘사된 사건들의 목격 증인의 기록임을 드러내 주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 가운데 그 점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요 2-5장) 그렇지만 요한은 한동안 고기잡이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이듬해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으실 때,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수선하고 있었다. 그분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전 시간 봉사를 하도록 그들을 부르셨는데, 누가의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준다. “그래서 그들은 배를 육지로 돌려 대었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다.” (마 4:18-22; 누 5:10, 11; 막 1:19, 20) 후에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선택되었다.—마 10:2-4.
요한은 예수와 가장 친밀하게 어울린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분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변형의 산으로 데리고 가셨다. (마 17:1, 2; 막 9:2; 누 9:28, 29) 사도들 가운데 그 세 사람만 예수와 함께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도록 허락되었다. (막 5:37; 누 8:51) 예수께서는 배반당하시던 그 밤에 특별히 그들만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 안으로 다른 제자들보다 더 깊숙이 들어가셨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들도 그 사태의 중요성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세 번이나 잠들어 예수께서 깨워 주시는 일이 있었다. (마 26:37, 40-45; 막 14:33, 37-41)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기념하시고 주의 만찬을 제정하실 때, 요한은 예수의 바로 옆 자리에 있었다. (요 13:23) 그는 예수께서 죽으실 때 예수의 어머니를 돌보아 달라는 부탁을 받는 두드러진 영예를 받은 제자였다.—요 21:7, 20; 19:26, 27.
요한의 복음서에서 그를 식별함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에서 요한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결코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세베대의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묘사되거나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로 묘사된다. 그가 침례자 요한을 언급할 때는, 다른 복음서 필자들과는 달리, 침례자 요한을 단지 “요한”이라고 부른다.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텐데, 그가 누구에 관해 말하고 있는지를 오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필자라면 자기들이 염두에 둔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별명이나 칭호나 다른 수식 표현들을 사용해야 했을 것이다. 요한 자신도 여러 명의 마리아 가운데 특정인을 지칭할 때 그렇게 했던 바와 같다.—요 11:1, 2; 19:25; 20:1.
이런 견지에서 요한의 기록을 고려해 보면, 침례자 요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받은 안드레의 동무는 이름이 나와 있지 않지만 바로 요한 자신이었을 것임이 명확해진다. (요 1:35-40) 예수께서 부활되신 뒤에, 그분이 일어나셨다는 보고의 진위를 조사하기 위해 무덤으로 달려갈 때 요한은 베드로를 앞질렀다. (요 20:2-8) 그는 부활되신 예수를 그날 저녁에 보고(요 20:19; 누 24:36) 그다음 주에도 또다시 보는 특권을 받았다. (요 20:26) 그는 다시 고기 잡는 일로 돌아갔다가 예수께서 나타나시는 것을 보았던 일곱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요 21:1-14) 요한은 또한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되신 뒤에 갈릴리에 있는 산에 있었으며, ‘모든 나라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을 직접 들었다.—마 28:16-20.
요한이 그 이후에 경험한 일들 예수께서 승천하신 뒤에, 예루살렘에 약 120명의 제자들이 모여 있을 때 요한도 함께 있었다. 그때 맛디아가 제비뽑기를 통해 선택되어 다른 11명의 사도와 함께 계수되는 일이 있었다. (행 1:12-26) 요한은 오순절 날 영이 부어질 때 그 자리에 있었으며, 그날 3000명이 회중에 더해지는 것을 보았다. (행 2:1-13, 41) 그는 베드로와 함께 유대인 지도자들 앞에서 하느님의 백성의 회중이 따르고 있는 원칙을 이렇게 언명하였다. “하느님의 말씀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의로운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들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행 4:19, 20) 그는 또 한 번 다른 사도들과 함께 산헤드린 앞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사람들보다 통치자로서 하느님께 순종해야 합니다.”—행 5:27-32.
