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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불신앙—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가?

현대의 불신앙—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가?

제14장

현대의 불신앙—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더는 사람들의 일상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일상 생활을 통해서나 결정을 내리는 면에서 사람들이 그분을 염두에 두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가치들 곧 수입과 생산성이 대신 들어섰다. 한때는 그분이 모든 인간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근원으로 간주되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역사의 비밀 지하 감옥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 하나님은 사람들의 의식에서 사라졌다.”—「현대 무신론의 근원」(The Sources of Modern Atheism).

1. (머리말 포함.) (ㄱ) 「현대 무신론의 근원」 책은 하나님에 대한 오늘날 사람들의 믿음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ㄴ) 현대의 불신은 불과 얼마 전의 상황과 어떻게 뚜렷하게 대조됩니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하나님은 서구 세계 사람들의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모두가 스스로 믿는다고 공언하는 것을 진실하게 실천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든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겉으로 나타내야 했습니다. 그 어떤 의심이나 불확실한 점도 조심스럽게 혼자 간직하였습니다. 그런 것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으며, 심지어 심한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2. (ㄱ)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중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대답을 요하는 무슨 질문들이 생깁니까?

2 그러나 오늘날에는 형세가 역전되었습니다. 강한 종교적 신념을 갖기라도 하면, 많은 사람으로부터 편협하고 독단적이며 광신적이기까지 한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종교에 대한 냉담 혹은 무관심이 만연한 것을 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거나 그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더는 하나님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일부 사람들은 우리 시대를 묘사하여 “그리스도교 이후”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대답을 요하는 몇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사람들의 생활에서 그토록 멀어지게 되었는가? 이런 변화를 일으킨 힘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건전한 이유가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의 역작용

3.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이 낳은 한 가지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3 제13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6세기의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은 종교적인 면에서나 그 밖의 면에서 사람들이 권위를 보는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자기 주장과 표현의 자유가 일치와 복종을 대신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전통 종교의 틀 안에 머물렀지만, 일부 사람들은 더 급진적인 노선을 따라 기성 교회의 교의와 근본적 가르침들에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전쟁·고통·불공정 등과 관련해서 종교가 수행한 역할을 알게 되어, 종교에 대해 완전히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4. (ㄱ) 16세기와 17세기 영국과 프랑스에서 무신론이 퍼진 정도를 그 당시의 기록들은 어떻게 묘사하였습니까? (ㄴ) 종교 개혁 당시 교황의 멍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결과로 어떤 사람들이 부각되었습니까?

4 일찍이 1572년에, 「영국의 현 상태에 관한 고찰」(Discourse on the Present State of England)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나라 안은 세 부분 즉 교황파, 무신론자, 프로테스탄트로 분열되어 있다. 세 부분이 모두 비슷한 호응을 얻고 있는데, 첫째와 둘째에 속한 사람들은 숫자가 많아서 감히 그들의 감정을 건드리지 못할 정도다.” 또 다른 추산에 따르면 1623년에 파리의 무신론자 수가—용어가 다소 엄밀하지 못하게 사용되었는데도—5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교황권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종교 개혁으로 인해, 기성 종교의 지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부각된 것은 분명하였습니다. 윌 듀랜트와 에어리얼 듀랜트가 「문명의 이야기: 제7부—이성의 시대가 시작되다」(The Story of Civilization: Part VII—The Age of Reason Begins)에서 이렇게 기술한 바와 같습니다. “유럽의 사상가들—유럽 정신의 선구자—은 더는 교황권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논쟁하였다.”

과학과 철학의 공격

5. 무슨 세력들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켰습니까?

5 그리스도교국 자체의 분열에 더하여, 그리스도교국의 지위를 더 약화시키는 일을 한 다른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과학, 철학, 세속주의, 물질주의 등이 하나님과 종교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회의를 조장하는 면에서 제각기 한몫을 하였습니다.

