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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로부터 시험하고 가려내는 일

내부로부터 시험하고 가려내는 일

제28장

내부로부터 시험하고 가려내는 일

여호와의 증인의 현대 조직은 발전하고 성장해 오면서 개개인의 믿음에 심각한 시험이 되는 상황을 많이 겪었다. 타작하고 까부르는 일을 통해 밀과 겨를 분리하듯이, 그러한 상황들은 누가 참 그리스도인인지를 밝혀 주는 역할을 하였다. (비교 누가 3:17) 조직과 연합한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개인적 이득을 위해서 봉사하고 있었는가? 그저 불완전한 인간의 추종자들에 불과하였는가? 아니면 겸손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나타내며, 여호와께 대한 정성에 있어서 온전한 사람들이었는가?—비교 역대 하 16:9.

1세기에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도 그와 비슷한 믿음의 시험을 겪었다.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그들이 충실하면 왕국에 자신과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 5:3, 10; 7:21; 18:3; 19:28) 그러나 그분은 그들이 언제 그 상을 받게 될 것인지는 알려 주지 않으셨다. 그들의 전파 활동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냉담이나 심지어 적개심에 직면해서도 그들은 그 왕국의 권익을 생활에서 계속 충성스럽게 첫째가는 관심사로 삼을 것인가? 모두가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다.—디모데 후 4:10.

일부 사람에게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방법이 시험이 되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전통을 노골적으로 배척하시자 그들은 실족하였다. (마태 15:1-14) 예수의 제자라고 공언한 많은 사람조차도 그분이 가르치시는 방법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한번은 그분이 희생으로 바쳐지는 자신의 육체와 피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을 논하시자 많은 제자는 그분이 사용하신 비유적인 말에 충격을 받았음을 나타냈다. 더 설명해 주시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들은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다.—요한 6:48-66.

그러나 모두가 돌아선 것은 아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설명한 바와 같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요한 6:67-69)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은 예수야말로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목적에 관한 진리를 나타내는 데 사용하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갖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요한 1:14; 14:6) 그렇지만 믿음의 시험은 계속되었다.

예수께서는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 사도들과 그 외 사람들을 회중의 목자들로 사용하셨다. 이들은 불완전한 사람들이었으며, 때때로 그들의 불완전성은 주위 사람들에게 시험이 되었다. (비교 사도 15:36-41; 갈라디아 2:11-14) 반면에 탁월한 그리스도인들을 흠모하는 마음이 지나쳐서 “나는 바울 편”이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나는 아볼로 편”이라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다. (I 고린도 3:4, 「새번역」) 그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망각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심각한 문제들을 예언하면서 심지어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사도 20:29, 30)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종 가운데 “지은 말”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하는 거짓 교사들이 있을 것임을 경고하였다. (베드로 후 2:1-3) 분명히 마음에 있는 것을 드러내는, 믿음과 충성에 대한 시험이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의 현대 역사 속에서 시험하고 가려내는 일이 발생한 것은 놀라울 것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이 실족한 사람들쟁점이 된 문제들에 대해서 놀랐다.

그들은 참으로 대속을 인식하였는가?

1870년대 초에 러셀 형제와 그의 동료들은 하나님의 목적에 관한 지식과 인식에 있어서 자라갔다. 당시는 그들이 영적으로 새 힘을 얻는 시기였다. 그러나 그 후 1878년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충성은 중대한 시험을 겪게 되었다. 예수의 육체와 피가 지닌 희생의 가치가 쟁점이 되었는데, 예수의 1세기 제자들 중 많은 사람도 바로 그 가르침에 실족한 바 있다.

단 2년 전인 1876년에 C. T. 러셀은 뉴욕 로체스터의 N. H. 바버와 함께 일하는 관계를 맺었다. 두 사람의 연구 그룹은 합병되었다. 러셀은 바버의 잡지 「아침의 전령」(Herald of the Morning)을 다시 인쇄할 수 있는 자금을 제공하였는데, 바버가 편집인이었고 러셀이 부편집인이었다. 그들은 또한 Three Worlds, and the Harvest of This World(「삼 세계와 현 세계의 추수」)라는 제목의 서적도 함께 생산하였다.

그러던 차에 돌발 사태가 벌어졌다! 「아침의 전령」 1878년 8월 호에서 바버는 베드로 전서 3:18과 이사야 53:5, 6과 히브리서 9:22 같은 성구들을 무시하는 기사를 쓰면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전체 개념은 불쾌한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나중에 러셀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가슴 아프고 놀라운 일로서, 바버 씨는 ·⁠·⁠· 「전령」에 속죄 교리를 부인하는—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담과 인류의 대속값임을 부인하는—기사를 썼는데, 그 기사에서 그는 핀으로 파리의 몸을 꿰뚫어 고통을 주어 죽게 하는 것이 자기 자녀의 비행에 대한 정당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할 부모가 세상에 없듯이,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간의 죄의 형벌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하였다.” *

이것은 중대한 일이었다. 러셀 형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에 관하여 성서에서 명백하게 말한 내용에 충성스럽게 고착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 철학에 굴복할 것인가? 당시에 러셀은 26세에 불과했고 바버는 훨씬 연장자였지만, 러셀은 담대하게도 바로 다음 호 「전령」에 그리스도의 피가 지닌 속죄 가치를 강력하게 변호하는 기사를 쓰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라고 불렀다.

그 다음에 그는 「전령」의 또 다른 부편집인인 J. H. 페이턴에게 그리스도의 피는 속죄의 기초라는 믿음을 뒷받침하는 기사를 써 줄 것을 부탁하였다. 페이턴은 그 기사를 썼는데, 그 기사는 12월 호에 발간되었다. 그 문제에 관하여 성경을 사용하여 바버와 함께 추리하려고 반복적으로 노력하였지만 성과가 없자 러셀은 그와 결별하고 그 잡지에 대한 지원도 중지하였다. 1879년 7월에 러셀은 새로운 잡지 Zion’s Watch Tower and Herald of Christ’s Presence(「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을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잡지는 시초부터 대속 마련을 특별히 옹호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2년 후 당시에 「파수대」의 여행하는 대표자로 봉사하고 있던 페이턴도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였고, 그 후 책(「새벽」[Day Dawn]이라는 제목의 그의 두 번째 책)을 발행하였는데, 그 책에서 그는 아담이 죄에 빠져 들어갔으며 따라서 구속자가 필요하다는 믿음을 거부하였다. 그는 주 자신도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죄의 경향을 극복하는 방법을 생활로써 보여 준 분에 불과하다고 추리하였다. 1881년에 또 한 동료였던 A. D. 존스는 「파수대」와 유사하게,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의 더 단순한 부면들을 다루겠다는 생각으로 한 정기 출판물(「시온의 샛별」[Zion’s Day Star])을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1년이 못 되어 존스의 출판물은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을 부인하였으며 그 다음 또 1년이 못 되어 성서의 나머지 부분도 모두 배척하였다. 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그들은 개인적인 이론과 인기 있는 인간 철학의 매력에 이끌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떨어져 나가고 만 것이다. (비교 골로새 2:8) A. D. 존스가 발행하던 출판물은 잠깐 동안 나오다가 사라져 버렸다. J. H. 페이턴은 자기 나름의 견해에 따라 복음을 논하는 잡지를 발행하기로 결정하였지만, 발행 부수는 매우 한정된 것이었다.

러셀 형제는 이 모든 일이 「파수대」 독자에게 끼치게 될 영향에 대해 깊이 염려하였다. 그는 그것이 각 사람의 믿음에 시험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는 자신이 비성경적인 가르침을 비평하는 것을 경쟁심의 발로로 보는 사람들이 있음을 잘 알았다. 그러나 러셀 형제는 자신을 좇는 추종자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 벌어진 일들에 관하여 그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이러한 시련과 가려내는 일의 목적은 마음의 바라는 바가 비이기적인 사람들, 주께 전적으로 무조건 성별된 사람들,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고 그분의 지혜와 방법과 말씀에 대한 확신이 매우 강하여 다른 사람들의 궤변에 의해서든 자신의 계획이나 사상에 의해서든 주의 말씀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 사람들 모두를 선별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보이는 통로를 사용하신 것인가?

