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바로 가기

차례 바로 가기

여호와 하느님께서 남은 자들에게 자비를 보이시다

여호와 하느님께서 남은 자들에게 자비를 보이시다

제6장

여호와 하느님께서 남은 자들에게 자비를 보이시다

이사야 4:2-6

1, 2. 예언자 이사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무슨 예언을 합니까?

인구 밀집 지역에 거센 폭풍우가 불어 닥칩니다. 강한 바람과 폭우와 엄청난 홍수가 그 지역을 휩쓸고 지나가며 가옥을 파괴하고 농작물을 훼손시키고 인명을 앗아 갑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폭풍우가 지나가자 그 뒤의 고요함이 찾아듭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회복과 재건의 때가 온 것입니다.

2 예언자 이사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와 비슷한 상황을 예언합니다. 하느님의 심판의 폭풍 구름이 점점 더 불길하게 다가오고 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나라의 죄가 무거운 것입니다. 통치자들과 백성 모두가 그 땅을 불공정과 피흘림으로 가득 채워 온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유다의 죄를 폭로하시면서 그 범죄한 나라에 심판을 집행하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이사야 3:25) 이 폭풍우가 지나감에 따라 유다 땅은 완전히 황폐될 것입니다. 그러한 전망으로 인해 이사야는 틀림없이 마음이 슬퍼졌을 것입니다.

3. 이사야 4:2-6에 나오는 영감받은 소식에는 무슨 좋은 소식이 들어 있습니까?

3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여호와의 의로운 심판의 폭풍은 지나갈 것이며, 생존한 남은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다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은 자비로 인해 완화될 것입니다! 이사야 4:2-6에 기록된 이사야의 영감받은 소식은 그러한 축복을 받을 때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마치 구름 뒤에서 태양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처럼, 이사야 2:6–4:1에 묘사된 바와 같은 심판 집행 광경과 소리가 가득했던 장면이 아름답게 새로워진 땅과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장면으로 바뀌게 됩니다.

4. 남은 자들의 회복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을 검토해 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남은 자들의 회복과 뒤이어 그들이 누리게 될 안전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은 우리 시대 즉 “말일”에도 성취됩니다. (이사야 2:2-4) 이 시기적절한 소식을 검토해 보기로 합시다. 그 소식에는 예언적 의미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여호와의 자비에 대해 그리고 우리 개개인이 그 자비를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싹’

5, 6. (ㄱ) 이사야는 다가오는 폭풍에 이어 있게 될 평화로운 시기를 어떻게 묘사합니까? (ㄴ) “싹”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 표현은 유다 땅에 어떤 일이 있을 것임을 암시합니까?

5 다가오는 폭풍 너머로 좀더 평화로운 시기가 있을 것임을 보자 이사야의 어조는 온화해집니다. 그는 이렇게 씁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나게 하시는 싹[“여호와의 싹”, 신세계역 참조주 성서 각주]이 장식과 영광이 될 것이며, 그 땅의 열매는 이스라엘의 피한 자들에게 자랑스러운 것과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다.”—이사야 4:2.

6 이사야는 여기서 회복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싹”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명사는 ‘돋아나는 것, 어린 가지, 가지’를 가리킵니다. 그 명사는 번영, 증가, 여호와의 축복과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다가오는 황폐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때 번영했던 유다 땅은 여호와의 축복으로 다시 풍성한 열매를 산출하게 될 것입니다. *레위 26:3-5.

7. 여호와의 싹은 어떤 면으로 “장식과 영광이 될” 것입니까?

7 이사야는 앞으로 전개될 놀라운 변화를 생생한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싹이 “장식과 영광이 될” 것입니다. “장식”이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여러 세기 전에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을 주셨을 때 그 땅이 지니고 있던 아름다움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 그 땅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모든 땅 중에서 장식[“보석”, 신 미국 성서]이 되는 땅”으로 여겨졌습니다. (에스겔 20:6) 따라서 이사야의 말은 그 땅이 이전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회복할 것임을 유다 백성에게 보증해 줍니다. 그 땅은 실제로 지상에서 최고의 보석과 같은 땅이 될 것입니다.

8. 누가 그 땅에 있으면서 그 땅의 회복된 아름다움을 즐기게 될 것이며, 이사야는 그들의 감정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8 그러면 누가 그 땅에 있으면서 그 땅의 회복된 아름다움을 즐기게 될 것입니까? “이스라엘의 피한 자들”이 즐기게 될 것이라고 이사야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앞서 예언된 굴욕적인 파괴를 살아남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 3:25, 26) 생존한 사람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유다로 돌아와 회복에 참여할 것입니다. 이 돌아온 사람들 즉 “피한 자들”에게, 회복된 땅의 풍부한 소출은 “자랑스러운 것과 아름다운 것”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 4:2, 신세계역 참조주 성서 각주 참조) 황폐로 인해 느끼던 굴욕감이 이제는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으로 새롭게 바뀔 것입니다.

