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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받는 자들에게는 자비, 박해자들에게는 심판

박해받는 자들에게는 자비, 박해자들에게는 심판

제8장

박해받는 자들에게는 자비, 박해자들에게는 심판

1. ‘학개’가 마지막 예언을 한 때로부터 영감받은 또 다른 소식이 성전 건축자들에게 임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지나갔으며, 그 동안 그들은 무엇을 하였읍니까?

장소는 ‘예루살렘’, 때는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 시대이며, 기원전 519년의 첫 사반기에 들어섰으나 아직 성서 역사상 네째 세계 강국인 ‘바사’ 제국의 왕 ‘다리오’ 1세 통치 제2년이었읍니다. 그 때는 ‘학개’가 영감을 받아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과 총독 ‘스룹바벨’에게 마지막으로 예언한 날로부터 정확하게 음력 두달 후였읍니다. 그것은 구월(‘기슬래’월) 이십 사일이었으며 기원전 519년이 시작될 때가 멀지 않은 때였읍니다. ‘예루살렘’ 역사상 그 기념할 만한 날에 ‘시온’ 산 바로 북쪽에 있는 ‘모리아’ 산에서 성전 기초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읍니다. 영감받은 또 다른 소식이 그들의 하나님으로부터 ‘유대’인 건축자들에게 임하기까지 그들은 만 두달 동안 중단하지 않고 거룩한 건물 공사장에서 일하였읍니다. 이번에는 원수들의 어떠한 방해 공작에도 그들은 그들의 일을 중단하지 않았읍니다.

2. ‘예루살렘’에서 진행되는 일에 대한 소식을 ‘다리오’ 1세보다 분명히 누가 먼저 들었을 것이며, 결정 통지를 받을 때까지 얼마의 시일이 걸렸을 것입니까?

2 기원전 519년 ‘스밧’월 24일까지는, ‘예루살렘’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에 대한 소식이 아마 멀리 ‘바사’의 수도에 있는 ‘다리오’ 왕의 귀에는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역졸이 준마를 타고 하루에 약 160‘킬로미터’를 주파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 소식은 아주 늦게 들어갔읍니다. (에스더 3:13-15; 8:10, 14) ‘예루살렘’에서 “비옥한 언월 지대”를 경유하여 ‘수산’으로 가려면 천 육백여 ‘킬로미터’가 될 것이며 또 ‘수산’에서 북쪽으로 ‘엑바타나’까지는 길이 똑바르다면 320여 ‘킬로미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리오’ 왕이 깜짝 놀랄 정보를 듣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따라서 ‘바사’ 왕이 있는 곳에서 ‘유브라데’ 강 건너편(서편)에 있는 도를 다스리는 ‘바사’ 관리들이 이 소식을 먼저 들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토론을 하고 조사를 하는데 몇 개월(사 오개월로 추산하는 사람도 있음)이 걸렸을 것이며 그 후에 논란이 된 문제에 대한 ‘다리오’ 왕의 결정을 통지받고 시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에스라 5:2에서 6:2의 기록을 보면 그 경위는 이러합니다.

3. ‘유브라데’ 강 건너 서편의 ‘바사’ 총독들은 성전 건축자들에게 어떠한 질문을 하였으며, 그들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3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하여 돕더니 그 때에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가 다 나아와 저희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를 명하여 이 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고하였으나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셨으므로 저희가 능히 역사를 폐하게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고하고 그 답조가 오기를 기다렸더라.”

4. ‘바사’ 총독들이 ‘다리오’ 왕에게 보낸 편지의 사연은 어떠하였읍니까?

4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 강 서편 ‘아바삭’ 사람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글의 초본이 이러하니라. 그 글에 일렀으되

“‘다리오’ 왕은

“만안하옵소서. 왕께 아시게 하나이다. 우리가 ‘유다’ 도에 가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보온즉 전을 큰 돌로 세우며 벽에 나무를 얹고 부지런히 하므로 역사가 그 손에서 형통하옵기로 우리가 그 장로들에게 물어 보기를 누가 너희를 명하여 이 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고 우리가 또 그 두목의 이름을 적어 왕에게 고하고자 하여 그 이름을 물은즉

“저희가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오랜 옛적에 건축되었던 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완전히 건축한 것이더니 우리 열조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저희를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시매 저가 이 전을 헐며 이 백성을 사로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더니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하게 하고 또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속에서 금, 은 기명을 옮겨다가 ‘바벨론’ 신당에 두었던 것을 ‘고레스’ 왕이 그 신당에서 취하여 그 세운 총독 ‘세스바살’이라 이름한 자에게 내어 주고 일러 가로되 너는 이 기명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전에 두고 하나님의 전을 그 본처에 건축하라 하매 이에 이 ‘세스바살’이 이르러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지대를 놓았고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오히려 필역하지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이제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국고에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5. ‘다리오’ 왕은 편지를 받고 어떠한 조처를 취하였으며, 무엇이 발견되었읍니까?

5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서적 곳간 곧 ‘바벨론’에서 보물을 쌓아둔 곳에서 조사하게 하였더니 ‘메대’도 ‘악메다’[‘엑바타나’, 신세] 궁에서 한 두루마리를 얻으니 거기 기록하였으되.”

6. 그 일이 진행되는 동안 ‘예루살렘’ 건축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었으며, 기원전 519년 ‘스밧’월 24일에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6 제사장 ‘에스라’가 열기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유대’인 남은 자들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인도를 받아 과감하게 성전 재건 사업을 계속해 나갔읍니다. 십일월 이십사일에도 그렇게 하였으며, 그 때는 기원전 519년 겨울이었읍니다. 그 중요한 날에 예언자 ‘스가랴’는 격려적인 일련의 환상을 받기 시작하였읍니다. 이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환상

7. ‘스밧’월 24일에 받은 첫 환상에서 ‘스가랴’는 무엇을 보았읍니까?

7 “‘다리오’ 왕 이년 십일월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니라.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더라.]”—스가랴 1:7, 8.

8, 9. 누가 ‘스가랴’에게 설명하였으며, 말들을 보고 어떠한 질문이 생겼읍니까?

