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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구조의 발전

조직 구조의 발전

제15장

조직 구조의 발전

여호와의 증인의 조직 운영은 찰스 테이즈 러셀과 그의 동료들이 1870년에 처음으로 성서를 함께 연구하기 시작한 이래 현저하게 변화되어 왔다. 초기 성경 연구생들이 소수였을 때에 그들에게는 외부인들이 조직의 특징으로 볼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과 대회 그리고 200여 개 나라에서 증인들이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것을 관찰하면서 조직이 매우 순조롭게 운영되는 것을 보고 감탄한다. 조직 구조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

성경 연구생들은 성서 교리뿐 아니라 성경이 알려 주는 하나님의 봉사의 수행 방법을 이해하는 데에도 예리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칭호를 가진 교직자와 설교를 듣는 평신도에 관한 성서 규정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러셀 형제는 성경 연구생들 중에는 교직자 계급을 두지 않기로 하였다. * 「파수대」 지면은 독자들에게, 예수께서 추종자들에게 ‘너희 지도자는 하나 곧 그리스도’이며 “너희는 다 형제”라고 말씀하셨음을 자주 상기시켜 주었다.—마태 23:8, 10.

성경 연구생들의 초기 연합체

얼마 안 되어 「파수대」 및 그와 관련된 출판물들의 독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보다 인간의 신조와 전통을 앞세움으로써 하나님께 불충실함을 나타내는 교회와 관계를 끊어야 함을 이해하였다. (고린도 후 6:14-18) 그러면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에서 탈퇴한 후에 어디로 갔는가?

“에클레시아”라는 제목의 기사 *에서, 러셀 형제는 참 교회 곧 그리스도인 회중은 사람이 만든 신조에 찬동하고 교회 명부에 이름을 올린 성원들로 이루어진 조직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오히려 그는 참 교회가 하나님께 시간과 재능과 생명을 “성별”하였고(바쳤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왕국에 참여할 전망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사랑과 공통 관심사라는 띠로 연합되어 있고 하나님의 영의 인도에 호응하며 그리스도의 머리 직분에 복종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러셀 형제는 다른 마련을 설정하는 데 관심이 없었으며,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 존재하는 종파심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일을 강하게 반대하였다.

동시에, 그는 주의 종들이 히브리서 10:23-25의 교훈과 일치하게 함께 모여야 함을 온전히 인식하였다. 그는 친히 다니면서 「파수대」 독자들을 방문하여 세워 주고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모이게 하였다. 1881년 초에 그는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사람들이 워치 타워 사무실에 그러한 모임의 장소를 알리도록 요청하였다. 그는 그들이 서로 접촉을 유지하는 일의 가치를 이해하였다.

그러나 러셀 형제는 그들이 “지상의 조직”을 설립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다만 하늘 조직에만 고착한다.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 12:23; 누가 10:20)” 그리스도교국의 지저분한 역사 때문에, 대개 “교회 조직”에 대한 언급은 종파심, 교직자 지배, 그리고 종교 회의가 만든 신조에 고착하는 것을 근거로 성원이 되는 일을 생각나게 하였다. 그래서 러셀 형제는 자신들을 부를 때 “연합체”라는 용어가 더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회중들을 형성하였으며 각 회중에 장로들을 임명하였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않게나마 다시 임재하셨으며 그분과 함께 상속자가 될 사람들을 최종적으로 거두어들이는 일을 친히 인도하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처음에 러셀 형제는 제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에 존재하였던 장로 마련이 추수 기간에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성경 연구생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러셀 형제는 자신이 예상했던 바와는 다른 방식으로 주께서 문제를 다루고 계심을 깨달았다. 견해 조정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무엇을 근거로 조정할 것인가?

점증하는 연합체의 초기 필요를 충족시킴

「파수대」(영문) 1895년 11월 15일 호는 거의 전적으로 “적당하게 질서대로”라는 제목을 다루었다. 그 기사에서 러셀 형제는 이렇게 솔직하게 시인하였다. “사도들은 성도들의 집회의 질서에 관해 초기 교회에 많이 말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가 그 진행 과정의 끝에 매우 가까이 있으며 추수 때가 분리하는 때이기 때문에 그 현명한 교훈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매우 등한히 해 온 것 같다.” 그들이 그 교훈을 재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그 기사는 네 가지 상황을 열거하였다. (1) 개인의 영적 발전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음이 분명하였다. 유혹, 시련, 역경, 위험에 대해 모두가 동일하게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감독자, 즉 경험과 능력이 있고 모든 사람의 영적 복지를 돌보는 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진리로 사람들을 교훈할 수 있는 남자들이 필요하였다. (2) ‘양의 옷을 입은 이리’로부터 양 떼를 보호할 필요가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마태 7:15) 양 떼는 진리의 철저한 지식을 얻도록 도움받음으로써 강화될 필요가 있었다. (3) 양 떼를 보호할 장로들을 임명하는 마련이 없다면 일부 사람들이 그 지위를 차지하여 양 떼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게 될 것임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4) 질서 있는 마련이 없다면, 진리에 대해 충성스런 사람들은 그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소수 사람들의 영향으로 인해 자신들의 봉사를 무가치한 것으로 보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파수대」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우리는 부회마다 양 떼를 ‘치’고 ‘감독’할 장로들을 무리 가운데서 택하라는 사도의 교훈을 따를 것을 모든 곳의 크고 작은 교회 *에 서슴없이 권하는 바이다.” (사도 14:21-23; 20:17, 28) 지방 회중들은 이 건전한 성경적 교훈을 철저히 따랐다. 이것은 회중 구조를 사도 시대에 존재했던 것과 일치하게 확립하는 면에서 중요한 단계였다.

그러나 그들이 당시에 문제를 이해하였던 방식과 일치하게, 장로와 그들을 돕는 집사가 회중 투표로 선출되었다. 매년 혹은 필요할 경우 더 자주, 봉사할 사람들의 자격 조건을 고려하고 투표를 실시하였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민주적인 절차였지만, 안전 장치 역할을 하도록 정해진 제한 조건들로 제약받는 절차였다. 회중의 전원이 성서상의 자격 조건을 주의 깊이 검토하고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주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투표로 나타내도록 권고받았다. “온전히 성별된” 사람들만 투표할 자격이 있었으므로, 주의 말씀과 영의 인도를 받을 경우 그들의 집단 투표는 문제에 대한 주의 뜻을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러셀 형제는 온전히 알지 못하였겠지만, 아마도 높여진 교직자 계급을 조금도 닮지 않으려는 결심뿐 아니라 십대 시절에 회중파 교회에 다닌 자기 배경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아서 그러한 마련을 권하였을 것이다.

Millennial Dawn(「천년기 새벽」)의 일부인 The New Creation(「새로운 창조물」)—1904년에 발행—은 장로의 역할과 그들을 선출하는 방법에 관해 다시 상세히 논하면서 사도 행전 14:23에 특별히 주의를 이끌었다. “그들은 저희를 장로들로 임명하였다”(「제임스 왕역」)는 말을 “그들은 거수에 의해 저희를 장로들로 선출하였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의 근거로서, 제임스 스트롱과 로버트 영 공편 컨코던스가 참조되었다. * 일부 성서 번역판은 장로들이 ‘투표로 임명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영의 「직역 성서」[Literal Translation of the Holy Bible]; 로더럼의 「강조된 성서」[Emphasised Bible]) 그러면 누가 그러한 투표를 하게 되어 있었는가?

회중 전체가 투표해야 한다는 견해를 받아들였지만 언제나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투표하는 사람들은 “온전히 성별된” 사람이어야 하였으며, 선출된 사람들 중 일부는 참으로 성경적 요구 조건에 달하였고 겸손하게 형제들을 섬겼다. 그러나 종종 투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영이 아니라 개인 기호를 반영하였다. 따라서 독일 할레에서, 자신이 장로여야 한다고 생각한 일부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지위를 얻지 못하였을 때 심각한 내분을 일으켰다. 독일 바르멘에서, 1927년에 협회의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후보 중에 있었으며, 선출 때 거수하는 동안에 고함지르는 일이 상당히 있었다. 그래서 비밀 투표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사건들이 있기 여러 해 전인 1916년에, 러셀 형제는 깊은 염려를 나타내어 이렇게 기술하였다. “선출이 행해질 때 일부 반에서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교회의 종들은 통치자, 독재자가 되려고 하며—때로는 모임의 사회자직을 차지하기도 하는데, 그 목적은 자신들과 각별한 벗들이 장로와 집사로 선출되게 하려는 것임이 분명하다. ·⁠·⁠· 일부 사람은 자신들과 벗들에게 특별히 유리한 때에 선거를 실시함으로써 반을 슬며시 이용하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모임에 벗들이 붐비게 하고 비교적 낯선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그 낯선 사람들은 반에 정기적으로 참석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단지 벗을 위해 투표하기 위해 우정의 행위로 참석한다.”

그들은 단지 선출을 민주적인 방향으로 보다 순조롭게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하였는가, 아니면 그들이 아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는가?

좋은 소식을 전파하기 위해 조직함

초창기에, 러셀 형제는 그리스도인 회중의 모든 성원의 가장 중요한 책임 중 하나가 복음을 전파하는 일임을 인식하였다. (베드로 전 2:9) 「파수대」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이사야 61:1의 예언적 말씀, 혹은 예수께서 그 구절을 인용하여 ‘그가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심이라’고 말씀하신 내용이 예수에게만 아니라 그분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 모두에게도 적용됨을 설명하였다.—누가 4:18.

