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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아시리아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제12장

아시리아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사야 10:5-34

1, 2. (ㄱ)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요나가 아시리아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할 임명을 받아들이기 싫어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소식에 어떤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기원전 9세기 중엽에, 아밋대의 아들 히브리 예언자 요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인 니네베로 들어갔습니다. 그에게는 전해야 할 중요한 소식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큰 도시 니네베로 가서, 그들의 악이 내 앞에 닿았다고 그 도시를 향하여 공포하여라.”—요나 1:2, 3.

2 처음에 이 임명을 받았을 때 요나는 반대 방향인 다시스 쪽으로 도망하였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요나가 이 임명을 수행하기를 싫어할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시리아 사람들은 잔악스러운 민족이었습니다. 아시리아의 한 군주가 그의 적들을 어떻게 처리하였는지 유의해 보십시오. “나는 그 장교들의 사지를 절단하였다. ·⁠·⁠· 그들 가운데서 잡아 온 많은 포로를 불태워 죽였으며, 많은 사람은 생포하여 끌고 갔다. 일부 포로들은 손과 손가락을 잘라 버렸으며, 다른 포로들은 코를 잘라 버렸다.” 하지만 요나가 마침내 여호와의 소식을 전하자 니네베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였고 여호와께서는 그 즉시 그 도시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요나 3:3-10; 마태 12:41.

여호와께서 “몽둥이”를 드시다

3. 여호와의 예언자들이 전한 경고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반응은 니네베 사람들의 반응과 어떻게 다릅니까?

3 요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전파하였는데, 그들도 반응을 나타냅니까? (열왕 둘째 14:25)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순결한 숭배에 등을 돌립니다. 사실상, 그들은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몸을 굽히며 바알을 섬기”는 일까지 합니다. 더욱 악한 일로서, “자기의 아들들과 딸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고 점술을 행하고 징조를 구하였으며, 자신을 팔아 여호와의 눈에 악한 일을 행하여 그분을 노하시게 하였”습니다. (열왕 둘째 17:16, 17) 니네베 사람들과 달리,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예언자들을 보내어 경고하시는데도 반응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더 강력한 조처를 취하시기로 결심하십니다.

4, 5. (ㄱ) “아시리아 사람”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여호와께서는 그 사람을 어떻게 “몽둥이”로 사용하실 것입니까? (ㄴ) 사마리아는 언제 함락됩니까?

4 요나가 니네베에 다녀온 후로 얼마 동안은, 아시리아의 공격이 뜸합니다. * 하지만 기원전 8세기 초가 되자, 아시리아는 다시 군사 강국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여호와께서는 그 나라를 놀라운 방법으로 사용하십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여호와로부터 받은 경고의 소식을 북쪽 이스라엘 왕국에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아하, 아시리아 사람, 나의 분노를 위한 몽둥이, 나의 질책을 위해 그들의 손에 있는 막대기야! 내가 배교한 나라를 대적하여 그를 보내며, 나의 진노의 백성을 대적하여 그에게 명령을 내려서, 많은 전리품을 빼앗고 많이 강탈하게 하며 그것을 거리의 진흙처럼 짓밟히는 곳이 되게 할 것이다.”—이사야 10:5, 6.

5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굴욕적인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이교 나라—“아시리아 사람”—를 “몽둥이”로 사용하시어 이스라엘 사람들을 처벌하시는 것입니다. 기원전 742년에, 아시리아 왕 살만에셀 5세가 배교한 이스라엘 나라의 수도 사마리아를 포위 공격합니다. 높이가 90미터 정도 되는 언덕에 자리잡은 전략적 요충지에서 사마리아는 거의 3년 동안 적을 효과적으로 물리칩니다. 하지만 인간의 전략은 하느님의 목적의 성취를 막을 수 없습니다. 기원전 740년에 사마리아는 함락되어 아시리아 사람의 발에 짓밟힙니다.—열왕 둘째 18:10.

6. 아시리아 사람은 어떻게 여호와께서 그에 대해 염두에 두고 계신 것보다 지나친 생각을 합니까?

