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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복종을 통해 하나님에게로 가는 길

이슬람교—복종을 통해 하나님에게로 가는 길

제12장

이슬람교—복종을 통해 하나님에게로 가는 길

[그림—아라비아 문자]

1, 2. (ㄱ) 쿠란의 시작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ㄴ) 이 말이 모슬렘에게 의미 심장한 것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ㄷ) 쿠란은 원래 무슨 언어로 기록되었으며, “쿠란”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이 문장은 쿠란에 나오는 위의 아라비아어 구절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문장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온 세상의 주님이시며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심판의 날을 주관하시는 알라께 찬미를 드리나이다. 우리는 당신만을 숭배하오며 당신께만 도움을 요청하오니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길은 당신께서 은총을 내리신 길이며 당신의 노여움을 받는 자나 방황하는 자들이 걷는 길이 아니옵니다.”—쿠란, 수라 1:1-7. *

2 모슬렘(무슬림)의 경전인 성 쿠란 혹은 코란의 첫째 장 곧 첫째 수라, 알-파티하(“개경장”[開經章])는 위와 같은 말로 되어 있습니다. 세계 인구의 6분의 1이상이 모슬렘인데다 독실한 모슬렘은 이 문구를 하루에 다섯 번 하는 기도 때마다 두 번 이상 반복하므로, 이 문구는 틀림없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는 말에 속할 것입니다.

3. 이슬람교는 오늘날 얼마나 널리 퍼져 있습니까?

3 한 자료에 의하면, 전세계에 9억 명 이상의 모슬렘이 있으며, 따라서 이슬람교는 수적인 면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 바로 다음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슬람교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증가하는 주요 종교일 것입니다. 특히 아프리카와 서구 세계에서 모슬렘 운동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4. (ㄱ) “이슬람”이란 무슨 뜻입니까? (ㄴ) “모슬렘”은 무슨 뜻입니까?

4 이슬람이란 이름은 모슬렘에게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이름은 알라에 대한 “복종,” “굴복,” 혹은 “서약”을 뜻하는 것으로, 한 역사가에 의하면, “모하메드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지닌 마음속 깊은 곳의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슬렘”이란 말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5. (ㄱ) 모슬렘은 이슬람교에 관해 무엇을 믿습니까? (ㄴ) 성서와 쿠란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 있습니까?

5 모슬렘은 자기들의 믿음이 충실한 히브리인들과 옛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계시의 절정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쿠란에서 히브리어 성경과 희랍어 성경을 둘 다 인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르침은 여러 면으로 성서에서 벗어납니다. * (참조 285면 네모.) 모슬렘의 믿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종교가 어떻게, 어디서, 그리고 언제 시작되었는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무하마드가 부름을 받다

6. (ㄱ) 무하마드 시대에 아라비아인의 숭배의 중심은 무엇이었습니까? (ㄴ) 카바와 관련하여 무슨 전통이 있었습니까?

6 무하마드는 * 기원 570년경,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아라비아어, 마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압드 알라는 무하마드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하였습니다. 어머니 아미나는 그가 여섯 살 정도 되었을 때 사망하였습니다. 그 당시 아라비아인들은 메카 골짜기에서, 검은 운석을 경배하던 장소인 단순한 입방체 모양의 건물, 카바 성지를 중심으로 일종의 알라 숭배를 행하였습니다. 이슬람교 전통에 따르면, “카바는 원래 아담이 하늘의 원형(原形)에 따라 지은 것을 대홍수 후에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라비아인의 역사」[History of the Arabs], 필립 K. 히티 저) 카바는 태음년을 기준으로 하루에 하나씩, 360개의 우상을 섬기는 성역이 되었습니다.

7. 무슨 종교 관습들이 무하마드를 당혹케 하였습니까?

7 무하마드는 성장하면서 당시의 종교 관습에 대해 의문을 품었습니다. 존 노스는 그의 저서 「사람의 종교」(Man’s Religions)에서 이렇게 기술합니다. “[무하마드는] 종교와 명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쿠라이시[무하마드가 속한 부족] 족장들 사이에 끊임없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당혹하였다. 하지만 그를 더 크게 실망시킨 것은 아라비아 종교에 원시적 관습들이 존속한다는 사실이었다. 우상을 섬기는 다신 숭배와 애니미즘(정령 숭배), 종교적 회의와 행사에서의 부도덕, 만연한 술취함과 도박과 춤, 원하지 않는 딸을 낳으면 아기를 생매장하는 일 등이 메카뿐 아니라 아라비아 전역에 걸쳐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수라 6:137.

8. 어떤 상황에서 무하마드가 예언자로 부름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까?

