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바로 가기

차례 바로 가기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위로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위로

제12장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위로

이사야 51:1-23

1. 예루살렘과 그 주민들 앞에는 어떤 우울한 전망이 놓여 있으며, 하지만 어떤 희망이 있습니까?

칠십 년—인간의 보통 수명—바로 그 기간 동안 유다 나라는 바빌론에서 포로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시 90:10; 예레미야 25:11; 29:10) 포로로 잡혀 간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빌론에서 늙어 죽게 될 것입니다. 적들의 조롱으로 인해 그들이 얼마나 굴욕을 당하게 될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그들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그분의 이름을 두셨던 도시가 그렇게 오랫동안 황폐되어 있을 때 여호와에게 쌓일 치욕을 생각해 보십시오. (느헤미야 1:9; 시 132:13; 137:1-3) 솔로몬이 봉헌하였을 때 하느님의 영광으로 가득 찼던 그 사랑받는 성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역대 둘째 7:1-3) 참으로 우울한 전망입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회복을 예언하십니다. (이사야 43:14; 44:26-28) 이사야서 51장에서 우리는 위로와 안심이라는 이 주제와 관련 있는 예언들을 더 발견하게 됩니다.

2. (ㄱ) 여호와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누구에게 위로의 소식을 전해 주십니까? (ㄴ) 충실한 유대인들은 어떻게 “의를 추구”합니까?

2 유다 사람들 가운데 여호와께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의를 추구하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 말을 들어라.” (이사야 51:1ㄱ) “의를 추구”한다는 말에는 행동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단지 자신이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주장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의로워지기 위해 그리고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게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시 34:15; 잠언 21:21) 그들은 의의 유일한 근원으로서 여호와를 바라볼 것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할’ 것입니다. (시 11:7; 145:17)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 혹은 기도로 그분에게 가까이 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직도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은 여호와를 숭배하고 여호와께 기도하고 자기들이 하는 모든 일에서 여호와의 인도를 구함으로, 그분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3, 4. (ㄱ) 유대인들을 떠낸 “바위”는 누구이며, 그들을 파낸 “우묵한 구덩이”는 누구입니까? (ㄴ) 자기들의 기원을 기억하는 것은 왜 유대인들에게 위로를 가져다 줄 것입니까?

3 하지만 진정으로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유다에서 비교적 소수에 불과하며, 이로 인해 그들은 의기소침하고 낙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채석장의 예를 사용하여 그들을 다음과 같이 격려해 주십니다. “너희를 떠낸 바위와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보아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출산의 고통을 겪으면서 너희를 낳은 사라를 보아라. 내가 그를 불렀을 때에 그가 혼자였으나, 나는 그를 축복하여 많게 하였다.” (이사야 51:1ㄴ, 2) 유대인들을 떠낸 “바위”는 이스라엘 나라가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역사적 인물 아브라함입니다. (마태 3:9; 요한 8:33, 39) 그는 그 나라의 선조, 즉 그 나라의 인간 기원입니다. “우묵한 구덩이”는 사라로서, 그의 태에서 이스라엘의 조상 이삭이 나왔습니다.

4 아브라함과 사라는 생식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이미 지나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하여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 17:1-6, 15-17) 하느님께서 생식력을 회복시켜 주시자 아브라함과 사라는 노년에 자식을 낳게 되어, 아브라함에게서 하느님의 계약 나라가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그 한 사람이 큰 나라의 선조가 되게 하셨고, 그 나라 사람의 수는 결국 하늘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게 되었습니다. (창세 15:5; 사도 7:5) 여호와께서 먼 땅에서 아브라함을 데려와 그처럼 그를 강대한 나라로 만드실 수 있었다면, 충실한 남은 자들을 바빌론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여 고토로 회복시켜 그들을 다시 한 번 큰 나라로 만드시겠다는 약속도 틀림없이 이행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성취되었으므로, 포로로 잡혀 있는 그 유대인들에게 하신 약속도 이행될 것입니다.

