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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에 처할 때 여호와를 신뢰하라

역경에 처할 때 여호와를 신뢰하라

제9장

역경에 처할 때 여호와를 신뢰하라

이사야 7:1–8:18

1.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사야 7장과 8장을 검토해 보고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사야 7장과 8장에서는 두 사람의 대조적인 반응을 살펴보게 됩니다. 이사야와 아하스는 둘 다 여호와께 헌신한 나라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두 사람 다 하느님께서 주신 임명을 받았는데, 한 사람은 예언자로서 또 한 사람은 유다의 왕으로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동일한 위협에 직면해 있었는데, 전력이 월등한 적군이 유다를 침공하려고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그러한 위협에 직면해서 여호와를 신뢰하고 있었던 반면, 아하스는 두려움에 굴복하였습니다. 이처럼 반응이 서로 달랐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적대적인 세력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므로, 이사야서의 이 두 장을 검토해 보면서 거기에 어떤 교훈이 담겨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일에 직면함

2, 3. 이사야는 서두에서 어떤 점을 요약하여 알려 줍니까?

2 화가가 새로운 그림을 그릴 때 몇 번의 붓질로 대충 윤곽을 잡듯이, 이사야도 자기의 기록을 시작할 때 기술하려고 하는 사건의 시작과 끝이 되는 부분부터 대충 몇 마디 말로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의 아들인 아하스의 날에, 시리아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과 전쟁을 하러 올라왔는데, 그가 그 도시를 대적하여 제대로 전쟁을 하지는 못하였다.”—이사야 7:1.

3 이때는 기원전 8세기였습니다. 아하스는 자기 아버지 요담의 뒤를 이어 유다 왕이 되었습니다. 시리아 왕 르신과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왕 베가가 유다를 침공해 왔는데, 그 두 나라 군대의 공격은 맹렬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예루살렘까지 포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포위 공격은 실패할 것입니다. (열왕 둘째 16:5, 6; 역대 둘째 28:5-8)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될 것입니다.

4. 아하스와 그 백성의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 차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전쟁 초기에, “‘시리아가 에브라임에게 기울었다’는 말이 다윗의 집에 전해졌다. 그러자 그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숲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듯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사야 7:2) 그렇습니다. 시리아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가 합세하여 바로 지금 에브라임(이스라엘) 땅에 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하스와 그의 백성은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그들은 불과 이삼 일이면 예루살렘까지 진군해 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5. 오늘날 하느님의 백성은 어떤 면에서 이사야를 닮았습니까?

5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청컨대,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세탁하는 사람의 밭 대로변에 있는 윗못의 수로 끝으로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거라.” (이사야 7:3)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왕이 여호와의 예언자를 찾아 인도를 구해야 할 터인데, 오히려 예언자가 가서 왕을 찾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사야는 여호와께 기꺼이 순종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하느님의 백성도 이 세상이 가하는 압력으로 인해 두려움에 차 있는 사람들을 기꺼이 찾아 나섭니다. (마태 24:6, 14) 해마다 수십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좋은 소식 전파자들의 방문에 반응을 나타내어 여호와의 보호의 손을 붙잡으니 참으로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6. (ㄱ) 예언자는 아하스 왕에게 어떤 격려적인 소식을 전합니까? (ㄴ) 오늘날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6 이사야는 예루살렘 성벽 밖에서 아하스를 발견합니다. 이 왕은 거기서, 예상되는 포위 공격에 대비하여 그 도시의 급수 상황을 살피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소식을 전합니다. “주의하고 평온을 유지하여라. 이 연기 나는 나무토막의 두 끄트머리로 말미암아, 르신과 시리아 그리고 르말랴의 아들의 격한 분노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네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하여라.” (이사야 7:4) 공격자들이 전쟁 초기에 유다를 황폐시킬 때는 그들의 분노가 불길처럼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연기 나는 나무토막의 두 끄트머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아하스는 시리아 왕 르신이든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국의 지도자들은 참 그리스도인들이 불 같은 박해를 받도록 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리스도교국은 거의 다 타버린 나무토막과 비슷합니다. 그리스도교국이 끝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7. 이사야의 이름과 그의 아들의 이름이 희망을 가질 만한 근거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아하스 시대에는, 이사야가 전하는 소식뿐 아니라 이사야의 이름과 그의 아들의 이름이 지닌 의미도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유다가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사야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출해 주실 것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그의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가라고 명령하시는데, 그 이름의 의미는 “단지 남은 자만이 돌아올 것이다”입니다. 유다 왕국이 결국 멸망될 때에도, 하느님께서는 자비롭게도 남은 자가 그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단순히 나라들 사이의 전쟁에 불과한 일이 아니다