물론 여러 종교 조직이 있으며, 성서를 어느 정도 사용하여 가르치는 사람도 상당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찰스 테이즈 러셀을 사용하신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러셀 형제가 죽었을 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보이는 통로가 끊긴 것인가? 이러한 것들은 심각한 쟁점이 되어 한층 더 시험하고 가려내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C. T. 러셀이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스럽게 고착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시지 않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예레미야 23:28; 디모데 후 3:16, 17)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보고도 두려워서 전파하지 않는 사람은 사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에스겔 2:6-8)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관한 지식을 이용하여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도 사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요한 5:44) 그러므로 제반 사실은 무엇을 알려 주는가?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이 찰스 테이즈 러셀이 수행한 일, 그가 가르친 내용, 그렇게 가르친 이유 그리고 그 결과를 살펴볼 때, 그가 의미 심장한 시기에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에 의해 참으로 사용되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견해는 단순히 러셀 형제가 대속과 관련해 확고한 입장을 취한 것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국의 일부 기본 신앙을 담고 있는 신조들이 영감받은 성경과 상충되기 때문에 그가 그러한 것을 과감하게 배척하였다는 사실도 감안한 것이다. 이러한 신앙들 중에는 삼위일체 교리(고대 바벨론에서 유래하였으며 성서 기록이 완료되고 나서 오랜 후에야 소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채택된 것)와 인간 영혼이 선천적으로 불멸성을 지녔다는 가르침(플라톤 철학에 압도된 사람들이 채택한 가르침으로서, 그로 인해 영혼이 지옥불에서 영원한 고초를 겪는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었음)이 있었다.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학자도 그러한 교리들이 성서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 일반적으로 설교단에서 설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러셀 형제는 성서에서 실제로 말하는 내용을 기꺼이 들으려고 하는 사람 모두에게 그 내용을 전해 주기 위해 강렬한 운동을 벌였다.

또 주목할 만한 것은 러셀 형제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운 매우 의미 심장한 다른 부면의 진리에 대해 취한 조처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영체로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게 돌아오실 것임을 깨달았다. 일찍이 1876년에 그는 1914년이 이방인의 때가 끝나는 해가 될 것임을 인식하였다. (누가 21:24) 다른 성서 학자들도 그중 얼마의 것들을 깨닫고 옹호하였다. 그러나 러셀 형제는 당시로서는 그 외의 여하한 사람이나 그룹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의 규모로 그러한 진리를 전세계에 알리는 일에 자신의 모든 자산을 바쳤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집필 내용을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과 주의 깊이 비교 검토할 것을 강력히 권하였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자기들이 배우고 있는 것이 그 말씀과 온전히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의 편지를 보낸 한 사람에게 러셀 형제는 이렇게 회답하였다. “영감받았고 또 그런 사람이라고 공언한 사도들에게서 받은 내용을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확인하는 것이 합당하였다면 우리가 이러한 가르침들이 사도들 및 우리 주의 교훈의 줄거리와 밀접히 부합된다는 것을 온전히 확신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훨씬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한 가르침을 저술한 본인은 영감받았다고 공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주의 인도를 받아 그분의 양떼를 먹이는 일에 사용되고 있을 따름이라고 공언하기 때문입니다.”

러셀 형제는 초자연적인 능력이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가르친 내용에 대한 영예를 차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뛰어난 성서 연구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성경을 놀라울 정도로 이해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왔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말하지 않고 다른 어떤 대행자도 찾을 수 없다면 돌들이라도 소리지를 것이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에 설명되어 있는 내용을 지적하는 집게손가락과 같은 존재라고 불렀다.

찰스 테이즈 러셀은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러셀 형제는 자신에게 지나친 영예를 돌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기 위하여 1896년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복음을 전하는 봉사의 직무에서 어느 정도 사용되어 왔으므로, 여기서 우리가 사적인 대화에서 그리고 이전에 본지 지면에서 자주 언급한 내용을 말하는 것은 적절할 것이다. 즉 우리는 동료 종들과 믿음의 전 가족의 사랑과 동정심과 신뢰심과 동료감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바이지만, 우리 자신이나 저술물에 대한 경의나 숭상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목사나 랍비라고 불리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또한 어느 것도 우리의 이름을 따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죽음이 가까워 올 때에도 그는 배워야 할 것이 더는 없다거나 해야 할 일이 더는 없다는 견해를 취하지 않았다. 그는 Studies in the Scriptures(「성경 연구」) 제7권을 준비하는 일을 자주 언급하였다. 죽기 전에 그 책에 관한 질문을 받고 그는 여행하는 동료인 멘타 스터전에게 “다른 누군가가 그 책을 집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유언에서 그는 주께 온전히 바쳐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위원회의 인도하에 「파수대」가 계속 발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그는 그러한 봉사를 하게 될 사람들은 “성경 교리—특히 대속에 관한 교리—즉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 및 영에 대한 순종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가납되는 일이나 영원한 생명의 구원도 없다는 교리에 철저하게 충성스러운”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러셀 형제는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서 수행되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을 인식하였다. 1915년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밴쿠버에서 열린 문답 회기에서 그는 당시에 살아 있던 그리스도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이 하늘의 상을 언제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수행되어야 할 일은 거대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데는 수많은 형제와 엄청난 돈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어디에서 올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주님이야말로 자신의 사업에 대해 아십니다.” 그 후 1916년에, 죽음으로 인해 끝내지 못한 강연 여행을 시작하기 얼마 전에 그는 관리 업무 보조자인 A. H. 맥밀런을 자기 사무실로 불렀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더 이상 이 일을 계속 수행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해야 할 거대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세 시간에 걸쳐서 맥밀런 형제에게 대대적인 전파 활동이 앞에 놓여 있음을 성경을 근거로 설명하였다. 맥밀런 형제의 이의에 대해 그는 “이것은 인간의 사업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관리 체제의 변화가 시험이 되다

러셀 형제의 많은 동료들은 일들을 주께서 관장하고 계시다고 굳게 확신하였다. 러셀 형제의 장례식에서 W. E. 밴 앰버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많은 종을 사용해 오셨으며, 미래에도 많은 사람을 사용하시리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이나 인간의 사업을 위해 헌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과 섭리의 인도를 통해 우리에게 밝히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헌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 사업을 주도하고 계십니다.” 밴 앰버그 형제의 그러한 확신은 그가 사망할 때까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러셀을 흠모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영을 나타낸 사람들이 있었다. 그 결과, 러셀의 죽음 후의 변화된 상황은 시험하고 가려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떨어져 나간 배교자 그룹은 미국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아일랜드 벨파스트, 덴마크 코펜하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밴쿠버와 빅토리아 및 다른 여러 곳에서도 발생하였다. 핀란드 헬싱키의 일부 사람은 러셀이 죽은 다음에는 영적인 빛을 더 전달해 줄 통로가 없다는 견해를 취하였다. 일부 탁월한 사람의 충동으로 그 곳에서는 164명이 조직을 떠났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다 주었는가? 한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잡지를 발행하고 나름대로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그룹은 분열되고 쇠약해지더니 없어지고 말았다. 그중 많은 사람이 성경 연구생들의 집회로 기꺼이 되돌아왔다. 그러나 모두가 돌아온 것은 아니다.

러셀 형제의 죽음과 더불어 그에 연이은 상황 전개는 오스트레일리아 지부의 총무였던 R. E. B. 니콜슨에게도 시험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러셀의 죽음 후에 니콜슨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나는 사반세기 이상, 그가 하는 일 때문에만 아니라 그의 아름다운 성품 때문에 그를 사랑해 왔다. 나는 그가 ‘때를 따른 양식’으로서 보내준 진리와 그의 교훈에 대해 즐거워하였으며, 동정심 많고 친절하고 인자한 그의 천성을 흠모해 왔다. 그 천성은 그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은 일 혹은 그분의 말씀으로 밝혀진 일을 성취시키기 위해 여하한 일도 과감하게 수행하는 강인함 및 강한 결심과 너무나도 멋지게 조화를 이루었다. ·⁠·⁠· 이토록 강력한 지주(支柱)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니콜슨은, 새로운 워치 타워 협회장 조셉 F. 러더퍼드는 러셀 형제가 맡았던 감독의 직책을 맡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니콜슨은 새로운 성서 연구물에서 거짓 종교를 비난한 노골적인 방식을 공공연하게 비평하였다. 오래지 않아 그는 조직을 떠났으며 (자신의 명의로 등기해 놓은) 협회 재산의 상당량을 착복하였고 멜버른에서 자기를 우러러보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니콜슨은 사람의 추종자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 사람이 사라지자 주를 섬기는 니콜슨의 정직성과 열심도 식어 버린 것이다. 그 때 떨어져 나간 사람은 아무도 영적으로 잘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것은 제인 니콜슨은 신체가 연약하지만 남편의 배도 행위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최고의 정성을 바쳤으며 1951년에 사망하기까지 줄곧 그분을 섬기는 전 시간 봉사를 하였다.