5. (ㄱ) 아브라함과 사라는 각각 누구 혹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설명하십시오. (ㄴ) 최종 성취에서, 그 기원이 “바위”임이 밝혀진 것은 누구 혹은 무엇입니까?

5 이사야 51:1, 2에 나오는 상징적 채석과 관련된 말씀은 한층 더 의미 깊게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신명기 32:18에서는 여호와를 가리켜,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신 “반석” 그리고 “출산의 고통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낳으신 분”이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 표현의 경우, 이사야 51:2에서 사라가 이스라엘을 낳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한 것과 동일한 히브리어 동사가 사용됩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더 큰 아브라함이신 여호와의 예언적 모형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영적 피조물들로 이루어진 여호와의 하늘에 있는 우주 조직을 잘 상징하는데, 성경에서는 그 조직을 하느님의 아내 혹은 하느님의 여자로 묘사합니다. (창세 3:15; 계시 12:1, 5) 이사야의 예언에 나오는 이 말씀의 최종 성취에서, “바위”에서 나오는 그 나라는 “하느님의 이스라엘”로서, 기원 33년 오순절에 탄생한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회중입니다. 이 책의 앞 장들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그 나라는 1918년에 바빌론에 포로로 잡히는 일을 겪었다가 1919년에 영적 번영의 상태로 회복되었습니다.—갈라디아 3:26-29; 4:28; 6:16.

6. (ㄱ) 유다 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며, 어떤 종류의 회복이 필요할 것입니까? (ㄴ) 이사야 51:3은 현대의 어떤 회복을 생각나게 해 줍니까?

6 시온 즉 예루살렘을 위한 여호와의 위로에는 단지 인구가 많은 나라를 산출하겠다는 약속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가 틀림없이 시온을 위로할 것이다. 그가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를 에덴처럼, 그 사막 평원을 여호와의 동산처럼 만들 것이다. 환희와 기쁨이, 감사드리는 일과 노랫소리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이사야 51:3) 유다 땅은 70년간의 황폐 기간 중에, 가시덤불과 찔레나무를 비롯한 야생 초목이 무성한 광야로 변할 것입니다. (이사야 64:10; 예레미야 4:26; 9:10-12) 따라서 회복에는, 유다가 다시 정착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 땅 자체를 회복시키는 일도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땅은 물이 넉넉한 생산적인 밭과 열매가 풍부한 과수원이 있는 에덴과 같은 동산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그 땅이 기뻐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유배 기간 중의 황폐되었던 상태와 비교해 볼 때, 그 땅은 낙원과 같이 보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스라엘 가운데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은 1919년에 영적인 의미로 바로 그러한 낙원에 들어갔습니다.—이사야 11:6-9; 35:1-7.

여호와를 신뢰해야 하는 이유

7, 8. (ㄱ)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여호와의 요구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ㄴ) 유다가 여호와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새로워진 마음으로 경청할 것을 요구하시면서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아, 내게 주의를 기울여라. 내 나라야, 내게 귀를 기울여라. 나에게서 법이 나갈 것이며, 나의 판결을 내가 뭇 백성들의 빛으로 놓이게 할 것이다. 나의 의가 가까이 있다. 나의 구원이 틀림없이 나갈 것이며, 나의 팔이 뭇 백성들을 심판할 것이다. 섬들이 나를 바라며, 나의 팔을 기다릴 것이다.”—이사야 51:4, 5.

8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여호와의 요구는 단지 그분의 소식을 들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들은 것에 따라 행동할 목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 49:1; 78:1) 그 나라는 여호와께서 교훈과 공의와 구원의 근원이시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분만이 영적 계몽의 근원이십니다. (고린도 둘째 4:6) 그분은 인류의 최종 심판관이십니다. 여호와에게서 나오는 법과 판결들은 그 법과 판결의 인도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빛이 됩니다.—시 43:3; 119:105; 잠언 6:23.

9. 하느님의 계약 백성 외에도 누가 여호와의 구원의 행동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입니까?