8. 예루살렘에 대한 공격이 단순히 나라들 사이의 전쟁에 불과한 일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8 여호와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유다의 적들이 사용할 전략을 알려 주십니다. 그들이 세우고 있는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찢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뚫고 들어가 빼앗아서, 다른 왕 곧 다브엘의 아들이 그 안에서 통치하게 하자.” (이사야 7:5, 6) 시리아와 이스라엘 동맹군은 유다를 정복한 다음 다윗의 자손 아하스를 그들이 선택한 사람으로 대치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공격은 이제 단순히 나라들 사이의 전쟁에 불과한 일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이 전쟁은 사탄과 여호와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 하느님께서 다윗 왕과 계약을 맺으셔서 그의 자손이 여호와의 백성을 통치할 것이라고 확약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둘째 7:11, 16) 사탄이 예루살렘의 왕좌에 다른 왕조를 세울 수만 있다면 그가 승리를 거두는 것이 될 것입니다! 심지어 다윗 가계에서 영원한 상속자, “평화의 군왕”을 산출하시려는 여호와의 목적을 좌절시키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이사야 9:6, 7.

여호와의 사랑에 찬 보증

9. 어떤 보증의 말씀으로 인해 아하스는 물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용기를 가져야만 합니까?

9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음모는 성공할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그것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이사야 7:7) 여호와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 공격이 실패할 뿐만 아니라 “단지 육십오 년 안에 에브라임이 산산이 부서져서 한 백성으로 있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7:8)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한 백성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65년 안에 일어날 것입니다. * 구체적인 시간표와 함께 언급된 이러한 보증의 말씀으로 인해 아하스는 용기를 가져야만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하느님의 백성도 사탄의 세상에 대해 남은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앎으로 인해 힘을 얻고 있습니다.

10. (ㄱ) 오늘날 참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여호와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아하스에게 어떠한 제안을 하십니까?

10 아하스의 얼굴에는 불신의 표정이 역력한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사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믿음이 없으면, 그럴 경우에는 오랜 기간을 존속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참을성을 가지고 “아하스에게 좀더 일러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7:9, 10) 참으로 훌륭한 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왕국 소식에 신속한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여호와를 본받아 거듭거듭 방문하여 “좀더 일러” 주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아하스에게 계속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 하느님 여호와에게 표징을 구하여, 그것을 스올만큼 깊게 만들거나 높은 영역들만큼 높아지게 하여라.” (이사야 7:11) 아하스는 표징을 구할 수 있으며, 그러면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집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보증으로 표징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11. “하느님”이라는 여호와의 표현은 무엇을 보증해 주는 것입니까?

11 여호와께서 ‘하느님에게 표징을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참으로 친절하신 분입니다. 아하스는 이미 거짓 신들을 숭배하며 이교의 혐오스러운 관습들을 따르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열왕 둘째 16:3, 4) 그에 더하여 아하스가 두려움에 찬 태도를 나타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여전히 자신을 아하스의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이러한 점은 우리에게, 여호와께서는 성급하게 사람을 배척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 줍니다. 여호와께서는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나 믿음이 약해진 사람에게 기꺼이 도움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이러한 보증으로 인해 아하스는 감동을 받아 여호와의 도움의 손을 붙잡을 것입니까?

의심이 불순종으로 발전하다

12. (ㄱ) 아하스는 어떤 거만한 태도를 나타냅니까? (ㄴ) 아하스는 여호와께로 향하지 않고 누구에게로 가서 도움을 청합니까?

