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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그분은 누구인가?

하나님—그분은 누구인가?

제4장

하나님—그분은 누구인가?

1. (ㄱ) 사람들은 어떠한 신들을 숭배해 왔습니까? (ㄴ) 성서는 “신들[gods]”과 “신[God]” 혹은 “하나님” 사이를 어떻게 구분합니까?

전세계를 통하여 숭배받는 신들(gods)이 많이 있습니다. 신도(神道), 불교, 힌두교, 부족 종교들 사이에 신들은 수백만이나 됩니다. 예수의 사도들 시대에는 제우스와 헤르메스와 같은 신들이 숭배를 받았었습니다. (사도 14:11, 12, 새번역) 그러므로 성서는 “많은 신들”이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또한 “우리에게는 아버지 되시는 한 분 하나님이 계실 뿐이며 만물은 그에게서 생겼”다고 말합니다. (I 고린도 8:5, 6, 새번역) ‘이 하나님이 누구인가?’하고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입니까?

2. 사람들은 하나님에 관하여 어떻게 각기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2 많은 사람들은 “그분은 주님”이라고 대답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분은 하늘에 있는 영[靈]’이라고 대답할지 모릅니다. 한 사전은 하나님을 “최고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가?’하고 질문하면 일부 사람들은 ‘예수’라고 대답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어느 곳에나 있는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 여부조차 의심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참으로 존재하신다

3. 집은 어떻게 존재하게 됩니까?

3 우리가 아름다운 건물을 보게 되면 건축자가 누구인가를 궁금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만일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단순히 저절로 생겨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말을 믿겠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한 성서 필자가 “집마다 지은 이가 있”다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그 성서 필자의 논리적인 결론에도 동의할 수 있지 않습니까?—히브리 3:4.

4. 수천억의 별들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습니까?

4 수천억을 헤아리는 별들이 있는 우주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모든 별들이 서로 완전한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법칙에 따라 하늘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하는 것은 오래 전에 제기된 질문이었습니다. 그분은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는 분이라는 대답은 이치적입니다. (이사야 40:26) 수천억을 헤아리는 별들이 아무런 인도없이 저절로 생겨나서 놀랍게도 질서있게 움직이는 거대한 별의 체계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시 14:1.

5. (ㄱ) 고기 써는 칼의 부속품들이 저절로 모여서 조립될 수 있는 확률은 어떠합니까? (ㄴ) 이것은 우리의 우주에 대하여 어떠한 사실을 알려 줍니까?

5 이렇게 고도로 조직된 우주가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큰 능력이 있는 지성적인 창조주가 있어야 합니다. (시 19:1, 2)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한 사업가는 자기 공장에서 한 여공이 고기 써는 전기 칼의 부분품 열일곱 개를 조립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이틀이 걸린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단순히 식탁용 도구의 생산자에 불과하지만 고기를 써는 전기 칼 열일곱 개의 부분품을 세탁기에 넣고 170억 년 간 돌린다 하더라도 결코 전기 칼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상의 수많은 생명을 포함한 이 우주는 고기 써는 전기 칼보다 말할 수 없이 더 복잡합니다. 그러한 기계도 기술있는 제작자가 있어야 한다면 만물을 창조하는 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하여 그분께 영예가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계시 4:11; 사도 14:15-17; 17:24-26.

하나님은 실제 인격체인가?

6. 하나님이 실제 인격체이심을 우리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6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실제 인격체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하나님은 과연 실제 인격체이십니까? 우리는 지성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고 말하는 일이 있습니다. 정신이 있는 곳에는 특정한 형태를 가진 몸 안에 두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창조물을 창조한 위대한 정신은 위대한 인격체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속합니다. 그분은 물질로 된 몸을 가지시지 않고 영으로 된 몸을 가지신 분입니다. 영으로 된 인격체도 몸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육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읍니다.”—I 고린도 15:44, 새번역; 요한 4:24.