9 이 모든 사실은 하느님의 계약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 있는, 심지어 바다 가운데 가장 먼 섬들에 사는 합당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신뢰와 자신의 충실한 종들을 위해 행동하여 구원하실 수 있는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그들의 신뢰는 실망을 겪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의 팔로 상징되는 그분의 힘 즉 능력은 확실한 것이며, 아무도 저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40:10; 누가 1:51, 52)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느님의 이스라엘 가운데 남아 있는 성원들이 열심히 수행하는 전파 활동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바다의 외딴 섬들에 사는 많은 사람들까지도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여호와께 믿음을 두고 있습니다.

10. (ㄱ) 느부갓네살 왕은 어떤 진리를 배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까? (ㄴ) 어떤 “하늘”과 “땅”이 종말을 당하게 될 것입니까?

10 여호와께서는 뒤이어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배워야 할 한 가지 진리를 언급하십니다. 하늘에나 땅에 있는 그 어느 것도 여호와께서 자신의 뜻을 행하시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다니엘 4:34, 35)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읽게 됩니다.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바라보아라. 하늘은 연기처럼 산산이 흩어지고, 땅은 옷처럼 해어지며, 그 주민들은 한낱 각다귀처럼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구원은 한정 없는 때까지 있고, 나의 의는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 51:6) 포로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하는 것은 바빌로니아 군주들의 정책에 반하는 일이지만,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려는 여호와의 뜻은 좌절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사야 14:16, 17) 바빌로니아의 “하늘” 즉 통치 세력은 패배를 당하여 부서질 것입니다. 바빌로니아의 “땅” 즉 그 통치 세력의 신민은 점차 종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대의 가장 큰 세력이라 할지라도 여호와의 위력에 대항하여 설 수 없으며, 그분의 구원의 행동을 막을 수 없습니다.

11. 바빌로니아의 “하늘”과 “땅”이 종말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의 온전한 성취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려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이 예언의 말씀이 온전히 성취된 것을 알게 되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격려를 받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도 베드로가 앞으로 있을 일과 관련하여 그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급속히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날에는 하늘이 불타서 용해되고 요소들이 심히 뜨거워져 녹아 버릴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분의 약속대로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으니, 거기에는 의가 깃들여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 둘째 3:12, 13; 이사야 34:4; 계시 6:12-14) 강대한 나라들과 그 교만한 별 같은 통치자들이 여호와에 대항하여 서 있을지 모르지만, 여호와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그들은 한낱 각다귀처럼 아주 쉽게 부서져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시 2:1-9) 오로지 하느님의 의로운 정부만 영원히, 의로운 인간 사회를 통치할 것입니다.—다니엘 2:44; 계시 21:1-4.

12. 하느님의 종들이 인간 반대자들로부터 욕을 먹을 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여호와께서는 이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법이 있는 백성아, 내 말을 들어라. 멸성인 사람들의 모욕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욕설 때문에 공포에 떨지 말아라. 좀나방이 그들을 옷인 양 먹어 버리고, 옷좀나방이 그들을 양털인 양 먹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는 한정 없는 때까지 있고, 나의 구원은 무수한 세대에 미칠 것이다.” (이사야 51:7, 8)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용기 있는 태도 때문에 욕을 먹고 모욕을 당하겠지만, 두려워할 것은 못 됩니다. 모욕하는 자들은 멸성인 사람에 불과한 자들로서, 양털로 만든 옷이 좀나방에게 먹히듯이 ‘먹힐’ 것입니다. * 고대의 충실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참 그리스도인들도 자기들을 반대하는 자가 누구이든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영원한 하느님이신 여호와께서 그들의 구원이 되십니다. (시 37:1, 2) 하느님의 적들로부터 오는 모욕은, 여호와의 백성에게 그분의 영이 함께한다는 증거가 됩니다.—마태 5:11, 12; 10:24-31.

13, 14. “라합”이나 “바다 괴물”이라는 표현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쳐부숴지고’ ‘찔립’니까?

