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자신의 메시아 종을 높이시다
제14장
여호와께서 자신의 메시아 종을 높이시다
1, 2. (ㄱ) 기원 1세기 초에 많은 유대인들이 처했던 상황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십시오. (ㄴ) 여호와께서는 충실한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어떤 마련을 하셨습니까?
당신이 요직에 있는 한 고관과 만나기로 되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만날 시간과 장소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당신은 그 고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며, 그 고관은 요란스럽게 광고하지도 않고 눈에 띄지 않게 올 것입니다. 당신은 그 사람을 어떻게 식별할 것입니까? 그 사람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 것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2 기원 1세기 초에 많은 유대인들도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니엘 9:24-27; 누가 3:15) 하지만 충실한 유대인들이 그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었습니까? 여호와께서 히브리 예언자들을 통해 메시아와 관련 있는 일들을 기록으로 자세히 묘사해 놓으셨기 때문에, 분별 있는 사람들은 그를 틀림없이 식별해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3. 이사야 52:13–53:12에는 메시아에 관한 어떤 묘사가 실려 있습니까?
3 메시아에 관한 히브리어 예언 가운데, 이사야 52:13–53:12에 기록된 것보다 더 분명한 묘사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700여 년 앞서, 메시아의 외모가 아니라 더 중요한 세부점들—메시아가 고난을 당하는 목적과 방법, 그리고 메시아의 죽음, 매장, 높여짐과 관련된 세부점—을 묘사해 놓았습니다. 이 예언과 그 성취를 고려해 보면 우리의 가슴이 뭉클해지고 믿음이 강화될 것입니다.
“나의 종”—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4. “종”이 누구인지에 대해 일부 유대인 학자들은 어떤 의견들을 제시하였으며, 하지만 그런 의견들이 이사야의 예언과 부합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이사야는 방금 전에 유대인들이 바빌론의 유배 생활에서 해방될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제 그는 훨씬 더 큰 일을 내다보고, 여호와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보라! 나의 종은 통찰력을 가지고 행동할 것이다. 그는 높은 지위에 있게 되고 틀림없이 받들어져 크게 높여질 것이다.” (이사야 52:13) 이 “종”은 정확히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여러 세기 동안, 유대인 학자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그 종은 바빌론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의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상징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설명은 예언과 부합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종은 자진해서 고난을 당합니다. 자신은 무고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 점은 죄 많은 행로 때문에 유배당하게 된 유대 나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열왕 둘째 21:11-15; 예레미야 25:8-11) 그런가 하면, 그 종은 이스라엘의 독실한 엘리트들을 상징하고 그 사람들이 죄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고난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한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하던 시기에, 어느 특정 집단도 다른 집단을 위해 고난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5. (ㄱ) 일부 유대인 학자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어떻게 적용하였습니까? (각주 참조) (ㄴ) 성서 사도행전에서는 그 종이 누구인지를 어떻게 분명히 밝혀 줍니까?
5 그리스도교가 생기기 전에, 그리고 통용 기원 초기의 몇 세기 동안, 몇몇 유대인 학자들은 이 예언을 실제로 메시아에게 적용하였습니다. 그것이 정확한 적용이었음을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에티오피아 환관이 이사야의 예언에 나오는 종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빌립이 “예수에 관한 좋은 소식을 그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사도 8:26-40; 이사야 53:7, ) 그와 마찬가지로, 성서의 다른 책들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이사야의 예언에 나오는 메시아 종이라고 밝혀 줍니다. 8 * 이 예언을 논의해 나감에 따라, 여호와께서 “나의 종”이라고 부르시는 분과 나사렛 예수 사이에 부인할 수 없는 유사점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6. 이사야의 예언은 메시아가 하느님의 뜻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이라는 점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6 그 예언은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는 면에서 메시아가 거두는 최종적인 성공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종”이라는 말은, 종이 주인의 뜻에 복종하듯이 메시아가 하느님의 뜻에 복종할 것임을 나타냅니다. 그렇게 복종하면서 메시아는 “통찰력을 가지고 행동할” 것입니다. 통찰력이란 상황을 꿰뚫어 보는 능력입니다. 통찰력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은 슬기롭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와 관련하여 한 참조 문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본질적으로 그 단어에는 신중하고 지혜롭게 처신한다는 사상이 들어 있다. 지혜롭게 처신하는 사람은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메시아가 참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점은, 예언에서 그가 “받들어져 크게 높여질” 것이라고 말한 점으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통찰력을 가지고 행동”하셨으며, 그분은 어떻게 ‘받들어져 크게 높여지’셨습니까?