일찍이 1881년에, 「파수대」는 “1000명의 전파자를 구함”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것은 성서 진리를 전하는 데 참여하기 위해 최대한의 시간(반시간이나 한 시간 혹은 두세 시간)을 사용하도록 회중의 모든 성원에게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부양 가족이 없고 자신의 시간의 절반 이상을 주의 일에 전적으로 바칠 수 있는 남녀는 콜포처 복음 전파자로서 일하도록 권고받았다. 그 수는 해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1885년까지는 콜포처로서 그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 이미 300명 가량 있었다. 일부 다른 사람들도 보다 제한된 규모로나마 한몫을 하였다. 콜포처들은 일을 수행하는 방법에 관한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밭은 대단히 넓었으며, 그들은 적어도 처음에는 자신의 구역을 선택하여 주로 자신에게 가장 좋게 보이는 곳을 찾아 이 지역 저 지역으로 이사하였다. 그 후 그들은 대회에서 모여, 조직적으로 협력하는 데 필요한 조정을 하였다.

콜포처 봉사가 시작된 바로 그 해에, 러셀 형제는 많은 전도지(혹은 소책자)를 무료로 배부하기 위해 인쇄하였다. 그러한 것들 중 두드러진 것은 Food for Thinking Christians(「생각 있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양식」)이었는데, 그것은 처음 4개월 만에 120만 부가 배부되었다. 그러한 인쇄 및 배부 마련과 관련된 일로 인해, 필요한 세부 사항들을 돌보기 위해 시온의 워치 타워 책자 협회가 형성되었다. 러셀 형제는 자신이 사망할 경우에 활동이 중단되지 않게 하고 활동에 사용되는 헌금을 쉽게 다룰 수 있게 하기 위해 협회의 법적 등록을 신청하였으며, 1884년 12월 15일에 협회가 공식적으로 등록되었다. 이로 인해 필요한 법적 기구가 존재하게 되었다.

워치 타워 협회 지부가 필요하게 되어 여러 나라에 설립되었다. 첫 지부는 1900년 4월 23일에 영국 런던에 설립되었다. 1902년에 독일 엘베르펠트에 또 하나의 지부가 설립되었다. 2년 후에는 지구의 다른 쪽인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지부가 조직되었다. 이 책이 집필될 때에는 전세계에 99개의 지부가 있다.

다량의 성서 출판물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조직상의 마련은 발전되고 있었지만, 처음에는 그 출판물을 공개 배부하는 지방적 마련을 계획하는 것이 회중들에 맡겨졌다. 1900년 3월 16일자 편지에서, 러셀 형제는 자신이 그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기술하였다. “알렉산더 M. 그레이엄과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의 교회”에 보내는 그 편지에 이러한 내용이 있었다. “여러분 모두가 아시다시피, 주의 백성의 각 부회로 하여금 자체의 일을 자체의 판단에 따라 처리하게 하면서 간섭이 아니라 단지 조언의 형식으로 제안하는 것이 저의 확고한 의도입니다.” 집회뿐 아니라 그들이 야외 봉사를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였다. 따라서 형제들에게 얼마의 실용적인 교훈을 베푼 후에, 그는 “이것은 제안일 뿐입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일부 활동은 협회로부터 보다 구체적인 지침을 요하였다. “창조 사진극” 상영과 관련된 것으로서, 지방 상영을 위해 극장이나 다른 시설을 빌릴 의향과 능력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각 회중에 맡겨졌다. 그러나 장비를 이 도시 저 도시로 옮길 필요가 있었으며, 계획표에 따라야 하였다. 그래서 그러한 면에서 협회가 일괄적인 지침을 주었다. 각 회중은 지방 마련을 돌볼 드라마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권고받았다. 그러나 협회가 파견한 감독자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세부 사항에 주의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1914년과 1915년이 지나감에 따라,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희망의 실현을 열렬히 기대하였다. 동시에 그들은 주의 봉사를 계속 바쁘게 수행하도록 권고받았다. 그들은 육체로 남아 있는 때가 매우 짧을 것으로 여기긴 했지만, 좋은 소식을 질서 있게 계속 전파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수가 수백 명에 불과했을 때보다 더 많은 지침이 필요함이 분명해졌다. J. F. 러더퍼드가 제2대 워치 타워 협회장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그 지침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파수대」(영문) 1917년 3월 1일 호는 앞으로 콜포처와 회중의 양치는 봉사자 *가 일할 모든 구역이 협회에 의해 임명될 것임을 광고하였다. 한 도시나 시골에서 그러한 야외 봉사에 참여할 지방 봉사자들과 콜포처들이 함께 있는 경우에는 지방적으로 임명된 지역 위원회가 구역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마련으로 인해 The Finished Mystery(「종말을 고한 비밀」)이 1917-18년의 수개월 사이에 참으로 놀랍게 배부되었다. 그 마련은 또한 “바벨론의 무너짐”이라는 제하에 그리스도교국을 신랄하게 폭로한 전도지를 신속하게 1000만 부나 배부하는 데도 가치가 있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협회의 관리 요원들이 체포되어 1918년 6월 21일에 20년의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은 정지되다시피 하였다. 그 때는 그들이 하늘 영광 가운데 주와 함께 마침내 연합될 때였는가?

수개월 후에 전쟁이 끝났다. 이듬해에 협회의 역원들은 석방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육체로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기대했던 바가 아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이 곳 땅에서 행하도록 하나님께서 시키실 일이 아직도 남아 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믿음의 모진 시험을 막 통과하였다. 그러나 1919년에 「파수대」는 “두려움이 없는 자는 복되도다”라는 주제의 감동적인 성경 연구 내용으로 그들을 강화시켜 주었다. 뒤이어 “봉사할 기회”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형제들은 그 후 수십 년 동안 조직상의 광범위한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양 떼를 위한 올바른 본

러더퍼드 형제는 때가 얼마나 짧게 남았든 간에 일이 질서 있고 연합된 방법으로 계속 진척되기 위해서는 양 떼를 위한 올바른 본이 필수적임을 깊이 인식하였다.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을 양으로 묘사하셨으며, 양은 목자를 따른다. 물론 예수 자신이 선한 목자이시지만, 그분은 또한 연로자 곧 장로들을 자신의 백성의 아랫목자로 사용하신다. (베드로 전 5:1-3) 그러한 장로들은 예수께서 명하신 일에 직접 참여하며 다른 사람도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들은 참으로 복음 전파의 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종말을 고한 비밀」을 배부할 때에, 일부 장로는 활동을 꺼렸으며 심지어 다른 사람이 참여하는 것을 상당히 노골적으로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다.

The Golden Age(「황금 시대」)지가 발행되기 시작한 1919년에 그러한 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매우 의미 심장한 조처가 취해졌다. 그 잡지는 하나님의 왕국을 인류 문제에 대한 유일한 영속적 해결책으로 알리는 강력한 도구가 되어야 하였다. 이 활동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각 회중은 협회에 그 회중을 “봉사 조직”으로 등록해 줄 것을 요청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 후 지휘자 혹은 봉사 지휘자로 알려지게 된 사람이 협회에 의해 임명되었으며 연례 선거에 구애받지 않았다. * 협회의 지방 대표자로서, 그는 일을 조직하고 구역을 배정하고 회중의 야외 봉사 참여를 격려해야 하였다. 따라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장로 및 집사와 더불어 또 다른 형태의 조직상의 마련, 즉 지방 회중 권한 밖의 임명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한층 더 역점을 두는 마련이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

이어지는 여러 해 동안, 왕국 선포 활동은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이 엄청난 추진력을 갖게 되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낡은 제도의 종결을 묘사하신 대예언이 성취되고 있다는 것이 1914년과 그 후의 사건들을 통해 분명해졌다. 그 점을 고려하여, 1920년에 「파수대」는 그 때가 마태 복음 24:14에 예언된 바와 같이 “낡은 사물의 질서의 끝과 메시야 왕국의 설립”에 관한 좋은 소식을 선포할 때임을 지적하였다. * (마태 24:3-14) 1922년에 오하이오 주 시더포인트에서 열린 성경 연구생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왕과 그의 왕국을 광고하십시오, 광고하십시오, 광고하십시오”라는 구호를 마음에 간직하고 떠났다. 참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름이 채택된 1931년에 한층 더 부각되었다.

여호와께서 종들에게 그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일을 맡기셨음이 분명하였다. 열렬한 반응이 있었다. 많은 사람은 그 일에 전 시간을 바치기 위해 생활을 크게 조절하였다. 시간의 일부만을 바치는 사람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주말에 종일토록 야외 봉사를 하였다. 1938년과 1939년의 「파수대」와 「통보」에 실린 격려에 응하여, 그 당시 여호와의 증인 중 많은 사람은 야외 봉사에 매달 60시간을 바치려고 진지하게 노력하였다.

그처럼 열심을 나타내는 증인들 중에는 회중의 장로인 겸손하고 헌신적인 여호와의 종들이 많았다. 그러나 1920년대와 1930년대 초에 일부 지역에서 모두가 야외 봉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상당한 저항도 있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장로들은 회중 밖의 사람들에게 전파할 책임에 관한 「파수대」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종종 아주 노골적으로 말하였다. 하나님의 영이 그 문제에 관해 성경을 통해 회중에 말하는 내용을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그룹들에서 하나님의 영의 흐름이 방해를 받았다.—계시 2:5, 7.

그러한 상태를 시정하기 위해 1932년에 조처가 취해졌다. 주된 관심사는 일부 탁월한 장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회중과 연합한 일부 사람이 탈퇴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형제들의 욕망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목적으로 그 해 「파수대」(영문) 8월 15일 호와 9월 1일 호는 “여호와의 조직”이라는 제목을 주로 다루었다.

그러한 기사는 참으로 여호와의 조직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말씀이 이 시대에 수행되어야 할 일로 알려 주는 일을 행할 것임을 명백히 설명하였다. 그 기사들은 그리스도인 장로의 신분은 선출될 있는 직책이 아니라 영적 성장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견해를 지지하였다. 추종자들이—하나님 및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면에서 서로 연합하여—“다 하나”가 되기를 바란 예수의 기도가 특별히 강조되었다. (요한 17:21) 그러면 어떠한 결과가 있었는가? 둘째 기사는 “남은 자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과 왕국을 증거해야 한다”고 하였다. 공개 증거에 참여하기 위해 무리없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거나 거부한 사람에게 감독하는 일을 맡길 수는 없었다.