13 이사야는 마치 여호와께 그분의 사로잡혀 있는 백성을 위해 행동해 달라고 요청하듯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팔이여, 깨어나십시오, 깨어나십시오, 힘을 입으십시오! 오랜 옛날에, 오래 시대에 대대로 그러하셨듯이, 깨어나십시오. 당신은 라합을 쳐부수시고 바다 괴물을 찌르신 분이 아니십니까? 당신은 바다를, 광대하고 깊은 물을 말리신 분이 아니십니까? 바다 깊은 곳을 길로 만들어 도로 사들여진 사람들이 건너가게 하신 분이 아니십니까?”—이사야 51:9, 10.

14 이사야가 언급하고 있는 역사적 예들은 아주 적절하게 선택된 것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나라가 이집트에서 구출되어 홍해를 건너간 일을 알고 있습니다. (탈출 12:24-27; 14:26-31) “라합”이나 “바다 괴물”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것을 반대한 파라오 통치 아래의 이집트를 가리킵니다. (시 74:13; 87:4; 이사야 30:7) 고대 이집트는 머리를 나일 삼각주에 두고 기다란 몸통이 비옥한 나일 강 유역을 따라 수백 킬로미터 뻗어 있는 모습이 마치 괴물처럼 생긴 뱀을 닮았습니다. (에스겔 29:3) 하지만 여호와께서 이 괴물 위에 열 가지 재앙을 쏟으셨을 때 이 괴물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 군대가 홍해 바닷물 속에서 멸망되었을 때 그 괴물은 찔려서 심한 상처를 입고 약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집트에 대한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팔의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한 분이 바빌론에 유배되어 있는 자신의 백성을 위해서 싸울 준비가 그보다 조금이라도 덜 되어 있으실 것입니까?

15. (ㄱ) 시온의 비탄과 한숨은 언제 어떻게 달아날 것입니까? (ㄴ) 하느님의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현대에 비탄과 한숨이 언제 달아났습니까?

15 이제 이스라엘이 바빌론에서 구출되는 것을 내다보고 예언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그때에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이 돌아와서, 기뻐하는 외침으로 시온에 를 것이며, 한정 없는 때까지 기쁨이 그들의 머리에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환희와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비탄과 한숨은 틀림없이 달아날 것입니다.” (이사야 51:11) 바빌론에서의 그들의 상황이 얼마나 비탄스럽든, 여호와의 의를 찾는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전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탄과 한숨이 더 이상 없을 때가 올 것입니다. 기뻐하는 외침과 기쁨과 환희—이러한 것들이 구속함을 받은 즉 대속을 받은 사람들의 입술에서 터져 나올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의 현대 성취에서, 하느님의 이스라엘은 1919년에 바빌론의 포로 상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들은 큰 기쁨으로 자기들의 영적 토지로 돌아왔으며, 그 기쁨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16. 유대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어떤 값이 지불됩니까?

16 유대인들을 구속하는 값은 얼마나 될 것입니까? 이사야의 예언에서 이미 밝힌 바에 따르면, 여호와께서는 “너를 위한 대속물로 이집트를 내주고, 너 대신에 에티오피아쓰바를” 내주십니다. (이사야 43:1-4) 이러한 일은 나중에 있을 것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바빌론을 정복하고 유대인 포로들을 해방시킨 후에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와 쓰바를 정복할 것입니다. 그것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혼 대신 주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잠언 21:18에 언급된 원칙과 일치합니다. “악한 자는 의로운 자를 위한 대속물이 되고, 배신 행위를 하는 자는 올바른 자들을 대신하게 된다.”

