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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성경과 전통을 통해 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

유대교—성경과 전통을 통해 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

제9장

유대교—성경과 전통을 통해 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

1, 2. (ㄱ) 역사와 문화에 영향을 준 탁월한 유대인으로 어떤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ㄴ) 일부 사람들은 무슨 질문을 제기할지 모릅니까?

모세, 예수, 말러,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이들 모두에게는 무슨 공통점이 있었습니까? 이들은 모두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인류 역사와 문화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영향을 준 사람들입니다. 분명히 유대인은 수천 년 동안 주목할 만한 존재였습니다. 성서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2 다른 고대 종교나 문화와는 달리, 유대교는 신화가 아니라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지 모릅니다. ‘유대인은 50억이 넘는 세계 인구 가운데 1800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소수 민족에 불과하다. 그들의 종교인 유대교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유대교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

3, 4. (ㄱ) 히브리어 성경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ㄴ) 유대인의 종교와 그 뿌리를 살펴보아야 할 얼마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3 한 가지 이유는 유대인의 종교의 뿌리가 4000년 가량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다른 주요 종교들도 많든 적든 유대교 경전의 내용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조 220면 네모.) 1세기 유대인, 예수(히브리어, 예슈아)에 의해 창시된 그리스도교는 히브리어 성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쿠란(코란)을 읽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이슬람교 역시 유대인의 성경에서 많은 것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쿠란, 수라 2:49-57; 32:23, 24) 그러므로 유대인의 종교를 살펴보는 것은 다른 수백 가지 종파와 분파들의 뿌리를 살펴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4 매우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유대인의 종교가 참 하나님을 찾으려는 인류의 노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연결 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따르면, 유대인의 선조 아브람은 거의 4000년 전에 이미 참 하나님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 유대인과 그들의 믿음이 어떻게 발전되었는가를 질문하는 것은 이치적입니다.—창세 17:18, 신세 참조.

유대인의 기원은 무엇인가?

5, 6. 유대인과 그 이름이 생긴 유래를 간략하게 설명하십시오.

5 일반적으로 말해서, 유대 민족은 고대 셈족의 한 갈래로서 히브리어를 말하는 사람들의 후손입니다. (창세 10:1, 21-32; 역대 상 1:17-28, 34; 2:1, 2) 거의 4000년 전, 유대인의 선조 아브람은 수메르의 번창하는 대도시 칼데아(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였는데, 그 땅에 관해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11:31-12:7) 아브람은 창세기 14:13에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으로 불렸습니다. 그의 이름은 나중에 아브라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창세 17:4-6) 유대인의 후손 계열은 아브람으로부터 비롯되며, 그의 후손은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으로 시작됩니다. 야곱은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창세 32:27-29) 이스라엘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열두 지파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열두 아들 중의 하나가 유다로서, 그 이름에서 마침내 “유대인”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습니다.—열왕 하 16:6, 미국 유대인 출판 협회 발행, 「성경」(1955년판).

6 세월이 흐르면서 “유다인” 곧 “유대인”이란 용어는 유다의 후손에게뿐 아니라 이스라엘인 모두에게 적용되게 되었습니다. (에스더 3:6; 9:20) 기원 70년에 로마인이 예루살렘을 파괴했을 때 유대인의 족보가 없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자기가 어느 지파 후손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유대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래 된 유대인의 종교는 수천 년에 걸쳐서 발전되고 변화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공화국에 사는 수백만 명의 유대인과 디아스포라(세계 전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가 유대교를 믿고 있습니다. 이 종교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모세와 율법 그리고 한 나라

7.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무슨 맹세를 하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7 기원전 1943년, *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택하여 특별한 종을 삼으셨으며, 나중에는 아브람이 자기 아들 이삭을 기꺼이 희생물로 바치려고 하는 충실성을 나타낸 일 때문에—실제로 그런 희생물을 바치지는 않았지만—그에게 한 가지 엄숙한 맹세를 하셨습니다. (창세 12:1-3; 22:1-14) 하나님께서는 그 맹세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히브리어:יהוה, YHWH]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 같게 하리[라] ·⁠·⁠·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이 맹세는 아브라함의 아들과 손자에게 되풀이되었으며, 그 다음에는 유다 지파와 다윗 계열로 이어졌습니다. 인격체이신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직접 관계하신다는 이 엄격한 일신론적 개념은 고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유대인의 종교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습니다.—창세 22:15-18; 26:3-5; 28:13-15; 시 89:3, 4, 28, 29, 35, 36.

8. 모세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이스라엘에서 무슨 역할을 수행하였습니까?

8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후손과 특별한 계약을 맺으심으로써 한 나라를 위한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이 계약은 위대한 히브리 지도자이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중보인 모세를 통해 체결되었습니다. 모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리고 유대인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 인물입니까? 성서 출애굽기의 기록은 모세가(기원전 1593년에) 이집트(애굽)에서, 다른 이스라엘인들과 함께 속박된 이스라엘인 노예 부모에게서 태어났음을 알려 줍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해 “께서 택하신” 사람이었습니다. (신명 6:23; 34:10, 유대인 출판 협회 발행, 현대 「타나크, 새번역 성경」[1985년판]) 모세는 이스라엘의 예언자·재판관·지도자·역사가의 역할에 더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 계약의 중보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출애굽 2:1-3:22.

9, 10. (ㄱ) 모세를 통해서 전달된 율법은 무엇이었습니까? (ㄴ) 십계명은 생활상의 어떤 부면들을 망라하였습니까? (ㄷ) 율법 계약은 이스라엘에게 어떤 의무를 부여하였습니까?

9 이스라엘이 받아들인 율법은 십계명 그리고 일상 행실에 대한 지시와 지침을 포괄적으로 열거한 600여 가지에 달하는 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참조 211면 네모.) 율법에는 평범한 것과 거룩한 것—신체적·도덕적 요구 조건과 하나님에 대한 숭배—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10 이 율법 계약 곧 종교상의 규약은 족장들의 믿음에 형식과 내용을 부여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헌신한 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유대인의 종교는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였으며, 유대인은 그들의 하나님을 숭배하고 섬기기 위해 조직된 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9:5, 6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계약]을 지키면 ·⁠·⁠·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왕국]가 되며 거룩한 백성[나라]이 되리라.” (신세 참조) 그러므로 이스라엘인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봉사할 ‘선민’(選民)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계약을 통해 약속된 것이 성취되는 데는 ‘너희가 내 말을 잘 들으면’이라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이 헌신한 나라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기원전 8세기에) 유대인들에게 “나 여호와[히브리어: יהוה, YHWH]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이사야 43:10, 12, 사체로는 본서에서.

