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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활한 술책을 쓰지 않고 십세기 동안 일할 제사장들

교활한 술책을 쓰지 않고 십세기 동안 일할 제사장들

제6장

교활한 술책을 쓰지 않고 십세기 동안 일할 제사장들

1, 2. (ㄱ) 역사 기록에 나타난 제사장들은 왜 사람들을 그다지도 학대하였읍니까? (ㄴ) ‘루스드라’에서 희랍의 ‘제우스’ 신과 ‘유대’인들의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차이가 나타난 것은 언제였읍니까?

인류 역사는 태고적부터 제사장들에 관한 기록으로 가득차 있읍니다. 인류가 제사장들에게 그렇게도 미혹되고 기만당하고 착취당하고 억압을 받은 이유는 이들 제사장들의 대다수가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천 구백년 전에 이교 희랍인들의 최고의 신을 섬긴 한 제사장에게 바로 이 사실이 지적되었읍니다. 어떻게?

2 이 일은 기원 47-48년경에 ‘로마’의 소‘아시아’ ‘루가오니아’ 도 ‘루스드라’에서 있었읍니다. 이 도시의 주민들은 ‘로마’인들이 ‘주피터’라고 부른 신, 그러나 희랍인들은 ‘제우스’(쓰스)라고 부른 신을 숭배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전파하는 두 사람이 그 도시에 왔을 때에 ‘제우스’ 즉 ‘주피터’ 신과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의 명백한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읍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바울’이었는데, 그는 몇해 전에 ‘유대’교 ‘바리새’파에 속했었고, 또 한 사람은 ‘바나바’였는데, 그는 이전에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이 있는 ‘레위’인이었읍니다. 그 때에 발생한 일에 대한 의사 ‘누가’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3. ‘루스드라’에서 일어난 어떠한 기적에 의한 병 고침을 보고 ‘제우스’ 신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려 하였읍니까?

3 “‘루스드라’에 불구자 한 사람이 앉아 있었읍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걸어본 일이 없었읍니다. 이 사람이 ‘바울’의 말을 듣고 있었읍니다. ‘바울’이 그의 얼굴을 보고 고침을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알았읍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똑바로 일어서라’ 하고 말했읍니다. 그러자 그는 뛰어 일어나 걸어 다녔읍니다. 무리는 ‘바울’이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말로 ‘신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내려왔다’ 하고 소리질렀읍니다. 그리고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부르고 ‘바울’은 공석상에서 말하는 것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헤르메스’[‘머어큐리’]라고 불렀읍니다. 성 밖에 있는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은 몇 마리의 황소와 화환을 성문 앞에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두 사도에게 제사를 드리려 했읍니다.

4. ‘바나바’와 ‘바울’은 자기들에게 제사드리는 것을 어떻게 말렸읍니까?

4 “그러나 ‘바나바’와 ‘바울’ 두 사도는 이 말을 듣고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군중 가운데로 뛰어들어가서 외쳤읍니다. ‘여러분,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합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가지고 와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나간 세대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 사람을 제멋대로 살게 내버려두셨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 가지 선한 일을 하심으로 자신을 알려 주셨읍니다. 곧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철을 따라 추수하게 하시고 먹을 것과 즐거움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읍니다.’ 두 사도가 이렇게 말하면서 군중이 자기들에게 제사드리지 못하도록 겨우 말렸읍니다.”—사도 14:8-18, 새번역.

5. 종교적으로 흥분한 군중이 얼마나 변덕스러운가가 그 후 어떻게 나타났으며 그래서 ‘루스드라’에서 어떠한 술책이 계속되었읍니까?

5 ‘루스드라’에 있는 일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숭배자들이 되었지만 일반 군중은 그렇지 않았읍니다. 종교적으로 흥분한 군중은 참으로 변덕스럽고 요동하는 상태에 있었음이 얼마 후 그들이 그리스도교에 대한 ‘유대’인 적들의 설득을 받고 기적을 행하는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자와 다름 없이 그를 도시 밖에 끌어낸 사실로 나타났읍니다. 그 도시의 ‘제우스’ 신 제사장은 이것을 말리지 않았음이 분명하며, ‘루스드라’ 군중은 계속 ‘제우스’를 숭배하였으며 이 ‘제우스’ 신 제사장으로부터 미혹과 착취를 당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유대’인들은 ‘루스드라’에서 그런 일이 있는 것을 기뻐하였읍니다.—사도 14:19-22.

6. 예수께서 재판받고 형주에 달린 것을 알리는 기록은 어떻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제사장들도 악하게 될 수 있음을 알려 줍니까?

6 기록에 의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 제사장들까지도 악하게 되었읍니다. 예를 들면 기원 33년 그 유명한 유월절에 군중이 예수 그리스도를 형주에 달라고 아우성치고 ‘로마’ 총독이 “내가 너희 왕을 [형주]에 못박으랴?” 하고 질문하면서 그들을 제지하려 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왕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데 앞장 선 것은 누구였읍니까?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형주]에 못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형주]에 못박히게 저희에게 넘겨 주니라.” (요한 19:14-16) 그 날 얼마 후에 행인들이 ‘갈보리’의 형주에 못박혀 달려 있는 예수를 모욕할 때에 예수를 조롱하는 자들 중에는 누가 있었읍니까? 기록은 솔직히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고위 제사장들, 신세]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형주]에서 내려올찌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찌라. 제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니라].”—마태 27:39-43.

7. ‘베드로’와 ‘요한’과 후에 열 두 사도들이 ‘유대’인 ‘산헤드린’ 앞에 섰을 때에 고위 제사장들의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하여 무엇이 분명하여졌읍니까?

7 “고위 제사장들”이라는 언급은 특히 ‘안나스’(전직 대제사장)와 그의 사위 ‘가야바’를 의미하였읍니다. (누가 3:1, 2; 요한 18:13, 24; 사도 4:5, 6) 이들 고위 제사장들과 ‘예루살렘’의 최고 법정(‘산헤드린’)의 나머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와 ‘요한’에게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하였을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이들 고위 제사장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사도 4:18-20) 얼마 후 예수 그리스도의 열 두 사도 전부가 ‘예루살렘’의 그 최고 법정에 서게 되었으며, 주임 역원격인 대제사장은 이들 사도들이 자기와 법정의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대답하는 것을 들었읍니다. (사도 5:29) 이 ‘유대’인 고위 제사장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있음은 분명하였읍니다. 그들은 더는 그분을 대표하지 않았읍니다.

8. 그 ‘유대’인 고위 제사장들과 비슷한 행동을 한 어떠한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제사장이 되지 못할 것입니까?

8 그러한 성서의 기록을 고려할 때에,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제도에서 “제사장”을 의미하는 “사제”라는 칭호를 가진 자들이, 종교 역사와 세속 역사가 알려 주듯이, 가증하고 비열한 행동을 하여 온 것은 전례없는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땅의 사제들이 계시록 20:6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고 한 제사장들 가운데 끼어 있다면 그것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나고 두려워질 일입니다. 다행히도 영감받은 성경은 그러한 자들이 하늘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제사장이 되지 못함을 알려 줍니다.

9. 성서는 ‘유대’인 제사장 모두가 그들 고위 제사장들과 같았었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9 그러나 공정하게 말한다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기던 ‘유대’인 제사장들 전부가 악한 제사장이 된 것은 아닙니다. 성서 기록은 그 당시 그리스도인 회중의 통치체가 ‘예루살렘’ 회중에서 생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는가를 설명한 후에 이 사실을 밝혀 줍니다. 사도 행전 6:7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믿음에, 난외주] 복종하니라.”

10. 예수를 믿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성전 일은 어떻게 되었으며 그들은 어떠한 제사직의 성원이 되었읍니까?

