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바로 가기

차례 바로 가기

“보라, 신랑이로다!”

“보라, 신랑이로다!”

제11장

“보라, 신랑이로다!”

1. “열 처녀”가 미정의 긴 잠을 자다가 누가 흥분케 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특히 어떠한 종교적 각성이 있은 후에 그러할 것입니까?

예수의 비유 가운데 예언된 그 미정의 긴 잠을 자다가 상징적인 “처녀들”, 특히 그릇에 여분의 기름을 가지고 간 “슬기있는” 처녀들을 흥분케하는 어떤 일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기원 16세기 초에 종교적인 각성이 있어 하나님의 진리의 유일한 서적,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위한 참으로 영감받은 지침서인 영감받은 성경으로 돌아가려는 열성적인 노력이 ‘유럽’에서 있은 후에 특히 그러하였읍니다. 다시 오시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은 성서의 성실한 독자들과 연구생들에게 상당한 감명을 주었읍니다. 그들은 이 두번째 오심이 천년기 이전 곧 ‘사단’이 결박되어 “무저갱” 즉 “밑없는 구덩이”에 감금되므로 시작될 약속된 천년기가 시작하기 전에 있을 것임을 알게 되었읍니다.

2. ‘루터’파 신학자 ‘제이. 에이. 벵겔’은 그러한 종교적으로 흥분을 자아내는 일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읍니까?

2 예를 들면, 18세기 상반기에 ‘요한 알브레히트 벵겔’이라는 ‘루터’파 신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독일 ‘부에르템베르크’의 ‘비넨덴’에서 기원 1687년에 태어나서 기원 1752년에 사망하였읍니다. 그는 성경에 대한 많은 저서를 남겼읍니다. 「브리타니카 백과 사전」(11판)은 그의 저서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더욱 중요한 저작으로는, 성서 연대에 관한 논문인 「오르도 템포룸」[시대의 질서]이 있다. 여기에서 그는 세상 끝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독일에서 널리 호평을 받은 「묵시록의 해설」이 있는데, 그것은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다.—제 3권 737면.

‘매클린톡’과 ‘스트롱’ 공편 「백과 사전」은 ‘벵겔’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짐승의 수”와 “천년기”의 연대[그는 천년기가 1836년에 시작된다고 단정하였다] 등을 결정하려고 노력한 그의 연대학적인 저작들은 판단이 신빙성 있다는 그의 평판을 다소 손상시켰다.—제 1권 749, 750면.

3. (ㄱ) 출판된 ‘벵겔’의 저서들은 왜 신랑에 대한 한 밤의 외침이 아니었읍니까? (ㄴ) 그 외에도 ‘매사추세츠’ 주(미국) ‘피츠필드’의 ‘윌리암 밀러’는 어떻게 사람들을 흥분시켰읍니까?

3 그러나 18세기 상반기에 발행된 ‘벵겔’의 저서들은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보라, 신랑이 온다. 나와 맞으라”라는 한 밤의 외침이 아니었읍니다. (마태 25:6, 개역 한글판; 새번역) ‘벵겔’의 출판물에 따라 그 책들의 내용대로 행동한 사람들은 1836년에 육체를 가지고 눈에 보이게 돌아오시는 천적 신랑을 만나지 못하였읍니다. 얼마 후 “정결한 처녀” 반열이라고 공언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또 다시 흥분케 하는 일이 있었는데, 1781년에 미국 ‘매사추세츠’ 주 ‘피츠필드’에서 태어난 사람과 관련하여 특히 그러한 흥분이 있었읍니다. 이 사람은 소위 ‘밀러파’ 혹은 ‘재림교도’의 창립자가 된 ‘윌리암 밀러’였읍니다. ‘매클린톡’과 ‘스트롱’ 공편 「백과 사전」 제 6권 271면은 이렇게 말합니다.

1833년경, 그가 ‘뉴우요오크’ 주 ‘로우 햄튼’에 거주하던 시절에 그는 세상이 1843년에 끝날 것이라는 새로운 교리를 가르치는 주창자로서의 생애를 시작하였다. 그의 신앙의 바탕을 이룬 주된 이론은 다니엘 8:14에 있는 2,300일의 만료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는 그날 수를 햇수로 간주하였다. 다음에 그는 다니엘 9:24의 70주를 앞장의 2,300일의 연대를 알아내는 관건으로 간주하였다. 페르샤 왕 ‘아닥사스다’가 ‘에스라’를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켜 ‘예루살렘’에 ‘유대’인 국가를 회복하도록 돌려 보낸(에스라 7장) 주전 457년으로부터 그 기간을 산정하고 일반 주석자들과 같이 그 70주의 끝을 그리스도께서 못박힌 주후 33년으로 계산한 그는 2,300일의 남은 기간인 1810년간이 1843년에 끝날 것으로 알았다. 십년 동안 그는 이러한 취지의 주장에 고착하여, 약속한 날을 고지식하게 기대한 많은 추종자들을 모으는 데 성공하였는데, 그 수는 5만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창자의 가르침과 다른 결과가 있게 되자, 때때로 재림교도들이라고도 불리운 그들은 점차 ‘밀러’를 등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1849년 12월 20일 ‘뉴우요오크’ 주 ‘와싱턴’ 군 ‘로우햄튼’에서 사망하였다.

4. (ㄱ) ‘밀러’ 운동은 어떻게 한 밤의 외침이 아니었읍니까? (ㄴ) 그로부터 30년 후에 독립적인 한 성서 연구 집단은 그리스도의 두번째 오심에 대하여 무엇을 깨닫게 되었읍니까?

4 그러므로 분명히, ‘밀러’파 운동은 “보라, 신랑이로다!” 하는 한 밤의 외침이 아니었읍니다. 천적 신랑은 1843년에 그 재림교도들의 눈에 보이게 육체로 그들에게 나타나 환희 가운데 그들이 원하는 천적 집으로 그들을 데려가시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성서 연구는 계속되었읍니다. 그로부터 30년 뒤에 재림교도들과 무관한, 그리고 그리스도교국의 어느 종파에도 속하지 않은 소규모 집단의 사람들이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어그’(‘앨리게이니’)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종파적인 색안경을 쓰고 성서를 보지 않으려고 독립적인 연구를 하였읍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은 20대 초의 ‘차알즈 테이즈 러셀’이었읍니다. 그들은 물론 천적 신랑 예수 그리스도의 두번째 오심에 강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서를 연구한 결과, 그리스도께서 물질화한 인간 육체로 눈에 보이게 돌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이제 혈과 육을 가진 분이 아니므로 영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돌아오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그의 도착은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을 것이며, 이 도착으로 그분의 보이지 않는 임재 즉 ‘파로우시아’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증거로 그의 임재가 분명하여질 것입니다.

“일곱 때”—“이방인의 때”

5. 그들은 연구 중 예수께서 언급하신 어떠한 기간에 관하여 고려하였으며, 1876년에 ‘러셀’은 그 기간의 끝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발표하였읍니까?