7. (ㄱ) 하나님께서는 사시는 특정한 곳이 있다는 것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ㄴ) 그분에게 몸이 있다는 것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7 하나님은 영적인 몸을 가지신 분이므로 반드시 사시는 곳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서는 하늘이 하나님의 “계신 곳”이라고 알려 줍니다. (열왕 상 8:43) 또한 “그리스도께서 ·⁠·⁠·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고 알려 줍니다. (히브리 9:24)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할 생명의 상을 받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그때 영으로 된 몸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을 보게 되고 그분과 같아질 것이라고 성서는 알려 줍니다. (요한 1서 3:2) 이것 역시 하나님은 한 인격체이시며 한 몸을 가지고 계심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8, 9. (ㄱ) 발전소의 예는 하나님의 멀리 미치는 힘을 어떻게 예시합니까? (ㄴ) 하나님의 성령은 무엇이며, 그것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8 그러나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하늘의 특정한 곳에 사시는 실제 인격체라면 그분이 어떻게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아실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우주 전체에 그분의 능력이 미칠 수 있겠는가?’ (역대 하 16:9) 하나님께서 한 인격체라는 사실이 그분의 능력이나 위대하심을 제한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분에 대한 우리의 존경심을 감소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역대 상 29:11-13) 이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멀리 미치는 발전소의 힘을 생각해 보십시오.

9 발전소는 한 장소, 아마도 도시 근교에 위치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발생된 전기는 그 지역 전체에 빛과 동력을 공급합니다. 하나님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분은 하늘에 계십니다. (이사야 57:15; 시 123:1) 그러나 그분의 보이지 않는 활동력인 성령은 우주 전체를 통하여 어디에서나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모든 생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시 33:6; 창세 1:2; 시 104:30)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창조하기 위하여 몸소 현장에 가셔야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분은 자기의 활동력인 영을 아무리 먼 곳이라 할지라도 그가 원하시는 곳으로 보내서 원하시는 일을 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운 분이십니다!—예레미야 10:12; 다니엘 4:35.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10.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무엇입니까?

10 하나님은 우리가 잘 알게 되면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자라게 될 만한 그러한 분입니까? ‘그럴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분을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분에 관하여 잘 알 수 있는가?’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요한 1:18) 성서는 다음과 같이 한 가지 방법을 알려 줍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느니라.]” (로마 1:20)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진지하게 검토해 보고 그것들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11.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로부터 하나님에 관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1 우리가 이미 고려한 바와 같이 별이 있는 하늘을 살펴봄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놀라운 능력에 대하여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시 8:3, 4; 이사야 40:26) 그러면 이 땅을 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아주 적당한 곳에 두심으로 태양으로부터 적당한 열과 빛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 물의 순환을 생각해 보십시오. 빗물이 내려와 땅을 적십니다. 그 물은 강으로 흘러 바다로 모입니다. 태양은 물을 바다로부터 수증기가 되게 하여 올려 갑니다. 그것은 다시 비가 되어 땅을 적십니다. (전도 1:7) 하나님께서 사람과 동물들에게 필요한 식품과 집 그리고 모든 것을 공급하도록 작용하게 하신 여러 가지 놀라운 순환 계통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놀라운 일들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에 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줍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위대한 지혜를 가지신 분이며, 가장 관대하게 자기의 창조물을 돌보시는 분이심을 알려 줍니다.—잠언 3:19, 20; 시 104:13-15, 24, 25.

12. 우리 자신의 몸은 하나님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줍니까?

12 우리의 몸을 좀 생각해 보십시오. 단순히 살도록만 만드신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삶을 즐기도록 참으로 놀랍게 설계되었습니다. (시 139:14) 우리의 눈은 흑과 백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총천연색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세계는 우리를 즐겁게 하는 온갖 색깔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맛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필수 요건이 아니라 즐거움을 갖게 합니다. 이러한 감각이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 많고 관대하신 그리고 사려깊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창세 2:9; 요한 1서 4:8.

13.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다루시는 방법으로부터 그분에 관하여 무엇을 알게 됩니까?

13 또한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루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인가를 잘 알려 줍니다. 그분에게는 강한 공의감이 있으십니다. 그분은 특정한 인종을 편애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사도 10:34, 35) 그분은 또한 인자하고 친절하십니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 생활로부터 구출하신 이스라엘 민족을 다루신 것에 관하여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 저희는 육체뿐 ·⁠·⁠· 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종 불순종하였고 그러므로 하나님을 슬프게 하였습니다.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번인고 ·⁠·⁠·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아프시게, 신세]하였도다”하고 성서가 말한 바와 같습니다. (시 78:38-41; 103:8, 13, 14) 한편 하나님의 종들이 그분의 법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즐거워하십니다. (잠언 27:11)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의 종들이 적에게 고통을 당할 때 어떻게 느끼시는가가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스가랴 2:8) 우리는 보잘것없는 모든 인류에 대하여 그러한 애정을 가지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겠다는 감동을 받지 않습니까?—이사야 40:22; 요한 3:16.

