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한 민족
제9장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한 민족
1. 오늘날 국가들은 너무나 유물주의적이어서 누구와 조약 기구를 형성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국제 무대에서 한 국가가 상호 방위 혹은 평화 관계 혹은 문화 교류 등을 목적으로 다른 국가와 조약을 맺는 것은 통례입니다. 다수의 정치 국가들은 오늘날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바르샤바’ 조약 기구(혹은 ‘바르샤바’ 협정), 혹은 동남 ‘아시아’ 조약 기구(SEATO)와 같은 조약 기구에 가입해 있읍니다. 그러나 오늘날 어떠한 정치 국가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읍니까? 오늘날 국가들은 너무나 유물주의적이어서 조약의 상대편으로서 보이지 않는 천적 존재자와 조약 기구를 형성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한 민족에 대한 어떠한 질문의 답을 알기를 원합니까?
2 그러나 고대에는, 하늘의 지존하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진정하고 살아 있는 민족이 지상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언약의 한편은 땅에 있는 것이었고 상대편은 하늘에 있는 것이었으며, 한편은 보이는 것이었고 상대편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읍니다. 각 언약에는 지정된 목적이 있읍니다. 지상에 있는 한 민족과 하늘에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 사이의 그 역사적 언약의 목적은 무엇이었읍니까? 그러한 균형 잡히지 않은 것 같은 언약이 어떻게 맺어졌읍니까? 이러한 것이 지금 우리가 알기를 원하는 질문들입니다.
3. 그러한 언약의 조건, 중보, 조목 및 때를 정하실 적절한 분은 누구일 것입니까?
3 지존하신 하나님은 전지하고 전능하기 때문에 불완전하고 죄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한 민족에게 그러한 언약을 제의 혹은 제안하시기에 합당한 분일 것입니다. 그러한 형편에서 그분께서 언약의 목적을 밝히시고
조건을 세우시고 그분과 인간 사이의 중보(中保)를 임명하시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그분은 언약이 계속되는 데 필요한 조목을 제시하시고 또한 이러한 언약 혹은 협약을 수립할 때를 택하실 것입니다.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는 통용 기원전 16세기였읍니다.4. 하나님께서는 희생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정식 언약을 맺으실 때에 그의 씨에 대하여 어떠한 기간을 예언하셨읍니까?
4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때에 민족적 언약을 맺을 이 민족 전체의 조상과 희생을 통하여 정식 언약을 맺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희생을 통하여 이러한 정식 언약을 맺으신 것은 ‘살렘’의 왕이며 지존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군사적으로 승리를 거둔 ‘아브라함’을 축복한 후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성취될 것이라는 강한 보증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저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 함이니라.”—창세 15:13-16.
5. ‘아브라함’의 씨가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까지 오랫 동안 무슨 일이 있어야 하였읍니까?
5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육적 씨가 땅을 차지하는 것은 4백년 이상 연기되었읍니다. 이 긴 기간에 선택된 ‘아브라함’의 육적 씨는 이교 “죄악”의 길에서 더욱 더 악화되고 있던 ‘가나안’의 ‘아모리’인들을 대치하기에 충분할 만큼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민족으로 자랄 것이었읍니다. ‘아브라함’의 육적 씨가 ‘가나안’ 땅 아닌 곳에서 거대한 규모의 백성으로 자라갈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약속된 땅의 주민의 “죄악”이 너무 심하여 그들이 그 땅에서 일소되기에 합당할 때까지 그들을 위하여 그 땅을 간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회가 무르익었을 때 ‘아브라함’의 육적 씨에게 그 지역을 주실 것임을 이러한 정식 언약으로 보증하셨읍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창세 15:18-21.
6. 민족적 언약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해소할 것입니까? 그리고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에 대하여 무슨 목적을 수행할 것입니까?
6 하나님께서 앞으로 맺고자 생각하시는 언약은 단지 한 사람인 ‘아브라함’과 창세 12:1-7)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된 민족과의 언약 체결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해소한 것이 아니라 그 약속에 부가된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현명한 일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 모두가 땅의 모든 민족과 족속이 받을 축복의 실현과 관련된 ‘아브라함’과의 약속에 참여하기에 적합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가된 민족적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의 천적 “여자”의 약속된 “씨” 곧 참 메시야를 보내서 기름부으실 때 합당한 자들이 그 메시야를 받아들이고 충성스럽게 따르도록 준비케 하는 도움 혹은 수단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할 것이었읍니다.