제사장, 예언자, 왕들의 나라

11. 어떻게 제사직과 왕권이 생겨났습니까?

11 이스라엘 나라가 아직 사막에 있으면서 약속의 땅을 향해 가고 있는 동안, 모세의 형 아론 계열에서 제사직이 확립되었습니다. 커다란 이동식 천막인 성막이 이스라엘인의 숭배와 희생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출애굽 26-28장)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 나라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이르렀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그 땅을 정복하였습니다. (여호수아 1:2-6) 마침내 지상의 왕권이 수립되었으며, 기원전 1077년에는 유다 지파의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통치 때, 새로운 국가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왕권과 제사직이 모두 확립되었습니다.—사무엘 상 8:7.

12.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무슨 약속을 하셨습니까?

12 다윗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웅장한 성전을 건축했으며, 그 성전이 성막을 대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계약을 맺어 왕권이 그의 계열에 영원히 머물 것임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기름부음받은 왕 메시야는 언젠가 다윗의 후손 계열에서 나올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예언은 이 메시야 왕 곧 “씨”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모든 나라가 완전한 통치를 받을 것임을 지적했습니다. (창세 22:18) 이 희망은 뿌리를 내렸으며, 유대인의 종교의 메시야 지향적 성격이 분명하게 구체화되었습니다.—사무엘 하 7:8-16; 시 72:1-20; 이사야 11:1-10; 스가랴 9:9, 10.

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타락을 시정하기 위해 누구를 사용하셨습니까? 예를 드십시오.

13 그렇지만 유대인은 가나안인과 그 밖의 주변 나라들이 믿던 거짓 종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를 범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시정하고 그들이 되돌아오도록 인도하기 위해서, 백성에게 소식을 전할 예언자들을 잇달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언은 유대인의 종교의 또 다른 독특한 점이 되었으며, 히브리어 성경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히브리어 성경 중에서 열여덟 권은 예언자의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다.—이사야 1:4-17.

14. 사건들은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참됨을 어떻게 입증하였습니까?

14 그 예언자들 가운데 두드러진 사람은 이사야, 예레미야 및 에스겔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우상 숭배 때문에 그 나라에 닥칠 여호와의 형벌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이 형벌은 기원전 607년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의 배교 때문에, 그때 여호와께서는 당시의 지배적인 세계 강국 바빌론(바벨론)으로 하여금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멸하고 백성을 포로로 잡아가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은 참됨이 증명되었으며, 기원전 6세기 대부분의 기간에 계속된 이스라엘의 70년 유배 생활은 역사에 기록된 사실입니다.—역대 하 36:20, 21; 예레미야 25:11, 12; 다니엘 9:2.

15. (ㄱ)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숭배가 유대인 사이에서 뿌리를 내렸습니까? (ㄴ) 회당은 예루살렘에서 행하던 숭배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15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바사)의 키루스(고레스)는 바빌론을 무너뜨리고, 유대인들이 그들의 땅에 다시 정착해서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소수의 남은 자들이 호응하였지만,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바빌론 사회의 영향 아래 머물렀습니다. 유대인들은 나중에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중동과 지중해 주변에 유대인 정착지들이 생겨났습니다. 공동체마다 각 마을의 유대인 회중의 중심지인 회당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숭배가 생겨났습니다. 이 마련 때문에, 자연히 예루살렘에 재건된 성전을 덜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널리 퍼진 유대인들은 이제 참으로 디아스포라가 되었습니다.—에스라 2:64, 65.

유대교가 그리스식 옷을 입고 등장하다

16, 17. (ㄱ) 기원전 4세기에 무슨 새로운 영향력이 지중해 세계를 휩쓸었습니까? (ㄴ) 누가 그리스 문화를 퍼뜨리는 도구 역할을 하였으며, 어떻게 그 일을 하였습니까? (ㄷ) 따라서 유대교는 어떤 모습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하였습니까?

16 기원전 4세기 무렵, 유대인 공동체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으며, 그 때문에 지중해 세계와 그 너머까지 휩쓸던 비유대 문화의 물결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 물결은 그리스(헬라)에서 시작되었는데, 유대교는 그 물결을 따라 헬레니즘식 옷을 입고 등장하였습니다.

17 기원전 332년, 그리스의 장군 알렉산더 대제는 전광 석화처럼 빠른 속도로 중동을 정복했으며,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 유대인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 알렉산더의 계승자들은 그의 헬레니즘화 계획을 계속 추진하여, 제국 전역에 그리스 언어·문화·철학 등을 보급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 문화와 유대 문화는 융합 과정을 거치면서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18. (ㄱ) 왜 히브리어 성경의 희랍어 「칠십인역」이 필요했습니까? (ㄴ) 그리스 문화의 어떤 면이 특히 유대인에게 영향을 주었습니까?

18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히브리어 대신 희랍(그리스)어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기원전 3세기초에 들어서, 히브리어 성경을 희랍어로 옮긴 최초의 번역본인 「칠십인역」(Septuagint)이 번역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번역본을 통해 많은 이방인이 유대인의 종교에 존경심을 갖게 되고 친숙해지게 되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개종하기까지 했습니다. * 반면에 유대인들은 그리스 사상을 잘 알게 되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유대인에게 전혀 생소한 것인 철학자가 되기까지 했습니다. 그 한 예가 기원 1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였습니다. 필로는 유대교와 그리스 철학이 궁극적으로 같은 진리를 표현하기라도 하는 듯이, 유대교를 그리스 철학의 용어로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19. 한 유대인 저술가는 그리스 문화와 유대 문화의 융합 시기를 어떻게 묘사합니까?

19 그리스 문화와 유대 문화가 상호 교류하던 이 시기를 요약하여, 유대인 저술가 맥스 디몬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플라톤의 사상,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유클리드의 과학으로 정신을 넓힌 유대인 학자들은 새로운 도구를 가지고 토라에 접근하였다. ·⁠·⁠· 그들은 유대인의 계시에 그리스인의 이성을 더해 나갔다.” 그리스 제국을 흡수하고 이어서 기원전 63년에 예루살렘을 흡수한 로마 통치 아래 일어난 일들은 보다 의미 심장한 변화를 위한 길을 닦아 놓았습니다.

로마 통치 아래의 유대교

20. 기원 1세기 당시 유대인의 종교적 상황은 어떠하였습니까?

