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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참으로 독특한 존재이다!

우리는 참으로 독특한 존재이다!

제4장

우리는 참으로 독특한 존재이다!

당신은 매일 아침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거울을 쳐다보고 당신의 모습을 살핍니까? 그렇다 해도 아마 찬찬히 살펴볼 시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잠깐 살펴보는 동안에 당신의 모습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하면서 감탄할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당신의 눈은 당신 자신의 모습을 총천연색으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총천연색으로 보는 것이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해줍니다. 당신의 귀의 위치 덕분에 당신은 소리를 입체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포함하여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능력을 당연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음향 조절 기사들을 위해 발행된 한 책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청각 기관에 대해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 복잡한 기능과 구조를 볼 때, 그것을 설계할 때 어떤 은혜로운 손길이 작용했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당신의 코 역시 놀라운 설계를 반영합니다. 당신은 코를 통해 공기를 호흡할 수 있고, 그리하여 생명을 유지합니다. 또한 코에는 수백만 개의 감각 수용기가 있어, 약 1만 가지 냄새의 미묘한 차이를 식별할 수 있습니다. 식사를 즐길 때는, 또 다른 감각 기관이 작용을 합니다. 수천 개의 맛봉오리가 맛을 전달합니다. 혀에 있는 다른 수용기들은 당신의 치아가 깨끗한지 느낄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에게는 다섯 가지 감각—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있습니다. 물론, 어떤 동물들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야간 시각이나 더 예민한 후각이나 더 예리한 청각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이 다섯 가지 감각이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여러 면에서 동물보다 뛰어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능력과 기능을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그 모든 능력이나 기능은 우리의 머리 속에 있는 1.4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기관인 뇌에 의존해 있습니다. 동물도 기능을 발휘하는 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동물의 뇌보다 훨씬 뛰어나며, 그 때문에 우리는 부인할 여지 없이 독특한 존재입니다. 어떠한 면에서 그러합니까? 그리고 그처럼 독특한 존재라고 하는 것은, 의미 깊고 영속적인 삶을 누리는 데 대한 우리의 관심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우리의 놀라운 뇌

여러 해 동안 사람의 뇌를 컴퓨터에 빗대어 왔지만, 최근에 발견된 사실들은 그것이 터무니없는 비교임을 보여 줍니다. “약 500억 개의 뉴런에 1000조 개의 시냅스(접합부)가 있어서, 전반적으로 매초 약 1경 회의 점화율을 가진 기관의 기능을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는가?” 리처드 M. 레스택 박사가 던진 질문입니다. 그는 뭐라고 대답하였습니까? “가장 뛰어난 신경망 컴퓨터라 할지라도 ·⁠·⁠· 집파리의 두뇌 능력의 1만분의 1정도의 기능밖에 수행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처럼 현저하게 뛰어난 사람의 뇌에 비해 컴퓨터는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만든 컴퓨터 가운데 스스로 수리를 하고, 프로그램을 다시 짜고, 시간이 지나면 개선되는 것이 있습니까? 컴퓨터 시스템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는, 프로그래머가 컴퓨터 용어로 된 지시 사항을 새로 짜서 입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뇌는 생애 초기이든 노년기이든, 그러한 일을 자동적으로 해냅니다. 가장 뛰어난 컴퓨터도 뇌에 비하면 매우 원시적이라고 말한다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사람의 뇌를 가리켜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에 가장 복잡한 구조물” 또는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물체”라고 해왔습니다.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의 뇌가 관심을 가진 창조주의 작품이라고 결론 내리게 만든 몇 가지 새로 발견된 사실을 고려해 보도록 하십시오.

뇌는 사용하지 않으면 기능을 상실한다

자동차나 제트기와 같은 유용한 발명품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고안해서 만든 고정된 구조와 전기 장치에 의해서 제약을 받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뇌는 가장 작은 것도, 고도의 융통성을 띤 생물학적 구조 혹은 장치입니다. 우리의 뇌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혹은 어떻게 잘못 사용하느냐에 따라 계속 변할 수 있습니다. 평생 동안 우리의 뇌가 어떻게 발달하느냐 하는 것은 두 가지 주된 요인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우리가 감각을 통해 우리의 뇌에 무엇을 주입하느냐 하는 것과 무엇을 생각의 재료로 삼느냐 하는 것입니다.