맺은 그 하나님의 언약과는 대조적으로 선택된 후손 계열을 통한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큰 민족과 맺을 것이었읍니다. 이 민족적 언약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에 부가될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과의 약속은 ‘아브라함’이 북쪽 ‘유브라데’ 강을 건너서, 희생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정식 언약에 명시된 경계 내에 포함된 구역으로 들어갔을 때 유효하게 되었었읍니다. (7. 무슨 이유로 하나님께서 그 사백년이 끝나기 전에 ‘아브라함’의 후손과 언약을 맺지 않으실 것입니까?
7 이 부가적인 민족적 언약의 체결은 하나님께서 희생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이 언약을 맺으신 때로부터 4백년 이상이 지난 후에야 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잉태치 못하므로 아무 후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노예 생활을 하며 이방 나라에 의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들과 언약을 맺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언약의 체결은 그들을 괴롭히고 노예화하고 있던 민족에게 가증하고 불쾌한 희생을 요하였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였읍니다. (출애굽 8:25-27) 먼저 하나님께서는 압제적인 민족을 불리하게 심판하시고 자기의 백성을 구출하여 자기와의 언약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해방시킨 후에 그들과 언약을 제정하실 것이었읍니다. 이 일은 예언된 “사백년”이 끝나자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기름부음받은 자인 메시야와 관련하여 그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간을 정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8, 9. (ㄱ) ‘이삭’이 젖을 뗐을 때 어떠한 기간이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그러하였읍니까? (ㄴ) 그 기간의 끝은 ‘아브라함’의 육적 씨에게 어떠한 일이 있을 때였읍니까?
8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지 25년 후 즉 그의 나이 백세에 그는 그의 참 아내 ‘사라’를 통하여 독자를 낳았는데, 이것은 물론 하나님의 기적이었읍니다. 이 일은 아직 ‘아브라함’이나 그의 아들 ‘이삭’에게 속하지 않은 땅에서 있었읍니다. 메시야가 나올 계통인 육적 “씨”가 고통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이삭’이 막 젖을 뗐을 때였읍니다. 창세 16:11, 12.
이것은 ‘이삭’의 열 아홉살된 이복 형 ‘이스마엘’이 새로이 젖을 뗀 ‘이삭’을 경멸적으로 조롱하였을 때였읍니다. 질투의 표시인 그러한 행동이 자라간다면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주신 후사 ‘이삭’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었읍니다.—9 시간 측정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씨”가 이방에서 고통을 받기 시작한 것은 ‘아브라함’이 105세, ‘이삭’이 5세였을 때였읍니다. 그 때는 기원전 1913년이었읍니다. (창세 21:1-9; 갈라디아 4:29) 따라서, ‘아브라함’의 육적 “씨”에게 임할 “사백년” 간의 고통은 기원전 1513년에 끝날 것입니다. 그 때는 ‘아브라함’의 씨가 압제적인 나라에서 나와 그들의 조상의 땅, 곧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기 시작할 해일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씨”와 민족적 언약을 수립하여 그들이 그분과의 유효한 언약 안에 있는 민족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실 합당한 때일 것입니다. 사백년의 끝인 이 때는 또한 ‘아브라함’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 ‘아브라함’과의 약속이 발효한지 43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할 것입니다.—출애굽 12:40-42; 갈라디아 3:17-19.
민족적 언약의 수립
10. ‘아브라함’의 육적 씨는 ‘애굽’에서 어느 정도로 증가하였으며. 그러나 마침내 어떠한 상태에 있게 되었읍니까?
10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온 가족과 함께 ‘가나안’ 땅을 떠난 때부터 그리고 사백년 기간이 끝날 때까지 ‘야곱’의 후손들 곧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함’족의 ‘애굽’(오늘날의 ‘아랍’의 ‘이집트’가 아니라) 땅에서 살았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바와 같이 ‘아브라함’의 육적 “씨”에게 고통이 임하였고 그 고통은 이제 매우 심하였읍니다. 이 고통의 목적은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의 백성을 멸절시키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이러한 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하늘의 별과 같이 그리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수효가 셀 수 없이 증가하였읍니다. 마침내 그들은 군복무에 적합한 “60만 가량”의 장정을 소집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 (출애굽 12:37) 하나님께서는 그의 벗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잊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또한 이미 발표된 시간표를 지키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합당한 때에 합당한 행동을 하실 준비가 되어 있었읍니다.
