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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은 이 세상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도움은 이 세상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제24장

도움은 이 세상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이사야 31:1-9

1, 2. (ㄱ) 예루살렘 주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예루살렘이 처한 곤경으로 볼 때, 어떤 질문들이 생길 수 있습니까?

예루살렘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당시 가장 강대한 제국인 아시리아가 “유다의 모든 요새 도시들”을 공격하여 “그것들을 빼앗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시리아 군대는 이제 유다의 수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열왕 둘째 18:13, 17) 히스기야 왕을 비롯하여 예루살렘 주민들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2 히스기야는 자기 나라의 다른 도시들이 이미 함락된 것으로 보아서 예루살렘도 강력한 아시리아 군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아시리아 사람들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는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 나라 군대가 불러일으키는 두려움이 어찌나 큰지 때때로 어떤 적들은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갈 정도입니다! 예루살렘이 처한 절박한 상황으로 볼 때, 그 주민들이 도움을 받기 위해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아시리아 군대를 피할 방법이 있습니까?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이 어쩌다가 그러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과거로 돌아가서 이전에 여호와께서 자신의 계약 백성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배교

3, 4. (ㄱ) 이스라엘 나라는 언제 어떻게 두 왕국으로 나뉘게 되었습니까? (ㄴ) 여로보암은 북쪽의 열 지파 왕국이 어떻게 좋지 않은 출발을 하게 하였습니까?

3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부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사망할 때까지—500년이 약간 넘는 기간—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한 나라로 연합되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사망한 후 여로보암이 북쪽의 열 지파를 이끌고 다윗의 집에 반역하는 바람에, 그때 이후 그 나라는 두 왕국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997년에 바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4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첫 번째 왕이 된 여로보암은 자기의 신민을 배교의 길로 인도하였는데, 아론계 제사직과 여호와에 대한 합법적인 숭배를 불법적인 제사직과 송아지 숭배 제도로 대치함으로써 그렇게 하였습니다. (열왕 첫째 12:25-33) 이것은 여호와께 몹시 혐오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예레미야 32:30, 35) 이러한 이유와 그 밖의 여러가지 이유로, 여호와께서는 아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정복하게 허락하셨습니다. (열왕 둘째 15:29) 호셰아 왕은 이집트와 모의하여 아시리아의 멍에를 꺾어 보려고 하였지만, 그 계교는 실패하였습니다.—열왕 둘째 17:4.

이스라엘이 그릇된 도피처로 향하다

5. 이스라엘은 도움을 받기 위해 어디로 향합니까?

5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하고 싶으십니다. * 그래서 예언자 이사야를 보내시어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하게 하십니다. “도움을 구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 그들은 한낱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수가 많다고 그것을 신뢰하고, 군마가 매우 위력 있다고 그것을 신뢰하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을 바라보지 않고 여호와를 찾지 않았다.” (이사야 31:1)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살아 계신 하느님 여호와보다 말이나 병거를 더 신뢰합니다. 이스라엘의 육적인 사고 방식으로 보기에는, 이집트의 말들은 수가 많고 위력이 있습니다. 이집트는 확실히, 아시리아 군대에 대적할 쓸 만한 동맹국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육적인 생각으로 맺은 이집트와의 동맹이 아무 쓸모 없는 것임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곧 깨닫게 될 것입니다.

6.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향하는 것은 왜 여호와에 대한 믿음이 대단히 결핍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 됩니까?

6 이스라엘 주민과 유다 주민 모두 율법 계약을 통해 여호와께 헌신한 관계에 있습니다. (탈출 24:3-8; 역대 첫째 16:15-17) 이스라엘은 도움을 받기 위해 이집트로 향함으로, 여호와에 대한 믿음이 결핍되어 있음과 그 거룩한 계약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율법을 무시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계약 조건에는, 여호와의 백성이 그분에게 전적인 정성을 바치기만 한다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 26:3-8) 그 약속과 일치하게, 여호와께서는 거듭거듭 ‘고난의 때에 요새’가 되어 주셨습니다. (시 37:39; 역대 둘째 14:2, 9-12; 17:3-5, 10) 그뿐 아니라, 여호와께서는 율법 계약의 중개자인 모세를 통해서,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말의 수를 늘려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 17:16) 이러한 규정에 순종하는 것은, 이 왕들이 보호를 받기 위해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을 바라본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습니다.