뇌가 정신 기능을 수행하는 데 유전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현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임신 당시의 유전 인자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뇌가 오늘날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와 같이 그렇게 변화무쌍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퓰리처상 수상 저술가인 로널드 코튤럭은 기술합니다. 300명이 넘는 연구가들과 면담을 해 본 후,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뇌는 변함없이 그대로 있는 기관이 아니다. 경험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아 끊임없이 변하는 상호 연결된 세포의 집합체이다.”—「뇌의 내부」(Inside the Brain).

그런데 경험만이 우리의 뇌를 틀잡는 유일한 수단은 아닙니다. 뇌는 우리의 생각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습니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바로는, 정신 활동을 활발히 하는 사람들의 뇌에는 정신 활동을 게을리 하는 사람들의 뇌에 비해, 신경 세포(뉴런)를 연결하는 접합부(시냅스)가 최고 40퍼센트까지 더 많습니다. 신경과학자들은 ‘뇌를 사용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뇌가 기능을 상실한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러면 노인들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노화되면서 뇌 세포가 약간 상실되는 것 같으며, 노화로 인해 기억력이 상실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력 상실은 사람들이 한때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심하지 않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에 실린 한 보고는 사람의 뇌에 관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노인들은 ·⁠·⁠· 정신 활동을 통해서, 새 접합부를 만들고 옛 접합부를 잃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뇌의 융통성에 관해 최근에 발견된 사실들은 성서에 나오는 조언과 일치합니다. 그 지혜의 책은 독자들에게 “정신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혹은 정신에 주입된 “정확한 지식을 통하여 새롭게 만들어”지라고 강력히 권합니다. (로마 12:2; 골로새 3:10) 여호와의 증인은 사람들이 성서를 연구하고 성서의 교훈을 적용함에 따라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해 왔습니다. 사회적·교육적 배경이 다른 온갖 계층에서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변화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독특한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더 행복하고 더 균형 잡힌 사람이 되어, 일세기의 한 필자가 “건전한 정신”이라고 칭한 것을 전시해 왔습니다. (사도 26:24, 25) 이렇게 개선된 것은 주로, 머리의 앞부분에 있는 대뇌 피질의 일부를 잘 활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전두엽

뇌의 바깥 층인 대뇌 피질에 있는 대부분의 뉴런은 근육이나 감각 기관과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전두엽을 구성하고 있는 수십억 개의 뉴런을 생각해 보십시오. (56면 그림 참조) 뇌 스캐닝을 해 보면, 어떤 단어에 대해 생각하거나 기억을 불러일으킬 때는 전두엽의 활동이 활발해짐을 알 수 있습니다. 뇌의 앞부분은 당신을 독특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면에서 특별한 역할을 합니다.

“전두엽 전부(前部) 피질은 ·⁠·⁠· 생각, 지성, 동기, 인간성의 발달과 가장 관계가 깊다. 전두엽 전부 피질은 추상적인 개념, 판단력, 인내력, 계획성,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 양심 등을 발달시키는 데 필요한 경험들을 서로 연관시킨다. ·⁠·⁠· 전두엽 전부 피질이 발달하면서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구별된다.” [메리어브 저 「인체 해부학과 생리학」(Human Anatomy and Physiology)] 주로 전두엽 전부 피질과 관련이 있는 수학, 철학, 사법 분야 등에서 인간이 이룩한 업적을 보면, 인간과 동물이 차이가 있다는 증거를 뚜렷이 볼 수 있습니다.

동물에게는 전두엽 전부 피질이 발달해 있지 않거나 아예 없는 데 반해, 인간에게는 크고 융통성 있는 전두엽 전부 피질이 있어서 고등 정신 기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너무나 뚜렷해서, 인간이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생물학자들도 “신비롭게도 뇌가 폭발적으로 커진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생물학 교수 리처드 F. 톰프슨은 인간의 대뇌 피질이 유난히 커진 것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시인합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러한 일이 일어난 이유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이 그처럼 비길 데 없는 능력을 뇌에 갖추고 창조되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비길 데 없는 의사 소통 기술

뇌의 다른 부분들도 우리가 독특한 존재가 되는 데 기여합니다. 전두엽 전부 피질 뒤에는 머리를 가로질러 뻗어 있는 가늘고 긴 줄 같은 부분, 즉 운동 피질이 있습니다. 운동 피질에는 우리 몸의 근육들과 연결되어 있는 수십억 개의 뉴런이 있습니다. 운동 피질 역시 우리가 원숭이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과 크게 차이가 나게 해주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운동 피질의 주된 부분은 우리에게 “(1) 손, 손가락, 엄지손가락을 사용해서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수작업을 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과, (2) 입, 입술, 혀, 안면 근육을 사용해서 말을 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부여해 줍니다.—기튼 저, 「의과 생리학 교본」(Textbook of Medical Physiology).