11.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이스라엘’의 인도자로 일으키셨으며, 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을 인도자로 나타내려 하였읍니까?
11 이제 누가 그들의 보이는 인도자가 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의 족장을 택하지 않으셨읍니다. ‘야곱’이 ‘유다’에게 왕국의 축복을 선언하였다고 하여 꼭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 아니기 창세 49:10; 역대 상 5:1, 2) 지존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 본래의 선택권으로 ‘레위’ 지파에서 적합한 사람 곧 ‘레위’의 증손 ‘모세’를 택하셨읍니다. (출애굽 6:20; 민수 26:58, 59) ‘모세’는 사백년이 끝나기 40년 전에 ‘애굽’의 ‘바로’의 궁중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이스라엘’인 동족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을 그들에게 소개할 때 자기가 그들을 노예 생활에서 구출할 인도자임을 말하였읍니다.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백성을 구출하도록 ‘모세’를 보내지 않으셨읍니다. ‘모세’는 그를 죽이려는 ‘바로’에게서 도피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는 ‘미디안’ 땅으로 도피해서 결혼을 하고 그의 장인의 목자가 되었읍니다.—출애굽기 2:11에서 3:1; 사도 7:23-29.
때문입니다. (12. ‘모세’는 언제 어디에서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가 되었으며, 무슨 사명을 받았읍니까?
12 40년이 지나 ‘모세’는 80세가 되었읍니다. 그 때 ‘모세’는 ‘시내’ 반도에서 양떼를 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오늘날의 ‘수에즈’ 운하에서 동남쪽으로 약 320‘킬로미터’ 떨어진 ‘호렙’ 산 밑에서 ‘모세’에게 기적으로 나타났읍니다. 이 곳 ‘호렙’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기의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말씀하셨읍니다. “‘나는 내가 증명될 자로 증명되겠노라.’ ··· 그대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증명되겠노라가 여러분에게 나를 보내셨오’” (출애굽 3:2-14, 신세)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의 예언자 및 대표자로 임명하셨으며, ‘모세’는 이제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동일하게, “기름부음받은 자” 혹은 “메시야”라고 불리울 수 있었읍니다. (시 105:15; 사도 7:30-35; 히브리 11:23-26) 여호와께서는 그 ‘호렙’ 산이 바로 그분이 ‘모세’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실 곳임을 지적하셨읍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께서는 ‘모세’가 그들을 ‘애굽’에서 이 산으로 인도하여 내어 그 곳에서 자기를 섬기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출애굽 3:12.
13. ‘바로’는 어떻게 ‘이스라엘’인들에게 ‘애굽’을 떠나라고 명하게 되었읍니까?
13 ‘바로’가 ‘이스라엘’인들을 해방시키기를 반복적으로 거절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와 그의 백성에게 일련의 재앙을 내리셨읍니다. 열번째이자 마지막 재앙은 ‘바로’의 완고한 마음과 그의 저항을 꺾었읍니다. 이 재앙은 ‘애굽’의 각 가족과 그들의 가축의 초태생을 모두 죽였읍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들의 집에서 첫 유월절(逾越節) 식사를 먹었기 때문에 그들의 장자의 죽음을 면하였읍니다. 출애굽 5:1에서 12:51.
여호와의 심판의 천사는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뿌린 것을 보면 지나갔기 때문에 그러한 집에는 죽음이 미치지 않았읍니다. ‘유다’ 지파의 ‘살몬’의 아버지 ‘나손’이 생존하였으며, ‘모세’의 형 ‘아론’의 장자 ‘나답’도 생존하였읍니다. 그러나 ‘바로’의 장자는 죽었읍니다. 슬픔에 잠긴 바로는 장자를 잃은 ‘애굽’인들의 권고를 받고 무사한 ‘이스라엘’인들을 그 나라에서 나가라고 명령하였읍니다.—14. 그 첫 유월절 날에 무슨 기간들이 끝났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밤과 관련하여 무엇을 명하셨읍니까?
14 기원전 1513년 그 중대한 유월절 밤에 여러 가지 지정된 기간이 동시에 끝났읍니다. ‘아브라함’의 육적 씨가 이방에서 고통을 당하는 사백년간이 끝났읍니다. 족장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때로부터 그 곳에 거주한 215년간이 끝났읍니다. ‘아브라함’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가 약속의 땅에 거주하기 시작한 때부터 시작된 430년간이 끝났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 삼십년이라.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을 인하여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출애굽 12:40-42.