5 이들 탐구심이 강한 연구생들은 그들의 성서 연구 중 예수께서 누가 복음 21:24에서 말씀하신 “이방인의 때”에 관하여 고려하게 되었으며, 그들은 그 이방인의 때를 다니엘 4장 16, 23, 25, 32절에 네번 언급된 “일곱 때”와 결부시켰읍니다. 이들 성서 연구생들은 이방인이 땅을 지배하는 그 “일곱 때”가 하나님 앞에서 합법적으로 끝나는 시기를 언제로 결정하였읍니까? 그 당시 ‘뉴우요오크’ 시 ‘브루클린’에서 ‘조지 스토어스’라는 사람이 발행하는 월간지가 있었는데, 그 잡지 이름은 「사경 (査經)」지였읍니다. 1876년에 24세의 ‘러셀’은 그 문제에 대한 글을 써서 동 잡지에 기고하였읍니다. 그것은 1876년 10월호인 제 21권 1호에 게재되었읍니다. ‘러셀’이 쓴 기사는 그 잡지 27, 28면에 “이방인의 때: 언제 끝나는가?”라는 제목으로 실렸읍니다. 그 기사(27면)에서 ‘러셀’은 “일곱 때가 주후 1914년에 끝날 것이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6. (ㄱ) 1877년에 ‘러셀’은 무슨 책을 공동으로 발행하였으며, 그 책은 이방인의 때의 끝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그 때 인정된 연대표에 의하면 인간 존재 6천년은 언제 끝났으며, 그러나 일곱 째 천년기는 언제 시작된다고 생각되었읍니까?

6 이듬해(1877년) ‘러셀’은 ‘뉴우요오크’ 주 ‘로체스터’의 ‘넬슨 에이치. 바아버어’라는 사람과 공동으로 「삼세계와 이 세계의 추수」라는 제목의 책을 발행하였읍니다. 이 책에서는 이방인의 때가 1914년에 끝나기 전에 기원 1874년부터 3년 반 동안의 추수기로 시작되는 40년 기간이 선행한다고 설명하였읍니다. 이 추수는 1874년에 임재 즉 ‘파로우시아’를 시작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에 진행될 것으로 이해되었읍니다. 그 직후에, ‘모세’의 율법하에서 ‘유대’인들이 지킨 고대 “희년”이 전영한 인류를 위한 실체적인 큰 희년이 시작할 것으로 이해되었읍니다. (레위 25장) 그 후에 채택한 성서 연대표에 의하면 인간이 지상에 존재한 6,000년은 1872년에 끝났으나, 주 예수께서는 인류 존재의 육천년 끝에 오시지 않고 1874년 10월 실체적 희년이 시작된 때에 오셨다고 하였읍니다. 1874년은 인류에게 죄가 들어온 이래 6천년이 끝나는 해로 계산되었읍니다. 1874년부터 인류는 일곱째 천년기에 사는 것으로 이해되었읍니다.—계시 20:4.

7. (ㄱ) ‘러셀’의 종교 잡지가 1879년에 창간되었을 때에, 왜 그 잡지명 가운데 “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이라는 말을 포함시켰읍니까? (ㄴ) 그 “임재”가 1914년에 이방인의 때의 끝이 이르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되었었읍니까?

7 그러한 이해를 가지고, “정결한 처녀” 반열은 1874년에 천적 신랑을 맞으러 나가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해에 그분이 도착하여 그때부터 보이지 않게 임재하여 계실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미 신랑이 보이지 않게 임재한 때에 살고 있다고 느꼈읍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차알즈 테이즈 러셀’이 1879년 7월에 독자적인 종교 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하였을 때에 그는 그 잡지명을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이라고 하였읍니다. 그는 마태복음 24:3과 다른 곳에서 희랍어 ‘파로우시아’를 “오심”(coming)이 아니라 “임재”(presence)라고 번역한 ‘윌슨’의 「엠패틱 다이어글롯역」에 이미 익숙해 있었읍니다. 그 새로운 잡지는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임재가 1874년에 시작하였다고 전하고 있었읍니다. 이 임재는 이방인의 때의 끝인 1914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었읍니다. 그 해에 이방 나라들은 멸망되고 “정결한 처녀” 반열의 남은 자들은 사망했다가 영자의 생명으로 부활되어 하늘에서 그들의 신랑과 함께 영화롭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읍니다. 그리하여 현명한 다섯 처녀로 상징된 반열은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 결혼식에 참여할 것으로 기대했읍니다.

8. (ㄱ) “정결한 처녀” 반열의 남은 자들은 무엇을 열렬히 기대하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그 날 아침에 ‘러셀’은 ‘뉴우요오크’ 시 ‘브루클린’ 본부 봉사자들에게 무엇을 발표하였읍니까?

8 해가 바뀌고 때가 점점 다가옴에 따라 “정결한 처녀” 반열의 남은 자들은 그 중요한 날인 1914년 10월 1일을 강렬해지는 관심을 가지고 기대하였읍니다. 이들은 이 불결한 세상에서 분리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성별된” 그리스도인들로 된 반열이었으며,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성별을 물침례로 상징하였읍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신랑을 맞을 것으로 기대한 때가 다가오자 그들의 빛을 비추고자 노력하였읍니다. 마침내 1914년 10월 1일 바로 그 날이 되었으며, 그 날 아침에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회장 ‘차알즈 테이즈 러셀’은 ‘뉴우요오크’ 시 ‘브루클린’ 본부 봉사자들에게 “이방인의 때는 끝났고, 이방 왕들의 시대는 막을 내렸읍니다” 하고 발표하였읍니다.

9. 그러나, ‘러셀’ 자신은 언제 사망하였으며, 이로부터 어떠한 결론을 내려야 합니까?

9 그러나 그 이방인의 때의 끝에 교회의 남은 자들은 자기들이 기대한 바와 같이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되지는 않았읍니다. 1916년 10월 31일에 비로소 ‘러셀’ 자신이 사망하였고 협회장직이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졌읍니다. 무엇인가 잘못 계산되었었음이 분명합니다.

10. (ㄱ) 1914년 10월 1일에 지상에 있는 “정결한 처녀” 반열의 남은 자들에게 무엇이 조성되고 있었읍니까? (ㄴ) 박해는 언제 절정에 달하였으며, 어떠한 편지가 천적 신랑과의 연합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알려 줍니까?