12 아하스는 다음과 같이 반항적으로 대답합니다. “저는 구하지도 않고, 여호와를 시험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사야 7:12) 아하스는 지금 율법에 나와 있는 이러한 말씀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하느님 여호와를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신명 6:16) 여러 세기 후에, 예수께서는 사탄의 유혹을 받을 때 이 동일한 율법을 인용하여 말씀하십니다. (마태 4:7) 하지만 아하스의 경우,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참 숭배로 돌아오라고 권유하고 계시며, 표징을 보이시어 그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시겠다고 제안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지만 아하스는 다른 곳에 가서 보호를 구하는 쪽을 택합니다. 이 왕이 막대한 금액의 돈을 아시리아에 보내어 북쪽의 적들에 대항할 수 있는 도움을 구하는 것은 아마 이때인 것 같습니다. (열왕 둘째 16:7, 8) 한편, 시리아와 이스라엘 동맹군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을 시작합니다.

13. 우리는 13절에서 어떤 변화가 생겼음을 보게 되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3 왕이 믿음이 부족한 생각을 나타내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것이 작은 일이라서, 나의 하느님도 지치게 하려 합니까?” (이사야 7:13) 그렇습니다. 그처럼 반항적인 태도를 계속 나타내면 여호와께서도 지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예언자가 지금 ‘여러분의 하느님’이라고 하지 않고 “나의 하느님”이라고 말하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참으로 불길한 변화입니다! 아하스는 여호와를 배척하고 아시리아로 향함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하여 성경에 근거한 믿음을 타협함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희생하는 일을 결코 하지 않도록 합시다.

임마누엘의 표징

14.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다윗과 맺으신 계약에 충실함을 나타내십니까?

14 여호와께서는 다윗과 맺으신 계약에 계속 충실함을 나타내십니다. 표징에 대한 제안을 하셨으므로,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이사야는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겠고, 틀림없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는 악을 거절하고 선을 택할 줄 알게 될 때는 버터와 꿀을 먹고 있을 것입니다. 그 아이가 악을 거절하고 선을 택할 줄 알게 되기 전에, 당신이 몹시 무서워하는 두 왕의 땅은 완전히 버려질 것입니다.”—이사야 7:14-16.

15. 임마누엘에 관한 이 예언은 어떤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해 줍니까?

15 이것은 침략자들이 다윗 왕조를 멸망시키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를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유다와 함께 계시며, 다윗과 맺으신 자신의 계약이 무효케 되게 내버려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하스와 그의 백성은 여호와께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가에 관한 것뿐 아니라 그 일을 언제 하실 것인가에 관해서도 듣고 있습니다. 적국들은 아이 임마누엘이 선과 악을 구별할 나이가 되기 전에 멸망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대로 됩니다!

16. 여호와께서는 아마 무슨 이유에서 아하스 시대의 임마누엘이 누구인지 분명히 밝히시지 않은 것 같습니까?

16 성서는 임마누엘이 누구의 아이인지 밝혀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린 임마누엘이 표징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과 후에 이사야가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이 ‘표징으로 있다’고 말하는 점으로 보아서, 임마누엘은 이 예언자의 아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사야 8:18) 여호와께서 아하스 시대의 임마누엘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으시는 것은 아마도 후세대들이 더 큰 임마누엘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 같습니다. 더 큰 임마누엘은 누구입니까?

17. (ㄱ) 더 큰 임마누엘은 누구이며, 그의 출생에는 무슨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까? (ㄴ) 하느님의 백성이 오늘날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외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성서에서 이사야서 이외에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곳은 딱 한 군데, 마태 1:23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마태에게 영감을 주시어, 임마누엘의 출생에 관한 예언을 다윗 왕좌의 합법적인 상속자인 예수의 출생에 적용하게 하셨습니다. (마태 1:18-23) 첫 번째 임마누엘의 출생은 하느님께서 다윗의 집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표징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더 큰 임마누엘인 예수의 출생도 하느님께서 인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또는 다윗의 집과 맺으신 왕국 계약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표징이었습니다. (누가 1:31-33) 이제 여호와의 수석 대표자가 인류 가운데 있으므로, 마태는 참으로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예수께서 하늘의 왕으로 통치하고 계시며, 지상에 있는 자신의 회중과 함께 계십니다. (마태 28:20) 확실히,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담대하게 외칠 만한 이유가 더 많아졌습니다!

