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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들을 위한 빛

나라들을 위한 빛

제28장

나라들을 위한 빛

이사야 66:15-24

1, 2. 빛이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오늘날 어떤 종류의 어둠이 땅을 덮고 있습니까?

여호와는 빛의 근원, “낮의 빛을 위하여 해를, 밤의 빛을 위하여 달과 별들의 법규들을 주신 분”입니다. (예레미야 31:35) 이 한 가지 근거만으로도, 그분은 당연히 생명의 근원으로 인정받으셔야 할 분입니다. 빛은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땅이 해의 온기와 빛을 계속 쐬지 않는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은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구는 생명체가 거할 수 없는 곳이 될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 시대를 내다보시고서 빛이 아니라 어둠의 시대라고 예언하신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관심사가 됩니다. 이사야는 영감을 받아 이렇게 썼습니다.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흑암이 나라들을 덮을 것이다.” (이사야 60:2) 물론, 이 말은 문자적인 어둠이 아니라 영적 어둠과 관련 있는 것이었지만, 그 심각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햇빛을 받지 못하는 자들이 생명을 누릴 수 없는 것처럼, 영적 빛을 받지 못하는 자들도 결국은 생명을 누릴 수 없습니다.

3. 이 어둠의 시대에 우리는 빛을 받기 위하여 어디로 향할 수 있습니까?

3 이 어둠의 시대에,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가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시는 영적 빛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길을 밝히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바라보고, 가능한 대로 성서를 매일 읽는 것은 필수적인 일입니다. (시 119:105) 그리스도인 집회는 우리에게 “의로운 자들의 길”에 머무르도록 서로 격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잠언 4:18; 히브리 10:23-25) 부지런한 성서 연구와 건전한 그리스도인 교제로부터 우리가 얻는 힘은, “여호와의 분노의 [큰] 날”로 절정에 이르게 될 이 “마지막 날”의 어둠에 삼켜지지 않는 데 도움이 됩니다. (디모데 둘째 3:1; 스바냐 2:3) 여호와의 분노의 큰 날은 속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은, 고대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그와 같은 날이 닥쳤던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닥쳐올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논쟁을 벌이시다’

4, 5. (ㄱ) 여호와께서 어떻게 예루살렘을 치러 오십니까? (ㄴ) 기원전 607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을 살아남을 사람이 비교적 소수밖에 안 될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각주 참조)

4 이사야의 감격적인 예언의 마지막 구절들에서,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분노의 날로 인도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생생하게 묘사하십니다. 이러한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불처럼 오시고, 그분의 병거들은 폭풍과 같으니, 이는 그분이 분노하시어 격노로 갚으시고 꾸짖으시어 불꽃으로 갚으시려는 것이다. 불처럼 여호와께서 자신의 칼로 모든 육체와 논쟁을 벌이시리니, 여호와께 죽임을 당하는 자가 틀림없이 많을 것이다.”—이사야 66:15, 16.

5 이 말은 이사야와 동시대의 사람들이 그들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여호와의 집행관으로서 예루살렘을 치러 오고 그들의 병거들이 폭풍처럼 먼지를 뽀얗게 일으킬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참으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침공자들을 사용하여 모든 불충실한 유대인 “육체”에 대하여 불 같은 심판을 집행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여호와께서 친히 자신의 백성과 싸우시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분의 “격노”는 돌이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여호와께 죽임을 당하는 자”처럼 쓰러질 것입니다. 기원전 607년에 이 예언은 성취됩니다. *

6. 질책받아 마땅한 어떤 행위들이 유다에서 행해지고 있습니까?

6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과 ‘논쟁을 벌이시는’ 것이 정당합니까? 물론입니다! 이사야서를 논의하면서 우리는 여러 번, 유대인들이 여호와께 헌신했다고 하면서도 거짓 숭배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을 보았으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행동을 못 보셨을 리 없습니다. 예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로 볼 때 우리는 그 점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중앙에 있는 자의 뒤에서 동산을 위하여 스스로를 성별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며, 돼지고기와 혐오스러운 것, 뛰는쥐를 먹는 자들, 그들은 다 함께 끝에 를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이사야 66:17) 이 유대인들은 순결한 숭배를 위해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를 성별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특별히 만든 동산에서 이교의 정화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들은 돼지고기를 비롯하여 모세의 율법에서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는 동물들의 고기를 탐욕스럽게 먹습니다.—레위 11:7, 21-23.