10 1914년 10월 1일에 그리스도인 교회가 영화롭게 되기는 커녕 천적 신랑을 맞기를 원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어려움이 조성되고 있었읍니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가공할 형태로 여러 해를 끌음에 따라 “정결한 처녀” 반열에 대한 계속 쌓인 박해는 절정에 달하였읍니다. 이 절정은 1918년 여름에 도래하였읍니다. 그 때에 ‘왙취 타워 협회’의 새 회장 ‘조셉 에프. 러더포오드’와 총무겸 재무 ‘더블류. 이이. 밴 앰버어그’와 ‘뉴우요오크’ 시 ‘브루클린’ 본부 봉사자와 관련된 다른 그리스도인 여섯명이 연방 법원에서 부당하게 유죄 선고를 받고 ‘조지아’ 주 ‘애틀란타’ 소재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었읍니다. 그 교도소 감방에서 회장 ‘러더포오드’는 교도소 밖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냈읍니다. 이 편지의 일부가 1918년 8월 30일에서 9월 2일까지 ‘위스컨신’ 주 ‘밀워어키’에서 열린 ‘만국 성경 연구회’의 4일간 대회 ‘프로그램’ 4면에 인쇄되었읍니다. * 이 편지에는 하늘에서 신랑과 일찍 연합하고자 하는 “정결한 처녀” 반열의 간절한 열망이 나타나 있읍니다. 아래에 인용한 그 일부 내용에 특히 그 점이 나타나 있읍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들에게:—

“교도소 생활은 생소하지만, 모든 경험은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는 그러한 모든 경험을 천적 관점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제 우리는 이렇게 노래할 수 있읍니다.

‘지적인 기쁨은 모두 사라지라, 사라지라,

예수님은 나를 맞으시나니!’

“사실, 지금은 아무런 지적 기쁨이 없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집에 모일 것을 기쁨으로 기대합니다. ··· 흔히 우리는, 우리가 떠나는 쪽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집으로 가기 전에 한 동안 여러분을 섬기는 쪽을 택할 것인가 하는 두 가지 중 한 길을 택해야 할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을 가집니다. 그분의 뜻대로 되기를 바랍니다!나는 이 모든 경험들이 마지막으로 모아 들이는 일에 대비하여 교회를 성숙한 경지로 이끌어 주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다른 곳에 있는 친애하는 사람들의 편지는 그들이 희생물을 태우는 불에 순응하고 있다고 알려 줍니다. ···

“양떼의 친애하는 양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십시오. 가까운 장래에 영광 가운데 집으로 간다는 즐거운 약속으로 그들을 위안하십시오. 나는 지금처럼 여러분을 사랑한 적이 결코 없었읍니다. 우리 아버지의 보좌 주위에 모여 영원 무궁토록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즐거워한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이겠읍니까! ···

“나는, 선하시게도 일곱명의 형제들을 나와 함께 보내시어 우리가 함께 이러한 특권을 누리게 하신 사랑하는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

“우리가 여러분 모두를 크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 주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있기를 빕니다.

“그분의 은혜에 따라 여러분의 형제이며 종인,

“제이. 에프. 러더포오드”

11. (ㄱ) 그 박해 중에 “정결한 처녀” 반열의 남은 자들은 1874년에 대하여 무엇을 인식하지 못하였읍니까? (ㄴ) 협회의 대표자들은 교도소에서 얼마 동안 복역하였으며, 그들이 석방되자 무엇이 시작되었읍니까?

11 제 1차 세계 대전의 암흑 속에서 이 모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면서 “정결한 처녀” 반열의 고통받는 남은 자들은 당시, 40여년이 지난 1874년이 신랑이 돌아오는 때가 아니었으며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발표할 때가 아니었음을 인식하지 못하였읍니다. 한 밤의 외침을 위한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으나 가까왔었읍니다. 회장 ‘러더포오드’가 감옥에서 보낸 기간은 1918년 6월 21일 법정에서 그가 받은 선고에 따라 20년이 아니라 단지 9개월에 그쳤읍니다. 1919년 3월 25일에 그와 그의 동료 일곱명은 ‘애틀란타’ 교도소에서 석방되어 ‘뉴우요오크’ 주 ‘브루클린’으로 돌아왔으며, 그 곳에서 3월 26일에 그들 모두는 보석을 승인받고 또한 상소가 허락되었읍니다. 그들은 “정결한 처녀” 반열의 남은 자의 다른 모든 성원들과 함께 다시 자유롭게 전후(戰後) 사업을 시작하였읍니다. 이 남은 자들은 이 악한 세상의 증가하는 어두움 속에서 그들의 천적 아버지의 보좌로 모아들여지는 일의 경험을 하지 않았읍니다.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인 봉사의 새로운 기간의 문이 열려지고 있었읍니다!

12. 그들은 그때에 “열 처녀”에 관한 예수의 비유의 어느 부분을 경험하였읍니까?

12 바로 이 중대한 때에 그들은 천적 신랑이 “열 처녀”의 비유 가운데서 이러한 말로 예언한 일을 경험하였읍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하니라].”—마태 25:6, 7.

13, 14. (ㄱ) 비유 가운데서, 누가 신랑의 임재를 발표하였으며, 이 일은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ㄴ) 1914년 이래, 천적 신랑이 참으로 임재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어떠한 증거가 있었읍니까?

13 비유를 보면, 신랑이 온다는 발표를 한 것은 “열 처녀”가 아니었읍니다. 분명히 신랑의 수행원들이 그러한 발표를 하였읍니다. 처녀들은 단순히 그러한 외침을 들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랑이 와서 그의 아버지의 집 안에서 베풀어지는 영적 결혼 잔치에 그들을 인도할 것을 기다리는 처녀와 같다고 공언한 모든 사람들에게 천적 신랑이 보이지 않게 임재하였다는 사실이 기원 1919년에 제시되었읍니다.

14 그러므로 1919년은 미련한 처녀들과 슬기있는 처녀들 곧 “처녀들”이라고 공언하는 모두에게 감동적인 해였읍니다. 최초의 세계 대전이 끝나고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 기구로 국제 연맹이 제창되었읍니다. 1914년에 그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래 예수의 ‘파로우시아’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관한 예수의 예언의 여러 면이 성취되어 1914년 이방인의 때의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그의 천국에 취임하셨음을 알리는 복합적 “징조”를 구성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된 메시야 왕국은 하늘에 건설되었읍니다. 세계 역사와 교회 역사는 이제 그리스도가 임재하셨음을 참으로 증명하였읍니다!

그들의 “등”을 준비하는 일

15. (ㄱ) 「파수대」지의 어떠한 부제가 이제 정확한 것이 되었읍니까? (ㄴ) 전세계 「파수대」 독자들은 1919년 4월 15일호의 어떠한 발표를 보고 활기를 얻었읍니까?

15 이제 마침내 「파수대」지는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이라는 부제를 지니기에 적합하였읍니다. 3월에 연방 교도소에서 석방된 여덟명의 그리스도인 성서 연구생들은 1919년 4월 13일 일요일 밤에 연례 주의 만찬 기념에 참석하는 특권을 누렸읍니다. 그리고 5월 15일호 「파수대」(영문) 151면에 발표된 총 참석자의 보고는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17,961명 이상이 축하식에 참석하였음을 알려 주었읍니다. 1919년 4월 15일호 「파수대」지 117, 118면은 거짓 고발을 당한 여덟명이 각각 10,000불의 보석금을 납부하고 석방되었다는 것과 수백명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브루클린’ ‘벧엘’ 집에서 그들에게 베푼 성대한 환영회를 발표하였읍니다. 전세계에 알려진 이 발표는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의 독자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읍니다.