8 무하마드가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 것은 그의 나이 40세쯤 되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무하마드는 혼자서 가르 히라로 불리는, 근처 산에 있는 동굴로 명상하러 가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자신이 어느 날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모슬렘 전통에 따르면, 무하마드가 동굴에 있을 때, 나중에 가브리엘로 밝혀진 한 천사가 그에게 계시되는 내용을 알라의 이름으로 암송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무하마드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그를 꽉 붙잡고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껏 눌렀’습니다. 그리고 나서 천사는 똑같은 명령을 되풀이했습니다. 이번에도 무하마드가 대답을 못하자, 천사는 다시 ‘그의 목을 졸랐’습니다. 이런 일이 세 번 있고 나서, 무하마드는 쿠란을 구성하는 일련의 계시 중 첫 번째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을 암송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전통에 의하면 마치 종이 울리는 소리처럼 신의 영감이 무하마드에게 계시되었다고 합니다.—「사히 알-부카리」 중에서 「계시의 책」(The Book of Revelation).

쿠란의 계시

9. 무하마드가 처음으로 받았다고 하는 계시는 어떤 것입니까? (비교 계시 22:18, 19.)

9 무하마드가 처음으로 받았다는 계시는 어떤 것입니까? 이슬람교 권위자들은 그것이 알-알라크 곧 “응혈”(凝血)이라는 표제가 붙은 제96수라의 처음 다섯 구절이라는 데 일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합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그대 주님의 이름으로, 읽으라.

그분은 응혈로 인간을 창조하셨느니라.

읽으라. 그대의 주님은 가장 은혜로운 분으로

연필로 쓰는 것을 가르쳐 주셨으며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도 가르쳐 주셨느니라.”

10-12. 쿠란은 어떻게 보존되었습니까?

10 아라비아의 자료인 「계시의 책」에 따르면, 무하마드는 “저는 읽을 줄을 모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므로 무하마드는 그 계시를 반복하고 암송할 수 있기 위해서 그것을 외워야 하였습니다. 아라비아인들은 기억력을 사용하는 데 능숙했으며, 무하마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무하마드가 쿠란에 담긴 소식 전체를 받는 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일반적으로 그 계시는 기원 610년경부터 기원 632년에 그가 사망할 때까지, 약 20년 내지 23년 기간에 걸쳐서 있었던 것으로 믿어집니다.

11 모슬렘 자료들의 설명에 의하면, 무하마드는 계시를 받을 때마다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즉시 그 계시를 암송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다시 그 계시를 기억하고 암송하여 생생하게 보존하였습니다. 아라비아인에게는 제지술이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무하마드는 서기관들을 시켜서 낙타 견갑골·야자잎·나무·양피지 같은, 당시에 구할 수 있었던 원시적인 재료에다 그 계시들을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쿠란이 현재와 같은 형태를 띠게 된 것은 예언자 무하마드가 사망하고 난 뒤, 그의 후계자들과 반려자들의 지도 아래서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 것은 처음 세 칼리프 즉 모슬렘 지도자들의 통치 때였습니다.

12 번역가인 무하마드 피크탈은 이렇게 기술합니다. “예언자의 죽음 이전에 쿠란의 모든 수라가 기록으로 보존되었으며, 많은 모슬렘은 쿠란 전체를 외웠다. 그러나 기록된 수라들은 사람들 사이에 흩어졌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 ·⁠·⁠· 쿠란 전체를 외우고 있던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자, 전체 쿠란을 수집하여 기록으로 보존하게 되었다.”

13. (ㄱ) 이슬람교의 가르침과 지도의 세 근원은 무엇입니까? (ㄴ) 일부 이슬람 학자들은 쿠란을 번역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13 이슬람교의 생활은 세 가지 권위—쿠란, 하디트, 샤리아—에 의해 지배됩니다. (아래 네모 참조.) 모슬렘은 아라비아어로 기록된 쿠란이 가장 순결한 계시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을 통해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언어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수라 43:3은 이렇게 기술합니다. “우리는 쿠란을 아라비아어로 계시하였으니 이로 하여 너희가 이해하고 배우도록 함이니라.” 그러므로 어떤 번역본이든 희석되어 순수성을 잃은 것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실제로, 일부 이슬람 학자들은 쿠란을 번역하기를 거절합니다. 그들의 견해는 “번역은 언제나 반역”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모슬렘은 그것을 다른 언어로 옮기려고 시도하는 것을 항상 반대했으며 때로는 금지하기도 했다”고 이슬람 역사 강사인 J. A. 윌리엄스 박사는 기술합니다.

이슬람교의 확장

14. 이슬람교 역사 초기에 무슨 사건이 의미 깊은 전환점이 되었습니까?

14 무하마드는 새로운 믿음을 창시하면서 큰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메카 사람들, 심지어 같은 부족마저 그를 배척했습니다. 13년 동안 박해와 미움을 받은 후에, 무하마드는 자신의 활동 중심지를 북쪽의 야트리브로 옮겼는데, 그후 그곳은 알-마디나(메디나) 곧 예언자의 도시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기원 622년에 있은 이 이주 곧 히지라(헤지라)는 이슬람교 역사에서 의미 깊은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 연대는 나중에 이슬람력이 시작되는 때로 채택되었습니다. *

15. 어떻게 메카가 이슬람교의 으뜸가는 순례 중심지가 되었습니까?