1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인들을 추격하는 ‘애굽’인들로부터 어떻게 구출하셨으며, 그들은 그 때에 어떠한 노래를 불렀읍니까?
15 여호와께서는 한 가지 전략적인 이유로 ‘모세’를 통하여 그의 해방된 백성을 홍해 상부 서편 갈래 해안으로 인도하셨읍니다. ‘바로’와 그의 병거 부대와 기병대는 ‘이스라엘’인들이 덫에 걸린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도망한 노예들을 추격하여 바짝 다가갔읍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통로를 열어 주어 밤에 ‘이스라엘’인들이 마른 해저를 걸어 ‘시내’ 반도의 해안으로 건너게 하셨읍니다. ‘애굽’인들로는 도망 통로로 들어오게 하신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 위에 물이 합쳐지게 하여 그들과 그들의 말을 익사케 하셨읍니다. ‘아브라함’의 육적 “씨”를 압제하는 민족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읍니다. (창세 15:13, 14) ‘시내’ 해안에 무사히 도착한 여호와의 심판의 목격 증인들은 이렇게 노래하였읍니다.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출애굽 15:1-21.
16. 하나님께서는 ‘호렙’에 진친 백성에게 무엇을 제안하셨으며, 그 목적은 무엇이었읍니까?
16 ‘이스라엘’인들이 ‘애굽’을 떠나 음력 3월(‘시완’월)에 ‘시내’ 광야에 출애굽 3:1, 12; 19:1) 예언자 ‘모세’는 이제 하나님과 진친 백성들 사이에 중보(中保)의 역할을 해야 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자기와 이 백성 사이에 한 언약을 제출하시고 그 언약의 목적을 설명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호렙’ 산에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특별한 소유, 신세]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애굽 19:3-6.
들어와 “참 하나님의 산”, ‘호렙’ 산 밑에 진을 친 때는 특별한 날이었읍니다. 그 곳이 바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그들이 그를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17. 여호와께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언약을 강요하셨는지의 여부를 무슨 절차가 알려 줍니까?
17 지존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이 언약을 강요하지 않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홍해에서 그들을 구원하셨지만 자기와 언약을 맺을 것인지 아닌지를 그들 스스로 택하게 하셨읍니다. 여호와의 “특별한 소유”가 된다고요?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된다고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그때, ‘이스라엘’인들이 바란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하나님께서 제안하신 언약에 대하여 백성의 대표자들에게 말하였을 때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하고 말하였음을 기록은 알려 줍니다. 이제 ‘모세’는 백성의 결정을 여호와께 보고하였고 여호와께서는 동의한 바 대로 그 언약을 세우셨읍니다.—출애굽 19:7-9.
18. 그로부터 세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선언하셨읍니까?
18 그 후 세째 날에 ‘호렙’의 ‘시내’ 산에서 천사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모여 있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열 말씀 즉 십계명을 선언하셨읍니다. 이 계명들이 출애굽기 20:2-17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더 큰 중보가 예언됨
19. (ㄱ) 장관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인들은 ‘모세’에게 무엇을 요청하였읍니까? (ㄴ) ‘모세’는 무엇이라고 대답하였읍니까?
19 그 장면은 참으로 장관이었읍니다!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애굽 20:18, ) 두려움에 질린 ‘이스라엘’인의 요청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19신명기 18:14-19에 더욱 온전히 설명되어 있읍니다. 거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중개인으로서 마술사와 복술자들을 주시지 않으셨음을 말하고 나서 이어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나로 다시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예언자, 신세]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니라].”
20, 21. (ㄱ) ‘이스라엘’이 ‘모세’와 같은 또 다른 예언자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기가 쉬웠읍니까? (ㄴ) 이 미래의 예언자는 어떠한 면으로 ‘모세’와 같을 것이며, 그 규모는 어떠합니까?
20 하나님께서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할 수 있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달하였을 때 ‘이스라엘’인들은 그러한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위하여 그러한 예언자를 일으키시겠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모세’와 같은’이라는 말은 단순히 ‘모세’와 동등하다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약속된 예언자는 ‘모세’와 같을 수도 있지만 ‘모세’보다 더 클 수 있읍니다.