7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적용되는 성서 예언들을 이해하고 계심을 나타내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 그 예언들의 인도를 받으심으로, “통찰력을 가지고 행동”하셨습니다. (요한 17:4; 19:30) 그 결과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예수께서 부활되어 하늘로 올라가시자,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탁월한 위치로 높이시어, 친절하시게도 그분에게 다른 모든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빌립보 2:9; 사도 2:34-36) 그리고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께서는 1914년에 한층 더 높여지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을 메시아 왕국의 왕좌로 높이셨습니다. (계시 12:1-5) 그렇습니다. 그분은 ‘받들어져 크게 높여지’셨습니다.
‘크게 놀라 그를 바라봄’
8, 9. 높여지신 예수께서 심판을 집행하러 오실 때, 땅의 통치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8 나라들과 그 통치자들은 높여지신 메시아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입니까? 14절의 하반절에 있는 삽입구를 잠깐 빼고 읽어 보면 예언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크게 놀라 그를 바라볼 정도로 ··· 그는 많은 나라들을 그와 같이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그를 보고 왕들은 입을 다물 것이다. 그들에게 상세히 이야기한 적이 없는 것을 그들이 실제로 볼 것이며, 그들이 들은 적이 없는 것을 그들이 고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 52:14ㄱ, 15) 이러한 말로 이사야는 메시아의 처음 모습이 아니라 메시아가 최종적으로 땅의 통치자들과 마주 대하게 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9 높여지신 예수께서 이 불경건한 사물의 제도에 심판을 집행하러 오실 때, 땅의 통치자들은 ‘크게 놀라 그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인간 통치자들은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를 문자적으로 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위한 하늘의 투사로서의 그분의 능력의 보이는 증거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태 24:30) 그들은 종교 지도자들이 상세히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실—예수께서 하느님의 심판 집행자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마주치게 될 높여지신 종은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행동하실 것입니다.
10, 11. 1세기에 예수의 모습이 어떤 식으로 흉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오늘날에는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이사야 52:14ㄴ) 예수께서는 어딘가 신체적으로 흉한 데가 있으셨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서에서는 예수께서 어떻게 생기셨는지 자세한 점을 알려 주지 않지만, 하느님의 완전한 아들은 틀림없이 보기 좋은 외모와 용모를 갖추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사야의 말은 예수께서 겪으신 굴욕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분은 자기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위선자들, 거짓말쟁이들, 살인자들이라고 담대하게 폭로하셨고, 그들은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그분을 욕하였습니다. (베드로 첫째 2:22, 23) 그들은 그분이 법을 어기는 자, 신성 모독자, 속이는 자, 로마에 대항하는 선동자라고 비난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거짓 비난자들은 예수의 모습을 아주 흉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10 14절의 삽입구에 의하면,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만큼 그의 용모가 다른 어떤 사람의 용모보다 흉하고 그의 위엄 있는 모습이 인간의 아들들의 모습보다 흉하였[다].” (11 예수의 모습을 그렇게 왜곡시키는 일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의 모습을 떠올릴 때 구유에 누인 어린 아기나 십자가에 못박혀 가시 면류관 밑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 불쌍한 모습을 연상합니다.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이 그러한 생각을 부추겨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나라들과 결산을 할 위력 있는 하늘의 왕으로 알려 주지 못하였습니다. 인간 통치자들은 높여지신 예수를 가까운 장래에 마주 대하게 될 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를 가지신 메시아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마태 28:18.
이 좋은 소식에 누가 믿음을 둘 것인가?
12. 이사야 53:1에 나오는 말을 들으면 어떤 흥미로운 질문들이 생기게 됩니까?