불충실함으로 인한 심각한 결과

18. (ㄱ) 이사야가 그 다음에 하는 말이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머지않아 사태가 어떻게 역전될 것입니까?

18 이사야가 방금 전에 한 말은 위로가 되는 말이지만, 그 다음에 하는 말은 듣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 곁에서 떠난 날 이후로 닥친 적이 없는 날을 당신과 당신의 백성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에 끌어들이시리니, 곧 아시리아 왕을 끌어들이실 것입니다.” (이사야 7:17) 그렇습니다. 재난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것은 아시리아 왕의 손에 당할 재난입니다. 잔인하기로 악명 높은 아시리아 사람들에게 지배당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아하스와 그의 백성은 수많은 밤을 잠 못 이루고 지새우게 될 것입니다. 아하스는 아시리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놓으면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추리하였습니다. 아시리아 왕은 실제로 아하스의 요청에 응하여 마침내 이스라엘과 시리아를 공격할 것입니다. (열왕 둘째 16:9) 필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베가와 르신은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 공격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시리아와 이스라엘 동맹군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사야 7:1) 하지만 이제 이사야는 자기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보호자로서 바라보았던 바로 그 아시리아가 그들의 압제자가 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충격을 줍니다!—비교 잠언 29:25.

19. 이 역사적 드라마에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어떤 경고가 담겨 있습니까?

19 이 참된 역사 기록에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경고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압력을 받으면 그리스도인 원칙을 타협하고 싶은 유혹을 받아, 여호와께서 보호해 주신다고 해도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이사야가 뒤이어 하는 말을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듯이, 근시안적인 행동이며 심지어 자살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예언자는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인해 그 땅과 그 백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계속 알려 줍니다.

20. “파리들”과 “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무슨 일을 할 것입니까?

20 이사야는 네 부분으로 나누어 선포하는데, 각 부분마다 “그 날에”—즉 아시리아가 유다를 공격하는 날에—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는 정녕 여호와께서 휘파람을 부셔서, 이집트의 나일 운하 끝에 있는 파리들을 부르시며 아시리아 땅에 있는 벌들을 부르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들이 틀림없이 모두 와서, 깊고 험한 급류 골짜기와 바위 틈과 모든 가시덤불과 물 있는 모든 곳에 내려앉을 것입니다.” (이사야 7:18, 19) 이집트 군대와 아시리아 군대는 파리 떼와 벌 떼처럼 약속의 땅에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공격에 불과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파리들”과 “벌들”이 그 땅 구석구석으로 떼지어 몰려와서 내려앉을 것입니다.

21. 아시리아 왕은 어떤 면에서 면도칼과 같을 것입니까?

21 이사야는 계속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 날에, ‘강’ 지역에서 빌린 면도칼 곧 아시리아 왕을 시켜서, 여호와께서 머리와 발의 털을 미시리니, 그것이 수염도 말끔히 없애 버릴 것입니다.” (이사야 7:20) 이번에는 가장 위협이 되는 나라 아시리아만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하스는 아시리아 왕의 힘을 빌려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밀어’ 버립니다. 그런데 이 유프라테스 강 지역에서 “빌린 면도칼”이 유다의 “머리”로도 지나가면서 그것을 말끔히 밀어 버릴 것이며, 심지어 수염까지도 없애 버릴 것입니다!

22. 이사야는 어떤 예들을 사용하여 아시리아의 임박한 침공의 결과를 보여 줍니까?

