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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의 영화

메시야의 영화

제12장

메시야의 영화

1.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이사야’ (53:7-12)에게 영감을 주어 메시야가 영화롭게 되기 전에 있을 일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게 하셨읍니까?

영화롭게 되기 전에 고통을 받아야 하였읍니다. 하나님의 메시야 “종”이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이것이 메시야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임을 예언하여 하나님께서는 통용 기원전 8세기의 그의 예언자 ‘이사야’에게 영감을 주어 이렇게 말하게 하셨읍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이사야 53:7-12; 사도 8:32-35.

2. ‘요한’이 투옥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 예수께서는 어떠한 소식을 이어 받았읍니까?

2 메시야의 선구자는 하나님의 율법에 충실하다는 이유로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가 침례받은 많은 제자들을 예수께로 인도한 후에 그는 ‘갈릴리’ 도의 통치자 ‘헤롯 안티파스’ 곧 ‘헤롯’ 대왕의 아들에 의하여 투옥되었으며, 후에 ‘헤롯’의 생일 축하시에 목베임을 당하였읍니다. (마태 14:1-12) 예수께서는 ‘요한’이 체포되고 투옥되었다는 말을 들은 후에 ‘요한’의 소식을 이어받았읍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셨읍니다.—마태 4:12-17.

3. ‘모세’는 무엇을 더 좋아하였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였으며, 예수의 경험은 그것과 어떻게 상응할 것입니까?

3 많은 ‘유대’인들은 지적인 ‘마카베’ 왕국이 회복되기를 원하였지만 예수께서는 침례자 ‘요한’과 같이 그 왕국을 전파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천국” 즉 고대 ‘다윗’ 왕과 관계를 가진 하나님의 왕국을 전파하셨읍니다. 그분은 고통을 당하신 점에서 예언자 ‘모세’와 다르지 않았읍니다. ‘모세’의 강한 믿음에 대한 ‘히브리’ 11:25, 26의 기록은 이러합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메시야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되게 되어 있었고 ‘모세’는 여호와의 예언자로 임명(기름부음)받기 전과 후에 고통을 당하였으므로 메시야 예수 역시 고통을 당할 것이 당연하였읍니다. 사실 그 고통은 ‘모세’의 고통보다도 클 것이었읍니다.—신명 18:15.

4. ‘모세’는 누구의 이름으로 그의 백성에게 왔으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와 어떻게 상응합니까?

4 ‘모세’는 바로 여호와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애굽’에 보냄을 받아 그곳의 노예 생활에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냈읍니다. (출애굽 3:13-15; 5:22, 23) ‘모세’가 반대를 만난 것처럼 그의 제1세기의 대응자도 반대를 받았읍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하나님의 보내신 메시야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요한 5:43-47.

5. ‘유대’인들은 왜 예수께서 그의 천적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음을 믿었어야 하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언제 그러한 믿음을 나타냈읍니까?

5 예수께서 자기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마시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고 말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답하셨는가를 우리는 압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말 대신에 그의 메시야로서의 일을 주시하라고 권고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한 10:24-27) 그러나 예수께서 그의 천적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는 것을 믿은 일부 “유대”인들이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기원 33년 유월절이 되기 닷새 전에 예수께서 스가랴 9:9의 성취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이 그를 환호하여 맞으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고 말하였읍니다.—요한 12:1, 12, 13; 마태 21:4-9; 마가 11:7-11; 누가 19:35-38; 시 118:26.

6. 예수께서는 누구의 이름으로 자기의 충실한 사도들을 지켜 보호하셨읍니까?

6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유월절 밤에 자기의 충실한 제자들 즉 사도들과 함께 유월절을 기념하고 나서 이렇게 기도하셨읍니다.

“나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택하여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렸사옵니다. 그들은 본래 아버지의 사람이었사온데 아버지께서 그들을 내게 주셨사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순종하였사옵니다. ··· 거룩하신 아버지,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키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 주옵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동안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 보호하였사옵니다.”—요한 17:6, 11, 12, 새번역.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 점에서 ‘모세’와 같은 예언자였읍니다.

또한 기적과 예언으로 식별됨

7. ‘모세’는 왜 ‘이스라엘’인들과 ‘애굽’인들 앞에서 표징을 행하였으며, 그의 표징을 메시야의 표징과 비교할 때 수에 있어서 어떠합니까?

7 ‘이스라엘’인들과 ‘애굽’인들에게 예언자 ‘모세’는 많은 기적을 보임으로 자기가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이름으로 왔음을 증명하였읍니다. 이러한 것은 여호와께서 ‘모세’를 보내셨음을 증명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표징” 혹은 “표적”이었읍니다. (출애굽 4:1-30; 7:1-3; 8:22, 23; 10:1, 2; 신명 34:10, 11)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모세’에게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기원 제1세기의 ‘이스라엘’인들은 부당하게도 예수로부터 그러한 표징을 구하였읍니다. (마태 16:1-4, 새번역) ‘모세’가 행한 기적의 표징이 예수께서 자신이 메시야임을 증거하기 위하여 행한 기적의 표징보다 훨씬 수효가 적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불명예가 아닙니다.