12 메시아의 놀라운 변화—‘흉한’ 모습에서 ‘크게 높여지신’ 모습으로—에 대해 묘사한 다음 이사야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우리가 들려 준 것에 누가 믿음을 두었습니까?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이사야 53:1) 이사야의 이 말을 들으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질문들이 생기게 됩니다. ‘이 예언은 성취될 것인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여호와의 능력을 상징하는 “여호와의 팔”이 나타나서 과연 이 예언을 성취시킬 것인가?’
(13. 바울은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에게 성취되었음을 어떻게 보여 주었으며, 그 시대에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13 그 대답은 의문의 여지 없이 ‘그렇다’입니다! 바울은 로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이사야가 들려주고 기록한 예언이 예수에게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신 후에 영광스럽게 되셨다는 것은 좋은 소식입니다. “그렇지만” 믿지 않는 유대인들과 관련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모두 좋은 소식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는 ‘여호와여, 우리에게서 들은 것에 누가 믿음을 두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듣는 것에서 생깁니다. 또한 듣는 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로마 10:16, 17)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바울 시대에 하느님의 종에 대한 좋은 소식에 믿음을 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4, 15. 메시아는 어떤 배경을 가지고 지상 무대에 등장하게 될 것입니까?
14 예언은 이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1절에 기록된 질문들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그 설명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도 밝혀 줍니다. “그는 [관찰자] 앞에서 순처럼 돋아나고, 물 없는 땅에서 나오는 뿌리처럼 돋아날 것입니다. 그에게는 위엄 있는 모습도 없고, 풍채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바랄 만한 용모가 없습니다.” (이사야 53:2) 여기서 우리는 메시아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지상 무대에 등장하게 될 것인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는 처음부터 낮은 신분을 갖게 될 것이며, 관찰자들에게는 전혀 대단한 인물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나무의 줄기나 가지에서 자라는 한낱 순 즉 연한 싹과 같을 것입니다. 또한 마르고 척박한 토양에서 물에 의존하는 뿌리와도 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처럼 화려한 치장이나 풍채를 하고—왕복을 입고 번쩍이는 왕관을 쓰고—나타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처음부터 비천하고 보잘것없을 것입니다.
15 이 예언은 인간 예수의 비천한 출발을 매우 잘 묘사하는 말입니다! 유대인 처녀 마리아는 예수를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작은 성읍의 마구간에서 낳았습니다. * (누가 2:7; 요한 7:42) 마리아와 그의 남편 요셉은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탄생한 지 40일쯤 후에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허용되는 속죄 제물, 즉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누가 2:24; 레위 12:6-8) 때가 되자, 마리아와 요셉은 나사렛에 정착하였는데,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식구가 많은 가정에서, 아마도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하셨을 것입니다.—마태 13:55, 56.
16. 예수에게는 “위엄 있는 모습”도 “풍채”도 없었다는 말이 어떻게 사실입니까?
16 인간으로서 예수는 알맞은 토양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요한 1:46; 7:41, 52) 그분은 완전한 인간이었고 다윗 왕의 후손이었지만, 비천한 환경 때문에 전혀 “위엄 있는 모습”이나 “풍채”를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적어도 메시아가 좀 더 인상적인 배경을 가지고 나타나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의 부추김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그분을 무시하고 심지어 업신여기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군중은 하느님의 완전한 아들에게서 호감이 가는 것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마태 27:11-26.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피하는 분’
17. (ㄱ) 이사야는 무엇에 대해 묘사하기 시작하며, 그가 과거 시제로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누가 예수를 “업신여기고 피하였으며”, 어떻게 그렇게 하였습니까?
17 이사야는 이제 메시아가 어떻게 여겨지고 어떤 대우를 받을 것인지를 이사야 53:3) 이사야는 자기의 말이 이루어질 것임을 확신하고, 자기의 말이 이미 성취되기나 한 것처럼 과거 시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업신여기고 피하였습니까? 정말로 그랬습니다! 독선적인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그분을 인간 중에서 가장 멸시받아 마땅한 자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세금 징수원들과 창녀들의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누가 7:34, 37-39) 그들은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주먹으로 치고 욕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비웃고 조롱하였습니다. (마태 26:67) 이 진리의 적들의 영향을 받은 예수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요한 1:10, 11.