10 물론, 예언자 ‘모세’의 형 ‘아론’ 가계의 그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인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후에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으로서의 그들의 일을 중지하였읍니다. 마찬가지로 ‘사이프러스’(‘구브로’)의 ‘요셉 바나바’도 ‘예루살렘’에서의 ‘레위’인으로서의 일을 중지하였읍니다. (사도 4:36, 37) 그러나 이들 이전 제사장들은 이제 더 웅대한 제사직의 성원이 되었읍니다. 이것은 사도 ‘베드로’가 천적 희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증한 “왕 같은 제사장”직이었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 전 2:9; 1:3, 4.

11. 예수께서는 왜 지상에서 인간 ‘유대’인 제사장이 아니었으며 그러나 그의 참다운 제사직은 누구의 대제사직을 본뜬 것이었읍니까?

11 그러나 주목할 만하게도 지상에 있는 어떠한 제사직도 그 “왕같은 제사장”, 그 “제사장 나라”의 대제사장을 마련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 19:6)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로 말하면 ‘유대’인 즉 ‘이스라엘’인이었지만, ‘레위’ 지파의 ‘아론’ 가계에서 태어나지는 않으셨읍니다. ‘유대’인의 제사직은 그 가계에 제한되어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아들”이었으므로 ‘다윗’ 왕가에서 태어나셨으며 따라서 ‘유다’ 지파에 속하셨읍니다.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도다].” (히브리 7:1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천적 대제사장직은 그분이 지상에서 인간 제사장으로 계신 것에 기초를 두었다고 말할 수 없읍니다. 그분이 왕이면서 또한 어떻게 제사장이 되셨는지에 관하여는 우리가 여기에서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의 참다운 제사직은 ‘유대’인 대제사장 ‘아론’의 제사직을 본뜬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참 제사장의 가치

12. 히브리 5:1-3에 의하면 제사장에게는 어떠한 가치가 있읍니까?

12 아무튼 제사장에게는 어떠한 가치가 있읍니까? 제사장은 왕이 할 수 없는 일을 합니다. 이교신의 무가치한 제사직이 아니라 ‘레위’인 ‘아론’ 가계의 제사직에 대하여 말하면서 히브리 5:1-3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대제사장 ‘아론’과 같이]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3. (ㄱ) 인류를 위한 제사장이 필요치 않은 때는 언제였읍니까? (ㄴ) 예수께서 어떻게 대제사장이 되어 희생을 바치실 수 있게 되셨읍니까?

13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죄가 없었다면 제사장, 특히 대제사장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완전한 인간 ‘아담’에게는 제사장이 필요치 않았읍니다. 그는 죄의 근원이 아니신 여호와 하나님께 무죄한 자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창세 2:7, 8; 전도 7:29) “마지막 ‘아담’”이라고 불리우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인류 가운데 태어 나셨지만 그에게는 제사장이 필요치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탄생하셨으며 그분의 생명은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죄없이 태어나셨고 죄없이 자라나셨으며 희생의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죄가 없으셨읍니다. (고린도 전 15:45-47; 히브리 7:26; 베드로 전 2:21-24) 그분은 무죄하셨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되실 수 있었고 완전한 희생을 드릴 수 있었읍니다.

14, 15. (ㄱ) 예수께서는 스스로의 결정에 의하여 대제사장이 되셨읍니까? 아니면 어떻게 되셨읍니까? (ㄴ) 여호와께서 예수를 부활시키심으로 시편 2:7이 어떻게 성취되었으며, 예수께서는 그때에 어떻게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장이 되실 수 있었읍니까?

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다’ 왕족인데도 불구하고 누가 그분을 대제사장으로 삼았읍니까? 그분은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기로 결정하셨읍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실 수 없었읍니다. 이것이 히브리 5:4-6에 이러한 말로 설명되어 있읍니다.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느니라].”

15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심으로 ‘다윗’이 기록한 시편 2:7에서 인용된 말씀을 성취시키셨으며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셨으며 불후성(不朽性)으로 일으킴을 받은 이분은 생명의 수여자이신 하늘의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 되셨읍니다. 그분은 이제 불후의 아들이 되셨으므로 계승자가 필요하지 않은 ‘영원한 제사장’이 되실 수 있었으며 그리하여 그분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 되실 수 있었읍니다.—사도 13:33-37; 시 110:4.

16. 이 ‘멜기세덱’은 어떠한 사람이었으며, 「창세기」에 의하면, 그는 어떻게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읍니까?

16 신비에 싸인 그 역사적 인물 ‘멜기세덱’—그는 어떠한 사람이었읍니까? 그는 ‘히브리’인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이스라엘’인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레위’인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기원전 1943년과 1933년 사이의 어느 때엔가 갑자기 오늘날 ‘예루살렘’ 근처에 등장합니다. “‘히브리’ 사람 ‘아브람’”이 전쟁에서 오늘날 ‘헤브론’이 위치한 곳 근처로 돌아오는 길에 그곳에서 그를 만났읍니다. 이 상봉에 관한 ‘히브리’어 성경의 기록 전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세 14:17-20.

17. ‘멜기세덱’은 어떠한 면으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전영하였으며, 예수는 ‘멜기세덱’의 계승자였읍니까?

17 이 기록은 ‘멜기세덱’의 인간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알려주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는 ‘멜기세덱’이 그의 제사직을 그의 아버지로부터 이어 받았다고 말할 수 없읍니다. 기록은 또한 ‘멜기세덱’이 언제 죽었는지를 알려 주지 않으므로 그의 제사직이 그때 끝났다고도 말할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그의 제사직은 정해지지 않은 때까지 계속되었읍니다. 이와 일치하게 ‘멜기세덱’에게 계승자가 있었다는 보고가 없읍니다. 이러한 몇가지 점에서 그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전영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읍니다. 혹은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제사직을 ‘멜기세덱’으로부터 받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멜기세덱’의 제사장 계승자가 아니었읍니다. 그는 “반차”에 있어서만 ‘살렘’의 그 왕겸 제사장과 같았읍니다.

18.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직은 어떠한 제사직이며 히브리 6:20에서 7:3은 ‘멜기세덱’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합니까?

18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의의 왕’을 의미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반차”에 있어서 그와 같았으므로, 분명코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 대제사장직은 교활한 술책과 음모를 쓰지 않는 의로운 제사직일 것입니다. 이 점이 ‘히브리’ 6:20에서 7:3에 훌륭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인용하면 이러합니다.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절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 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19. ‘멜기세덱’은 제사직에 관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였으며, 따라서 예수의 제사직은 무엇에 달려 있었읍니까?

19 ‘멜기세덱’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합니까? 다시 말해서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었읍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맹세하려 하셨는데, 그분이 그 맹세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멜기세덱’을 본으로 사용하신 점에서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에게 영감을 주어 시편 110:1-4에서 이렇게 말하게 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의 경우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직은 인간 후손과 상속에 기초하지 않았읍니다. 그분은 ‘멜기세덱’을 통하여 혹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 ‘아론’ 가문을 통하여 제사직을 받을 필요가 없었읍니다. 예수의 제사직은 여호와 하나님의 맹세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불후성을 가진 천적 생명으로 부활되어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는 것에 기초를 두었읍니다.

20, 21. (ㄱ) 죽어가는 인류를 위하여, 제사직의 변화, ‘아론’의 제사직에서 ‘멜기세덱’의 제사직으로의 변화가 왜 필요하였읍니까? (ㄴ) 이것이 히브리 7:11-14에 어떻게 진술되어 있읍니까?