운동 피질이 당신의 말하는 능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간단히 생각해 보십시오. 운동 피질의 반 이상은 의사 소통 기관을 조종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 점을 알면, 인간에게 비길 데 없는 의사 소통 기술이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의사 소통에서 우리의 손이 담당하는 역할(쓰기, 정상적인 몸짓, 수화)도 있지만, 대개 입이 주된 역할을 합니다. 아기가 하는 첫마디로부터 노인의 목소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언어는 의문의 여지 없이 경이로운 것입니다. 혀, 입술, 턱, 목구멍, 가슴에 있는 약 100개의 근육이 협력하여 무수히 많은 소리를 냅니다. 그와 대조가 되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한 개의 뇌 세포가 운동 선수의 장딴지근에 있는 2000개의 섬유를 조종할 수 있는 데 비해, 성대가 있는 후두를 제어하는 뇌 세포들은 겨우 두세 개의 근섬유만 집중적으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뇌에 의사 소통을 위한 특별한 마련이 되어 있음을 암시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짧은 어구를 말할 때마다 각기 그에 맞는 근운동 방식이 있습니다. 여러 근육들이 어느 정도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리고 극히 짧은 순간까지도 얼마나 정확히 시간 조절을 하느냐에 따라, 하나의 표현도 전달하는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언어 전문가인 윌리엄 H. 퍼킨스 박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안락한 상태에서, 우리는 매초 약 14개의 음을 내는 속도로 말합니다. 그 속도는 우리가 혀나 입술이나 턱 또는 언어 기관의 다른 어느 부분을 개별적으로 움직일 때 낼 수 있는 속도보다 두 배나 빠릅니다. 그런데 말을 하기 위해 언어 기관 전체를 함께 움직이면, 그 모든 부분은 능숙한 타이피스트나 연주회의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처럼 움직입니다. 언어 기관의 움직임은 악기들이 절묘하게 시간을 조절하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공통점이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와 같은 간단한 말을 하는 데 필요한 실제 정보는 뇌의 전두엽의 일부인 브로카 영역에 저장되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 영역이 우리의 언어 중추라고 생각합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신경과학자 존 에클스 경은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원숭이에게서는 브로카 언어 영역에 ·⁠·⁠· 해당하는 영역이 발견된 적이 없다.” 설령 동물에게서 그와 비슷한 영역이 다소나마 발견된다 하더라도, 과학자들은 사실상 원숭이를 가르쳐 조잡한 말소리 몇 마디도 내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복잡한 언어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문법에 맞추어 단어들을 조합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브로카 영역이, 말할 때나 글을 쓸 때 단어를 조합하도록 도와 줍니다.

물론, 적어도 한 가지 언어를 알고 있어서 그 단어들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지 못한다면, 말을 하는 기적을 행할 수 없습니다. 뇌 가운데 베르니케 영역으로 알려진 또 하나의 특별한 부분이 이 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곳에 있는 수십억 개의 뉴런은 말이나 글에 사용되는 단어들의 의미를 식별해 냅니다. 베르니케 영역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도록 도와 주고, 듣거나 읽는 것을 이해하도록 도와 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식을 배울 수 있고, 또한 분별 있게 응답할 수 있습니다.

말을 유창하게 하는 데는 또 다른 요인들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안녕하세요?” 하는 말도 여러 가지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목소리의 어조는 당신이 지금 기분이 좋은지, 흥분해 있는지, 따분해하고 있는지, 급한 일이 있는지, 화가 나 있는지, 슬픈지, 놀랐는지 등을 반영하고, 더 나아가 그러한 감정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까지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뇌의 또 다른 영역이 말에 담긴 감정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러므로 의사 소통을 할 때 뇌의 여러 부분이 작용합니다.