6 아시리아 사람들은 자기들이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교훈을 베푸시는 데 사용되는데도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시리아 사람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하고 싶을 것이요, 자기 마음이 그렇지 않을지라도 계교를 꾸밀 것이다. 멸절하려는 것, 적지 않은 나라들을 끊어 버리려는 것이 그의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 10:7) 여호와께서는 아시리아 사람을 하느님의 손에 있는 도구로 사용하실 작정입니다. 그런데 아시리아 사람은 뭔가 다른 것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의 마음은 그를 부추겨 더 큰 일을 위한 계교를 꾸미게 합니다. 그 당시 알려져 있는 세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7. (ㄱ) “나의 방백들은 동시에 왕들이기도 하지 않느냐?”라는 표현에 대해 설명하십시오. (ㄴ) 오늘날 여호와를 버리는 사람들은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합니까?

7 아시리아 사람이 정복한 많은 비이스라엘 도시들은 전에 왕들이 통치하던 곳이었습니다. 전에 왕이었던 이 사람들은 아시리아 왕에게 항복하게 되어 이제 속국의 방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아시리아 왕은 실로 “나의 방백들은 동시에 왕들이기도 하지 않느냐?” 하고 자랑할 만합니다. (이사야 10:8) 나라들의 주요 도시들의 거짓 신들은 자기들을 숭배하던 자들이 멸망당하지 않도록 구해 주지 못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주민들이 숭배하는 바알이나 몰렉이나 금 송아지와 같은 신들도 그 도시를 보호해 주지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버린 사마리아는 여호와께서 개입해 주실 것을 기대할 권리조차 없습니다. 오늘날 여호와를 버리는 사람은 누구나 사마리아가 당한 운명에 유의해야 합니다! 아시리아 사람은 자기가 정복한 사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도시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자랑할 만도 합니다.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않으냐? 하맛은 아르밧과 같지 않으냐? 사마리아는 다마스쿠스와 같지 않으냐?” (이사야 10:9) 아시리아 사람에게는 이 도시들이 모두 동일하게 보입니다. 그가 취한 전리품인 것입니다.

8, 9. 아시리아 사람이 예루살렘을 정복하려고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 너무 지나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8 그런데 아시리아 사람은 너무 지나치게 자랑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새긴 형상들을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보다 많이 가진, 무가치한 신의 왕국들에 내 손이 미치는 때에는 언제라도, 내가 사마리아와 그 무가치한 신들에게 행하는 것처럼, 그렇게 예루살렘과 그 우상들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사야 10:10, 11) 아시리아 사람에게 이미 패배를 당한 왕국들은 예루살렘이나 심지어 사마리아보다도 훨씬 더 많은 우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시리아 사람은 이렇게 추리합니다. ‘내가 사마리아에 행한 일을 예루살렘에 행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9 참으로 기고만장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아시리아 사람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물론, 유다가 참 숭배를 지지하는 면에서 흠 없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왕 둘째 16:7-9; 역대 둘째 28:24) 여호와께서는 유다가 불충실로 인하여 아시리아의 침공 중에 많은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사야 1:7, 8) 아시리아가 침공할 당시 예루살렘의 왕은 히스기야입니다. 히스기야는 자기 아버지 아하스 같지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통치를 시작한 바로 첫째 달에 성전 문을 다시 열고 순결한 숭배를 회복합니다!—역대 둘째 29:3-5.

10. 여호와께서는 아시리아 사람에게 어떻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까?

10 따라서 아시리아가 예루살렘에 대해 계획하고 있는 공격은 여호와의 승인을 받지 못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불손한 세계 강국에게 책임을 물으시겠다고 다음과 같이 약속하십니다. 여호와가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일을 모두 마칠 때에, 아시리아 왕의 불손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만에 대하여 기어이 책임을 물을 것이다.”—이사야 10:12.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진군해 가다!