8 환상 중에 ‘스가랴’는 천사의 인도를 받았읍니다. 천사는 오늘날 우리도 이해하기를 원하는 것들을 그에게 설명하여 주었읍니다. 탄 자들이 있는 말들이 ‘예루살렘’ 변두리 계곡에 있는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성전이 건축되고 있는 그 시기에 ‘예루살렘’에 전쟁이 임박하였읍니까? 성서에서 말은 전쟁을 상징합니다. (욥 39:19-25; 잠언 21:31) 누가 그 말들을 보냈읍니까? 말탄 자들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그들의 목적은 전쟁입니까? ‘스가랴’는 이러한 점들을 알기 원하였읍니다.

9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까?”

10, 11. 그 말탄 자들은 누구로 판명되었으며, 그들은 화석류나무 사이에 있는 말탄 자에게 무엇이라고 보고하였읍니까?

10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니라.]”—스가랴 1:9.

11 그 말탄 자들은, 말하자면, 정찰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나님께서 파견하신 천사들이었읍니다. 이러한 기록을 읽어보면 그 점이 명백하여 집니다.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더이다.”—스가랴 1:10, 11.

12. (ㄱ) 천사 정찰대의 보고와 같이 어떠한 면으로 “온 땅”은 평화로왔읍니까? (ㄴ) 이와 관련하여 ‘애굽’은 무슨 문제로 ‘앗수르’와, 다음에 ‘바벨론’과 싸웠읍니까?

12 그 천사 정찰대는 붉은 말을 타고 있는 그들의 대장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그들은 온 땅에 세계적 평화가 있다고 말하였읍니까? 분명히 그러하였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적인 의미에서, 즉 다른 것과 관련해서만 그러하였읍니다. 다른 것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예루살렘’과 ‘유다’ 구역입니다. 어떻게 그러하였읍니까? ‘예루살렘’이 열국중에서 가졌던 이전의 지적 지위를 상실하였다는 점에서 그러하였읍니다. 기원전 607년까지 그것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모형적 메시야 왕국의 소재지였읍니다. 이 여호와의 소규모 왕국은 이방 세계, 이방 나라들에게 고민 거리였읍니다. ‘애굽’은 ‘예루살렘’과 협상해서 협정을 맺기 위하여 혹은 ‘예루살렘’의 제반사에 대한 통제권을 얻기 위하여 ‘앗수르’와, 다음에 ‘바벨론’과 싸웠읍니다. 그러나 기원전 607년 이후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읍니다.

13. 기원전 607년부터 ‘애굽’은 왜 ‘예루살렘’에 있던 모형적 메시야 왕국과 협정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읍니까?

13 세계적으로 중요한 그 해에 ‘느부갓네살’과 그의 ‘바벨론’ 군대와 연합군은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멸망시켰읍니다. ‘다윗’ 왕국은 전복되었고 ‘다윗’ 계통의 왕이 더는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보좌”에 앉지 않았읍니다. 그 곳에 앉은 마지막 인간 왕이었던, ‘스룹바벨’의 종증조부 ‘시드기야’는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 갔으며 그곳에서 실명하고 투옥된채 여생을 보냈읍니다. 기원전 607년 ‘티쉬리’월에 ‘유다’ 땅에 남아 있던 가난한 서민 소수인들은 ‘바벨론’인들(‘갈대아’인들)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였으며, ‘유다’ 땅과 ‘예루살렘’은 사람도 짐승도 없이 황폐되었읍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예언한 그대로 되었읍니다! 바로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이 계산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기간은 무엇이었읍니까?

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기간을 무엇이라고 부르셨고, 세상 정치에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였으며, 그것은 언제 끝났읍니까?

14 그것은 “이방인의 때” 즉 “열국의 지정된 때”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기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누가 21:24)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소규모적 메시야 왕국의 소재지였고 따라서 ‘다윗’ 왕의 메시야 후손의 손으로 다스릴 하나님의 왕국의 권리를 상징하였으므로, 이것은 ‘예루살렘’ 즉 그 왕국의 권리를 짓밟도록 허락될 그 이방 나라들에게 특별한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읍니까? 그것은 바로, 이방 나라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허락을 받아 수도가 지적 ‘예루살렘’에 있던 이전 왕국과 같은 하나님의 어떠한 메시야 왕국의 간섭도 받지 않고 땅을 다스릴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그처럼 간섭받지 않는 이방인의 때는 상징적인 일곱 “때” 즉 문자적인 2,520년간 계속될 것이었으므로 이 정해진 기간은 기원전 607년 ‘티쉬리’월부터 시작하여 현 이십 세기의 1914년 ‘티쉬리’월까지 계속될 것이었읍니다. (다니엘 4장) 기원전 519년 당시에 천사 정찰대가 온 땅이 정온하다고 보고한 것도 당연합니다!

15. ‘유다’ 땅의 상태와 그 곳의 ‘유대’인 총독은 왜 동요될 필요가 없었으며, 재개되는 성전 재건 사업에 대하여 조사에 나선 총독 ‘닷드내’는 어떠한 절차를 밟았읍니까?

15 왕 ‘다리오’ 1세 2년이었던 그 해에 ‘유다’ 땅과 그 지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은 “‘인도’로 ‘구스’까지” 이르는 ‘바사’ 제국의 127개도 중 한 도에 불과하였읍니다. (에스더 1:1-3) 이곳에는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이 총독이었지만 그는 그의 조부이며 왕이었던 ‘여호야긴’이 석달 열흘 동안 ‘다윗’의 보좌에 앉았던 것과 달리 ‘다윗’의 보좌에 앉지는 않았읍니다. 그는 아마 ‘유브라데’ 서편 관할 지역의 총독들 중 한 사람, 아마 총독 ‘닷드내’의 직접 지휘를 받았을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왕 ‘다리오’ 1세의 지휘에 따라 행동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대하여 심각하게 동요될 필요는 없었읍니다. 물론 총독 ‘닷드내’는 성전 기초 위에 재건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흥분하여 당국자의 입장으로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대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군인을 출동시켜 공사를 막지는 않았읍니다. 대신 그는 ‘다리오’ 왕에게 질문을 보내어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왕이 결정을 내리기를 기다렸읍니다. (다니엘 6:8) 총독 ‘닷드내’는 왜 그처럼 자제하였읍니까? 에스라 5:5이 설명합니다.