16. (ㄱ) 이사야 60:2에 의하면 그 때는 무엇을 할 때였읍니까? (ㄴ) “성별된” 성서 연구생들의 용기가 어떻게 북돋아졌으며, 어떠한 국제적인 모임이 있었읍니까?

16 이제 영적으로 졸거나 잠 잘 때가 아니었읍니다. 행동할 때였읍니다. 이사야 60:2에서 예언한 바와 같이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날 때였읍니다. 세계 상태는 “성별된” 성서 연구생들 모두가 담대한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하였읍니다. 신랑을 기다려온 사람들의 그리스도인 용기를 북돋는 일이 지체되지 않았읍니다. 1919년 8월 1일호와 15일호 「파수대」(영문)에 “두려움이 없는 자들은 복되도다”라는 주제로 두 개의 기사가 실렸고 9월 1-8일의 8일간 국제적인 규모로 열릴 “‘에리’호 ‘시다포인트’ 대회”의 마련이 발표되었읍니다. 영적 졸음을 힘차게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성별된” 백성 수천명이 대회장에 모였읍니다. 특히 ‘캐나다’와 미국인들 약 6,000명이 매일 회기에 참석하였읍니다. 그 고무적인 대회는 “성별된” 사람들이 활짝 깨어서 앞에 놓인 하나님의 봉사에 활동적이 될 결의를 새롭게 할 기회가 되었읍니다.

17, 18. (ㄱ) 그 대회의 “동역자들의 날”에 출판물에 관한 어떠한 발표가 있었으며 어떠한 전망이 제시되었읍니까? (ㄴ) 그 사업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교훈은 어떠한 면으로 격려적이었으며, 그 대회일의 사건은 단순히 일시적인 흥미꺼리에 불과하였읍니까?

17 9월 5일 금요일 “동역자들의 날”에 회장 ‘제이. 에프. 러더포오드’가 1919년 10월 1일부터 「황금 시대」라는 명칭으로 새로운 잡지가 발행된다는 것을 발표하였을 때에 참석자들의 열정은 크게 불붙었읍니다. 이 잡지는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을 알리는 「파수대」지의 자매지가 될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성별된” 백성은 매호 발행부수를 4,000,000부로 올릴 때를 기대하면서 그 잡지의 예약을 받는 활동에 참여하라는 격려를 받았읍니다. 후에 이 세계적인 광고 사업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부가적인 교훈이 1919년 9월 15일호 「파수대」(영문) 279-281면에 “왕국 선포”라는 제목의 두 ‘페이지’ 반 기사에 실렸읍니다.

18 이 기사 끝에서 세째 항에 있는 이러한 내용은 모든 독자에 대한 참으로 강력한 초대였읍니다! “조속히 그 일을 시작하십시오. 당신이 이 사업에 참여할 때에 당신은 이 잡지의 판매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의 대사로서, 참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세기 동안 바라고 기도하여 온 황금 시대의 도래와 우리 주이신 주인의 영광스러운 왕국의 도래를 이와 같이 품위있는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광고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왕국 사업의 이 새로운 부면에의 초대에 대하여 즉각적인 반응이 있었읍니다. 그리고 오십칠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 「깨어라!」라는 명칭을 가진 그 동일한 잡지는 매호 9,850,000부가 인쇄되고 있읍니다. 확실히, ‘오하이오’ 주 ‘시더포인트’에 그 6,000명의 “성별된”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일과 그들이 1919년 9월 5일 금요일에 「황금 시대」지의 발표에 대하여 환호한 것은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 진정한 ‘파로우시아’ 시대인 오늘날의 하나님의 “정결한 처녀” 반열의 역사에 아무런 중요성이 없는 일시적인 흥미꺼리가 결코 아니었읍니다. 그 처녀 반열은 다시는 잠들지 않았읍니다!

19. 등을 준비하는 데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하였으며, 왜 이로 말미암아 처녀들이 둘로 갈라졌읍니까?

19 그 때는 참으로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한 때였읍니다. (마태 25:7) 비유 가운데서, 처녀들은 이 때에 그들의 등에 기름을 다시 채워야 하였읍니다. 그들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뿔싸! 미련한 처녀들은 즉시 그들의 등에 기름을 채울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슬기있는 처녀들과 달리, 기름이 들어 있는 그릇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처녀들이 둘로 갈라졌읍니다. 왜? 마태복음 25:8, 9이 설명합니다. “미련한 자들이 슬기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달라 하거늘 슬기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라].”

20. 슬기있는 처녀가 미련한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주지 않은 것은 이기적인 일이었읍니까? 슬기있는 처녀들의 결의는 무엇이었읍니까?

20 우리는 밤 그 시간에 문을 닫지 않은 등유 상회 혹은 필요한 기름을 가지고 대비하고 있는 등유 상인을 찾아낸다는 것이 미련한 처녀들에게 얼마나 난관을 가져다 줄 것인지를 상상할 수 있읍니다. 그러면 슬기없는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주지 않은 슬기있는 처녀들은 이기적이었읍니까? 아닙니다! 만일 나누어 썼다면 열 처녀 중 아무도 신랑의 집 문에까지 가서 결혼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명이 나누어 가진 기름으로는 그들이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등불이 꺼질 것입니다. 슬기있는 처녀들은 비상시에 쓸 기름을 가지고 감으로써 그곳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나타냈읍니다. 이것은 또한 그들 모두가 그곳에 갈 결의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냈으며, 이제 이들 슬기있는 처녀들은 신랑에게 영예를 돌리기 위한 그들의 선한 의지가 좌절되거나 꺾이지 않게 하고 있었읍니다. 더우기, 미련한 처녀들은 아직도 슬기있는 처녀들을 방해하거나 그들의 수고를 저해하지 않고도 다른 곳에서 기름을 구할 수 있었읍니다.

21. 이것은 “슬기있는” 처녀 반열이, 성서를 연구하고 신랑에 대하여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을 대하는 면에서 무엇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21 천적 신랑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 기간인 오늘날, 비유의 이 부분은 어떻게 성취되고 있읍니까?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임재에 대하여 들은 어떤 정직한 사람이, 자기에게 와서 성서 연구를 사회해 주고 자기도 신랑에게 영예를 돌리는 데 가담하게 해 달라고 “슬기있는” 처녀 반열에게 부탁할 때 “슬기있는” 처녀 반열이 그렇게 하여 주기를 거절하고 그 사람에게 혼자서 그럭저럭 해 보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까? 만일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주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비유의 교훈을 범하는 것이 될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22. “기름”을 나누는 문제를 고려할 때에, 우리는 불 켜진 등을 높이 드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기름”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22 그런데 성취에서 왜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미련한” 처녀 반열에게 그들의 “기름”을 나누어주기를 거절합니까? 우리는 그릇에 기름을 담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 속에 상징적 “기름”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불켜진 등을 높이 들고 있는 것은 자기의 빛을 발하는 것과 같으며, 이 어둡고 캄캄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선한 행실을 보고 감동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자신이 등불이 되어 빛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마태 5:14-16; 빌립보 2:15) 빛을 내도록 힘을 주는 것은 상징적 “기름”이며 이 “기름”은 두가지 즉, 하나님의 숭배자에게 등이며 빛인 하나님의 말씀(시 119:105)과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비추어 주고 성령의 모든 소유자들에게 “영의 열매”라고 불리우는 경건하고 훌륭한 성품을 산출하게 하는 하나님의 성령을 상징합니다. (갈라디아 5:22, 23, 신세; 에베소 5:18-20) 그러면 “슬기있는” 처녀들은 자신들 속에 있는 이 “기름”, 즉 빛을 내는 이 힘을 줄여야 할 것입니까? 그리하여 마침내 빛이 없어지게 해야 할 것입니까?