11. 아시리아 사람이 예루살렘을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기원전 740년에 북쪽 왕국이 함락된 지 8년 후에, 아시리아의 새로운 군주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진군해 갑니다. 이사야는 산헤립의 자만에 찬 계획을 다음과 같이 시적으로 묘사합니다. “나는 뭇 백성들의 경계를 치워 버리고, 그들이 쌓아 둔 것을 틀림없이 약탈할 것이며, 강한 자처럼 주민들을 끌어내릴 것이다. 그리고 보금자리에 미치듯, 내 손이 뭇 백성들의 재물에 미칠 것이다. 사람이 버려진 알들을 모을 때처럼, 내가 친히 온 땅을 모으리니,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절거리는 자가 결코 없을 것이다.” (이사야 10:13, 14) 산헤립은 다른 도시들도 함락되었고 사마리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예루살렘도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리합니다! 그 도시는 미온적이나마 저항을 하겠지만, 그 주민들은 좀처럼 지절거리지도 않고 신속히 정복될 것이며, 그 재물도 버려진 보금자리에서 알을 빼가듯 쉽게 탈취할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12. 아시리아 사람의 자랑하는 태도와 관련하여 여호와께서는 사물을 보는 올바른 방법을 어떻게 알려 주십니까?

12 하지만 산헤립이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배교한 사마리아는 그것이 받은 처벌을 받아 마땅하였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 왕 통치 아래 있는 예루살렘은 다시 한 번 순결한 숭배의 보루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손을 대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호와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는 분개하여 이렇게 묻습니다. “도끼가 그것으로 찍는 자 위에 스스로를 높이겠으며, 톱이 그것을 앞뒤로 움직이는 자 위에 스스로를 드높이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저를 높이 드는 자들을 앞뒤로 움직이고, 몽둥이가 나무 아닌 자를 높이 드는 것과 같지 않으냐?” (이사야 10:15) 아시리아 제국은 여호와의 손에 있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마치 도끼나 톱이나 막대기나 몽둥이가 나무꾼이나 톱질하는 사람이나 목자에 의해 사용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몽둥이가 어찌 감히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 위에 스스로를 드높일 수 있겠습니까!

13. 다음의 것들은 각각 무엇을 가리키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되는지 설명하십시오. (ㄱ) “살찐 자들”. (ㄴ) “잡초와 가시덤불”. (ㄷ) ‘그의 숲의 영광’.

13 아시리아 사람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참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의 살찐 자들에게 소모성 질병을 계속 보내실 것이며, 타고 있는 것이 그의 영광 밑에서 불의 타오름같이 계속 타 없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빛은 불이 되시고, 그 거룩한 분은 불꽃이 되시리니, 그것이 활활 타올라 그의 잡초와 가시덤불을 하루에 삼키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숲과 과수원의 영광을 영혼에서 육체에 이르기까지 끝에 이르게 하시리니, 그것은 병든 사람이 녹아 없어지는 것처럼 되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숲의 나머지 나무들—그것들의 수는 아이라도 그것들을 기록해 둘 있을 정도가 될 것이다.” (이사야 10:16-19)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아시리아 “몽둥이”를 가늘게 깎아 버리실 것입니다! 아시리아 사람의 군대에 속한 “살찐 자들” 즉 그의 건장한 군인들은 “소모성 질병”에 걸릴 것입니다. 그들은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시리아 사람의 지상군은 매우 많은 잡초와 가시덤불처럼 이스라엘의 빛이신 여호와 하느님에 의해 타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숲의 영광’ 즉 그의 군대의 장교들도 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시리아 사람과 관련된 일을 끝마치시고 나면, 남아 있는 장교가 거의 없어 아이라도 손가락으로 그 수를 셀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입니다!—또한 이사야 10:33, 34 참조.

14. 기원전 732년에 아시리아 사람이 유다 땅에 진군해 온 과정을 설명하십시오.

14 하지만 기원전 732년에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아시리아 사람이 패배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가 틀림없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시리아 대군이 가차없이 전진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에서 이미 함락된 도시들의 이름을 들어 보십시오. “그가 아얏에 이르고, 미그론 ·⁠·⁠· 믹마스 ·⁠·⁠· 게바 ·⁠·⁠· 라마 ·⁠·⁠· 사울의 기브아 ·⁠·⁠· 갈림 ·⁠·⁠· 라이사 ·⁠·⁠· 아나돗 ·⁠·⁠· 맛메나 ·⁠·⁠· 게빔 ·⁠·⁠· 놉[ 이르렀다].” (이사야 10:28-32ㄱ) * 침략군은 마침내 예루살렘에서 5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라기스까지 이르게 됩니다. 얼마 있지 않아 아시리아의 큰 군대가 예루살렘을 위협합니다. “그는 딸 시온의 산, 예루살렘의 언덕을 향하여 위협적으로 손을 휘두른다.” (이사야 10:32ㄴ) 무엇이 아시리아 사람을 저지할 수 있습니까?