많은 사람은 러셀 형제가 사망한 후 여러 해 동안 일어난 일들이 주의 뜻을 성취시켰음을 분별하였다. 캐나다의 여호와의 종 한 사람은 이에 관하여 러더퍼드 형제에게 이렇게 편지하였다.

“친애하는 형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형님의 기질은 낮과 밤이 다른 것만큼 친애하는 러셀 형님의 개성과 판이합니다. 많은 사람이, 정말 매우 많은 사람이 러셀 형님의 성품과 개성 등 때문에 그분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분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단지 러셀 형님이 말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인간을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 기억하시겠지만 한번은 대회 때 러셀 형님은 요한과 천사에 관한 내용을 근거로, 선한 의도를 가진 여러 형제들의 이러한 잘못에 관해 솔직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계시 22:8, 9) 그분이 서거하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러더퍼드 형님, 형님의 개성은 러셀 형님의 개성과 전혀 다릅니다. 형님은 외모부터가 다릅니다. 그것은 형님 책임이 아닙니다. 형님이 태어날 때 갖게 된 것이고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 형님은 협회의 업무를 주관하게 된 이래 부당한 비난과 최악의 중상을 받아 왔고, 그것도 전부 형제들에게서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형님은 사랑하는 주와 이사야 61:1-3에 기록된 그분의 임무에 충성스러웠고 헌신적이었습니다. 주께서는 형님에게 업무를 주관하도록 맡기실 때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고 맡기신 것입니까? 그러셨음에 틀림없습니다. 과거에는 우리 모두가 창조주보다는 피조물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주께서는 그 점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업무를 주관하는 일, 다른 말로 활동, 추수 활동의 책임을 색다른 개성을 가진 인물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형님은 누구의 숭배도 받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그 점을 알고 있습니다. 형님이 정말 바라는 바는 주께서 적합하다고 보시는 대로 지금 공의의 길을 밝히고 있는 빛을 같은 귀중한 믿음에 속한 사람 모두가 즐기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주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신분이 밝혀짐

그 당시에 가려내진 많은 사람은, 예수께서 마태 복음 24:45-47에서 믿음의 집 사람들에게 영적 양식을 나누어 줄 종이라고 예언하신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단 한 사람 즉 찰스 테이즈 러셀이라는 견해를 고수하였다. 특히 그가 사망한 후 여러 해 동안 「파수대」조차도 그러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러셀 형제가 담당한 탁월한 역할을 생각할 때 당시의 성경 연구생들에게는 그 말이 사실같아 보였다. 그 자신이 그러한 개념을 조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그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이치적인 것 같아 보인다고 인정해 준 것도 사실이다. * 그러나 그는 또한 주께서 그러한 역할에 사용하시는 사람은 누구나 겸손해야 하며 주께 영광을 돌리는 데 열심이어야 한다는 점과, 주께서 택하신 사람에게 부족함이 있으면 다른 사람으로 대치될 것이라는 점도 강조하였다.

그러나 러셀 형제가 사망한 이후로 진리의 빛이 점점 더 밝게 비침에 따라 그리고 예수께서 예언하신 전파 활동이 한층 더 확장됨에 따라, 러셀 형제가 사망하였을 때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즉 “충실하고 분별 있는 종”(「신세」)이 사라진 것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1881년에 러셀 형제는 친히 그 “종”은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충실한 그리스도인들 전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견해를 표명한 바 있다. 그는 그 종을 집합적인 종,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연합되어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반열로 본 것이다. (비교 이사야 43:10) 이러한 이해는 1927년에 성경 연구생들에 의해 재확인되었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영적 양식을 나누어 주는 데 「파수대」 및 그와 유사한 출판물들을 사용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들은 그 종 반열이 무류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그 종이야말로 현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 동안 주께서 사용하시는 유일한 통로라고 여긴다.

교만이 걸림돌이 됨

그러나 때때로 책임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자신이야말로 영적 빛의 통로라고 여기고 조직이 마련한 것을 배척한 사람들이 있었다. 단순히 개인적인 영향력을 더 많이 행사하고 싶은 욕망에 굴복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을 추종하게 하려고, 즉 사도 바울이 설명한 것처럼,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들었다. (사도 20:29, 30) 물론 이것은 그들이 유혹하려고 한 사람들의 동기와 영적인 안정성에 시험이 되었다. 몇 가지 예를 고려해 보자.

펜실베이니아 주 앨러게이니에 있는 성경 연구생들은 1894년 4월 5일에 열리는 모임에 초대하는 특별한 편지를 받았다. 러셀 형제 부부는 초대되지도 않았고 참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약 40명의 다른 사람은 참석하였다. E. 브라이언, S. D. 로저스, J. B. 애덤슨, O. 폰 체흐가 서명한 그 편지는 그 모임에 그들의 “최상의 복지”에 관한 것들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이들 공모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정신을 오염시키려는 악의적인 노력임이 드러났는데, 러셀 형제의 사업적인 일에 사악한 면이 있다는 추측에 근거한 (사실과는 정반대인) 것들을 폭로하고 러셀 형제가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실은 그것을 자기들이 갖고 싶어서) 주장하면서 그가 복음을 전하는 데 단지 강연하는 방식(자신들의 개인적인 견해를 보다 쉽게 발표할 수 있는 방식)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인쇄물과 성서반 집회를 사용하기를 좋아한다고 불평한 것이다. 그 일로 회중은 큰 혼란을 겪었으며 많은 사람이 실족하였다. 그러나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그 결과로 더 영적인 사람이 되거나 주의 일에 더 열심을 품게 된 것은 아니었다.

20여 년 후 사망하기 전에 러셀 형제는 매우 유능한 연사인 폴 S. L. 존슨을 영국으로 파견하여 그 곳의 성경 연구생들을 강화시킬 의향을 표명하였다. 러셀 형제의 바람을 존중하여 협회는 1916년 11월에 존슨을 영국으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단 영국에 도착하자 협회 책임자 두 명을 해임하였다. 자신을 중요한 인물로 여긴 그는 연설과 서신을 통하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성경에서 에스라와 느헤미야 및 모르드개에 의해 전영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이야말로 예수께서 마태 복음 20:8에 나오는 비유에서 말씀하신 청지기(즉 책임 맡은 사람)라고 공언하였다. 그는 협회 자금을 차지하려고 들었으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런던 고등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한 노력이 좌절되자 그는 뉴욕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그는 협회의 이사진으로 일하는 특정한 사람들의 지원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다. 설득당하여 그의 편을 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협회 업무를 관장할 권위를 회장에게 부여한 협회의 정관을 폐지하자는 결의문을 통과시키려고 들었다. 그들은 모든 결정권을 자기들 수중에 두기를 원한 것이다. 러더퍼드 형제에 의해 협회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적 조처가 취해졌고 협회 일을 마비시키려고 든 사람들은 벧엘 집을 떠날 것을 요구받았다. 그 이듬해 초에 열린 협회 의결권자들의 연례 모임에서 그 해에 이사진과 역원으로 일할 사람들이 선출되었을 때 선동자였던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배척당하였다. 아마도 그중에는 자기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절대 다수의 영적 형제들은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들은 그 책망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 후에 P. S. L. 존슨은 성경 연구생 집회에 나타나서 자기도 그들의 믿음과 활동에 동조하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부 사람의 신임을 얻은 다음에는 의심의 씨를 뿌리곤 하였다. 협회와 결별하자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위선적이게도—그 그룹의 충성심이 철저하게 침식당할 때까지는—그것을 만류하였다. 서신을 통해서 그리고 심지어 개인적인 여행을 통해서 그는 미국만이 아니라 캐나다, 자메이카, 유럽 및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형제들에게도 영향을 끼치려고 노력하였다. 이것은 성공하였는가?