23. (ㄱ) “미련한” 처녀 반열은 “슬기있는” 처녀 반열에게 자기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를 원합니까? (ㄴ) 어떠한 “그리스도인들”이 “미련한” 처녀 반열입니까?

23 “미련한” 처녀 반열이 “슬기있는” 처녀들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슬기있는” 처녀들이 자기들과 타협하기를 바랍니다. 기원 1919년에 천적 신랑이 보이지 않는 임재에 대한 발표는 그 신랑을 맞이하고 그와 함께 기쁨을 나누기를 바라는 “처녀들”이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었읍니다. “미련한” 처녀들과 같은 사람들은 단순히 말로만 그리스도교를 믿습니다. 즉 그들은 주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에 불과하고 참그리스도교의 요구 조건에 달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성서에 대한 약간의 지식, 특히 그러한 성서 지식에 대한 종파적인 이해에 근거한 지식을 약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 지식에 영향을 받았을지 모르나, “영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강력한 영을 가지지는 못하였읍니다. 그들의 행동은 참 그리스도인의 표본에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종파의 종교적 형식주의를 추종하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혹은 자칭 그리스도인으로서 빛을 낼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사후에 하늘에 갈 것을 기대합니다!

24. (ㄱ) “미련한” 처녀 반열의 종교적 발전은 그들로 하여금 신랑의 임재의 증명 가능한 증거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줍니까? (ㄴ) 미련한 자들은 슬기있는 자들이 자기들과 함께 교제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에 있어서 어떠한 수준으로 낮아지기를 바랍니까?

24 그러나, 그들의 종교적 발전은 그들로 하여금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는 한 밤의 외침이 있을 때에 그 도전에 응할 수 있게 해주지 못합니다. 사실 그들은 1914년 이래 신랑의 임재를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을 식별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신랑을 믿고 있다고 공언하며 교회가 그의 신부라고 말하지만 자기들에게 좋은 방식으로, 자기들의 종파적인 방식으로 신랑을 만나 그의 기쁨에 참여하기를 고집합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슬기있는” 처녀 반열이 함께 교제하면 타협이 있어야 합니다. 자칭 그리스도인들과 천국의 후사들인 그들 모두를 융합시키는 연합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자기들의 영적 “기름” 중 얼마를 취하여 그들의 그리스도인 발전의 수준을 슬기없는 종교가들의 수준으로 낮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슬기있는” 자들은 “미련”하고 슬기없고 무분별한 자칭 그리스도인들과 계속 교제하기 위하여 종교적으로 미련해져야 할 것입니다.

25. (ㄱ) 그러면, “슬기있는” 처녀 반열에 대한 쟁점은 무엇입니까? (ㄴ) 최종적으로 요구 조건에 달하기 위하여 그들은 ‘베드로’와 ‘바울’의 어떠한 말을 실행해야 합니까?

25 쟁점은 명백합니다. 즉 “슬기있는” 처녀 반열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교국내의 사람들과 같이 단순히 종교적 감정에 영향을 받을 것입니까? 그들은 영적 “기름”을 얼마간 나누어주어서, 끝까지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등을 치켜들고 신랑을 따라 잔치가 베풀어지는 연회장으로 가는 행렬에서 낙오될 것입니까? 그들은 베드로 후서 1:10에서 말하듯이,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하여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지상 생애의 끝이 가까왔을 때의 사도 ‘바울’을 본받을 필요가 있읍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내가 ···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 그들이 신랑의 결혼 잔치가 베풀어지는 곳으로 통하는 문에 이를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온전한 요구 조건에 달해야 합니다.—디모데 후 4:7, 8.

26.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어떻게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속박을 받았으며, 왜 그 반열은 1919년에 “미련한” 처녀 반열과의 교제를 끊었읍니까?

26 그러한 이유로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밀과 가라지 혹은 독초(독보리)의 비유 가운데 있는 가라지와 같은 단순한 자칭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를 끊었읍니다.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들은 큰 ‘바벨론’ 즉 거짓 종교 세계 제국과 그 군사적, 정치적, 사법적 애인에 속박되었었읍니다. 그들은 강력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두려움 때문에 속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영창 혹은 기타 장소에 투옥 혹은 감금되어 문자 그대로 갇혀 있었읍니다. 1919년에 그들은 큰 ‘바벨론’에 대한 하늘로부터의 이러한 권고에 따라 행동하였읍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시 18:4) 그들은 그 쟁점에 있어서 “미련한” 처녀 반열과 타협할 수 없었읍니다. 그들은 큰 ‘바벨론’과 그의 세상적 애인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들은 또한 큰 ‘바벨론’과 함께 공동 노선을 취하여 큰 ‘바벨론’이 1919년에 올라탄 짐승의 우상 즉 국제 연맹을 숭배할 수 없었읍니다.—계시 13:14, 15; 14:11, 12; 17:1-18.

27. 1919년 9월 7일 일요일에 있었던 공개적 선언이 증명하듯이, “슬기있는” 처녀 반열의 입장은 어떻게 처음부터 명료하였읍니까?

27 이 쟁점에 있어서 “슬기있는” 처녀 반열이 취한 입장은 처음부터 명료하였읍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1919년 9월 7일 일요일 오후에 ‘시다 포인트’ 대회에서 회장 ‘러더포오드’는 고난받는 인류를 위한 희망”이라는 공개 강연에서 하나님께서 국제 연맹을 승인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였읍니다. 1919년 9월 8일 월요일자 ‘샌더스키’(‘오하이오’ 주) 「스타-저널」지에 게재된 보고의 일부를 인용하면 이러합니다.

‘러더포오드’ 회장은 일요일 오후 나무 그늘에 모인 근 7,000명에게 연설하였다. 그는 평화와 풍요를 이룩함으로써 인류 상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정치적 경제적 세력이 형성한 국제 연맹이 많은 좋은 일을 달성할 것이라고 밝히고 나서, 그러나, 하나님의 대표자로 자처하는 ‘가톨릭’ 및 ‘프로테스탄트’ 교직자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버리고 국제 연맹을 옹호하며 그것이 지상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왕국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대환영하기 때문에 주께서는 분명히 국제 연맹을 싫어하신다고 역설하였다.—1919년 10월 1일호 「파수대」(영문) 298면 제 1단.

