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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목적”에 따른 하나님의 선택

“영원한 목적”에 따른 하나님의 선택

제8장

“영원한 목적”에 따른 하나님의 선택

1.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의 언약을 재다짐받은 사람의 후손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그의 아들 ‘이삭’에게 재다짐하셨읍니다. (창세 26:1-5, 23, 24) ‘이삭’은 40세에 결혼하였지만 60세가 되어서야 자녀 즉 쌍동이 아들을 낳았읍니다. 자녀를 간구한 ‘이삭’의 기도에 응답하신 여호와께서는 그 쌍동이 아들들 가운데서 선택하실 것입니까?

2. 여호와께서는 쌍동이 중 누구를 선택하실 것인지를 어떻게 알리셨읍니까?

2 여호와께서는 ‘리브가’의 임신 중에 그가 기도로 자기의 상태에 대하여 질문하였을 때 그분의 선택을 암시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태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에서’가 첫 아들이고 ‘야곱’이 쌍동이 동생이었읍니다. (창세 25:20-23)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이삭’의 이 쌍동이 아들들에게서 하나의 민족, 즉 두 지파로된 한 민족을 만드시지 않을 것을 지적하셨읍니다. 그렇지 않고 두 민족이 나올 것이며 쌍동이 형으로부터의 민족이 더 약하여 쌍동이 아우의 민족을 섬길 것이었읍니다. 이것은 탁월성에 대한 장자의 당연한 권리와 반대였읍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누구를 택하실 것인지를 알리셨읍니다.

3. 그 때의 선택은 인간의 행위에 달려 있었읍니까, 아니면 부르시는 분에게 달려 있었읍니까?

3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축복하기 위한 그의 목적에 따라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계셨읍니다. 이에 대하여 제1세기의 성서 해설자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목적, 신세]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로마 9:10-13; 또한 말라기 1:2, 3에서도 인용.

4. 여호와께서는 출생 전부터 왜 ‘야곱’보다 ‘에서’를 덜 사랑하셨읍니까?

4 확실히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릇된 선택을 하지 않으셨읍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분은 ‘리브가’의 태 안에 있는 쌍동이의 유전 형질을 아실 수 있으시므로 두 아들이 어떠한 방향으로 삶을 영위할 것인지를 내다 보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쌍동이 동생을 택하셨지만 그 선택은 합당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목적에 따라 선택하셨지만 강제로 일을 진행시키지는 않으셨읍니다. 그 분은 형 ‘에서’가 중대한 결정의 날에 자기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자기의 장자권을 팔도록 계획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나 분명히 여호와께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에서’가 ‘야곱’과 같이 영적 사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사랑을 나타내지 않을 것을 내다보셨읍니다. 이 때문에 그분은 ‘야곱’보다 ‘에서’를 덜 사랑하셨으며 쌍동이 형제가 아직 그들의 모태에 있을 때 그에 따라 선택하셨읍니다.—창세 25:24-34.

5. 여호와께서는 ‘이삭’이 말한 축복을 ‘야곱’이 어떻게 받을 것인지 계획하셨읍니까? 그리고 그는 그 축복을 번복하셨읍니까?

5 ‘야곱’과 그의 어머니 ‘리브가’가 ‘이삭’을 통하여 선언될 축복을 얻기 위하여 마침내 사용한 술책을 여호와께서 계획하지 않으셨지만 여호와께서는 노쇠하여 앞을 못보는 ‘이삭’이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선언하는 것을 허락하셨읍니다. ‘야곱’은 그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세 27:1-30) 여호와께서는 ‘이삭’으로 하여금 그 축복을 번복하게 하시지 않고 오히려 ‘야곱’이 쌍동이 형 ‘에서’로부터의 살인적 분노를 피하여 도망할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삭’의 축복을 확증하셨읍니다. 이것은 출생 전부터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신 일을 지지하였읍니다. 어떻게 그러하였읍니까?

6.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신 것이 ‘야곱’이 꾼 천사들이 사용하는 사리에 관한 꿈에서 어떻게 지지되었읍니까?

6 약속의 땅에 있는 ‘벧엘’이라는 곳에서 도망자 ‘야곱’이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었읍니다.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세 28:12-15.