하나님이 예수인가 혹은 삼위일체인가?

14. 삼위일체 교리는 무엇입니까?

14 이 위대하신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그분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성서 가운데 “삼위일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분을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리에 의하면 한 하나님 안에 세 위(位) 혹은 세 인격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성부, 성자, 성신으로 된 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종교 조직에서는 “오묘”라고 말하면서도 이 교리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견해는 맞는 것입니까?

15. 성서는 하나님과 예수가 동등한 분이 아닌 각각 별개의 인격체이심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15 예수께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신 일이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성서에서는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분은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0:34-36; 14:28) 또한 예수께서는 자기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르고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마가 13:32) 더욱이 예수께서는 한번은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고 기도하신 일이 있습니다. (누가 22:42) 만일 예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그분은 자기 자신에게 기도하는 일은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상, 예수께서 죽으신 후에 성경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2:32)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과 예수는 분명히 각각 별개의 인격체이십니다. 심지어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되어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도 그분은 아버지와 동등되지 않으셨습니다.—고린도 전 11:3; 15:28.

16. 예수를 “신[God]” 혹은 “하나님”이라고 한 곳이 있다 할지라도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심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16 ‘그러나 성서에는 예수를 신(god) 혹은 하나님이라고 한 곳이 있지 않은가?’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사단도 신(god)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고린도 후 4:4) 요한 복음 1장 1절에서 예수를 “말씀”이라고 하였는데 일부 성서는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나 2절에 주의하십시오. 그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예수를 보았지만 18절에서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1절의 원어의 정확한 뜻을 다음과 같이 나타낸 번역판들이 있습니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은 신성[divine]이었다.” 혹은 “한 신[a god]”으로서 그 말씀이 능력있는 한 신과 같은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역; 공동 번역 참조) 분명히 예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실상 예수께서는 아버지를 “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20:17; 17:3.

17. 예수의 추종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진 것은 그것이 한 위 혹은 한 인격체가 아님을 어떻게 증명해 줍니까?

17 삼위일체 중 소위 셋째 위라는 “성신” 혹은 “성령”에 관하여는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한 위(位) 혹은 한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력입니다. 침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가 물로 침례를 베푼 것처럼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물이 한 인격체가 아닌 것처럼 성령도 한 인격체가 아닙니다. (마태 3:11)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되신 후에 예루살렘에 모인 추종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짐으로써 요한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성서는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2:4) 그들이 한 인격체로 충만함을 받은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활동력으로 충만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는 성서의 가르침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사실상 예수께서 이 땅에 사시기 오래 전부터 고대 애굽이나 바벨론 같은 곳에서는 셋으로 된 신들 혹은 삼위일체 신들이 숭배되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18. (ㄱ)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입니까? (ㄴ) 그분의 고유한 이름은 무엇입니까?

18 우리가 아는 사람으로서 이름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도 다른 모든 신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이름이 아닌가?’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대통령,” “왕,” “판사” 등과 같은 칭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서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성서에는 약 7000번이나 그 이름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개역 한글판」 성서 시편 83:18을 보면 이러합니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또한 하나님의 이름이 대부분의 성서 계시록 19:1-6에 “할렐루야”라는 표현에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야를 찬양하라”는 뜻이며, “야”는 여호와의 약칭입니다.

19. (ㄱ) 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성경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까? (ㄴ) 「흠정역」 성서에는 그 이름이 어디에 나타납니까?

19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들의 성서 가운데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을 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성서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자주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흠정역」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출애굽기 6:3, 시편 83:18, 이사야 12:2과 26:4에만 나옵니다. 그러나 이 성서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칭호인 “주[Lord]” 또는 “하나님[God]”으로 번역하였을 때에는 반드시 대문자로 “주[LORD]”와 “하나님[GOD]”이라고 표기합니다. 그렇게 해서 일반적인 “주[Lord]”와 “하나님[God]”이라는 표현과 구별합니다. 이러한 예를 시편 110:1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 (ㄱ) 하나님의 이름이 흔히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마땅히 그러해야 합니까?