21 ‘모세’ 이후의 ‘이스라엘’ 예언자들로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없었으며, ‘모세’보다 더 큰 예언자가 없었읍니다. (신명 34:1-12) 그러나 하나님의 천적 “여자의 씨”가 될 약속된 기름부음받은 자 곧 메시야는 어떠하였읍니까? (창세 3:15)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모세’와 같은 미래의 예언자에 관하여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이분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이 메시야 “씨”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가 될 것이지만 ‘모세’보다 더 클 것이었읍니다.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오늘날의 숭배자들에게는 ‘모세’가 고대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한 것보다 그들을 위하여 수행되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장차 올 여호와의 더 큰 예언자를 전영하였읍니다.
22. ‘모세’와 같은 미래의 예언자는 왜 하나님을 숭배하기 위하여 형상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할 것입니까?
22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또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출애굽 20:22, 23) 부인할 여지 없이 이 말씀은 하늘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숭배하기 위하여 생명없고 말할 수 없는 인조 형상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시는 명령입니다. 그것은 출애굽기 20:4-6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십계명에서 두번째로 말씀하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모세’와 같은 메시야 예언자는 그와 같은 종교적 형상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할 것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친히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라].” (23. ‘이스라엘’과의 그 언약을 왜 흔히 율법 언약이라고 합니까?
23 하나님께서는 중보 ‘모세’를 통하여 언약을 세우시기 전에 ‘모세’에게 십계명에 부가하여 기타 율법들을 주셨읍니다. 이러한 율법이 출애굽기 21장에서 23장에 열기되어 있읍니다. 이러한 율법이 두루마리 혹은 “책”에 기록되었으며 언약이 정식으로 세워질 때 가지고 있었읍니다. 이 언약은 특히 하나님의 선민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율법을 수여하는 것으로 특징을 이루었기 때문에 율법의 언약이었으며 그러므로 흔히 율법 언약이라고 불리웁니다. 이 법전 곧 정리된 형태의 법률을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합니다.
24. 율법 언약은 ‘아브라함’과의 언약 후 얼마 뒤에 세워졌으며, ‘아브라함’과의 약속은 아직도 유효합니까?
24 ‘이스라엘’과의 이 언약의 율법은 ‘애굽’에서 있었던 유월절밤 후 약 50일 혹은 51일 후에 십계명의 형태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이 율법이 “사백 삼십년 후(기원전 1943년의 ‘아브라함’과의 언약 이후로)에 생긴 율법”이라고 말할 수 있었읍니다. 그러한 오랜 기간 후에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무효화하지 않으므로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않았읍니다. (갈라디아 3:17) ‘아브라함’의 “씨”로 땅의 모든 나라와 족속을 축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그것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25. 율법 언약은 누구에게 구속력이 있었으며, 그것에 무엇을 사용함으로써 그렇게 되었읍니까?
25 ‘이스라엘’과의 율법 언약은 희생의 피의 사용으로써 언약 양편을 엄숙히 구속하도록 유효하게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4:6-8에 있는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중보]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또한 출애굽 24:3 참조.
26. 피를 하나님의 제단에 뿌린 것은 무엇을 상징하였으며, 피를 백성에게 뿌린 것은 무엇을 상징하였읍니까?
26 모세가 ‘시내’ 산 밑에 세운 제단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표하였으며 이 제단에서 그분께 희생이 드려졌읍니다. 그러므로 동물 희생의 피의 절반을 제단에 뿌림으로써 상징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 안에 들어오게 되셨으며 그 언약의 당사자로서 그 언약에 구속되게 되셨읍니다. 한편, 희생의 피의 반은 백성에게 뿌려짐으로써 그들도 그 언약의 다른 편 당사자로 언약 안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들에게 적용된 그 언약의 조항들을 지킬 엄숙한 의무 아래 있게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양편은 피에 의하여 언약 안에서 연합되었읍니다.
27. 율법 언약을 세우는 것과 관련하여 ‘이스라엘’인들이 모르고 혹은 강요에 의하여 언약을 맺게 된 것이 아님을 무엇이 증명합니까?
27 ‘이스라엘’ 민족은 모르고 혹은 압력과 강요에 의하여 이 언약을 맺게 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들은 피로써 언약을 엄숙히 체결하기 전날 하나님의 말씀과 율례를 들었으며 그것을 받아들였읍니다. 출애굽기 24:3이 알려 주는 바와 같습니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언약서”를 읽어 준 후에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들인다는 말을 반복하였읍니다. 그 후에 그들에게 희생의 피가 뿌려졌읍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 전체는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 하고 말씀하시면서 언약을 제의하실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행할 의무를 갖게 되었읍니다.—출애굽 19:5, 6.