20 ‘아론’의 ‘레위’ 제사직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라비아 시내’ 산에서 중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에 의하여 제정되었읍니다. 그러나 ‘아론’ 가문은 범법자 ‘아담’으로부터 죄와 불완전성을 유전받았으므로 완전한 대제사장을 산출하지 못하였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었읍니다. 완전한 제사장이 그 가계에서 출생하지 않았읍니다. (로마 5:12) 그러므로 온 인류의 처지로 볼 때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의 제사직이 변화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불완전하고 죽어가는 제사직에서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직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었읍니다. 따라서 고대 ‘멜기세덱’과 같은 대제사장이 필요하였읍니다. 히브리 7:11-14의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21 “‘레위’ 계통의 제사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레위 계통의 제사직]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 직분이 변역한 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느니라].”

22, 23. (ㄱ)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과 대조적으로 예수께서는 어떻게 대제사장이 되셨읍니까? (ㄴ) 히브리 7:23-28에 의하면 대제사장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읍니까?

22 ‘유대’인 대제사장 ‘아론’과 직책을 맡는 그의 계승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맹세로 제사장들이 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의 어떠한 제사직과도 관련없이 하나님의 맹세에 의하여 대제사장이 되셨읍니다. 그분의 생명은 완전한 인간 희생으로 죽으심으로 잠시 중단되었으나 그분은 불후성을 가진 천적 생명으로 부활되어 영원히 ‘멜기세덱’과 같은 대제사장이 되셨읍니다. 그분과 ‘아론’의 ‘레위’ 제사직 및 그의 계승자들과의 차이가 히브리 7:23-28(새번역)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읍니다.

23 “또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그 직무를 계속할 수 없어서 그 수가 많아[‘아론’의 아들들]졌읍니다. 그러나 [더 크신 ‘멜기세덱’] 예수께서는 영원히 계신 분이므로 그의 제사장직은 갈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읍니다. 그것은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보자의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기에 합당합니다. 그것은 그가 거룩하고 악과 흠이 없고 죄인들과 구별되시며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른 대제사장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고 다음으로 백성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읍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바치심으로 단번에 이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불완전한 인간을 대제사장으로 세웠지만 율법 이후에[사백여년 후에] 온 [하나님의]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신 아드님을 대제사장으로 세웠읍니다.”

24.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종류의 “성소”에서 대제사장이시며, 인류는 어떠한 기간의 그의 제사직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까?

24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요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다음 두 귀절(히브리 8:1, 2, 새번역)에 이렇게 약술되어 있읍니다. “위에서 말한 것을 간추리면 이러합니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는 하늘에 계신 가장 크신 이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으며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시는 분입니다. 이 장막은 주[여호와]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류는, ‘사단’과 그의 악귀들이 결박되어 무저갱에 감금되어 있는 지정된 천년 동안, 이러한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나아가 인류를 위하여 간청하는 이러한 대제사장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마련은 참으로 인류를 위한 최상의 유익을 보증합니다.

25. 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지 않으셨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무엇의 모형이었읍니까?

25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으로 지상에 계셨을 때에 그분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공복으로 봉사하신 적이 전혀 없었읍니다. ‘모세’의 율법 규정상 그분은 그렇게 하실 수 없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분은 ‘레위’인도, ‘아론’의 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도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더 높은 성소, 곧 ‘헤롯’ 대왕이나 총독 ‘스룹바벨’이나 ‘솔로몬’ 왕 같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세우지 않은 더 높은 혹은 더 중요한 성전에서 봉사하셨읍니다. 인간이 지은 성전은, 예언자 ‘모세’가 세운 거룩한 회막(會幕)과 같이 단지 모형적이고 예시적인 것이었읍니다. (출애굽 40:1-33) ‘멜기세덱’이 ‘살렘’에 성전을 건축하였다는,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섬길 그러한 건물이 필요하였다는 기록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멜기세덱’과 관련하여 그와 같은 것은 하나도 모형으로 사용될 수 없읍니다. 그러나 더 크신 ‘멜기세덱’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소와 성전의 실체 즉 ‘주[여호와]께서 세우신 성소와 참 장막’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십니다.

참 성전

26, 27. (ㄱ) 성막과 ‘예루살렘’ 성전은 어떠한 두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읍니까? (ㄴ)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의 각 방에 어떠한 기물들이 있었읍니까?

26 ‘시내’ 산에서 ‘모세’가 세운 거룩한 장막과 ‘예루살렘’의 성전들에는 두개의 방이 있었는데 첫 방은 성소(聖所)라고 불리웠고 둘째 방 즉 맨 안쪽 방은 지성소(至聖所) 곧 가장 거룩한 곳이라고 불리웠읍니다.

27 첫 방인 성소에는 기물로서 보통 “진설병”이라는 제공의 떡을 위한 금상과 맨 위에 등불이 있는 일곱 갈래로 갈라진 금등대 및 고정시킨 금향단이 있었읍니다. 여기에서 대제사장은 금등대의 빛 가운데서 제공의 떡을 진열하고 제단에 향기로운 향을 피울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맨 안 쪽의 방 즉 지성소에는, ‘모세’가 친 장막과 ‘솔로몬’ 왕이 지은 성전의 경우에 거룩한 금 언약궤가 있었읍니다. 언약궤의 금 뚜껑 혹은 덮개 위에는 날개를 펴고 마주보는 두 금 ‘그룹’이 있었읍니다. 이 안쪽 방 즉 지성소에 빛을 비추어 준 것은 속죄소 위와 두 ‘그룹’ 사이에서 빛나는 ‘세키나’ 빛이라고 하는 기적의 빛이었읍니다.

28. ‘유대’인 대제사장은 지성소에서 속죄 희생물 피를 뿌리기 위하여 어떻게 준비하였으며, 그리하여 그는 누구의 죄에 대하여 속죄하였읍니까?

28 매년 속죄일에 ‘아론’계 대제사장은 속죄 희생의 피를 바치기 전에 휴대용 향로 즉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향로를 가지고 첫 방과 안쪽 방(지성소)을 분리시킨 안쪽 휘장을 통과하여 ‘세키나’ 빛을 받는 언약궤 앞에서 향을 피웠읍니다. 이것은 그가 후에 두 속죄 희생물의 피를 가지고 돌아와 언약궤의 속죄소(시은좌)에 이것을 뿌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었읍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자신과 ‘레위’ 집 혹은 족속의 죄에 대해,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의 죄에 대해 속죄하였읍니다. 이것이 ‘모세’의 율법 언약 가운데 약술된 속죄 절차였읍니다.—히브리 9:1-10; 민수 7:89.

29. (ㄱ) ‘모세’가 친 거룩한 ‘장막’은 언제 설치되었으며, ‘솔로몬’의 성전은 또한 언제 준공되었읍니까? (ㄴ) 참 장막 혹은 성전은 언제 존재하게 되었읍니까?

29 거룩한 회막이 기원전 1512년 봄 ‘니산’월 초 하루에 ‘모세’에 의하여 ‘시내’ 광야에 설립되었읍니다. ‘솔로몬’ 왕은 기원전 1027년에 ‘예루살렘’에 성전을 완공하였고 그 후 기원전 1026년 가을 ‘티쉬리’월 15일에 그것을 봉헌하였읍니다. (열왕 상 8:1, 2, 65, 66) 그러나 장막 혹은 성전의 실체 “성소”가 있는 “참 장막”은 언제 존재하게 되었읍니까? ‘헤롯’ 대왕이 건축한 성전의 실체가 아직 ‘예루살렘’에 있었을 때였읍니다. 그 때는 통용 기원 29년 초가을이었읍니다. 어떻게 그러하였읍니까? 참 성전을 필요로 하는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30, 31. (ㄱ) 언제 그리고 어떻게 대제사장의 실체가 존재하게 되었읍니까? (ㄴ) 죄를 제거하기 위한 어떠한 날의 실체가 그 때에 시작하였으며, 예수께서 제공하신 것은 ‘아론’이 제공한 것과 어떻게 비교되었읍니까?