침팬지에게 한정적으로 몇 가지 몸짓을 가르쳐 보았지만, 침팬지는 먹이를 요청하는 것을 포함하여 단지 기본 욕구와 관련된 단순한 요청을 할 때에만 그 몸짓을 사용할 뿐입니다. 침팬지에게 간단한 몸짓을 가르치려고 노력해 온 데이비드 프레먹 박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도저히 다 설명할 수 없는 대단한 능력의 소산이기 때문에, 진화론에서는 당혹스러운 난제이다.”

우리는 ‘인간에게 이처럼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며 질문하고 대답할 수 있는 경이로운 능력이 갖추어져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을지 모릅니다. 「언어 및 언어학 백과 사전」(The Encyclopedia of Language and Linguistics)에서는 “[인간의] 언어는 특별하다”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시인합니다. “동물의 의사 소통 분야의 선구자들을 찾아보아도, 언어나 말과 동물의 행동을 구분짓는 엄청난 간격을 메우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루트비히 쾰러 교수는 그 차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비밀에 속한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선물이요, 기적이다.”

원숭이가 사용하는 몸짓과 어린이의 복잡한 언어 능력 사이에는 실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존 에클스 경은 우리 대부분도 이미 관찰해 온 사실을 언급하였습니다. 즉 “심지어 세 살배기 어린아이가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 나타내는, 질문을 쏟아 붓는” 능력입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여 말하였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원숭이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인간에게만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기억력 그리고 또 다른 특성들!

거울을 흘끗 쳐다보면서 당신은 아마 더 젊었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며, 심지어 그 모습과 앞으로 몇 년 후에 더 변해 있을 모습을 비교해 볼지도 모릅니다. 또는 화장을 하면 현재의 모습이 어떻게 더 나아질까 하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생각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떠오를 수 있지만, 사실은 매우 특별한 일, 어떤 동물도 체험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로 현재의 욕구에 따라 살고 행동하는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과거에 대해 숙고해 본 다음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비결은,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뇌의 기억 용량에 있습니다. 물론, 동물들도 어느 정도 기억력이 있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낼 수 있거나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곳을 상기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력은 훨씬 뛰어납니다. 한 과학자가 추산한 바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의 장서 수와 맞먹는, 약 2000만 권의 책을 가득 채울” 만한 정보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신경과학자들의 추산에 의하면, 사람은 평균 수명을 누리는 동안 뇌의 잠재 용량의 1퍼센트의 100분의 1(0.0001)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당신에게는 당연히 이러한 의문이 떠오를 것입니다. ‘정상적인 생애 동안 뇌의 일부분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데, 우리에게 그렇게 큰 용량을 갖춘 뇌가 주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하지만 우리의 뇌는 슈퍼컴퓨터처럼 단지 거대한 정보 저장소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생물학 교수인 로버트 온스타인과 리처드 F. 톰프슨은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배울 수 있는—정보를 저장하고 불러낼 수 있는—인간의 정신 능력은 생물학의 세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우리가 인간의 특성을 갖도록 만들어 주는 모든 것—언어, 생각, 지식, 문화—은 이 특별한 능력의 산물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는 의식을 가진 정신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 인간을 의문의 여지 없이 독특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한 가지 특성을 요약한 말입니다. 정신은 “지성, 결정하는 능력, 인식, 자각, 자아에 대한 의식이 존재하는 파악하기 어려운 실체”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크고 작은 시내와 강이 바다로 흘러 들듯이, 기억, 생각, 영상, 소리, 감정이 계속 정신 속으로 흘러 들어가거나 정신을 통하여 흐릅니다. 어떤 정의에 의하면, 의식이란 “사람이 자신의 정신 속으로 지나가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연구가들은 뇌의 물리적 구조와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부 전기 화학 작용을 이해하는 면에서 크게 진보하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고성능 컴퓨터의 회로와 기능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뇌와 컴퓨터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뇌로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자각할 수 있지만, 컴퓨터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차이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뇌의 물리적 작용을 통해 의식이 생기는 경위나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과학이 도대체 그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지 나도 모른다”고 한 신경생물학자는 말하였습니다. 또한, 제임스 트레필 교수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인간에게 의식이 있다는 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은 과학에서 유일하게 우리가 어떻게 질문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중요한 질문이다.” 한 가지 이유는, 과학자들이 뇌를 사용해서 뇌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단지 뇌의 생리를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식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의 신비 중 하나인데, [과학자들이] 뇌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는 아마 그 비밀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데이비드 샤머스 박사의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각자는 의식을 체험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생생한 기억은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처럼 단순히 저장된 사실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이끌어 내며, 또한 그 교훈을 사용하여 미래를 틀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세워 놓은 몇 가지 계획을 고려하며, 각각의 계획을 추진했을 때 어떤 결과가 있을 수 있는지 평가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분석하고, 창작하고, 감상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유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행위와 관련된 윤리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직접적인 유익을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리는 데 그러한 가치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술의 아름다움이나 도덕적인 특성에 마음이 이끌립니다. 우리는 정신 속에서 사상의 틀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며, 그러한 사상을 실행에 옮길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인간을 지상의 다른 생물들과 구별시켜 주는 자각이 생깁니다. 개나 고양이나 새는 거울을 들여다보면, 자기처럼 생긴 다른 동물을 본 것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거울을 들여다보면, 방금 언급한 것과 같은 능력을 지닌 존재로서의 당신 자신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난해한 문제를 놓고 생각에 잠길 수 있습니다. ‘어떤 거북들은 150년을 살고 어떤 나무들은 1000년도 넘게 사는데, 지성 있는 인간은 100살만 살아도 뉴스 거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리처드 레스택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뇌는, 아니 인간의 뇌만,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일반적인 경험의 범주를 어느 정도 초월할 수 있다. 사실, 자신이 세운 계획을 수정하고 세상에서 자기가 처한 위치를 재검토해 보는 능력은, 우리를 세상의 다른 모든 피조물과 구별시켜 준다.”