7, 8. (ㄱ) 이 하나님의 진술은 메시야의 후손 계열에 대하여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ㄴ) ‘에서’와 달리, ‘야곱’은 누구를 숭배하는 데 탁월하였읍니까?

7 거짓말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이 돌이킬 수 없는 진술에 의하면 창세기 12:1-7에 설명된 ‘아브라함’의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후손 즉 씨를 통하여 이행하실 것이었읍니다.

8 이것은 하나님의 천적 “여자의 씨”인 메시야가 ‘야곱’의 후손 계열을 통하여 나올 것임을 의미하였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메시야 “씨”에 의하여 축복을 받을 나라들과 족속들의 역사보다 ‘야곱’의 후손의 역사를 상세히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읍니다. ‘에서’(혹은 ‘에돔’)의 하나님이라고는 불리우지 않았읍니다. ‘에서’는 여호와의 숭배에서 탁월하지 않았으며 그의 후손은 여호와의 숭배자들의 원수가 되었읍니다. 우상 ‘코스’는 ‘에돔’의 신이었읍니다. (역대 하 25:14; 에스겔 35장) 후에 ‘예루살렘’에 건축된 성전은 “‘야곱’의 하나님의 전”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읍니다. (이사야 2:3) 이 재난 많은 시대에 사는 우리를 위한 본으로서 영감받은 시편 필자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하고 말합니다.—시 46:11.

왕족의 선택

9. (ㄱ) ‘야곱’의 후손들은 왜 ‘이스라엘’이라고 불리웠읍니까? (ㄴ) ‘야곱’은 어느 곳에서 그의 열 두째 아들을 낳았읍니까?

9 ‘야곱’이 ‘메소포타미아’ 골짜기의 ‘밧단아람’에 가서 20년간 사는 동안 그의 부친 ‘이삭’이 승인하는 가족에서 결혼하여 열 한명의 아들을 낳았읍니다.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고향인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창세 31:3)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다른 이름을 받은 것은 그가 돌아오는 길에서였읍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세 32:28) 그 후에 ‘야곱’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이라고 불리웠읍니다. (출애굽 17:11) 그 후에 ‘야곱’ 즉 ‘이스라엘’은 그가 사닥다리 꿈을 꾸었던 ‘벧엘’에 다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의 열 두째 아들 ‘베냐민’을 낳았읍니다. 그러나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이 둘째 아들을 낳다가 사망하였읍니다. 창세기 35:19에 기록된 바와 같이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읍니다.

10. ‘야곱’이 약속의 땅에 더 머무는 동안 ‘르우벤’은 어떻게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읍니까?

10 ‘야곱’은 기원전 1761년에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후에 33년간 외국인으로서 그곳에 계속 거주하였읍니다. 그동안 의미심장한 일들이 많이 발생하였지만 그러한 일들은 결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야곱’의 부친 ‘이삭’은 180세에 사망하였읍니다. (창세 35:27-29) ‘야곱’의 큰 아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 ‘빌하’ 즉 ‘라헬’의 여종과 불륜 관계를 가졌읍니다. (창세 35:22) 이 일로 인하여 ‘르우벤’은 그의 아버지 ‘야곱’의 장자권을 누리지 못하고 또한 메시야 왕이 그의 후손 계열에서 나오지 못하게 되었읍니다. 이것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그러한 근친상간에 관련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창세 49:1-4.

11, 12. (ㄱ) ‘시므온’과 ‘레위’는 메시야 계열에 있어서의 모든 기회를 어떻게 상실하였읍니까? (ㄴ) 하나님께서는 이제 선택과 관련하여 어떻게 하셔야 합니까?

11 ‘라헬’이 사망하기 전, 그리고 ‘르우벤’이 충격적인 부도덕 행위를 저지르기 전에 ‘야곱’의 딸 ‘디나’는 약속의 땅의 한 주민, 즉 ‘세겜’ 성에 사는 ‘히위’ 족속의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능욕을 당하였읍니다.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이러한 일로 인하여 ‘야곱’의 아들들이 크게 노하였읍니다. 그래서 ‘세겜’의 남자들이 할례의 요구에 응하여 무능한 상태에 있을 때 ‘야곱’의 둘째 아들 ‘시므온’과 그의 세째 아들 ‘레위’가 칼을 들고 의심치 않는 모든 ‘세겜’ 남자들을 살육하고 그 도시를 약탈하였읍니다.