28, 29.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왜 이러한 입장을 취하였으며, ‘야고보’가 사용한 어떠한 수치스러운 말이 그들에게 적용될 수 없었읍니까?

28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1914년에 이방인의 때의 끝에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이 하늘에 설립되었음을 믿었으며, 그들은 그 왕국을 타협하지 않고 지지하였으며, 어떠한 대용물도 인정하거나 숭배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영적 “기름”을 조금도 나누어줄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에 대한 그들의 전심의 온전한 분량을 줄일 수 없었읍니다. 그들은 이와 같이 왕국에 충실히 고착하였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인기가 없었으며 이 세상에 대하여 친구가 되지 못하였읍니다. 그 때문에 세상은 그들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세상으로부터 받는 이러한 미움과 적의는 그들이 천적 왕 겸 신랑과의 관계에 충실히 고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하여 주었읍니다. 제자 ‘야고보’가 제 1세기 회중의 일부 성원들에게 “간음하는 여자”라는 수치스러운 표현을 사용했다고 해서 그러한 표현이 그들에게도 적용될 수는 없었읍니다.

29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야고보 4:4.

30, 31. 그리하여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약혼한 처녀의 특질을 누구에게 나타냈으며, 그러한 신부의 아름다움이 ‘이사야’의 예언에 어떻게 묘사되어 있읍니까?

30 그러므로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충분한 영적 “기름”을 타협하지 않고 유지하고 그것을 사용하여 “등” 즉 자기들이 계속 밝은 빛을 내게 함으로써, 약혼한 그들의 천적 신랑을 영예롭게 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한 남편”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적 신부가 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충성스러움, 순결함, 깨끗함, 순수함 등의 성품이 자기 자신들 속에서 빛나게 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그의 “신부”를 자기 집으로 인도해 갈 하나님의 때가 된 것을 그와 함께 기뻐합니다. 그들은 그의 기쁨에 참여합니다.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이사야 62:5) 영광 가운데 나타나는 신랑과 어울리게, 그들도 결혼하는 날의 신부와 같이 아름답게 보이기를 원하며 천적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주는 장식품을 받아들입니다. 신랑과 신부 사이의 이러한 유쾌한 아름다움의 균형이 이사야 61:10에 이렇게 묘사되어 있읍니다.

31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32.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어떻게 신랑을 영예롭게 하는 빛을 냅니까?

32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어떠한 일로도, 태양과 같이 눈부시게 빛나는 천적 신랑의 영광을 손상시켜서는 안될 것입니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도다].” (시 19:4, 5) 그러므로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그 종교적 음녀인 큰 ‘바벨론’ 및 그의 모든 종교적으로 부도덕한 “딸들”과 구별시켜 주는 그리스도인 성품을 나타냄으로써 발광체와 같이 그들의 신랑을 영예롭게 하는 빛을 내야 합니다. 그와 같이 빛을 낼 때 그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신랑을 인류에게 잘못 인식시키는 일이 없읍니다.

판매인으로부터 기름을 사다

33. 예수의 비유에 의하면, “슬기있는” 처녀들은 “미련한” 처녀들에게 고작 무엇이라고 말 할 수 있었으며, 그리하여 “슬기있는” 자들은 무엇을 나타냈읍니까?

33 “미련한” 처녀 반열은 영적 “기름”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도착하고 임재하여 결혼 잔치에 임하는 신랑을 영예롭게 하는 빛을 낼 수가 없었읍니다. 그들에게는 “슬기있는” 처녀들이 가져온 기름 즉, 그들이 신랑의 발자취를 따르는 데 필요한 “기름”을 얼마큼 얻어 쓸 권리가 없었읍니다. 그러므로 비유에 의하면, “슬기있는” 자들이 “미련한” 자들에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 이러한 말이었읍니다.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마태 25:9) “슬기있는” 처녀들은 이러한 입장을 취하여 자기들의 슬기로움을 더욱 나타냈으며, 슬기없고 무분별한 처녀들의 미련함은 그들에게 화가 되었읍니다. 그들은 기름 상인을 찾아가서 그들의 등에 기름을 채우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34, 35. 비유의 성취에서, 기름을 사는 일은 어떻게 이루어 졌으며, 그 비유는 그동안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알려 줍니까?

34 이와 동일하게, 비유의 성취에서, “미련한” 자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영적 “기름”을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종교적 신조에 따라서, 하늘로 가는 길을 열어줄 “기름”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종교적으로 느끼는 곳으로 갔읍니다. 따라서 그들은 여러 종파와 교파로 갈라진 종교 제도에서 판매하는 “기름”을 사기 위하여 그러한 종교 제도를 찾아냈으며, 천적 신랑에 대한 올바른 전심도 없이 그러한 상인들로부터 그들은 기꺼이 값을 치르고 “기름”을 샀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값을 지불하고 상인들로부터 산 그러한 종교적 “기름”은 결혼 잔치에 들어갈 허락을 받는 데 효과적인 기름일 것입니까? 이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35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태 25:10.

36. 어떠한 처녀들이 신랑과 함께 행렬에 참여하였으며, 이들은 어떻게 했기 때문에 “문”에서 검열을 통과하였읍니까?

36 “슬기있는” 처녀들과 “미련한” 처녀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갔읍니다. 즉, “미련한” 처녀는 신랑으로부터 멀어지는 쪽으로 갔고 “슬기있는” 처녀들은 도착하는 신랑 쪽으로 갔읍니다. “슬기있는” 처녀들이 신랑을 만난 곳에서부터, 결혼 잔치가 베풀어지는 집의 “문”까지는 멀었읍니다. 이 두 지점 사이를 불을 든 행렬이 한 동안 지나갔으며, 그 기간에 “슬기있는”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있었고 신랑은 그들과 함께 있었읍니다. 즐거운 행렬이 목적지에 이르고 신랑의 집의 문으로 들어갔을 때에 “슬기있는” 처녀들의 등은 밝은 빛을 내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기름이 떨어지기 전에 “문”에 이르렀읍니다. 그 때에 “슬기있는” 처녀들은 그들이 신랑의 발자취를 따른 행렬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을 증명하였읍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결혼 잔치에 들어갈 자격이 있었읍니다. 그들이 검열을 받을 준비를 하는 일의 중요성이 이러한 말로 비유 가운데서 강조되었읍니다.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니라].” 문은 그들의 면전에서 닫힌 것이 아니라 뒤에서 닫혔읍니다!

37. 검열소에서 현대의 “처녀들”은 자기들이 어떠한 면으로 빛나고 있음을 증명하며, 신랑이 그 “신부” 반열을 입장시키는 것은 그들이 어떠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까?