15 마침내, 기원 630년(A.H. 8년) 1월에 무하마드는 메카를 항복시킴으로써 지배권을 획득하고 그곳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을 장악한 무하마드는 카바에서 우상들을 없애버렸고, 그곳을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메카 순례의 중심지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참조 289, 303면.

16. 이슬람교는 얼마나 멀리 퍼져 나갔습니까?

16 기원 632년에 무하마드가 사망하고 나서 불과 몇십 년 만에, 이슬람교는 멀리 아프가니스탄과 심지어 북아프리카의 튀니지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8세기 초엽, 쿠란에 대한 믿음은 스페인으로 침투해 들어가서 프랑스 국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니니언 스마트 교수가 그의 저서 「기나긴 탐구의 배경」(Background to the Long Search)에서 이렇게 기술한 바와 같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 이후 6세기와 7세기에 살았던 아라비아의 한 예언자가 성취한 업적은 깜짝 놀랄 만한 것이다. 인간적인 견지에서 볼 때는 그로부터 하나의 새로운 문명이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모슬렘에게 있어서, 그 일은 물론 신의 일이었고 그 업적은 알라의 업적이었다.”

무하마드의 죽음이 가져온 분열

17. 무하마드의 죽음으로 이슬람교는 무슨 큰 문제에 직면하였습니까?

17 예언자 무하마드의 죽음으로 위기가 일어났습니다. 무하마드가 죽을 때 그에게는 남자 후손이 아무도 없었으며 분명하게 정해진 후계자도 없었습니다. 필립 히티가 이렇게 기술하는 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칼리프의 직위는 이슬람교가 직면해야 했던 가장 오래 된 문제다. 이 문제는 아직도 쟁점이 되고 있다. ·⁠·⁠· 모슬렘 역사가 알-샤라스타니[1086-1153년]의 말대로, ‘칼리프의 직위(이마마) 문제보다 더 많은 피흘림을 초래한 이슬람교의 문제는 결코 없었다.’” 기원 632년 당시에는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습니까? “아부-바크르가 ·⁠·⁠· 그 당시 수도인 알-마디나에 있던 지도자들이 참여한 일종의 선거를 통해 (632년 6월 8일에) 무하마드의 후계자로 지명되었”습니다.—「아라비아인의 역사」.

18, 19. 무슨 주장 때문에 수니파와 시아파 모슬렘이 분열됩니까?

18 예언자의 후계자들은 통치자인 할리파 곧 칼리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하마드의 진정한 후계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이슬람교 신자들을 분열시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수니파 모슬렘은 예언자의 후손이라는 혈연 관계보다 선출에 의한 임명의 원칙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처음 세 칼리프, 즉 아부 바크르(무하마드의 장인), 우마르(예언자의 고문), 우트만(예언자의 사위)이 무하마드의 합법적 후계자였다고 믿습니다.

19 시아파 모슬렘은 그 주장을 반박하여, 진정한 지도권은 예언자 무하마드의 혈통을 통해서, 다시 말해서 예언자의 사촌이자 그의 사랑하는 딸 파티마와 결혼한 사위인 최초의 이맘(지도자이자 후계자),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를 통해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의 결혼으로 무하마드의 손자인 하산과 후사인이 태어났습니다. 시아파는 또한 “애당초 알라와 그의 예언자는 알리를 유일한 합법적 후계자로 분명히 지명하였는데, 처음 세 칼리프가 그를 속여 정당한 직위를 가로챘다”고 주장합니다. (「아라비아인의 역사」) 물론, 수니파 모슬렘은 그 문제를 달리 봅니다.

20. 무하마드의 사위 알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20 알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알리가 넷째 칼리프(기원 656-661년)로 통치하던 중, 그와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 사이에 지도자 자리를 놓고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후 그들은 모슬렘의 피를 더 이상 흘리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분쟁을 중재에 부쳤습니다. 알리가 중재를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입지는 약화되었고, 많은 추종자가 그를 떠났습니다. 그중에는 그의 철천지원수가 된 하와리지파(이탈자)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기원 661년에 알리는 하와리지파 열심당원에 의해 독을 묻힌 군도에 찔려 살해되었습니다. 두 그룹(수니파와 시아파)은 끊임없이 서로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후 수니파 이슬람교는 예언자의 가계에 속하지 않은, 메카의 부유한 족장 우마이야드 가문에서 지도자를 택하였습니다.

21. 무하마드의 후계자에 대한 시아파의 견해는 어떠합니까?