자세하게 묘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피하였으며, 고통을 겪고 병에 익숙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사람이 우리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듯하였습니다. 그는 업신여김을 받았고, 우리는 그를 하찮게 여겼습니다.” (18. 예수께서는 결코 병이 드신 적이 없는데 어떻게 “고통을 겪고 병에 익숙해진 사람”이었습니까?
18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께서는 병이 드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고통을 겪고 병에 익숙해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고통과 병은 그분 자신이 겪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병이 만연한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고난과 고통에 둘러싸여 사셨지만, 그분은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병든 사람들을 회피하지 않으셨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의사처럼, 그분은 자기 주변 사람들이 겪는 고난에 매우 익숙해지셨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평범한 인간 의사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누가 5:27-32.
19. 누구의 얼굴이 ‘가려졌으며’, 예수의 적들은 ‘그분을 하찮게 여긴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냈습니까?
19 하지만 예수의 적들은 그분을 병든 자로 여겼고 그분을 호의적으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얼굴은 ‘가려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그분이 자기의 얼굴을 숨겼기 이사야 53:3을 번역하면서 “사람들이 눈을 돌리고 외면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예수의 반대자들은 그분이 대단히 반역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분이 너무 혐오스러워 쳐다볼 수 없는 존재이기나 한 것처럼 사실상 그분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가치가 종의 몸값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탈출 21:32; 마태 26:14-16) 그들은 살인자인 바라바보다도 그분을 덜 중히 여겼습니다. (누가 23:18-25) 그들이 예수를 낮게 평가한다는 점을 그 이상 더 어떻게 나타낼 수 있었겠습니까?
때문이 아닙니다. 「신 영어 성서」에서는20. 이사야의 예언은 오늘날 여호와의 백성에게 어떤 위로를 줍니까?
20 오늘날 여호와의 종들은 이사야의 예언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때때로 반대자들이 여호와의 충실한 숭배자들을 경멸하거나 그들을 하찮은 존재처럼 대할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의 경우에 그러하였던 것처럼, 참으로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예수를 하찮게 여겼’다고 해서 그것이 하느님 앞에서 예수께서 가지고 계신 큰 가치까지 변경시키지는 못하였음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범법 때문에 찔림’
21, 22. (ㄱ) 메시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지고 무엇을 당하였습니까? (ㄴ) 많은 사람들은 메시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였으며, 메시아의 고난은 무엇으로 절정에 달하게 되었습니까?
21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사야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진실로 그는 우리의 병을 지고, 우리의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재앙을 당하고 하느님께 맞아 괴로움을 당하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범법 때문이고, 그가 부서진 것은 우리의 잘못 때문입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한 징벌이 그에게 미쳤고, 그의 상처 때문에 우리에게 병 고침이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방황하였고, 각자 자기 이사야 53:4-6.
길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 그와 마주치게 하셨습니다.”—22 메시아는 다른 사람들의 병을 지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메시아는 그들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들어 올려 자기 어깨에 지고 날랐습니다. 그리고 병과 고통은 인류의 죄 많은 상태로 인한 결과이기 때문에, 메시아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벌을 주어 혐오스러운 병으로 재앙을 당하게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 메시아가 당하는 고난은 그가 찔리고 부서지고 상처를 입는 것으로 절정에 달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난폭하고 고통스러운 죽임을 당할 것을 의미하는 강력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속죄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과 죄 가운데 방황하는 사람들을 회복시켜 하느님과의 평화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근거가 됩니다.
23. 예수께서는 어떤 면으로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23 예수께서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마태복음에서는 이사야 53:4을 인용하여 이렇게 알려 줍니다. “사람들이 악귀 들린 사람들을 많이 그분에게 데려왔다. 그분은 말씀으로 영들을 쫓아내시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것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그분은 친히 우리의 병을 맡으시고 우리의 질병을 지셨다’고 말씀하신 것이 성취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마태 8:16, 17) 예수께서는 여러 가지 병에 걸려 자신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을 고쳐 주심으로, 사실상 그들의 고난을 자신이 맡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병 고침은 자신의 활력을 사용하여 행하신 것입니다. (누가 8:43-48) 신체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온갖 종류의 병을 고치실 수 있는 그분의 능력은, 그분이 사람들을 죄로부터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는 권능을 부여받았다는 점을 증명해 주었습니다.—마태 9:2-8.
