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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 성관계는 어떠한가?

혼전 성관계는 어떠한가?

제23장

혼전 성관계는 어떠한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것은 무방한가? 아니면 결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저는 아직 성관계를 가져 본 적이 없는 처녀입니다. 제가 잘못하는 걸까요?’ 이와 같은 식의 질문을 청소년에게서 많이 들어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앨런 굿매처 연구소의 1981년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십대이면서도 성관계를 갖지 않은 청소년은 예외적인 사람이다. 10명의 남성 중 여덟명은 그리고 10명의 여성 중 일곱명은 십대 시절에 이미 성관계를 가진 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뭐가 잘못인가요?’라고 묻는 청소년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사랑받고 싶어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청소년 시기에는 정욕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배들의 영향이 있습니다. 동배들은 혼전 성관계는 재미있으며, 누군가를 정말 좋아할 때, 성적으로 친밀해지고 싶은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성관계를 갖는 것은 남자다움 혹은 여자다움을 증명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하는 동배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별난 사람으로 간주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성관계를 경험해 보도록 압력을 받고 있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일반적 견해와는 반대로, 모든 청소년이나 젊은이가 성급하게 자신의 동정을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에스터라는 한 젊은 독신 여성의 경우를 고려해 봅시다. 그가 진찰을 받는 중에 의사는 사무적인 말투로 “어떤 피임법을 사용하고 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에스터가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아니, 임신하고 싶어서 그래요? 전혀 피임하지 않고서도 어떻게 임신하지 않을 것을 기대할 수 있나요?”라고 의사가 언성을 높였습니다. 에스터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성관계를 갖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 의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에스터를 빤히 바라본 다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13세 된 소녀들이 여기에 들릅니다. 그 아이들은 더는 처녀가 아니지요. 댁은 참으로 놀라운 사람입니다.”

무엇이 에스터를 “놀라운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까? 에스터는 이러한 성서의 훈계에 순종하였습니다. “몸은 [혼전 성관계를 포함하여] 음행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음행을 피합시다.” (I 고린도 6:13, 18, 새번역) 그렇습니다. 에스터는 혼전 성관계가 하나님께 대한 심각한 죄라는 것을 인식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3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 음란을 버리[라.]” 그러면, 성서가 혼전 성관계를 금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후유증

심지어 성서 시대에도 혼전 성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부도덕한 여자가 한 젊은이에게 함께 즐기자고 유혹하면서,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라고 말했을지 모릅니다. (잠언 7:18) 하지만 성서는 오늘 즐기는 쾌락이 내일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니라]”고 솔로몬은 말하였습니다.—잠언 5:3, 4.

한 가지 가능성 있는 후유증은 성 매개 질환에 감염되는 것입니다. 수년이 지난 후, 성 경험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손상, 아마도 불임이나 심각한 건강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 마음의 고통을 상상해 보십시오! 잠언 5:11이 이렇게 경고하는 바와 같습니다.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패할 때에 네가 한탄하[리라.]” 혼전 성관계는 또한 사생아 임신(참조 184-5면), 낙태 및 조혼을 초래할 수 있으며—그 하나하나에는 고통스런 결과가 따릅니다. 그렇습니다. 혼전 성관계를 갖는 사람은 사실상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고린도 전 6:18.

그러한 위험성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리처드 리 박사는 「예일 생물학 및 의학지」(Yale Journal of Biology and Medicine)에 다음과 같이 기고하였습니다. “우리는 임신을 막고 성병을 치료하는 일에서의 획기적인 진전에 대해 청소년들에게 자랑하면서도, 가장 신빙성있고 특효인,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무해한, 임신 질환과 성병 예방책—옛적부터 내려오는, 존귀하면서도 건전한 상태인 순결을 무시하고 있다.”

죄책감과 실망

많은 청소년은 혼전 성관계가 몹시 실망을 주는 일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죄책감과 줄어든 자중심입니다. 스물 세살 된 데니스는 이렇게 시인하였습니다. “몹시 실망했어요—기대했던 좋은 느낌이나 사랑의 포근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행동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는 자제가 부족했던 것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수치를 느꼈지요.” 한 소녀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현실로 돌아오자 역겨운 기분이 치밀었습니다. ·⁠·⁠· 파티가 끝나자 메스껍고 천하고 더럽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쩌려고 너무 깊어지기 전에 멈추게 하지 않았어?’라는 남자의 말은 나를 한층 더 비참한 기분이 들게 하였습니다.”