8. 예수께서는 무슨 일로 그의 “표적”을 시작하셨으며, “표적”들은 그의 제자들과 ‘니고데모’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읍니까?

8 예수께서는 ‘모세’와 같이 물을 피로 변화시키는 일은 하시지 않았지만 ‘갈릴리 가나’의 결혼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물을 가장 좋은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하셨읍니다. 이것은 요한 복음 2:11에 의하면 시작에 불과하였읍니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은 그를 믿으니라.” 기원 30년 유월절에 대하여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으니라].” (요한 2:23) 예를 들면, ‘유대’의 통치자이며 ‘예루살렘’ ‘산헤드린’의 일원이었던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를 찾아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한 3:1, 2; 7:50, 51; 19:39, 40.

9. 예수의 기적을 ‘모세’의 기적과 비교해 보면 종류에 있어서 어떠하였읍니까?

9 ‘모세’는 문둥병을 고쳤읍니까?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땅에서 많은 문둥병 환자를 고치셨읍니다. ‘모세’는 그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홍해물을 갈랐읍니까? 예수께서는 ‘갈릴리’ 바다 물 위를 걸으셨고 위험한 폭풍우가 몰아칠 때 물을 잠잠하게 하셨읍니다. 사십년간 ‘이스라엘’인들은 광야에서 하늘로부터의 ‘만나’를 먹고 살았으나 후에 죽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완전한 인간성을 희생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가 되셨읍니다. 그 목적은 믿음으로 그것을 먹는 모든 사람이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요한 6:48-51) ‘모세’는 결코 예수께서 하신 바와 같이 각종 질병을 고치지 못하였읍니다. ‘모세’는 아무도 부활시키지 못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보다 더 많은 사람을 부활시키셨는 데, 그 중 한 사람은 죽어 나흘 동안 매장되었던 ‘베다니’의 ‘나사로’였읍니다. (요한 11:1-45; 12:1-9) 심지어 예수의 적들도 그가 많은 표적을 행하였다는 것을 시인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라].”—요한 11:46-48; 12:37.

10, ‘베드로’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가이사랴’에서 이방인들에게 예수의 기적에 대하여 어떻게 증언하였읍니까?

10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가 기원 33년 ‘샤부옷’(칠칠절) 축제일에 수천명의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은 과장이 아니었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사도 2:22) 몇해 후에 이 ‘베드로’는 ‘가이사랴’에서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보이던 일부 관심가진 이방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진상을 밝혔읍니다:

“‘요한’이 그 [침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며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사도 10:37-39.

11, 12. (ㄱ) 예수께서는 예언자로서 ‘모세’와 어떻게 비슷합니까? (ㄴ) 예수의 가장 긴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11 ‘모세’는 예언자였읍니까?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메시야 예수도 예언자였읍니다. 그는 많은 예언적 비유를 말씀하셨읍니다. 그는 자기의 사도 ‘유다’에게 배반당할 것을 예언하셨고 자기가 어떠한 죽음을 당할 것인지, 그러고 누구에게 죽임을 당할 것인지 또한 자기가 세째날에 부활될 것을 예언하셨읍니다. 그는 기원 70년에 ‘로마’인들에 의하여 있게 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읍니다. 그의 가장 긴 예언은 마태 복음 24장, 25장, 마가 복음 13장 그리고 누가 복음 21장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이 예언은 성전을 포함한 ‘예루살렘’의 멸망이 언제 있을 것이며 메시야의 돌아오심과 “임재”(파로우시아)의 “징조” 및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가 무엇일 것인가에 대한 그의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한 말씀이었읍니다.

12 이 예언이 정확하다는 증거로 예언의 여러 가지 면이 제1세기 그 세대 중에 성취되었읍니다. 그리고 더욱 놀랍게도, 그에 상응하는 면과 기타 세부점들이 기원 1914년 이래 우리 세대에 성취되어 왔읍니다. 1914년 이래 전쟁, 식량 부족, 지진, 역병, 추종자들의 박해, 세계적인 재난이 있어 왔으며, 유례없는 “큰 환난”이 앞에 놓여 있읍니다.—마태 24:21.

13. 예수께서는 자기에 대한 예언과 자기에게 섭취된 예언에 있어서 어떻게 ‘모세’와 비교하셨읍니까?