16. 에스라 5:5에 의하면 총독 ‘닷드내’는 왜 그러한 절차를 밟았읍니까?

16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셨으므로 저희가 능히 역사를 폐하게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 왕에게 고하고 그 답조가 오기를 기다렸더라.”

17, 18. (ㄱ) 그러므로 “온 땅”의 상태에 대하여 천사 정찰대는 무엇을 발표할 수 있었읍니까? (ㄴ) 그러나 이에 대한 누구의 태도가 가장 중요한 의문이며 어떠한 질문이 있었읍니까?

17 따라서, ‘예루살렘’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에 대한 세상의 불안에 대하여 천사 정찰대는 ‘예루살렘’ 골짜기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그들의 대장에게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더이다” 하고 보고할 수 있었읍니다. 이방 세계 혹은 이교 세계는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어떠한 메시야 왕국으로부터도 간섭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태평한 상태에 있었읍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 자신은 어떠하였읍니까? ‘예루살렘’과 그것이 대표하는 것에 대한 그분의 태도는 어떠하였읍니까? 그의 예언자 ‘학개’가 영감을 받아 말하기를 그쳤다는 것을 그분이 더 보증하셨읍니까? 그 분도 ‘예루살렘’의 복지와 여호와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데 있어서의 그것의 역할에 대하여 이방 나라들처럼 태평하셨읍니까? 하늘의 천사들도 이에 대하여 관심이 있었으며, 특히 “네[‘다니엘’의]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그러하였읍니다. (다니엘 12:1; 베드로 전 1:12) 이에 대한 증거로 다음에 예언자 ‘스가랴’는 환상 가운데 이것을 보았읍니다.

18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자비를 보이지, 신세] 아니 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스가랴 1:12.

19.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칠십년”이 어떤 사람들의 생각에 계속되는 것같이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9 천사가 말한 것을 보고 일부 사람들은 “칠십년”에 대한 여호와의 선언이 ‘예루살렘’과 기타 ‘유다’ 도시들에 대하여 아직도 계속되는 줄로 생각하였읍니다. 이것은 성전 재건이 과거 십칠년간 중단된 사실 때문이었읍니다. 그 분은 포로로 잡혀간 그들의 조상이 ‘솔로몬’ 왕이 건축한 이전 성전을 더럽혔기 때문에 그들에게 매우 노하셨었읍니다. 이제 기원전 520년 팔월(‘헤스반’월)에 여호와께서는 송환된 ‘유대’인 남은 자들에게 그들의 조상들처럼 되지 말고 재건된 성전을 통하여 그 분께 드리는 온전한 숭배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여호와께 돌아옴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사지 말라고 경고하셨읍니다. (스가랴 1:1-6) 이에 비추어 볼 때에 이러한 일들이 ‘예루살렘’과 사람이 다시 거주하게 된 ‘유다’의 기타 도시들에 대하여 그분께 의미한 바에 따라 천사의 외침을 이해해야 합니다.

20. 그러므로 “칠십년”에 대해 천사가 외친 말을 보고 왜 그 기간이 계속되는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됩니까?

20 “칠십년”에 대한 천사의 언급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언급한 칠십년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 칠십년 동안 ‘유다’와 ‘이스라엘’ 두 나라는 ‘바벨론’ 왕조를 섬겨야 하였으며, 그 칠십년 끝에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왕과 ‘갈대아’인들의 그릇된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묻고 그 일에 대하여 처벌하실 것이었읍니다. (예레미야 25:11-13) 그러면 여호와의 천사의 말은 그 칠십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거나, 아니면 막 끝났다는 뜻입니까? 역사에 의하면 그럴 수 없었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이보다 약 이십년 전(기원전 539년)에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대왕을 통하여 세계 강국의 자리에 있던 ‘바벨론’을 전복시키고 이년 후 즉 기원전 537년에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왕을 대리하던 ‘고레스’를 감동시켜 ‘유대’인 포로들이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에스라 1:1에서 2:2; 역대 하 36:20-23.

21. 그 “칠십년” 동안 ‘유다’ 땅은 어떠한 상태에 있었으며, 그 땅의 그러한 상태가 지나간지 오래되었는지를 무엇이 알려줍니까?

21 더욱이, ‘유대’ 땅은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야 하였읍니다. (역대 하 36:21) 어떻게?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 바” 됨으로써 입니다. (예레미야 32:43; 33:10-12) 예언자 ‘스가랴’와 천사들은 ‘유다’ 땅과 ‘예루살렘’이 사람이나 짐승없이 완전히 황폐되는 그 칠십년간이 기원전 537년에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 해에 ‘유대’인 남은 자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와 그 땅에 다시 살게 되었읍니다. 그 해 칠월(‘티쉬리’월)에 그들이 그들의 도시에 돌아가 살고 있었다고 보고 되었읍니다. (에스라 3:1, 2) 그 땅은 더 이상 황폐되지 않았고 예언자 ‘학개’가 십칠년 후에 보고한 바와 같이 그 땅에서 곡식이 자라게 되었읍니다. (학개 1:6-11; 2:16, 17) 그러므로 그 칠십년은 지나간지 오래였읍니다!

22. 예언자 ‘다니엘’은 “칠십년”이 ‘스가랴’가 첫 환상을 본 기원전 519년까지 계속되지 않았음을 어떻게 지적하였읍니까?

22 만일 ‘스가랴’가 첫 환상을 본 때에 그 칠십년이 아직 계속되고 있었거나 막 끝났다면, 천사는 알면서도 왜 그러한 말을 하였겠읍니까? 천사는 그 기간이 분명히 칠십년이라는 것을 알면서 ‘만군의 여호와여, 언제까지입니까?’ 하고 질문한 이유가 무엇이겠읍니까? (스가랴 1:12)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이 전복된 후 ‘메대’ 왕 ‘다리오’ 원년 당시에 예언자 ‘다니엘’은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한 것”을 깨달았읍니다. (다니엘 9:1, 2) 그리고 분명히 ‘다니엘’이 그 햇수를 깨달은 것은 그 기간이 끝나기 십칠년이나 되는 오랜 기간 전이 아니라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칠십년 기간이 끝나기 직전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바사’ 왕 ‘고레스’ 삼년”까지는 살았던 연로한 예언자 ‘다니엘’은 자기가 그 기간의 길이를 정확하게 계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니엘 10:1) 그러므로 그 “칠십년”은 ‘스가랴’가 첫 환상을 본 기원전 519년까지 계속되지 않았읍니다.