제이 시걸 박사에 의하면, 그러한 반응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대학생 2,436명의 성행위를 조사한 후에 그는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불만과 실망을 느끼는 첫 [성교] 경험이, 충족과 흥분을 느끼는 경험보다 거의 2대 1의 비율로 훨씬 많았다. 남성과 여성 모두 크게 실망했다고 회상하였다.” 물론, 심지어 부부라 하더라도 성에 관해서는 어려움을 겪는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 있고 서약으로 이루어진 결혼 생활에서는 그러한 문제가 보통 해결될 수 있습니다.

난잡한 성생활의 대가

청소년 중에는 관계를 갖는 일에 대해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관능적 쾌락을 즐기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여러 상대와 성관계를 갖습니다. 연구가인 로버트 소렌슨은 십대의 성생활에 관해 연구하면서, 그러한 청소년이 난잡한 성생활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렌슨은 이렇게 기술합니다. “개인 면담에서, 많은 [난잡한 생활을 하는 청소년은] ·⁠·⁠· 거의 목적도 자기 만족도 없이 그저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 놓는다.” 그들 중 46퍼센트는 “지금 이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내 능력의 대부분은 소모될 것이다”라는 말에 동의하였습니다. 소렌슨은 그 외에, 난잡한 생활을 하는 청소년은 “자신감과 자중심”이 줄어든다고 말하였다는 점도 밝혀 주었습니다.

잠언 5:9에서 이렇게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부도덕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들의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그 일이 있은 후의 아침

일단 남녀가 불법적인 관계를 맺고 나면, 흔히 그들은 서로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됩니다. 소년은, 관계를 맺은 소녀에 대한 감정이 이전처럼 강렬하지 않음을 알게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 소녀가 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한편, 소녀는 이용당했다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암논이라는 젊은이에 관한 성서 기록을 생각해 봅시다. 암논은 처녀 다말을 열애하여 상사병에 걸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관계를 가진 후에는, “암논이 저를 심히 미워”하였습니다.—사무엘 하 13:15.

마리아라는 소녀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성관계를 가진 후에, 마리아는 이렇게 시인하였습니다. “나는 (자신의 약함 때문에) 자신이 미웠어요. 그리고 남자 친구도 미웠구요. 사실, 성관계로 인하여 우리 사이가 더욱 친밀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관계가 끝나고 말았지요. 그를 다시 보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렇습니다. 혼전 성관계를 가짐으로써 두 사람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선을 넘는 것입니다!

가정 생활 분야에서 존경받는 연구가인 폴 H. 랜디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혼전 성관계의] 일시적인 영향이 관계를 강화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나, 장기적인 영향은 아주 판이할 수 있다.” 사실, 성관계를 가지는 남녀가 절제를 하는 남녀보다 헤어지기가 더 쉬운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불법적인 성관계는 질투와 불신감을 품게 하기 때문입니다. 한 소년은 이렇게 시인하였습니다. “관계를 갖고 나면, 어떤 친구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가 나와 관계를 가졌으니, 아마 다른 사람과도 관계를 가졌을지 몰라.’ 사실, 나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 극도로 질투하고 의심하고 의혹을 품었지요.”

이것은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습니다”라고 한 진실한 사랑과는 실로 거리가 먼 것입니다. (I 고린도 13:4, 5, 새번역) 지속적인 관계를 증진시키는 사랑은 맹목적인 욕정에 기초해 있지 않습니다.

순결의 유익—평화와 자중심

하지만 순결을 유지하는 것은 청소년이 비참한 결과를 피하는 데 있어서뿐 아니라 여러 모로 도움이 됩니다. 성서는 애인에 대한 사랑이 강렬했음에도 순결을 지킨 한 소녀에 관해 알려 줍니다. 그 결과, 그 소녀는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부도덕의 압력을 받으면 쉽사리 ‘열리는,’ ‘자동식 문’이 아니었습니다. 도덕적으로 말해서, 그 소녀는 마치 접근할 수 없는 망대를 갖춘, 난공 불락의 요새화된 성벽과 같았습니다! 그 소녀는 “귀중히 여기는 자”로 불릴 만하였으며, 장래의 자기 남편에 대하여,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소녀가 소유한 정신의 평화는 그 두 사람 사이의 만족에 기여하였습니다.—아가 6:9, 10; 8:9, 10.