6. (ㄱ) 과학 지식의 증가는 교회의 여러 가르침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ㄴ) 스스로를 현대적이라고 생각하던 일부 사람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6 과학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사람들은 성서 구절에 대한 그릇된 해석에 근거한 교회의 여러 가르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 같은 사람들의 천문학적 발견은 교회의 천동설 교리, 즉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교리에대해 직접적인 도전을 제기했습니다. 더 나아가, 물질 세계의 작용을 지배하는 자연 법칙에 대해 이해하게 됨에 따라, 천둥과 번개 또는 특정한 별과 혜성이 나타나는 것같이 당시로서는 신비하게 보였던 현상을 더는 하나님의 손 혹은 섭리에 의한 것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기적”과 인간사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 역시 의문시되었습니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하나님과 종교는 많은 사람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였으며, 스스로를 현대적이라고 생각하던 일부 사람들은 재빨리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과학이라는 성우(聖牛)를 숭배하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7. (ㄱ) 종교에 가장 심한 타격을 입힌 것은 의심할 바 없이 무엇이었습니까? (ㄴ) 다윈주의에 대한 교회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7 종교에 가장 심한 타격을 입힌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진화론이었습니다. 1859년 영국의 박물학자 찰스 다윈(1809-82년)은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이라는 저서를 발표하고 하나님에 의한 창조라는 성서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도전하였습니다. 교회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영국이나 다른 곳의 교직자들은 처음에 그 이론을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대는 이내 수그러들었습니다. 다윈의 추론은 은밀히 의심을 품고 있던 많은 교직자가 찾고 있던 구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윈의 생애 내에 “생각 깊고 논리 정연한 교직자들은, 진화론이 성경에 대한 계몽된 이해와 온전히 조화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밀고 나갔다”고 「종교 백과 사전」(The Encyclopedia of Religion)은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성서를 변호하기는커녕, 과학적 견해라는 압력에 굴복하고 인기에 영합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침식시켰습니다.—디모데 후 4:3, 4.

8. (ㄱ) 19세기 종교 비평가들은 무슨 의문들을 제기하였습니까? (ㄴ) 종교 비평가들이 제시한 몇몇 인기있는 이론은 무엇이었습니까? (ㄷ) 왜 많은 사람이 반종교 사상을 재빨리 받아들였습니까?

8 19세기가 지나가면서, 종교 비평가들의 공격은 더욱더 대담해졌습니다. 단지 교회의 잘못된 점들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기초에까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와 같은 의문들을 제기하였습니다. ‘하나님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왜 필요한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인류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카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사람들은 철학, 심리학, 사회학 등의 용어로 자기들의 주장을 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상상한 것을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하나님은 죽었다’ 등과 같은 이론들은 둔감하고 지적이지 못한 교회의 교의나 전통에 비해, 한결같이 아주 새롭고 흥미 진진하게 들렸습니다. 많은 사람은 마침내 정신 속에 은밀히 품고 있던 의심과 의혹을 표현할 수 있는 체계적인 길을 발견한 듯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상을 새 복음의 진리인 양, 재빨리 그리고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대타협

9. (ㄱ) 과학과 철학으로부터 공격을 받자, 교회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ㄴ) 교회의 타협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있었습니까?

9 과학과 철학으로부터 공격과 추궁을 받자, 교회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성서에서 가르치는 것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 아니라, 압력에 굴복하여 하나님에 의한 창조나 성서의 확실성 같은 근본적인 믿음의 강령까지 타협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습니까?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은 신임을 잃기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은 믿음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스스로를 변호하지 못한 탓에, 많은 사람이 교회를 빠져 나갈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종교란 사회적 유물, 인생의 중요한 일들—출생, 결혼, 사망—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참 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사실상 포기하였습니다.

10. 무슨 중요한 질문들을 고려해 보아야 합니까?

10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논리적으로 이런 질문들이 생기게 됩니다. ‘과학과 철학은 실제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죽음을 선고하였는가? 교회들의 실패는 교회들이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것, 즉 성서가 틀렸음을 뜻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과연 계속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합시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근거

11. (ㄱ) 오랫동안 무슨 두 가지 책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근거가 되어 왔습니까? (ㄴ) 이 책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11 하나님의 존재에 관해 알려 주는 책에는 두 가지—창조의 “책” 곧 우리 주위의 자연과 성서—가 있다고 합니다. 이 책들은 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신앙의 근거가 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기원전 11세기의 한 왕은 별들이 총총한 하늘을 보고 감명을 받아 이런 시로 감탄을 표현하였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1) 20세기에 한 우주인은 달 주위를 선회하는 우주선에서 지구의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고 감동을 받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읊조렸습니다.—창세 1:1.

12. 창조의 책과 성서는 어떻게 공격을 받고 있습니까?

12 그러나 이 책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 주위의 세상을 과학적으로 조사해 본 결과, 생명이 지성적 창조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라 맹목적 우연과 되는 대로의 진화 과정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음이 증명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창조주란 도무지 존재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하나님에 관한 질문은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성서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비논리적인 책에 불과하며, 따라서 믿을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그들 생각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만한 근거가 더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두 사실입니까? 사실은 무엇을 알려 줍니까?

우연인가, 설계인가?

13. 생명이 우연에 의해 생기려면, 무슨 일이 일어났어야 합니까?