9. (ㄱ) 이사야의 말이 성취되어 기원전 537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ㄴ) “피한 자들” 가운데는 유배되어 있는 동안에 태어난 사람들도 일부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각주 참조)

9 기원전 607년에 이사야의 말대로 심판의 폭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그때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바람에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살아남아 바빌론으로 유배되어 갔는데, 하느님의 자비가 없었다면 살아남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 9:31) 유다는 결국 완전히 황폐되었습니다. (역대 둘째 36:17-21) 그런데 기원전 537년에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피한 자들”이 유다로 돌아와 참 숭배를 회복하게 허락하셨습니다. * (에스라 1:1-4; 2:1) 이 돌아오는 유배자들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회개가 시편 137편에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 시는 아마 바빌론에 사로잡혀 있을 때 쓴 것이거나 그때가 끝나고 얼마 안 있어 쓴 것일 것입니다. 다시 유다로 돌아온 이들은 땅을 갈고 그 땅에 씨를 뿌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노력을 축복하시어 그 땅이 비옥한 “에덴 동산”처럼 싹을 내게 해 주신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의 감회가 정녕 어떠하였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에스겔 36:34-36.

10, 11. (ㄱ) 성경 연구생들은 20세기 초에 어떤 면에서 “큰 바빌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어떻게 축복해 주셨습니까?

10 우리 시대에도 그와 비슷하게 회복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세기 초에, 성경 연구생들—당시에는 여호와의 증인이 그렇게 알려져 있었음—은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빌론”에 영적으로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계시 17:5) 성경 연구생들은 거짓 종교의 가르침을 많이 배척하였지만, 여전히 특정한 바빌론적 사상과 관습에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교직자들의 부추김을 받은 반대로 인해 문자적으로 교도소에 갇히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땅—그들의 종교적 또는 영적 소유지—은 황폐되어 있었습니다.

11 그런데 1919년 봄에 여호와께서는 이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자비를 보이셨습니다. (갈라디아 6:16)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회개하는 태도와 진리로 여호와를 숭배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보시고, 문자적으로 교도소에 갇혀 있던 상태에서 그들을 해방시키셨으며, 더욱 중요한 일로서, 영적으로 사로잡혀 있던 상태에서 그들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이 “피한 자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영적 소유지로 회복되었고, 하느님께서는 그곳에 싹이 풍부히 나게 하셨습니다. 그 영적 소유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매력적인 모습을 띠게 되어,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 남은 자들과 연합하여 참 숭배에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12. 이사야의 말은 어떻게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보이시는 자비를 돋보이게 합니까?

12 2절에 언급된 이사야의 말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보이시는 자비를 돋보이게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국가적으로 여호와를 배신하였지만, 여호와께서는 회개한 남은 자들에게 자비를 보이셨습니다.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까지도 희망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회개한 사람들이라면 자기들이 여호와의 자비를 받기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통회하는 마음을 배척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 51:17) 성서에서는 이렇게 보증해 줍니다.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분노하기를 더디 하고 사랑의 친절이 풍부하시[다]. 아버지가 자기 자식에게 자비를 보이듯이 여호와께서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보이셨다.” (시 103:8, 13) 그처럼 자비로우신 하느님이시라면 정녕 우리로부터 온갖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남은 자들이 여호와에게 거룩하게 되다

13. 이사야 4:3에 기록되어 있듯이,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자비를 보이실 남은 자들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13 우리는 이미 이사야를 통해, 여호와께서 자비를 보이실 남은 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고 있지만, 이사야는 이제 그들에 대해 좀더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들과 예루살렘에 남겨진 자들, 곧 예루살렘에서의 생명을 위하여 기록된 모든 사람은 그분에게 거룩하다고 일컬어질 것이다.”—이사야 4:3.

14. “남아 있는 자들”과 “남겨진 자들”은 누구이며, 여호와께서 장차 그들에게 자비를 보이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남아 있는 자들”과 “남겨진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앞 성구에서 언급한 피한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로 돌아가도록 허락받게 될 유대인 유배자들입니다. 이제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장차 그들에게 자비를 보이시는 이유를 알려 줍니다. 그들이 “그분에게 거룩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이란 “종교적 깨끗함이나 순결, 신성함”을 의미합니다. 거룩하다는 의미에는, 올바르고 합당한 것에 대한 여호와의 표준에 부합될 정도로 말이나 행실이 깨끗하고 순결한 것이 포함됩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에게 거룩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보이실 것이며, 그들이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느헤미야 11:1.