30 바로 그 기원 29년에 대제사장의 실체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레위’ 대제사장 ‘아론’과 같이 그분은 직무를 행하는 장소로 거룩한 장막 혹은 성전을 필요로 하였읍니다. 희생을 드리는 이 대제사장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분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영적 대제사장이 되셨읍니다.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이 일은 그분의 침례자 ‘요한’에 의하여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으신 후에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30세 즉 그분이 인류의 죄를 위하여 희생의 죽음을 당하시기 삼년 반 전에 메시야 즉 기름부음받은 자가 되셨읍니다. (다니엘 9:24, 25, 27; 누가 3:21-23) 이 때에 큰 속죄일의 실체가 시작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막 곧 거룩한 장막이 세워진 후인, 기원전 1512년에 있었던 모형적 속죄일에 대제사장 ‘아론’이 가졌던 것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게 되셨읍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읍니까? 히브리서 8:3-6과 9:11-14에서 이렇게 알려 줍니다.

31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찌니라.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32. ‘아론’의 경우에 모형적으로 보여준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로 들어가셨으며, 죽은 행실에서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무엇을 가지고 들어가셨읍니까?

32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장막의 지성소에 해당하는]에 들어 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33, 34. (ㄱ) 예수께서는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으심으로 무엇을 상징하셨읍니까? (ㄴ) 하나님께서는 인간 예수를 위하여 무엇을 준비하셨으며, 그분은 왜 그것을 제공하셨으며, 몇번이나 그렇게 하셨읍니까?

33 그러므로 완전한 인간 예수께서 물 침례를 받으신 후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대제사장이 되셨을 때에 그분은 하나님께 희생으로 무엇을 바치셨읍니까? 그것은 인간의 죄를 결코 씻을 수 없는 피를 가진 인간 이하의 어떤 동물의 시체가 아니라 처녀 ‘마리아’에 의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소유하게 된 그분의 완전한 인간 몸이었읍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희생의 이 행로를 위하여 자기를 준비시키고 대비시키셨음을 인정하셨읍니다. 그 분은 이 지정된 때에 자기가 자기 희생의 이 행로를 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인정하셨읍니다. 따라서, 그분은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고자 침례자 ‘요한’에게 와서 그 때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제공하셨읍니다. 그분의 물침례는 희생의 죽음을 당하기까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신을 제공하는 것을 상징하였읍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10:4-10은 이렇게 말합니다.

3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35. (ㄱ) 모형적 속죄일에 무엇이 제단에 뿌려졌으며, 그 위에 무엇이 바쳐졌읍니까? (ㄴ) 예수께서 자신을 바친 “제단”의 실체는 무엇이었읍니까?

35 고대 모형적 속죄일에 대제사장 ‘아론’은 속죄 희생물의 피의 일부를 제단에 뿌리고 또한 거룩한 회막의 앞 뜰 가운데 있던 이 제단에 속죄 희생물의 기름을 태웠읍니다. (레위 16:16-19, 25) 그러면 영적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완전한 인간 희생을 바친 “제단”의 실체는 무엇이었읍니까? 그것은 회막의 뜰에 있는 구리 제단과 같은 물질적 제단이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그분이 ‘갈보리’에서 죽으실 때까지 달려 있던 형주가 아니었읍니다. 그 형주는 저주받은 것이었고 그분의 고귀한 피에 의하여 거룩하게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명 21:22, 23; 갈라디아 3:13) 오히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완전하고 살아 있는 인간 몸의 가치를 그 위에 바칠 수 있는 영적인 어떤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 혹은 호의였읍니다. 그 “뜻”을 행하기 위하여 그분은 자신을 제공하셨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제 동물 희생 대신에 한 인간의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뜻”을 기초로 하여 예수께서는 자기의 인간 생명의 가치를 바치셨읍니다.

36. 누가 이 영적 “제단”에서 먹을 수 있는 권한을 받았으며 그들 자신에게 어떠한 결과가 있읍니까?

36 그러므로 “제단”의 실체가 존재하게 되었으며, 이에 관하여 히브리서 13:10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국의 일부 사제들이 자기들의 교회 건물 혹은 기타 숭배의 장소 안에 물질적 “제단”을 만들고 “미사”를 올리는 등 그리스도의 희생을 반복적으로 바친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물질적인 생각에 치우친 비성경적 주장입니다! 참 영적 “제단”에서 먹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 거룩함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37. (ㄱ) 영적 “제단”과 함께 고대 “장막”과 관련하여 예표된 무엇이 존재하게 되었읍니까? (ㄴ) 이 뜰은 예수의 경우에 무엇을 모형적으로 나타냈읍니까?

37 고대 구리 제단이 거룩한 회막 앞 뜰 가운데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제단”의 실체와 함께 “뜰”의 실체가 존재하게 되었읍니다. 이것은 한 장소가 아니라 지상에 있는 사람의 상태를 대표합니다. 기름부음받으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 피조물의 상태에 계셨었기 때문에 그 뜰의 실체에 계셨었읍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의 그분의 상태는 문자적으로 공정하고 의롭고 결함 없고 흠 없는 것이었읍니다. ‘레위’인 ‘고라’의 자손과 같이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의 참 “장막”의 뜰에 있는 여호와의 뜻의 웅대한 제단에서 자신을 위한 휴식처를 발견하셨읍니다. (시 84:1-3)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즐거워하셨읍니다.—시 40:8.

38, 39. (ㄱ) 뜰과 제단의 실체와 함께 무엇이 존재하게 되었읍니까? (ㄴ) 이것은 어떠한 질문을 일으키며, 예수의 어떠한 말씀이 하나님께 그러한 장소가 있음을 알려 줍니까?

38 그리하여 새로운 영적 대제사장이신 기름부음받은 예수께 편의를 도모하는 제단과 뜰의 실체가 존재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막 혹은 성전의 실체도 존재하게 되었읍니다. 그 때부터 ‘여호와께서 세우신 참 장막’은 새로운 영적 대제사장이 임의로 사용할 수 있었읍니다.

39 그 “참 장막” 혹은 성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창조주께서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자신을 위하여 지으신 특수 신축 건물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그러한 것이 필요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존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늘에 거처를 가지고 계셨읍니다. 그분은 편재(遍在)하시는 일시에 어디에나 계시다는 무소부재하는 영이 아니십니다. 그분에게는 지성있는 존재자로서 자신이 계시는 장소, 즉 접근할 수 있는 거처가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읍니다. 그분은 자기를 믿는 소자 중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경고하시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읍니다.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태 6:9; 18:10) 다시 말하면, 그러한 하늘의 천사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접근할 수 있읍니다.

40.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처소와 관련하여 그것이 거룩한 “장막”의 지성소와 비교되도록 무슨 일을 하실 수 있었읍니까?

40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단독으로 거하시는 곳의 양상을 바꾸실 수 있읍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이제 막 침례받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름부으심으로 그의 영적 대제사장이 있게 하셨을 때 그분은 자기의 천적 처소로 새로운 양상을 띠게 즉 죄많은 인류와 관련하여(죄 없는 천사들과 관련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지위 혹은 특징을 지니게 하실 수 있었읍니다. 그의 천적 처소의 거룩함은 인류의 죄많은 상태와 대조되어 강화되었읍니다. 하나님 자신의 처소는 이제, 공의로우신 분이면서도, 거룩하지 않은 인류를 위해 적합하고 완전한 희생을 받아들이실 만큼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거룩한 장소로 나타났읍니다. 그러나 이 희생 곧 그 가치는 죄없고 거룩하고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대제사장에 의하여 바쳐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천적 보좌는 화해의 보좌가 됩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천적 처소가 모형적 장막 혹은 성전의 지성소 즉 가장 거룩한 방의 영적 특징을 지니게 하셨읍니다.

41, 42. (ㄱ) ‘아론’은 “일년 일차씩” 어디로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읍니까? 어떻게? (ㄴ) 예수께서 들어가신 지성소는 무엇이었으며, 어느 기간에 그리고 몇번 들어 가셨읍니까?