12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야곱’은 이러한 폭행을 승인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시므온’과 ‘레위’에게 그들이 그러한 행동으로 “이 땅 사람 ··· 에게 냄새”가 나게 하였으며 그와 그의 집이 그 땅의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멸절되게 하였다고 말하였읍니다. (창세 34:1-30) ‘시므온’과 ‘레위’는 열화처럼 노하여 그러한 잔인한 학살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그들 중 어느 후손 계열에서도 메시야인 “씨”가 나오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이 영예로운 특권은 ‘시므온’과 ‘레위’ 및 장자 ‘루우벤’이 아닌 다른 아들에게 옮겨져야 하였읍니다. (창세 49:5-7)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일을 계획하지 않으셨음은 분명합니다. 그는 이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셨읍니다. 그분은 ‘야곱’의 아직 남아 있는 아들 중에서의 선택을 그의 예언자 ‘야곱’ 즉 ‘이스라엘’을 통하여 알리실 것이었읍니다.

13, 14. ‘야곱’과 그의 집은 어떻게 ‘애굽’으로 가서 ‘요셉’과 함께 살게 되었읍니까?

13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장자는 그 집안의 열 한째 아들인 ‘요셉’이었읍니다. ‘야곱’은 노령에 특히 이 아들을 사랑하였읍니다. 이 때문에 ‘요셉’의 이복 형들은 그를 질투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 모르게 ‘요셉’을 ‘애굽’으로 내려가는 상인들에게 팔아 넘겼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요셉’이 맹수에게 죽임을 당하였다고 믿도록 수단을 꾸몄읍니다.

14 ‘요셉’은 ‘애굽’의 노예로 팔렸지만 그가 충실히 숭배하고 순종한 하나님의 은총으로 ‘바로’ 밑에서 식량 장관 및 국무총리로 높여졌읍니다. 기원전 1728년에 ‘요셉’은 세계적인 기근 중에 식량을 구하러 ‘애굽’에 내려온 그의 회개한 이복 형들과 화해하였읍니다. 그 후 ‘요셉’의 알선으로 그의 아버지 ‘야곱’ 즉 ‘이스라엘’은 그의 집안 식구 모두와 함께 ‘애굽’으로 와서 ‘고센’ 땅에 정착하였읍니다. 거기에서 ‘야곱’은 17년을 살았읍니다.—창세기 37-47장.

15, 16. ‘야곱’은 그때 아직 무엇의 후사로 ‘애굽’에 들어갔었으며, 이것이 어떻게 시편 105:7-15에 지적되었읍니까?

15 ‘야곱’이 약속의 땅을 떠나 ‘요셉’의 초대에 응하여 ‘애굽’으로 내려온 것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읍니다. (창세 46:1-4) 그는 아직 ‘아브라함’의 언약의 후사로서, 그것을 전달해야 할 자로서 그곳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시편 105:7-15은 이 사실을 지적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6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은 온 땅에 있도다.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때에 저희 인수가 적어 매우 영성하며 그 땅에 객이 되어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유리하였도다.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히브리’어로, ‘마시아’의 복수 즉 메시야들]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예언자, 신세]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17.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왜 “예언자”라고 그리고 “기름 부은 자”라고 부르셨읍니까?

17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그의 예언자라고 부르셨으며 사실 그들은 예언자들이었읍니다. (창세 20:7) 예언자는 지명되고 임명되기 때문에 정식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을지라도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열왕 상 19:16, 19; 열왕 하 2:14) 마찬가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벧엘’이라는 곳에서 ‘야곱’이 실제로 기둥에 기름을 부은 것과 같이 기름부음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행동으로 인하여 “기름 부은 자”라고 불리우는 것이 적절하였읍니다. (창세 28:18, 19; 31:13) 여호와께서 그들을 “나의 기름 부은 자”라고 부르신 사실은 그분이 그들을 임명하시고 선택하셨음을 시사합니다. ‘모팻’의 성서 번역판은 시편 105:15을 “내가 선택한 자들을 만지지 말고 나의 예언자들을 해하지 말라”고 번역하였읍니다. (또한 역대 상 16:22)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그분의 선택 배후에는 목적이 있읍니다.

18. 따라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나오게 되어 있는 민족은 또한 어떻게 지명되었으며, 왜 그것이 적절하였읍니까?