21 시아파의 경우에는 알리의 장남이자 예언자의 손자인 하산이 진정한 후계자였습니다. 그러나 하산은 사임한 후에 살해당하였습니다. 동생 후사인이 새로운 이맘이 되었지만, 그 역시 우마이야드 군대에 의해 기원 680년 10월 10일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후사인의 죽음, 혹은 시아파의 견해로 순교는 시아트 알리 곧 알리당에게 오늘날까지도 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알리가 무하마드의 진정한 후계자였으며 “잘못과 죄를 범하지 않도록 신의 보호를 받는” 최초의 “이맘[지도자]”이었다고 믿습니다. 시아파는 알리와 그의 후계자들을 “신으로부터 무죄함의 선물을” 받은 무류한 스승들로 여겼습니다. 시아파 중에서 가장 큰 분파는, 진정한 이맘단지 열두 명뿐이었으며 그중 마지막 이맘인 무하마드 알-문타자르는 (기원 878년에) “후손을 남기지 않고 사마라의 대 모스크 동굴에서” 사라졌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는 ‘숨은(무스타티르) 이맘’ 혹은 ‘고대하는(문타자르) 이맘’이 되었으며 ·⁠·⁠· 정해진 때가 되면 마디(신의 인도를 받는 자)로 나타나 진정한 이슬람교를 회복하고 온 세상을 정복하여 만물의 끝이 오기 전에 짧은 천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합니다.—「아라비아인의 역사」.

22. 시아파는 후사인의 순교를 어떻게 추도합니까?

22 해마다, 시아파는 이맘 후사인의 순교를 추도합니다. 그들은 행렬을 벌이는데, 그중 어떤 사람들은 자기 몸에 칼로 상처를 내거나 다른 방법으로 자신에게 고통을 가합니다. 더 현대에 이르러, 시아파 모슬렘은 이슬람의 대의에 대한 열심 때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전세계 모슬렘의 20퍼센트 정도밖에 안 되며, 대다수는 수니파 모슬렘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슬람교의 몇몇 가르침에 주의를 돌려보고 이슬람교의 믿음이 모슬렘의 일상 행실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유의해 봅시다.

지존자는 예수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23, 24. 무하마드와 모슬렘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를 어떻게 보았습니까?

23 전세계에 있는 주요한 세 일신교(一神教)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입니다. 그러나 기원 7세기 초엽에 무하마드가 나타날 무렵, 처음 두 종교는 적어도 그가 보기에는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일부 이슬람 주석가들에 의하면, 실제로 쿠란에서는 “노여움을 받는 자나 방황하는 자들이 걷는 길이 아니옵니다”라는 말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을 배척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수라 1:7)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4 한 쿠란 주석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성서의 백성은 그릇된 길로 갔다. 유대인들은 계약을 깨뜨리고 마리아와 예수를 중상하였으며 ·⁠·⁠·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통해] 사도인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로 올려 놓았다.”—수라 4:153-176.

25. 우리는 쿠란과 성서에서 어떤 유사한 표현을 볼 수 있습니까?

25 이슬람교의 주된 가르침을 매우 간단하게 표현한 것이, 모슬렘이면 누구나 외우는 샤하다로 알려진 신앙 고백입니다. 그 내용은 “라 일라 일라 알라. 무하마드 라술 알라”(알라 외에는 신이 없다. 무하마드는 알라의 사자다)입니다. 이것은 “너희들의 하나님은 한분이시니 그분 외에는 신이 없으며 그분은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심이니라”는 쿠란의 표현과 일치합니다. (수라 2:163) 이 사상은 그보다 2000년을 앞선 옛날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나타났습니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신명 6:4) 예수께서는 이 첫째가는 명령을 무하마드보다 약 600년 앞서 되풀이하셨으며, 그 말씀은 마가 복음 12:29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디서도 자신이 하나님이라거나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하신 일이 없습니다.—마가 13:32; 요한 14:28; 고린도 전 15:28.

26. (ㄱ) 모슬렘은 삼위일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ㄴ) 삼위일체는 성서적입니까?

26 하나님의 유일성에 관하여 쿠란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과 사도들을 믿되 삼위일체설을 말하지 말라하니 이는 너희에게 복이 되리라 실로 하나님은 단 한 분이시니[라.]” (수라 4:171) 그렇지만 우리는 참 그리스도교가 삼위일체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삼위일체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죽은 후에 그리스도교국의 배교자들이 끌어들인 이교에서 기원한 교리입니다.—참조 제11장. *

영혼, 부활, 낙원, 지옥불

27. 쿠란은 영혼과 부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대조 레위 24:17, 18; 전도 9:5, 10; 요한 5:28, 29.)

27 이슬람교에서는 사람에게 내세로 가는 영혼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쿠란은 이렇게 말합니다. “죽음에 이른 인간의 영혼을 받으며 수면의 상태로 [영혼]을 받는 분은 알라이시며 기한이 된 영혼을 지키는 분도 알라이시라.” (수라 39:42) 그뿐 아니라, 제75 수라는 온전히 “키야마트 곧 부활” 혹은 “죽은 자의 일어남”에 관한 것만을 다룹니다. 그 내용의 일부는 이러합니다. “부활의 날을 두고 맹세하사 ·⁠·⁠· 인간은 우리가 그의 뼈들을 모을 수 없다고 생각하느뇨? ·⁠·⁠· ‘부활의 날이 언제이뇨?’라고 묻더라. ·⁠·⁠· 그러한 능력을 가진 그분[알라]이 죽은 자를 살게 할 수 없단 말이뇨?”—수라 75:1, 3, 6, 40.