어느 회중의 과반수가 협회와의 관계를 끊자고 표결하였을 때에는 그렇게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나무에서 베어낸 가지와도 같이 한동안은 싱싱했지만 이윽고 시들어 사멸하고 말았다. 반대자들이 1918년에 대회를 개최하였을 때 상이점들이 표출되면서 분열이 일어났다. 그 후에는 한층 더 분열되었다. 일부는 한동안 자기들이 흠모하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소규모 분파로 활동하였다. 그중에, 예수께서 추종자들에게 맡기신 일인,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공개적으로 증거하는 일을 헌신적으로 수행한 집단은 없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남에 따라 형제들은 베드로 전서 4:12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생각하였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

교만으로 인해 믿음이 침식당하게 된 사람들은 위에 언급된 사람들만이 아니다. 그렇게 된 사람들이 또 있었는데, 그중에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협회 사무실의 책임자였던 알렉상드르 프레타그가 있다. 그는 자신에게 주의를 끌기를 좋아하였고 협회 출판물을 프랑스어로 번역할 때 자신의 사상을 첨가하곤 하였으며 심지어 협회 시설을 이용하여 자신의 자료를 발행하기까지 하였다. 캐나다에서는 협회의 지부 책임자였던 W. F. 솔터가 협회 출판물의 내용과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고 자신이 워치 타워 협회의 다음 회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공언하였으며, 해임되자 부정직하게도 협회의 서신 양식을 이용하여 캐나다 및 외국에 있는 회중들에게 자기가 개인적으로 집필한 내용을 연구하도록 지시하였다. 나이지리아에서는 특히 G. M. 우콜리가 처음에는 진리에 대해 열심을 나타내더니 이윽고 진리를 물질적 이득과 개인적인 명성을 얻는 수단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그 후 자기 목적이 좌절되자 그는 충실한 형제들을 일반 보도 매체를 통해 비난하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그 외에도 더 있었다.

근년에 들어서도 감독하는 탁월한 위치에 있던 일부 사람이 그와 비슷한 영을 나타냈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이 자기가 선택한 것을 믿을 자유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 조직의 출판물에 나오는 내용과는 다른 견해를 공개적으로나 사적으로 주장하는 사람, 그것도 그 조직을 대표한다고 공언하면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였는가?

그들은 그러한 사람들을 박해하는 운동을 펼치지도 않았고 (배도자들은 흔히 이전의 영적 형제들을 마구 욕하였지만) 그들에게 (가톨릭 교회가 종교 재판을 통해 한 것처럼) 신체적인 해를 입히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술한 영감받은 조언을 따랐다.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로마 16:17, 18.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낼 기회가 있게 되었다.

정화할 필요가 있는 교리상의 견해

여호와의 증인은 하나님의 목적에 관한 자신들의 이해가 여러 해에 걸쳐서 상당히 조정되어 왔음을 거리낌없이 인정한다. 하나님의 목적에 관한 지식이 점진적이라는 사실은 변화가 일어나게 마련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목적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자신의 종들을 끊임없이 계몽하시기 때문에 그들의 견해가 조정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증인들은 성서를 사용하여 과거에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의 경우도 그러하였음을 지적한다. 아브라함은 여호와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우르를 떠날 때 그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느 땅으로 인도하시는지를 알지 못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서 큰 민족이 나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어떻게 성취시키실 것인지 여러 해 동안 확실하게 알지 못하였다. (창세 12:1-3; 15:3; 17:15-21; 히브리 11:8)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에게 많은 진리를 밝혀 주셨지만 그들이 당시로서는 이해하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다니엘 12:8, 9; 베드로 전 1:10-12)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사도들에게 많은 것을 설명해 주셨지만 심지어 그분의 지상 생애가 끝나갈 무렵에도 그들이 배워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요한 16:12) 그중에는, 이방인들을 회중으로 이끌어 들이게 될 하나님의 목적처럼, 사도들이 예언 성취가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 다음에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들도 있었다.—사도 11:1-18.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견해를 변화로 인해 떨쳐 버려야 하였을 때 그것은 일부 사람에게 시험이 되었다. 더욱이 이해를 조정하는 일이 모두 간단하게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불완전성으로 인해 때때로 한쪽 극단으로 흘렀다가 또 다른 극단으로 흐른 다음에야 정확한 위치를 깨닫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게 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비평하는 경향이 있는 일부 사람은 여기에 걸려 넘어졌다. 한 가지 예를 고려해 보자.

일찍이 1880년에 워치 타워 출판물은 아브라함과의 계약, 율법 계약 그리고 새 계약과 관련된 여러 가지 세부점을 논하였다. 그리스도교국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땅의 모든 민족들이 스스로를 축복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망각하였다. (창세 22:18) 그러나 러셀 형제는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어떻게 성취시키실 것인지를 깨닫는 데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는 그 계약이 새 계약과 관련하여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알려 주는 내용이 유대인의 속죄일에 관한 성서의 설명 가운데 들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1907년에 동일한 계약이 다시 논의되면서 아브라함과의 계약에 예언된 축복을 인류에게 가져다 주는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공동 후사들이 수행하는 역할에 특별히 역점을 두었을 때 일부 성경 연구생은 강한 이의를 제기하였다.

당시에는 문제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되는 특정한 것들이 있었다. 성경 연구생들은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하여 당시의 육적 이스라엘이 차지하는 위치를 아직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예언 성취에 있어서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는 데 관심이 없다는 점이 부인의 여지 없이 분명해진 다음에야 비로소 그 장애물은 제거되었다. 또 다른 장애물은 성경 연구생이 계시록 7:9, 10의 “큰 무리”를 정확하게 식별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예언 성취로 큰 무리가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그 신분이 비로소 명확해졌다. 러셀 형제를 심하게 비난하던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들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형제라고 공언한 일부 사람은 「파수대」에서 예수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이심을 부인하였으며 대속을 부인하고 속죄의 필요성과 사실을 부인하였다고 거짓으로 비난하였다. 그것은 전부 날조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일부 사람은 탁월한 사람들로서 다른 사람들을 끌어내어 자신을 좇는 제자를 삼았다. 그들이 새 계약과 관련하여 가르친 일부 세부점은 옳은 것이었을 수 있지만 주께서는 그들의 행로를 축복하셨는가? 그들 중 일부는 집회를 한동안 개최하였지만 이윽고 그들의 그룹은 사멸하고 말았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성경 연구생들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계속 참여하였다.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연구하고 그 말씀의 의미를 밝혀 줄 만한 사태 발전에 계속 유의하였다. 마침내 1930년대에 계약들을 명확히 이해하는 데 주된 장애가 된 것들이 제거되었으며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설이 「파수대」와 관련 출판물에 실렸다. * 참을성 있게 기다렸던 사람들은 그로 인해 참으로 기뻐하였다!

그들의 기대는 정확하였는가?

때때로 성경 연구생들이 가지고 있던 희망과 기대는 비난자들의 조롱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희망과 기대는 이들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틀림없는 약속이라고 알게 된 일들의 성취를 간절히 보고 싶어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은 영감받은 성경을 연구함으로써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땅의 모든 민족들이 축복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창세 12:1-3; 22:15-18) 그들은 인자가 하늘 왕으로서 온 땅을 다스릴 것이며, 충실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적은 무리가 땅에서 택함을 받아 그분의 왕국에 그분과 동참하게 될 것이며, 이들이 왕으로서 천년 동안 다스릴 것이라는 약속이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니엘 7:13, 14; 누가 12:32; 계시 5:9, 10; 14:1-5; 20:6) 그들은 예수께서 돌아오셔서 하늘에 예비하신 자리로 제자들을 데려가실 것이라는 그분의 약속도 알고 있었다. (요한 14:1-3) 그들은 메시야가 그분의 충실한 조상 중 일부 사람을 택하셔서 온 땅의 군왕들로 삼으실 것이라는 약속도 잘 알고 있었다. (시 45:16) 그들은 성경에서 악한 낡은 사물의 제도의 끝을 예언하였으며 이것이 아마겟돈에서 벌어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의 전쟁과 관련이 있음을 깨달았다. (마태 24:3; 계시 16:14, 16) 그들은 사람이 영원히 거주하도록 땅이 창조되었으며 땅에 사는 사람들은 참다운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고 예수의 완전한 인간 희생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나 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수 있음을 알려 주는 성구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이사야 2:4; 45:18; 누가 23:42, 43; 요한 3:16.