스데반이 격노한 유대인들의 손에 죽은 뒤에, 예루살렘에 있는 회중에 대하여 큰 박해가 일어나서 제자들은 흩어졌다. 하지만 요한은 다른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다. 복음 전파자 빌립의 전파 활동으로 사마리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통치체는 베드로와 요한을 급히 보내어 이 새로운 제자들이 성령을 받도록 돕게 하였다. (행 8:1-5, 14-17) 후에 바울은 요한이 회중의 “기둥같이 여겨지는”,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말하였다. 통치체의 한 성원이었던 요한은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 사람들에게 전파할 임무를 받고 파견될 때 그들에게 “함께한다는 표시로 오른손을” 내밀었다. (갈 2:9) 요한은 기원 49년경에, 이방인 개종자들의 할례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열린 통치체의 회의에 참석하였다.—행 15:5, 6, 28, 2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 요한이 다른 사도들보다 더 오래 살 것임을 암시하신 적이 있었다. (요 21:20-22) 그리고 요한은 실제로 약 70년간 충실하게 여호와를 섬겼다. 그는 말년에 파트모스 섬에 유배되었는데, “하느님에 관하여 말하고 예수에 관하여 증언한 일 때문에” 그곳에 가게 된 것이다. (계 1:9) 이 사실은 그가 매우 연로한 나이(기원 96년경)에도 좋은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 원기 왕성하게 활동했음을 증명해 준다.
요한은 파트모스 섬에 있을 때 놀라운 계시의 환상을 보는 은혜를 받았으며, 그것을 충실하게 기록하였다. (계 1:1, 2)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에 의하면, 그가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유배되었다가 도미티아누스의 계승자인 네르바 황제(기원 96-98년)에 의해 석방되었다고 한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에베소로 가서 그곳에서 기원 98년경에 자신의 복음서와 요한의 첫째, 둘째, 셋째 편지라고 불리는 세 통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전승에 따라, 그가 기원 100년경 트라야누스 황제 통치 기간에 에베소에서 죽었다는 견해가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격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요한이 소극적이고 감상적이고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결론짓는다. 한 주석가의 표현을 빌리면, “요한은 사색적이고 품위 있고 이상적인 정신으로 일평생 천사처럼 살았다”고 한다. (랑게의 「성경 주석」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s, P. 샤프 역편, 1976년, 9권, 6면) 그들은 요한이 사랑에 관해 매우 많이 언급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그리고 그가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바울처럼 그렇게 두드러져 보이는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요한의 성격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지적하기를,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있을 때 베드로가 앞장서서 말하게 한 것 같다고 한다.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있을 때 베드로가 언제나 대변자로 앞장섰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록은 요한이 침묵을 지켰다고 알려 주지 않는다. 오히려 지도자들과 연로자들 앞에 섰을 때, 베드로와 요한은 둘 다 두려움 없이 말하였다. (행 4:13, 19) 그와 마찬가지로, 베드로의 이름이 특별히 언급되어 있기는 하지만, 요한도 산헤드린 앞에서 다른 사도들처럼 담대히 말하였다. (행 5:29) 그리고 활발하고 원기 왕성한 기질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예수의 무덤으로 달려갈 때 간절한 마음으로 베드로를 앞지르지 않았던가?—요 20:2-8.
요한과 그의 형제 야고보가 사도로 봉사하던 초기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보아너게(“천둥의 아들들”이라는 의미)라는 별명을 주셨다. (막 3:17) 이 호칭은 확실히 어떤 나약한 감상주의나 활력의 결핍이 아니라 활기찬 성격을 나타낸다. 사마리아의 한 마을이 예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때, 이 “천둥의 아들들”은 할 수만 있다면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그 주민들을 멸절하게 할 기세를 보였다. 그 일이 있기 전에, 요한은 한 남자가 예수의 이름으로 악귀들을 쫓아내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막으려 했던 적이 있었다. 각 경우에 예수께서는 책망과 시정을 베푸셨다.—누 9:49-56.