15. (ㄱ) ‘예루살렘에서의 생명을 위하여 기록된다’는 표현은 유대인의 어떤 관습을 생각나게 해 줍니까? (ㄴ) 이사야의 말에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어떤 경고의 뜻이 담겨 있습니까?

15 이 충실한 남은 자들은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입니까? 그들은 ‘예루살렘에서의 생명을 위하여 기록될’ 것이라고 이사야는 약속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가족들과 지파들의 등기부를 신중하게 보관해 두는 유대인의 관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느헤미야 7:5) 등기부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망하면 등기부에서 그 이름이 삭제되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다른 부분에는, 상징적 등기부 즉 여호와께서 생명의 상을 주시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책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책에 이름이 받아들여지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름들을 ‘지워 버리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탈출 32:32, 33; 시 69:28) 그러므로 이사야의 말에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경고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돌아온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에만 회복된 땅에서 계속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16. (ㄱ) 여호와께서는 기원전 537년에 유다로 돌아오게 허락하신 사람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셨습니까? (ㄴ) 여호와께서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과 “다른 양들”에게 보이신 자비가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기원전 537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남은 자들은 참 숭배를 회복하려는 순수한 동기로 돌아왔습니다. 이사야가 매우 강력히 경고한 바 있는 이교의 관습이나 부정한 행실에 오염된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올 권리가 없었습니다. (이사야 1:15-17) 여호와께서 거룩하게 보시는 사람들만 유다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사야 35:8) 그와 마찬가지로,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도 1919년에 영적 포로 상태에서 해방된 이래,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지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희망을 가지고 있는 수백만 명의 “다른 양들”이 현재 이들에게 가담하고 있습니다. (요한 10:16) 이들 모두는 바빌론적 가르침과 관습들을 자신들에게서 제거해 왔습니다. 이들 각자는 개인적으로도 하느님의 높은 도덕 표준을 고수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베드로 첫째 1:14-16)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보이신 자비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17.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생명 책”에 어떤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해 두시며, 우리는 어떻게 하기로 결심해야 합니까?

17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들을 유의하여 보시고 ‘생명을 위하여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셨다’는 점을 상기하도록 하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오늘날도, 정신과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여 ‘우리의 몸을 살아 있고 거룩하고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실 만한 희생으로 바치’려고 애쓰는 우리의 노력을 유의하여 보십니다. (로마 12: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생명 책”에 그러한 인생 행로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을 기록해 두시는데, 그 책은 하늘이나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전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상징적인 기록입니다. (빌립보 4:3; 말라기 3:16)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위해 전력을 다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해야만 그 귀중한 “책”에 우리의 이름이 계속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계시 3:5.

사랑으로 돌보시겠다는 약속

18, 19. 이사야 4:4, 5에 의하면,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종류의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실 것이며, 그 일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입니까?

18 다음으로 이사야는 회복된 땅의 주민들이 어떻게 해서 거룩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축복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려 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딸들의 배설물을 씻어 주시고 심판의 영과 태워 버리는 영으로 예루살렘의 피흘림마저 그 중에서 씻어 내실 때에, 여호와께서는 틀림없이 시온 산의 모든 정해진 곳과 대회 장소 위에 낮에는 구름을, 연기를, 밤에는 불꽃 광채를 창조하실 것이다. 모든 영광 위에 보호막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이사야 4:4, 5.

19 이전에 이사야는 요란스러운 장식물들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상태를 숨기고 다니는 “시온의 딸들”을 질책한 적이 있습니다. 이사야는 또한 일반 백성의 피흘린 죄를 폭로하며 그들 자신을 씻으라고 강력히 권한 적이 있습니다. (이사야 1:15, 16; 3:16-23) 하지만 여기서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친히 “배설물” 즉 도덕적 불결함을 “씻어 주시”고 ‘핏자국을 깨끗하게 하실’ 때가 올 것임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4, 신국제역) 그처럼 깨끗하게 하는 일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입니까? “심판의 영”과 “태워 버리는 영”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가오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빌론 유배는, 부정한 나라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과 타오르는 분노의 강력한 표현일 것입니다. 이러한 재난을 살아남아 고토로 돌아오는 남은 자들은 겸손해져 있고 정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여호와에게 거룩하게 되어 자비를 받게 될 것입니다.—비교 말라기 3:2, 3.

20. (ㄱ) “구름”이니 “연기”니 “불꽃”이니 하는 표현들은 무엇을 생각나게 해 줍니까? (ㄴ) 깨끗해진 유배자들은 무엇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까?

20 여호와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그처럼 깨끗해진 남은 자들을 사랑으로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구름”이니 “연기”니 “불꽃”이니 하는 표현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를 떠난 뒤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어떻게 돌보아 주셨는지를 생각나게 해 줍니다. “불과 구름기둥”이 추격해 오는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고, 또한 그들을 광야에서 인도해 주기까지 하였습니다. (탈출 13:21, 22; 14:19, 20, 24) 여호와께서 시나이 산에 나타나셨을 때는 그 산에 “온통 연기가 자욱하였”습니다. (탈출 19:18) 그러므로 깨끗해진 유배자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집에서 모이든 거룩한 대회에서 함께 모이든 여호와께서는 그들과 함께해 주실 것입니다.