그러한 기사들의 연구 내용 결론에서, 회중들은 그들의 동의를 표하는 결의문을 통과시키도록 권고받았다. 따라서 회중이 연례적으로 남자들을 장로와 집사로 선출하는 일은 폐지되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도, “선출된 장로”였던 사람들 중 일부는 회중을 떠났으며 그들의 견해에 동조한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떠났다. 그로 인해 증인 대열의 수가 감소되었지만 전체 조직은 강화되었다. 남은 사람들은 증거해야 할 그리스도인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장로를 선출하기 위한 투표 대신에, 회중—여전히 민주적인 방법을 사용함—은 공개 증거에 활동적으로 참여하는 영적으로 장성한 남자들로 이루어진 봉사 위원회 *를 선출하였다. 또한 회중 성원들은 집회 사회자와 총무 겸 재무 담당을 선출하기 위해 투표하였다. 그러한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의 활동적인 증인이었다.

이제 자기 지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그분의 이름과 왕국을 증거하는 일—을 행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 일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좋은 본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회중의 감독권이 맡겨짐에 따라, 일이 보다 순조롭게 진척되었다. 그들은 당시에는 알지 못하였지만, 많은 일, 이미 행해진 것보다 광범위한 증거,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모아들이는 일을 해야 하였다. (이사야 55:5) 여호와께서는 분명히 그 일을 위해 그들을 준비시켜 주셨다.

땅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그들과 연합하기 시작하였다. * 그러나 성서는 큰 무리를 다가오는 큰 환난에서 보존하기 위해 모아들이는 일을 예언하였다. (계시 7:9-14) 1935년에 이 큰 무리의 신분이 분명해졌다. 1930년대에 감독자를 선출하는 일에서 있은 변화로 인해 조직은 큰 무리를 모으고 가르치고 훈련하는 일을 더 잘 돌볼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여호와의 증인에게는, 이 확장된 활동이 가슴 설레게 하는 사태 발전이었다. 그들의 야외 봉사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은 전파하는 일에 열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들은 활동에 참여하기를 꺼렸으며 큰 무리가 아마겟돈이 지나가기 전에는 모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무활동을 정당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대다수는 여호와께 대한 충성과 같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나타낼 새로운 기회를 인식하였다.

큰 무리에 속한 사람들은 조직 구조에 어떻게 부합되었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적은 무리”에게 부여한 역할을 알게 되었으며, 그 마련과 일치하게 기꺼이 일하였다. (누가 12:32-44) 그들은 또한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자들처럼 다른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책임이 자신들에게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계시 22:17)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지상 신민이 되고자 하였으므로, 왕국을 생활에서 첫째 자리에 두어야 하였으며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알려야 하였다. 큰 환난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신세계로 보존될 사람들에 대한 성서의 묘사에 부합되려면, 그들은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쳐 말’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계시 7:10, 14) 1937년에 그들의 수가 증가하고 주를 위한 그들의 열심이 분명해지면서, 그들은 또한 회중을 감독할 책임의 짐을 지는 데 기여하도록 권고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조직이 어떤 사람의 조직이 아니라 여호와의 조직임을 일깨움받았다.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와 다른 양의 큰 무리 사이에 어떠한 분열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봉사에서 형제 자매들로서 함께 일해야 하였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같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한 10:16) 이 말씀의 참됨이 분명해졌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조직에 놀라운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회중의 일이 여호와의 영감받은 말씀에 설명된 그분의 방법과 온전히 일치하게 행해지도록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또 있었는가?

신권 조직

“신권 통치”는 “하나님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 그것이 회중을 지배하는 통치 방식이었는가? 그들은 여호와를 숭배하였을 뿐 아니라 그분이 회중 일을 인도해 주시기를 기대하였는가? 그들은 그분이 자신의 영감받은 말씀에서 그 문제에 관해 알리신 내용에 온전히 따랐는가? 「파수대」(영문) 1938년 6월 1일 호와 15일 호에 실린 “조직”이라는 2부 기사는 이렇게 명백히 기술하였다. “여호와의 조직은 결코 민주적이 아니다. 여호와께서는 지고하시며, 그분의 정부 혹은 조직은 엄격히 신권적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여호와의 증인의 지방 회중에서, 집회와 야외 봉사를 감독할 책임을 맡은 사람들의 대부분을 선출하는 데 민주적인 절차가 여전히 사용되었다. 한층 더 변화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사도 행전 14:23은 투표할 때처럼 ‘손을 내미는 일’을 통해 회중 장로를 직책에 임명해야 함을 지적하지 않았는가? “조직”이라는 제목의 「파수대」 기사 제1부는 그 구절이 과거에 잘못 이해되었음을 인정하였다.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회중 성원 전체가 ‘손을 내미는 일’을 통해 임명하는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도들과 그들을 통해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이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손을 내미는 일은 회중 투표에 참여함으로써가 아니라 자격 있는 사람들에게 안수함으로써 행해졌다. 이것은 확인, 승인 혹은 임명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이 자격 있는 사람들을 때때로 추천하였지만, 최종 선택 혹은 승인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위임하신 사도들이나 사도들을 통해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사도 6:1-6) 「파수대」는 책임 있는 감독자(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만 성령의 인도하에, 사도 바울이 감독자들을 임명하도록 지시하였다는 사실에 주의를 이끌었다. (디모데 전 3:1-13; 5:22; 디도 1:5) 회중에 보낸 영감받은 편지들 중에는 그러한 지시를 담은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러면 오늘날에는 회중 내의 봉사에 대해 어떻게 임명해야 하였는가? 신권 조직에 대한 분석을 통해, 「파수대」는 여호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회중”, 「신세」]의 머리”로 임명하셨고,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셔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에게 “그 모든 소유”에 대한 책임을 맡기셨고, 그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도록 성령으로 기름부음받고 그분의 인도하에 연합하여 섬기는 지상의 모든 사람으로 구성되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그 종 반열을 수단으로 사용하여 회중에 필요한 감독을 베푸신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설명하였다. (골로새 1:18; 마태 24:45-47; 28:18)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에 분명히 기술된 교훈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적용하고 누가 봉사 지위를 위한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판단하는 데 그 말씀을 사용하는 것은 종 반열의 임무이다.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시는 보이는 수단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므로 (그리고 이미 고려된 현대 역사의 제반 사실은 이 “종”이 워치 타워 협회를 법적 도구로 사용함을 보여 주므로), 「파수대」는 신권 절차상 그 봉사 임명이 그 수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설명하였다. 제1세기 회중들이 예루살렘의 통치체를 인정하였듯이, 오늘날에도 회중들은 중앙의 감독이 없다면 영적으로 번영하지 못할 것이다.—사도 15:2-30; 16:4, 5.

그러나 사물을 올바로 보게 하기 위해, 「파수대」가 “협회”를 언급하는 것은 단지 법적 도구가 아니라 그 법인체를 설립하고 사용하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 집단을 언급하는 것이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따라서 그 표현은 통치체를 중심으로 하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을 의미하였다.

1938년에 발행된 “조직”이라는 제목의 「파수대」 기사들이 나오기도 전에, 런던,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의 회중들은 보다 작은 그룹으로 나누는 것이 바람직할 정도로 성장하였을 때 협회가 모든 종을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파수대」(영문) 1938년 6월 15일 호는 이제 그 외의 회중들도 모두 비슷한 조처를 취하도록 권하였다. 그러한 목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의문이 제안되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위해 취하신 백성의 부회이며 지금 ·⁠·⁠· 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정부가 순결한 신권 정부이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이는 조직과 보이지 않는 조직을 온전히 맡아 관리하시며, ‘협회’는 주의 보이는 지상 대표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협회’가 본 부회를, 봉사를 위해 조직하고 부회의 여러 종들을 임명하여 우리 모두가 평화와 의와 조화와 온전한 연합 가운데 함께 일할 수 있게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보다 온전히 장성해 보이며 따라서 봉사하도록 임명되는 각 직책을 맡기에 최적격으로 보이는 본 부회 성원의 명단을 여기에 첨부합니다.” *

사실상 여호와의 증인의 모든 회중이 그 점에 기꺼이 동의하였다. 활동을 꺼리는 소수의 사람은 얼마 안 가서 왕국 선포에 참여하는 것을 전적으로 중단하였으며 따라서 더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었다.

신권적 인도의 유익

가르침, 행실 표준, 조직상의 방법과 증거 방법이 각 지역에 따라 결정될 경우에는 조직은 조만간 그 본질과 연합을 잃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형제들은 사회적, 문화적, 국가적 차이점들로 인해 쉽게 분열될 것이다. 반면에 신권적 인도는 틀림없이 영적 발전으로 인한 유익이 전세계 모든 회중에 방해 없이 미치게 해줄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참 추종자들 가운데 두루 퍼지기를 기도하신 진정한 연합이 존재하게 될 것이며, 그분이 명하신 복음 전파 활동이 온전히 수행될 것이다.—요한 17:20-22.

그러나 일부 사람은 J. F. 러더퍼드가 그러한 조직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증인에 대해 더 큰 통제권을 얻기 위한 시도에 불과하며 그가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그러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실이 그러하였는가? 러더퍼드 형제가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고 강력하게 분명히 말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주의 일보다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냉정하게 상황을 다루었다. 그러나 러더퍼드 형제는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겸손하였다. 1974년에 통치체 성원이 된 칼 클라인이 후에 이렇게 기술한 바와 같다. “아침 숭배 때 러더퍼드 형제의 기도는 ·⁠·⁠·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음성은 매우 힘찼지만, 하나님을 부를 때에는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여호와와의 참으로 훌륭한 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러더퍼드 형제는 여호와의 보이는 조직의 본질에 관해 온전히 확신하고 있었으며, 형제들이 여호와께서 종들에게 베푸시는 영적 양식과 인도로부터 지방적으로 온전한 유익을 받는 것을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노력하였다.