그러한 일들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를 그들이 궁금해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영감받은 성경에는 단서가 들어 있었는가?

영국의 크리스토퍼 보엔이 처음으로 설명한 성서 연대기를 사용하여 그들은 인간 역사 6000년이 1873년에 끝났으며 그 이후 자기들은 인간 역사 중의 일곱 번째 천년기에 살고 있는 것이고 예언된 천년기의 새벽이 가까워졌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C. T. 러셀이 집필한 Millennial Dawn(「천년기 새벽」)이라고 알려진(나중에는 「성경 연구」라고 불림) 시리즈 서적들은 성경 연구생들이 성경을 통하여 이해한 바에 따라 그 점에 내포된 의미에 주의를 이끌었다.

아마 때에 관해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 또 다른 것은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을 위해 50년마다 열리는 희년, 즉 해방의 해를 제정하신 마련과 관련이 있었다. 이 희년은 매번 안식년으로 끝나는 7년 기간이 일곱 번 연이어 지난 다음에 도래하였다. 희년 기간에 히브리 노예들은 자유를 얻게 되었고 매각한 상속 토지 소유권은 회복되었다. (레위 25:8-10) 이러한 희년 주기를 기초로 계산한 결과 온 땅을 위한 더 큰 희년은 아마도 1874년 가을에 시작되었고 주께서는 분명히 그 해에 돌아오셔서 보이지 않게 임재하시며 “만유를 회복하실 때”가 도래하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사도 3:19-21.

또한 그들은 1세기의 사건들과 훗날 관련된 사건들 사이에는 평행점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예수께서 기원 29년 가을에 침례를 받고 기름부음받으신 것이 1874년에 보이지 않는 임재를 시작하신 것과 평행을 이룬다면 기원 33년 봄에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그분이 하늘 왕권을 잡으신 때가 1878년 봄임을 알려 주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 그들은 또한 자기들이 그 때에 하늘의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그들은 예수의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이 왕국에 그분과 함께 동참하게 되어 있으므로 이미 죽음의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영의 생명으로 부활되는 일이 그 때 시작되었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기원 36년에 이르러 육적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끝났다는 점은 1881년이 영적 이스라엘에 속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끝나는 때임을 알려 주는 것이라고도 추리하였다. *

1920년 3월 21일에 뉴욕 시 히퍼드롬에서 J. F. 러더퍼드가 연설한 “지금 살아 있는 수백만이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강연에서는 1925년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 해를 중요하게 여긴 근거는 무엇이었는가? 같은 해인 1920년에 발행한 소책자에서는 (바벨론 유배 이전의 마지막 모형적 희년 후부터 계산을 시작하여, 50번째 주기의 끝에 희년이 시작되는 때를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때로 이해되는 연대로부터 70회의 온전한 희년을 계산한다면 이것은 1925년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 소책자에 설명된 내용을 근거로 많은 사람은 아마도 적은 무리의 남은 자들이 1925년까지는 하늘의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이 해는 또한 그리스도 이전 시대에 살았던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이 하늘 왕국을 대표하여 지상에서 군왕으로 봉사하기 위해 부활될 것이라는 기대와도 연관지어졌다. 그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류가 더는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을 시대에 들어섰으며 당시에 살아 있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지상에서 결코 죽어 없어지지 않을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얼마나 행복한 전망인가! 잘못된 기대였지만 그들은 그 전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해 주었다.

나중에 1935년부터 1944년 사이에 성서 연대기의 전체 틀을 재검토한 결과, King James Version(「제임스 왕역」)의 사도 행전 13:19, 20의 오역 *과 더불어 특정한 다른 요인들로 인해 연대 계산에 한 세기 이상의 오차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 그래서 나중에는, 인간 역사의 일곱 번째 천년기가 1975년에 시작될 것이므로 그 때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의 시작과 관련된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고—때로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때로는 더 확실한 것으로—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에 관한 여호와의 증인의 신앙은 정확하였는가?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행하신다는 것을 믿은 것은 확실히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때에 관한 계산 그리고 그들이 때와 관련하여 가졌던 기대들 중 일부는 심각한 실망을 겪게 하였다.

1925년에 뒤이어 프랑스와 스위스의 일부 회중의 집회 참석자 수는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1975년에도 천년기 시작에 관한 기대가 실현되지 않자 또다시 실망하는 일이 있었다. 그 결과 일부 사람은 조직을 버리고 떠났다. 동료들의 믿음을 파괴하려고 들었기 때문에 제명된 사람들도 있었다. 연대에 대한 실망이 한 가지 요인이었음에는 틀림없지만, 문제의 뿌리는 더 깊은 데 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호별 봉사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조직을 떠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연합해 있던 조직을 반대하여 공격하였으며 공공 보도 매체와 텔레비전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주장을 퍼뜨리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탈한 사람들의 수는 비교적 소수였다.

이러한 시험들이 가려내는 결과를 가져와서 밀을 까부를 때의 겨처럼 날아가 버린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굳건하게 남아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1925년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겪은 경험에 관하여 쥘 펠레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여호와께 확신을 둔 사람들은 굳건함을 유지하였으며 전파 활동을 계속하였다.” 실수를 범하기는 하였지만 여하한 면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된 것은 아니며 따라서 자신의 희망이 희미해지게 하거나 하나님의 왕국이 인류의 유일한 희망임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일을 늦추어야 할 이유는 없음을 그들은 인식하였다.

기대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서 연대기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해로 된 69주가 지난 다음에 메시야가 나타날 것에 관하여 다니엘이 기록한 예언은 기원 29년에 정확한 시기에 성취되었다. * (다니엘 9:24-27) 1914년 역시 성서 예언에 의해 지적된 해였다.

1914년—기대와 현실

1876년에 C. T. 러셀은 1914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급하신 이방인의 때가 끝나는 때임을 지적한 여러 기사들 중 첫 번째 기사를 썼다. (누가 21:24) 1889년에 발행된 「천년기 새벽」 제2권에서 러셀 형제는 독자가 기술된 내용의 성경적 근거를 살펴보고 스스로 조사할 수 있도록 세부점들을 이치적인 방식으로 설명하였다. 1914년에 이르는 거의 40년 동안 성경 연구생들은 이방인의 때의 끝에 대해 관심을 집중시키는 출판물을 수백만 부 배부하였다. 1914년을 지적하는 성서 연대기에 유의한 종교 출판물이 그 외에도 소수 있기는 하였지만, 그 해를 전세계에 지속적으로 알리고 그 해에 이방인의 때가 끝날 것이라고 믿고 있음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생활한 그룹이 성경 연구생 외에 과연 또 있었는가?

1914년이 다가옴에 따라 기대는 고조되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게 될 것인가? The Bible Students Monthly(「월간 성경 연구생」)—1914년 초에 발행된 제6권 제1호—에서 러셀 형제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우리가 정확한 연대와 연대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이방인의 때는 올해—1914년—에 끝날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확실하게는 모른다. 우리의 기대는 이방인에게 권세가 허락된 일이 끝날 무렵에 메시야의 실질적인 통치가 시작되리라는 것이다. 옳든 그르든, 우리의 기대는 모든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놀랍게 나타나는 일이 있을 것이고 이것은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현존하는 여러 제도가 파괴되는 것을 의미하리라는 것이다.” 그는 1914년에 “세상 끝”이 올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점과 땅은 영원히 있을 것이지만 사단이 지배하고 있는 현 사물의 질서는 지나가게 될 것임을 강조하였다.

「파수대」(영문)는 1913년 10월 15일 호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연대 계산에 따르면 그 때는 대략 1914년 10월이나 그 이후다. 독단적이 되는 일 없이 우리는 특정한 사건들 즉 (1) 이방인의 때—세상에 대한 이방인의 지배권—가 끝나는 것, (2) 메시야 왕국이 세상에서 활동을 개시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이 일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당시의 성경 연구생들이 보기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왕국에 동참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사람으로서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영광스럽게 되는 일이 그 일에 포함되어야 이치적인 것 같았다. 그러나 1914년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그들은 어떻게 느꼈는가? 「파수대」(영문) 1916년 4월 15일 호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그 연대들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방인의 때가 끝났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잡지에서는 솔직하게 이렇게 덧붙였다. “주께서는 교회가 전부 1914년까지는 영광스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추측하였을 따름이고 그것은 잘못임이 분명하다.”