더욱 안심시켜 주는 말씀

17. 유대인들이 바빌론의 격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다음과 같이 더욱 안심시켜 주십니다. “내가—바로 내가 너희를 위로하는 이이다. 멸성인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한낱 푸른 풀처럼 될 인간의 아들을 두려워하다니, 너는 누구냐? 너를 만든 이,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놓은 이인 여호와를 잊고서, 너를 에워싸는 자가 너를 멸할 준비가 다 되었다는 듯이 격노한다고 해서 항상 온종일 무서워하다니. 너를 에워싸는 자의 격노가 어디 있느냐?” (이사야 51:12, 13) 유배 기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빌론의 격노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성서 기록상 세 번째 세계 강국인 그 나라가 하느님의 백성을 정복하고 “에워싸”려고 하겠지만, 다시 말해서 도피의 길을 차단하려고 하겠지만, 충실한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바빌론이 키루스의 손에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사야 44:8, 24-28) 창조주—영원하신 하느님 여호와—와는 대조적으로, 바빌론의 주민들은 건기의 강렬한 햇빛 아래서 말라 버릴 풀처럼 소멸되고 말 것입니다. 그때에 그들의 위협과 격노는 어디에 있을 것입니까? 사람을 두려워하고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인 여호와를 잊는다는 것은 참으로 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18. 여호와의 백성은 얼마 동안 갇힌 사람이 되어 있겠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보증을 해 주십니까?

18 여호와의 백성은 얼마 동안 포로가 되어 있겠지만, 비유적으로 말해서 “사슬에 묶여 몸을 굽히고” 있겠지만, 그들의 해방이 갑자기 이를 것입니다. 그들이 바빌론에서 멸절되거나 갇힌 사람처럼 굶어 죽는 일—생명을 잃고 스올 즉 구덩이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시 30:3; 88:3-5)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보증해 주십니다. “사슬에 묶여 몸을 굽히고 있는 자가 틀림없이 속히 풀려나리니, 그는 죽어 구덩이에 가지도 않을 것이며 그에게 빵이 부족하지도 않을 것이다.”—이사야 51:14.

19. 충실한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여호와께서는 여전히 시온을 위로하시며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너의 하느님, 바다를 요동하게 하여 그 파도를 거칠게 하는 이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그 이름이다. 나는 내 말을 네 입에 넣어 주고, 내 손 그늘로 틀림없이 너를 덮을 것이니, 이는 하늘을 심고 땅의 기초를 놓으며 시온에게 말하기를 ‘너는 나의 백성이다’ 하려 함이다.” (이사야 51:15, 16) 성서는 바다에 힘을 뻗치셔서 바다를 조종하실 수 있는 하느님의 능력에 관해 거듭거듭 언급합니다. (욥 26:12; 시 89:9; 예레미야 31:35) 그분은 자신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실 때 보여 주신 것처럼, 자연의 힘을 온전히 조종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느 누구를 털끝만큼이라도 “만군의 여호와”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시 24:10.

20. 여호와께서 시온을 회복시키시면 어떤 “하늘”과 “땅”이 존재하게 될 것이며, 그분은 위로가 되는 무슨 말씀을 하실 것입니까?

20 유대인들은 여전히 하느님의 계약 백성이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고토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그분의 율법 아래서 살게 될 것이라고 보증해 주십니다. 고토에 가면 그들은 예루살렘과 성전을 재건하고,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자기들과 맺으신 계약 아래서 다시 자기들의 책임을 이행하게 될 것입니다.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들의 가축이 그 땅에 다시 살기 시작하면, “새 땅”이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 위에는 “새 하늘” 즉 새로운 정부 조직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65:17-19; 학개 1:1, 14) 여호와께서는 시온에게 다시 한 번 “너는 나의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행동하라는 명령

21. 여호와께서는 행동하라는 어떤 명령을 내리십니까?

21 여호와께서는 시온을 안심시키신 다음 행동하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시온이 마치 이미 고통의 끝에 도달한 것처럼,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에서 그 격노의 잔을 마신 너 예루살렘아, 일어나거라, 일어나거라, 일어서거라. 술잔, 휘청거리게 하는 잔을 네가 마셔서 말끔히 비웠다.” (이사야 51:17) 그렇습니다. 예루살렘은 재난을 당한 상태에서 일어나서 이전의 지위와 영화를 되찾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이 상징적인 하느님의 보응의 잔을 말끔히 비우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하느님의 분노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22, 23.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분노의 잔을 마시게 될 때 어떤 일을 겪을 것입니까?