7. 그리스도교국은 어떤 면에서 우상 숭배를 하는 유다와 비슷합니까?

7 오직 한 분의 참 하느님과 계약 관계에 있는 나라의 상태치곤 참으로 혐오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종교들 가운데도 그에 못지 않은 혐오스러운 상황이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종교들도 유다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섬긴다고 주장하며, 그 지도자들 다수도 경건한 척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교의 가르침과 전통으로 자신들을 더럽혀, 스스로 영적 어둠 가운데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합니까!—마태 6:23; 요한 3:19, 20.

‘그들이 나의 영광을 볼 것이다’

8. (ㄱ) 유다와 그리스도교국에게는 각기 어떤 일이 닥칠 것입니까? (ㄴ) 나라들은 어떤 의미로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까?

8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교국의 질책받아 마땅한 행위들과 거짓 가르침들을 주목하고 계십니까? 이사야가 기록한, 여호와께서 하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어 보고 나서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지 판단해 보십시오. “그들의 행위와 생각과 관련하여, 내가 모든 나라들과 언어들을 함께 모으러 오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다.” (이사야 66:18)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종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행위뿐만 아니라 생각까지도 알고 계시며, 그것들을 심판할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유다는 여호와를 믿는다고 공언하지만, 유다의 우상 숭배 행위와 이교 관습들은 그러한 주장이 거짓임을 드러냅니다. 유다의 주민들이 이교 의식에 따라 자신을 “정화”하는 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입니다. 그 나라는 황폐될 것이고,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러한 모습이 우상 숭배를 하는 이웃 나라들의 눈앞에 훤히 드러날 것입니다. 이 나라들은 그러한 일들을 목격하게 되어 여호와의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면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교국에게는 어떻게 적용됩니까? 그리스도교국이 끝을 맞게 될 때, 그리스도교국의 이전 벗들 및 그리스도교국과 사업 거래를 하던 자들 중 다수는 여호와의 말씀이 성취될 때 옆에 서서 그냥 무력하게 지켜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예레미야 25:31-33; 계시 17:15-18; 18:9-19.

9. 여호와께서는 어떤 좋은 소식을 선포하십니까?

9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된 것은 여호와께서 더 이상 지상에 증인들을 두시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동무와 같은 훌륭한 충절 고수자들은 바빌론에 유배되어도 계속해서 여호와를 섬길 것입니다. (다니엘 1:6, 7)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충실한 증인들의 행렬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70년이 끝날 때 충실한 남녀들은 바빌론을 떠나 유다로 돌아가 그곳에 순결한 숭배를 회복시킬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다음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 표징을 세우고, 얼마의 피한 자들을 나라들에게, 다시스와 풀과 루드, 활을 당기는 자들, 두발과 야완, 먼 섬들, 곧 나에 대한 소문을 듣거나 나의 영광을 본 적이 없는 자들에게 보내리니, 그들은 나라들 가운데 나의 영광을 분명히 알릴 것이다.”—이사야 66:19.

10. (ㄱ) 바빌론에서 해방된 충실한 유대인들은 어떤 의미로 표징 역할을 할 것입니까? (ㄴ) 오늘날 누가 표징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10 기원전 537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충실한 남녀들의 무리는 놀라운 표징, 즉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구출하셨다는 증거 역할을 할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 있는 유대인들이 언젠가 자유롭게 되어 여호와의 성전에서 순결한 숭배를 추구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1세기에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표징과 기적” 역할을 한 것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며, 여호와를 섬기고 싶어하는 온유한 자들이 그들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이사야 8:18; 히브리 2:13) 오늘날 회복된 땅에서 번영을 누리고 있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땅에서 놀라운 표징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6:8) 그들은 여호와의 영의 힘에 대한 산 증거로서, 마음으로부터 여호와를 섬기고 싶어하는 온유한 자들의 주의를 끌고 있습니다.