러더퍼드 형제는 25년 동안 워치 타워 협회장으로 봉사하였고 조직의 활동을 진척시키는 데 온 힘을 바쳤지만, 여호와의 증인의 지도자가 아니었으며 지도자가 되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그는 사망하기 얼마 전인 1941년에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대회에서, 지도자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이 곳에 새로 참석하신 분들에게 여러분이 한 인간을 지도자로 생각하는지에 관하여 잊지 않도록 주지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무엇인가가 발생하여 성장하기 시작하면 언제나 어떤 중요한 인물 곧 많은 추종자를 가진 한 지도자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 서 있는 본인이 여호와의 증인의 지도자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청중 가운데 계시다면 예라고 말씀하십시오.” 그에 대한 반응으로 엄숙한 침묵이 흐르다가, 청중 가운데 몇몇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힘주어 말함으로써 침묵을 깼다. 연사는 계속 이렇게 말하였다. “여기 계시는 여러분, 본인이 주의 종들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며 우리가 연합된 가운데 함께 일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믿으신다면 예라고 말씀하십시오.” 일제히 대회 참석자들은 단호하게 “예!”라고 소리쳤다. 다음 달에 영국의 청중도 똑같은 반응을 나타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신권 조직의 유익이 이내 감지되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좀더 오래 걸렸다. 장성되고 겸손한 종이 아닌 사람들은 얼마 후에 해임되었고 다른 사람이 임명되었다.

그렇지만 신권 절차가 더 온전히 확립됨에 따라, 여호와의 증인은 이사야 60:17에 예언된 일을 체험하면서 기뻐하였다.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서 상태가 개선될 것임을 묘사하기 위해, 여호와께서는 그 구절에서 비유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금을 가져 놋을 대신하며 은을 가져 철을 대신하며 놋으로 나무를 대신하며 철로 돌을 대신하며 화평을 세워 관원을 삼으며 의를 세워 감독을 삼으리[라.]” 이것은 인간이 할 일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하실 일과 그분의 종이 그것에 복종함에 따라 받게 될 유익을 묘사하는 것이다. 평화가 그들 가운데 충만해야 한다. 의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봉사를 추진시키는 힘이 되어야 한다.

브라질에서 지부 감독자의 아내인 마우드 유일레는 러더퍼드 형제에게 이렇게 편지하였다. “「파수대」(영문) [1938년] 6월 1일 호와 15일 호에 실린 ‘조직’이라는 기사를 읽고 나니, 여호와께 충실한 봉사를 드려 사용되는 형제께, 몇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두 호의 「파수대」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여호와께서 자신의 보이는 조직을 위해 놀라운 마련을 하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 일부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 여론과 개인적 판단에 따라 ‘여성의 권리’와 그 외 비성경적 절차를 포함한 ‘내정 자치’를 옹호하였고 그로 인해 여호와의 이름에 모독이 돌아갔는데 그것의 폐지를 보게 되어 참으로 안심이 됩니다. ‘최근에 와서야 협회가 조직 내의 모든 사람을 “종”으로 부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에도 여러 해 동안 귀하가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은총에 따라 여러분의 형제이며 종’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조직상의 조정에 관해, 영국 제도의 지부는 이렇게 보고하였다. “이 조정의 효과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그에 대한 이사야 60장의 시적·예언적 묘사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며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진리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것이 주된 화제였다. 전반적으로 사기—목표가 분명한 싸움을 밀고 나아가려는 태세—가 충만하였다. 세계 긴장은 가중되었지만, 신권 통치로 인한 기쁨은 넘쳤다.”

여행하는 감독자가 회중을 강화하다

조직의 유대가 여행하는 감독자들의 봉사로 인해 한층 더 강화되었다. 제1세기에, 사도 바울은 그러한 활동에 두드러지게 참여하였다. 때때로 바나바, 디모데, 디도와 같은 사람들도 참여하였다. (사도 15:36; 빌립보 2:19, 20; 디도 1:4, 5) 그들은 모두 열심을 가진 복음 전파자들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연설로 회중을 격려하였다. 회중의 연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들이 일어났을 때, 그것은 중앙 통치체에 회부되었다. 그 후,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였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여러 교회[“회중”, 「신세」]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였다.—사도 15:1-16:5; 고린도 후 11:28.

이미 1870년대에, 러셀 형제는 성경 연구생 그룹—두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그룹뿐 아니라 더 큰 그룹—들을 영적으로 세워 주기 위해 방문하였다. 몇몇 다른 형제들이 1880년대에 그 일에 동참하였다. 그 후 1894년에 협회는 성경 연구생들이 진리에 대한 지식과 인식에서 자라고 서로 더 가까워지도록 돕기 위해 자격을 잘 갖춘 연사들이 더욱 정기적으로 여행하도록 마련하였다.

가능하면 연사는 한 그룹과 함께 하루 혹은 아마 여러 날을 보내면서 한두 가지 공개 강연을 한 다음, 하나님의 말씀의 더 깊은 것들을 얼마간 토의하기 위해 더 작은 그룹들과 개인들을 방문하였다. 대개 동일한 형제가 방문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각 그룹을 1년에 두 번씩 방문하는 노력이 기울여졌다. 그러한 여행하는 연사들을 선출할 때, 온유와 겸손과 진리에 대한 분명한 이해 그리고 진리에 대한 충성스런 고착과 그것을 명료하게 가르치는 능력에 역점을 두었다. 그들의 봉사는 보수를 받는 봉사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지방 형제들로부터 숙식을 제공받았으며, 협회는 필요한 만큼의 여비를 지원해 주었다. 그들은 순례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한 여행하는 협회 대표자들 중 많은 사람은 자신이 섬기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캐나다 사람인 A. H. 맥밀런은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에서 “불붙는 것 같”았던 형제로 기억되고 있다. (예레미야 20:9)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캐나다뿐 아니라 미국의 여러 지역과 그 외 나라들에서 청중에게 연설함으로써 그 일을 하였다. 또 다른 순례자인 윌리엄 허시는 청소년에게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다정스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기도 역시 지속적인 인상을 남겼다. 그 기도는 노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깊은 영성을 반영하였기 때문이다.

초기의 여행은 순례자들에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오리건 주 클래머스폴스 근처에 있는 그룹을 섬기기 위해, 에드워드 브레니슨은 처음에 열차로 여행한 다음 역마차로 밤새 여행하고 마지막으로는 진동이 심한 짐수레를 타고 산지를 지나 집회 장소인 농장으로 갔다. 집회 다음날 이른 아침에, 한 형제가 마련해 준 말을 타고 가장 가까운 열차역까지 약 100킬로미터 가서 다음 임명지로 여행하였다. 그것은 고된 생활이었지만, 순례자들의 노력을 통해 좋은 성과가 있었다. 여호와의 백성은 강화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면에서 연합되었으며, 지리적으로 널리 흩어져 있었는데도 서로 가까워졌다.

1926년에, 러더퍼드 형제는 순례자들의 역할을 단지 여행하며 연설하는 역할에서 여행하며 회중 야외 봉사를 감독하고 촉진시키는 역할로 바꾸는 마련을 실행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1928년에 그들은 지방 봉사 지휘자라고 불렸다. 그들은 줄곧 지방 형제들과 함께 일하면서 야외 봉사에서 형제들을 개인적으로 교훈하였다. 그 당시에 그들은 미국과 일부 다른 나라들에서 1년에 한 번 정도 각 회중을 방문하는 한편, 아직 봉사를 위해 조직되지 않은 개인들 및 작은 그룹들과 접촉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그 후 여러 해 동안, 여행하는 감독자의 일은 여러 차례 수정되었다. * 그 일은 회중의 모든 종이 신권적으로 임명된 1938년에 크게 강화되었다. 다음 수년 동안 일정한 간격을 두고 회중을 방문하는 일은 임명된 종 각자를 개인적으로 훈련시키고 야외 봉사에서 모든 사람에게 더 많은 도움을 베풀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1942년에, 여행하는 감독자들은 회중으로 다시 파견되기 전에 얼마의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 결과 그들의 일은 더욱 일치된 방식으로 수행되었다. 그들의 방문 기간은 매우 짧았다(회중 규모에 따라 하루 내지 사흘). 그 기간에 그들은 회중 기록을 조사하였고, 필요한 교훈을 베풀기 위해 모든 종과 모임을 가졌고, 회중에 한 가지 혹은 그보다 많은 연설을 하였으며, 야외 봉사를 인도하였다. 1946년에는 방문 기간이 각 회중에 대해 1주일씩으로 길어졌다.

회중을 방문하는 이 마련은 1938년에 새로운 역할을 가진 지방의 종의 봉사로 보완되었다. 그는 더 넓은 지역을 돌보면서, 회중들을 방문하기 위해 지구(순회구)를 여행하는 형제들 각자와 함께 주기적으로 한 주간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방문중에 그 지구의 모든 회중들이 참석하는 대회의 프로그램을 돌보았다. * 이 마련은 형제들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으며 새로운 제자들이 침례받는 정기적인 기회가 되었다.

‘봉사를 사랑하는 사람’

1936년부터 이 봉사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1974년에 통치체 성원이 된 존 부스가 있다. 여행하는 감독자가 될 만한 사람으로 면접을 받았을 때, 그는 이러한 말을 들었다. “필요한 것은 달변가가 아니라, 봉사를 사랑하고 앞장서서 봉사하고 집회에서 봉사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입니다.” 부스 형제는 1928년 이후 열정적인 파이오니아 봉사를 수행한 사실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여호와의 봉사에 대한 그러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으며 본과 격려의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복음 전도에 대한 열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1936년 3월에 방문한 첫 회중은 펜실베이니아 주 이스턴 회중이었다. 그는 후에 이렇게 썼다. “보통 아침에 야외 봉사를 위해 늦지 않게 한 지역에 도착하여 봉사를 하고, 초저녁에 부회의 종들과 모임을 갖고, 그 다음에 전체 부회 성원들과 집회를 가졌다. 대개 한 부회에서 이틀, 보다 작은 집단에서는 단지 하루를 보냈고, 때때로 한 주일에 그러한 집단을 여섯 개 방문하였다. 끊임없이 움직였다.”