인간의 의식은 일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생물의 격상」(Life Ascending)이라는 책에서는 인간의 의식에 대한 단순한 생물학적 설명을 옹호하면서도 이렇게 시인합니다. “[진화] 과정은 진 사람이 엄청난 손해를 보는 도박과 흡사한데, 그것이 어떻게 미와 진리에 대한 사랑, 동정심, 자율성과 같은 특성들을 산출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용력이 넓은 인간의 정신을 산출해 낼 수 있었는지 질문해 볼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능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수록 우리는 더욱더 당황하게 된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식과 관련된 몇 가지 증거를 고려해 본 것으로, 인간이 독특한 존재임을 살펴보는 일을 마무리짓도록 하겠습니다. 그 증거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진 지성 있는 설계자 즉 창조주가 틀림없이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확신하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예술과 아름다움

“사람들이 예술을 그토록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이클 레이튼 교수가 「대칭, 인과 관계, 정신」(Symmetry, Causality, Mind)에서 한 질문입니다. 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어떤 사람들은 수학과 같은 정신 활동이 인간에게 분명한 유익을 준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술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레이튼은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람들이 미술 전람회나 음악회에 가기 위해 먼 거리까지 여행하는 예를 들었습니다. 어떤 내적 감각이 관련되어 있습니까? 그와 비슷한 예로, 사람들은 지구상 어디에 살든지 자기 집이나 사무실 벽에 매력적인 사진이나 그림을 걸어 놓습니다. 또는 음악을 생각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이나 차 안에서 어떤 형태의 음악을 듣기를 좋아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음악이 한 때 적자 생존에 기여했기 때문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레이튼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술은 아마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설명하기 힘든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예술과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은 우리 자신을 “인간”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특성 중의 하나입니다. 동물도 언덕에 앉아 아름다운 하늘을 쳐다볼지 모르지만, 동물이 그렇게 쳐다보는 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에 이끌렸기 때문입니까? 우리는 산골짜기의 여울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경탄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열대 우림의 생물을 경이에 찬 눈으로 쳐다보거나, 야자수가 늘어서 있는 해변을 응시하거나, 검은 벨벳을 깔아 놓은 듯한 하늘에 뿌려져 있는 별을 감탄스러운 듯 쳐다봅니다. 그리고 종종 외경심을 갖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우리의 마음은 밝게 빛나고 우리의 정신은 고취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상 살아가는 데 물질적으로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선천적인 갈망이 우리에게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미적 가치관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입니까? 인간을 창조할 때 이러한 가치관을 심어 놓은 조물주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은 찾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도덕적인 특성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덕 가치관