28. 쿠란은 지옥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대조 욥 14:13; 예레미야 19:5; 32:35; 사도 2:25-27; 로마 6:7, 23.)

28 쿠란에 따르면, 영혼은 각기 다른 운명에 처할 수 있습니다. 즉 하늘의 동산인 낙원에 있게 될 수도 있고 불타는 지옥에서 형벌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쿠란에서 이렇게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심판의 날이 언제 오느뇨?’라고 물으매 ‘그들이 불지옥에 들어가 태워지는 날’이라 ‘이 벌을 맛보라 너희가 서둘러 재촉했던 것이니라’ 하더라.” (수라 51:12-14) “그들[죄인들]은 현세에서도 벌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내세에서의 벌은 더욱 고통스러우며 알라께 대항하여 보호할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 (수라 13:34) 이런 문답도 있습니다. “불지옥의 함정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대에게 설명하여 주리요. 그것은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지옥이라.” (수라 101:10, 11) 그 비참한 운명은 이렇게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계시를 불신하는 자들을 화염 속으로 들게 하며 그들의 피부가 불에 익어 다른 피부로 변하니 그들은 고통을 맛보더라. 실로 알라는 권능과 지혜로 충만하심이라.” (수라 4:56) 더 나아가 이런 묘사도 있습니다. “지옥은 기다리고 있으니 ·⁠·⁠· 그들은 그곳에서 영주하도다. 그들은 그곳에서 시원함도 맛보지 못할 것이며 마실 음료수도 없으며 오직 끓어 오르는 액체와 검고 어두운 혹독한 액체뿐[이니라.]”—수라 78:21, 23-25.

29. 영혼과 그 운명에 관한 이슬람교의 가르침과 성서의 가르침을 대조해 보십시오.

29 모슬렘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사람들이 죽은 다음부터 심판 전까지 있게 되는 장소 혹은 상태”인 바르자흐 곧 “장벽”으로 간다고 믿습니다. (수라 23:99, 100) 영혼은 그곳에서 의식을 가진 채로, 만약 악한 사람이면 “무덤의 징벌”이라고 불리는 것을 경험할 것이고, 만약 충실한 사람이면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충실한 사람들도 살아 있는 동안에 지은 약간의 죄 때문에 어느 정도 고초를 겪어야 합니다. 심판 날에는 각자의 영원한 운명이 정해지고, 중간 상태가 끝날 것입니다. *

30. 쿠란에 의하면 의인들에게 무엇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대조 이사야 65:17, 21-25; 누가 23:43; 계시 21:1-5.)

30 그와는 대조적으로, 의인들에게는 하늘의 동산인 낙원이 약속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찾고 선행을 하는 자, 우리는 그들을 동산에 들게 하리니 강이 흐르는 그곳에서 영생케 하리라.” (수라 4:57) “실로 그날 낙원에 거주하는 이들은 그들이 행한 모든 것으로 크게 기뻐하리라. 그들은 그들의 아내들과 시원한 그늘에서 장식된 침상에 기대[리라.]” (수라 36:55, 56) “후에 모세에게 내려진 소식에서 기록하였지만 우리는 이전 시편에서도 땅은 나의 의로운 종들이 상속하리라 하였느니라.” 이 수라의 각주는 시편 25:13과 37:11, 29 그리고 마태 복음 5:5에 있는 예수의 말씀을 지적합니다. (수라 21:105) 여기서 아내들을 언급한 것을 볼 때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일부일처인가 아니면 일부다처인가?

31. 쿠란은 일부다처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대조 고린도 전 7:2; 디모데 전 3:2, 12.)

31 일부다처가 모슬렘의 규정입니까? 쿠란에서 일부다처를 허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많은 모슬렘은 아내가 한 명뿐입니다. 큰 희생을 치른 전쟁 후에 과부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쿠란에서는 일부다처를 허락하였습니다. “만일 너희가 고아들을 공정하게 대하여 줄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면 마음에 드는 두 명, 세 명, 또는 네 명의 여자와 결혼함이 나으니라. 그러나 그들에게 공평을 베풀어 줄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한 여성이거나 너희 오른손이 소유한 것[포로][으로 하라.]” (수라 4:3) 이븐-히샴의 무하마드 전기에서는 무하마드가 15년 연상의 부유한 과부, 하디자와 결혼했다고 알려 줍니다. 하디자가 죽은 후에, 무하마드는 여러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는 죽을 때 아홉 명의 아내를 과부로 남겼습니다.

32. 무타란 무엇입니까?