2년 후인 1938년에 그는 지방의 종으로 매주 지구 대회(지금은 순회 대회로 알려짐)를 돌보도록 임명되었다. 그 대회는 박해가 일부 지역에서 격렬해지고 있던 때에 형제들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 당시와 자신의 여러 가지 책임을 회고하면서, 부스 형제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약 60명의 증인이 관련된 법정 소송에서 증인 역할을 하였던] 바로 그 주간에, 나는 일리노이 주 졸리엣에서 있은 또 다른 사건의 피고인으로 그리고 인디애나 주 매디슨에서 발생한 또 다른 사건에서 한 형제를 위한 변호인으로 나갔고, 그에 더하여 매 주말에는 지구 대회를 개최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러한 지구 대회(지금은 순회 대회)가 1946년에 재개된 지 2년 후에, 지역의 종으로 임명된 사람들 중에 케어리 바버가 있다. 그는 이미 뉴욕 브루클린에서 벧엘 가족 성원으로 25년간 일하였다. 그의 첫 지역은 미국의 서부 전역을 포함하였다. 처음에는 대회들간의 여행 거리가 매주 약 1600킬로미터였다. 회중의 수와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그러한 거리가 단축되었으며 대개 단 하나의 대도시 지역 안에서 순회 대회가 여러 차례 열렸다. 여행하는 감독자로서 29년간 일한 후에, 바버 형제는 1977년에 통치체 성원으로 세계 본부로 돌아오도록 초대되었다.

전쟁과 심한 박해의 기간에, 여행하는 감독자들은 종종 형제들의 영적 복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자유와 생명을 빼앗길 위험을 무릅썼다. 나치가 벨기에를 점령한 기간에, 안드레 워즈니아크는 회중을 계속 방문하면서 서적을 공급하는 데 기여하였다. 종종 비밀 경찰이 체포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결코 그를 잡지 못하였다.

1970년대 말에 로디지아(지금은 짐바브웨로 알려짐)에서는,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살았으며 내란 기간에 여행이 제한되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의 여행하는 감독자들은 인자한 목자이며 감독자로서 형제들에게 ‘광풍을 피하는 곳 같’았다. (이사야 32:2) 일부 감독자는 미개간지를 여러 날 동안 걷고 산을 오르내리고 위험한 강을 건너며 밤에 밖에서 자야 하였다. 격리된 회중과 전도인을 찾아가기 위해, 믿음 안에서 계속 굳세도록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그 모든 일을 겪었던 것이다. 그들 가운데 이사야 마코레가 있었는데, 그는 정부군과 “자유의 투사” 사이의 전투중에 탄환이 머리 위를 스쳤을 때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였다.

다른 일부 여행하는 감독자는 여러 해 동안 국제적인 차원에서 조직을 위해 봉사하였다. 워치 타워 협회장들은 종종 조직이 필요로 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대회들에서 연설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로 여행하였다. 그러한 방문은 도처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이 세계적인 형제 관계를 예리하게 인식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노어 형제는 정기적으로 각 지부와 선교인 숙소를 방문하면서 그러한 활동을 하였다. 조직이 성장함에 따라 세계를 열 개의 국제적 지구로 나누었으며, 1956년 1월 1일부터 자격 있는 형제들은 협회장의 인도하에 이 봉사가 정기적으로 돌보아지도록 보조하였다. 지금은 통치체 봉사 위원회의 인도하에 수행되는 그 지구 방문은 조직 전체의 세계적 연합과 전진에 계속 기여하고 있다.

또 다른 의미 심장한 사태 발전이 현 조직 구조에 기여하였다.

가일층의 신권적 조정

2차 세계 대전중에, 조셉 F. 러더퍼드가 1942년 1월 8일에 사망하였고 네이선 H. 노어가 제3대 워치 타워 협회장이 되었다. 조직은 여러 나라에서 그 활동에 가해진 금지령, 애국주의를 가장한 집단 폭력, 증인들이 공개 봉사중에 성서 출판물을 배부할 때 체포되는 사례 등으로 인해 큰 압력을 받았다. 관리 체제의 변화는 그처럼 위험한 때에 활동을 늦추는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관리하는 일을 돌보는 형제들은 여호와의 인도와 축복을 기대하였다.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는 욕망과 일치하게, 그들은 여호와의 방법을 더 밀접히 따를 수 있는 부면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직 구조 자체를 재검토하였다.

뒤이어 1944년에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워치 타워 협회 연례 총회와 함께 봉사 대회가 열렸다. 그 연례 총회에 앞서 9월 30일에, 성경이 여호와의 종들의 조직에 관해 알려 주는 내용에 대한 일련의 매우 의미 심장한 연설이 있었다. * 통치체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 행사에서 신권적 원칙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반열이 사용하는 모든 대행 기관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법인체가 하나님의 “성별된” 백성 모두를 구성원으로 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설명되었다. 법인체는 단지 그들을 대표하여, 그들을 위한 법적 대행 기관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협회는 영적 계몽이 담긴 서적을 여호와의 증인에게 공급하는 데 사용되는 발행 기관이었으므로, 통치체는 논리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 법적 협회의 역원들 및 이사들과 밀접히 관련되었다. 신권적 원칙이 그 일에 온전히 적용되고 있었는가?

협회 정관은 기부자가 총계 10달러(미화)를 기부할 때마다 협회의 이사회 성원 및 역원 선출과 관련하여 하나의 투표권을 부여받는 의결권자 마련을 기술하였다. 아마도 그러한 기부는 조직의 일에 대한 진정한 관심의 증거가 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련에는 문제가 있었다. 협회장 노어 형제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협회 정관 규정을 보면, 통치체의 일부가 되는 것은 법적 협회에 대한 기부에 좌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의하면 그분의 선택된 참 백성 가운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협회 초기의 32년 동안 통치체에서 선도적인 인물이었던 찰스 테이즈 러셀이 재정적으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협회에 가장 많이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께서 그를 사용하시는 방법을 결정한 것은 금전적인 기부가 아니었다.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그 봉사에 적합한 인물이었던 것은 그의 온전한 헌신, 지칠 줄 모르는 열심, 타협함이 없이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나타낸 지지, 그리고 불굴의 충성과 충실성 때문이었다. 신권 조직에는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다는 법칙이 적용된다. (고린도 전 12:18) 노어 형제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협회 정관이 협회 활동에 대한 기부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할 것을 규정하므로, 그것은 통치체에 관한 그 신권적 원칙을 흐리거나 침해하기 쉬우며, 통치체를 위태롭게 하거나 저해하게 되기도 쉽습니다.”

그러므로 1944년 10월 2일에 협회의 의결권자 전원이 참석한 법인 총회에서, 협회의 정관을 수정하여 신권적 원칙과 더욱 가깝게 조화시킬 것을 만장 일치로 가결하였다. 회원 수는 이제 무제한이지만 300명에서 500명 사이가 될 것이며, 그들 모두는 이사회에 의해 선택되게 되었다. 그들은 재정적 기부를 근거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일을 위해 전 시간 봉사하거나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의 활동적인 봉사자인 장성되고 활동적이고 충실한 여호와의 증인이기 때문에 선택되는 것이다. 그 회원들이 이사회를 선출하며 뒤이어 이사회가 그 역원을 선출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마련이 이듬해인 1945년 10월 1일에 발효되었다. 적대적인 분자들이 법인을 장악한 다음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재구성하기 위해 종종 법인 업무를 교묘히 조종하였던 시대에 그러한 마련은 참으로 보호책이 되었다!

신권적 원칙에 따르는 그러한 진보에 대해 여호와의 축복이 분명히 나타났다. 2차 세계 대전중에 극심한 압력이 조직에 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왕국 선포자의 수는 계속 증가하였다. 중단하지 않고,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힘차게 계속 증거하였다. 1939년부터 1946년까지 여호와의 증인의 대열에 157퍼센트의 놀라운 증가가 있었으며, 그들은 또 다른 여섯 개의 나라들로 좋은 소식을 전하였다. 다음 25년 동안 활동적인 증인의 수가 거의 800퍼센트나 더 증가하였으며, 그들은 추가로 86개의 나라에서 정기적인 활동을 보고하였다.

감독자를 위한 특별 훈련

일부 외부 관찰자들은 조직이 더 커지면 필연적으로 그 표준이 느슨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성서는 의와 평화가 여호와의 종들 가운데 충만할 것임을 예언하였다. (이사야 60:17) 그렇게 되려면 책임 있는 감독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의 깊이 계속 교육하고 그분의 사법적 표준을 분명히 이해하고 그 표준을 일관성 있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교육이 마련되었다.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 조건들에 대해 철저히 연구한 내용이 「파수대」에 점진적으로 발표되었으며, 전세계 여호와의 증인의 모든 회중은 그 내용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 그러나 그에 더하여, 양 떼의 감독자들은 가외의 교육을 많이 받았다.

협회 지부의 주요 감독자들은 국제 대회 때에 특별 훈련을 위해 함께 모였다. 1961년부터 1965년까지, 특별히 마련된 8-10개월간의 강습 과정이 뉴욕에서 그들에게 베풀어졌다. 1977년부터 1980년까지, 그들을 위한 또 다른 일련의 특별한 5주 과정이 있었다. 그들의 훈련은 성서 전권에 대한 구절별 연구 그리고 조직과 관련된 세부 사항들과 좋은 소식을 한층 더 전하는 방법을 포함하였다. 여호와의 증인 가운데는 국가주의적인 분열이 결코 없다. 그들은 어느 곳에 살고 있든지 간에, 동일한 높은 성서 표준에 고착하며 동일한 것을 믿고 가르친다.