21, 22. (ㄱ) 초막 즉 임시 막사는 흔히 어떤 목적으로 세워졌습니까? (ㄴ) 깨끗해진 남은 자들 앞에는 어떤 전망이 놓여 있습니까?

21 이사야는 하느님의 보호에 대한 자신의 묘사를 끝맺으면서, 일상 생활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는 이렇게 씁니다. “초막이 있어, 낮에 건조한 열기를 피하는 그늘이 되어 주고, 폭풍우와 비를 피하는 도피처와 피신처가 되어 줄 것이다.” (이사야 4:6) 포도원이나 밭에 흔히 초막 즉 임시 막사를 세우는 목적은, 건기의 작열하는 태양이나 우기의 추위와 폭풍우를 피하는 데 매우 필요한 피신처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비교 요나 4:5.

22 깨끗해진 남은 자들은 박해의 뜨거운 열기나 반대의 폭풍에 직면하게 될 때, 여호와께서 자기들의 보호와 안전과 도피의 근원이 되어 주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 91:1, 2; 121:5) 따라서 그들 앞에는 아름다운 전망이 놓여 있습니다. 즉 그들이 바빌론의 부정한 신앙과 관습들을 떠나서 여호와의 심판에 의해 깨끗해지는 일에 복종하고 거룩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위해 노력하기만 한다면, 마치 하느님의 보호의 “초막”에 거하는 것처럼 안전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될 것입니다.

23. 여호와께서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과 그들의 동료들을 축복해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3 먼저 깨끗해지는 일이 있은 다음에 축복이 온다는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이 점은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일찍이 1919년에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은 정련되는 일에 겸손하게 복종하였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부정함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 후로, 다른 양들의 “큰 무리”도 여호와에 의해 깨끗해지게 되었습니다. (계시 7:9) 그처럼 깨끗해진 남은 자들과 그들의 동료들은 축복을 받아 왔습니다. 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보호하며 돌보아 오신 것입니다. 박해의 열기나 반대의 폭풍이 그들에게 닥치지 못하도록 기적을 통해 막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늘이 되어 주고 폭풍우를 피하는 피신처가 되어 줄 초막’을 그들 위에 세우시듯이,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보호해 주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십니까?

24.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하나의 조직으로서 축복해 오셨음을 어떻게 분명히 알 수 있습니까?

24 이 점을 고려해 보십시오.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일부 정부들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의 전파 활동을 금지시켜 왔거나 그들을 완전히 없애 버리려고 시도해 왔습니다. 하지만 증인들은 확고함을 유지해 왔으며, 중단 없이 계속 전파해 왔습니다! 강력한 국가들이 무방비 상태인 것처럼 보이는 이 비교적 작은 집단의 사람들이 벌이는 활동을 중단시킬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자신의 깨끗한 종들을 어떤 인간도 무너뜨릴 수 없는 보호의 “초막” 안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25. 여호와께서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은 우리 개개인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25 우리 개개인은 어떠합니까? 여호와께서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고 해서 우리가 이 사물의 제도에서 아무 문제 없는 생활을 영위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가난, 자연재해, 전쟁, 질병, 죽음 등과 같은 심한 역경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한 고난에 처하게 될 때, 우리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시련들을 충실하게 인내하는 데 필요로 하는 것들을—심지어 “정상적인 것을 초월하는 능력”까지—공급해 주심으로 우리를 영적으로 보호해 주십니다. (고린도 둘째 4:7) 하느님께서 함께 계셔서 안전하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튼,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한,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로마 8:38, 39.

[각주]

^ 6항 일부 학자들은 ‘여호와의 싹’이라는 표현이 예루살렘이 회복된 다음에 등장하게 될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아람어 타르굼」에서는 이 표현을 의역하여 “여호와의 메시아[그리스도]”라고 했다. 흥미롭게도, 후에 예레미야도 메시아를 가리켜 다윗에게 일으켜질 “한 의로운 싹”이라고 말할 때에 동일한 히브리어 명사(체마흐)를 사용한다.—예레미야 23:5; 33:15.

^ 9항 “피한 자들” 가운데는 유배되어 있는 동안에 태어난 사람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자기들의 조상이 멸망을 살아남지 못했더라면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므로, 이들도 “피한” 자들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에스라 9:13-15; 비교 히브리 7:9, 10.

[연구 질문]

[63면 삽화]

유다에 불어 닥치고 있는 하느님의 심판의 폭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