18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여호와의 “메시야”였으며, 메시야 나라가 그들을 통하여 나온 것은 바로 이것과 일치합니다. 성경은 이 선민을 여호와의 “메시야” 혹은 “기름부음받은 자”라고 부릅니다. 시편 28:8, 9에서 시편 필자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저희의 힘이시요 그 기름부음받은 자[‘히브리’어: 마시야]의 구원의 산성이시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 후에 예언자 ‘하박국’은 여호와께 이렇게 기도하였읍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받은 자[마시아]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셨나이다].” (하박국 3:13) 바로 이와 일치하게 이 “기름부음 받은” 민족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정하신 때에 진정한 메시야, 하나님의 천적 “여자의 씨”가 나오게 되어 있었읍니다.—창세 3:15.

19. ‘야곱’의 아들들은 열두 지파의 머리이므로 무엇이라고 불리웠읍니까?

19 ‘야곱’의 후손들이 수가 많아져서 민족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은 ‘애굽’에 있을 때였읍니다. 바로 이 무렵, ‘야곱’은 임종을 맞아(기원전 1711년) 그의 아들들에게 이러한 고별의 말을 하였읍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창세 49:28) ‘야곱’의 이들 열 두 아들들은 각자 한 지파의 머리가 됨으로써 “족장” 혹은 “조상”이라고 불리웠읍니다. ‘예루살렘’ ‘산헤드린’ 앞에서 한 때 한 연사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 두 조상[족장, 신 영어 성서]을 낳으니 여러 조상[족장]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셨느니라].” (사도 7:8, 9) 적절하게도, 희랍어를 말하는 ‘유대’인들은 “족장 ‘아브라함’” 또한 “족장 ‘다윗’”이라고 불렀읍니다.—히브리 7:4; 사도 2:29, 신영성.

20. 그리하여 ‘이스라엘’에 주교직이 세워졌읍니까?

20 그러나 이것은 ‘애굽’에서 ‘야곱’의 후손들 가운데 주교직이 세워졌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고센’ 땅에서 사망한 후에 ‘애굽’의 ‘바로’의 국무총리였던 ‘요셉’은 그의 부친이 그에게 한 마지막 축복은 장자권이 ‘요셉’에게로 옮겨졌음을 시사하였지만 그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족장이 되게 하지 않았읍니다.—창세 49:22-26; 50:15-26.

21. (ㄱ) ‘야곱’은 장자권이 이제 누구에게로 옮아졌음을 시사하였읍니까? (ㄴ) 메시야 왕으로 인도하는 계열의 족장을 선택하는 것은 누구에게 달려 있었읍니까?

21 족장, ‘야곱’은 그의 열 두 아들에 대한 예언적 축복에서 장자권이 그의 첫 아내 ‘레아’에 의한 장자 ‘르우벤’으로부터 그의 둘째 아내 ‘라헬’의 장자 ‘요셉’에게로 옮겨졌다는 것 이상을 밝혔읍니다. (창세 29:21-32) ‘요셉’의 이복 형들은 ‘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팔아 넘기기 전에 그가 그들을 다스릴 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불쾌하게 여겼읍니다. (창세 37:8) 그러나 이보다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는 족장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셨을 때 왕들이 ‘아브라함’에게서 나올 것이며 이 일이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하여 있을 것임을 예언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그의 이름을 ‘사래’에서, “왕녀”를 의미하는 ‘사라’로 바꾸셨읍니다. (창세 17:16) 또한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셨을 때 그는 왕들이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셨읍니다. (창세 35:10, 11) 그러나 가족의 장자권은 자동적으로 메시야 왕 곧 하나님의 천적 “여자의 씨”로 인도할 왕의 조상 계열이 되는 권리와 영예를 수반하지 않았읍니다. 이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선택에 달려 있었읍니다. 그는 ‘야곱’으로 하여금 어느 아들이 그러한 왕의 조상이 될 것인지를 지적하게 하셨읍니다.

22. 축복의 말 가운데서 ‘야곱’은 어느 아들을 “홀”과 “치리자의 지팡이”라고 불렀읍니까?

22 사망 직전에 ‘야곱’은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에 대하여 비난의 말을 한 다음에 그의 첫 아내가 낳은 네째 아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세 49:8-10.