15, 16. (ㄱ) 히스기야 왕에게 강한 믿음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히스기야가 여호와께서 자기를 도와 주실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15 예루살렘의 자기 궁전에 있는 히스기야 왕은 염려에 가득 차게 됩니다. 그는 자기 옷을 찢고 자루천을 몸에 걸칩니다. (이사야 37:1) 그는 예언자 이사야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유다를 위해 여호와께 문의하게 합니다. 그들은 곧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대답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 내가 반드시 이 도시를 방어[할 것이다].” (이사야 37:6, 35) 하지만 아시리아 사람들은 여전히 위협적이며 대단히 자신만만합니다.

16 히스기야 왕이 이 위기를 뚫고 나아가게 해 줄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명백한 실증입니다.” (히브리 11:1) 거기에는, 분명히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줄 아는 것이 포함됩니다. 하지만 믿음은 지식에 근거해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아마 여호와께서 이전에 다음과 같이 위로가 되는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시온에 사는 나의 백성아, ·⁠·⁠· 아시리아 사람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라. 앞으로 잠시 후면—질책이 끝에 이르고, 나의 분노도 끝에 이르리니, 그들이 쇠하여질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오렙 바위 곁에서 미디안을 쳐부수셨을 때처럼 틀림없이 그에게 채찍을 휘두르실 것이다. 그분의 막대기가 바다 위에 있으리니, 그분이 이집트에게 행하신 대로 틀림없이 그것을 치켜드실 것이다.” (이사야 10:24-26) *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전에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조상은 홍해에서 이집트 군대에게 따라잡힐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습니다. 수백 년 전에 기드온도 미디안과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침공해 왔을 때 수적으로 형편없이 열세에 처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두 경우에 자신의 백성을 구출해 주셨습니다.—탈출 14:7-9, 13, 28; 재판관 6:33; 7:21, 22.

17. 아시리아의 멍에는 어떻게 ‘부러지며’, 왜 부러집니까?

17 여호와께서는 전에 그 두 경우에 하셨던 일을 또다시 하실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그 날에는 정녕 그의 짐이 너의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너의 목에서 떠나리니, 그 멍에는 틀림없이 기름기 때문에 부러질 것이다.” (이사야 10:27) 하느님의 계약 백성의 어깨와 목에서 아시리아의 멍에가 벗겨질 것입니다. 사실상, 그 멍에는 “부러질”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부러집니다! 여호와의 천사에 의해 아시리아 군인 18만 5000명이 하룻밤에 죽임을 당합니다. 위협은 제거되고, 아시리아 사람들은 유다 땅을 영원히 떠나게 됩니다. (열왕 둘째 19:35, 36) 무엇 때문입니까? “기름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히스기야를 다윗 계열의 왕으로 기름부을 때 사용한 기름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다음과 같은 자신의 약속을 성취시키십니다. “나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내 종 다윗을 위하여, 내가 반드시 이 도시를 방어하여 구원할 것이다.”—열왕 둘째 19:34.

18. (ㄱ) 이사야의 예언은 한 번 이상 성취됩니까? 설명하십시오. (ㄴ) 오늘날 어느 조직이 고대의 사마리아와 유사합니까?

18 이 책의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이사야의 기록은 2700여 년 전에 유다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오늘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로마 15:4) 이것은 이 감격적인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아시리아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주민과 예루살렘 주민—과 관련하여 현대에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우상 숭배에 빠진 사마리아처럼, 여호와를 숭배한다고 주장하지만 철저히 배교한 상태에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은 「그리스도교 교리 발전론」(An 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에서, 그리스도교국에서 여러 세기 동안 사용해 온 향이나 촛불이나 성수(聖水)나 제의(祭衣)나 형상과 같은 물품들이 “모두 이교에 기원을 둔 것”이라는 사실을 시인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마리아의 우상 숭배를 기뻐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그리스도교국의 이교화된 숭배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19. 그리스도교국은 무슨 경고를 받아 왔으며, 누구에게서 경고를 받아 왔습니까?