24. (ㄱ) 많은 사람들에게는 예수께서 하느님에 의해 ‘재앙을 당하는’ 것처럼 보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4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예수께서 하느님에 의해 ‘재앙을 당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들의 선동으로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자기 자신의 죄로 인해 고난을 당하신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본을 남겨 자기의 발걸음을 밀접히 따르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무 죄도 짓지 않으셨으며, 또한 그분의 입에서는 속임수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친히 기둥에 달려 자기 몸으로 우리 죄를 지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끝나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분의 매맞은 상처로 여러분은 낫게 되었습니다.’” (베드로 첫째 2:21, 22, 24) 우리 모두는 한때 ‘길 잃은 양과 같이’ 죄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첫째 2:25)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예수를 통해서 우리가 죄 많은 상태에서 구속될 수 있는 마련을 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잘못이 예수와 “마주치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에게 맡겨지게 하셨습니다. 죄 없는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해 기꺼이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기둥에서 부당하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심으로 우리가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을 가능케 해 주셨습니다.
‘그는 괴롭힘을 당하였다’
25. 메시아가 기꺼이 고난과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25 메시아는 기꺼이 고난과 죽임을 당하였습니까? 이사야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는 심한 압박을 받고 괴롭힘을 당하였으나,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살당할 양처럼 끌려갔습니다. 털 깎는 이사야 53:7)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 밤에, 자기를 도와 달라고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부르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한 성경이 어떻게 성취되겠습니까?” (마태 26:53, 54) 오히려 “하느님의 ‘어린 양’”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한 1:29) 수제사장들과 연로자들이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거짓 고발할 때도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 27:11-14)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말을 일체 하기를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죽음이 순종하는 인류를 죄와 병과 죽음으로부터 구속할 것임을 아주 잘 아시는 예수께서는 희생 양처럼 기꺼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그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26. 예수의 반대자들은 어떤 면으로 “속박”을 가하였습니까?
26 이사야는 이제 메시아의 고난과 굴욕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 줍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속박과 재판 때문에 그가 빼앗김을 당하였습니다. 누가 그의 세대의 상세한 점들에 관심을 쏟겠습니까? 그는 산 자들의 땅에서 끊어졌습니다. 내 백성의 범법 때문에 그가 침을 당하였습니다.” (이사야 53:8) 예수께서 마침내 적들의 손에 넘겨졌을 때, 이 종교적 반대자들은 그분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속박”을 가하였습니다. 증오심을 표현하는 것을 억제하는 면으로가 아니라, 공의를 속박하는 면으로, 즉 공의를 행하기를 억제하는 면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리스어 「칠십인역」에서는 이사야 53:8을 번역하면서 “속박” 대신 “굴욕”이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적들은 일반 범죄자도 받을 권리가 있는 공평한 대우를 해 주지 않고 억제함으로써 예수가 굴욕을 당하게 하였습니다. 예수에 대한 재판은 공의를 모독하는 행위였습니다. 어떻게 그러하였습니까?
27.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에 대한 재판을 할 때 어떤 규칙들을 무시하였으며, 어떤 식으로 하느님의 법을 어겼습니까?
마태 26:57-68) 더욱 악한 일로서, 종교 지도자들은 이 사건을 다루면서 하느님의 법까지도 극악무도하게 어겼습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뇌물을 사용하였습니다. (신명 16:19; 누가 22:2-6) 그리고 거짓 증언자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탈출 20:16; 마가 14:55, 56) 또한 살인자를 놓아주려고 공모함으로써 그들 자신과 그들의 나라에 유혈죄가 있게 하였습니다. (민수 35:31-34; 신명 19:11-13; 누가 23:16-25) 따라서 “재판”, 즉 정확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한 공평한 재판 과정이 전혀 없었습니다.
27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제거하려고 결심하였기 때문에 그들 자신이 세운 규칙도 어겼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산헤드린은 사형을 내릴 수도 있는 중대한 사건을 재판할 때는 대제사장의 집에서가 아니라 돌을 깎아 만든, 성전 경내의 회의장에서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재판은 해가 진 뒤에가 아니라 낮에 열어야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형을 내릴 수도 있는 중대한 사건의 경우, 유죄 평결도 공판이 끝난 다음날 내려야 하였습니다. 따라서 안식일 전날 밤이나 축제 전날 밤에는 재판을 열 수 없었습니다. 예수에 대한 재판의 경우에는 이러한 규칙이 모두 무시되었습니다. (28. 예수의 적들은 무엇을 고려하지 않았습니까?