13 만일 창조주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생명은 틀림없이 우연에 의해 저절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생명체가 생기려면, 온도와 압력 및 그 밖의 지배적 요인들이 적당하다는 조건 아래, 어떤 식으로든 적당한 화학 물질이 적당한 양으로 한데 결합되었어야 하며, 그 모든 것이 정확한 길이의 시간 동안 유지되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지상에서 생명이 시작되어 유지되려면, 그런 우연한 일들이 수없이 반복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런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됩니까?

14. (ㄱ) 하나의 단순 단백질 분자가 우연에 의해 만들어질 확률은 얼마나 희박합니까? (ㄴ) 수학적 계산은 생명체가 저절로 생겨났다는 개념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14 진화론자들은 적당한 원자와 분자들이 우연히 적절한 위치에 놓여 단 하나의 단순 단백질 분자를 만들 수 있는 확률이 10113분의 1임을 인정합니다. 10113은 1 다음에 0을 113개 붙인 수입니다. 이것은 우주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든 원자 수보다도 더 큰 수입니다! 수학자들은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이 1050분의 1 미만이면 결코 일어나지 못할 일로 여기고 무시합니다. 그러나 생명체가 생기려면 하나의 단순 단백질 분자보다 훨씬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단 하나의 세포가 그 활동을 유지하는 데도 약 2000가지 단백질이 필요하며, 그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날 가능성은 1040,000분의 1입니다! “사회적 신앙이나 과학 훈련으로 인해 갖게 된 편견 때문에 생명이 지상에서 [자연히] 시작되었다는 신념을 갖게 된 사람의 경우가 아니라면, 이 단순한 계산만으로도 그 개념은 완전히 배격당하고 만다”고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은 말합니다.

15. (ㄱ) 과학자들은 물질 세계를 연구하면서 무엇을 발견합니까? (ㄴ) 한 물리학 교수는 자연 법칙들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

15 반면에, 물질 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원자를 구성하는 미립자로부터 광대한 은하에 이르기까지, 알려진 모든 자연 현상들이 일정한 기본 법칙들을 따르고 있는 듯한 것을 발견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논리와 질서를 발견하며, 이 논리와 질서를 간단한 수학 용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 교수인 폴 데이비스는 「뉴 사이언티스트」 잡지에서 “이 법칙들이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고 명확해서 감명을 받지 않는 과학자가 거의 없다”고 기술합니다.

16. (ㄱ) 자연 법칙에 들어 있는 기본 상수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ㄴ) 이런 상수 값이 조금이라도 변하면 무슨 일이 생길 것입니까? (ㄷ) 한 물리학 교수는 우주와 우리의 존재에 관해 무슨 결론을 내렸습니까?

16 그러나 그 법칙들과 관련하여 매우 흥미를 끄는 한 가지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가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정확한 값이 유지되어야 하는 특정 요소들이 그 법칙들에 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기본 상수 중에는 양성자에 걸리는 전하 단위, 특정한 기본 입자들의 질량, 보통 G라는 문자로 표시되는 뉴턴의 만유 인력 상수 등이 있습니다. 그에 대하여 데이비스 교수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상수 중 일부가 조금이라도 변하면 우주의 모습이 급격하게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 프리먼 다이슨은 핵자(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의 힘이 몇 퍼센트만 더 강해져도 우주에서 수소가 없어질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물은 말할 것도 없고, 태양 같은 별들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한은,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브랜든 카터는 G 값이 극히 적게 변화해도 모든 별이 청색 거성이나 적색 왜성으로 변할 것이며, 생명체에도 똑같이 무시무시한 결과가 닥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데이비스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므로 우주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이 그러할진대, 우리 자신이 의식을 지닌 개체로 존재한다는 것이 틀림없는 논리의 결과라는 것은 주목할 만한 생각이다.”—사체로는 본서에서.

17. (ㄱ) 우주에 나타난 설계와 목적은 무엇을 분명히 지적합니까? (ㄴ) 성서는 그 점을 어떻게 확증합니까?

17 이 모든 것으로부터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우주가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면, 그 법칙들을 만들거나 정한 지성을 가진 입법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주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들은 생명체와 그것을 유지하는 데 적합한 조건들을 예상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므로, 목적이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설계와 목적—이것은 맹목적 우연의 특징이 아니라, 틀림없이 지성을 가진 창조주께서 나타내시는 특징입니다. 그리고 성서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여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에게 밝히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것을 그들에게 밝히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그때부터 그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 말하자면 그의 영원하신 힘과 신으로서의 성품이 그가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분명히 알려져 있[습니다.]”—로마 1:19, 20, 새번역; 이사야 45:18; 예레미야 10:12.