20 통용 기원 1세기의 유대교는 독특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맥스 디몬트는 당시의 유대교가 “그리스의 정신과 로마의 칼”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정치적 압제와 메시야에 관한 예언, 특히 다니엘의 예언에 대한 해석 때문에, 유대인은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여러 분파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성전에서 바치는 희생보다 구전의 법(참조 221면 네모.)을 더 강조했습니다. 사두개인은 성전과 제사직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 밖에도 에세네파, 열심당, 헤롯당 등이 있었습니다. 모든 분파가 종교적·철학적으로 의견을 달리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랍비(스승, 선생)로 불렸는데, 율법에 대한 지식 때문에 명성을 떨쳤고 새로운 형태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21. 기원 첫 두 세기 동안 무슨 사건들이 유대인에게 극적인 영향을 주었습니까?

21 그렇지만 유대교는 특히 이스라엘 땅에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분열을 거듭하였습니다. 마침내 로마에 대항하는 전면적인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기원 70년에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여, 도시를 초토화하고, 성전을 완전히 불사른 다음, 주민들을 흩어 놓았습니다. 결국은 유대인의 예루살렘 출입을 전면 금지시키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성전도 없고 국토도 없이,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진 사람들만 남은 유대교의 입장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새로운 종교적 표현이 필요하였습니다.

22. (ㄱ) 예루살렘 성전이 없어짐으로써 유대교는 무슨 영향을 받았습니까? (ㄴ) 유대인은 성서를 어떻게 구분합니까? (ㄷ) 탈무드란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22 성전의 멸망과 더불어, 사두개인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이 옹호하던 구전의 법이 새로운 랍비 유대교의 주요 특징이 되었습니다. 더 깊이 있는 연구와 기도 및 경건한 행위가 성전에서 바치는 희생과 순례를 대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교는 어디서나, 어느 때나, 어떤 문화적 환경에서도 믿을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랍비들은 이 구전의 법을 기록으로 옮겼습니다. 그 기록에 주석을 달고, 다음에는 주석에 또 주석을 달았는데, 이 모든 것을 합한 것이 탈무드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참조 220-1면 네모.

23. 그리스식 사고 방식의 영향으로, 유대인이 중시하는 것이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23 이 다양한 영향이 낳은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맥스 디몬트는 그의 저서 「유대인과 하나님 그리고 역사」(Jews, God and History)에서, 유대인의 이념과 종교의 횃불을 든 것은 바리새인이었지만, “횃불 그 자체에 불을 붙인 것은 그리스 철학자들이었다”고 말합니다. 탈무드의 많은 부분이 매우 율법주의적이었지만, 거기 실린 예와 설명들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뚜렷하게 반영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영혼불멸 같은 그리스의 종교 개념이 유대인의 용어로 표현되었습니다. 실제로, 신 랍비 시대에는 유대인들 사이에 탈무드—그 무렵에는 이미 율법주의와 그리스 철학이 융합된 것—를 존중하는 일이 늘어났으며, 마침내 중세에 이르러서는 유대인들이 탈무드를 성서 자체보다 더 존중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중세의 유대교

24. (ㄱ) 중세에 유대인 사이에서 어떤 두 가지 주요 공동체가 생겨났습니까? (ㄴ) 두 공동체는 유대교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24 중세(기원 500년경부터 1500년경까지)에는 두 가지 유대인 공동체—이슬람 통치하의 스페인에서 번성한 세파르디 유대파와 중부 유럽과 동유럽에서 번성한 아슈케나지 유대파—가 생겨났습니다. 두 공동체 모두 오늘날까지 유대인의 종교 해석의 기초가 되는 저술물과 사상을 남긴 랍비 학자들을 배출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오늘날 유대교에서 행하는 많은 관습과 종교 의식은 실제로 중세에 시작된 것들입니다.—참조 231면 네모.

25. 가톨릭 교회는 유럽의 유대인에 대해 마침내 어떤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25 12세기에 들어서, 여러 나라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는 물결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저술가 아바 에반은 「나의 동포—유대인 이야기」(My People—The Story of the Jews)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가톨릭 교회의 일방적 영향 아래로 들어온 나라는 ·⁠·⁠· 어디나 상황이 똑같았다. 극심한 신분 격하, 고문, 살육, 추방 등이 잇달았다.” 마침내, 1492년에는, 가톨릭 통치 아래로 다시 들어온 스페인 역시 다른 나라들의 뒤를 이어 모든 유대인을 그 나라 영토에서 추방시키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15세기 말엽에는, 유대인이 서유럽의 거의 전역에서 추방되어, 동유럽과 지중해 주변 나라들로 도망하였습니다.

26. (ㄱ) 무엇이 유대인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까? (ㄴ) 유대인 사이에서 어떤 주요 분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까?

26 여러 세기 동안의 압제와 박해를 겪으면서, 세계 여러 곳에서 유대인 가운데 자칭 메시야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모두가 어느 정도는 인정을 받았지만, 결국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17세기 무렵, 유대인들이 활기를 되찾고 그 암흑의 시기에서 벗어나는 데는 새로운 활력소가 필요하였습니다. 18세기 중엽에는, 유대인들이 느끼던 실망에 대한 해결책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매일의 신앙 생활과 활동으로 표현되는 신비주의와 종교적 황홀경의 혼합체인 하시디즘이었습니다. (참조 226면 네모.) 그와 대조되는 것으로,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은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역사상 “현대 유대교”로 간주되는 것으로 발전한 하스칼라 곧 계몽의 길이었습니다.

“계몽 운동”에서 시온주의로

27. (ㄱ) 모제스 멘델스존은 유대인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ㄴ) 왜 많은 유대인이 한 개인으로서의 메시야에 대한 희망을 배척하였습니까?

27 모제스 멘델스존(1729-86년)은 유대인이 탈무드의 속박에서 벗어나 서구 문화를 따를 경우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멘델스존은 이방인 세계에서 매우 존경받는 유대인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19세기에, 특히 “그리스도교”를 믿는 러시아에서 또다시 폭력적인 반유대주의 물결이 일자, 멘델스존이 주창한 운동을 따르던 사람들은 실망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유대인을 위한 정치적 도피처를 찾는 데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 개인으로서의 메시야가 유대인을 다시 이스라엘로 인도할 것이라는 사상을 배척하고, 다른 수단을 통해서 유대인 국가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이 운동은 시온주의의 개념이 되었습니다. 시온주의는 한 권위자가 말하듯이, “유대인의 메시야 신앙이 ·⁠·⁠· 세속화된 것”이었습니다.