11. (ㄱ) 회복이 있은 후에는, 이방 사람들이 어떻게 여호와에 대해 알게 될 것입니까? (ㄴ) 스가랴 8:23은 처음에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11 그러면 기원전 537년에 회복이 있은 후에는, 여호와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이방 사람들이 어떻게 여호와를 알게 될 것입니까? 바빌론에서의 포로 생활이 끝날 때 충실한 유대인들이 모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니엘과 같은 일부 사람들은 바빌론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땅 사방으로 흩어질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기원전 5세기쯤에는, 페르시아 제국 전역에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에스더 1:1; 3:8) 그들 가운데 일부는 틀림없이 이교를 믿는 이웃 사람들에게 여호와에 관해 말하였을 것입니다. 이교 나라 출신으로서 유대교 개종자가 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1세기에 그리스도의 제자 빌립이 전파한 에티오피아 환관도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사도 8:26-40) 예언자 스가랴가 한 말의 첫 번째 성취로서 이 모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날에는 나라들의 모든 언어에서 나온 사람 열 명이 유대인 한 사람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다. 그렇다. 그들이 잡으면서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겠다.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들었기 때문이다’ 할 것이다.” (스가랴 8:23)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나라들에 빛을 보내셨습니다!—시 43:3.

‘여호와께 예물’을 가지고 옴

12, 13. 기원전 537년부터 어떻게 “형제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는 일이 있을 것입니까?

12 예루살렘이 재건된 후에, 고토가 아닌 다른 곳에 널리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은 순결한 숭배의 중심지인 그 도시와 회복된 제사직을 바라볼 것입니다. 그들 중 다수는 그 도시에서 열리는 연례 축제들에 참석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올 것입니다. 이사야는 영감을 받아 이렇게 기록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자손이 깨끗한 그릇에 담긴 예물을 여호와의 집으로 가져올 때처럼, 그들은 실제로 모든 나라로부터 너희의 모든 형제들을 여호와께 바치는 예물로, 말과 병거와 덮개 있는 수레와 노새와 발이 빠른 암낙타에 태워 나의 거룩한 산 예루살렘으로 데려올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도 그들 가운데서 얼마를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로 삼을 것이다.’”—이사야 66:20, 21.

13 ‘모든 나라로부터 나온 형제들’ 가운데 일부가 예수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지던 오순절 날 참석해 있었습니다.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의 각 나라에서 온 경외심 있는 유대인들이 머물고 있었다.” (사도 2:5) 그들은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숭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을 듣자,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어 침례를 받았습니다.

14, 15. (ㄱ)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어떻게 자기들의 영적 “형제들”을 더 모아들였으며, 이들을 어떻게 “깨끗한 그릇에 담긴 예물”처럼 여호와께 데려왔습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얼마를 제사장들로 삼으’셨습니까? (ㄷ) 영적 형제들을 모아들이는 일에 참여한 일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였습니까? (위의 네모 참조)

14 이 예언은 현대에도 성취되고 있습니까? 물론, 성취되고 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로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종들은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왕국이 1914년에 하늘에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분별하였습니다. 주의 깊은 성서 연구를 통해 그들은 왕국 상속자들 즉 “형제들”이 추가로 모아지게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봉사자들은 온갖 운송 수단을 활용하여 “땅의 가장 먼 곳까지” 가서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이 될 사람들을 찾았는데, 그들 대부분은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찾아내자, 그들을 여호와께 바치는 예물처럼 데리고 왔습니다.—사도 1:8.

15 초기의 여러 해 동안 모아들인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자기들이 성서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갖기 전에 처했던 상태로는 여호와께서 자기들을 받아 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깨끗한 그릇에 담긴 예물”처럼, 혹은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순결한 처녀’처럼 바쳐질 수 있도록, 스스로 영적인 더러움과 도덕적인 더러움으로부터 깨끗해지기 위한 조처를 취하였습니다. (고린도 둘째 11:2)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교리적인 오류를 제거하는 것에 더해서, 이 세상의 정치적인 일에서 엄정 중립을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하였습니다. 1931년에, 여호와의 종들이 알맞은 정도로 깨끗해지자,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시게도 그분의 이름을 지니는 특권을 주셔서 그들이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불리게 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43:10-12) 그러면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얼마를 제사장들로 삼으’셨습니까? 한 무리를 이루는 이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왕 겸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의 일부가 되어 하느님께 찬양의 희생을 바쳤습니다.—베드로 첫째 2:9; 이사야 54:1; 히브리 13:15.