32 이슬람교의 또 다른 형태의 결혼으로 무타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정된 기간의 결혼 생활을 위해 구혼하고 이를 승낙하며, 영구적 결혼 계약에서와 같이 명시된 신부값을 치름으로써 맺어지는 특별한 계약”으로 정의됩니다. (「이슬라무나」, 무스타파 알-라피 저) 수니파에서는 그것을 쾌락을 위한 결혼이라고 부르며, 시아파에서는 특정 기간에 종식되는 결혼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자료는 “[그 결혼에서 생긴] 자녀는 합법적이며 영구적인 결혼에서 생긴 자녀와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고 알려 줍니다. 분명히 이런 형태의 임시 결혼은 무하마드 시대에도 행해졌으며, 무하마드는 그것을 허락하였습니다. 수니파는 그것이 나중에 금지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시아파의 최대 그룹인 이마미파는 아직도 그것이 유효하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런 결혼을 하는데, 특히 남자가 오랫동안 아내와 떨어져 있을 때 많이 합니다.

이슬람교와 일상 생활

33. 이슬람교와 신앙의 기둥은 무엇입니까?

33 이슬람교에는 다섯 기둥 즉 중요한 의무와 여섯 가지 기본 신앙이 있습니다. (참조 296, 303면 네모.) 그 의무 중 하나는 독실한 모슬렘이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살라트)입니다. 모슬렘의 안식일(금요일)에는, 모스크의 뾰족탑에서 무에진이 잇달아 외치는 고함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모스크에 모여서 기도를 합니다. 요즈음 많은 모스크에서는 실제 목소리로 외치는 대신에 녹음한 것을 틀어 줍니다.

34. 모스크란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됩니까?

34 모스크(아라비아어, 마스지드)는 모슬렘의 숭배 장소인데, 사우디아라비아의 파드 빈 압둘 아지즈 왕은 그것을 “하나님을 향한 외침의 모퉁잇돌”로 묘사합니다. 아지즈 왕은 모스크를 “기도·연구·법률 및 사법 활동·자문·전도·지도·교육·준비 등을 위한 장소”라고 정의하면서, “모스크는 모슬렘 사회의 심장”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숭배 장소는 지금 세계 도처에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모스크 중 하나는 스페인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모스크)로, 여러 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모스크였습니다. 지금은 가톨릭 대성당이 그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국과의 충돌 및 그리스도교국 내에서의 마찰

35. 과거에는 이슬람교와 가톨릭교 사이에 어떤 상황이 존재했습니까?

35 7세기 초엽, 이슬람교는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로, 동쪽으로는 파키스탄·인도·방글라데시 그리고 아래로 인도네시아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당연히, 이슬람교는 호전적인 가톨릭 교회와 충돌하게 되었으며, 가톨릭 교회는 모슬렘으로부터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서 십자군을 조직하였습니다. 1492년에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은 가톨릭의 스페인 재정복을 완수하였습니다. 모슬렘과 유대인은 가톨릭으로 개종하든지, 아니면 스페인에서 추방당하든지 해야 하였습니다. 모슬렘 통치 당시 스페인에 존재했던 상호 관용은 나중에 가톨릭 종교 재판의 영향력 아래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슬람교는 존속하였으며, 20세기에 이르러서는 다시 소생하여 크게 부흥하고 있습니다.

36. 이슬람교가 확장하는 동안 가톨릭 교회 내에서는 무슨 사태가 전개되고 있었습니까?

36 이슬람교가 확장하는 동안, 가톨릭 교회는 그 자체의 연합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자체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강력한 영향력이 갑자기 등장하려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가톨릭 교회의 통일된 이미지를 더 크게 뒤흔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인쇄기와 평민의 언어로 된 성서였습니다. 이 책의 다음 장에서는 그 두 가지와 그 밖의 영향력 아래서 그리스도교국이 더 분열되는 과정을 살펴볼 것입니다.

[각주]

^ 1항 “쿠란”(“암송”을 뜻함)이란 모슬렘 저술가들이 좋아하는 철자 표기로서, 우리는 이 책에서 그 표기를 사용할 것이다. 쿠란을 기록한 원어는 아라비아어이며, 다른 언어로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번역본이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인용문에서 첫째 숫자는 장(章) 곧 수라를 가리키며, 둘째 숫자는 절을 가리킨다.

^ 5항 모슬렘은 성서에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 있기는 하지만 나중에 그 일부가 왜곡되었다고 믿는다.

^ 6항 이 예언자의 이름은 여러 가지(모하메드, 무하마드, 마호메트)로 표기된다. 대부분의 모슬렘 자료에서 무하마드란 표기를 더 좋아하므로, 이 책에서도 그 표기를 사용할 것이다. 터키계 모슬렘은 무하메드라는 표기를 더 좋아한다.

^ 14항 그러므로 모슬렘의 연대는 A.D.(라틴어, 안노 도미니[Anno Domini], 주의 해) 혹은 C.E.(통용 기원[Common Era]) 대신에 A.H.(라틴어, 안노 헤기라이[Anno Hegirae], 도피의 해)를 사용한다.

^ 26항 삼위일체와 성서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사단 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서 1989년에 발행한 「삼위일체를 믿어야 하는가?」 팜플렛 참조.