28 예수의 적들은 자기들 앞에 서서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조사를 하였습니까? 이사야도 그와 비슷한 질문을 합니다. “누가 그의 세대의 상세한 점들에 관심을 쏟겠습니까?” “세대”라는 말은 어떤 사람의 혈통 혹은 배경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산헤드린 앞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 산헤드린 성원들은 예수의 배경—예수가 약속된 메시아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킨 분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분이 신성을 모독한다고 비난하면서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가 14:64) 후에,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압력에 굴복하여 예수를 기둥에 못박으라는 선고를 내렸습니다. (누가 23:13-25) 따라서 예수께서는 겨우 33세 반의 나이에, 즉 자신의 생애의 중간에 “끊어졌습니다”.
29. 예수의 매장지가 어떻게 “악한 자들” 및 “부유층”과 함께 있게 되었습니까?
29 메시아의 죽음 및 매장과 관련하여 이사야는 이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폭력을 행하지도 않고 입에 속임수도 없었건만, 그는 그의 매장지가 악한 자들과 함께 있게 하고, 또 죽어서 부유층과 함께 있게 할 것입니다.” (이사야 53:9) 죽음 및 매장에 있어서 예수께서는 어떻게 악한 자들뿐만 아니라 부유층과도 함께 계셨습니까? 예수께서는 기원 33년 니산월 14일에 예루살렘 성 밖의 처형 기둥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두 행악자 사이에서 기둥에 못박히셨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그분의 매장지는 악한 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누가 23:33) 하지만 예수가 죽자, 아리마대 출신의 부자 요셉은 용기를 내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끌어내려 장사 지내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요셉은 니고데모와 함께 장사 지낼 준비를 한 다음, 새로 판 자기 소유의 무덤에 시체를 안치하였습니다. (마태 27:57-60; 요한 19:38-42) 따라서 예수의 매장지는 부유층과도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를 부서뜨리기를 기뻐하셨다’
30. 여호와께서는 어떤 면에서 예수를 부서뜨리기를 기뻐하셨습니까?
30 이사야는 이어서 매우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를 부서뜨리기를 기뻐하셔서, 그를 병들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그의 영혼을 죄과 제물이 되게 하신다면, 그는 자기 자손을 보며 자기 날이 길어지게 할 것입니다. 그의 손에서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것이 성공할 것입니다. 그의 영혼의 괴로움 때문에 그는 볼 것이며 만족할 것입니다. 의로운 자, 나의 종이 그 지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의로운 신분을 얻게 하며 그들의 잘못을 친히 담당할 것이다.” (이사야 53:10, 11) 여호와께서 어떻게 이 충실한 종이 부서지는 것을 보기를 기뻐하실 수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친히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예수의 적들이 예수에게 한 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잔인한 행동을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요한 19:11)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하셨습니까? 감정 이입과 부드러운 동정심을 가지신 하느님께서는 틀림없이 자신의 무고한 아들이 고난을 겪는 것을 보고 고통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이사야 63:9; 누가 1:77, 78) 여호와께서는 어떤 면으로도 예수에 대하여 불쾌하게 느끼신 적이 없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아들이 기꺼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있게 될 모든 축복 때문이었습니다.
31. (ㄱ)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예수의 영혼을 “죄과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까? (ㄴ)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온갖 괴로움을 겪으셨지만, 틀림없이 무엇 때문에 특히 만족하실 것입니까?
31 한 가지 축복은, 여호와께서 예수의 영혼을 “죄과 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 죄과 제물로 희생된 자신의 인간 생명의 가치를 가지고 여호와께서 계신 곳으로 들어갔고, 여호와께서는 모든 인류를 위해서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히브리 9:24; 10:5-14) 예수께서는 그 죄과 제물을 통해 “자손”을 얻으셨습니다. 그분은 “영원한 아버지”로서, 자신이 흘린 피에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 생명—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이사야 9:6) 예수께서는 인간 영혼으로 온갖 괴로움을 겪으셨지만,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 전망을 갖게 되어 틀림없이 매우 만족하실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충절로 인해 하늘의 아버지께서 적대자 사탄 마귀의 조롱에 대답하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틀림없이 한층 더 만족하실 것입니다!—잠언 27:11.