모아들이는 일이 계속되다

16, 17. 제1차 세계 대전 후에는 누가 “너희 자손”입니까?

16 이 “왕 겸 제사장들”의 온전한 수는 14만 4000명이며, 때가 되자 그들을 모아들이는 일은 완료되었습니다. (계시 7:1-8; 14:1) 그러면 모아들이는 일은 그것으로 끝났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내가 만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도 그렇게 계속 서 있을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이사야 66:22) 이 말씀의 첫 번째 성취에서, 바빌론의 포로 상태에서 돌아오는 유대인들은 자녀를 기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따라서 “새 하늘” 즉 유대인의 새 관리 체제 아래 있게 된 “새 땅” 즉 회복된 유대인 남은 자들은 굳게 세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예언은 우리 시대에 매우 놀랍게 성취되어 왔습니다.

17 영적 형제들의 나라가 산출하고 있는 “자손”은 땅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가지고 있는 “큰 무리”입니다. 그들은 “모든 나라와 부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와 “왕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습니다. 이들은 “‘어린 양’의 피에 자기들의 긴옷을 씻어 희게 하였습니다.” (계시 7:9-14; 22:17) 오늘날 “큰 무리”는 영적 어둠에서 나와 여호와께서 공급하시는 빛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며, 그들의 기름부음받은 형제 자매들처럼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깨끗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한 무리를 이루어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인도 아래 섬기고 있고, 영원토록 “계속 서 있을” 것입니다!—시 37:11, 29.

18. (ㄱ) 큰 무리의 성원들은 어떻게 기름부음받은 형제들처럼 행동해 왔습니까? (ㄴ) 기름부음받은 자들과 그들의 동료들은 어떻게 “신월마다, 안식일마다” 여호와를 숭배하고 있습니까?

18 땅의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는 이 남녀들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데는 더 많은 일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모아들이는 일이 한창 진행 중이며, 그들은 이 일에 참여하고 싶어합니다. 계시록에서는 그들에 관하여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왕좌 앞에 있으며, 그분의 성전에서 주야로 그분에게 신성한 봉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계시 7:15) 이 말은 이사야의 예언 가운데 맨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성구를 생각나게 해 줍니다. “‘틀림없이 신월마다, 안식일마다 모든 육체가 내 앞에 몸을 굽히러 올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이사야 66:23) 오늘날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동료인 큰 무리는 “신월마다, 안식일마다”—다시 말해서, 매달 매주 정기적으로—여호와를 숭배하기 위해 함께 모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방법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고 공개 봉사의 직무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당신도 정기적으로 ‘여호와 앞에 몸을 굽히러 오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까? 여호와의 백성은 그렇게 하는 데서 큰 기쁨을 얻고 있으며, 큰 무리에 속한 사람들은 “모든 육체”가—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영원무궁토록 “신월마다, 안식일마다” 여호와를 섬기게 될 때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적들의 최종적인 종말

19, 20. 성서 시대에 게헨나는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게헨나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9 이사야의 예언에 대한 연구도 이제 하나의 성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사야서는 이러한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나가서 내게 범법 행위를 하던 사람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다. 그것들에게 붙은 벌레들이 죽지 않고 그 불이 꺼지지 않으리니, 그것들이 모든 육체에게 역겨운 것이 될 것이다.” (이사야 66:2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생활을 단순하게 하고 왕국 권익을 첫째 자리에 두라고 격려하셨을 때 아마 이 예언을 염두에 두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당신의 눈이 당신을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내던지십시오. 두 눈을 가지고 게헨나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 눈으로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당신에게 더 낫습니다. 거기에서는 그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마가 9:47, 48; 마태 5:29, 30; 6:33.