28. 율법 언약의 조항들을 충성스럽게 지키는 점에 있어서 언약의 어느 편이 문제가 되었으며, 거룩하게 되려면 무엇이 요구되었읍니까?
28 이 상호 언약에 대하여 전능하신 하나님 편에서는 충실하실 것을 기대할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분은 변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3:6) 문제는 ‘이스라엘’인들이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이 기꺼이 행하겠다고 말한 일을 충성스럽게 하나님 앞에서 이행할 것입니까? 그들은 시편 50:4, 5의 성취로 여호와께 모여질 충성스러운 사람들에 포함될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충성스러운 자들, 신세]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신세 참조) 개인들로서가 아니라 전체 백성으로서, 민족으로서, 그들은 온 백성을 위한 제사를 통하여 이 율법 언약을 세웠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룩한 백성”임을 나타낼 것입니까? 이렇게 하기 위하여 그들은 이 세상에서 분리되어 있어야 하였읍니다.
29, 30. (ㄱ) 단순히 율법 언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되었읍니까? 혹은, 제사장을 위한 어떠한 마련이 있었읍니까? (ㄴ) ‘레위’ 지파 중 다른 가문의 적합한 남자들은 무엇이 되었읍니까?
이사야 61:6의 예언은 그들에게 아직 성취되지 않았읍니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그렇지 않고, 율법 언약의 조항에 따라 ‘이스라엘’에서 단지 한 가문의 자격 있는 남자들만이 제사장이 되었으며, 그 민족의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였읍니다. 이 가문은 ‘레위’ 지파 중 ‘모세’의 형 ‘아론’의 가문이었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대제사장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들은 제사장보가 되었읍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아론’계 제사직을 형성하게 되었읍니다.
29 그들이 단순히 지존하신 하나님과의 이 언약에 들어왔다고 하여 즉시 “제사장 나라”가 되지는 않았읍니다. 그들은 그 당시 결코, 지상의 다른 모든 나라를 위한 제사장 나라가 아니었으며 남자 모두가 하나님께 제사장이 된 것은 아니었읍니다. 다음과 같은30 ‘레위’ 지파 중 다른 가문의 적합한 남자들은 ‘아론’ 제사직의 봉사자들이 되어 그들을 도와 하나님의 집 혹은 회막에서 종교적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읍니다. 그것이 율법 언약에 규정되어 있었읍니다.—출애굽기 27:20에서 28:4; 민수 3:1-13.
31. 왜 ‘아론’계의 제사장들은 또한 ‘이스라엘’에서 왕이 아니었읍니까?
31 그러므로 ‘유다’ 지파는 고대 ‘이스라엘’의 제사직에 참여하지 않았읍니다. 왜냐 하면, 이 지파로부터는 메시야인 “인도자” 곧 “모든 백성이 복종”할 “실로”라는 분이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 49:10; 역대 상 5:2) 그러므로 고대 ‘이스라엘’에서 왕권과 제사직은 구별되어 있었읍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왕 겸 제사장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멜기세덱’과 같지 않았읍니다.
32. ‘이스라엘’은 어떠한 절기를 매년 지켜야 하였읍니까?
32 율법 언약에 의하면 모든 백성은 매년 숭배의 회막 혹은 성막에서 세번의 전국적인 절기를 기념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 (신명 16:16, 17; 출애굽 34:1, 22-24) 무교병(無酵餅)의 절기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출을 받은 것을 기념한 연례 유월절 식사와 관련이 있었읍니다. 칠칠절(七七節)은 ‘니산’월 16일로부터 시작하여 50일째 되는 날 즉 7주 후에 지켰으며, 밀 추수의 첫 열매를 그 50일째 되는 날(즉 오순절)(五旬節)에 여호와께 바쳤읍니다. 초막절(草幕節)(혹은 장막절)은 또한 “수장절”이라고도 하였으며 해가 바뀐 때 있었읍니다. 이 연례 절기에 규정된 희생을 여호와께 바쳤읍니다.—레위 23:4-21, 33-43.
33. 속죄일은 언제였으며, 속죄 희생은 왜 매년 반복될 필요가 있었읍니까?