13 예언자 ‘모세’에 대한 예언과 그에게 성취된 예언은 없었읍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히브리’어 성경」 전체에 예수의 출생으로부터 그의 사망 및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수께 성취된 예언은 수백가지가 있으며, 그러한 것은 그분이 참으로 메시야임을, 그리고 큰 뱀 ‘사단’ 마귀에게 “발꿈치”에 상처를 입게 되어 있는 “씨”임을 증명하였읍니다. 그분 자신이 하나님께서 그를 부활시킨 후에 이점에 제자들의 주의를 환기시켰읍니다. 누가 복음 24:25-48(새번역)의 기록은 이러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는 미련하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지 못하는구나! 그리스도[마시아]가 마땅히 그와 같은 고난을 받아야 영광에 들어가게 되지 않겠느냐?’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성서 전체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일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읍니다. ···

“예수께서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것이 반드시 다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성경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여시고 말씀하셨읍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사흘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

14. ‘모세’는 ‘이스라엘’에 임하는 저주에 대하여 그리고 범죄자를 하나님께 저주받게 하는 데 대하여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읍니까? 염두에 있던 것은 누구였읍니까?

14 레위기 26장신명기 28:15-68에 예언자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율법 언약을 이행하지 않을 때에 그 민족에 임할 모든 저주를 기록하였읍니다. ‘모세’는 또한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명 21:22, 23.

하나님께서는 그의 메시야를 염두에 두시고 이런 예언을 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맺은 율법 언약을 범하였기 때문에 그 민족에게 임하는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메시야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저주받은 자로 나무에서 죽으셔야 하였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영화

15. 기원 33년 유월절에 하나님의 어린 양이 비‘유대’인들에게 사형집행을 당하게 하려는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15 기원 33년 유월절인 ‘니산’월 14일에 예수의 사도들도 유월절 양을 잡아 요리하였읍니다. (마태 26:1-30; 마가 14:1-26; 누가 22:1-39) 그러나 침례자 ‘요한’이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부른 분은 어떠하였읍니까? (요한 1:29, 36) 그날밤 유월절 식사 후 밤 늦게 그는 사도 ‘가룟 유다’에게 배반을 당하여 군인들에게 검거되어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로 연행되었읍니다. 그는 사법부 ‘산헤드린’에 의하여 재판을 받고 그들 임의의 율법 해석에 따라 사형 선고를 받았읍니다. 그 사법 기관은 사형 집행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유죄판결을 받은 예수를 평화의 교란자로 그리고 선동 죄인으로 이방인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겼읍니다. 고발자들은 그를 형주에 달라고 집요하게 주장하였읍니다.

16. ‘빌라도’ 앞에서 예수께서는 왕국과 진리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16 예수께서는 ‘본디오 빌라도’ 앞에 섰을 때 자기의 메시야 왕국이 중동의 ‘예루살렘’에 있을 지적 왕국이 아니라 천적 왕국일 것임을 지적하셨읍니다. ‘빌라도’가 그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질문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이러한 대답을 듣고 ‘빌라도’는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하고 질문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요한 18:33-37.

17. 예수께서는 어떻게 ‘불법자와 동류로 간주’되었으며, 그는 범법자 중 한 사람에게 어떠한 희망을 주었읍니까?

17 ‘빌라도’는 마지 못하여 예수를 형주에 달라는 고발자들의 요구에 굴복하였읍니다. 처형지는 ‘예루살렘’ 성벽 밖의 ‘골고다’(“해골의 장소”) 곧 ‘갈보리’였읍니다. 그는 두명의 형사범 곧 “불법자”들 사이에서 달리셨읍니다. ‘모세’의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은 형주에 달린 예수를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로 간주하였읍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지만 그의 장래의 메시야 정부 하에서 인류가 즐길 지상 낙원의 소망을 염두에 두고 계셨읍니다. 결국, 한 범법자는 예수께서 무죄한 분이시며 죄인들을 위한 희생자임을 인식하고 그에게 “예수여, 당신이 당신의 왕국에 들어가시면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으며, 그때 예수께서는 “진실로 내가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셨읍니다.—누가 23:39-43, 신세; 22:37.

18. 예수의 무덤은 어떻게 악인 및 부자와 함께 되었으며, 그는 어떠한 상태로 ‘스올’에 계셨읍니까?

18 그 유월절 날 이른 오후에 예수께서 사망하셨읍니다.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니라].” (이사야 53:12) 신명기 21:22, 23에 따라서 그는 바로 그 날 오후에 장사되었읍니다. 그는 한 부자의 소유인 새로 만든 무덤에 안장되었으며 그리하여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읍니다. (이사야 53:9) 그러므로 또한 예수의 영혼은 인류의 일반 무덤인 ‘스올’로 갔읍니다. 돌아가신 예수께 이러한 말이 해당되었읍니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도 9:5, 10.

19. 여호와께서는 언제 어떻게 시편 16:10에 있는 그분의 영감에 의한 예언을 성취시키셨으며, 예수의 해방에 대하여 왜 질문이 생겼읍니까?