41 이것이 성서의 견해입니다. 우리는 대제사장 ‘아론’이 속죄 희생물의 피를 가지고 지적 회막의 지성소로 들어갔으며, 그렇게 하기 위하여 안의 휘장 혹은 막을 통과하였음을 기억합니다. (레위 16:12-17; 히브리 9:7) 모형적인 면을 성취하기 위하여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정한 지성소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성서는 그것이 어디에 있다고 알려 주며, 그것이 무엇입니까?

42 들어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찌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찌니 그리하면 그[예수]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 신세]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모형적]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브리 9:23-26.

43, 44. (ㄱ)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과 관련하여 그분의 거룩한 처소는 무엇입니까? (ㄴ) 성소와 지성소를 무엇이 분리시켰으며, 예수께서는 실체에 있어서 어떻게 이것을 통과하셨읍니까?

43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형적 장막 혹은 성전 안에 있는 모형적 “성소”로 들어가심으로 속죄일의 실체를 절정에 이르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계시는 “참 하늘” 즉 하늘 그 자체에 들어가셨읍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의 천적 처소가 지성소, 가장 거룩한 곳입니다.

44 지상에 있었던 모형적 장막 혹은 성전의 지성소는 휘장으로 가리워져 있었으며 따라서 지성소는 휘장 안에 있다고 언급되었읍니다. 그러므로 그 휘장은 지상의 인간 생명에서 보이지 않는 하늘로 가기 위해 통과하지 않으면 안될 인간 육체 장벽을 대표하였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망과 부활에 의하여 이 장벽을 통과하시고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셨읍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6:19, 20의 의미입니다. 그 귀절은 144,000명의 충실한 제자들의 천적 희망에 관하여 말한 후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휘장 안에” 닻을 내린 희망은 천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적 성전의 “성소”

45. (ㄱ) “장막”에는 지성소 외에 또 무엇이 있었읍니까? (ㄴ) 누가 얼마나 자주 어떻게 성소에 들어갔읍니까?

45 지성소가 지적 장막 혹은 성전의 전부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맙시다. 안방인 지성소 외에도 장막 혹은 성전에는 방을 구분시켜 주는 휘장 앞의 또 다른 방이 있었읍니다. 이 방을 성소라고 하였읍니다. (히브리 9:1-3)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 자체”의 모형이었으므로 휘장 혹은 막 앞의 성소는 무엇을 대표하였읍니까?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년 일차씩”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지만 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아니라 제사장보들도 정기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읍니다. 제사장들은 제단이 있는 뜰에서 직접 이 첫 방인 성소로 들어갔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뜰에서 성소를 가린 막 즉 드리운 천을 통과해야 하였읍니다.

46, 47. (ㄱ) 예수께서는 언제, 어떻게 성소의 실체에 들어가셨읍니까? (ㄴ) 그러므로 성소는 무엇을 대표하며 제사장들의 실체는 그 안에서 어떠한 특권을 즐깁니까?

46 그러므로 성서는 뜰보다 더 거룩한 상태를 대표하였읍니다. 성소가 가리워져 있었고 따라서 그 안에 있는 기물들이 뜰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었으므로 성소는 뜰로 상징된 것보다 우월한 영적 상태의 모형이었읍니다. 뜰은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운 입장을 가진 인간 상태를 상징하였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에서 침례를 받은 후 하나님의 성령으로 출생하고 따라서 하나님의 영적 아들이 되었을 때에 성소로 상징된 상태에 들어가셨읍니다. (마태 3:13-17) 또한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영적 아들로서 제사장의 직책을 부여받으셨읍니다. 그분은 대제사장 ‘아론’이 상징한 바와 같은 하나님의 대제사장이 되셨읍니다.

47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분명히 성소는 이러한 영적 제사장직으로 안내된 사람들의 영으로 출생한 상태를 대표하였읍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이들 지상의 영적 제사장들은 금등대의 빛과 같은 영적 빛을 받으며 제공의 떡이 놓인 금상에서 먹는 것과 같이 영적 음식을 먹으며 금향단 앞에 서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와 봉사의 향을 드립니다.—출애굽 40:4, 5, 22-28.

48. 예수께서는 얼마 동안 성소로 상징된 상태에 계셨으며, 제자들은 왜 그분에 관하여 명백한 식별력을 가지지 못하였읍니까?

48 침례받고 성령으로 기름부음받은 날로부터 죽으신 날까지 계산하면(기원 29년부터 33년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삼년 반 동안 성소로 상징된 상태 즉 영으로 출생한 제사장으로서의 그 상태에 계셨읍니다. 이 상태에서의 그의 봉사를 보통 사람들, 심지어 그의 충실한 제자들도 올바로 식별하고 인식할 수 없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보통 인간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부어진 기원 33년 오순절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읍니다. (요한 7:39) “성막문에 장”이 성소 안의 기물들을 보이지 않게 한 것같이 그들의 식별력은 가리워져 있었읍니다.—출애굽 40:28, 29.

49. 성소의 실체에 계신 예수께서는 어떻게 천적 지성소에 직접 접근하시는 일이 막혔었읍니까?

49 성소가 대표한 상태 곧 영으로 출생한 제사장 상태에서 지상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아직도 육체를 가진 완전한 인간 피조물로 계셨기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의 어전에 직접 접근하시는 일이 막혀 있었읍니다. ‘모세’가 “장을 드리워서 증거궤를 가리[웠]”을 때와 같이 그분과 천적 지성소 사이에 그 상징적 “휘장”이 있었읍니다.—출애굽 40:21.

50. (ㄱ)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 안쪽 “휘장”을 통과하셨으며, 어떻게 통과하셨읍니까? (ㄴ) 다음에 제사직에 관한 어떠한 맹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효력을 발하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5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기원 33년 ‘니산’월 16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되고 단순히 영으로 출생하셨을 뿐 더는 육체를 가진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영자로 온전히 출생하심으로써, “참 장막”의 그 상징적 휘장을 통과하셨읍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기술하였읍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느니라].” (베드로 전 3:18) 그 중대한 날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사직에 대한 하나님의 맹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효력을 발하였읍니다. 이제 그분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상으로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7:16, 24; 사도 13:33-37; 로마 1:1-4) 그분은 다음 사십일 동안 충실한 제자들에게 특별히 나타나신 후에 승천하시어 참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자기의 완전한 인간 희생의 가치를 바치셨읍니다.—사도 1:1-11; 히브리 9:24.

51. (ㄱ) 속죄일의 실체는 언제 끝났으며, 그것은 얼마 동안 계속되었읍니까? (ㄴ) 예수의 희생의 가치가 지성소에서 받아들여졌다는 증거가 어떻게 나타났읍니까?

51 천적 지성소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의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큰 속죄일의 실체는 끝났읍니다. ‘레위’ 지파의 대제사장 ‘아론’의 경우에 국가적 속죄일은 단지 문자적인 이십 사 시간의 하루 동안이었읍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 속죄일의 실체는 거의 3년 8개월간이었읍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열흘이 경과하였을 때에 천적 지성소에서 하나님께 바친 자기의 완전한 인간 희생의 가치가 받아들여졌다는 증거가 땅에 있는 충실한 제자들에게 나타났읍니다. 어떻게? 기원 33년 ‘시완’월 6일 일요일 곧 칠칠절 혹은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에 있던 그들에게 성령이 부어졌읍니다. (사도 2:1-36) 이 일로써 ‘주[여호와]께서 세우신 참 장막’과 관련하여 새로운 것이 이루어졌읍니다. 그것에 대하여 이제 살펴봅시다.

영적 제사장보들

52. (ㄱ) 더 큰 ‘멜기세덱’에게 제사장보가 있다는 것이 어떻게 전영되었읍니까? (ㄴ) ‘아론’ 제사직은 언제 창설되었으며, ‘아론’의 머리에는 어떠한 “거룩한 패”가 씌워졌읍니까?