28. 20세기의 무슨 사건이 유대인의 태도에 영향을 주었습니까?

28 나치의 부추김에 의한 대학살(1935-45년)로 유럽에서 6백만 명 가량의 유대인이 살해된 일 때문에, 시온주의는 결정적인 자극을 받았으며 세계적으로 많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시온주의자들의 꿈은 1948년에 이스라엘 국가가 설립됨으로써 실현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의 유대교에 관심을 갖게 되며, 또한 현대의 유대인이 무엇을 믿는가를 질문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한 분

29. (ㄱ) 간단히 말해서, 현대 유대교란 무엇입니까? (ㄴ) 유대교의 독자성은 어떻게 표현됩니까? (ㄷ) 유대인의 축일과 관습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29 간단히 말해서, 유대교는 민족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유대교 개종자는 유대인의 종교의 신봉자가 될 뿐 아니라 유대 민족의 일원이 되기도 합니다. 유대교는 매우 엄격한 의미의 일신교이며,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에, 특히 유대인에 대하여 간섭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유대교의 숭배에는 여러 가지 연례 축일과 다양한 관습이 관련됩니다. (참조 230-1면 네모.) 모든 유대인이 받아들이는 신조나 교의는 없지만, 셰마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신앙 고백이 회당에서 바치는 숭배의 중심 부분을 이룹니다. 셰마는 신명기 6:4(미국 유대인 출판 협회 발행, 「성경」[1955년판])에 근거한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주이시니라”라는 내용의 기도문입니다.

30. (ㄱ) 유대인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ㄴ) 하나님에 대한 유대인의 견해는 그리스도교국의 견해와 어떻게 상충됩니까?

30 한 하나님에 대한 이 신앙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로 전해졌습니다. 랍비인 J. H. 헤르츠 박사에 따르면, “절대적 일신 신앙에 관한 이 숭고한 선언은 모든 다신 숭배에 대한 선전 포고”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셰마는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신조 역시 하나님의 유일성을 범하는 것으로 배척”합니다. * 그러면 이제 사후 생명 문제에 대한 유대인의 신앙으로 우리의 주의를 돌려 봅시다.

죽음, 영혼, 부활

31. (ㄱ) 어떻게 영혼불멸 교리가 유대교 가르침에 들어오게 되었습니까? (ㄴ) 영혼불멸 가르침으로 인해 어떤 모순이 생겼습니까?

31 현대 유대교의 한 가지 기본 신앙은 사람에게 몸은 죽어도 살아 남는 불멸의 영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신앙은 성서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유대 백과 사전」(Encyclopaedia Juda-ica)은 “영혼불멸 교리가 유대교에 들어온 것은 필시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솔직하게 시인합니다. 하지만 같은 백과 사전에서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이 개념으로 인해 교리적 모순이 생겼습니다. “기본적으로 부활과 영혼불멸의 두 신앙은 모순되는 것이다. 전자는 끝날의 집단 부활 즉 땅에서 죽음의 잠을 자는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나는 것을 지적하는 데 반해, 후자는 몸이 죽은 후의 영혼의 상태를 지적한다.” 유대교 신학은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였습니까? “사람이 죽을 때 그의 영혼은 다른 영역에서 계속 살며 (이 개념 때문에 천당과 지옥에 관한 온갖 신앙이 생겼음), 한편 그의 몸은 이 땅에서 모든 죽은 자들이 육체로 부활될 때를 기다리며 무덤 속에 누워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였”습니다.

32. 성서는 죽은 자에 관해 어떻게 알려 줍니까?

32 대학교 강사인 아르투어 헤르츠베르크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히브리어] 성서 자체에서 알려 주는 사람의 생활 영역은 이 세상이다. 천당과 지옥에 관한 교리는 전혀 없으며, 끝날에 있을 죽은 자들의 최종 부활에 관한 개념만 발전되고 있다.” 이것은 성서에 들어 있는 개념을 간단하고 정확하게 설명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 장차 들어갈 음부[인류의 공통 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습니다.—전도 9:5, 10; 다니엘 12:1, 2; 이사야 26:19.

33. 유대인은 원래 부활 교리를 어떻게 보았습니까?

33 「유대 백과 사전」에 따르면, “랍비 시대에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교리는 유대교의 중심 교리 중 하나로 간주”되었으며 “영혼불멸 ·⁠·⁠· 신앙과 구별”되었습니다. *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유대교의 모든 분파가 영혼불멸은 받아들이는 데 반해, 죽은 자의 부활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34. 성서의 견해와는 대조적으로, 탈무드는 영혼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후기 필자들은 어떻게 해설합니까?

34 성서와는 대조적으로,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탈무드에는 불멸의 영혼에 대한 설명과 이야기, 심지어 그에 대한 자세한 묘사도 가득 들어 있습니다. 후기 유대교의 신비주의 문헌인 카발라는 더 나아가서 환생(영혼의 윤회)을 가르치기까지 합니다. 환생은 본래 고대 힌두교의 가르침입니다. (참조 제5장.) 오늘날 이스라엘에서는 이 교리가 유대교의 가르침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며, 하시디즘 신앙과 문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마르틴 부버는 자신의 저서 「후기의 스승들—하시드 이야기」(Tales of the Hasidim—The Later Masters)에, 리젠스크의 랍비, 엘리멜레크 학파의 다음과 같은 영혼 이야기를 포함시켰습니다. “속죄일에, 랍비 아브라함 예호슈아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제사장이 행하던 예식을 재연하는 기도문인 아보다를 외곤 하였는데, ‘그리하여 그가 말하기를’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그 표현을 사용하는 대신에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를’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영혼이 예루살렘 대제사장의 몸 안에 있던 때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35. (ㄱ) 개혁 유대교는 영혼불멸 가르침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합니까? (ㄴ) 영혼에 대한 성서의 분명한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35 개혁 유대교는 더 나아가 부활 신앙도 배척합니다. 개혁 기도서에서는 부활이란 단어를 삭제하고, 오로지 영혼불멸 신앙만을 인정합니다. 성서의 견해는 창세기 2:7에 표현된 바와 같이 매우 분명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산 영혼, 신세]이 된지라.” 몸과 영 곧 생명력이 합쳐져서 “산 영혼”이 됩니다. * (창세 2:7; 7:22; 시 146:4) 반대로 죄인인 인간이 죽으면, 그 영혼이 죽는 것입니다. (에스겔 18:4, 20)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더는 의식있는 그 어떤 존재도 아닙니다. 사람의 생명력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전도 3:19, 신세; 9:5, 10; 12:7, 신세) 죽은 자를 위한 참다운 성서적 희망은 부활—히브리어: 테히야트 함메팀 곧 “죽은 자의 회생”—입니다.