22 하지만 예루살렘이 처벌을 받고 있는 동안, 예루살렘의 주민들 즉 예루살렘의 “아들들” 가운데서는 진행되고 있는 일을 저지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사야 43:5-7; 예레미야 3:14) 예언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 여자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그 여자를 이끌어 줄 자가 아무도 없었고, 그 여자가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여자의 손을 붙잡아 줄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사야 51:18) 그 여자는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손에 참으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이 너에게 닥쳤다. 누가 너를 동정하겠느냐? 탈취와 파괴, 그리고 굶주림과 칼이 닥쳤다! 누가 너를 위로하겠느냐? 네 아들들은 기절하였다. 그들은 여호와의 격노, 네 하느님의 꾸짖음이 가득한 자들로서, 그물에 걸린 들양처럼 온 거리 어귀에 누워 있다.”—이사야 51:19, 20.

23 가엾기 짝이 없는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은 “탈취와 파괴”뿐만 아니라 “굶주림과 칼”도 인내하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인도하여 강하게 살아가게 할 능력이 없는 예루살렘의 “아들들”은 바빌로니아의 침공자들을 물리칠 정도로 강하지 못하여 무력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곁에 서 있기만 할 것입니다. 특히 눈에 띄는 일로서, 그들은 길 어귀 즉 길 모퉁이에 기력을 잃고 힘없이 기진맥진하여 누워 있을 것입니다. (애가 2:19; 4:1, 2) 그들은 하느님의 격노의 잔을 마셔, 그물에 걸린 동물처럼 무력하게 있을 것입니다.

24, 25. (ㄱ) 예루살렘에 어떤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까? (ㄴ) 예루살렘 다음으로 누가 여호와의 분노의 잔을 마시게 될 것입니까?

24 하지만 이 슬픈 상황은 끝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다음과 같은 말로 위로를 해 줍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을 당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여자야, 부디 이 말을 들어라. 너의 주 여호와, 그 백성을 위하여 쟁론하시는 너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휘청거리게 하는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 가겠다. 술잔, 내 격노의 잔—그것을 네가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를 노엽게 하는 자들의 손에 내가 그것을 두겠다. 그들이 네 영혼에게 “우리가 넘어가도록 몸을 굽혀라” 하고 말하자, 너는 넘어가는 자들을 위하여 네 등을 땅바닥처럼, 거리처럼 만들었다.’” (이사야 51:21-23)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을 징계하신 후, 불쌍히 여겨 행동하실 준비와 예루살렘에 용서하는 영을 나타내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25 여호와께서는 이제 자신의 분노를 예루살렘에서 돌이켜 바빌론으로 향하게 하실 것입니다. 바빌론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굴욕을 당하게 해 왔을 것입니다. (시 137:7-9) 하지만 예루살렘은 바빌론이나 그 동맹국들의 손에 다시는 그러한 격노의 잔을 마시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오히려 그 잔은 예루살렘의 손에서 거두어져 예루살렘의 치욕을 기뻐하던 자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애가 4:21, 22) 바빌론은 완전히 취해서 내려갈 것입니다. (예레미야 51:6-8) 한편, 시온은 일어날 것입니다! 참으로 대역전입니다! 시온은 그러한 전망으로 인해 참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종들은 그분의 구원의 행동을 통해 그분의 이름이 거룩해질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각주]

^ 12항 여기 언급된 좀나방은 거미줄옷좀나방, 특히 큰 해를 주는 유충 단계의 나방인 것 같다.

[연구 질문]

[167면 삽화]

더 큰 아브라함이신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떠낸 바위”이시다

[170면 삽화]

하느님의 백성의 반대자들은 좀나방에 먹힌 옷처럼 사라질 것이다

[176, 177면 삽화]

여호와께서는 자연의 힘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 주셨다

[178면 삽화]

예루살렘이 마셨을 잔이 바빌론과 그 동맹국들에게 주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