23. 홀, 치리자의 지팡이, 백성의 순종, 사자에 비유된 것 등 그 모든 특성은 ‘유다’에 대한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23 ‘야곱’이 ‘유다’를 사자에 비한 것에 유의합시다. 미가 5:8은 사자를 삼림의 동물 왕에 비합니다. 에스겔 19:1-9은 ‘유다’ 왕국의 왕들을 사자에 비유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유다’를 사자에 비유한 것은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사실과 일치하며 이것은 ‘유다’가 이미 홀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상실하거나 빼앗기지 않을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왕권의 홀이었다는 것은 ‘실로’가 오기까지 역시 ‘유다’로부터 떠나지 않을 “치리자의 지팡이”와 연결된 사실로 지지됩니다. 더구나, 이 ‘실로’에 의하여 대표되었듯이 이 ‘유다’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할 것입니다. (창세 49:10) ‘유다’에 대한 이 모든 특징은 왕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24, 25. (ㄱ) ‘실로’라는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은 누구에게 적용됩니까? (ㄴ) 왜 왕권의 홀은 ‘유다’로부터 떠날 필요가 없을 것입니까?

24 ‘실로’라는 이름은 “그것을 가지신 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당시의 원 ‘히브리’어 원문에서 번역된 고대 ‘라틴어’ 「벌게이트 역」은 “보내질 그분이 오기까지”라고 번역하였읍니다.

25 이 ‘실로’(“그것을 가지신 분”)의 임함은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의 마지막 ‘유다’ 왕에게 하신 이러한 말씀으로 예언하신 분의 임함과 같습니다.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에스겔 21:27)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의 상징적 “여자의 씨”인 메시야 왕의 임함을 가리킵니다. 왜냐 하면, 그분이 오시면 그를 계승할 왕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유다’ 지파의 왕국은 끝에 이르고 영원히 ‘실로’의 손에 머물 것입니다. 이분은 하늘에서 여호와의 우편에 앉을 메시야 왕이며 족장 ‘아브라함’이 전리품의 십분지 일을 바친 ‘멜기세덱’과 같은 왕일 것입니다. (시 110:1-4) 그러므로 왕의 홀은 ‘유다’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26. (ㄱ) 역대 상 5:1, 2은 장자의 권리와 왕권은 별개의 것임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ㄴ) 계획되지 않은 사태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자유로이 어떻게 하실 수 있었읍니까?

26 장자의 권리와 왕으로서의 영도권의 임명이 다르다는 것은 그리고 하나님께서 임종하는 족장 ‘야곱’을 통하여 ‘유다’에게 왕으로서의 영도권을 임명하셨다는 것은 성경에 명백히 진술되어 있읍니다. 역대 상 5:1, 2에서 ‘야곱’의 아들들에 대한 이러한 말을 볼 수 있읍니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군주, ‘리서’역]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찌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러한 식으로 계획하셨다고 말할 수 없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르우벤’, ‘시므온’, 및 ‘레위’의 비행과 그 결과를 초래케 하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계획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유로이 ‘유다’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무슨 일이 발생하든지 간에 그분은 원래의 목적에 고착하시고 그 목적을 변경하심이 없이 성취하실 수 있읍니다.

27, 28. (ㄱ)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민족에 관심을 돌려야 하며, 특히 그중 어느 부분에 관심을 돌려야 합니까? (ㄴ)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증거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이 있을 것입니까?

27 하나님께서 기름부음받은 자 메시야와 관련하여 세우신 그의 “영원한 목적”을 고려할 때 하나님의 선택과 행동은 우리에게 확실한 지침이 됩니다. 그분이 운명하는 족장 ‘야곱’에게 영감을 주어 ‘유다’에 대하여 선언하게 하신 예언의 말씀에서 우리는 우리가 따라야 할 행로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단지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전체 뿐 아니라 여호와의 천적 “여자의 씨”인 여호와의 메시야와의 직접적인 관련성 때문에 특히 ‘유다’ 지파에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관련된 이 메시야 왕을 식별하도록 돕는 증거는 더욱 더 많아지고 있읍니다.

28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제공하시는 증거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는 실망을 안겨 주는 거짓 메시야를 따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참 메시야를 인정하고 땅의 모든 민족의 영원한 축복의 통로인 그분을 따르는 즐거움을 경험할 것입니다.

[연구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