7.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의 믿음의 결핍으로부터 무슨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7 이러한 기록에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교훈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베풀어 주시는 훨씬 더 강력한 지원을 바라보지 않고 이집트로부터 오는 보이는 지원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보다는 안전의 육적 근원—은행 계좌, 사회적 지위, 세상에서의 연고 관계—을 신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 가장들은 가족을 물질적으로 부양할 책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디모데 첫째 5:8) 하지만 그들은 물질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온갖 탐심”을 경계합니다. (누가 12:13-21) “고난의 때에 안전한 산성”이 되실 수 있는 분은 여호와 하느님밖에 없습니다.—시 9:9; 54:7.

8, 9. (ㄱ) 이스라엘의 계획은 전략적으로 타당해 보일지 모르지만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이며, 그런 결과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인간의 약속과 여호와의 약속은 어떻게 다릅니까?

8 이사야는 사실상, 이집트와 약삭빠르게 조약을 맺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조롱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 역시 지혜로우셔서 재앙을 내리실 것이며, 자신의 말씀을 취소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틀림없이 일어나셔서 행악자들의 집을 치시며 유해한 것을 일삼는 자들이 구하는 도움을 치실 것이다.” (이사야 31:2)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지혜롭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가장 지혜로우신 분은 우주의 창조주가 아니십니까? 어느 모로 보나, 이집트의 도움을 구하는 이스라엘의 계교는 전략적으로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처럼 정치적 동맹을 맺는 행위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는 영적인 간음입니다. (에스겔 23:1-10) 그 결과,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9 인간의 약속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인간이 베푸는 보호 역시 확실한 것이 못 됩니다. 반면에,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취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약속하시는 것을 틀림없이 지키실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성과 없이 그분에게로 돌아오는 법이 없습니다.—이사야 55:10, 11; 14:24.

10.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둘 다 어떻게 될 것입니까?

10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믿을 만한 보호자가 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집트인들은 땅의 사람들이지, 하느님이 아니다. 그들의 말은 육이지, 영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손을 뻗으시리니, 도움을 베푸는 자는 걸려 넘어지겠고, 도움을 받는 자도 쓰러져서, 동시에 그들이 모두 끝에 를 것이다.” (이사야 31:3) 도움을 베푸는 자(이집트)나 도움을 받는 자(이스라엘) 모두, 여호와께서 손을 뻗으셔서 아시리아를 통해 심판을 집행하실 때, 걸려 넘어지고 쓰러져서 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멸망

11. 이스라엘은 어떠한 죄의 기록을 쌓아 왔으며, 그 최종 결과는 무엇입니까?

11 여호와께서는 자비를 보이시어, 거듭거듭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에게 회개하고 순결한 숭배로 돌아오라고 권면하십니다. (열왕 둘째 17: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송아지 숭배의 죄에 더하여, 점술을 행하고, 부도덕한 바알 숭배를 하고, 신성한 목상과 산당을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심지어 “자기의 아들들과 딸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여, 자기의 육체의 열매를 악귀 신들에게 희생으로 바치기까지 합니다. (열왕 둘째 17:14-17; 시 106:36-39; 아모스 2:8) 이스라엘의 악을 끝내시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공포하십니다. “사마리아와 그 왕은 수면에 있는 부러진 가지처럼 반드시 잠잠하게 될 것이다.” (호세아 10:1, 7) 기원전 742년에, 아시리아 군대는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를 공격합니다. 삼 년간의 포위 공격 끝에 사마리아는 함락되고, 기원전 740년에 열 지파 왕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12.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어떤 일을 하도록 임명하고 계시며, 그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12 우리 시대에 여호와께서는 세계적인 전파 활동을 하도록 임명하셔서, “인류에게 모두 어디서나 회개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사도 17:30; 마태 24:14) 하느님의 구원의 수단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부러진 가지”처럼 되어, 배교한 이스라엘 나라처럼 멸망될 것입니다. 반면에, 여호와께 희망을 두는 사람들은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그 위에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시 37:29) 그러므로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입니다! 구원을 위해 전적으로 여호와를 신뢰하도록 합시다.

여호와의 구원 능력

13, 14. 여호와께서는 시온을 위해 어떤 위로가 되는 말씀을 하십니까?

13 이스라엘의 남쪽 국경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사마리아에 일어난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도 북쪽의 이웃을 멸망시킨 바로 그 무서운 적에게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사마리아에 일어난 일로부터 교훈을 얻을 것입니까?

14 이사야가 뒤이어 한 말은 예루살렘 거주자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이사야는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자신의 계약 백성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다는 점을 확신시켜 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자가, 갈기 있는 젊은 사자가 먹이를 놓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에 대항하도록 온전한 수의 목자들이 불려 와서 소리친다 해도 그것이 겁내지 않으며 그들이 소동을 피운다 해도 그것이 몸을 굽히지 않듯이, 그와 같이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시온 산과 그 언덕으로 말미암아 싸우러 내려오실 것이다.’” (이사야 31:4) 먹이를 지키는 젊은 사자처럼,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도시 시온을 방심하지 않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아시리아 군대가 어떠한 자랑이나 위협하는 말을 하여도, 또 어떠한 소동을 피워도,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시지 못하게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15.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 주민들을 어떻게 부드럽고 동정심 있게 대하십니까?