23. 그 칠십년은 무슨 더 긴 기간의 첫 부분이었으며, 따라서 천사가 “언제까지”인가를 질문하였을 때 그는 무엇을 비교하고 있었읍니까?

23 그 잊을 수 없는 칠십년은 또한 이방인의 때 즉 “열국의 지정된 때”의 처음 칠십년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칠십년이 기원전 537년에 끝났을 때에 ‘예루살렘’에는 이방인의 때가 아직도 계속되어 이방인들에게 ‘예루살렘’이 짓밟히고 있었읍니다. (누가 21:24) 그러므로 분명히, ‘만군의 여호와여, 언제까지입니까?’ 하고 외친 천사는 여호와의 선민에 대한 그의 통박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전의 칠십년 기간을 회상하여 말하고 있었읍니다. 그는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대하여 오랫 동안 방심하여 왔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들에 대한 통박을 새롭게 하셨는가를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아직도 얼마나 있어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기타 ‘유다’ 도시에 자비를 보이실 것인가를 질문한 것입니다. 예언자 ‘스가랴’도 이 점을 알기 원하였읍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24. 여호와께서는 질문한 천사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으며,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하여, 그리고 이방 나라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셨니까?

24 ‘스가랴’는 만군의 여호와와 질문한 천사와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게된 것을 참으로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스가랴 1:13-15.

25. 왜 여호와께서는 그의 선민에 대하여 진노하셨으며, 그러나 그분은 왜 이방 열국에 대하여 진노하게 되셨읍니까?

25 여호와께 불순종한 이 선민들에게 진노하신 것은 정당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들에게 징벌하시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분은 ‘바벨론’과 그의 동맹군 및 동조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여 벌하셨읍니다. 그러나 “조금만 노”하셨읍니다. 한편, 시정의 도구로 사용된 이방 나라들은 그분의 선민에 대한 순수한 증오심에서, 또한 그 분과 그 분의 숭배에 대한 경멸의 표시로 지나치게 행동하였읍니다. 심술궂게도 그들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읍니다. 악의를 품고 그들은 가외에 고난을 더하였읍니다. 현대의 박해자들도 여호와의 숭배자들에게 그렇게 하기 일쑤였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열국을 심히 진노”하신다고 한 데에는 선하고 정당한 이유가 있었읍니다. 오늘날 국가주의적 정신을 가지고 있는 박해자들은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에 대하여 어떻게 하실 목적을 가지셨읍니까?

2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자비를 가지고, 신세]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스가랴 1:16.

27.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예루살렘’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박해자들에게 어떻게 증명할 것이었으며, 어떻게 먹줄이 그 곳에 쳐질 것이었읍니까?

27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에 대한 이방 나라들의 징계 행위는 실제 박해로 행해졌읍니다. 박해자들은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완전히 버리셨다고 생각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버리지는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이것을 박해자들에게 증명하기로 결정하셨읍니다. 이에 대한 상징으로 ‘예루살렘’은 영원히 황폐되지 않을 것이었읍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이 먼지와 부스러기를 떨고 일어나게 하고 그 곳에 사람이 다시 거주하게 하심으로써 자비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실 것이었읍니다. 그 곳에 집들이 다시 세워지고 그리하여 집을 건축하는 동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질 것이었읍니다. 건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물 즉 여호와의 성전도 그 곳에 건축될 것이었읍니다! 그렇게 되면 박해자들도, 그들의 거짓 신들도 쓰디쓴 패배감을 느낄 것이었읍니다!

28. 그러므로 여호와의 선택은 누구에게 분명히 나타나게 되어 있었으며,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28 복구 공사를 위한 하나님의 때는 도래하였읍니다. 이제 아무런 방해도 없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보이는 지상의 조직을 택하셨읍니다. 그 선택은 안일한 세상 열국이 노하든 안하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분명해 질 것이었읍니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비밀이 없었읍니다. 하나님의 결정과 선택에 사람들이 주의를 돌려야 함을 보이기 위하여 예언자 ‘스가랴’의 귀에 이러한 명령이 발하여졌읍니다.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후회하며, 신세]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셨다 하라.”—스가랴 1:17.

29. (ㄱ)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무엇을 그의 소유물이라고 주장하셨으며, 그는 어떻게 그러한 선택을 나타내실 것이었읍니까? (ㄴ) ‘예루살렘’은 일명 무엇이었으며, 왜 그리고 누가 그 곳에 거하였읍니까?

29 만군의 여호와께서 ‘바사’의 ‘유다’ 도의 여러 도시를 “나의 성읍들”이라고 부르신 것에 유의하십시오. 그 분은 그 도시들을 택하셨읍니다. 그 분은 그 도시들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주장하십니다. 그 분은 이러한 복구된 도시가 그 분으로부터 넘치도록 풍부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번영할 것입니다. 이러한 도시에는 각기 지방적 다스림을 위한 장로의 회가 있었읍니다. 그러한 재조직된 도시들은 땅의 수도를 가질 것이었읍니다. 그 제일의 도시는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도시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 수도였던 도시 즉 여호와의 백성이 재건한 ‘예루살렘’일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적으로 선택한 도시도, 제국이 선택한 도시도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신권적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위대하신 신권 통치자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택한 이 도시는 ‘시온’이라고도 불리웠읍니다. 왜냐 하면 ‘시온’ 산에 ‘다윗’의 궁전이 소재하였었기 때문입니다. 그 궁전 옆에 ‘다윗’은 여호와의 언약궤의 임시 안치소로 장막을 친 바 있읍니다. 재건된 ‘시온’ 혹은 ‘예루살렘’에는 도 전체를 관할하는 총독부가 소재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총독 ‘스룹바벨’은 그 곳에 거주하였읍니다.

30. 어떻게 그리고 언제 여호와께서는 “‘시온’에 대하여 후회”하셨읍니까?