37 우리 시대에 비유의 성취에서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끝까지 영광스러운 신랑을 영예롭게 하고 높이는 행렬에 계속 참여합니다. 그들이 “문”에 있는 검열소에 이를 때에 그들은 결혼 축연에 들어가기에 합당함을 증명합니다. 그들의 천적 약혼자로부터 검열을 받을 때 신랑이 자기의 천적 “신부”로 승인하는 그리스도인 성품으로 그들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정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립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되지 않았읍니다. (고린도 후 11:2, 3) 신랑은 이들 현대 “슬기있는” 처녀들을 그리스도인 회중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읍니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읍니다. “티나 주름이나 또 그와 같은 것들이 하나도 없는 거룩하고 흠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자기에게 나아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에베소 5:27, 새번역.

‘그리고 문은 닫혔다’

38. 마침내 몇명이 결혼 축연에 들어갈 것이며, 공식으로 “문”은 언제 닫힐 것입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8 물론, 천적 “신부” 반열의 144,000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 결혼 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것입니다. (계시 7:4-8; 14:1-5) 그러나 “문”이 공식으로 닫히는 것은 언제입니까? 그 때는 하나님의 지정하신 때에 “큰 환난”이 돌발하고 그리스도교국과, 종교적 음녀인 큰 ‘바벨론’ 곧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의 나머지 모든 부분에 멸망이 임하기 시작할 때일 것입니다. 그 때에 자칭 그리스도인이 큰 ‘바벨론’에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않고 그가 받을 재앙을 면한다는 것은 너무 늦을 것입니다. (계시 18:4) “큰 환난”의 날들이 “택하신 자”를 위하여 “감”하여질 것이므로, “택하신 자”의 온전한 수 즉 144,000명은 “큰 환난”의 돌발시까지 다 채워져 있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문이 닫힙니다.

39. “열 처녀”의 비유에서 마지막으로 무슨 일이 발생합니까?

39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읍니까? “열 처녀”의 비유는 그 끝맺음에서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마태 25:11, 12.

40. 신랑이 “미련한” 처녀들에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고 말한 것은 왜 정당하였읍니까?

40 “미련한” 다섯 처녀는 밤의 그 시간에 그들이 찾을 수 있었던 등유 상인으로부터 기름을 구하여 불켜진 등을 가지고 문으로 왔읍니다. 그러나 그들의 등은 신랑을 영예롭게 하는 빛을 내지 못했읍니다. 그들은 신랑을 위한 즐거움으로 그를 맞이하고 그를 수행하는 행렬에 참여하지 못했읍니다. 그렇다면, 신랑은 그들이 그의 축하객의 일부라고 인정할 무슨 근거가 있었읍니까? 아무 것도 없었읍니다! 그들은 그의 결혼 행렬에 조금의 광휘도 더해 주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사실과 일치하게 그분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고 말할 수 있었읍니다. 따라서 그분이 그들의 면전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은 정당하였읍니다.

41. “큰 환난”이 그리스도교국을 칠 때에 “미련한” 처녀 반열에 속한 자들은 자신들에 대하여 무엇을 알게 될 것입니까?

41 마찬가지로, 종교적 음녀인 큰 ‘바벨론’의 가장 주요한 부분인 그리스도교국에 “큰 환난”이 시작하면, 사망시에 하늘에 간다는 그들의 희망은 크게 흔들리고 흐려질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정결한 처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구성하는 올바른 종교 조직과 연합해 오지 않았음을 분별할 것입니다. 그들은, 데살로니가 전서 4:17에 대한 그들의 종교적 교사들의 해석대로 그들의 신체가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져서 신체적인 환희 가운데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교국의 한 교파의 성원으로 빛을 발하여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단순히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혹은 자칭 그리스도인이었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읍니다. “큰 환난”이 시작할 때에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사제 혹은 전도자가 그들에 대하여 생각한 혹은 말한 것이 아니라, 천적 신랑이 그들의 상태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42. 중보 역할을 한 그들의 종교 조직이 사라지면,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신랑의 인정을 받고자 호소할 것입니까?

42 밖에 있는 자들로서, 그들은 지금까지 기반으로 삼고 있던 종교적 기초가 “큰 환난”에 의해 파멸되기 때문에, 그들에게 닫혀진 문과 같은 상태로 접근하지만 때는 이미 늦습니다. 그들을 위한 중보 역할을 한 그들의 종교 조직이 멸망되면 그들은 참 회중의 신랑인 머리와 정면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의 ‘파로우시아’ 혹은 임재는 보이지 않고 그 분은 닫은 문 뒤에 있는 것처럼 그들의 눈 앞에서 숨겨져 있을 것이므로 그들은 올바른 행실을 하지 않고 단순히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것으로 구원을 얻고 하늘에 가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그를 큰소리로 부를 것입니다. 그들은 그의 입의 말로 그를 분간하였읍니다. 이제 그는 그들에게 대답하고 그들을 분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그가 들을 것을 기대하고 “주여, 주여” 하고 큰 소리로 부를 것입니다. 이 부름으로 그들에게 문이 열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열려집니까?

43. (ㄱ) 그 “미련한” 처녀 반열의 성원들은 예수를 “주”라고 부르는 데 관한 산상수훈에서의 그분의 어떠한 말씀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읍니까? (ㄴ) 예수께서 마침내 심각하게 그 말씀대로 하실 때에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입니까?

43 그들은 천적 신랑이 지상에서 산상 수훈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신 바를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읍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 7:21-23) 그러나 그 때 “큰 환난”에서 그 “미련한” 처녀 반열은 신랑이 지침이 되는 원칙으로 그러한 말씀을 매우 진지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들에게 천적 결혼 잔치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는 그들을 바깥, 즉 이 세상의 가장 깊은 밤의 어두움 속에 버려 두어 다른 모든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사멸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멸망을 당한 후에 천적 생명으로 부활되지 않을 것입니다.

44. 예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어떠한 말로 끝맺으셨으며, “슬기있는” 자들은 그들의 영적 “기름”에 대하여 어떻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44 따라서, “열 처녀”의 비유의 요점을 강조한 예수의 말씀 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라는 말씀은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특히 시기적으로 적절합니다. (마태 25:13) 지금은 “슬기있는” 다섯 처녀와 같이 되고자 원하는 사람들이 천적 “신부” 반열의 성원이 되는 데 요구되는 활동적인 그리스도인 성품으로 계속 빛을 발해야 할 때입니다. 그들은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미련함의 짐을 함께 지게 하도록 꾀하며 그리하여 그들의 영적 “기름”을 다소 빼앗고자 하는 자들과 어떠한 타협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45. “슬기있는” 자들은 누구의 종교적 동무가 되게 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들은 누구를 영예롭게 하는 빛을 계속 발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45 우리는 우리의 빛이 꺼지는 위험에 처하게 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렇게 해서 그들의 종교적 동무가 되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공급할 수 있는 영적 “기름” 전부를 필요로 합니다. 신랑의 도착과 임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항상 밝아야 하며, 우리는 그분이 신부 회중을 집에 완전히 인도할 때까지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빛을 발하는 행렬에 계속 참여할 필요가 있읍니다. 오래 지체하였던 신랑이 드디어 도착하였읍니다. 그는 와 계시며 영광스러운 ‘파로우시아’중에 계십니다. 졸고 잠잘 때는 지나갔읍니다. 지금은 신랑을 영예롭게 하는 빛을 발하고 천적 아버지께서 신랑 앞에 두신 이 기쁨 즉, 그의 영적 “신부”를 맞아들이고 결혼 잔치로 이것을 축하하는 기쁨에 참여하여 신랑과 함께 즐거워할 때입니다. 지금 계속 깨어 있는 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왜냐 하면 그 기회의 “문”이 닫히고 다시는 열리지 않을 그 날과 시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의 ‘파로우시아’의 “징조”의 일부