그 두 경우에, 두 형제는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냈으며, 균형과 사랑에 찬 자비의 영이 몹시 부족하였다. (나중에는 그러한 특성을 배양하였다.) 그렇지만, 그 두 경우에 두 형제는 충성심과 결단력 있고 활기찬 성격을 나타냈는데, 이러한 성격이 올바른 방향으로 틀 잡혀 그들은 강하고 원기 왕성하고 충실한 증인이 되었다. 야고보는 헤롯 아그리파 1세의 손에 순교당했으며(행 12:1, 2), 요한은 마지막까지 살아 있던 사도로서 “예수와 더불어 환난과 왕국과 인내” 가운데 기둥처럼 인내하였다.—계 1:9.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들이 왕국에서 그리스도의 옆에 앉게 해 달라고 어머니를 통해 요청한 것 같은데, 그렇게 야심적인 태도를 나타내어 다른 사도들을 분개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예수께서는, 그들 가운데 큰 자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할 좋은 기회를 갖게 되셨다. 그다음에 그분은 심지어 자신도 섬기려고 왔으며 자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음을 지적하셨다. (마 20:20-28; 막 10:35-45) 그들의 욕망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든 간에, 그 사건은 그들이 왕국의 실재성을 믿었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참으로 요한의 성격이 종교 주석가들의 묘사대로였다면
—약하고 비현실적이고 활력이 없고 내성적이었다면—예수 그리스도는 감동적이고 강력한 계시록을 기록하는 일에 그를 사용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계시록에서 그리스도는 반복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될 것을 권고하시며, 전 세계에 전파될 좋은 소식에 관해 말씀하시며, 하느님의 천둥 같은 심판을 발하신다.요한이 사랑에 관해 다른 복음서 필자들보다 더 많이 언급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나약한 감상주의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사랑은 강력한 특성이다. 율법 전체와 예언자들의 글은 사랑에 근거해 있었다. (마 22:36-40)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고첫 13:8) 사랑은 “완전한 결합의 띠”이다. (골 3:14) 요한이 옹호한 종류의 사랑은 원칙에 밀접히 고착해 있으며, 친절과 자비뿐 아니라, 강력한 책망과 시정과 징계도 베풀 수 있는 사랑이다.
요한은 자신의 모든 기록물과 세 권의 공관 복음서 기록들에 등장할 때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아버지 여호와에 대한 강력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충성을 나타낸다. 그가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서 악한 동기나 특성을 특별히 언급한 것을 보면, 충성과 악한 것에 대한 미움이 분명히 드러난다.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는 데 사용한 것에 대해 투덜거린 사람이 유다였고, 유다가 불평한 이유는 그가 돈궤를 가지고 다녔고 도둑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필자는 요한뿐이다. (요 12:4-6) 그는 니고데모가 ‘야음을 틈타서’ 예수께 왔음을 지적한다. (요 3:2) 요한은 아리마대 요셉의 심각한 결점, 즉 그가 “예수의 제자였으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은밀한 제자로 있”었음을 지적한다. (요 19:38) 요한은 누군가가 주의 제자라고 공언하면서 그 사실을 부끄러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요한은 젊은 시절에 예수와 처음 연합했을 때보다 자신의 복음서와 편지들을 기록했을 때 영의 열매들을 훨씬 더 풍성하게 배양하였다. 확실히 그는 과거에 왕국에서 특별한 자리를 요청했을 때 나타냈던 특성을 나타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기록물들에서 우리는 그의 장성을 엿볼 수 있는 표현과 우리가 그의 충실하고 충성스럽고 원기 왕성한 행로를 본받는 데 도움이 되는 훌륭한 조언을 발견할 수 있다.
4. 요한 마가.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마가에 의한 좋은 소식을 기록한 사람. 그는 종종 복음서 필자 마가라고 불린다. 마가는 그의 별명이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은 제자들의 모임 장소였다. (행 12:12) 그는 바울의 일 차 선교 여행 때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갔지만(행 12:25; 13:5), 팜필리아에 있는 페르가에서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행 13:13) 이 때문에 후에 바울이 자신의 다음 여행에 마가를 데리고 가지 않으려고 하자,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다른 방향으로 갔다. (행 15:36-41) 하지만 마가는 후에 신뢰할 만하고 근면한 일꾼임을 증명한 듯한데, 바울이 투옥되어 있던 로마에서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했기 때문이다. “마가를 데리고 함께 오십시오. 그는 섬기는 일을 위하여 나에게 유용합니다.”—디둘 4:11. 마가 참조.
5. 한 유대인 지도자(수제사장 안나스의 친족일 가능성이 있음). 그는 안나스와 가야바와 함께,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하여 자기들 앞으로 끌어 오게 하였다. 그들은 다리가 불구인 사람을 베드로가 고쳐 주는 기적을 행했다는 증거가 있었는데도, 베드로와 요한에게 더는 전파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위협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들에게 조처를 취할 근거가 없고 백성이 두려워서, 베드로와 요한을 놓아주었다.—행 3:1-8; 4: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