30 그 곳 거민들이 계속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시온’ 즉 ‘예루살렘’이 ‘바벨론’인들에게 멸망되어 칠십년 동안 황폐되도록 명하셨읍니다. 정하신 때에 여호와께서는 황폐된 ‘시온’에 대하여 후회하셨읍니다. 이것은 ‘시온’을 멸망하게 하신 것이 그분의 잘못이나 실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뜻이 성취되고 그의 목적이 달성되어 자신을 입증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의 분노는 가라앉을 수 있었고 자신을 위로하실 수 있었읍니다. 이제 그 분은 자신의 진노를 받은 대상에 대하여 슬퍼하실 수 있었고 서슴치 않고 그것에 대하여 동정하고 그것을 위로하실 수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아무 실수도 인정하시지 않고도 여호와께서는 칠십년 황폐의 끝에 ‘시온’에 대하여 후회 하셨읍니다. 아무 비행도 씻을 필요가 없이, 부당하게 입힌 아무 손해도 배상할 필요가 없이 여호와께서는 자비롭게도 포로되었던 백성을 돌아오게 하셨고 그들로 ‘시온’을 재건케 하셨읍니다. 멸망의 때는 지나갔고 건설의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정심이 놀랍게 나타났읍니다!

31. (ㄱ) 어떤 나라가 ‘예루살렘’이 완전히 도괴되어야 한다고 외쳤으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읍니까? (ㄴ) 한 도시에 대한 여호와의 선택을 큰 소리로 외칠 때는 언제였읍니까?

31 기원전 607년에 ‘시온’ 즉 ‘예루살렘’을 도괴할 때에 ‘에돔’ 사람들은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는 말로 ‘바벨론’ 정복자들을 선동하였읍니다. (시 137:7) 조소하는 적들은 ‘시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도시를 영원히 버리셨으며, 자기들처럼 그 분께서 ‘예루살렘’을 다시는 선택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그의 은혜로운 예언을 잊거나 부인하실 수 없었읍니다. 충실하시게도 그 분은 “‘예루살렘’을 택”하셨으며 그 선택은 수년 후, ‘스가랴’가 첫 환상을 본 기원전 519년에 유효하였읍니다.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백성들에 의해 건설되었을 뿐 아니라 성전 기초가 놓였고 상부 건축 공사가 이미 시작되었읍니다. 성전이 완공되면 여호와께서는 그 곳에 자신의 이름을 두실 것이며 그분은 영으로 임재하실 것이고 그분의 온전한 숭배가 그곳에서 회복될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만국에 증명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원전 519년에도 그분의 선택을 큰소리로 외칠 때였읍니다!

32. 현대 ‘예루살렘’에서 오늘날 스가랴 1:17이 성취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2 현대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읍니까? ‘아랍’과 ‘이스라엘’은 1948년과 1967년에 현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였지만 현대 ‘예루살렘’에는 그와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읍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서부 성벽(‘코텔 마아라비’) 아래에서 울거나 기도문을 외우고 있고, 그들보다 약 18‘미터’가량 높은 곳에 있는 지역에서는 회교도들이 ‘바위의 도옴’과 ‘모스크 엘악사’에서 숭배하고 있읍니다. 여기서 남쪽으로 성서에 나오는 ‘시온’ 산은 현 성벽 밖에 폐허로 남아 있읍니다. 현 상태를 정당하게 고려하신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이름과 숭배를 위한 장소로 땅의 ‘예루살렘’을 택하지 않으셨읍니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스가랴 1:17의 현대 성취를 찾아야 합니다.

33. (ㄱ) ‘스룹바벨’이 고대 ‘예루살렘’을 다스린 것은 오늘날 무엇에 상응합니까? (ㄴ) 그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33 오늘날 지상에는 ‘예루살렘’ 총독 ‘스룹바벨’이 한 바와 같은 성전 건축 공사가 없읍니다. 그러나 더 큰 ‘스룹바벨’ 즉 하늘에서 영화롭게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 분은 히브리 12:22에서 부른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총독으로 다스리십니다.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찼을 때에 그 분은 그 곳에 통치하는 왕으로 즉위하셨으며 지상에 있는 그의 참되고 충실한 제자들을 다스리십니다. 그러한 제자들은 결코 그리스도교국의 일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국은 모순되는 수백가지 종파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계 평화와 안전의 보존자로서 국제 연합에 집착하고 있으며 그의 손에는 이 세상의 비그리스도교적 전쟁으로 말미암아 피가 가득합니다. 하늘의 더 큰 ‘스룹바벨’은 그분이 숭배하는 동일한 하나님 즉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다스리십니다. 이들 숭배자들도 이 하나님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이 될 의무가 있읍니다. (이사야 43:10-12; 44:8) 그들이 바로 더 큰 ‘스룹바벨’의 정부의 자리인 “하늘의 ‘예루살렘’”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34. 1914-1918년에 있었던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사태는 어떻게 여호와께서 영적 ‘시온’ 즉 ‘예루살렘’을 버리신 것같이 보였읍니까?

34 이러한 모든 성경적 관련성 때문에 지상에 있는 이러한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위에 있는 ‘시온’ 산과 “하늘의 ‘예루살렘’”을 대표합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일은 상징적 ‘시온’ 즉 ‘예루살렘’에 일어난 것과 같았읍니다.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년)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은 더 크신 ‘스룹바벨’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에 고착한다는 이유로 그리스도교국의 소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읍니다.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에 대한 그들의 증거 사업은 방해를 받았고 최소 한도로 위축되었읍니다. 그들은 전쟁으로 혈안이 된 그리스도교국의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음으로 육체적 무기를 들고 서로 대항하여 싸우는 일은 없었지만 그들 상호간의 국제적 협조는 그들의 국제 조직을 파괴하려는 적들에 의하여 깨어졌읍니다. 그들은 전세계에서 고통을 당하였으므로 마치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영적 ‘시온’ 즉 ‘예루살렘’을 버리신 것처럼 보였읍니다.

35. 전후 기간 시초에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영적 ‘시온’ 즉 ‘예루살렘’을 대표할 자들을 어떠한 두 집단 중에서 선택하셨읍니까?