^ 29항 영혼과 지옥불 문제에 관해서는 다음 성구들을 비교할 수 있다. 창세 2:7; 에스겔 18:4; 사도 3:23. 사단 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서 1985년에 발행한 「성경을 사용하여 추리함」 282-7면; 364-71면 참조.

[연구 질문]

[285면 네모]

쿠란과 성서

“하나님은 그대에게 진리가 담긴 책을 나타내 보이시어 이보다 앞선 경전들을 확증하시었도다. 또한 인간의 지침과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지표로 율법과 복음을 내리셨[도다.]”—수라 3:2.

“코란에서 역사에 관해 기술한 내용은 거의 모두 성서와 유사점이 있다. ·⁠·⁠· 아담, 노아, 아브라함(25개 수라에서 약 70회 언급되었고 제14수라의 제목으로 그 이름이 들어 있음), 이스마엘, 롯, 요셉(제12수라는 그에게 바친 것임), 모세(34개 수라에 이름이 등장함), 사울, 다윗, 솔로몬, 엘리야, 욥, 요나(제10수라에 이름이 나옴)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창조와 아담의 타락에 관한 이야기가 다섯 차례, 홍수 이야기가 여덟 차례, 소돔 이야기가 여덟 차례 언급된다. 실제로 코란은 성서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모세 오경과 더 많은 유사점을 보여 준다. ·⁠·⁠·

“신약의 인물들로는 사가랴, 침례자 요한, 예수(이사), 그리고 마리아만 강조된다. ·⁠·⁠·

코란의 내용과 성서의 내용을 ·⁠·⁠· 비교 연구해 보면 ·⁠·⁠· 낱말간의 상호 관련성이 없음이 [직접 인용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아라비아인의 역사」.

[각주]

^ 92항 그러나, 300면 30항에 나오는 수라 21:105에 관한 내용 참조.

[291면 네모]

가르침과 지도의 세 근원

성 쿠란.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 무하마드에게 계시된 것이라고 한다. 아라비아어로 된 쿠란의 의미와 단어는 영감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하디트 혹은 순나. “예언자 무하마드의 행실과 말과 묵인(타크리르) ·⁠·⁠· 2세기[A.H.] 중에 기록된 하디트의 형태로 확정되었다. 그러므로 하디트는 예언자의 행동 혹은 말에 관한 기록이다.” 또한 무하마드의 “반려자들이나 그들의 후계자들”의 행동 혹은 말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하디트는 그 의미만 영감받은 것으로 여겨진다.—「아라비아인의 역사」.

샤리아 곧 종교법. 쿠란의 원칙들에 근거하여 종교적·정치적·사회적 의미에서 모슬렘의 생활 전반을 규제한다. “모든 사람의 행동은 다음의 다섯 가지 법적 범주로 구분된다. (1) 절대적 의무로 간주되는 것 (파르드) [행하면 상이 따르고 행하지 않으면 벌이 따름]; (2) 권할 만하거나 덕이 되는 행동 (무스타하브) [행하면 상이 따르지만 행하지 않는다고 벌을 받지는 않음]; (3) 허용되는 행동, (자이즈, 무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 (4) 비난받을 만한 행동 (마크루), 승인받지 못하지만 벌을 받지는 않는 것; (5) 금지된 행동 (하람), 행하면 벌이 따르는 것.”—「아라비아인의 역사」.

[296면 네모]

신앙의 여섯 기둥

1. 한 하나님, 알라에 대한 신앙 (수라 23:116, 117)

2. 천사들에 대한 신앙 (수라 2:177)

3. 신성한 책들: 토라, 복음서, 시편, 아브라함의 두루마리들, 쿠란

4. 예언자는 많지만 소식은 하나라는 신앙. 아담은 첫 예언자였다. 그 밖에도 아브라함, 모세, 예수, “최후의 예언자” 무하마드 등이 있다 (수라 4:136; 33:40)

5. 마지막 날: 모든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일으킴을 받을 때

6. 좋든 나쁘든 운명에 대한 신앙.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303면 네모]

이슬람교의 다섯 기둥

1. 신조(샤하다)의 반복. “알라 외에는 신이 없다. 무하마드는 알라의 사자다”라는 문구를 되풀이한다 (수라 33:40)

2. 기도(살라트). 메카를 향해 하루에 다섯 번씩 한다 (수라 2:144)

3. 자선(자카). 수입과 일부 재산의 가치를 일정한 비율로 바쳐야 할 의무 (수라 24:56)

4. 금식(사움). 특히 한 달 동안의 라마단 기념 기간 중에 한다 (수라 2:183-185)

5. 순례(하지). 모슬렘은 누구나 생애중 한 번은 메카를 다녀와야 한다. 정당한 면제 사유는 병과 가난뿐이다 (수라 3:97)

[304, 305면 네모와 삽화]

바하이교—세계 연합을 추구함

1 바하이교는 이슬람교의 분파는 아니지만, 1844년에 이슬람교 시아파에서 떨어져 나간 페르시아(오늘날의 이란)의 한 그룹인 바비교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바비교인의 지도자는 시라즈의 미르자 알리 모하마드였는데, 그는 자신이 바브(“문”[門])이며 무하마드의 계통에서 나온 이맘-마디(“올바로 인도받은 지도자”)라고 선언하였다. 모하마드는 1850년 페르시아 당국에 의해 처형되었다. 1863년에 바비교 그룹의 탁월한 성원이던 미르자 호세인 알리 누리는 자기가 바로 “바브가 예언한 ‘하나님이 나타내실 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또한 이름을 바하 울라(“하나님의 영광”)로 고치고, 새로운 종교인 바하이교를 만들었다.