36, 37. 성서 시대의 충실한 히브리인들은 장래 생명에 대해 어떻게 믿었습니까?

36 이와 같은 결론을 들으면 유대인들 중에도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활은 수천 년 동안 참 하나님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진정한 희망이었습니다. 약 3500년 전, 고통을 겪던 충실한 욥은 장차 하나님께서 자기를 셰올 곧 무덤에서 일으키실 때에 관해 말하였습니다. (욥 14:14, 15, 신세 참조) 예언자 다니엘 역시 “끝날에는” 자신이 일으킴을 받을 것으로 확신하였습니다.—다니엘 12:2, 13.

37 충실한 히브리인들이, 그들에게 불멸의 영혼이 있어서 그것이 죽지 않고 내세로 들어갈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할 만한 근거는 성경에 전혀 없습니다. 분명히 히브리인들은, 우주의 별의 수효를 세고 그 별들을 통제하시는 주권자이신 주께서 또한 부활 때에 그들을 기억하실 것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분과 그분의 이름에 대해 충실하였습니다. 그분도 그들에 대해 충실하실 것입니다.—시 18:25; 147:4; 이사야 25:7, 8; 40:25, 26.

유대교와 하나님의 이름

38. (ㄱ) 여러 세기에 걸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하여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ㄴ) 하나님의 이름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38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된 형태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너무 거룩해서 발음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 그 결과, 지난 2000년에 걸쳐서 정확한 발음이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의 견해가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약 3500년 전에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히브리어: יהוה, YHWH],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이것은 나의 영원한 이름, 나의 무궁한 칭호가 될 것이다.” (출애굽 3:15, 「타나크, 새번역 성경」; 시 135:13) 그 이름과 칭호는 무엇이었습니까? 「타나크」의 각주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여기서 YHWH(전통적으로 아도나이 곧 “”라고 읽음)라는 이름은 ‘있다’를 뜻하는 어근 하야와 연관이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곧 테트라그람마톤인데, 테트라그람마톤이란 YHWH(야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 자음으로, 여러 세기 동안 라틴어 형태를 따서 여호와(JEHOVAH)로 알려졌습니다.

39. (ㄱ) 왜 하나님의 이름이 중요합니까? (ㄴ) 유대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발음하지 않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39 역사를 통해서, 유대인이 하나님의 이름의 사용을 강조하는 정도는 고대와 크게 달라졌지만,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크게 중요시하였습니다. A. 코엔 박사가 「만인의 탈무드」(Everyman’s Talmud)에서 기술한 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밝혀 주신 ‘고유의 이름’(솀 하메포라시) 곧 테트라그람마톤, JHVH가 특별히 숭상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숭상된 이유는 그 이름이 인격체로서의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고 특징짓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이름을 선포하시고 숭배자들에게 그 이름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어 성서에 그 이름이 6828회 나온다는 사실이 그 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독실한 유대인들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이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40. 일부 유대인 권위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40 하나님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을 금하는 고대 랍비의 명령(성서의 명령이 아님)에 관하여, 랍비인 A. 마르모르슈타인은 그의 저서 「하나님에 관한 옛날 랍비의 교리」(The Old Rabbinic Doc-trine of God)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관한] 이 금지 규정이 유대인 사이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 이집트에서나 바빌로니아에서나, 유대인들은 일상 대화나 인사에서 하나님의 이름 곧 테트라그람마톤을 사용하지 못하게 금하는 법을 알지도 못했고 지킨 일도 없었다. 하지만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 3세기까지는 그런 금지 규정이 존재했고 부분적으로 지켜지기도 했다.” 옛날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었을 뿐 아니라, 코엔 박사가 말하는 대로, “평신도들에게까지 그 이름을 자유롭게 공개적으로 사용하도록 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권고는 이스라엘인을 [비유대인]과 구별하려는 욕망에 근거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41. 한 랍비에 의하면, 무엇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게 되었습니까?

41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게 되었습니까? 마르모르슈타인 박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유대인의 종교에 대한 헬레니즘의[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반대, 제사장과 귀족들의 배교 때문에, 거룩한 곳[예루살렘 성전]에서 테트라그람마톤을 발음하는 것을 금하는 규칙이 도입되고 확립되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려는 지나친 열심으로, 그들은 말할 때 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완전히 금지시켰으며 참 하나님의 신분을 밝혀 주는 것을 무너뜨리고 흐려놓았습니다. 종교적 반대와 배교라는 복합적 압력으로, 하나님의 이름은 유대인 사이에서 사용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42. 성서 기록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42 그렇지만, 코엔 박사가 말하는 대로, “성서 시대에는 일상 대화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꺼리는 일이 전혀 없었던 듯”합니다. 족장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창세 12:8) 히브리어 성서 필자들은 대부분 기원전 5세기에 말라기가 기록될 때까지 그 이름을 자유롭게 그러나 존경심을 가지고 사용하였습니다.—룻 1:8, 9, 17.

43. (ㄱ)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 것과 관련하여 무엇이 매우 분명합니까? (ㄴ)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게 됨으로써 초래된 한 가지 간접적 영향은 무엇이었습니까?

43 고대 히브리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고 발음했음은 매우 분명합니다. 마르모르슈타인은 나중에 일어난 변화에 관하여 이렇게 시인합니다. “이즈음, 다시 말해서 [기원전] 3세기 상반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면에서 큰 변화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유대교 신학과 철학 전통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며, 그 변화의 영향은 바로 오늘날까지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잃어버림으로써 초래된 영향 중의 하나는, 이름 없는 하나님 개념으로 인해 신학적 진공 상태가 초래되었고, 그 신학적 진공 상태에서 그리스도교국의 삼위일체 교리가 더 쉽게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15:1-3.

44. 하나님의 이름을 삭제함으로써 초래된 그 밖의 영향들은 무엇입니까?

44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면 참 하나님을 숭배하는 일이 위축됩니다. 한 주석가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불행하게도, 하나님을 ‘주’로 부를 때, 그 표현은 정확할지는 모르지만 무미 건조한 것이 된다. ·⁠·⁠· YHWH나 아도나이를 ‘주’로 번역하는 것은 구약의 많은 문구에 추상적이고 형식적이며 원문과 완전히 동떨어진 부호를 삽입하는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에 대한 고대 이스라엘의 지식」[The Knowledge of God in Ancient Is-rael]) 야훼 곧 여호와라는 숭고하고 의미 심장한 이름이 히브리어 원문에 분명히 수천 번이나 나오는 데도 불구하고, 많은 성서 번역본에 그 이름이 빠져 있다는 것은 실로 애석한 일입니다!—이사야 43:10-12.