앞에 언급된 순결한 소녀인 에스터도 그와 같은 내적인 평화와 자중심을 지녔습니다. 에스터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자신에 대해 좋은 감정을 지녔습니다. 심지어 직장 동료들이 나를 조롱할 때에도, 나의 순결을 다이아몬드처럼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은 매우 희귀했기 때문이지요.” 뿐만 아니라, 에스터와 같은 청소년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일이 없습니다. 19세 된 그리스도인인 스테판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해 선한 양심을 갖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관계를 갖지 않고도 어떻게 남녀가 서로 잘 알게 될 수 있는가?’라고 궁금해 하는 청소년이 있을지 모릅니다.

지속성 있는 친밀감을 키워 나가는 일

성관계만으로나, 입맞춤과 같은 애정의 표현만으로는 영속적인 관계를 다져 나갈 수 없습니다. 앤이라는 젊은 여자는 이렇게 주의를 줍니다. “때때로 너무나도 빨리 신체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남녀가 서로에게 애정을 아낌없이 주는 데 시간을 보내면, 의미있는 의사 소통은 중단됩니다. 따라서 그들은 결혼한 후에 다시 표면화될 수 있는 심각한 차이점들을 적당히 얼버무릴지 모릅니다. 후에 앤은—결국 배우자가 된—다른 남자와 교제를 시작하였을 때, 신체적으로 너무 친밀해지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하였습니다. 앤은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는 문제들을 풀어 나가고 우리의 인생 목표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는 결혼할 상대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에 예기치 않은 일들이 있었지만 즐거울 뿐이었습니다.”

앤과 그의 남자 친구는 그처럼 자제하기가 어려웠습니까? 앤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예, 정말로 어려웠어요. 나는 선천적으로 다정 다감한 사람이거든요. 그러나 우리는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 협력하였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곧 하게 될 결혼을 더럽히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남편이나 아내가 된 사람이 이전의 성 경험이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그런 경험은 흔히 부부간의 친밀한 관계에 손상을 줍니다! 혼전 관계에서는 자기 만족과, 성의 육체적인 면에 치중합니다. 욕정을 제어하지 못한 일로 인해 상호 존경심이 침식됩니다. 일단 그러한 이기적인 버릇이 생기면, 그것을 고치기가 어렵고 마침내 두 사람의 관계에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에서 건전한 친밀한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억제와 자제가 필요합니다. 받는 것보다는 주는 일, 즉 ‘자신의 성적 의무를 다하는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고린도 전 7:3, 4) 순결을 유지하는 것은 그러한 자제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의 복지에 대한 비이기적 관심을 자신의 욕망보다 앞에 두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결혼 생활의 만족은 오로지 육체적 요인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사회학자인 시모 피셔는 여성의 성적 반응이 또한, 아내가 느끼는 “친밀감, 친근감 및 의뢰감”에, 남편이 “아내와 일체감을 갖”는 것에 “그리고 ·⁠·⁠· 아내가 어느 정도로 남편을 확신하느냐”에 좌우된다고 말합니다.

흥미롭게도 기혼 여성 1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 혼전 성 경험이 있는 여성의 4분의 3은 결혼 생활의 첫 두주 동안 성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더욱이 장기간 성적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한 사람들은 모두 “혼전 성관계의 경험”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혼전 성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결혼한 다음에 간음을 범할 가능성이 두배나 많다는 것도 그 조사에서 밝혀졌습니다! “음행[이] ·⁠·⁠· 마음[선한 동기, 신세]을 빼앗”는다는 성서의 말씀은 과연 참됩니다.—호세아 4:11.

그러므로 ‘누구나 자신이 심은 것을 거둡니다.’ (갈라디아 6:7, 8) 욕정을 심으면, 의심과 불안을 가득 거둡니다. 그러나 자제를 심으면, 그 수확으로 정절과 안심을 거둡니다. 서두에 언급된 에스터는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남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정으로 돌아와 아내를 맞고 우리가 서로에게만 속해 있음을 아는 것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이 확신감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결혼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들은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음을 앎으로 정신의 평화를 누립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순결을 유지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순결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토의를 위한 질문

◻ 당신이 아는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혼전 성관계가 어느 정도나 널리 퍼져 있습니까? 그로 인해 당신에게 어떠한 문제나 압력이 야기됩니까?

◻ 혼전 성관계의 부정적인 후유증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그러한 면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청소년을 알고 있습니까?

◻ 수태 조절이 십대의 임신 문제에 대한 해결책입니까?

◻ 일부 청소년이 불법적인 성관계를 가진 후에 죄책감이나 실망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미혼 남녀가 서로 더 가까워지는 데 성관계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대답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두 남녀는 교제중에 어떻게 서로를 잘 알게 될 수 있습니까?