19 여호와의 증인은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교국에게 여호와께서 불쾌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경고해 왔습니다. 예를 들면, 1955년에 “그리스도교국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세상의 빛’은 어느 쪽인가?”라는 제목의 공개 강연이 전세계적으로 행해졌습니다. 이 강연에서는 그리스도교국이 그리스도교의 참된 교리와 관습에서 어떻게 벗어나게 되었는지를 사실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이 강력한 강연의 사본을 여러 나라의 교직자들에게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하나의 조직으로서, 그리스도교국은 이러한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여호와께서 “몽둥이”로 징계하시는 것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게 하고 있습니다.

20. (ㄱ) 무엇이 현대의 아시리아 사람 역할을 할 것이며, 그것은 어떻게 몽둥이로 사용될 것입니까? (ㄴ) 그리스도교국은 어느 정도로 징계를 받을 것입니까?

20 여호와께서는 누구를 사용하여 반역한 그리스도교국을 징계하실 것입니까? 계시록 17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큰 바빌론”이라는 한 창녀가 나오는데, 그는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하여 전세계의 모든 거짓 종교를 상징합니다. 이 창녀는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진홍색 야수를 타고 있습니다. (계시 17:3, 5, 7-12) 이 야수는 국제 연합 기구를 상징합니다. * 고대의 아시리아가 사마리아를 멸망시킨 것처럼, 이 진홍색 야수가 “창녀를 미워하여 황폐시키고 벌거벗겨서 그 살을 먹어 버릴 것이며, 그 여자를 불로 온전히 태워 버릴 것”입니다. (계시 17:16) 그리하여 현대의 아시리아 사람(국제 연합과 관련을 맺고 있는 나라들)이 그리스도교국에 치명타를 가하여 쳐부숨으로 그리스도교국이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21, 22. 누가 야수에게 하느님의 백성을 공격할 생각을 넣어 줄 것입니까?

21 여호와의 충실한 증인들도 큰 바빌론과 함께 멸망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불쾌하게 여기시지 않습니다. 순결한 숭배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큰 바빌론을 멸망시키는 야수는 여호와의 백성을 향해서도 탐욕스러운 눈길을 보냅니다. 그렇게 하여 야수는 하느님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어떤 존재의 생각을 실행에 옮깁니다. 누구의 생각입니까? 사탄 마귀의 생각입니다.

22 여호와께서는 사탄의 자만에 찬 계교를 다음과 같이 폭로하십니다. “그 날에 네[사탄의] 마음 속에 여러가지 일이 떠올라, 네가 필시 해로운 계교를 생각해 낼 것이다.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 아무 소란도 없이 안전하게 살고 있는 자들에게로 들어가리니, 그들은 모두 [보호] 성벽도 없이 살[고 있다] ·⁠·⁠·.’ 이는 큰 전리품을 얻고 많이 강탈하기 위한 것이[다].” (에스겔 38:10-12) 사탄은 이렇게 추리할 것입니다. ‘그렇다. 나라들을 선동하여 여호와의 증인을 공격하게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은 공격하기 쉽고, 무방비 상태이고, 정치적 영향력도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저항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무방비 상태인 보금자리에서 알을 빼가듯 그들을 탈취해 가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이겠는가!’

23. 현대의 아시리아 사람이 그리스도교국에게 하는 일을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3 하지만 나라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백성에게 손을 댈 때는 바로 하느님을 고려에 넣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히스기야 시대에 예루살렘을 위해 싸우셨던 것처럼 틀림없이 자신의 백성을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현대의 아시리아 사람이 여호와의 종들을 멸절하려고 할 때, 그는 사실은 여호와 하느님과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싸우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아시리아 사람이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어린 양”이 그들을 이길 것’이라고 성서는 알려 줍니다. “‘어린 양’은 ‘주들의 주’요 ‘왕들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계시 17:14; 비교 마태 25:40) 진홍색 야수는 고대의 아시리아 사람처럼 ‘멸망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계시 17:11.