20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길 것입니다. ‘성서 원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나는 곳마다 왜 그 이름이 사용되지 않았는가? 일반적으로 주[LORD]와 하나님[GOD]이라는 칭호가 사용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국 표준역」은 그 서언에서 그 번역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사용한 이유와 오랫동안 그 이름이 사용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미 개역자들은 주의깊은 고려 끝에 하나님의 이름은 발음하기에 너무나 거룩하다는 유대인들의 미신이 더는 영어 번역이나 기타 어느 언어역에도 지배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일치된 의견을 갖기에 이르렀다. ·⁠·⁠· 이 고유한 이름이 그 풍부한 성스러운 결합과 함께 이제 의문의 여지 없이 그 이름이 차지해야 하는 위치로 거룩한 원본에 회복되었다.” 그렇습니다.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빼낸 이유가 온당한 것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서의 올바른 곳에 그 이름을 회복시켰습니다.

21. 가톨릭 「두에이역」 성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1 그러나 “여호와”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이름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가톨릭의 「두에이역」은 출애굽기 6:3에 난외주를 다음과 같이 달았습니다. “일부 현대인들이 그 이름을 여호와[Jehovah]라고 발음하고 있으나 ·⁠·⁠· 히브리 원본에 나오는 그 이름의 정확한 발음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아 이제 거의 잊혀졌다.”

22. (ㄱ) 하나님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어떻게 표기됩니까? (ㄴ) 하나님의 이름이 원래 어떻게 발음되었었는지를 아는 데 왜 문제가 있습니까?

22 그렇습니다. 가톨릭 성서의 말처럼 성서의 처음 39권이 기록된 언어인 히브리어 원본에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납니다. 그 이름은 히브리 네 글자 YHWH로 표기됩니다. 고대에 히브리어는 올바로 발음하는 데 도움이 되는 ㅏ, ㅓ, ㅗ, ㅜ, ㅡ, ㅣ(a, e, i, o, u)와 같은 모음이 없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네 글자 YHWH의 자음과 함께 어떠한 히브리어 모음이 사용되었는가를 우리가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23. 영어로 “빌딩(building)”이라는 단어의 약자 “bldg”가 하나님의 이름을 발음하는 문제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23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하여 영어로 건물을 의미하는 “빌딩(building)”이라는 단어를 고려해 보십시다. 그 단어를 항상 “bldg”로만 기록하고 전혀 발음하지 않았다고 합시다. 앞으로 1000년 후에 사는 사람들이 “bldg”라는 기록을 보았을 때 그것을 발음할 수 있겠습니까? 전혀 그 단어의 발음을 들어본 일이 없고 관련된 모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확실한 발음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경우도 이와 같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야훼[Yahweh]”가 정확한 발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확한 발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Jehovah]”라는 발음이 여러 세기 동안 사용되어 왔으며, 가장 널리 알려진 형태입니다.

24. (ㄱ) 일관성있기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왜 마땅합니까? (ㄴ) 사도 행전 15:14을 고려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24 하나님의 이름의 원래의 발음 법을 정확하게 모른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야 합니까? 우리는 원래 히브리어로 정확한 발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이라 할지라도 성서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의 이름이 히브리어로는 “예수아”로 발음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발음이 “야훼”이거나, “여호와”이거나 또는 우리 언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다른 발음이거나 성서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마땅히 사용해야 합니다.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잘못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으로 선택하시겠다는 사람들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15:14)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 하신 바와 같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마태 6:9; 요한 17:6, 26.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

25. (ㄱ) 하나님에 관한 어떠한 사실이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동기로 창조를 시작하셨습니까?

25 우리의 사고로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울지 모르지만 여호와는 결코 시작이 없으셨으며, 앞으로도 결코 끝이 없으실 분입니다. 그분은 “영원하신 왕”이십니다. (시 90:2; 디모데 전 1:17, 신세) 여호와께서 창조를 시작하시기 전에는 우주 공간에 홀로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외롭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전혀 부족함이 없는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사랑의 동기로 다른 피조물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것을 즐기도록 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첫 창조물들은 하나님과 같은 영적 인격체들이었습니다. 그분은 인간을 위하여 땅을 준비하기 전에도 천적 아들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조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들에게 맡기신 일로부터 그리고 생활을 통하여 그들이 큰 즐거움을 갖게 하는 것이 여호와의 목적이었습니다.—욥 38:4, 7.