52 고대 ‘살렘’의 왕겸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제사장보들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읍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제사장보들이 있읍니다. (히브리 5:8-10) 이것은 ‘레위’인 ‘아론’의 제사장 가문에 의하여 전영되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으로 그리고 그의 아들들을 그의 제사장보로 부르셨읍니다. 기원전 1512년 봄 ‘니산’월 초 하루에 예언자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직에 취임시켰읍니다. (출애굽 40:1, 2, 12-16; 29:4-9; 레위 8:1-13) 대제사장의 예복에 딸린 품목으로 “그들이 또 정금으로 거룩한 패를 만들고 인을 새김같이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 새기”었읍니다.—출애굽 39:30.

53. (ㄱ) 대제사장 ‘아론’의 예모를 그와 같이 장식 할 때에 ‘모세’는 여호와의 어떠한 명령을 순종하였읍니까? (ㄴ) “헌신의 패”에 해당하는 말은 어떠한 ‘히브리’어 동사에서 파생하였읍니까?

53 그러므로 ‘모세’는 자기의 형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취임시키기 위하여 예복을 입힐 때에 이러한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였읍니다.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성패[헌신의 성패, 신세]를 더 하고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라].” (출애굽 29:6, 7) 이 “헌신의 성패”는 순금으로 된 “빛나는 판”이었으므로 ‘히브리’어 성경의 많은 번역자들은 이 표현을 “거룩한 관”이라고 번역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출애굽 29:6, 예루살렘 성서 참조) 물론 “관”과 “면류관”에 대한 보통 ‘히브리’어 단어는 여기에서 “헌신의 패”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와 다릅니다. 레위 21:12에서 이 후자의 ‘히브리’어 단어는 대제사장의 머리에 붓는 기름 즉 관유에 적용되었읍니다. 인용하면 이러합니다.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그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위임한[헌신의 패, 신세]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니라.” 그 ‘히브리’어 단어는 호세아 9:10에서 ‘몸을 드리다’ 즉 ‘헌신하다’로 번역된 동사 ‘나자르’에서 파생하였읍니다.—미국인역; 신세.

54, 55. (ㄱ) 기름부음받은 대제사장은 무엇이라고 불리웠으며, 그를 기름부은 것은 무엇의 모형이었읍니까? (ㄴ) 침례자 ‘요한’은 예수에게 성령으로 기름부었읍니까?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하였읍니까?

54 의문의 여지 없이 대제사장 ‘아론’과 그의 후계자들은 그들의 공식 취임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들이었읍니다. (출애굽 29:30, 35) 대제사장은 거룩한 관유로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기름부음받은 자” 즉 메시야라고 불리웠읍니다. (레위 4:3, 5, 16; 6:22) 후에 ‘이스라엘’의 기름부음받은 왕들도 같은 칭호로 불리웠읍니다. (사무엘 상 24:6, 10; 26:9-11; 애가 4:20) 그러므로 대제사장 ‘아론’의 네 아들과 제사장보들의 이름이 열거된 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이는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이며 그들은 기름을 발리우고 거룩히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은 제사장들이라.” (민수 3:1-3)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나라 사이의 중보 ‘모세’가 그의 형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기름부었을 때에 그것은 모형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가 침례받은 물에서 올라오실 때 그에게 성령으로 기름부으실 것의 모형이었읍니다.

55 침례자 ‘요한’은 ‘레위’ 제사장 즉 ‘아비야’의 제사장 반열의 ‘사가랴’의 아들이었읍니다. 그러나 ‘요한’은 단순히 ‘요단’ 강에서 예수에게 침례를 베풀었을 뿐입니다. 그는 예수에게 영적 대제사장으로 기름붓지 않았읍니다. (누가 1:5-17; 3:21-23; 마가 1:9-11) 하나님께서만이 성령으로 예수에게 기름을 부으실 수 있었읍니다.

56, 57. (ㄱ) 침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무슨 권한을 받으실 것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예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기 전에 성령으로 받을 침례에 관하여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56 예수에 관하여 침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분이 내 뒤에 오십니다. 나는 몸을 굽혀 그의 들메끈을 풀 만한 사람도 못됩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물로 [침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침례]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에게 이 분의 오심에 대하여 미리 말씀하셨읍니다. ‘요한’이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읍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느니라].” (마가 1:7, 8, 새번역; 요한 1:33)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영적 대제사장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권한을 받으셨읍니다. 그러나 그분은 언제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실 것입니까? 그분이 완전한 인간 희생으로 죽으시기 전이 아니었읍니다.

57 그분은 죽은 자로부터 부활받으신 후 육체로 물질화하여 아직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에게 몇차례 보이게 나타나셨읍니다. 그분은 그 때 성령에 관하여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사도 행전 1:4, 5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58, 59. (ㄱ) 이 침례는 언제 있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이 성전에서 그 날 한 일을 어떻게 실체적으로 행하셨읍니까? (ㄴ) ‘요엘’의 무슨 예언이 그곳에서 성취되기 시작하였으며 ‘베드로’는 어떻게 그 문제를 예수와 관련시켰읍니까?

58 이 일은 그분이 승천하신지 열흘 후에 있었읍니다. 그 때는 기원 33년 ‘시완’월 6일 곧 칠칠절(오순절)이었읍니다. 그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인 대제사장은 밀 수확의 첫 이삭으로 누룩이 든 떡 두개를 하나님께 바쳤읍니다. (레위 23:15-21) 바로 그날, 하늘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실체적인 형태로 그리스도인 회중을 첫 열매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읍니다. (계시 14:4) 그분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지는 통로가 되심으로 그 일을 하셨읍니다. 그것은 요엘 2:28, 29의 예언의 성취의 시작이었으며, 영에 충만한 사도 ‘베드로’는 수천명의 ‘유대’인 참관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하였읍니다.

59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형주]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사도 2:14-21, 32-36.

60. 이처럼 예수께서 성령을 부으신 것은 기원전 1512년 ‘니산’월 1일에 ‘모세’가 행한 일로 어떻게 전영되었읍니까?

60 이렇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그의 충실한 제자들에게 침례를 베푸셨읍니다. 이 일은 오래 전 곧 기원전 1512년 ‘니산’월 1일에 전영되었읍니다. 그 때에 ‘모세’는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들에게 거룩한 기름을 부어 주었읍니다. 이에 대한 기록은 이러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정월 초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너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로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그 아비에게 기름을 부음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하시매 ‘모세’가 그 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출애굽 40:1, 2, 12-16.

61. 최초의 그 네명의 제사장보들의 후계자들이 기름부음을 받았는지에 대하여, 그리고 대제사장의 후계자가 거룩한 기름으로 개인적으로 기름부음받았는지에 대한 답은 무엇입니까?

61 그리하여 ‘아론’의 네 아들들은 ‘이스라엘’의 최초의 제사장보로 기름부음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들의 후계자로 직무를 맡은 제사장보들은 개인적으로 거룩한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읍니다. 단순히 그들이 제사장보의 예복을 입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간주되었읍니다. 처음 네명의 제사장보가 그들을 대표하여 기름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아론’의 후계자들은 모두 개인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읍니다. (민수 3:1-3; 출애굽 29:29, 30; 민수 20:23-29; 신명 10:6) 그러나 최초의 성원들이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전체 제사직은 기름부음받은 반열로 간주되었읍니다.

62. 예수께서는 지상에 있는 제자들에게 기름을 붓는 데 사용되셨으므로, 그들을 자기 밑에 있는 무엇으로 삼으셨으며, ‘요한’은 ‘계시록’에서 어떻게 이와 일치한 말을 하였읍니까?