35 돌연 제1차 세계 대전은 1918년 11월에 휴전으로 끝나고 전후 기간이 시작되었읍니다. 이제 평화시의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읍니다. 그 해 12월에 그리스도교국의 종교가들은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 기구를 옹호하기 시작하였읍니다. 미국 그리스도교회 연방 협의회는 제창된 국제 연맹이 “지상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왕국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이 점을 공개적으로 분명히 하였읍니다. 제창된 국제 연맹의 모든 회원국이 수백만명의 전사자들의 피에 더럽혀진 나라들인데도 그렇게 선언하였읍니다. 연방 협의회의 그 거창한 선언, 그 경건한 종교적 발언은 옳았읍니까? 분명히 그 때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실 때였읍니다. 그는 영적 ‘시온’ 즉 ‘예루살렘’의 대표자로 누구를 선택하실 것이었읍니까? 피로 물든 박해자들이 있는 그리스도교국을 택하실 것입니까, 아니면 더 큰 ‘스룹바벨’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에 고착하는 박해받는 자들을 택하실 것입니까? 그 분은 누구를 자신의 증인들로 조직하실 것입니까?

36.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여호와께서 그리스도교국을 택하셨는지의 여부를 증명하는 어떠한 질문이 있읍니까?

36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종교적 혼란과 타락이 전후 1919년 당시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리스도교국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합니까? 오늘날의 사실들은 그 분이 그의 “성읍들”을 넘치도록 풍부하게 하셨음을 부정할 여지없이 증명합니까? 그의 영적 성전은 숭배의 전으로 그리스도교국 내에 재건되어 있읍니까?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교국은 수백가지 교파를 통하여 여호와를 영적 성전에 계신 하나님으로 숭배합니까? 누가 그리스도교국의 증인으로 나서서 그렇다고 명백히 대답하겠읍니까? 그러한 증인이 없으므로 우리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37. 상태의 변화와 관련하여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의 주의를 이끄는 것은 무엇입니까?

37 어디를 보아야 합니까? 여호와께서 분명히 누구를 택하셨는가를 아는데 있어서 이름만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선택 받은 자들을 식별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전후의 봉사를 위하여 어떻게 조직하였으며, 무엇을 선포하였고 세계 무대에서 타협함이 없이 무엇을 옹호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행하여 온 일입니다! 물론 “자비”를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돌아오”셨는가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이 전후에 깨어나기 전의 그들의 영적 상태를 고려할 때 이러한 것을 인식할 수 있읍니다.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의절되고 배척받은 상태에서 그들은 일어났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거의 죽은 상태에서 일어났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만 아니라 제2차 대전 중에도 그리고 그 두 세계적인 대학살전 사이에도 그들을 박해하였으며 그들의 종교 조직을 파괴하려 했고 귀찮은 종교 문제로 여기고 영원히 그들을 멸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읍니다. 그러면 그처럼 종교적 박해와 반대를 받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받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38. 전후 기간 중 지상에 있는 누가 여호와의 선택을 받은 자들임이 증명되었으며, 그들을 식별하게 해주는 무슨 특징이 있읍니까?

38 1914-1918년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역사적 사실은 그들을 식별하게 해줍니다. 오늘날 국제 무대에서의 그들의 역할은 그들을 뚜렷이 구별하여 줍니다. 그들은 그들이 숭배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 즉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인 증인들입니다. 이 국제적으로 경멸받는 집단, 헌신하고 침례받고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은 종교적으로 무력한 상태에 있다가 종전 후 1919년에 여호와의 봉사로 전진하여 세계적 활동 무대에 올라섰읍니다. 정치적, 종교적, 군사적 및 사회적 세계가 국제 연맹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 때 기름부음을 받은 이 남은 자들은 온 인류의 유일한 희망으로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을 지지하는 편에 굳게 섰으며 그들의 이전 역사상 전례없는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행로를 시작하였읍니다. 이 “좋은 소식”의 전파는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 24:14(신세)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이라고 예언 하신 바와 같이 이루어지고 있음이 증명되었읍니다. 그렇습니다. 현재 165개 언어로 전파되고 있읍니다!

39. (ㄱ) 이 공적은 여호와께서 어디로 무엇을 가지고 돌아오셨기 때문에 가능하였읍니까? (ㄴ) 이들은 무엇에 이르렀으며, 그들은 어디에서 거룩한 봉사를 하고 있으며, 누가 그들에게 가담하고 있읍니까?

39 세계 역사상 이 커다란 공적은 인간의 힘과 능력과 지혜와 용기와 인내심만으로 이룩된 것이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언된 봉사와 증거를 하도록 그들을 택하신 것이 주된 요인이었읍니다. 그들이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 분께 전적으로 헌신하였을 뿐 아니라 그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에게 자비를 나타내셨고 “자비”를 가지고 그들에게 “돌아오”셨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름으로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르고 있읍니다. 그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이해력과 분별력을 가지고 여호와의 영적 성전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그들의 천적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는 영적 제사장보로 봉사하며 그 분을 숭배하고 있읍니다. 현재 그들의 숭배에는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가담하고 있읍니다. 이들은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평화를 좋아하는 양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언 그대로 입니다! (계시 7:9-17) 우리는 그들을 208개 나라와 섬에서 만날 수 있읍니다.

40. (ㄱ) 여호와께서 이들 회중들을 “나의 성읍들”이라고 부르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들은 어떻게 조직되었읍니까? (ㄴ) 그 “성읍들”은 어떠한 면으로 ‘넘치도록 풍부하게 되고’ 있읍니까?

40 그들에게는 도시와 같은 정치적 공동체가 없읍니다. 그들의 상징적 “성읍들”은 예수 그리스도 곧 더 큰 ‘스룹바벨’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제자들의 종교적 회중들입니다. (마태 28:19, 20) 이들은 성경에 약술된 신권 통치에 따라 조직되었으며 고대 ‘이스라엘’의 도시와 같이 이 회중에는 각기 원로의 회 혹은 “장로의 회”가 있읍니다. 또한 각 장로의 회를 돕는 “봉사의 종들”(‘디아코노이’)이 있읍니다. (디모데 전 3:1-13; 4:14; 디도 1:5-9; 빌립보 1:1; 베드로 전 5:1-4) 여호와께서는 적절하게도 이 그리스도인 회중들을 “나의 성읍들”이라고 부르실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분은 참으로 그들의 조직과 성장에 책임이 있으시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분께 무조건 헌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이러한 상징적 “성읍들”을 조사하여 보면 그들은 영적 의미로 그 분으로부터 ‘넘치도록 풍부하게 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산더미 같은 증거로 판단하여 볼 때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하늘의 ‘예루살렘’의 대표자로 선택하셨읍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 분께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스가랴 1:16, 17의 예언이 그처럼 성취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둘째 환상

41. (ㄱ) 박해자들에게 이미 임한 일이 사태의 끝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ㄴ) ‘스밧’월 24일에 받은 환상에서 ‘스가랴’는 무엇에 관하여 질문하였읍니까?