우리 주위의 풍부한 증거

18. (ㄱ) 또 다른 어떤 면에서 설계와 목적을 볼 수 있습니까? (ㄴ) 지성에 의한 설계를 나타내는 잘 알려진 예로 어떤 것들을 들 수 있습니까?

18 물론, 설계와 목적은 우주의 질서 정연한 작용에서뿐 아니라, 단순한 것이든 복잡한 것이든 생물들이 매일의 활동을 수행하는 방법에서도 나타나며, 또한 생물들이 서로간에 그리고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방법에서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우리 인체의 거의 모든 부분—뇌, 눈, 귀, 손—은 현대 과학으로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복잡한 설계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동물계와 식물계도 있습니다. 특정한 새들이 해마다 육지와 바다를 수천 킬로미터씩 날아서 이주하는 것, 식물의 광합성 작용, 수정란 하나가 특별한 기능을 가진 수없이 많은 여러 가지 세포로 구성된 복잡한 기관이 되는 점 등은—단지 몇 가지만 예를 든 것에 불과하지만—한결같이 지성에 의한 설계를 나타내는 탁월한 증거입니다. *

19. (ㄱ) 어떤 사물의 작동 방법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지성있는 설계나 설계자가 없는 것으로 증명됩니까? (ㄴ) 우리 주위 세계를 연구함으로써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9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과학 지식의 증가로 이 놀라운 일들 중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한때 불가사의였던 많은 것을 과학이 어느 정도 설명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어린이가 시계의 작동 방법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 시계가 누군가에 의해 설계되고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가 물질 세계에 있는 많은 사물이 작용하는 놀라운 방법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 배후에 지성있는 설계자가 없는 것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와는 달리, 우리가 주위 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지성을 가진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더 많은 증거를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방적인 정신으로, 시편 필자가 인정한 이와 같은 말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시 104:24.

성서—믿을 있는가?

20.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만으로는 그분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도록 만들기에 충분치 않다는 것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20 그렇지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만으로는 사람들이 그분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도록 만들기에 충분치 않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미국의 여론 조사가 조지 갤럽 2세는 말하기를, “사실상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나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이나 속임수를 쓰고 탈세를 하고 좀도둑질을 하는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 주된 이유는 사교상의 필요를 위한 종교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부언합니다. “많은 사람은 단지 자기들에게 편하고 자기들 마음에 들며 그다지 힘들지 않은 종교를 짜맞추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기식 종교라고 불렀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 이 나라[미국] 그리스도교의 주된 약점이다. 확고한 신앙이 도무지 없는 것이다.”

21, 22. (ㄱ) 성서는 무엇 때문에 뛰어난 책입니까? (ㄴ) 성서의 확실성에 대한 기본적 증거는 무엇입니까? 설명하십시오.

21 그 “주된 약점”은 주로 성서에 대한 지식과 믿음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면 성서를 믿을 만한 어떤 근거가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여러 시대에 걸쳐 전해 내려오면서, 성서보다 더 부당한 비평과 학대와 증오와 공격을 받은 책은 또 없을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그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존속하였으며, 기록상 가장 널리 번역되어 배부된 책이 되었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성서는 뛰어난 책입니다. 그러나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받은 책이고 우리가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풍부한 증거, 설득력있는 증거가 있습니다.—참조 340-1면 네모.

22 많은 사람은 대체로 성서가 비과학적이고 모순되며 시대에 뒤떨어진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들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성서의 비길 데 없는 저작, 역사적·과학적 정확성, 틀림없는 예언 등은 한결같이 하나의 필연적인 결론, 즉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이라는 결론을 지적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 유익합니다.”—디모데 후 3:16, 신세.

불신의 도전을 직면함

23. 사실들을 살펴볼 때 성서에 관해서 어떤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까?

23 창조의 책과 성서로부터 증거를 살펴볼 때, 우리는 어떤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까? 다름아니라, 이 책들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타당하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선입견에 휩쓸리지 않고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한다면, 어떤 반박도 이치적인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찾으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대답은 언제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계속]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7:7, 신세 참조; 사도 17:11.

24. (ㄱ)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무엇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까? (ㄷ)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무엇을 살펴볼 것입니까?