62 실체적인 성취에서, 천적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44,000명의 충실한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기름부으심으로써 하나님의 대표자로 역할하시며 그들을 대제사장인 자기 밑에 있는 영적 제사장들 곧 제사장보들로 삼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었읍니다.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또한 그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주는 죽임을 당하셨고 그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셨사옵니다. 주께서 그들로 왕국을 이루게 하시고 제사장이 되게 하셔서 우리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사오니 그들이 땅 위에서 왕노릇할 것이옵니다.”—계시 1:5, 6; 5:9, 10, 새번역.

63. 사도 ‘베드로’는 편지로써 예수의 기름부음받은 제자들의 제사직에 대하여 어떻게 증언하였읍니까?

63 그 사실에 대한 또 다른 영감받은 증인이 있는데, 그는 사도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인들에 의하여 멸망(기원 70년)되고 그 곳에 있던 ‘레위’ 제사장들이 직위를 박탈당하기 몇해 전에 천적 희망을 가진,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 전 2:8, 9.

64. 그러므로 기름부음받은 그 제자들은 고대 “회막”의 경우로 예표된 바와 같이 어떠한 상태에 있으며, 예수와 같이 그들은 그 상태에서 어떠한 특권을 즐깁니까?

64 그들이 이제 제사장이라는 것은 인간의 손으로 짓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 장막” 혹은 성전과 관련하여 새로운 입장을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하였읍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제 ‘모세’가 세운 고대 “회막”의 성소로 예표된 제사장으로서의 영으로 출생한 상태에 있음을 의미하였읍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기름부음받으신 때부터 완전한 인간 피조물로서 죽으실 때까지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와 같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분과 같이 아직 육체를 가지고 지상에 있는 동안에 금등대의 실체가 비추는 영적 계몽을 즐깁니다. 그들은 금상 위에 있던 진설병 두 무더기에 의하여 예표된 영적 음식을 먹으며, 그들은 회막의 성소에 있는 금향단에서 분향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와 열렬한 봉사를 드립니다.

65. 성소로 상징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도 ‘요한’은 그들의 기름부음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편지하였읍니까?

65 모형적 성소로 상징된 영으로 출생한 상태에 있는 이들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한 1서 2:20, 26, 27.

66. 성소로 상징된 상태에 있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그들의 기름부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편지하였읍니까?

66 ‘아론’계 제사장들이 들어가 섬기도록 허락되었던 성소로 예표된 영으로 출생한 제사장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또한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기름부음받은 자]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린도 후 1:21, 22.

67. 영감받은 필자는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들에게 제단에서 먹는 것과 희생을 드리는 것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67 이들 144,000명은 천적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는 영적 제사장들이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의 “제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부터 먹을 권한이 있으며, 예수께서 참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임을 믿지 않고 배척한 자들은 하나님의 “제단”의 실체에서 그의 희생으로부터 먹을 권한이 없었읍니다. 영감받은 필자가 히브리 13:10-15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주제넘은 것이 아니었읍니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예루살렘’의]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68, 69. (ㄱ) 그들이 제단에서 먹는 것은 그들이 실체에 있어서 어느 장소에 있음을 시사하며, 그들은 어떻게 그 곳에 들어갔읍니까? (ㄴ) 그들이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편지가 보내졌읍니까?

68 이들 영적 제사장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한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참 “제단” 위에 있는 희생을 먹음으로 이것은 그들이 또한 희생의 구리 제단이 있는 뜰로 상징된 상태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희생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선언되는 즉 의화(義化)되는 상태입니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희생의 “피”의 가치를 가지고 천적 지성소에 들어가 이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직접 바치셨을 때에, 그 때, 기원 33년 오순절날 이후로, 그의 완전한 인간 희생의 유익은 그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지상에 있는 제자들에게 적용되기 시작하였읍니다. 마음의 인식을 가지고, 믿음을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기초하여 바쳐진 그리스도의 희생으로부터 먹었읍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죄사함을 받았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러한 죄사함을 허락하시고 그들을 육체에 있어서 무죄하다고 간주하심으로써 의롭다고 선언 즉 의화하셨읍니다. 이렇게 하여 그분은 그들을 뜰의 실체로 인도하셨읍니다. 그들이 이러한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69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이를 믿는 우리도 그와 같이 인정받게 됩니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음을 당하셨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읍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읍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오게 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할 것을 바라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써 의롭다함을 얻었으니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을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로마 4:24에서 5:2, 9, 새번역.

70. (ㄱ) 그들이 아직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단죄받지 않음을 더욱 보증하는 어떠한 기록이 「로마서」에 있읍니까? (ㄴ) 그들이 희생을 바친다고 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의 가치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읍니까?

70 하나님께서 이들 영적 제사장보들이 아직 육체를 가지고 지상에 있는 동안 그들은 무죄하고 단죄받지 않은 자로 간주하신다는 점을 더욱 확증하는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사도 ‘바울’]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 7:25에서 8:2) 그들이 아직 불완전하고 죄 많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의 이러한 의롭고 단죄받지 않은 신분은 희생의 구리 제단이 있던, 그리고 ‘아론’계 제사장들이 섬기던 곳인 고대 뜰로 상정되었읍니다. 그들 자신의 육체의 희생은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희생의 가치에 아무 보탬이 될 수 없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선을 행합니다. 그들은 어떤 교회에서 “미사 성제”라고 불리우는 것을 행하는 것이 전혀 무가치함을 인식합니다.

71. (ㄱ) 그처럼 의롭다고 선언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실체에 있어서 어떠한 장소에 있읍니까? (ㄴ) 무엇이 그들을 천적 지성소로부터 분리시키며, 누가 그리로 들어가는 길을 그들을 위하여 개척하셨읍니까?

71 아직 육체를 가지고 지상에 있는 동안, 의로 간주되는 상태의 옷을 입은 이들 제사장보들은, 또한 모형적 장막 혹은 성전의 성소로 상징된 영으로 출생한 그 상태에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좌정하여 계시는 천적 지성소에 들어갈 희망을 가지고 있읍니다. 지금 그들이 그 참 지성소로 직접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육체 장벽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아직 육체를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육체 장벽은, 장막의 성소와 ‘세키나’ 빛을 받는 금언약궤가 있던 지성소 사이를 막는 안의 휘장으로 상징되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휘장을 통과하여’ 진정한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을 개척하셨읍니다. 그는 그들을 위한 “선구자”로서 “휘장 안에” 지성소로 들어가셨읍니다. (히브리 6:19, 20) 그러므로 그는 천적 생명으로 들어가는 이 새로운 길을 개통하셨읍니다.

72. 144,000명의 제사장보들은 무엇에 들어가기에 합당함을 증명하라는 격려를 받고 있읍니까? 어떻게?

72 그러므로 이들 144,000명의 영적 제사장보들은 육체의 죽음을 경험하고 죽은 자로부터 영의 생명으로 부활될 때까지 충실함으로 “휘장 안에” 들어가기에 합당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용기를 가지고 노력하라는 교훈을 받고 있읍니다. 영감받은 필자는 히브리서 10:19-22(새번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우리는 예수의 피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그의 피를 드리심으로 휘장을 꿰뚫어 새로운 살길을 열어 주셨읍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위대한 제사장이 계십니다. ··· 이제부터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지 않겠읍니까?”

73. 영적 제사장보들은 육체 장벽을 통과하여 무엇으로 들어갈 것이며, 무슨 일을 할 것입니까?

73 그들은 죽기까지 영적 제사장보로 그들의 지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후에 “첫째 부활”로 생명에 이르게 될 때에 육체 장벽 곧 “휘장”의 실체를 통과할 것이며 천적 지성소에 들어갈 것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형용할 수 없는 영광을 볼 것입니다. 그들은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완전한 인간 희생의 가치를 바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대제사장과 함께 필요로 하는 인류에게 그리스도의 희생의 유익을 베풀기 위하여 하나님의 어전에 들어갈 것입니다. (계시 20:6) 그들은 천년간 천적 제사직의 일을 수행할 것이지만 그들의 뒤를 이어 봉사할 후계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롭게 되신 그들의 대제사장과 같이 그들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가질 것이며 후계자 없이 천년간 그들의 제사직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히브리 7: 16, 24.