많은 사람들은 가장 아름다운 것은 훌륭한 행실임을 인정합니다. 예를 들면, 박해를 받으면서도 원칙에 충성을 나타내는 일,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비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일,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 등은 어느 곳에 살든 생각 있는 사람들의 도덕 감각을 자극하는 행동입니다. 그것은 성서에 나오는 고대의 잠언에 언급된 것과 같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아름다움”]이니라.” 또 다른 잠언에서는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일에 대해 말합니다. “사람은 그 인자함[“사랑의 친절”]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잠언 19:11, 22, 「신세」 참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일부 사람들은, 심지어 일부 집단까지도 높은 도덕 표준을 무시하거나 짓밟지만, 대다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지역과 모든 시대에 발견되는 도덕 가치관은 무슨 근원에서 유래한 것입니까? 도덕의 근원 즉 창조주가 없다면,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감각은 단순히 인간이나 인간 사회에서 유래한 것입니까? 한 가지 예를 고려해 보십시오. 대부분의 사람이나 집단은 살인이 그릇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무엇과 비교해서 그릇되단 말인가?’ 전반적으로 인간 사회 밑바닥에 흐르고 있어서 많은 나라의 법에 반영된 어떤 도덕 감각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도덕 표준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도덕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양심 즉 윤리 감각이라는 기능을 인간에게 심어 준 지성 있는 창조주가 그 근원이 아니겠습니까?—비교 로마 2:14, 15.

우리는 미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울 있다

인간의 의식의 또 다른 부면은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리처드 도킨스 교수는 인간에게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인간에게는 참으로 독특한 특성이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도킨스 교수는 “의식적으로 상상력에 근거한 예지력을 발휘하여 미리 계획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언급한 후에 이렇게 덧붙여 말하였습니다. “진화에서 언제나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유익이었다. 장기적인 유익은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개인이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직접적인 유익에 해가 되는 어떤 것이 진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적어도 일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숲을 베어 넘기면 단기간에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리시오. 그것보다는 장기적인 유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어떻겠소?’ 이러한 예지력은 참으로 새롭고 독특한 특성이라고 이제 나는 생각한다.”

다른 연구가들도 의식적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인간의 능력이 비길 데 없는 특성임을 확언합니다. 신경생리학자인 윌리엄 H. 캘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겨울을 준비하고 짝을 짓는 것을 제외하고는, 동물들은 단 몇 분이라도 미리 계획한다는 증거를 놀라울 정도로 거의 보여 주지 못한다.” 동물들도 추운 계절이 닥치기 전에 먹이를 저장할 수 있지만, 동물들은 일들을 충분히 생각해서 계획하지는 못합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인간은 미래에 대해 생각하며, 심지어 먼 미래의 일까지도 생각합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지금으로부터 수십억 년 후에 우주에 일어날지도 모를 일에 대해서까지도 깊이 생각합니다. 당신은 인간이—동물과 매우 달라서—미래에 대해 생각하며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이유를 궁금하게 여긴 적이 있습니까?

성서는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도 3:11) 우리는 이 독특한 능력을 매일 사용하는데, 거울을 흘끗 쳐다보며 10년이나 20년 후에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극히 평범한 행동을 할 때에도 사용합니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무한성과 같은 개념을 잠시나마 생각할 때에도, 우리는 전도서 3:11의 말씀이 옳음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다는 간단한 사실은,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말씀과 일치합니다.

창조주에게 이끌림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즐기고, 동료 인간에게 선한 일을 하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C. 스티븐 에번스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매우 행복하고 소중한 순간에도 우리는 종종 무언가 허전함을 느낀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무언가를 더 원한다고 느끼면서도, 정작 더 원하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의식을 가진 인간은—이 지구에 함께 살고 있는 동물들과는 달리—또 다른 것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종교는 인간의 본성 속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서, 경제적 지위나 교육적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종교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앨리스터 하디 교수가 「인간의 영적 본성」(The Spiritual Nature of Man)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요약한 말입니다. 이것은 다른 수많은 연구들이 확증한 사실, 즉 인간에게는 신(神), 즉 하느님에 대한 선천적인 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말입니다. 무신론자인 사람들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국민 전체가 무신론자인 경우는 없습니다. 「하느님이 실재하는 유일한 신인가?」(Is God the Only Reality?)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종교적으로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는 ·⁠·⁠· 인류가 출현한 이래 어느 문화, 어느 시대에서나 공통적으로 경험해 온 일이다.”