41 그러나 박해자들 및 만군의 여호와의 헌신한 숭배자들을 박해하고 멸절시키려는 자들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오늘날 세계 상태를 볼 때 우리는 이미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찰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박해자들의 현재의 상태는 문제의 종말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마침내 무슨 일이 닥칠 것인지 알 수 있도록 예언자 ‘스가랴’는 ‘바사’ 왕 ‘다리오’ 1세 통치 제2년 즉 기원전 519년 십일월(‘스밧’월), 같은 날인 이십 사일에 첫 환상에 이어 그 직후 또 하나의 환상을 보았읍니다. ‘메대-바사’ 제국은 성서 역사상 네째 세계 강국이었으며, 이 둘째 환상에 그 제국은 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환상을 본 ‘스가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뿔이 보이기로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니라.”—스가랴 1:18, 19.

42. 그 “뿔”은 무엇을 상징하며, 뿔이 넷이 있다는 데에는 무슨 뜻이 있읍니까?

42 예언자 ‘스가랴’는 영감받은 성경에서 뿔이 한 나라나 제국 정부의 권세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상징적인 그 네개의 뿔은, 그 때까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거민들을 흩어지게 하고 그 도시들을 파괴한 네개의 나라 혹은 제국을 반드시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읍니다. 성경에서 넷이라는 숫자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읍니다. 예를 들면 바람과 관련하여 넷이라는 말을 사용할 경우 하늘의 네 바람은 하늘의 모든 부분 혹은 사방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또, 네 바람은 지구의 모든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에스겔 37:9; 다니엘 7:2) 여호와의 예언자 ‘에스겔’이 본 여호와의 천상의 병거에 달린 네 바퀴는 하나님의 병거의 균형잡힌 상태를 시사하는 것이었읍니다. (에스겔 1:15, 21) 따라서 네 뿔은 문자 그대로 네 나라가 아니라 관련된 모든 정부의 권세를 의미하는 것이며 어느 방향도 빠짐이 없기 때문에 불균형이 없는, 모든 방향으로 활동하는 모든 정부 권세를 의미할 수 있었읍니다.

43. 그러므로, ‘애굽’, ‘앗수르’ 및 ‘바벨론’ 외에도 어떠한 다른 정치 국가들이 그 상징적 “네 뿔”에 포함되었을 것입니까?

43 그러므로 세계 강국이었던 ‘애굽’, ‘앗수르’ 및 ‘바벨론’만이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어지게 한 것이 아니고 ‘에돔’과 기타 동맹국 같은 나라들도 여호와의 선민들에게 그러한 악한 행동을 하였읍니다. 그들은 모두 박해 행위에 가담하였읍니다. 그 정치 조직들은 그들의 권력 특히 군사력을 여호와의 선민들에게 악의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였읍니다.—스가랴 1:15.

44. 여호와께서는 안일한 이방 나라들에 대하여 왜 크게 진노하셨읍니까?

44 그 이교 정치 국가들은 모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청종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은 백성에 대하여 징계하시려고 생각하신 정도를 넘었읍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은 행동의 여유를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악의와 원한과 질투와 심술을 나타내는데 사용하였읍니다. 그러한 이유로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스가랴’가 들을 수 있도록 천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스가랴 1:15)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백성에게 복수감 혹은 악의를 만족시켰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는 그러한 나라들에 대하여 어떻게 큰 진노를 나타낼 것을 목적하셨읍니까? 그 분은 ‘스가랴’의 눈 앞에 전개된 환상의 다음 부분에서 그 방법을 이러한 말씀으로 알리십니다.

45. 여호와께서는 ‘스가랴’에게 환상 가운데서 안일한 나라들에 대한 자신의 진노를 표현하시기 위한 수단으로 무엇을 보이셨읍니까?

45 “때에 여호와께서 공장 네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내가 가로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매 대답하여 가라사대 그 뿔들이 ‘유다’를 헤쳐서 사람으로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매 이 공장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에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헤친 열국의 뿔을 떨어치려 하느니라 하시더라.”—스가랴 1:20, 21.

46. (ㄱ) 그러한 “공장”이 왜 넷이 있었으며, 그들의 직업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명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누가 그들을 보냈으며, 이것은 박해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46 이러한 공장(工匠)들 즉 공예인이 수자에 있어서 넷이므로 네 뿔과 맞먹습니다. 그들의 수는 네 뿔의 경우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경우에 관련되어 있고 균형잡히고 온전하고 충분한 방법으로 조직된 모든 “공장”을 상징할 것입니다. 그들은 공장 즉 공예인들이므로 파괴주의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주로 건설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파괴시키는 일에 사용될 수 있으며, 그들은 그들의 작업 도구를 그 목적에 사용할 수 있읍니다. 이것이 환상에 나타난 그들의 사명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의 공장이었읍니까? 그들을 누가 보냈읍니까? 분명히 만군의 여호와께서 보내셨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여호와의 백성들과 ‘유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흩어지게 한 네 뿔의 권세를 파괴하기 위해서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기 위하여 사용한 것은 분명히 그들의 망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박해를 가하는 “뿔”에게는 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 박해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어야 하였읍니다.

박해자들에게 하나님의 주의가 돌려지다

47. 그 박해한 나라들에게 그 후에 일어난 일은 세상사의 자연적 과정으로 보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47 여호와의 크신 진노는 박해하는 나라들 위에 어김없이 표현되었읍니다. 고대 역사에 의하면 고대 여호와의 선민을 악의적으로 학대한 나라들이 그 후로 잘되지 못하고 재난을 당하였읍니다. 오늘날 그러한 나라들은 어디에 있읍니까? 이처럼 재난을 당한 것은 전적으로 우연히 발생하는 자연적인 세상사의 진전이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그러한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였읍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 교훈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48. (ㄱ) ‘로마’는 기원 제1세기에 누구의 박해자가 되었으며, 어떻게 박해를 계속하였읍니까? (ㄴ) ‘로마’는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어느 부분의 머리입니까?