이 면에 있어서 그들은 예수의 사도들과 다소 비슷하였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예언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예언들이 언제,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에 대해 잘못된 기대를 가진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로 인하여 일부 사람은 실망하였다.—누가 19:11; 24:19-24; 사도 1:6.

기대한 것처럼 하늘 생명으로 변화되는 일 없이 1914년 10월이 지나가자, 러셀 형제는 심각하게 마음을 검사하는 일이 있게 될 것임을 알았다. 「파수대」(영문) 1914년 11월 1일 호에서 그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우리가 시험의 계절에 살고 있음을 기억하자. 사도들도 주의 죽음과 오순절 사이에 유사한 시기를 겪었다. 우리의 주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고 그 후 제자들은 그분을 여러 날 동안 보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실망하여 ‘기다려 봐야 소용이 없다’고 말하였다. 한 사람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고 말하였다. 다른 두 사람은 ‘우리도 함께 가겠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고기 잡는 일에 뛰어들고 사람을 낚는 일은 내버려두려던 참이었다. 이 때는 제자들에게 시험의 때였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러한 때이다. 여하한 이유로든 누군가 주와 그분의 진리를 포기하고 주의 큰 뜻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중단한다면, 그 동안 주께 대한 관심이 솟아올랐던 것은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 필시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를 바란 것, 즉 시한부로만 성별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사람의 경우가 바로 그러함이 분명하였다. 그들의 생각과 바람은 주로 하늘 생명으로 변화될 전망에 고정되어 있었다. 기대하던 때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자 그들은 1914년에 실제로 발생한 놀라운 일들의 의미에 대해서는 정신을 닫아 버렸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운 소중한 진리를 전부 망각하였고 그러한 것들을 배우도록 도와준 사람들을 조롱하기 시작하였다.

성경 연구생들은 겸손하게 성경을 다시 검토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들의 견해를 바로잡았다. 이방인의 때가 1914년에 끝났다는 그들의 확신은 변하지 않았다. 점차 그들은 메시야 왕국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그 왕국은 여호와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권세를 주셨을 때 하늘에 설립되었으며 이 일은 예수의 공동 후사들이 하늘 생명으로 올려질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나중에 그분과 함께 영광스럽게 될 것임을—더욱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왕국의 영향력이 퍼지려면 고대의 충실한 예언자들이 먼저 부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왕께서는 모든 민족의 사람들에게 왕국의 지상 신민으로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하는 데 현재 살아 있는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의 대표자들로 사용하실 것이라는 점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웅대한 영상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짐에 따라 한층 더 시험하고 가려내는 일이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호와를 참으로 사랑하고 그분을 섬기는 일을 즐거워한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열려 있는 봉사의 특권에 대해 매우 감사하였다.—계시 3:7, 8.

그중 한 사람은 A. H. 맥밀런이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하늘로 가게 될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가 1914년에 성취되지는 않았지만, 그 해에 이방인의 때는 실제로 끝이 났다. ·⁠·⁠· 우리는 모든 것이 우리가 기대한 대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특별히 혼란스러워할 것이 없었다. 우리는 사진극 활동으로,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생긴 문제들로 매우 바빴기 때문이다.” 그는 여호와의 봉사에서 계속 바쁘게 일하였으며 왕국 선포자의 수가 생애중에 100만 명을 족히 넘는 것을 보는 감동을 맛보았다.

조직과 함께 일한 66년간의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조직이 심각한 시련에 직면하여 그 성원들의 믿음에 시험이 되는 일을 많이 보아 왔다. 하나님의 영의 도움으로 조직은 생존하였고 계속 번창하였다.” 그 동안 이해에 있어서 조정된 내용들에 관하여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가 성경에서 배운 기본 진리는 여전히 똑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실수를 인정하고 더 많은 계몽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조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때로 우리의 견해를 어떻게 조정할 필요가 있든지 간에, 은혜로운 대속 마련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맥밀런 형제가 생애중에 알게 된 바는 믿음의 시험을 유발하는 쟁점들 중에서도 증거하려는 자진성과 신권 조직에 대한 인식, 이 두 가지야말로 개개인의 마음속에 정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그러하였는가?

야외 봉사와 조직이 쟁점이 되다

「시온의 파수대」는 창간호부터, 그리고 그 이후로 점점 더 강력하게, 참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해야 한다고 권하였다. 그 후 「파수대」 독자들은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특권과 책임을 감사히 여기도록 자주 격려받았다. 제한된 방법으로 참여한 사람은 많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왕국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하여 집집을 방문하면서 그 활동에 앞장선 사람은 비교적 소수였다.

그러나 1919년부터 야외 봉사에 참여하는 문제는 더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러더퍼드 형제는 그 해에 오하이오 주 시더포인트에서 행한 한 연설에서 그 점을 강력하게 강조하였다. 봉사를 위해 조직해 줄 것을 협회에 요청한 각 회중에는 그 활동을 돌보도록 협회에서 임명한 봉사 지휘자가 마련되었다. 봉사 지휘자는 솔선 수범하는 가운데 회중이 필요한 공급품을 갖추도록 감독해야 하였다.

1922년에 「파수대」는 “봉사는 필수적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하였다. 그 기사는 사람들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들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지적하였고 마태 복음 24:14에 나오는 예수의 예언적 명령에 주의를 이끌었으며 회중의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자기는 반의 장로이므로 말로 설교하면 봉사를 다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인쇄된 소식을 건네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은 큰 특권이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으로서, 흔히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 다음에 그 기사는 이렇게 질문하였다. “주께 진정으로 성별된 사람이라면 이 시기에 자신이 나태한 것을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일부 사람은 못마땅해 하였다. 그들은 온갖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 활동은 이익을 남기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진리를 그 동일한 출판물을 통하여 배웠으면서도 그들은 “서적 판매”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1926년부터 일요일에 서적을 가지고 집집으로 증거하는 일이 권장되었을 때, 일요일은 많은 사람이 으레 숭배를 위해 떼어놓는 날인데도 그 마련을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집집으로 전파하는 것은 체면을 손상시킨다고 여겼다는 점이다. 그러나 성서가 명백히 알려 주듯이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사람들의 집으로 보내어 전파하게 하셨고 사도 바울도 “공개적으로 그리고 집집으로” 전파하였다.—사도 20:20, 「신세」; 마태 10:5-14.

야외 봉사에 더욱 역점을 두게 됨에 따라, 증인들이었던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을 본받아야겠다는 마음이 우러나오지 않는 사람들은 점차 떠나가게 되었다. 덴마크의 스키베 회중과 얼마의 다른 회중은 약 반으로 줄어들었다. 아일랜드 더블린 회중과 연합한 100명 가량의 성원 중에서는 단 4명만 남았다.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및 다른 나라들에서도 그와 유사하게 시험하고 가려내는 일이 있었다. 이것은 회중을 깨끗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본받고자 한 사람들은 성경적 격려에 호응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자진한다고 해서 집집을 방문하기 시작하는 것이 반드시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사람은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집단 증거 활동 마련과 특별 봉사 대회들은 격려가 되었다. 덴마크 유틀란트 북부의 두 자매는 처음으로 야외 봉사를 한 날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었다. 그들은 집단과 함께 모여 교훈을 듣고 맡은 구역을 돌기 시작하였는데, 그만 울어 버리고 말았다. 형제 두 명이 그것을 보고는 함께 봉사하자고 초대하였다. 곧 두 자매는 다시 즐거워하게 되었다. 야외 봉사의 맛을 본 다음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었고 더 많이 하고자 하는 열의를 갖게 되었다.

그 후 1932년에 「파수대」(영문)는 “여호와의 조직”이라는 제목의 2부에 걸친 기사를 실었다. (8월 15일 호와 9월 1일 호) 이 기사는 회중에서 장로직을 선출하는 것은 비성경적임을 설명하였다. 회중들은 야외 봉사에 적극적인 남자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명칭이 의미하는 책임에 부합되는 생활을 하는 남자들만 책임 있는 위치에 사용할 것을 권고받았다. 이 사람들은 봉사 위원회로 활동하게 되어 있었다. 그들 중에서 회중이 지명한 한 사람은 협회에 의해 봉사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이로 인하여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는, 겸손하게 봉사하는 것보다 개인적 명성을 얻는 것을 바란 사람들을 한층 더 가려내게 되었다.