순회 감독자와 지역 감독자에게도 특별한 관심이 기울여졌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워치타워 길르앗 성서 학교나 그 분교에 참석하였다. 주기적으로, 그들은 또한 며칠 혹은 1주일간의 세미나를 위해 협회의 지부 사무실에 함께 모이거나 그 외 편리한 장소에 모인다.

1959년에 또 다른 두드러진 마련이 시행되었다. 그것은 순회 감독자와 지역 감독자뿐 아니라 회중 감독자도 참석하는 천국 전도 강습이었다. 그것은 만 1개월간의 연구 과정으로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한 해 동안 사용된 후에, 그 과정을 위한 재료가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전역에서 점진적으로 사용되었다. 모든 감독자가 꼬박 한 달 동안 세속 일을 쉴 수는 없었으므로, 2주로 단축한 과정이 1966년부터 사용되었다.

이 강습은 사람들이 성직 임명을 받기 위해 훈련받는 신학교 과정이 아니었다. 참석자들은 이미 성직 임명을 받은 봉사자였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수십 년 동안 양 떼의 감독자이자 목자로 일하였다. 그들의 연구 과정은 그들의 일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자세히 검토하는 기회였다. 야외 봉사의 중요성과 그것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이 크게 강조되었다. 세상의 도덕 표준이 바뀌기 때문에, 도덕에 관한 성서 표준을 옹호하는 문제를 토의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할애되었다. 이 과정에 뒤이어 근년에는 이삼 년마다 열리는 세미나 그리고 매년 수차례 여행하는 감독자가 지방 장로들과 함께 갖는 유익한 모임이 있었다. 이것은 최근의 필요한 일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한 모임은 성서 표준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는 보호책이 되며, 모든 회중에서 상황을 일치된 방법으로 다루는 데 기여한다.

여호와의 증인은 고린도 전서 1:10의 이러한 훈계를 명심한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이것은 강요에 의한 일치가 아니라, 성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교육의 결과다. 여호와의 증인은 하나님의 방법과 그분의 목적을 기뻐한다. 성서 표준에 따라 사는 것에서 더는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자유로이 조직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신앙을 전파하거나 성서의 도덕률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감독자들은 양 떼를 보호하기 위해 조처를 취한다. 조직은 이러한 성서 교훈을 적용한다.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로마 16:17; 고린도 전 5:9-13.

성서는 하나님께서 바로 그러한 상태, 즉 의가 충만하고 평화로운 열매를 맺는 상태가 자신의 종들 가운데 존재하게 하실 것임을 예언하였다. (이사야 32:1, 2, 17, 18) 그러한 상태는 옳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낡은 제도의 끝이 오기 전에 그러한 의의 애호자들이 얼마나 모일 것인가? 여호와의 증인은 모른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일이 요구하는 바를 알고 계시며 자신의 때에 자신의 방법으로 조직이 그 요구를 돌볼 준비를 갖추게 하신다.

폭발적인 증가에 대비함

참고 서적인 Aid to Bible Understanding(「성서 이해를 위한 보조서」)를 준비하면서 통치체의 감독하에 조사가 행해질 때, 제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이 조직된 방법에 또 한번 주의가 기울여졌다. “연로자”, “감독자”, “봉사자”와 같은 성서 용어들에 대한 주의 깊은 연구가 있었다. 여호와의 증인의 현대 조직은 지침으로 성경에 보존된 본을 더욱 온전히 따를 수 있었는가?

여호와의 종들은 계속 하나님의 인도에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1971년에 열린 일련의 대회에서,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통치 마련에 주의가 기울여졌다. 성서에 사용된 프레스비테로스(연로자, 장로)라는 표현이 연로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회중 내의 영적으로 장성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 단어는 특히 회중의 감독자와 관련하여 공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도 11:30; 디모데 전 5:17; 베드로 전 5:1-3) 그러한 사람들은 영감받은 성경의 일부가 된 요구 조건들과 일치하게 임명에 의해 그 지위를 받았다. (사도 14:23; 디모데 전 3:1-7; 디도 1:5-9) 충분한 자격을 갖춘 남자들이 있는 경우에는 회중에 한 명보다 많은 장로가 있었다. (사도 20:17; 빌립보 1:1) 그들은 “장로의 회”를 구성하였고, 그들 모두가 동일한 공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이라고 해서 회중에서 가장 탁월하거나 유력한 성원인 것은 아니었다. (디모데 전 4:14) 사도 바울이 제시한 요구 조건들과 일치하게, 장로들을 보조하도록 임명된 “봉사의 종들”도 있었다는 점이 설명되었다.—디모데 전 3:8-10, 12, 13, 「신세」.

조직이 성서에서 알려 주는 그러한 형태를 더 밀접히 따르기 위한 마련이 즉시 시행되었다. 그 마련은 통치체 자체에서 시작되었다. 통치체 성원의 수는, 펜실베이니아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의 이사들로서 여호와의 증인의 통치체로 봉사한 일곱 명으로 국한되지 않고 늘어났다. 통치체 성원의 확정된 수가 더는 없게 되었다. 1971년에는 11명이 있었고, 수년 동안 18명이 있었으며, 1992년에는 12명이 있었다. 그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들로서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남자들이다. 1992년에 통치체 성원으로 봉사한 12명은 그 당시에 여호와 하나님의 봉사자로서 도합 728년 이상 전 시간 봉사를 수행한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1971년 9월 6일에는 통치체 모임에서 사회자 직책을 그 성원들의 성(姓)의 알파벳 순에 따라 해마다 윤번한다는 결정이 있었다. 이 마련은 실제로 10월 1일에 발효되었다. 또한 통치체 성원은 주(週)별로 돌아가면서 본부 성원들의 아침 숭배와 「파수대」 연구를 사회하였다. * 이 마련은 1971년 9월 13일에 프레더릭 W. 프랜즈가 뉴욕 브루클린의 협회 본부에서 아침 숭배 프로그램을 인도하였을 때 발효되었다.

이듬해에, 회중 감독을 조정하기 위한 준비가 있었다. 단 한 명의 회중의 종이 특정한 수의 다른 종들의 보조를 받는 일이 더는 없게 되었다. 성경적으로 자격을 갖춘 남자들이 장로로 봉사하도록 임명되었다. 성서의 요구 조건에 달한 다른 사람들은 봉사의 종들로 임명되었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회중 책임에 참여하여 가치 있는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당시에 여호와의 증인은 회중 수가 다음 21년 동안 156퍼센트 늘어나 1992년에 총 6만 9558개에 달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조차 못하였다. 그러나 회중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앞으로 있을 일에 대비하고 계셨다.

1970년대 초에, 통치체를 한층 더 재조직하는 일이 주의 깊이 고려되었다. 1884년에 워치 타워 협회 법인이 설립된 후, 출판물을 발행하고 세계적 복음 전파 활동을 감독하고 강습들과 대회들을 마련하는 일이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장 사무실의 감독하에 돌보아졌다. 그러나 여러 달에 걸쳐 세부 사항을 주의 깊이 분석하고 토의한 후에, 새로운 마련이 1975년 12월 4일에 만장 일치로 채택되었다. 통치체의 여섯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사회자 위원회(통치체의 현 사회자와 이전 사회자 그리고 순서상 다음 사회자가 될 위원으로 구성됨)는 주요 비상 사태·재난·박해 활동에 관한 보고를 받으며, 그러한 일들이 통치체를 통해 신속히 다루어지게 한다. 집필 위원회는 여호와의 증인을 위해 그리고 대중에게 배부하기 위해 영적 양식을 인쇄물과 녹음과 비디오 형태로 만드는 일을 감독하며, 수백 가지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감독한다. 교습 위원회의 책임은 여호와의 백성을 위한 강습들과 순회 대회와 지역 대회와 국제 대회 그리고 벧엘 가족 교육과 그러한 목적으로 사용될 재료의 작성 등을 감독하는 것이다. 봉사 위원회는 회중 및 여행하는 감독자의 활동을 포함하여 모든 분야의 복음 전파 활동을 감독한다. 출판물을 인쇄하고 발행하고 발송하는 일 그리고 공장 운영과 법적 문제 및 사업상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모두 출판 위원회의 감독을 받는다. 그리고 인사 위원회는 벧엘 가족 성원들에게 개인적·영적 도움을 베풀기 위한 마련을 감독하며, 전세계 벧엘 가족 내에서 봉사하도록 새로운 성원들을 초대하는 일을 책임진다.

도움이 되는 가외의 위원회들이 세계 본부들과 관련된 공장, 벧엘 집, 농장들을 감독하기 위해 임명된다. 이러한 위원회와 관련하여 통치체는 “큰 무리” 성원들의 재능을 폭넓게 사용한다.—계시 7:9, 15.

협회 지부들을 감독하는 면에서도 조정이 있었다. 1976년 2월 1일 이후, 각 지부는 지부의 필요성과 규모에 따라 세 명 혹은 그보다 많은 성원으로 이루어진 위원회의 감독을 받아 왔다. 이 위원회는 통치체의 감독하에 관할 지역에서 왕국 활동을 돌보는 일을 한다.