2 바하 울라는 페르시아에서 추방되어, 마침내 악고(오늘날의 이스라엘 아크레)에서 투옥되었다. 거기서 그는 주요 저술물인 「알-키타브 알-아크다스」(가장 거룩한 책)를 썼으며, 바하이교의 교리를 폭넓은 가르침으로 발전시켰다. 바하 울라가 죽자, 갓 출발한 이 종교의 지도권은 아들 압드 올-바하에게로, 다음에는 증손자 쇼기 에펜디 라바니에게로, 1963년에는 세계 정의의 집으로 알려진 선출된 집행부로 넘어갔다.

3 바하이교인은 하나님께서 “신의 화신들”을 통해서 자신을 사람에게 계시하시는데, 그중에는 아브라함·모세·크리슈나·조로아스터·붓다(부처)·예수·무하마드·바브·바하 울라 등이 포함된다고 믿는다. 그들은 점진적 진화 과정을 통해 인류를 인도하기 위해서 이 사자들이 보냄을 받았으며, 그 진화 과정에서 바브의 출현으로 인류에게 새 시대가 열렸다고 믿는다. 바하이교인의 말에 의하면, 현재까지는 그의 소식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온전히 담은 계시이며, 그 소식이야말로 세계 연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으뜸가는 도구라고 한다.—디모데 전 2:5, 6.

4 바하이교의 기본 가르침의 하나는 “세계의 대종교들은 모두 신에게서 기원한 것으로, 그 기본 원리는 완전히 조화된다”는 것이다. 종교들은 “단지 그 교리상의 비본질적 부면에 있어서만 차이가 난다.”—고린도 후 6:14-18; 요한 1서 5:19, 20.

5 바하이교의 신앙에는 하나님의 유일성, 영혼불멸, 인류의 (생물학적·영적·사회적) 진화 등이 포함된다. 반면에, 그들은 천사들에 관한 일반적인 개념을 배척한다. 또한 그들은 삼위일체, 힌두교의 환생 가르침, 완전성으로부터의 인간의 타락과 그에 따른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대속을 배척한다.—로마 5:12; 마태 20:28.

6 인간의 형제애와 여성의 평등이 바하이교의 주된 특징이다. 바하이교인은 일부일처제를 따른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바하 울라가 계시한 세 가지 기도문 중 하나를 사용하여 기도한다. 바하이력으로 알라 월—3월에 해당하는 달—의 19일 동안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금식을 한다. (바하이력에는 19개월이 있고, 매달 19일이 있으며, 일정한 윤일이 있다.)

7 바하이교에는 정해진 의식이 많지 않으며 교직자도 없다. 바하 울라에 대한 믿음을 공언하고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신자로 등록될 수 있다. 바하이력으로 매월 첫째 날에 숭배를 위해 모인다.

8 바하이교인은 자기들이 영적으로 온 땅을 정복할 사명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대화, 본, 지역 사회 사업 계획에 참여하는 것, 홍보 활동 등을 통해서 믿음을 전파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거주하는 나라의 법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고 믿으며, 투표를 하기는 하지만 정치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가능한 대로 군대에서 비전투원으로 복무하는 편을 좋아하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아니다.

9 바하이교는 선교 사업을 벌이는 종교로서, 지난 몇 년 동안 급속한 성장을 하였다. 바하이교 측은 전세계적으로 신자 수가 거의 500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하지만, 실제 신자로 등록된 성인은 현재 230만 명이 약간 넘는 정도다.

[연구 질문]

1, 2. 바하이교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3-7. (ㄱ) 바하이교 신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ㄴ) 바하이교 신앙은 성서의 가르침과 어떻게 다른가?

8, 9. 바하이교인의 사명은 무엇인가?

[삽화]

이스라엘, 하이파에 있는 세계 본부 바하이 사원

[286면 삽화]

모슬렘의 전통에 의하면, 예루살렘 바위의 돔에 있는 이 바위에서 무하마드가 승천했다고 한다

[289면 삽화]

메카를 순례하는 모슬렘은 카바 주위를 일곱 번 돈 다음 흑석(黑石)을 만지거나 거기에 입맞춘다, 왼쪽 아래

[290면 삽화]

쿠란을 읽으려면 아라비아어를 알아야 한다

[298면 삽화]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예루살렘, 바위의 돔; 이란, 남아프리카 공화국, 터키의 모스크

[303면 삽화]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는 한때 세계 최대의 모스크였다 (지금은 가톨릭 대성당이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