26.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우리는 왜 확신할 수 있습니까?

26 이 땅이 준비되자 여호와께서는 아담과 하와 부부를 이미 낙원이 되게 한 땅의 부분에 두어 살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숭배하고 순종하는 자녀들을 갖고 온 땅을 낙원으로 만들게 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었습니다. (창세 1:27, 28)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게 된 바와 같이 이 웅대한 목적이 방해를 받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길을 택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신다면 좌절을 자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사야 46:10, 11.

27. (ㄱ) 우리는 왜 하나님 앞에 책임이 있습니까? (ㄴ)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질문을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까?

27 당신은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서 어디에 부합됩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고려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사단과 아담 그리고 하와가 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았지만 그 뜻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책임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책임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그분께 의존해 있습니다. (시 36:9; 마태 5:45) 그러면 우리는 어느 정도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하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기회가 그것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숭배하는 방법

28. 하나님을 숭배하는 데 어떠한 보조물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28 우리가 여호와를 어떻게 숭배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방법대로 숭배해야 합니다. 아마 그것이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다르다 할지라도 그러합니다. 예를 들면 숭배를 하는 데 형상을 사용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형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을 숭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가 형상의 도움을 받아 숭배하기를 원하십니까?

29. 성서는 숭배하는 데 형상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임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29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그 이유로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결코 보이게 나타나지 않으신다고 말하였습니다. (신명 4:15-19) 사실상 10계명 중 한 계명은 이러합니다. “너희는 ·⁠·⁠·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출애굽 20:4, 5, 공동 번역) 여호와만 숭배를 받아야 합니다. 성서는 거듭거듭 형상을 만들거나 그 앞에 절하거나, 여호와 외에 누구 혹은 어느 것이든 숭배해서는 안 됨을 알려 줍니다.—이사야 44:14-20; 46:6, 7; 시 115:4-8.

30. (ㄱ) 예수와 사도들은 형상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임을 어떻게 지적하였습니까? (ㄴ) 신명기 7:25에 의하면 형상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30 그러므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예수께서는 결코 숭배하는 데 형상을 사용하신 일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에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요한 4:24, 새번역) 이 교훈과 일치하게 생활하는 데 있어서 예수의 초기 추종자들 가운데 숭배의 보조물로서 형상을 사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실상 사도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고린도 후 5:7) 예수의 사도 요한은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요한 1서 5:21) 집을 한번 둘러보고 내가 과연 이러한 교훈을 따르고 있는지 자문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신명 7:25.

31. (ㄱ) 하나님의 어떠한 법이 주어진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왜 우리는 그것을 순종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집니까? (ㄴ) 우리는 어떻게 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하며, 우리는 어떠한 초대에 응해야 합니까?

31 창조주 여호와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그분을 숭배하는 것은 분명히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예레미야 14:22) 성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우리의 영원한 복지를 위한 것임을 알려 줍니다. 우리의 제한된 지식과 경험 때문에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특정한 법이 왜 그렇게도 중요한지, 어떻게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한지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아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우리로 기쁜 마음으로 그분께 순종하게 해야 합니다. (시 19:7-11) 그러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여호와에 관하여 배우고자 노력하고 다음과 같은 초대에 응하도록 합시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시 95:6, 7.

[연구 질문]

[42면 네모]

영문 「흠정역」에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는 네 곳

출애굽기 6:3

3 And I appeared unto Abraham, unto Isaac, and unto Jacob by the name of God Almighty, but by my name JEHOVAH was I not known to them.

시편 83:18

18 That men may know that thou, whose name alone is JEHOVAH, art the most high over all the earth.

이사야 12:2

2 Behold, God is my salvation; I will trust and not be afraid: for the LORD JEHOVAH is my strength and my song; he also is become my salvation.

이사야 26:4

4 Trust ye in the LORD for ever: for in the LORD JEHOVAH is everlasting strength:

[34, 35면 삽화]

집을 지은 이가 있다면, ·⁠·⁠· 더 복잡한 우주도 반드시 지은 이가 있어야 한다

[39면 삽화]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자기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기도하셨으므로, 두 분은 동일한 인격체이실 수 없다

[40, 41면 삽화]

성령이 동시에 120명의 제자들에게 충만했는데, 어떻게 그것이 한 인격체일 수 있는가?

[45면 삽화]

숭배에서 형상을 사용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