1930년대 초까지는 독일에서 야외 봉사의 활기를 꺾으려고 한 대부분의 사람이 회중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1933년에 독일의 여러 주에서 활동이 금지되었을 때 두려워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수천 명은 이 믿음의 시험을 인내하였으며 여하한 위험이 관련되어 있다 해도 기꺼이 전파하고자 한다는 것을 나타냈다.

전세계에서 왕국 선포는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야외 봉사는 여호와의 증인 모두의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 오슬로의 회중은 주말이면 버스를 대절하여 전도인들을 인근 도시들로 수송하였다. 그들은 아침 일찍 모여서 9시나 10시경에는 구역에 도착하였고 일곱 내지 여덟 시간 동안 야외 봉사를 열심히 한 다음 버스 그룹과 합류하여 귀가길에 올랐다. 서적 가방과 가외의 공급품이 들어 있는 상자를 실은 자전거를 타고 시골 지역을 여행한 사람들도 있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있어서 행복하고 열정적이고 연합되어 있었다.

1938년에 회중의 책임 있는 사람들의 임명에 다시 주의를 기울였을 때 * 지방에서 종을 선출하는 마련을 모두 폐지한 것은 전체적으로 환영받았다. 회중들은 신권 조직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었고 “협회”(당시에는 협회가 곧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 즉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을 의미한다고 이해하였음)가 봉사 활동을 위해 회중을 조직해 주고 모든 종을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결의문을 기꺼이 통과시켰다. 그 후에는 보이는 통치체가 필요에 따라 임명하는 일을 하고 회중이 연합된 생산적인 활동을 하도록 조직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못마땅하게 여기고 조직에서 떨어져 나간 그룹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왕국 소식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함

계속 여호와의 승인을 받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그분의 말씀에서 우리 시대를 위해 명령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그 일은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이다. (마태 24:14) 그러나 조직과 협력하여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조직을 이용하여 동료들의 주의를 자칫 다른 활동으로 돌리게 하는 일들을 추진하려고 노력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책망을 받게 되면, 이것은 특히 자신의 동기는 고상한 것이라고 여긴 사람들에게 시험이 되었다.

1915년에 핀란드에서 그러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일부 형제들은 아라라트라는 협동 조합을 설립하고 핀란드어판 「파수대」의 지면을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그 영리 단체에 가담할 것을 권하였다. 핀란드에서 그 활동을 창시한 사람은 자신과 동료들이 “중요한 복음 활동에서 빗나간” 것임을 러셀 형제가 지적해 주자 겸손하게 순응하였다. 그러나 노르웨이에서 10여 년 동안 여호와의 봉사를 적극적으로 수행했던 또 다른 형제는 교만으로 인해 동일한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1930년대에는 미국에서도 다소 비슷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여러 회중이 자체적으로 월간 봉사 교훈지를 발행하였는데, 거기에는 협회의 Bulletin(「회보」)의 내용을 상기시키는 교훈과 경험담 그리고 지방적인 봉사 마련 계획이 실렸다. 그중에서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서 발행된 것은 전파 활동을 열정적으로 지원하는 것이기는 하였지만 특정한 사업을 촉진시키는 데도 사용되었다. 처음에 러더퍼드 형제는 그중 일부를 묵인해 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업에 관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자 「파수대」는 협회가 그러한 것들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이것은 앤턴 쾨버에게 개인적으로 심각한 시험이 되었는데, 그는 이러한 수단들로 형제들을 도와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는 다시 여호와의 증인이 수행하는 전파 활동을 증진시키는 일에 자신의 재능을 전적으로 사용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관련된 문제가 1938년에 처음으로 발생하여 협회에 대한 금지령이 내려져 있는 동안 (1941년 1월부터 1943년 6월까지) 확산되었다. 당시로서는 타당해 보인 필요를 돌보기 위하여 협회의 지부 사무실은 여러 가지 영리 활동에 직접 관여하였다. 그리하여 대단한 실수를 저질렀다. 형제들은 여러 개의 제재소를 세웠고 20여 개의 “왕국 농장”을 운영하였으며 공업사와 제과점 및 기타의 기업을 운영하였다. 두 군데의 영리 인쇄소는 금지령중에도 협회 출판물을 계속 생산하는 것을 은폐시켜 주었다. 그러나 일부 사업 활동으로 인해 그들은 그리스도인 중립을 범하는 일에 연루되게 되었는데 그 활동은 금지령중에 기금을 마련하고 파이오니아들을 지원한다는 구실로 수행되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의 양심은 심한 혼란에 빠졌다. 대다수의 사람이 조직과 함께 머물기는 하였지만 왕국 선포 활동은 전반적으로 정체되게 되었다. 여호와의 축복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1943년 6월에 활동에 대한 금지령이 해제되었을 때 당시에 지부 사무실에서 일한 형제들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왕국 전파 활동에 초점을 맞추기 위하여 그러한 기업들을 처분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였다. 3년에 걸쳐서 다 처분하게 되었고 벧엘 가족은 정상적인 규모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분위기를 깨끗하게 하여 조직에 대한 온전한 확신을 회복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1947년에 협회장 네이선 H. 노어와 그의 비서 M. G. 헨첼이 그 상황을 특별히 다루기 위하여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하였다. 그 일에 관하여 보고하면서 「파수대」(영문) 1947년 6월 1일 호는 영리 활동을 벌인 일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문제에 관련된 것은 생계 활동을 하는 형제들의 일상적인 세속 일이 아니라, 협회 지부 사무실이 여러 기업을 매입하여 전국에서 전도인들을, 특히 파이오니아들을 불러서 복음을 전파하는 대신 그러한 기업에서 일하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하여 전쟁 활동에 간접적으로 연루되기까지 하였다. 각 주도(州都)들에서 열린 여러 대회에서 노어 형제는 그 상황에 관하여 형제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였다. 각 대회에서 오스트레일리아 형제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시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여호와의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그처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시험에 대처함으로써 조직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일에만 계속 전념하게 되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신들의 현대 역사를 돌이켜봄에 따라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참으로 정화시켜 오신 증거를 보게 된다. (말라기 3:1-3) 그릇된 태도와 신앙과 관습은 점진적으로 제거되었고 그러한 것들을 고수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은 그것들과 함께 사라졌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인간 철학을 수용하기 위하여 성서 진리를 함부로 굽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의 추종자들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한 종들이다. 그들은 조직이 여호와께 속해 있다는 틀림없는 증거를 보기 때문에 그 조직의 인도에 기꺼이 순응한다. 그들은 점점 밝아 오는 진리의 빛 가운데 즐거워한다. (잠언 4:18) 그들 개개인은 여호와의 활동적인 증인 즉 하나님의 왕국 선포자가 되는 것을 웅대한 특권으로 여긴다.

[각주]

^ 13항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 1894년 4월 25일자 특별호 102-4면.

^ 22항 삼위일체에 관하여는, 「신 가톨릭 백과 사전」(New Catholic Encyclopedia) 제14권, 1967년판 299면; 「성서 사전」(Dictionary of the Bible), 예수회의 J. L. 매켄지 편, 1965년판 899면; 「신약 신학 신 국제 사전」(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제2권, 1976년판 84면 참조. 영혼에 관하여는, 「신 가톨릭 백과 사전」 제13권, 1967년판 449-50, 452, 454면; 「신 웨스트민스터 성서 사전」(The New Westminster Dictionary of the Bible), H. S. 게먼 편, 1970년판 901면; 「해설자의 성서」(The Interpreter’s Bible) 제1권, 1952년판 230면; 「피크의 성서 주해」(Peake’s Commentary on the Bible), M. 블랙과 H. H. 롤리 편, 1962년판 416면 참조.

^ 38항 러셀 형제에 따르면 마태 복음 24:45-47을 처음으로 그에게 적용시킨 사람은 나중에 그를 버린 그의 아내였다. 「파수대」(영문) 1906년 7월 15일 호 215면; 1896년 3월 1일 호 47면; 1896년 6월 15일 호 139-40면 참조.

^ 60항 Vindication(「입증」) 제2권 258-9, 268-9면; 「파수대」(영문) 1934년 4월 1일 호 99-106면; 1934년 4월 15일 호 115-22면; 1935년 8월 1일 호 227-37면.