22 그 결과 어떤 일이 있을 것입니까? “그 날에는 정녕 한 사람이 소 떼 중 어린 암소 하나와 양 두 마리를 살려 둘 것입니다. 나오는 젖이 많아서, 그는 버터를 먹을 것입니다. 그 땅 가운데 남아 있는 자는 누구나 버터와 꿀을 먹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7:21, 22) 아시리아 군대가 그 땅을 ‘밀어’ 버렸을 때쯤에는, 남아 있는 사람이 워낙 적어서 식품을 공급하는 데 필요한 동물도 소수에 불과할 것입니다. “버터와 꿀”은 먹게 되겠지만, 그 밖에 다른 것, 포도주니 빵이니 하는 그 밖의 주식은 일체 먹지 못할 것입니다. 황폐된 정도를 강조하기라도 하듯, 이사야는 세 번이나, 한때는 가치 있고 생산적이었던 땅에 이제는 가시덤불과 잡초가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시골 지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숲 속에 숨어 있는 야생 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화살과 활”을 가지고 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개간되어 있던 밭은 소나 양이 짓밟는 땅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 7:23-25) 이 예언은 바로 아하스 시대에 성취되기 시작합니다.—역대 둘째 28:20.

명확한 예언

23. (ㄱ) 이사야는 이제 어떻게 하라는 명령을 받습니까? (ㄴ) 판의 표징은 어떻게 확증됩니까?

23 이사야는 이제 당면해 있는 상황으로 돌아갑니다. 예루살렘이 아직도 시리아와 이스라엘 연합군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을 때 이사야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큰 판을 가지고 와서, 그 위에 멸성인 사람의 첨필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써라. 그러면 내가 충실한 증인들인 제사장 우리아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시켜서 자신을 위하여 증명할 것이다.’” (이사야 8:1, 2)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이름은 “오 전리품이여, 서둘러라! 그가 노획물을 가지러 신속히 왔다”라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그 지역 사회에서 존경받는 두 사람에게 자기가 큰 판 위에 그 이름을 썼다는 사실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여, 그 사람들이 이후에 언제든지 그 기록의 신빙성을 확증해 줄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데 이 표징을 확증해 줄 두 번째 표징이 있습니다.

24. 마헬-살랄-하스-바스의 표징은 유다 백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합니까?

24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다음 나는 여예언자를 가까이하였는데, 그가 임신하여 얼마 후 아들을 낳았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불러라. 이 아이가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를 줄 알기 전에, 누군가가 다마스쿠스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전리품을 아시리아 왕 앞에 가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 8:3, 4) 큰 판과 갓난아기 모두, 아시리아가 머지않아 유다의 압제국들인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노획할 것이라는 표징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얼마나 빨리 있을 것입니까? 대부분의 아기들이 맨 처음 배우는 말인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말을 그 아이가 할 수 있기 전에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명확한 예언이라면 여호와에 대한 백성의 신뢰심이 증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사야와 그의 아들들은 오히려 그 예언으로 인해 일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수 있습니다. 어느 경우이든, 이사야가 전하는 예언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열왕 둘째 17:1-6.

25. 이사야 시대와 오늘날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들이 있습니까?

25 그리스도인들은 이사야의 반복적인 경고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이 드라마에서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영하고 이사야의 아들들은 예수의 기름부음받은 제자들을 전영한다는 점을 밝혀 주었습니다. (히브리 2:10-13) 예수께서는 지상의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을 통해서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위급한 때에 “깨어 있”을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켜 오셨습니다. (누가 21:34-36) 한편, 회개하지 않는 반대자들은 멸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를 받는데, 그러한 경고는 종종 비웃음을 당합니다. (베드로 둘째 3:3, 4) 이사야 시대에 시간과 관련 있는 예언들이 성취된 것은, 우리 시대를 위한 하느님의 시간표도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며] ·⁠·⁠· 늦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이 됩니다.—하박국 2:3.

황폐시키는 “물”

26, 27. (ㄱ) 이사야는 어떤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합니까? (ㄴ) 이사야의 말은 오늘날 여호와의 종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26 이사야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경고를 발합니다. “이 백성이 잔잔히 흘러가는 실로아 물을 배척하였고,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에 대하여 환희가 있으니, 그러므로 보라! 여호와가 저 ‘강’의 위력 있고 많은 물, 곧 아시리아 왕과 그의 모든 영광을 끌어올려 그들을 치게 하겠다. 그러면 그가 틀림없이 그 모든 하천 바닥 위로 올라오고 그 모든 둑 위로 넘어가서 유다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 그가 참으로 범람하여 지나갈 것이다. 그가 목에까지 미칠 것이다. 그리고 임마누엘아! 그의 날개가 펼쳐져 네 땅의 너비를 가득 채울 것이다.”—이사야 8:5-8.