동정심 있고 이해심 있는 제사장들

74. (ㄱ) 그리스도의 화목 희생은 144,000명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였읍니까? (ㄴ) 왜 그 희생은 그리스도의 제사직의 천년을, 인류에게 축복된 때로 만들 것입니까?

74 이 천적 제사직의 그 천년은 죄 많고 죽어가는 인류에게 참으로 축복된 때가 될 것입니다. 그 제사직의 대제사장은 단순히 자기의 144,000명의 제사장보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류를 위하여 완전한 희생을 하나님께 바치셨읍니다. 그들 영적 제사장보 중 한 사람으로서 ‘요한’은 십구세기 전에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한 1서 2:1, 2)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희생은 144,000명의 제사장보들이 죄와 죽음에의 단죄에서 해방되고 하늘에 있는 그들의 대제사장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였읍니다. 그 동일한 화목 희생은 온 인류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것은 세상의 죄를 위한 것입니다. 침례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침례자 ‘요한’이 이렇게 외친 것과 같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 1:29.

75. (ㄱ) 지상에 있는 144,000명의 제사장보들을 도우실 수 있는 그리스도의 능력은 그분이 또한 누구를 도우실 수 있음을 보증합니까? (ㄴ) 환난 생존자들의 큰 무리 외에 누가 그리스도의 희생의 가치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입니까?

75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144,000명의 제사장보의 회중이 죄를 극복하고 사망에의 단죄에서 벗어나도록 도우실 수 있었읍니다. 그분은 인류의 나머지 모두를 위하여 특히 하나님께 대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영원한 생명을 열망하는 자진적인 사람들을 위하여 동일한 일을 하실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년간에 걸쳐 이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 일을 기꺼이 하시며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자기의 천년 제사직의 임무 수행에서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그 때에 이 세상 사물의 제도를 종결시키는 큰 환난에서 생존하여 나오는 살아 있는 “큰 무리”를 돕는 일만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또한 지금 땅의 무덤 속에서 죽음의 잠을 자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도 도우실 것입니다. (디모데 후 4:1; 계시 7:9-15; 사도 24:15) 그분은 자기의 완전한 인간 희생의 고귀한 가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용되지 않거나 적용되지 않는 일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76, 77. (ㄱ)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시면서 시험을 받으셨을 때 인간에 대하여 어떻게 처신하셨으며, 이것은 천년 제사직 기간에 인류가 어떠한 취급을 받을 것을 보증합니까? (ㄴ)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왜 시험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는 더 나은 입장에 계십니까?

7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느니라].” (로마 5:8) 이것은 그분이 타락한 인류, 고집센 ‘아담’과 ‘하와’로부터 죄와 사망을 유전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동정적이고 자비롭고 자기 희생적 태도를 가지셨음을 입증하였읍니다. 그분은 삼십 삼년 반 동안 지상에 계시면서 친절하셨고 참을성 있었고 인정 있었고 도움을 잘 베푸셨고 이해심을 보이셨읍니다. 그분은 자신이 인간이 되어 유혹을 받아 보셨기 때문에 인간을 이해하실 수 있었고 따라서 그분은 불완전하고 죄에 시달리는 인류가 어떠한 취급을 받을 필요가 있는지를 예리하게 인식하실 수 있었읍니다. 그분은 ‘갈보리’에서 형주에 달려 무죄하게 죽음을 당하시면서도 오해한 사람들의 악담과 욕설을 불평 없이 참으셨읍니다. 그분이 지상에서 최악의 상태하에서 그러하셨다면, 그분의 천년 제사직 기간에 인류에 대하여 동일하실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읍니다. 이것이 영감받은 필자가 다음과 같이 기술할 때에 제시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논증입니다.

77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씨, 난외주]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브리 2:16-18; 또한 히브리 5:1, 2 비교.

78. 히브리서 5:7-10은 예수께서 순결한 숭배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경험하셨다고 알려 줍니까?

78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순결한 숭배를 위한 그리고 우리를 위한 성공적이고 흠 없는 대제사장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당하신 경험이 히브리서 5:7-10에 이러한 말로 간단히 묘사되어 있읍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79, 80. (ㄱ) 그리스도께서는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계시므로 자기의 천년 제사직 기간에 인류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읍니까? (ㄴ) 하나님의 맹세는 율법이 산출한 것과 대조적으로 무슨 제사직을 산출하였읍니까?

79 그분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후계자 없이 천년 제사직을 수행하시고 하나님께 영예를 돌리는 결과로 이끄실 수 있읍니다. 그분은 인류를 철저히 도와 죄와 그것의 끔찍한 형벌인 사망을 완전히 제거하실 수 있읍니다. 그분은 ‘아론’계의 많은 역대 제사장들이 천 오백여년간의 거룩한 봉사에서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을 하실 수 있읍니다. 히브리서 7:23-28(새번역)에 다음과 같이 기술된 바와 같습니다.

80 “또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 때문에 그 직무를 계속할 수 없어서 그 수가 많아졌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원히 계신 분이므로 그의 제사장직은 갈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읍니다. 그것은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보자의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기에 합당합니다. 그것은 그가 거룩하고 악과 흠이 없고 죄인들과 구별되시며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른 대제사장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리고, 다음으로 백성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읍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바치심으로 단번에 이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불완전한 인간을 대제사장으로 세웠지만 율법 이후에 온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신 아드님을 대제사장으로 세웠읍니다.”

81. (ㄱ) 왜 144,000명의 제사장보들은 인류에게 동정심과 이해심을 보일 수 있을 것입니까? (ㄴ) 그들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입니까?

81 그리고 ‘천년 동안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될 144,000명의 제사장보는 어떠합니까? (계시 20:6)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읍니다. (로마 8:29) 그들은 또한 인간 남녀로, 그러나 반역한 ‘아담’과 ‘하와’로부터의 유전 때문에 죄많고 불완전하고 기질이 나쁜 사람들로 태어났고 성장하였읍니다. 따라서 그들은 약하고 죄많은 인간 피조물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역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죄많고 죽어 가는 인류에 대하여 동정심과 친절을 나타낼 수 있읍니다. 그들은 영적 제사장보로 아직 지상에 있을 때에 그러하였읍니다. 그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천적 제사장보가 될 때에 동일할 것입니다. 그들은 죽을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일을 미완성시키는 아쉬움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가짐으로써 대제사장과 함께 그리고 그분과 보조를 맞추어 죄를 제거하는 일을 완수할 수 있읍니다. 그 결과는? 인류 가운데 기꺼이 응하는 사람들 모두는 죄없는 인간 완전성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82. 계시록 21:4은 그 천년 제사직의 외경을 일으키는 업적을 어떻게 묘사하며, 하나님께서는 다시 어떠한 우주를 소유하게 되실 것입니까?

82 교활한 술책을 쓰지 않고 천년기 동안 이러한 제사직이 수행할 외경을 불러 일으키는 업적이 이러한 놀라운 말로 묘사되어 있읍니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처음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계시 21:4, 새번역) 그렇습니다. ‘사망을 초래하는 가시’인 죄는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자기 본위의 첫 인간 부모로부터 유전받은 인류의 죄 많은 상태는 슬픔을 가져다 주는, 그리고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결과와 함께 일소될 것입니다. 지존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다시 깨끗하고 순결하고 거룩한 우주를 소유하실 것입니다.

[연구 질문]

[87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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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막 평면도

진설병을 위한 상

지성소

휘장

성소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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