선천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하느님에 대한 의식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입니까? 인간이 단순히 핵산과 단백질 분자가 우연히 모여서 생긴 존재라면, 그러한 분자들이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을 발전시키고, 종교적인 특성을 지니고, 영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존 에클스 경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진화론의 설명은 “매우 중요한 면에서 실패하고 있다. 진화론은 우리 각자가 자아에 대한 의식이 있는 독특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 뇌와 정신의 작용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인간이 의식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사실이 창조주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결론을 내린 이유를 이해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다음 장에서는, 그러한 합리적인 결론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매우 중요한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얻게 해주는 근거가 된다고, 온갖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 이유를 살펴볼 것입니다.

[51면 네모]

체스 챔피언 대 컴퓨터

딥 블루라고 하는 고성능 컴퓨터가 체스 세계 챔피언을 물리쳤을 때, “딥 블루에 두뇌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요?” 하는 질문이 있었다.

예일 대학교의 데이비드 겔런터 교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딥 블루는 단지 기계일 뿐입니다. 화분에 두뇌가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딥 블루에도 두뇌는 없습니다. ·⁠·⁠· 그 컴퓨터가 지니는 의미는 주로 이것입니다. 즉 인간이 챔피언 기계의 제작자라는 점이지요.”

겔런터 교수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차이점을 지적하였다. “뇌는 ‘나’라는 개념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기계입니다. 뇌는 정신적으로 상상하는 것들을 영상화할 수 있지만, 컴퓨터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겔런터 교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인간과 [컴퓨터] 사이에는 영원한 간격이 있으며, 그 간격은 결코 메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기계들이 계속해서 생활을 더 편리하고 더 건전하고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겠지만, 한편 더 당혹스럽게도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결국, 항상 관심을 가져 왔던 동일한 문제에 대해, 즉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상호간의 관계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질 것이며,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해서도 계속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해서, 기계들은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결코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53면 네모]

슈퍼컴퓨터도 달팽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컴퓨터들은 보고, 말하고, 움직이고, 상식을 사용하는 능력에 있어서 네 살배기 어린아이만도 못하다. 그렇게 말하는 한 가지 이유는 물론 단순한 정보 처리 능력 때문이다. 추산에 의하면, 심지어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의 정보 처리 능력도 달팽이의 신경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두개골 속에 있는 슈퍼컴퓨터가 발휘하는 능력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스티븐 핑커,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 인식 신경과학 센터 소장.

[54면 네모]

“인간의 뇌는 거의 다 [대뇌] 피질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침팬지의 뇌에도 대뇌 피질이 있지만, 그 양이 훨씬 적다. 대뇌 피질은 생각, 기억, 상상을 하도록 해준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인간인 이유는 우리에게 대뇌 피질이 있기 때문이다.”—에도아르도 본치넬리, 이탈리아 밀라노의 분자 생물학 연구소장.

[55면 네모]

소립자 물리학이 우리의 뇌에 대해 알려 주는 것

폴 데이비스 교수는 수학의 추상적인 분야를 다루는 뇌의 능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수학이란 뒤뜰에 널려 있는 어떤 물건처럼 평범한 것이 아니다. 수학은 인간 정신의 산물이다. 하지만 수학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분야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소립자 물리학이나 천체 물리학과 같은 분야, 즉 일상 생활하고는 아주, 아주 동떨어진 기초 과학 분야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러한 사실이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수학을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과 의식은 단순히 우연한 일도, 사소하고 하찮은 일도,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의 시시한 부산물도 아니라는 것이다.”—「우리만 유독 그러한가?」(Are We Alone?).

[56, 57면 네모와 삽화]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전두엽

전두엽 전부 피질

브로카 영역

베르니케 영역

운동 피질

대뇌 피질은 지능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뇌의 겉 부분이다. 인간의 대뇌 피질을 평평하게 펴면, 타자 용지로 4면은 될 것이다. 침팬지의 뇌는 1면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쥐의 뇌는 우표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사이언티픽 아메리칸」.