48 통용 기원 제1세기에 영적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 ‘베들레헴-유다’의 예수의 인도 아래로 들어오게 되었읍니다. 그 영적 ‘이스라엘’은 할례받은 육적 ‘이스라엘’ 나라를 대치하였읍니다. ‘아브라함’의 참 상속자 ‘이삭’이 ‘이스마엘’을 대신하자 ‘이스마엘’이 ‘이삭’을 박해한 것처럼 육적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을 형성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박해하였읍니다. 육적 ‘이스라엘’은 이 때문에 좋지 않은 결과를 당하였읍니다. 즉 그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은 기원 70년에 멸망되고 ‘유다’ 도의 생존자들은 흩어졌으며 대부분은 포로가 되었읍니다. (갈라디아 4:21-31; 데살로니가 전 2:14-16; 창세 21:1-14) 기원 64년에 ‘로마’에 대화재가 있은 후, ‘로마’는 그리스도인 영적 ‘이스라엘’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였읍니다. ‘로마’는 이교 ‘로마’ 제국의 여왕으로서 뿐 아니라 신성 ‘로마’ 제국의 종교적 여왕으로서도 이 박해를 계속하였읍니다. 그 신성 ‘로마’ 제국은 십구세기 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시대에 종말을 고하였읍니다. 그러나 ‘로마’는 아직도 종교적 그리스도교국의 가장 크고 가장 강하고 가장 신도가 많은 부분의 머리입니다. 그러나 ‘로마’는 그러한 입장에서 “요동”해 왔읍니다.

49. 누가 ‘로마’의 뒤를 이어 박해하는 세계 강국이 되었으며, 누구를 통하여 언제 이것이 예언되었읍니까?

49 십팔 세기에 성서 역사상 여섯째 세계 강국인 ‘로마’는 성서 예언에 나타난 일곱째이며 최대의 세계 강국인 대영 제국에게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대영 제국의 역사를 보면 그 제국 역시 만군의 여호와의 영적 ‘이스라엘’을 박해하고 흩어지게 하는 죄를 범하여 왔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미국도 마찬가지였으며 미국은 후에 일곱째 세계 강국에 융화되어 영미 양대 세계 강국을 형성하였읍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더욱 심하게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그러한 박해를 받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것이 사로잡혀간 예언자 ‘다니엘’에게 “‘벨사살’ 왕 삼년에” 예언적 상징물로 생생하게 예언된 일입니다. 즉 그때는 고대 ‘바벨론’이 무너지기 전이며 따라서 ‘스가랴’가 네 뿔과 네 공장의 환상을 보기 이십여년 전이었읍니다. (다니엘 8:1, 9-12, 23-2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상징적 “네 공장”이 ‘스가랴’가 환상을 본지 2,490여년 후에 “열국의 뿔을 떨어”칠 필요가 있을 것을 아셨읍니다.

50. 일곱째 세계 강국 외에 어떤 다른 “뿔들”이 현대 영적 ‘이스라엘’을 박해하는 데 참여하였읍니까?

50 현대에는 두 뿔가진 영미 양대 강국 뿐 아니라 다른 현대의 상징적 “뿔들”도 박해와 억압으로 영적 ‘이스라엘’을 흩어지게 하는데 가담하였읍니다. 현대에 가장 난폭한 박해의 한 경우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하의 제3독일 제국에서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받은 잔혹한 학대였읍니다. 기타 주축국들은 그와 합세하여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들의 헌신한 동료들을 악의적으로 억압하였읍니다. 그 후로 “북방 왕”을 형성하는 기타 정치적 “뿔들”은 여호와의 충실한 숭배자들을 압박하고 찌르고 위협하였읍니다.

51. 언제 그리고 누가 “북방 왕”에 의한 박해를 예언하였으며,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박해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셨음이 문명합니까?

51 ‘바벨론’이 무너진 후 “‘바사’ 왕 ‘고레스’ 삼년”에 여호와의 천사는 우리 시대에 상징적 “북방 왕”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을 그처럼 박해하여 고통을 줄 일을 예언자 ‘다니엘’에게 예언하였읍니다. (다니엘 10:1, 18-21; 11:29-36, 44, 45) 이로 보건대 여호와께서는 과거에 그의 모형적 백성들을 박해한 “뿔들”만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미래, 즉 현대에 실체적 백성들을 박해할 “뿔들”도 생각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5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누구를 미리 경고하기 위하여 그의 모형적 백성들의 과거의 경우를 사용하셨으며, 이것이 계시록 7:1-3에 있는 ‘요한’의 환상 가운데 어떻게 지적되어 있읍니까?

5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충실한 숭배자들의 정당한 영적 토지에 대항하여 ‘뿔을 든’ 현대 열국에게 미리 경고하시기 위하여 자기의 모형적 백성의 과거의 박해의 경우를 사용하셨읍니다. 그러한 모든 열국을 치시는 데 그분은 자기의 상징적 “공장”들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환상 중에 나오는 “공장”의 수가 넷이라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사도 ‘요한’이 기원 1세기 말에 환상에서 본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는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시 7:1-3.

53. 그 “네 바람”이 놓이면 그 결과로 “네 뿔”에는 무슨 일이 있을 것이며, 무엇이 여호와의 박해받는 숭배자들을 강화하여 인내하게 할 것입니까?

53 네 바람이 놓이면 전세계적인 폭풍이 일어나 땅의 모든 나라들이 해를 입을 것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맞은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항하여 열국이 든 상징적 “뿔들”은 멸망될 것입니다. 이것은 “공장 네명”이 모든 나라의 상징적 “네 뿔”을 망치로 두들겨 부수는 것으로 상징된 것과 같은 결과를 낼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박해받는 숭배자들에게 모든 “자비”를 가지고 돌아오시는 것과는 반대로, 박해자들에게는 그 분의 자비 없는 심판의 집행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을 온전히 믿을 때 박해받는 모든 사람들은 더욱 힘을 얻고 끝까지 인내할 것입니다.

[연구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