24. (ㄱ) 참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에 대한 대비로 어떻게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습니까? (ㄴ) 이사야는 어떻게 훨씬 앞에 있을 일을 내다보고 있습니까? (155면 네모 참조)

24 참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와의 관계를 튼튼하게 유지한다면 그리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일을 생활의 주된 관심사로 삼는다면 두려움 없이 미래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마태 6:33) 따라서 ‘어떠한 나쁜 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 23:4)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위력 있는 팔을 높이 쳐들고 계신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귀로는 다음과 같은 안심이 되는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이사야 10:24.

[각주]

^ 14항 명확히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이사야 10:20-27보다 이사야 10:28-32을 먼저 다루고 있다.

^ 16항 이사야 10:20-23을 다루는 내용을 보기 원한다면, 155면의 “이사야가 훨씬 앞에 있을 일을 내다보다” 참조.

^ 20항 창녀와 진홍색 야수의 정체에 관한 부가적인 내용은 사단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계시록—그 웅대한 절정은 가까왔다!」 책 34장과 35장에 나와 있음.

[연구 질문]

[155, 156면 네모와 삽화]

이사야가 훨씬 앞에 있을 일을 내다보다

이사야 10:20-23

이사야 10장은 주로, 여호와께서 어떻게 아시리아의 침공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에 심판을 집행하실 것인지 하는 점과 예루살렘을 방어하시겠다는 그분의 약속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절에서 23절은 이 예언의 중간 부분에 있으므로, 동일한 기간에 일반적으로 성취될 일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비교 이사야 1:7-9) 하지만 그 표현을 보면 이 성구들이, 예루살렘 역시 그 주민의 죄에 대해 답변해야 하는 나중 기간에 더욱 특별히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하스 왕은 아시리아에게 도움을 청함으로 안전을 얻으려고 한다. 예언자 이사야는, 미래에는 이스라엘 집의 생존자들이 그처럼 무분별한 행로를 추구하는 일이 결코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사야 10:20에서는 그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인 여호와께 진실히 의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21절에서는 단지 소수만 그렇게 할 것이라고 알려 준다. “단지 남은 자 ·⁠·⁠· 만이 ·⁠·⁠· 돌아올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이 생각나는데, 그는 이스라엘의 표징으로서 그 이름의 뜻이 바로 “단지 남은 자만이 돌아올 것이다”이다. (이사야 7:3) 10장 22절에서는 결정된 “진멸”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한다. 그러한 진멸은 반역한 백성에 대한 공정한 처벌이기 때문에 의로운 일이 될 것이다. 그 결과, “바다의 모래알 같”이 인구가 많은 민족 가운데서 단지 남은 자만이 돌아올 것이다. 23절에서는 이 다가오는 진멸이 온 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번에는 예루살렘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이 성구들은 기원전 607년에 일어난 일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때 여호와께서는 바빌론 제국을 자신의 “몽둥이”로 사용하셨다. 예루살렘을 포함하여 온 땅이 침략자의 손에 넘어갔다. 유대인들은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려가서 70년을 보냈다. 하지만 그 후에 얼마의 사람들이—비록 “단지 남은 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돌아와서 예루살렘에 다시 참 숭배를 회복시켰다.

로마 9:27, 28에서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이사야 10:20-23의 예언은 1세기에 한 번 더 성취되었다. (비교 이사야 1:9; 로마 9:29) 바울의 설명에 따르면, 영적인 면으로 볼 때 기원 1세기에 유대인의 “남은 자”가 여호와께 ‘돌아왔다.’ 소수에 불과한 충실한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어 “영과 진리로” 여호와를 숭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한 4:24) 나중에 믿는 이방인들이 이들에게 가세하여 영적인 나라인 “하느님의 이스라엘”을 구성하게 되었다. (갈라디아 6:16) 이 일을 통해 이사야 10:20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즉 여호와께 헌신한 나라가 여호와에게 등을 돌리고 인간을 지원의 근원으로 바라보는 일이 “결코 다시는” 없었다.

[147면 삽화]

산헤립은 나라들을 모으는 것이 보금자리에서 알을 빼내어 모으는 것만큼이나 쉽다고 추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