[58면 네모]

어느 민족이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어느 민족이든 다른 민족과 마주쳐 보면, 상대방이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언제나 발견하게 된다. 「언어 본능」(The Language Instinct)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언어가 없는 부족은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으며, 어떤 지역이 언어의 ‘요람’ 역할을 해서 그 곳에서 이전에 언어가 없던 부족들에게로 언어가 퍼져 나갔다는 기록도 전혀 없다. ·⁠·⁠· 복잡한 언어가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에 따라 언어학자들은 외경심에 차게 되며, 그러한 사실은 또한, 언어가 ·⁠·⁠· 인간의 특별한 본능의 산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첫 번째 이유가 된다.”

[59면 네모]

언어와 지능

인간의 지능이 원숭이 같은 동물의 지능보다 훨씬 뛰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그 비결은 인간의 구문 사용 능력—소리를 조합해서 단어를 만들고 단어를 사용해서 문장을 만드는 능력—에 있다. 이론 신경생리학자인 윌리엄 H. 캘빈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야생 침팬지는 약 36가지의 소리를 사용해서 약 36가지의 의미를 전달한다. 침팬지는 의미를 강도 있게 전달하기 위해 한 가지 소리를 반복할지는 모르지만, 세 가지 소리를 엮어서 자기들의 어휘에 새로운 단어를 추가하는 일은 하지 못한다.

우리 인간도 음소라고 하는 약 36가지의 소리를 사용한다. 하지만 그 소리를 조합해야만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의미 없는 소리들을 엮어서 의미 있는 단어들을 만든다.” 캘빈 박사는, “한 소리에 한 의미”밖에 전달하지 못하는 동물들의 능력에서 구문을 사용하는 우리 인간에게만 있는 독특한 능력으로 도약하게 된 경위를 “아직까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였다.

[60면 네모]

우리는 낙서 이상의 일을 할 있다

호모 사피엔스인 인간에게만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물론, ‘언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고등 동물은 모두 몸짓, 피우는 냄새, 부르는 소리, 울음소리나 노랫소리, 심지어 벌들의 춤 등과 같은 매우 다양한 신호를 사용해서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을 제외하고는, 동물들에게는 체계적으로 문법을 갖춘 언어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매우 중요할 수도 있는 사실로서, 동물들은 묘사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기껏해야 낙서 정도나 할 수 있을 뿐이다.”—R. S. 파우츠 교수와 D. H. 파우츠 교수.

[61면 네모]

“인간의 뇌를 살펴보면, 우리는 또한 놀라울 정도로 복잡한 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언어도 그 한 가지 예가 되지만, 유일한 예는 아니다. 숫자 체계의 추상적인 개념을 다룰 수 있는 뇌의 능력을 생각해 보라. 인간에게만 있는 독특한 것이다.” A. 노암 촘스키 교수의 말이다.

[62면 네모]

질문할 “능력을 부여받음”

우주의 미래에 대하여 물리학자 로렌스 크라우스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우리는 직접 본 적이 없는 사물에 대해서도 담대하게 질문을 한다. 우리에게 질문을 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녀들, 혹은 그들의 자녀들이 언젠가 그 질문들에 대답해 줄 것이다. 우리는 상상력을 부여받았다.”

[69면 네모]

우주와 우주 안에 살아 있는 우리가 우연히 존재한 것이라면, 우리의 삶에는 지속적인 의미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주 안에서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설계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의 삶에는 틀림없이 만족스러운 의미가 있을 것이다.

[72면 네모]

검치호(劍齒虎)를 피한 덕분에 생긴 것인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존 폴킹혼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이론 물리학자인 폴 디랙은 물질계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양자장론이라고 하는 이론을 발견하였다. 나는 그러한 이론을 발견해 낸 디랙의 능력이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견해 낸 아인슈타인의 능력이, 검치호를 피해 다녀야 했던 우리 조상들이 남긴 일종의 부산물이라고 믿을 수 없다. 뭔가 훨씬 더 의미 심장한 일, 훨씬 더 신비스러운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

자연 과학을 통해 밝혀진, 물질계의 합리적인 질서와 투명한 아름다움을 쳐다볼 때, 우리는 지성의 증거가 가득한 세계를 보게 된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창조주의 지성이며, 그 지성은 그러한 방식으로 식별된다.”—「공익」(Commonweal).

[63면 삽화]

인간만 질문을 할 수 있다. 일부 질문은 삶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64면 삽화]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자기 자신과 미래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70면 삽화]

인간만 독특하게,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창조주에게 이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