유대인은 아직도 메시야를 기다리는가?

45. 메시야를 믿는 데는 어떤 성서적 근거가 있습니까?

45 히브리어 성경에는 유대인이 2000여 년 전에 메시야에 대한 희망을 이끌어 내는 근거가 된 예언들이 많습니다. 사무엘 하 7:11-16은 메시야가 다윗 계열에 속할 것임을 지적하였습니다. 이사야 11:1-10은 메시야가 모든 인류에게 의와 평화를 가져올 것임을 예언하였습니다. 다니엘 9:24-27은 메시야가 나타날 때와 죽음으로 끊어질 때에 관한 연대기를 알려 줍니다.

46, 47. (ㄱ) 로마의 지배 아래 살던 유대인은 어떤 종류의 메시야를 기대하였습니까? (ㄴ) 메시야에 관한 유대인의 열망에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46 「유대 백과 사전」에서 설명하는 대로, 1세기 무렵에는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높았습니다. 메시야는 “카리스마를 부여받은 다윗의 후손으로, 로마 시대의 유대인이 믿던 바로는, 하나님에 의해 일으킴을 받아 이방인의 멍에를 꺾고 회복된 이스라엘 왕국을 다스릴 사람”으로 기대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이 기대하던 투사로서의 메시야는 오지 않았습니다.

47 하지만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에서 지적하는 대로, 메시야에 대한 희망은 유대 민족이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한데 뭉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유대교가 존속한 것은 의문의 여지 없이 메시야에 대한 약속과 장래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8세기와 19세기 사이에 현대 유대교가 일어나는 것과 더불어, 많은 유대인은 더 이상 소극적으로 메시야를 기다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나치의 부추김에 의한 대학살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은 인내와 희망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메시야에 관한 소식을 걸림돌로 보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그 의미를 단지 번영과 평화의 새 시대를 뜻하는 것으로 재해석하였습니다. 그때 이후로,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유대인이 전체적으로 인격체로서의 메시야를 기다린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48. 유대교에 대해 이치적으로 무슨 질문들이 생길 수 있습니까?

48 이처럼 유대교가 메시야를 믿지 않는 종교로 변화된 일은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유대교에서 수천 년 동안 메시야가 한 개인이라고 믿은 것은 잘못된 일이었습니까? 어떤 형태의 유대교가 하나님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까? 그리스 철학으로 장식된 고대 유대교입니까? 혹은 지난 200년 동안 발전된, 메시야를 믿지 않는 형태의 유대교입니까? 아니면 메시야에 대한 희망을 충실하고 정확하게 지키는 또 다른 길이 있습니까?

49. 우리는 진실한 유대인들에게 무엇을 권합니까?

49 우리는 이 질문들을 염두에 두고서, 진실한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예수에 관한 주장을 조사해 봄으로써 메시야라는 제목을 재검토해 볼 것을 권합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설명이 아니라, 희랍어 성경을 기록한 유대인 필자들의 설명을 살펴보십시오. 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종교들은 비성서적인 삼위일체 교리를 옹호함으로써, 유대인이 예수를 배척하게 만드는 데 한몫을 하였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주이시니라”는 순수한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는 유대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삼위일체를 받아들일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신명 6:4, 미국 유대인 출판 협회 발행, 「성경」[1955년판]) 그러므로 희랍어 성경에 나오는 예수에 관해 알기 위해 개방적인 정신으로 다음 장을 읽어 볼 것을 권합니다.

[각주]

^ 4항 비교 창세 5:22-24, 「참조주 신세계역 성경」, 22절에 대한 두 번째 각주.

^ 7항 이 책에 나오는 연대는 성서 본문을 전거로 삼은 것임. (사단 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서 발행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유익하다’」 책, 제3과 “세월을 통한 사건들의 연대 계산” 참조.)

^ 17항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 벤 마티티아후(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 유대인들이 그에게 성문을 열어 주면서 알렉산더가 “헬라 왕”으로 정복할 것임을 200여 년 전에 분명히 묘사한 다니엘서의 예언 기록을 보여주었다고 기술한다.—「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제11권 8장 5절; 다니엘 8:5-8, 21.

^ 18항 마카베 가(하스몬 가, 기원전 165년부터 기원전 63년까지) 시대에, 요한 히르카누스 같은 유대인 지도자들은 정복을 통해 유대교로의 대규모 개종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통용 기원이 시작될 무렵, 지중해 세계의 10퍼센트가 유대교인이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 통계는 유대교 개종 운동의 영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 30항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에 따르면, “그리스도교는 삼위일체 신조로 인해 ·⁠·⁠· 다른 두 전통 일신교[유대교와 이슬람교]와 구별된다.” 삼위일체는 “그리스도인의 성서에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주장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교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 33항 이 가르침은 성서에 근거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슈나(산헤드린 10:1)에도 하나의 신조로 들어 있었고, 마이모니데스의 믿음의 원칙 13개 항 중 마지막 것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 35항 “성서는 우리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네페시’는 음식을 필요로 하고 혈관 속에 피가 흐르는 존재로서의 사람 자신이다.”—히브리 유니언 대학의 H. M. 올린스키 박사.

^ 38항 영어판 「타나크」 성서 역본에 히브리어 테트라그람마톤이 나오는 출애굽기 6:3 참조.

^ 39항 「유대 백과 사전」은 이렇게 알려 준다. “YHWH라는 이름을 발음하기 꺼리는 것은 ·⁠·⁠· 셋째 계명(출애굽 20:7; 신명 5:11)이 실제로는 ‘너는 너의 하나님 YHWH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말라’는 뜻인데, 그 말을 ‘너는 너의 하나님 YHWH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한 데서 비롯되었다.”

^ 43항 조지아 대학교(미국)의 종교학 및 히브리어 부교수, 조지 하워드는 이렇게 말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두 존재[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더 밀접하게 연합되어, 마침내는 때때로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테트라그람마톤을 삭제한 일은 그후의 초기 몇 세기 동안 교회를 괴롭혔던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 논쟁을 일으킨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테트라그람마톤을 삭제한 일로 인해 필시 1세기 신약 시대에 존재했던 것과는 다른 신학적 풍토가 조성되었을 것이다.”—「성서 고고학 평론」(Biblical Archaeology Review), 1978년 3월호.