24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한 대부분의 사람은, 직접 증거를 자세히 살펴보고 성서가 참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교국이 성서의 참 하나님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했기 때문에 돌아선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프랑스의 저술가 P. 발라디에가 이렇게 기술한 바와 같습니다. “무신론이라는 열매를 산출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교 전통이었다. 그 전통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소개함으로써, 사람들의 양심 속에서 하나님을 살해하였다.” 사실이 그러하더라도,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와 같은 말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로마 3:3, 4) 그렇습니다. 참 하나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책의 나머지 장들에서, 우리는 그 노력이 어떻게 성공적인 완결을 향해 진전되었는지 그리고 인류 앞에 어떤 장래가 있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각주]

^ 18항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는 이 증거들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사단 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서 1985년에 발행한 「생명—그 기원은 무엇인가? 진화인가, 창조인가?」 책, 142-78면 참조.

[연구 질문]

[340, 341면 네모]

성서의 확실성에 대한 증거

비길 데 없는 저작: 성서는 첫 권인 창세기부터 마지막 권인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사회적·교육적·직업적 배경을 지닌 약 40명의 필자에 의해 기록된 66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록 기간은 기원전 1513년부터 기원 98년까지, 16세기 이상에 걸쳐 있다. 그러나 최종 결과로 나타난 것은 뚜렷한 주제—메시야 왕국을 통해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이 입증되는 것—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조화되고 일관성 있는 한 권의 책이다.—참조 241면 네모.

역사적 정확성: 성서에 기록된 사건들은 증명된 역사적 사실과 온전히 일치한다. 「한 법률가의 성서 검토」(A Lawyer Examines the Bible) 책은 이렇게 알려 준다. “소설이나 전설 및 허위 증언은 관련된 사건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느 장소와 불분명한 어느 시간에 조심스럽게 맞추지만 ·⁠·⁠· 성서 이야기는 관련된 사건들의 연대와 장소를 아주 정밀하게 알려 준다.” (에스겔 1:1-3) 그리고 「신 성서 사전」(The New Bible Dictionary)은 이렇게 기술한다. “[사도 행전의 필자는] 그가 쓴 이야기를 그 당시의 역사의 틀 속에 설정해 놓고 있다. 그의 기록은 시 행정관, 지방 총독, 분봉왕들 같은 사람들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는데, 언급된 이러한 인물들이 문제의 장소와 시간에 딱 들어맞음이 거듭거듭 증명되고 있다.”—사도 4:5, 6; 18:12; 23:26.

과학적 정확성: 레위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격리와 위생에 관한 법이 주어졌을 때, 주변 나라들은 그런 것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고대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던, 비가 내리고 대양의 수증기가 증발하는 순환 과정이 전도서 1:7에 묘사되어 있다. 지구가 구체이고 공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16세기까지도 과학으로 확증되지 않았던 것이지만, 이사야 40:22(신세)과 욥기 26:7에 언급되어 있다. 윌리엄 하비가 피의 순환에 관한 발견을 발표하기 2200여 년 전에, 잠언 4:23은 인간의 마음 곧 심장이 수행하는 역할을 지적하였다. 이와 같이 성서는 과학 교본은 아니지만, 과학과 관련된 문제를 다룰 때는 그 시대보다 훨씬 앞선 이해의 깊이를 보여 준다.

틀림없는 예언: 고대 티레(두로)의 멸망, 바빌론(바벨론)의 함락, 예루살렘의 재건, 메디아-페르시아(메대-바사) 및 그리스(헬라) 왕들의 흥망 성쇠 등은 아주 세부적인 점까지 예언되어 있어서, 비평가들은 실제로 그런 사건이 일어난 후에 예언이 기록되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할 정도다. (이사야 13:17-19; 44:27-45:1; 에스겔 26:3-7; 다니엘 8:1-7, 20-22) 예수에 관한 예언들은 그분이 태어나기 몇 세기 전에 기록되었지만 세부점까지 성취되었다. (참조 245면 네모.)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수 자신의 예언도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누가 19:41-44; 21:20, 21) 예수와 사도 바울이 마지막 날에 관해 말한 예언들은 우리 시대에 성취되고 있다. (마태 24장; 마가 13장; 누가 21장; 디모데 후 3:1-5) 그러나 성서는 모든 예언이 하나의 근원인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려 준다.—베드로 후 1:20, 21.

[333면 삽화]

다윈,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및 그 밖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침식하는 이론들을 주창하였다

[335면 삽화]

창조의 “책”과 성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근거를 제시한다

[338면 삽화]

주위 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지성을 가진 창조주에 대해 더 많은 증거를 갖게 된다

[337면 도해와 삽화]

설계상의 특정 요소들이 조금이라도 빗나간다면, 생명체와 우주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도해]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수소 원자의 구성

전자 껍질

양성자 + 핵

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