27 “이 백성” 즉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여호와께서 다윗과 맺으신 계약을 배척합니다. (열왕 둘째 17:16-18) 그들에게는 그 계약이 예루살렘의 급수원인 졸졸 흐르는 실로아 물처럼 약해 보입니다. 그들은 유다와의 전쟁을 통해 환희를 느낍니다. 하지만 이처럼 멸시하는 태도가 처벌받지 않고 그냥 넘어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아시리아 군대가 시리아와 이스라엘에 “범람”하게 즉 그 나라들을 침략하여 황폐시키게 하실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는 머지않아 현 세상의 정치적인 부분이 거짓 종교의 영역에 범람하게 하실 것입니다. (계시 17:16; 비교 다니엘 9:26) 이사야는 이어서, 불어난 “물”이 ‘유다로 계속 나아가서’ 바로 “목에까지” 미칠 것이라고, 다시 말해서 유다의 머리(왕)가 통치하고 있는 예루살렘까지 미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에 거짓 종교의 정치적 처형자들도 여호와의 종들에게 밀어닥쳐 “목에까지” 올라와 그들을 에워쌀 것입니다. (에스겔 38:2, 10-16) 그 결과 어떤 일이 있을 것입니까? 이사야 시대에는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아시리아 군대가 그 도시의 성벽을 넘어 하느님의 백성을 휩쓸어가 버립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28. 적들의 온갖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유다에게 무엇을 확약하십니까?

28 이사야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너희 뭇 백성들[하느님의 계약 백성에게 적대적인 백성들]아, 해를 끼쳐라, 산산이 부서져라! 땅의 먼 곳에 있는 너희 모든 자들아, 귀를 기울여라! 허리를 졸라매고 산산이 부서져라! 허리를 졸라매고 산산이 부서져라! 계교를 꾸며 보아라. 그것은 깨어져 버릴 것이다! 어떤 말이든 해 보아라. 그것은 서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이사야 8:9, 10) 여러 해 후, 아하스의 충실한 아들 히스기야 통치 때, 이 말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아시리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위협할 때 여호와의 천사가 아시리아 군인 18만 5000명을 쳐죽입니다. 확실히,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백성과 그리고 다윗 왕조와 함께 계십니다. (이사야 37:33-37) 그와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아마겟돈 전쟁 때에도 여호와께서는 더 큰 임마누엘을 보내시어, 그분의 적들을 산산이 부수어 버리실 뿐만 아니라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을 구해 주실 것입니다.—시 2:2, 9, 12.

29. (ㄱ) 아하스 시대의 유대인들은 히스기야 시대의 유대인들과 어떻게 다릅니까? (ㄴ) 오늘날 여호와의 종들이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동맹을 맺는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9 히스기야 시대의 유대인들과는 달리, 아하스와 동시대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부족합니다. 그들은 아시리아 사람들과 동맹을 맺어, 즉 그들과 “모의”를 하여, 그들을 시리아와 이스라엘 동맹군에 대한 보루로 삼기를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손”은 이사야를 자극하여 그가 “이 백성의 길” 즉 인기 있는 추세에 반대하는 말을 하게 하십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그것으로 인하여 떨어서도 안 된다. 만군의 여호와—그만을 거룩한 이로 대해야 하고, 그만이 너희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되어야 하며, 그만이 너희를 떨게 하는 이가 되어야 한다.” (이사야 8:11-13) 오늘날 여호와의 종들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종교 회의나 정치 동맹과 함께 모의를 꾸미거나 그런 것들에 신뢰를 두는 일을 경계합니다. 여호와의 종들은 하느님의 보호하시는 힘을 온전히 신뢰합니다. 사실, ‘여호와께서 우리 편이시니, 땅의 사람이 우리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시 118:6.