20 게헨나라고 불리는 이 장소는 어떤 곳입니까? 여러 세기 전에 유대인 학자 다비드 킴히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곳은 예루살렘에 인접해 있는 ·⁠·⁠· 혐오스러운 곳으로서, 사람들은 그곳에다 더러운 것들과 시체들을 버린다. 또한 그곳에는 더러운 것들과 시체들의 뼈를 태우기 위한 불이 항상 타고 있었다. 따라서 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을 가리켜 말할 때 비유적으로 게힌놈이라고 한다.” 이 유대인 학자가 암시하듯이, 쓰레기와 매장할 가치도 없다고 여겨진 자들의 시체를 처리하기 위한 곳으로 게헨나가 사용되었다면, 그러한 쓰레기를 제거하는 데는 불이 적절한 수단이었을 것입니다. 불에 타지 않은 것은 구더기들이 없애 버렸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든 적들이 맞을 최종적인 종말에 대한 참으로 적절한 묘사입니다! *

21. 이사야서를 끝맺는 어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들리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1 이처럼 시체니 불이니 벌레니 하는 것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사야의 감격적인 예언은 섬뜩한 어조로 끝을 맺는다는 말이 맞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적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벗들에게는, 악한 자들의 영원한 멸망에 대한 이사야의 묘사가 대단히 격려가 됩니다. 여호와의 백성에게는 자기들의 적들이 다시는 결코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러한 보증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숭배자들에게 그렇게도 많은 고난을 초래해 왔고 그분의 이름에 그렇게도 많은 치욕을 돌려 온 그 적들은 영원히 멸망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고난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나훔 1:9.

22, 23. (ㄱ) 이사야서 연구를 통해 어떤 유익을 얻었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ㄴ) 이사야서 연구를 마친 지금, 당신은 어떤 결심을 하였으며, 당신에게는 어떤 희망이 있습니까?

22 이사야서 연구를 끝내면서 우리는 성서의 이 책이 죽은 역사 책이 아니라는 분명한 인식을 갖게 됩니다. 이 책은 오히려 오늘날 우리를 위한 소식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사야가 살았던 어두운 시대를 숙고해 볼 때, 우리는 그 시대가 우리 시대와 여러 가지 면으로 비슷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정치적 불안과 종교적 위선과 사법적 부패와 충실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압제가 이사야 시대의 특징이었으며, 그것은 우리 시대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충실한 유대인들은 틀림없이 이사야의 예언에 대해 고마워하였을 것이며, 오늘날 우리도 그 예언을 연구할 때 위로를 얻습니다.

23 어둠이 땅을 덮고 있고 흑암이 나라들을 덮고 있는 이 위급한 때에, 우리 모두는 여호와께서 이사야를 통해 온 인류를 위한 빛을 공급하여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그 영적인 빛은, 국적이나 인종적 배경에 상관없이, 마음을 다하여 그 빛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사실상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사도 10:34, 35)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하고 거기에 담긴 소식을 소중히 여김으로, 하느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서 계속 걷도록 합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될 것이고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에 찬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각주]

^ 5항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 사람들에게 함락되고 난 후의 상황과 관련하여, 예레미야 52:15에서는 “백성의 낮은 사람들 중 일부와 그 도시에 남아 있던 나머지 백성”에 관하여 언급한다. 「성경 통찰」(Insight on the Scriptures) 제1권 415면에서는 이에 관해 해설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 도시에 남아 있던’이라는 표현은 많은 사람들이 기근이나 질병이나 화재로 죽었든지 아니면 전쟁에서 살해당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 20항 게헨나에서 소각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죽은 시체들이므로, 이곳은 영원한 고초를 상징하는 곳이 될 수 없다.

[연구 질문]

[409면 네모]

모든 나라에서 나온 여호와를 위한 기름부음받은 예물

1920년에 후안 무니스는 미국을 떠나 스페인으로 갔고, 그 후 아르헨티나로 가서 기름부음받은 자들로 이루어진 회중들을 조직하였다. 1923년 이후로, 진리의 빛은 서아프리카에 사는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 위에도 비쳤는데, 그때 선교인인 윌리엄 R. 브라운(흔히 바이블 브라운이라고 불리었음)은 시에라리온, 가나, 라이베리아, 감비아, 나이지리아 등지에 왕국 소식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그 동일한 해에, 캐나다 사람인 조지 영은 브라질로 갔고, 그 후 아르헨티나, 코스타리카, 파나마, 베네수엘라, 그리고 심지어 소련에까지 갔다. 바로 이 무렵, 에드윈 스키너는 영국에서 배를 타고 인도로 가, 수확하는 일을 위해 여러 해 동안 수고하였다.

[411면 삽화]

오순절에 참석한 일부 유대인들은 ‘모든 나라로부터 데려온 형제들’이었다

[413면 전면 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