[연구 질문]

[217면 삽입]

세파르디 유대파와 아슈케나지 유대파는 두 공동체를 구성했다

[211면 네모와 삽화]

숭배와 행실에 관한 십계명

십계명에 관해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직접 읽어본 사람은 매우 적다. 그러므로 그 구절의 주요 부분을 여기에 다시 적어 본다.

▪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 [아주 옛날인 기원전 1513년에, 우상 숭배를 배척한 이 계명은 그 유례를 찾아볼 없는 것이었다.]

▪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지, 「타나크, 새번역 성경」] 말라 ·⁠·⁠·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 “네 부모를 공경하라 ·⁠·⁠·

▪ “살인하지 말찌니라.

▪ “간음하지 말찌니라.

▪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 “네 이웃의 집[이나] ·⁠·⁠· 아내나 ·⁠·⁠· 남종이나 ·⁠·⁠· 여종이나 ·⁠·⁠·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출애굽 20:3-17.

신앙 및 숭배와 직접 관련된 것은 처음 네 계명뿐이지만, 다른 계명들도 올바른 행실과 창조주와의 합당한 관계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 주었다.

[삽화]

하나님께서 주신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법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이웃 이방인들의 송아지 숭배를 모방하였다 (금송아지, 비블로스)

[220, 221면 네모와 삽화]

히브리인의 경전

히브리어 경전은 “타나크”로 시작된다. “타나크”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유대인의 성서를 세 부분, 즉 「토라」(율법)·「네비임」(예언자)·「케투빔」(저술물)으로 구분한 것에서 비롯되었는데, 각 부분 명칭의 첫 문자를 따서 타나크라는 단어를 만든 것이다. 이 책들은 기원전 16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까지에 걸쳐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유대인은 이 책들이 각각 영감받은 정도가 다르게, 그 영감의 정도가 줄어드는 가운데 기록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중요성에 따라 이 책들에 다음과 같은 순서를 매긴다.

토라—모세가 기록한 다섯 권의 책인 모세 오경. (영어 단어 “펜타튜크”(Pentateuch)는 “다섯 두루마리”에 해당하는 희랍어에서 유래)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로 구성된 율법서다. 하지만 “토라”라는 용어는 유대인의 성서 전체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될 수 있으며, 구전의 법과 탈무드(다음 면 참조)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네비임—예언자. 여호수아로부터 시작해서 주요 예언자인 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과 더 나아가 호세아에서 말라기까지 이르는 12명의 “소” 예언자들을 망라한다.

케투빔—저술물. 시작품인 시편, 잠언, 욥기, 아가 및 예레미야 애가로 구성된다. 그에 더하여 룻기, 전도서,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및 역대 상하권이 포함된다.

탈무드

이방인의 관점에서 볼 때, 유대인의 성서인 “타나크”는 유대교 저술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유대인의 견해는 다르다. 많은 유대인은 랍비, 아딘 슈타인잘츠의 해설에 동의할 것이다. “성서가 유대교의 모퉁잇돌이라면, 탈무드는 기초에서부터 우뚝 솟아 영적·지적 건축물 전체를 지탱하는 중심 기둥이다. ·⁠·⁠· 유대인 생활의 이론과 실천에서 이에 견줄 만한 영향을 준 작품은 아무 것도 없다.” (「탈무드 선집」[The Essential Talmud]) 그러면 탈무드란 무엇인가?

정통파 유대인이 믿는 바로는,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기록된 법인 토라를 주셨을 뿐 아니라 그 율법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도 계시해 주셨는데, 이 설명은 입으로 전해지게 되어 있었다. 이것을 구전의 법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탈무드란 이 구전의 법을 요약한 기록을 후기의 주석 및 설명과 함께 기원 2세기부터 중세 때까지 랍비들이 집대성한 것이다.

탈무드는 일반적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구별된다.

미슈나: 탄나임(스승)으로 불리는 랍비들의 설명을 근거로 성경의 율법을 보충한 주석을 집대성한 것. 기원 2세기말에서 3세기초 사이에 기록되었다.

게마라 (원래는 탈무드로 불림): 후기 (기원 3세기에서 6세기) 랍비들이 미슈나에 붙인 주석을 집대성한 것.

이 두 주요 부분에 더하여, 탈무드에는 중세 랍비들이 게마라에 붙인 주석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중세 랍비들 중에 두드러진 사람으로 랍비 라시 (솔로몬 벤 이삭, 1040-1105년)가 있었는데, 그는 탈무드의 어려운 표현을 훨씬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또한 람밤 (마이모니데스로 더 잘 알려진 모세 벤 마이몬, 1135-1204년)이 있었는데, 그는 탈무드를 소형판 (“미슈네 토라”)으로 다시 편찬하여 모든 유대인이 접하기 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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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이란의 에스더 묘로 알려진 곳에서 발견된 고대 토라; 오른쪽, 성경 구절에 근거한 히브리어와 이디시어 찬송가

[226, 227면 네모와 삽화]

유대교—여러 목소리를 가진 한 종교

유대교의 여러 분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통적으로, 유대교는 종교 관습을 강조한다. 신앙보다는 그런 문제에 관한 논쟁 때문에 유대인들 사이에 심각한 긴장이 초래되었고, 그 결과 유대교에 세 가지 큰 분파가 형성되었다.

정통 유대교—이 분파는 히브리어 “타나크”를 영감받은 성경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기록된 율법을 받을 때 구전의 법도 함께 받았다고 믿는다. 정통파 유대인은 두 가지 법의 계명들을 소소한 것까지 지킨다. 그들은 아직도 메시야가 나타나 이스라엘에 황금 시대를 가져올 것으로 믿는다. 정통파 그룹 내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러 분파가 생겨났다. 그 한 예가 하시디즘이다.

하시드(“독실한 자”라는 뜻)—이들은 초정통파로 간주된다. 바알 솀 토브(“선한 이름의 주인”)로 알려진 이스라엘 벤 엘리에셀에 의해, 18세기 중엽에 동유럽에서 창시되었다. 이들은 신비한 즐거움에 이르는 음악과 춤을 강조하는 가르침을 따른다. 환생을 포함한 많은 신앙은 카발라로 알려진, 유대교의 신비주의적인 책에 근거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추종자들에 의해 최고로 의로운 사람 혹은 성인으로 간주되는 레베(“랍비”에 해당하는 이디시어) 혹은 차디크가 그들을 인도한다.