33 초막절 절기가 시작되기 5일 전에 연례 “속죄일”(‘욤 키푸르’)이 봄달인 ‘니산’월이나 ‘아빕’월부터 계산하여 음력으로 일곱째 달 10일에 있었읍니다. 그날은 ‘티쉬리’월 10일이 될 것입니다. 이 날 여호와와 언약 관계에 있는 온 국민의 죄를 위하여 속죄제가 있었으며, 일년 중 이날 하루에 한하여 ‘아론’계 대제사장이 회막 지성소에 들어가 여호와의 기록된 율법이 들어 있는 거룩한 언약궤 앞에서 속죄 희생(황소와 염소)의 피를 뿌렸읍니다. (레위 23:26-32; 16:2-34) 물론 인간보다 낮은 이러한 동물 희생물의 죽음과 뿌린 피가 그러한 동물을 지배하는 인간들의 죄를 실제로 제거할 수는 없었읍니다. 그러한 희생된 동물의 죽음과 피가 인간의 죄를 참으로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속죄일의 희생이 매년 반복되어야 하였읍니다.
34. 율법 언약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제거하기 위하여 무엇이 요구됨을 지적하였으며, 왜 ‘이스라엘’인 중 아무도 요구된 것을 바칠 수 없었읍니까?
34 이 이유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읍니다. 율법 언약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렇게 명령하셨읍니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찌니라.” (출애굽 21:23-25; 신명 19:21) 다시 말하면, 같은 것으로, 동등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갚아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단죄 아래 있게 된 인간 생명을 위하여 단죄받지 않은 인간 생명이 필요하였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편 49:6-10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저가 보리로다. 지혜 있는 자도 죽[는도다].” 상응하는 대속물이 있어야 하며, 죄 있는 ‘이스라엘’인 중 아무도 ‘아담’이 상실한 완전한 생명을 되찾기 위하여 그러한 대속물을 마련할 수 없었읍니다.
35. ‘아론’계 제사직은 어떻게 되었으며, 그러므로 대속 희생을 위하여 어디에 기대해야 합니까?
35 하나님의 거룩한 전(殿)에서 단순한 동물 희생을 비치던 ‘아론’계 제사직은 십구세기 전 곧 ‘예루살렘’과 그 곳 성전이 ‘로마’ 군대에 의하여 멸망당한 기원 70년에 없어졌읍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의 시 110:1-4) 그분은 하나님의 천적 “여자의 씨” 즉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뱀”으로 상징된 악한 자의 머리를 상하도록 임명하시고 능력을 부여하시는 씨일 것입니다. 만일 이 분이 온 인류를 위하여 대속물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 인간에게는 구제책이 없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운 새 질서에서 즐길 영원한 생명에 대한 전망이 있을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기원 1세기까지 ‘이스라엘’의 “속죄일”에 바쳐졌던 동물 희생은 상징적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희생은 예언적으로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장, 뱀의 머리를 상할 자가 되실 메시야가 바칠 대속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을 삼으시겠다고 맹세하신 메시야 왕만을 기대해야 합니다. (36. 마찬가지로, 율법 언약 하의 절기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36 하나님의 언약이 고대 ‘이스라엘’에게 부과한 그 연례 절기도 마찬가지였읍니다. 그러한 절기는 단순히 국민의 오락과 휴식을 위한 무의미한 행사가 아니었읍니다. 그러한 절기들은 예언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읍니다. 그 절기들은 행복한 행사일이었으므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미래의 행복한 마련들을 상징하였읍니다. 그러한 절기의 축복된 의미를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합당한 때에 알리십니다.
놀라운 기회를 가진 민족
37. 율법 언약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어떠한 기회를 주었읍니까?
37 그러나, ‘이스라엘’인으로서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과의 언약의 율법의 아주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범하는 일이 없이 완전히 지킴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읍니까? 율법 언약은 ‘이스라엘’인 각자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를 증명할 기회를 주었읍니다. 레위기 18:5에는 이러한 기회를 지적하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읍니다.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그러므로 만일 어떤 ‘이스라엘’인이 율법을 흠없이 지키고 자기 자신의 행위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면 그는 율법 언약의 희생의 유익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의 축복도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창세 12:3; 22:18) 그처럼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의롭고 생명을 받을 가치가 있음을 확립할 것입니다.