◻ 결혼할 때까지 동정을 지킴으로써 오는 유익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182면 삽입]

“십대이면서도 성관계를 갖지 않은 청소년은 예외적인 사람이다.”—앨런 굿매처 연구소

[187면 삽입]

“몹시 실망했어요—기대했던 좋은 느낌이나 사랑의 포근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190면 삽입]

혼전 성관계를 가짐으로써 두 사람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선을 넘는 것이다!

[184, 185면 네모와 삽화]

내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어요!’—십대 임신 문제

“해마다 십대 10명 중 1명 이상이 임신하며, 그 비율은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소녀 10명 중 4명이 아직 십대 시절에 적어도 한번은 임신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십대 임신: 사라지지 않는 문제」(Teenage Pregnancy: The Problem That Hasn’t Gone Away)라는 책은 그와 같이 알려 준다. 그러면 어떤 부류의 소녀들이 임신하게 되는가? 「사춘기」(Adolescence)지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학교 다니는 나이에 임신하는 소녀들은 온갖 사회 경제 계층에 속해 있다 ·⁠·⁠· 어떠한 인종, 어떠한 신앙 그리고 농촌과 도시를 막론하고 나라 어느 곳에나 다 속해 있다.”

사실 임신을 원하는 소녀는 거의 없다. 임신한 400여 명의 십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프랑크 푸르스텐베르크 2세는 “면담중에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았다’는 말이 가장 많이 되풀이되”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성관계를 즐기면서도 임신하지 않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소녀들이 있다. 푸르스텐베르크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즉시’ 임신할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가 하면 단지 ‘얼마 만에 한번씩만’ 성관계를 갖는다면 임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 임신되지 않고 성관계를 갖는 생활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 큰 모험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은 성관계를 가질 때마다 임신할 위험성은 높아진다. (544명의 소녀 중, ‘거의 5분의 1이 성관계를 갖기 시작한 지 6개월 이내에 임신하였다.’) 로빈이라는 미혼모처럼, 고의로 수태 조절을 이용하지 않기로 한 소녀가 많다. 로빈은—많은 청소년이 그러하듯—피임약을 사용하면 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이렇게 시인한다. “수태 조절을 하게 되면, 내가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지요.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그저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랐던 거지요.”

그런 식의 추리를 미혼모들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푸르스텐베르크의 조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십대들의 거의 반수는, 결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성관계를 갖는 것이 여자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 두말할 나위 없이, 언행에 명백한 모순이 있었다. ·⁠·⁠· 그들은 한 가지 표준을 배웠으면서도 다른 표준에 따라 생활하는 법을 익힌 것이다.” 이러한 감정적 갈등 때문에 “특히 그러한 소녀들이 자신들의 성행위의 결과를 현실적으로 대처하는 데 어려움이 있게 된다.”

심지어 수태 조절을 이용한다 해도 미혼모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이가 아이를 갖다」(Kids Having Kids)라는 책은 우리에게 이러한 점을 상기시켜 준다. “무슨 방법에나 실패율이 있다. ·⁠·⁠· 결혼하지 않은 십대들이 끊임없이 수태 조절법을 사용한다 해도 ·⁠·⁠· [미국에서] 해마다 500,000명은 임신하게 된다.” 이어서 그 책은 16세 된 미혼모 팻이 한탄하듯 이렇게 말한 것을 인용한다. “나는 [수태 조절약]을 충실히 복용했지요. 정직히 말해서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성서는 이렇게 경고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 6:7) 임신은, 음행을 함으로써 거두는 불유쾌한 수확의 한 가지 부면일 뿐이다. 다행히도, 부도덕의 덫에 걸렸던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미혼모들도 돌아서서 다윗 왕과 같은 회개하는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였다.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2) 그처럼 회개한 미혼모들이 자신의 자녀를 “여호와의 징계와 정신적 단속으로” 양육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노력을 축복하실 것이다.—에베소 6:4, 신세.

하지만 혼전 성관계를 피하는 것이 더 낫다! 아무 문제 없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않도록 하라.

[183면 삽화]

부도덕한 성관계를 가진 후에, 청소년은 흔히 이용당했다고 느끼거나 심지어 수치심을 느낀다

[186면 삽화]

성 매개 질환은 흔히 혼전 성관계로 인한 것이다

[188면 삽화]

애정을 지나치게 나타내면 남녀가 도덕적 위험에 노출될 수 있으며 의미 깊은 의사 소통이 단절될 수 있다

[189면 삽화]

결혼 생활의 행복은 부부간의 육체 관계 외에도 여러 가지 것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