32. 예수께서는 무슨 “지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의로운 신분”을 얻게 해 주시며, 그러한 신분은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32 예수의 죽음을 통해 있게 된 또 다른 축복은, 그분이 “많은 사람들에게 의로운 신분”을 얻게 하신다는 것, 바로 지금도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분이 자신의 “지식으로” 그렇게 하신다고 히브리 4:15)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신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의로운 신분을 얻도록 돕는 데 필요한 희생을 제공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 의로운 신분은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먼저, 예수의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들이 예수의 희생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아들로 입양하여 예수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로 삼기 위해 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로마 5:19; 8:16, 17) 그 다음에는 “다른 양들”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흘리신 피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고 의로운 신분을 누리는데, 하느님의 벗이자 아마겟돈 생존자가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합니다.—계시 7:9; 16:14, 16; 요한 10:16; 야고보 2:23, 25.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인간이 되심으로 그리고 하느님께 순종하기 위해 부당하게 고난을 당하심으로 얻게 된 지식일 것입니다. (33, 34. (ㄱ) 우리는 여호와에 관하여 어떤 가슴 뭉클하게 하는 점을 배워 알게 됩니까? (ㄴ) 메시아 종은 어떤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한 몫”을 받게 됩니까?
33 마지막으로 이사야는 메시아의 승리를 묘사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에게도 한 몫을 나누어 줄 것이며, 강한 자들과 함께 그가 전리품을 나누어 가질 것이다.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쏟아 죽음에 이르게 하였고 범법자들 중 하나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이사야 53:12.
또 그가 친히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법자들을 위하여 중재하였기 때문이다.”—34 이사야의 예언의 이 부분을 끝맺는 말씀은 여호와에 관하여 가슴 뭉클하게 하는 점을 가르쳐 줍니다. 다시 말해서, 그분이 자신에게 충성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점은 메시아 종에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한 몫을 나누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리품을 나누어 가지는 관습에서 이끌어 내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욥과 같은 고대의 “많은” 충실한 사람들의 충성을 높이 평가하시고, 자신이 마련하신 다가오는 신세계에서 그들에게 주실 “한 몫”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히브리 11:13-16) 그와 마찬가지로, 그분은 자신의 메시아 종에게도 한 몫을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충절이 상을 받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역시,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내는 일과 사랑을 잊지’ 않으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히브리 6:10.
35. 예수께서 전리품을 나누어 가지시는 “강한 자들”은 누구이며, 전리품은 무엇입니까?
35 하느님의 종은 또한 적들에게 거둔 승리로 인해 전리품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는 이 전리품을 “강한 자들”과 함께 나누어 가질 것입니다. 예언 성취에서, “강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예수처럼 세상을 이긴 예수의 첫 제자들—“하느님의 이스라엘”에 속한 14만 4000명의 시민들—입니다. (갈라디아 6:16; 요한 16:33; 계시 3:21; 14:1) 그러면 전리품은 무엇입니까? 여기에는 비유적으로 말해서 예수께서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와 그리스도인 회중에 주시는 “사람들[로 된] 선물”이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에베소 4:8-12) 또한 14만 4000명의 “강한 자들”은 또 다른 전리품 가운데서도 한 몫을 받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대하여 승리를 거둠으로 사탄에게서 하느님을 조롱할 근거를 완전히 빼앗아 버립니다. 여호와에 대한 그들의 꺾이지 않는 정성은 여호와를 드높이고 여호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합니다.
36.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의 종에 대한 예언을 성취시키고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까? 설명하십시오.