1992년에 주로 큰 무리 가운데서 선택된 여러 명의 보조자가 집필·교습·봉사·출판·인사 위원회의 모임과 일에 참여하도록 임명되었을 때, 통치체를 위한 더 많은 지원이 있게 되었다. *

책임을 그렇게 분담하는 것은 매우 유익함이 증명되었다. 회중에서 이미 조정된 마련과 함께, 그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회중의 머리이심을 인식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여러 명의 형제가 왕국 활동에 영향을 주는 문제들에 관해 함께 상의하는 것은 매우 유익함이 증명되었다. 그뿐 아니라, 조직이 참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해 온 이 시대에 감독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한 많은 지역에서 그러한 재조직을 통해 필요한 감독이 베풀어질 수 있게 되었다. 오래 전에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이렇게 예언하셨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이사야 60:22) 그분은 속히 이루셨을 뿐 아니라 자신의 보이는 조직이 그러한 증가를 돌볼 수 있도록 필요한 인도를 베푸셨다.

여호와의 증인의 당면 관심사는 하나님께서 낡은 세상의 현 마지막 날 동안에 그들에게 시키신 일이며, 그들은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 잘 조직되어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 조직이 사람의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의 조직이며 하나님의 친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조직을 인도하신다는 틀림없는 증거를 보고 있다. 통치하시는 왕으로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충실한 신민을 다가오는 큰 환난에서 보호하실 것이며 그들이 앞으로 있을 천년기중에 하나님의 뜻을 완수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조직되게 하실 것이다.

[각주]

^ 4항 1894년에, 러셀 형제는 시온의 워치 타워 책자 협회가 자격 있는 형제들을 연사로 파견하게 하였다. 지방의 집단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데 사용하도록, 그들은 서명된 증명서를 받았다. 이 증명서는 전파할 권한을 주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 소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올바로 조사하지도 않고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그 목적을 잘못 이해하였으므로, 러셀 형제는 1년도 안 되어 그 증명서를 회수하였다. 그는 관찰자들이 교직자 계급과 비슷한 것으로라도 해석할 수 있는 소지가 없게 하려고 주의 깊은 노력을 기울였다.

^ 7항 Zion’s Watch Tower(「시온의 파수대」) 1881년 10-11월 호, 8-9면.

^ 15항 때때로 지방 그룹들은 King James Version(「제임스 왕역」)에 사용된 표현과 일치하게 “교회”라고 불렸다. 또한 희랍어 성서 원문에 사용된 용어와 일치하게 에클레시아라고도 불렸다. 마찬가지로 “반”이라는 표현도 사용되었다. 사실상 정기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모이는 학생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부회라고 불린 것은 그들이 영적 전쟁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반영하였다. (참조 시 68:11, 「제임스 왕역」 난외주) 1950년에 New World Translation of the Christian Greek Scriptures(「신세계역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이 발행된 후에, “회중”이라는 현대어 성서 용어가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정하게 사용되었다.

^ 17항 희랍어 성서 본문에 사용된 단어(케이로토네오)의 문자적 의미는 “손을 뻗다, 내밀다, 혹은 들다”이며, 확대하면 “손을 들어 어떤 직책에 선출하거나 택하다”를 의미할 수도 있다.—「신약 희영 사전」(A Greek and English Lexicon to the New Testament), 존 파커스트 편, 1845년판, 673면.

^ 28항 자세한 내용은 제25장, “공개적으로, 집집으로 전파함” 참조.

^ 34항 봉사 지휘자를 통해서, 회중 곧 반과 연합한 사람들의 야외 봉사가 1919년부터 협회에 매주 보고되게 되었다.

^ 34항 Organization Method(「조직 방법」)이라는 인쇄물에 설명된 바와 같이, 각 회중은 보조 지휘자와 서적 관리인을 선출해야 하였다. 협회가 임명한 지휘자와 함께 그들이 지방 봉사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35항 「파수대」(영문) 1920년 7월 1일 호, 195-200면.

^ 40항 그 당시에 봉사 위원회는 열 명을 넘지 않았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봉사 지휘자였는데, 그는 지방적으로 선출된 것이 아니라 협회에 의해 임명되었다. 그 외 사람들은 증거 활동을 마련하고 수행하기 위해 그와 함께 일하였다.

^ 42항 1932년 이후 여러 해 동안, 그들은 요나답이라고 불렸다.

^ 49항 케이로토네오라는 희랍어 동사를 ‘손을 내밀어 선출하다’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은 그 단어의 후기 의미에 유의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존스와 매켄지가 편집하여 1968년에 다시 간행한 리델과 스콧 공편 「희영 사전」(A Greek-English Lexicon)은 그 단어를 다음과 같은 의미로 정의한다. “모임에서 투표할 목적으로 손을 내밀다 ·⁠·⁠· II. c. acc. pers. [인칭 대격과 함께], 거수로써 올바로 선출하다 ·⁠·⁠· b. 후기에는 일반적으로, 임명하다 ·⁠·⁠· 교회의 직책에 임명하다, [프레스비테루스] Act. Ap. [사도 행전] 14.23.” 그 후기 용법이 사도들의 시대에 통용되었으며, 제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 제6권 4장 2항과 13장 9항에서 그 용어를 그러한 의미로 사용하였다. 원희랍어로 사도 행전 14:23의 문법 구조 자체를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그 구절에 묘사된 일을 행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 54항 같은 해인 1938년의 나중에, 4면 인쇄물로 발행된 Organization Instructions(「조직 지침」)은 한층 더 자세한 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은 지방 회중이 자체 회중을 위해 일할 위원회를 임명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그 위원회는 성경에서 알려 주는 자격 조건들에 비추어 형제들을 고려하고 협회에 추천해야 하였다. 협회의 여행하는 대표자는 회중을 방문할 때, 지방 형제들의 자격 및 임무를 돌볼 때의 충실성을 검토하였다. 그들의 추천은 협회가 임명할 때에도 검토되었다.

^ 71항 1894년부터 1927년까지, 협회가 파견한 여행하는 연사들은 처음에는 타워 책자 협회 대표자로 알려졌다가 다음에는 순례자로 알려졌다. 1928년부터 1936년까지, 야외 봉사가 더욱 강조되면서 그들은 지방 봉사 지휘자라고 불렸다. 1936년 7월부터, 지방 형제들과의 올바른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들은 지방의 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38년부터 1941년까지, 지구의 종이 순번에 따라 제한된 수의 회중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정기적인 간격을 두고 같은 그룹들을 다시 방문하도록 임명되었다. 약 1년간 공백이 있은 후에, 이 봉사는 1942년에 형제들의 종과 함께 재개되었다. 1948년에는 순회의 종이라는 용어가 채택되었으며, 지금은 순회 감독자라고 불린다.

1938년부터 1941년까지, 지방의 종은 새로운 역할을 가지고 정기적으로, 제한된 지역(지구)의 증인들이 특별 프로그램을 즐기고자 모이는 지방 대회를 위해 봉사하였다. 이 일이 1946년에 재개되었을 때, 이 여행하는 감독자들은 지역의 종이라고 알려졌으며, 지금은 지역 감독자라고 불린다.

^ 72항 이 마련은 1938년 10월 1일에 시작되었다. 전시에 대회를 마련하기가 더욱 어려워져서, 지구 대회가 1941년 말에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나 1946년에 이 마련이 재개되었으며, 여러 회중이 특별한 교육을 위해 함께 모이는 그 행사는 순회 대회라고 불렸다.

^ 84항 이 연설의 내용은 「파수대」(영문) 1944년 10월 15일 호와 11월 1일 호에 들어 있다.

^ 102항 나중에, 그들은 그러한 임무를 돌보는 데 참여할 그 외 벧엘 가족 성원들을 선택하였다.

^ 108항 「파수대」 1992년 4월 15일 호, 7-17, 31면.

[204면 삽입]

교직자 계급은 그들 가운데 존재하지 않았다

[205면 삽입]

“지상의 조직”을 설립하려고 하지 않음

[206면 삽입]

장로들은 어떻게 선택되었는가?

[212면 삽입]

협회가 지휘자를 임명함

[213면 삽입]

일부 장로는 회중 밖에서 전파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214면 삽입]

대열의 수가 감소되었지만 조직은 강화되었다

[218면 삽입]

어떻게 임명해야 하였는가?

[220면 삽입]

러더퍼드는 단지 더 큰 통제권을 얻고자 한 것인가?

[222면 삽입]

두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그룹뿐 아니라 더 큰 그룹들과 접촉을 계속 유지함

[223면 삽입]

여행하는 감독자의 새로운 책임

[234면 삽입]

사회자직이 윤번하는 확대된 통치체

[235면 삽입]

폭발적인 증가 시대에 필요한 감독

[207면 네모]

왜 바꾸었는가?

주의 백성의 여러 그룹에서 장로를 선출하는 일과 관련하여 자신의 견해를 바꾼 것에 대해 질문을 받고서, C. T. 러셀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무엇보다도 우선 여러분에게 단언하는 것은 본인이 오류가 없음을 주장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 우리는 지식에서 자라감을 부인하지 않으며, 우리가 주의 백성의 여러 작은 그룹 내의 장로나 인도자들에 관한 주의 뜻을 지금은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본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진리 안에 일찍 들어와 자연적으로 그 작은 부회들의 인도자들이 된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우호적으로 품었던 비현실적인 견해는 그들이 진리의 지식의 영향으로 매우 겸손해져서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이며 자신이 무엇이든 알고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그분에 의해 사용되기 때문임을 인식하리라는 것이었다. 우리의 비현실적인 희망은 그들이 어느 모로 보나 양 떼의 본이 될 것이며, 진리를 전하는 면에서 동일하게 유능하거나 보다 유능한 형제가 주의 섭리로 작은 부회에 한 명 혹은 더 많이 있게 될 것이며 그들이 사랑의 영으로 서로 존경하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봉사 참여를 위해 서로 돕고 권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진 우리는 예정된 더 큰 분량의 은총과 진리를 지금 경험하고 있고 주의 성별된 백성이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초기 교회에서 사도들이 설명한 과정을 따르는 것이 불필요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사도들이 하나님의 감독하에 설명한 마련은 여느 사람이 꾸며 낼 수 있는 어떤 마련보다 우월하다는 사실과, 우리 모두가 부활을 통해 변화됨으로써 완전 무결해지고 주와 직접 연합하게 될 때까지는 사도들이 제정한 규정이 전체 교회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 우리의 잘못이었다.