38, 39. (ㄱ) ‘이스라엘’인 중에 율법을 완전히 지킴으로 생명을 얻은 사람이 있는지의 여부를 무엇이 알려 줍니까? (ㄴ)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누구의 제사직 봉사가 필요합니까?
38 그러나, 심지어 예언자 ‘모세’도 사망하였읍니다. 대제사장 ‘아론’도 사망하였읍니다. 그리고 율법 언약을 세운 때로부터 기원 70년에 ‘아론’계
제사직이 없어질 때까지, 아니, 오늘날까지 다른 모든 ‘이스라엘’인이 죽었읍니다. ‘로마’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지 19세기 후에도 오늘날의 정통 ‘이스라엘’인들은 속죄일 즉 ‘욤 키푸르’를 지킵니다. 이 사실 자체는 그들이 죄로부터 깨끗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 즉 그들이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으며 그들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율법 언약 하에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면 그 외의 사람들 즉 우리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읍니까?39 율법 언약으로 명백해진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 모두는 완전한 활동을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단죄받은 입장에 있읍니다. (신명 32:4) 예언자 ‘이사야’가 ‘이스라엘’과의 율법 언약이 체결된지 7백여년 후에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다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이사야 64:6) 우리 모두는 약속된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장 즉 영원히 제사장이 될 분의 봉사를 필요로 합니다.
40. ‘모세’는 기원전 1512년 ‘니산’월 1일에 하나님의 숭배와 관련하여 무엇을 하였으며,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40 중보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그 언약이 세워진 해를 돌이켜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 해가 끝나고 기원전 1512년 ‘니산’월 1일이 되었읍니다. 그 날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숭배가 시작될 장소인 “회막의 성막”을 세웠읍니다. 다음에 ‘모세’는 그의 형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에게 예복을 입히고 대제사장과 제사장보로 봉사하도록 거룩한 기름으로 그들을 기름부었읍니다.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필하였더라.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 함이었[더라].”—출애굽 40:1-35.
41. 그러한 표현은 무엇의 증거였으며, 제사직 설치는 언제 끝났읍니까?
41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숭배의 건물을 받아들이고 그의 목적에 따라 그것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보이는 증거가 있었읍니다. 그 첫 달 ‘니산’월(‘아빕’월) 7일에 ‘아론’계 제사직을 취임시키고 권한을 부여하는 일이 끝나고 그 후에 그들은 거룩한 성막에서 하나님의 숭배의 모든 면을 공적으로 감독할 수 있었읍니다.—레위 8:1에서 9:24.
42. 그 때 여호와는 그들이 숭배할 하나님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보이는 대표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무엇이기도 하셨읍니까?
42 이 ‘이스라엘’ 민족이 숭배하도록 명령을 받았고 또 숭배할 의무를 가진 하나님은 여호와이었읍니다. 그분은 그들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통치자 곧 왕이었읍니다. 그들은 그분께 복종하고 충성을 신명기 33:5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 민족을 ‘여수룬’ 즉 “곧은 자”라고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두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한 때에로다.” 그리고 고(故) ‘제이. 에이치. 헤르츠’ 박사는 그 귀절에 대하여 “그리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왕국이 시작되었다”고 각주를 달았읍니다. (「오경과 하프토라」. ‘손시노’판 910면) 여호와는 그들의 보이지 않는 천적 왕이었읍니다. 그에게는 ‘이스라엘’에서 그분을 대표할 지적인 보이는 인간 왕이 필요하지 않았읍니다.—창세 36:31.
나타내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율법과 계명에 대한 불순종은 반항과 불충성일 것입니다. 예언자 ‘모세’는 그 사실을 확증하여43, 44. 지상의 다른 모든 나라에 비할 때 고대 ‘이스라엘’은 어떻게 특별한 은총을 입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어떻게 여호와를 찬양할 수 있었읍니까?
4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그리고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 민족은 참으로 크게 은총을 받았읍니다! 그들은 그분을 참으로 숭배하게 되었으며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될 전망을 가졌읍니다.
44 예언자 ‘아모스’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르시기를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느니라].” (아모스 3:1, 2) 시편 필자가 ‘할렐루야’ 시에서 이렇게 말한 것은 정확한 비교였읍니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시 147:19, 20) 그 은총받은 민족은 참으로 여호와의 언약을 지킴으로써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였읍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인지는 이제 시작된 율법 언약 시대라고 불리울 수 있는 기간 중에 나타날 것이었읍니다.
[연구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