15 이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주민들을 어떻게 부드럽고 동정심 있게 대하실 것인지 유의하여 보십시오. “날고 있는 새들처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와 같이 예루살렘을 방어해 주실 것이다. 방어하시면서, 그분은 또한 틀림없이 그것을 구출하실 것이다. 아끼시면서, 그분은 또한 그것이 피하게 해 주실 것이다.” (이사야 31:5) 어미 새는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않습니다. 날개를 펴고 새끼들 위를 맴돌면서, 조금이라도 위험한 조짐이 없나 알아보려고 눈으로 주의 깊이 살핍니다. 포식 동물이 접근해 올 경우에는 급강하하여 새끼들을 지킵니다. 그와 같이, 여호와께서도 침공해 오는 아시리아 사람들 때문에 예루살렘 주민들을 부드럽게 돌보실 것입니다.

‘너희는 돌아오너라’

16. (ㄱ)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어떤 사랑에 찬 호소를 하십니까? (ㄴ) 유다 백성의 거역은 언제 특히 분명하게 드러납니까? 설명하십시오.

16 여호와께서는 이제 자신의 백성에게, 그들이 죄를 지었음을 상기시키시면서 잘못된 길을 버리라고 권면하십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심하게 거역하던 분에게로 돌아오너라.” (이사야 31:6) 열 지파 이스라엘 왕국만 반역한 것이 아닙니다. 역시 “이스라엘 자손”인 유다 백성도 “심하게 거역”하였습니다. 이사야가 예언의 소식을 끝마친 지 얼마 안 되어,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가 왕이 될 때, 이 점이 특히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성서 기록에 의하면, “므낫세는 계속 유다예루살렘 주민을 꾀어, 여호와께서 ·⁠·⁠· 멸절하신 나라들보다 더 악한 일을 행하게 하였”습니다. (역대 둘째 33:9)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교 나라들을 멸절하시는 것은 그들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불결하기 때문인데, 여호와와 계약 관계에 있는 유다 주민들이 그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악한 것입니다.

17. 오늘날의 상태는 어떤 면에서 므낫세 치하의 유다의 상태와 비슷합니까?

17 21세기에 들어선 지금의 상태는 여러가지 면에서 므낫세 시대의 유다의 상태와 비슷합니다. 전세계는 종교적·인종적·민족적 증오심으로 인해 점점 더 분열되어 가고 있습니다. 살인, 고문, 성폭행, 그리고 소위 인종 청소와 같은 끔찍한 행위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였습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사람들과 나라들—특히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나라들—은 “심하게 거역”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호와께서 악이 무한정 계속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이사야 시대에 발생한 일을 볼 때 그러합니다.

예루살렘이 구출되다

18. 랍사게는 히스기야에게 무슨 경고를 합니까?

18 아시리아의 왕들은 전쟁에서 거둔 승리에 대해 자기들의 신들에게 영예를 돌렸습니다. 「고대 근동 문헌」(Ancient Near Eastern Texts)이라는 책에는 아시리아의 군주인 아슈르바니팔에 관한 기록이 들어 있는데, 그는 자기가 “(언제나) [자기] 곁에서 행진하는 아슈르, 벨, 느보, 위대한 신들, [자기의] 주들”의 인도를 받는다고 주장하면서, “[그래서 자기가] 벌판에서 벌어진 한 대규모 교전에서 ·⁠·⁠· 전투 (경험이 많은) 군사들을 물리쳤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사야 시대에, 아시리아의 산헤립 왕을 대표하는 랍사게도 히스기야 왕에게 말할 때, 신들이 인간의 전쟁에 참여한다는 그와 비슷한 믿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유대인 왕에게 구원을 위해 여호와를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다른 나라들의 신들도 위력 있는 아시리아 군대에 대항해서 자기들의 백성을 보호하는 데는 무력했음을 지적합니다.—열왕 둘째 18:33-35.

19. 히스기야는 랍사게의 조롱에 어떤 반응을 나타냅니까?

19 히스기야 왕은 어떤 반응을 나타냅니까? 성서 기록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히스기야 왕은 그 말을 듣고서, 즉시 자기 옷을 찢고 자루천을 몸에 걸치고 여호와의 집으로 들어갔다.” (열왕 둘째 19:1) 히스기야는 이처럼 두려운 상황에서 자기를 도와 주실 수 있는 분은 한 분밖에 안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를 낮추고, 인도를 받기 위해 여호와를 바라봅니다.