36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의 종에 대한 예언을 성취시키고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체포되시던 밤에, 그분은 이사야 53:12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해서 자신에게 적용시키셨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이 말씀 곧 ‘그는 불법한 자들과 한 패로 여겨졌다’라고 기록된 것이 나에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 관한 것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22:36, 37) 유감스럽게도, 예수께서는 실제로 불법한 자처럼 취급되셨습니다. 그분은 법을 어긴 자로 처형되어 두 강도 사이에서 기둥에 못박히셨습니다. (마가 15:27) 하지만 우리를 위해 중재하고 있는 것임을 아주 잘 알고 계신 예수께서는 기꺼이 그러한 치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사실상 죄인들과 사형이라는 재앙 사이에 서 계신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며, 자신이 바로 그 재앙을 당하셨습니다.
37. (ㄱ) 예수의 생애와 죽음에 관한 역사 기록은 우리가 무엇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줍니까? (ㄴ) 우리가 여호와 하느님과 그분의 높여지신 종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7 예수의 생애와 죽음에 관한 역사 기록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사야의 예언에 나오는 메시아 종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여호와께서 기꺼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종의 예언적 역할을 다하도록 하신 것에 대해,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속될 수 있도록 고난과 죽임을 당하게 하신 것에 대해 우리는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여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큰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로마 5:8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의 사랑을 추천하십니다.” 우리는 또한 기꺼이 자기 영혼을 쏟아 죽음에 이르게 하신, 높여지신 종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각주]
^ 5항 J. F. 스테닝이 번역한 요나단 벤 웃시엘의 타르굼(기원 1세기)에는 이사야 52:13이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보라, 나의 종, 기름부음받은 자(즉 메시아)는 번영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빌로니아 탈무드」(기원 3세기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메시아—그의 이름은 무엇인가? ··· 랍비의 집안에 속한 [자들의 말에 따르면, ‘병든 자’이다.] ‘확실히 그는 우리의 병을 졌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다.”—산헤드린 98ㄴ; 이사야 53:4.
^ 15항 예언자 미가는 베들레헴을 가리켜 “너무 작아서 유다의 천인대들 가운데 들 수 없는 자”라고 하였다. (미가 5:2) 하지만 이 작은 베들레헴이 메시아가 탄생하는 성읍이 되는 독특한 영예를 누렸다.
^ 22항 “재앙을 당하고”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나병과 관련해서도 사용된다. (열왕 둘째 15:5) 어떤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일부 유대인들은 이사야 53:4을 통해서 메시아가 나병 환자일 것이라고 추론하기까지 하였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에서는 이 구절을 메시아에게 적용하면서 그를 “나병 환자인 학자”라고 부른다. 가톨릭 「두에역」에서는 라틴어 「불가타역」을 반영하여 그 구절을 이렇게 번역한다. “우리는 그가 나병 환자라고 생각하였다.”
[연구 질문]
[212면 도표]
여호와의 종
예수께서 역할을 완수하신 방법
예언
발생할 일
성취
받들어져 높여지다
사도 2:34-36; 빌립보 2:8-11; 베드로 첫째 3:22
모습이 왜곡되고 나쁜 평판을 얻다
마태 11:19; 27:39-44, 63, 64; 요한 8:48; 10:20
많은 나라들을 깜짝 놀라게 하다
마태 24:30; 데살로니가 둘째 1:6-10; 계시 1:7
사람들이 믿지 않다
요한 12:37, 38; 로마 10:11, 16, 17
인간으로 존재하기 시작할 때부터 비천하고 보잘것없다
업신여김을 받고 배척당하다
마태 26:67; 누가 23:18-25; 요한 1:10, 11
우리의 병을 지다
찔리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고난당하다
고발자들 앞에서 잠잠하고 불평하지 않다
마태 27:11-14; 마가 14:60, 61; 사도 8:32, 35
부당한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을 받다
마태 26:57-68; 27:1, 2, 11-26; 요한 18:12-14, 19-24, 28-40
부자들과 함께 매장되다
영혼이 죄과 제물이 되다
많은 사람들이 의로운 신분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다
로마 5:18, 19; 베드로 첫째 2:24; 계시 7:14
죄인들과 한 패로 여겨지다
마태 26:55, 56; 27:38; 누가 22:36, 37
[203면 삽화]
‘사람들이 그를 업신여겼다’
[206면 삽화]
‘그는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자료 제공]
안토니오 치세리가 그린 세밀화 “보시오, 이 사람이오”
[211면 삽화]
‘그는 자기 영혼을 쏟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