19 그러나 ‘다윗’ 왕은 예언적으로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0, 11)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영감으로 된 이 예언 그대로 세째날인 ‘니산’월 16일에 메시야 예수를 일으키셨으며, 그 날 성전에서 대제사장 ‘가야바’는 여호와께 보리 추수와 “첫 이삭 한 단”을 바쳤읍니다. (레위 23:9-14; 고린도 전 15:20, 23) 예수께서 안장되었던 무덤이 비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왜 그의 제자들은 어디에서도 그를 찾지 못하였읍니까? 왜 그분은 부활하신 후 40일간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곤 하셨읍니까?—사도 1:1-3; 요한 20:1-31; 마태 28:1-18.

20. ‘베드로’는 어떻게 예수의 부활을 설명하며, ‘바울’은 예수의 제자들의 그와 일치한 부활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20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사도 ‘베드로’에게 개인적으로 한 번 나타나셨는데, ‘베드로’는 고대 예언자의 시대에 영인 천사들이 물질화한 것과 같은 물질화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인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느니라].” (베드로 전 3:18, 19; 고린도 전 15:5; 누가 24:34) 부활시에 그에게 발생된 일은 그의 충실한 제자들의 부활시에 발생될 것으로 예언된 다음과 같은 일과 같았읍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느니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린도 전 15:43-45, 50-54.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로마 6:5.

21.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어떠한 사람으로 부활시키셨으며, 예수께서는 어떻게 자기의 인간 희생의 가치를 보유하셨읍니까?

21 따라서 성경적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멸성과 썩지 않음을 가진 하나님의 영자로 부활되셨음을 증명합니다. (사도 13:32-37)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시에 자기의 인간 몸을 다시 취함으로 하나님의 제단에서 제물로서의 자기의 인간 몸을 다시 끌어내리지 않았읍니다. (히브리 10:1-10) 연례 속죄일에 동물 희생의 피는 죄를 위하여 지성소로 가져 가고 그 동물 희생의 시체는 처분되었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인간 희생을 받아들이고 예수의 인체를 처분하셨읍니다. 어떻게? 우리는 모릅니다. (히브리 13:10-13; 레위 16장)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 육체로 부활시키지 않으셨지만 하나님의 부활된 아들은 자기의 인간 희생의 가치를 보유하셨는데, 그 가치는 ‘유대’인 대제사장이 속죄를 위하여 성전 지성소로 가지고 들어간 희생의 피와 같았읍니다.

22, 23. (ㄱ) 예수께서는 속죄일의 대제사장이 전영한 바와 같이 부활된 영자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이제 어떻게 뱀의 “머리”를 상할 수 있는 더욱 강력한 지위에 있게 되었읍니까?

2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자로서 부활된지 40일째 되는 날에 다시 하늘로 올라가실 수 있었읍니다. 많은 그의 충실한 제자들이 그 승천을 목격하였읍니다. (사도 1:1-11) 지성소에서 ‘유대’인 대제사장이 금으로 된 언약궤에 속죄의 피를 뿌린 것과 같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천적 어전에 들어가 자기의 완전한 인간 희생의 가치를 바치셨읍니다. (히브리 9:11-14, 24-26) 그 때에 지존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사장”으로 그의 우편에 앉히셨읍니다.—시 110:1-4; 사도 2:31-36; 히브리 5:10; 10:11-13.

23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그가 완전한 인간이 되어 큰 뱀에게 “발꿈치를” 상함받기 전보다 더욱 높은 천적 지위를 상으로 받았읍니다. 그는 인간이 되시기 이전의 이름 ‘미가엘’을 다시 취하여 하늘에는 다시 “천사장 ‘미가엘’”이 있게 되었읍니다. (유다 9; 계시 12:7) 하나님의 “여자”의 영화롭게 된 “씨”는 이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뱀의 머리를 상할 수 있는 더욱 강력한 지위에 있게 되셨읍니다.—창세 3:15.

24, 25. (ㄱ)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다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야로 어떤 분이 아님을 기뻐할 수 있읍니까? (ㄴ) 빌립보 2:5-11에서 우리는 어떠한 정신 태도를 가지라는 권고를 받고 있읍니까?

24 하나님의 약속된 메시야가 ‘다윗’ 왕과 같이 지적인 인간으로 “기름부음받은 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죽지 않는 천적 메시야일 것임에 대하여 선천적인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다 같이 크게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예언적 영감을 받아 ‘다윗’은 이 높임받은 분을 겸손히 그의 주(主)로 인정하였으며, 우리의 태도도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말에서 이러한 순종적인 정신 태도를 가지라는 권고를 받고 있읍니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정신 태도, 신세]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마시아] 예수의 마음[정신 태도]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형주]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마시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립보 2:5-11. 또한 고린도 후 5:16.

[연구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