^ 67항 예레미야 16:18(‘야곱의 두 배’)을 언급하면서, 야곱이 죽은 때로부터 육적 이스라엘이 배척당한 기원 33년까지 1845년이 경과한 것으로 보이며 이 기간을 두 배 즉 이중으로 확대하면 기원 33년부터 1878년에 이른다는 계산을 제시함으로써 1878년이 의미 심장한 해라는 견해는 확실한 것 같아 보이게 되었다.

^ 67항 평행점들을 한층 더 확대하여, (예수께서 왕으로서 제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지 37년 후인)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황폐된 것은 무정부 상태의 대격변이 (1878년으로부터 37년 후인) 1915년에 극에 달하게 될 것임을 지적해 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존 세상 체제의 끝을 가져오시기 위해 그러한 대격변을 허락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연대가 재인쇄판 「성경 연구」에 나와 있었다. (제2권 99-101, 171, 221, 232, 246-7면 참조; 1914년의 재인쇄판과 「천년기 새벽」 1902년판 같은 그 이전 인쇄판 비교) 이것은 이방인의 때가 끝나는 해인 1914년에 관해 발표된 내용과 잘 부합되는 것 같아 보였다.

^ 69항 J. B. 로더럼이 번역한 「강조된 성서」(The Emphasised Bible)의 번역문 비교; 또한 New World Translation of the Holy Scriptures—With References(「참조주 신세계역 성경」)의 사도 행전 13:20 각주 참조.

^ 69항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11장; “The Kingdom Is at Hand”(「“왕국은 다가왔다”」) 171-5면; The Golden Age(「황금 시대」) 1935년 3월 27일 호 391, 412면 참조. 이러한 수정된 성서 연대표에 비추어 볼 때, 그 전에 1873년과 1878년 그리고 1세기 사건들과의 평행점을 근거로 이러한 연대에서 유추한 관련된 연대들을 사용한 것은 잘못된 이해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 73항 Insight on the Scriptures(「성경 통찰」) 제2권 899-904면 참조.

^ 97항 제15장 “조직 구조의 발전” 참조.

[619면 삽입]

시험하고 가려내는 일이 발생한 것은 놀라울 것이 없는 일이다

[621면 삽입]

“주의 말씀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 사람들”

[623면 삽입]

“우리 자신이나 저술물에 대한 경의나 숭상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624면 삽입]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 사업을 주도하고 계십니다”

[626면 삽입]

러셀 형제가 사망하였을 때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627면 삽입]

다른 사람들의 정신을 오염시키려는 악의적인 노력

[628면 삽입]

교만으로 인해 믿음이 침식당하게 된 사람들이 있었다

[629면 삽입]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630면 삽입]

일부 사람은 「파수대」에서 대속을 부인하였다고 거짓으로 비난하였다

[635면 삽입]

“우리가 그렇게 추측하였을 따름이고 그것은 잘못임이 분명하다”

[636면 삽입]

여호와를 참으로 사랑한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열려 있는 봉사의 특권에 대해 감사하였다

[638면 삽입]

“주께 진정으로 성별된 사람이라면 이 시기에 자신이 나태한 것을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641면 삽입]

그릇된 태도와 신앙과 관습은 점진적으로 제거되었다

[622면 네모와 삽화]

W. E. 밴 앰버그

1916년에 W. E. 밴 앰버그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이 거대한 세계적인 사업은 한 개인의 사업이 아닙니다. ·⁠·⁠· 이 사업은 하나님의 사업[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지만 1947년에 83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줄곧 그러한 확신을 굳게 유지하였다.

[633면 네모와 삽화]

쥘 펠레

쥘 펠레는 젊었을 때 믿음에 대해 심각한 시험이 되는 일들을 관찰하였다. 스위스의 일부 회중은 크기가 이전의 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여호와께 확신을 둔 사람들은 굳건함을 유지하였으며 전파 활동을 계속하였다.” 펠레 형제도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였고 그 결과 1992년 현재 그는 68년 동안 벧엘 봉사를 즐기고 있었다.

[634면 네모와 삽화]

C. J. 우드워스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이 1914년에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였다고 해서 여호와의 봉사를 그만둔 한 사람에게 C. J. 우드워스는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20년 전에 자네와 나는 유아 세례를 믿었지. 그리고 그 세례를 집전할 수 있는 교직자의 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세례는 영원한 고초를 면하는 데 필요하다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하셨고 계속 창조하고 계신 수십억의 사람들이 무수한 세월을 영원토록, 질식케 하는 불타는 유황 연기 속에서 지내게 될 것이고 한 방울의 물로 고초를 덜어 달라고 간청해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믿었지. ·⁠·⁠·

“우리는 인간이 죽은 다음에도 살아 있다고 믿었지.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죽지 않으셨다고; 그분은 죽으실 수 없다고; 대속물은 바쳐진 적도 없고 앞으로도 바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이며 동일한 인격체라고; 그리스도가 곧 그 자신의 아버지이며 예수가 곧 그 자신의 아들이고 성령도 한 인격체라고; 하나 더하기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라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그저 자신에게 이야기하신 것이라고; ·⁠·⁠· 현존하는 왕국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의 일부라고; 마귀는 이 지상의 왕국들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규명되지 않은 지옥 어딘가에 멀리 떨어져 있다고 우리는 믿었지. ·⁠·⁠·

“나는 현재의 진리를 접하게 된 날에 대해 하나님께 찬양드린다네. 진리는 대단히 건전하였고 정신과 마음을 대단히 신선하게 해주는 것이었기에 나는 기만과 허위로 가득한 과거의 것들을 신속히 던져 버렸고 자네가 눈을 뜨게 하는 일에도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었지. 우리는 함께 진리를 기뻐하였고 15년간 손잡고 일하였네. 주께서는 자네가 대변자로서 큰 영예를 누리게 하셨지. 나는 바벨론의 우매한 것들을 그토록 신랄하게 폭로할 수 있는 사람은 또 없다고 생각하였으니까. 자네는 편지에서 ‘다음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하고 물었지. 아, 이제는 서글픈 상황이 되고 말았네! 사랑의 노고로 그리고 위에서 받은 축복으로 우리 두 사람의 마음에 진리를 심어 준 사람에 대해 자네는 마음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으니 말일세. 자네는 떠나가면서 얼마의 양떼도 함께 데리고 갔지. ·⁠·⁠·

“아마 내가 1914년 10월 1일에 하늘에 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가 자네에게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지만, 자네는 내게 어리석어 보이지 않는다네. 결코 그렇지가 않다네!

“지상에서 가장 큰 나라 중 10개 나라가 치사적인 고난 가운데 몸부림치고 있는 이 때에, 이방인의 때가 1914년에 끝나게 될 것이라고 40년 동안 가르쳐 온 유일한 사람, 바로 그 사람을 비웃으려 드는 것은 내가 볼 때 특히 시기 적절하지 않은 일이라네.”

우드워스 형제의 믿음은 1914년의 사건들이 기대했던 대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배워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확신 때문에 그는 1918-19년에 9개월 동안 투옥되어 있었다. 나중에 그는 「황금 시대」와 Consolation(「위안」)지의 편집인으로 일하였다. 그는 1951년에 81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줄곧 여호와의 조직에 대한 믿음과 충성을 굳게 유지하였다.

[637면 네모와 삽화]

A. H. 맥밀런

“나는 새로운 사상에 대해 혼란에 빠질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성경적인 일들에 대해 우리가 명쾌히 이해하게 해주시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움을 알게 되었다. 때때로 우리는 특정한 연대에 대해 성경에서 단언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한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목적이 바뀐 것은 아니다.”

[620면 삽화]

믿음에 대한 한 가지 중요한 시험은 예수의 희생이 지닌 속죄 가치를 인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625면 삽화]

러셀을 흠모한 일부 사람들은 러더퍼드의 개성에 대한 반응을 통해 자기들이 실제로는 누구를 섬기고 있는 것인지를 드러내게 되었다

[639면 삽화]

야외 봉사에 더욱 역점을 두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이 그만두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더 큰 열심을 나타냈다

「파수대」(영문) 1928년 4월 1일 호

「파수대」(영문) 1927년 6월 15일 호

「파수대」(영문) 1922년 8월 15일 호

[640면 삽화]

신권 조직이 부각됨에 따라, 개인적인 명성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가려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