하시드는 오늘날 주로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18세기와 19세기 동유럽 특유의 복장, 주로 검은색 복장을 입는다. 그 때문에 남의 눈에 매우 잘 띄게 되는데, 현대 도시 환경에서는 특히 더하다. 오늘날에는 제각기 탁월한 레베를 따르는 분파들로 분열되어 있다. 매우 활동적인 한 그룹은 루바비치파로, 유대인들 사이에서 열정적으로 개종 운동을 벌인다. 일부 그룹은 이스라엘을 유대인의 나라로 회복시킬 권리가 메시야에게만 있다고 믿으며, 따라서 세속 이스라엘 국가에 반대한다.

개혁 유대교(“자유파” 및 “진보파”로도 알려짐)—19세기가 시작될 무렵 서유럽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18세기 유대인 지식인, 모제스 멘델스존의 사상에 근거하고 있는데, 그는 유대인이 이방인으로부터 분리되지 말고 서구 문화에 동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개혁파 유대인은 토라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진리라는 것을 부정한다. 이들은 식사 규정, 정결, 의복 등에 관한 유대교의 법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긴다. 이들은 자기들이 “보편적 형제 관계의 메시야 시대”라고 부르는 것을 믿는다. 근년에는 보다 더 전통적인 유대교로 되돌아갔다.

보수 유대교—1845년 독일에서 개혁 유대교의 한 분파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개혁 유대교가 전통 유대교 관습을 너무 많이 배척했다고 생각하였다. 보수 유대교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전의 법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를 새 시대에 맞추려 했던 랍비들이 구전 토라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보수파 유대인은 “유대인 생활의 현대적 요구 조건에 부합”하는 한, 성서의 교훈과 랍비의 법에 복종한다. (「유대인 지식의 책」[The Book of Jewish Knowledge]) 이들은 예배식에서 히브리어와 영어를 사용하며 식사 규정에 관한 법(카슈루트)을 엄격하게 지킨다. 정통파에서는 숭배 시에 남녀가 함께 앉는 것이 허락되지 않지만, 보수파에서는 허락된다.

[삽화]

왼쪽, 예루살렘 통곡의 벽의 유대인들 위,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기도하는 한 유대인

[230, 231면 네모와 삽화]

몇몇 중요한 축일과 관습

유대인의 축일은 대다수가 성서에 근거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 수확물과 관련된 절기 축일이거나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것이다.

샤바트(안식일)—유대인의 주중 일곱째 날(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은 그 주를 성별하는 날로 여겨지며, 이 날을 특별히 지키는 것은 숭배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유대인은 토라를 읽고 기도하기 위해 회당에 참석한다.—출애굽 20:8-11.

욤 키푸르—속죄일. 금식과 자기 성찰로 특징을 이루는 엄숙한 축일이다. 유대인의 신년, 로시 하샤나로 시작되는 열흘 간의 참회일로 절정을 이룬다. 세속 유대력에 따르면 유대인의 신년은 9월에 해당된다.—레위 16:29-31; 23:26-32.

수코트(오른쪽 위)—초막절이나 장막절 또는 수장절이라고 한다. 수확과 아울러 농사와 관련해서 한 해의 주요 부분이 끝난 것을 기념한다. 10월에 열린다.—레위 23:34-43; 민수 29:12-38; 신명 16:13-15.

하누카—수전절. 마카베 가문이 기원전 165년 12월에 시리아-그리스의 지배로부터 유대인의 독립을 되찾아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다시 봉헌한 일을 기념하여 12월에 열리는 널리 퍼진 축일이다. 보통은 팔 일 동안 촛불을 밝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푸림(부림)—제비 축일. 기원전 5세기에 페르시아(바사)에 살던 유대인이 하만과 그의 민족 말살 음모로부터 구출된 일을 기념하여 2월말이나 3월초에 지킨다.—에스더 9:20-28.

페사흐—유월절. (기원전 1513년) 이스라엘이 이집트(애굽)의 속박에서 구출된 일을 기념하여 제정되었다. 유대인의 축일 중 가장 크고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유대력) 니산월 14일에 지키는데, 보통 3월말이나 4월초에 해당된다. 유대인 가족들은 집집마다 함께 모여 유월절 식사 곧 세데르를 먹는다. 뒤이어 칠 일 동안은 결코 누룩을 먹어서는 안 된다. 이 기간은 무교절(마초트)이라고 불린다.—출애굽 12:14-20, 24-27.

유대인의 몇몇 관습

할례—유대인 남자 아이의 경우, 아기가 태어난 지 팔 일째 되는 날에 갖는 중요한 의식이다. 흔히 아브라함 계약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의 증표가 할례였기 때문이다. 유대교로 개종하는 남자들 역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창세 17:9-14.

바르 미츠와(아래)—유대인에게 필수적인 또 다른 의식으로, 문자적으로는 “계명의 아들”을 뜻한다. “종교적으로나 법적으로 성숙함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용어인 동시에 소년이 열세 살 하루가 되어 공적으로 그런 상태에 이른 때”를 뜻한다. 기원 15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유대인의 관습이 되었다.—「유대 백과 사전」.

메주자(위)—유대인의 집은 보통 문을 들어설 때 문설주 오른쪽에 보이는 메주자 곧 두루마리 함 때문에 쉽게 구별된다. 실제로 메주자는 신명기 6:4-9과 11:13-21에서 인용한 말을 적은 작은 양피지다. 이것을 말아서 작은 함 속에 넣는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방마다 문에 이 함을 붙여 놓는다.

야르물케(남자가 쓰는 작은 모자)—「유대 백과 사전」에 따르면, “정통파 유대인 사회에서 ·⁠·⁠· 회당 안팎에서 모자를 쓰는 것은 유대 전통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여겨진다.” 숭배중에 모자를 쓰는 것에 관한 언급은 타나크에 전혀 없다. 그러므로 탈무드는 이것이 따라도 되고 따르지 않아도 되는 관습상의 문제라고 언급한다. 하시드 유대인 여자들은 항상 머리 덮개를 쓰고 다니거나 아니면 머리를 밀고 가발을 쓴다.

[206면 삽화]

유대인의 선조, 아브람(아브라함)은 거의 4000년 전에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했다

[208면 삽화]

다윗의 별—이스라엘과 유대교의 비성서적 상징물

[215면 삽화]

히브리어 본문을 복사하는 유대인 서기관

[222면 삽화]

안식일을 기념하는 하시드 유대인 가족

[233면 삽화]

팔과 이마에 성구함 곧 기도문 두루마리 함을 달고 다니는 독실한 유대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