“우리의 잘못을 점차 깨닫게 된 것은 사랑하는 형제들 사이에서 경쟁 의식이 어느 정도 있음을 보았고, 여러 사람이 집회 인도자의 임무를 봉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책으로 보며 동일한 능력과 진리에 대한 동일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성령의 검을 능숙하게 휘두르는 다른 형제를 배제하며 그들이 자연히 인도자로 발전되는 것을 막고 싶어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시온의 파수대」 1906년 3월 15일 호, 90면.

[208, 209면 네모와 삽화]

한 세기 전에 피츠버그 지역에서 협회가 사용한 시설

여기 보이는 성서관은 1890년부터 1909년까지 19년 동안 본부 역할을 하였다 *

러셀 형제는 여기서 연구하였다

1902년에 여기서 봉사한 성서관 가족 성원들

이 건물에는 식자·조판부(위 오른쪽), 발송부(아래 오른쪽), 서적 창고, 성원들을 위한 숙소, 300명 가량 수용할 수 있는 회당(대회 회관) 등이 있었다

[각주]

^ 162항 1879년에는 본부가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 5번가 101번지에 있었다. 사무실들을 1884년에 앨러게이니(피츠버그 북부) 페더럴가 44번지로, 그리고 같은 해의 나중에 페더럴가 40번지(1887년에 로빈슨가 151번지로 개칭됨)로 이전했다. 1889년에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자, 러셀 형제는 왼쪽에 보이는 성서관을 앨러게이니 아치가 56-60번지(나중에 아치가 610-614번지로 바뀜)에 지었다. 1918-19년에 얼마 동안, 그들은 다시 한번 피츠버그에 주사무실을 두었는데, 페더럴가 119번지 건물 3층을 사용하였다.

[211면 네모]

그것은 누구의 일인가?

지상 생애 말년에, 찰스 테이즈 러셀은 이렇게 썼다. “주의 일에서 머리 역할을 하시는 분은 그분 자신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백성이 잊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우리가 일을 할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일을 거들어 주시는 우리의 동역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너무나 흔하다. 문제를 올바로 파악하자. 그래서, 하나님께서 큰 일에 대한 목적을 세우셨으며 그 일을 수행하고 계시다는 사실과 그 일은 우리 그리고 우리의 노력과 전혀 관계 없이 성공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조물주의 경륜과 계획과 마련과 길을 실행하는 면에서 그분의 동역자로서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부여된 큰 특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자. 그러한 관점에서 사물을 보면서, 주의 뜻을 알고 행할 목적으로 기도하고 살펴야 하며 우리가 맡은 역할이 무엇이든 간에 만족해야 한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우리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가 따르고자 하는 방침이다.”—「파수대」(영문) 1915년 5월 1일 호.

[215면 네모와 삽화]

V.D.M. 질문

V.D.M.이라는 글자는 라틴어 표현인 “베르비 데이 미니스테르”(Verbi Dei Minister) 즉 하나님의 말씀의 봉사자를 의미한다.

1916년에 협회는 성경 문제들에 관한 질문 목록을 준비하였다. 연사로서 협회를 대표하게 될 사람들은 각 질문에 대해 서면으로 답하도록 요구받았다. 그러한 마련을 통해 협회는 그러한 형제들이 기본적인 성서 진리에 대해 어떠한 생각과 의견과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협회 심사단은 필기 답안을 주의 깊이 검토하였다. 연사 자격을 갖추었다고 인정되는 사람은 85점 이상 맞아야 하였다.

그 후 많은 장로와 집사와 그 외 성경 연구생들은 질문 목록을 가질 수 있는지 질문하였다. 얼마 후에, 반들이 V.D.M. 자격을 갖춘 사람들만 대표자로 선출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협회가 하나님의 말씀의 봉사자 칭호를 준 것은 그 사람이 성직 임명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협회 심사단이 교리에 관한 그 사람의 지식 정도와 그의 평판을 어느 정도 검토하였으며 그가 하나님의 말씀의 봉사자로 불리기에 합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음을 의미하였다.

V.D.M.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첫 창조 행위는 무엇이었는가?

(2) 하나님의 아들과 관련된 “로고스”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3) 언제 그리고 어떻게 죄가 세상에 들어왔는가?

(4) 죄인들에게 임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은 무엇인가? 그리고 죄인이란 누구인가?

(5) “로고스”가 육신이 될 필요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분은 “화신”하였는가?

(6) 유아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본질은 무엇이었는가?

(7) 부활된 후 예수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분과 여호와의 공적 관계는 무엇인가?

(8) 이 복음 시대—오순절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에 예수께서 해 오신 일은 무엇인가?

(9)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인류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그리고 예수께서는 무엇을 하셨는가?

(10) 교회가 완성될 때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11) 인류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12) 끝까지 바로잡을 수 없는 사람들의 운명은 어떠할 것인가?

(13) 인류 세상은 메시야 왕국에 순종함으로써 무슨 상 혹은 축복을 받게 될 것인가?

(14) 무슨 단계들을 통해 죄인이 그리스도 및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필수적인 관계에 들어올 수 있는가?

(15) 그리스도인이 성령으로 출생한 후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지시된 그의 행로는 어떠한 것인가?

(16)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죄로부터 돌아섰는가?

(17) 자신의 생명과 모든 힘과 재능을 주와 그분의 봉사에 온전히 성별하였는가?

(18) 그 성별의 상징으로 물침례를 받았는가?

(19) 생명의 신성함에 관한 만국 성경 연구회 서약을 받아들였는가?

(20) 여섯 권으로 된 STUDIES IN THE SCRIPTURES(「성경 연구」)를 철저하게 주의 깊이 읽었는가?

(21) 그 책들로부터 많은 계몽과 유익을 얻었는가?

(22) 여생 전체에 걸쳐서 주의 종으로 보다 능률적으로 일하게 해줄 실질적이고 내구적인 성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가?

[216, 217면 네모와 삽화]

브루클린에서 초창기에 사용된 건물

벧엘 집

콜럼비아 하이츠 122-124번지

벧엘 집의 식당

태버내클

사무실, 서적 창고, 우송부, 식자기, 800석 규모의 강당이 이 곳 힉스가 17번지에 있었다 (1909년부터 1918년까지 사용됨)

강당

초기 공장

1920년에 머틀가 공장에서 일했던 벧엘 가족 성원들(오른쪽)

머틀가 35번지 (1920-22)

콩코드가 18번지 (1922-27)

애덤스가 117번지 (1927- )

[224, 225면 네모와 삽화]

여행하는 감독자들 수천 명의 역대 봉사자들 중 일부

캐나다, 1905-33

영국, 1920-32

핀란드, 1921-26, 1947-70

미국, 1907-15

회중들 사이를 여행함—

그린란드

베네수엘라

레소토

멕시코

페루

시에라리온

나미비아의 이동 숙박 설비

일본에서 지방 증인들과 함께 야외 봉사에 참여하는 장면

독일에서 지방 장로들과의 모임 장면

하와이에서 파이오니아들에게 실용적인 교훈을 베푸는 장면

프랑스에서 회중을 교훈하는 장면

[229면 네모와 삽화]

초기 법인체

시온의 워치 타워 협회(Zion’s Watch Tower Tract Society). 1881년에 처음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후 1884년 12월 15일에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법인이 됨. 1896년에 그 이름이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로 변경되었다. 1955년 이후 펜실베이니아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로 알려졌다.

만민의 설교단회(Peoples Pulpit Association). 협회가 그 주된 사무실을 뉴욕 브루클린으로 이전한 것과 관련하여 1909년에 구성됨. 1939년에 그 이름이 사단법인 워치타워 성서 책자 협회(Watch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Inc.)로 변경되었다. 1956년 이후 뉴욕 법인 워치타워 성서 책자 협회(Watch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New York, Inc.)로 알려졌다.

만국 성경 연구회(International Bible Students Association). 1914년 6월 30일에, 영국 런던에서 법인이 됨.

법적 요구 조건에 달하기 위해, 여호와의 증인은 많은 공동체와 나라들에서 그 외 법인들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은 국가별 혹은 지역별 조직으로 나뉘지 않는다. 그들은 연합된 세계적 형제 관계를 누린다.

[234면 네모]

‘원시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같다’

종교 출판물인 「인터프리테이션」은 1956년 7월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들[여호와의 증인]은 조직과 증거 활동에 있어서, 어느 그룹 못지않게 원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닮았다. ·⁠·⁠· 말과 글로 소식을 전할 때 그들처럼 광범위하게 성경을 사용하는 그룹은 거의 없다.”

[210면 삽화]

보다 면밀한 감독을 베풀기 위해, 지부들이 설립되었다. 첫 지부 사무실은 영국 런던의 이 건물에 있었다

[221면 삽화]

1941년의 J. F. 러더퍼드. 증인들은 그가 자신들의 지도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226면 삽화]

존 부스, 1936년부터 1941년까지 미국에서 여행하는 감독자로 일함

[227면 삽화]

케어리 바버, 그의 지역은 미국의 광대한 지역을 포함하였다

[228면 삽화]

노어 형제는 각 지부와 선교인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였다

[230면 삽화]

협회 지부의 주요 감독자들은 특별 훈련을 위해 소집되었다 (뉴욕, 1958년)

[231면 삽화]

천국 전도 강습은 세계 전역의 감독자들에게 가치 있는 교육을 베풀었다

천국 전도 강습, 1978년에 타이 난민촌에서; 1966년에 필리핀에서 (위 왼쪽)

[232면 삽화]

증인의 활동을 조정하고 봉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마련을 알리기 위해 조직 지침과 관련된 출판물이 점차 (처음에 영어로, 그 다음에 다른 언어로) 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