20. 여호와께서는 유다 주민들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하실 것이며, 그들은 이 일로부터 무슨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20 여호와께서는 절실히 필요한 인도를 베푸십니다. 그분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는 각 사람이 은으로 만든 무가치한 신들과 금으로 만든 가치 없는 신들을 버릴 것인데, 그것들은 너희 손이 너희 자신을 위하여 만들어 죄를 지은 것들이다.” (이사야 31:7)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싸우실 때, 산헤립의 신들은 어떤 존재인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들은 무가치한 존재들입니다. 유다 주민들은 이 교훈을 명심해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이 충실함에도 불구하고, 유다 땅에는 이스라엘처럼 우상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사야 2:5-8) 유다 주민들은 여호와와의 관계를 다시 구축하려면,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각 사람이 무가치한 신들’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참조 탈출 34:14.

21. 이사야는 아시리아 사람에 대한 여호와의 처형 행위를 예언적으로 어떻게 묘사합니까?

21 이사야는 이제 유다의 무서운 적에 대한 여호와의 처형 행위를 예언적으로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아시리아 사람은 사람의 것이 아닌 칼에 맞아 쓰러지고 것이다. 땅의 사람의 것이 아닌 칼이 그를 삼킬 것이다. 그는 칼 때문에 도망하겠고, 그의 젊은이들은 강제 노역을 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 31:8) 결전의 날이 와도, 예루살렘 주민들은 칼집에서 칼을 뽑을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아시리아의 정예 부대는 사람의 칼이 아니라 여호와의 칼에 삼켜집니다. 아시리아 왕 산헤립은 “칼 때문에 도망”하게 됩니다. 18만 5000명이나 되는 전사가 여호와의 천사의 손에 죽자, 산헤립은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후에 자기의 신 니스록에게 몸을 굽히고 있을 때에 아들들에게 암살당합니다.—열왕 둘째 19:35-37.

22.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히스기야와 아시리아 군대가 관련된 사건으로부터 무슨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22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아시리아 군대로부터 어떻게 구출하실 것인지 예견할 수 있었던 사람은, 히스기야를 비롯하여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위기에 대처하는 히스기야의 방법은, 오늘날 시련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됩니다. (고린도 둘째 4:16-18) 예루살렘을 위협하는 아시리아 사람들에 관한 무시무시한 소문을 생각해 볼 때, 히스기야가 두려워했던 것도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열왕 둘째 19:3) 하지만 그는 여호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의 인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인도를 구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예루살렘에 참으로 축복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압박을 받을 때는 심한 불안감을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두려움을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염려를 모두 여호와께 내맡긴다’면, 그분은 우리를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 첫째 5:7) 그분은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게 도와 주실 것이며, 우리를 강화시켜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23. 어떤 면에서, 두려운 감정에 압도되는 사람은 히스기야가 아니라 산헤립입니까?

23 결국 두려운 감정에 압도되는 사람은 히스기야가 아니라 산헤립입니다. 그는 누구에게로 갈 수 있습니까?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의 바위는 몹시 무서워하여 사라지고, 깃발 때문에 그의 방백들이 겁낼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분의 빛은 시온에 있고 그분의 가마는 예루살렘에 있다.” (이사야 31:9) 산헤립의 신들—그가 신뢰해 온 도피처인 그의 “바위”—은 그를 실망시킵니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그 신들은 ‘몹시 무서워하여 사라집’니다. 뿐만 아니라, 산헤립의 방백들도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들 역시 겁을 먹고 있습니다.

24. 아시리아 사람에게 일어난 일로부터 무슨 분명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24 이사야의 예언의 이 부분은, 하느님의 반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그들에게 분명한 교훈을 전달합니다. 어떠한 무기나 권능이나 계책도 여호와의 목적을 좌절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사야 41:11, 12) 한편, 하느님을 섬긴다고 주장하면서 하느님을 외면하고 육적인 것들에서 안전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31:1, 2) 사실이지, 영속적이고 참된 도피처는 여호와 하느님밖에 없습니다.—시 37:5.

[각주]

^ 5항 이사야 31장의 처음 세 구절은 주로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한 것 같고, 나머지 여섯 구절은 유다에 적용되는 것 같다.

[연구 질문]

[319면 삽화]

물질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322면 삽화]

먹이를 지키는 사자처럼,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도시를 보호하실 것이다

[324면 삽화]

전세계는 종교적·인종적·민족적 증오심으로 인해 분열되어 가고 있다

[326면 삽화]

히스기야는 도움을 받기 위해 여호와의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