30.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운명을 당하게 될 것입니까?

30 이사야는 이어서 여호와께서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신성한 곳” 즉 보호처가 되어 주실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합니다. 그에 반해, 여호와를 배척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걸려 넘어지고 엎드러지고 깨어지며, 올무에 걸리고 잡힐 것”입니다. 박진감 넘치는 이 다섯 개의 동사(혹은 동사구)는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운명을 당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8:14, 15) 일세기에 예수를 배척한 사람들도 그처럼 걸려 넘어지고 엎드러졌습니다. (누가 20:17, 18) 즉위하신 하늘의 왕 예수에게 충성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오늘날 그와 비슷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시 2:5-9.

31. 오늘날 참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이사야의 모범과 그의 가르침에 귀기울이는 사람들의 모범을 따를 수 있습니까?

31 이사야 시대에 모두가 다 걸려 넘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증명하는 것을 둘둘 말고, 나의 제자들 가운데서 율법에 대하여 봉인하여라! 나는 야곱의 집에게서 얼굴을 감추고 계신 여호와를 계속 기다리며, 그분에게 희망을 두겠다.” (이사야 8:16, 17) 이사야는 물론이고 그의 가르침에 유의하는 사람들도 하느님의 율법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태만한 동족이 여호와를 신뢰하려 하지 않고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에게서 얼굴을 감추시게 한다 해도, 그들은 계속해서 여호와를 신뢰합니다. 우리도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들의 모범을 따르며, 순결한 숭배에 고착하겠다는 동일한 결심을 하도록 합시다!—다니엘 12:4, 9; 마태 24:45; 비교 히브리 6:11, 12.

“표징”과 “기적”

32. (ㄱ) 오늘날 누가 “표징과 기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두드러져 보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2 이사야는 이제 이렇게 선포합니다. “보라! 나와 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은 시온 산에 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로부터 보내져 이스라엘 중에 표징과 기적으로 있다.” (이사야 8:18) 그렇습니다. 이사야와 스알-야숩과 마헬-살랄-하스-바스는 유다를 위해 여호와께서 세우신 목적들의 표징입니다. 오늘날, 예수와 그분의 기름부음받은 형제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표징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2:11-13) 그리고 “다른 양들”의 “큰 무리”가 그들의 활동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계시 7:9, 14; 요한 10:16) 물론, 표징은 주위에 있는 것들보다 더 두드러져 보일 때만 가치가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여호와를 온전히 신뢰하고 담대하게 그분의 목적을 선포함으로 이 세상과 두드러지게 다르게 보일 때만 표징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33. (ㄱ) 참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결의에 차 있습니까? (ㄴ) 참 그리스도인들이 굳건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3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세상의 표준이 아니라 하느님의 표준을 지키도록 합시다. 더 큰 이사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다음과 같은 임명을 수행해 나아감으로 두려움 없이 계속해서—표징으로서—두드러져 보이도록 합시다. “선의의 해와 우리 하느님의 복수의 날을 공포하[라].” (이사야 61:1, 2; 누가 4:17-21) 그렇습니다. 아시리아의 범람하는 물이 이 땅을 휩쓸고 지나갈 때—그것이 우리의 목에까지 미친다 해도—참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쓸려 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우리는 굳건하게 서 있을 것입니다.

[각주]

^ 9항 이 예언의 성취에 관해 더 자세히 알기 원한다면, 뉴욕 법인 워치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서 발행한 「성경 통찰」(Insight on the Scriptures) 제1권 62면과 758면 참조.

^ 27항 아시리아는 또한 그 펼쳐진 날개가 ‘네 땅의 너비를 가득 채우는’ 새에 비해지고 있다. 따라서 그 땅이 어디까지 뻗쳐 있든, 아시리아 군대가 그 땅을 뒤덮을 것이다.

[연구 질문]

[103면 삽화]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여호와의 소식을 전할 때 스알-야숩을 데리고 갔다

[111면 삽화]

이사야가 큰 판에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쓴 이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