46. (ㄱ) “열 처녀”의 비유는 그의 사도들의 어떠한 질문에 대한 답의 일부입니까? (ㄴ) “슬기있는” 반열은 비유의 성취의 절정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어떠한 사실을 확신합니까?

46 “열 처녀”의 비유는 “무엇이 당신의 임재[‘파로우시아’]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가 될 것입니까?” 하는 예수의 사도들의 질문에 대한 답의 일부로 주어진 것입니다. (마태 24:3, 신세) 그 비유의 절정은 기원 1914년 이래 성취되어 왔읍니다. 온 세상은 그 비유의 마지막 부면이 오늘날 실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읍니다. 이상에서 자세히 설명한 사건들은 눈에 띄지 않는 한 구석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관찰력이 있는 사람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주목할 수 있는 공개적인 곳에서 발생되어 왔읍니다. 적어도, “슬기있는” 처녀 반열에 속한 사람들은 이러한 의미깊은 사건들을 관찰하고 그러한 것에서 천적 신랑이 기원 1914년에 도착하셨으며, 그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는 지금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를 얻었읍니다. 그들은 “열 처녀”의 비유의 성취에서 제공된 증거 때문에 믿음의 눈을 가지고 그의 임재를 분별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이 기원 1914년에 시작하였음을 확신합니다.

47. 희랍어 ‘파로우시아’의 올바른 의미는 비유 가운데서의 “슬기있는” 처녀들이 신랑의 도착을 알리는 한밤의 외침이 있은 후에 행한 무슨 일로 증명됩니까?

47 그렇습니다. 또한 사도 ‘마태’가 자기의 복음서 24장 3절에서 사용한 희랍어는, 많은 번역자들의 번역에 나타났듯이 “오심”이 아니라 “임재”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비유 가운데 묘사되어 있는 내용으로 증명됩니다. “열 처녀”는 “보라, 신랑이로다!” 하는 한 밤의 외침을 들었을 때에 졸음과 잠에서 일어납니다. 불을 든 신랑의 행렬을 간절히 주시하는 그들은 신랑이 자기들이 있는 곳에 이르는 것을 분별하고 그와 함께 행렬에 가담합니다. 그 지점에서부터, 그들 모두가, 초대받은 합당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결혼 잔치가 베풀어지는 신랑의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읍니다. 따라서, 신랑이 도착한 후 신부를 예비된 집으로 인도하기까지 신랑의 임재 혹은 ‘파로우시아’의 기간이 있었읍니다.

그릇된 이해의 시정

48. (ㄱ) 「시온의 파수대」의 편집 겸 발행인은 그리스도의 임재가 어느 해에 시작하였다고 계산하였읍니까? (ㄴ) 또한 여러 해 동안 「파수대」의 표지에 발표된 바와 같이 인간 창조 연대는 어느 때였읍니까?

48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의 편집겸 발행인이 천적 신랑의 “임재” 혹은 ‘파로우시아’가 기원 1874년에 시작하였다고 계산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이 첫 인간을 창조하신 해가 기원전 4128년이라고 ‘러셀’과 그의 동료들은 계산하였읍니다. 그것은 지상에 인간이 존재한지 6,000년이 기원 1872년에 끝나는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이러한 계산이 1906년 7월 1일로 시작하여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 제 1면에 발표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관습은 1928년 9월 15일호까지 계속되어 내려왔읍니다. 예를 들면, 그러한 것을 알리는 첫 호에는 문제의 연대가 “주후 1906년 7월 1일—세계 기원 6034년”으로 게재되었읍니다. 마지막 호에는 “세계 기원 6056년—1928년 9월 15일”로 되었읍니다. “세계 기원” 연대는 통용 기원전 4128년으로 계산되었읍니다.

49. (ㄱ) 죄는 언제 들어왔다고 계산되었읍니까? (ㄴ) 그러므로, ‘사단’이 밑없는 구덩이에 던져지고 그리스도가 통치를 하는 천년기는 언제 시작하게 되어 있었읍니까?

49 그러나, 죄가 들어오기 이전에 ‘에덴’ 동산에서 완전한 인간 남녀는 2년간 무죄하였다고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죄가 들어온 해는 기원전 4126년으로 계산되었읍니다. 이 결과, 죄가 들어온 이후의 6천년은 기원 1874년에 끝나는 것으로 계산되었고, 또한 그 해 가을에 죄의 선동자 ‘사단’ 마귀가 감금되고 밑없는 구덩이에 던져지고 그리스도가 예언된 천년을 시작하는 일곱째 천년기가 시작하였다고 생각되었읍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통치 제 1년이 또한 그의 돌아오심과 그의 보이지 않는 임재 즉 ‘파로우시아’가 시작되는 해임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50. 그 연대는 ‘윌슨’의 「엠패틱 다이어글롯 역」에 있는 사도 행전 13:20에 대한 어떠한 각주에 따라 계산된 것입니까?

50 이상의 연대는 사도 행전 13:20에 대한 ‘윌슨’의 「엠패틱 다이어글롯역」의 각주에 있는 제안에 따라 계산된 것입니다. 그 귀절은 이러합니다.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느니라].” 이에 대한 각주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성서 연대 학자들을 크게 당황하게 하는 문제가 생긴다. 여기에 나타나 있는 연대는 열왕기 상 6:1에 있는 말과 상치된다. 많은 해결책이 제안되었으나, 아주 만족할 만한 해결책은 하나 뿐이다. 즉, 열왕기 상 6:1에 있는 본문은 ‘히브리’글 ‘하이’(5)가 그것과 아주 모양이 비슷한 ‘달렛’(4)로 교체되어 와전되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것이 사실이면, ‘애굽’에서 나온 때로부터 성전 건축시까지는 (480년이 아니라) 580년이 될 것이며, ‘바울’의 연대 설명과 정확히 일치할 것이다.

51. (ㄱ) 따라서, 저자 ‘시이. 티이. 러셀’은 열왕기 상 6:1에 대하여 「때는 가까왔다」 책 53면에서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그에 의하면, 인간이 언제 창조되었으며, 죄가 들어온 후의 6,000년은 언제 끝났으며, 대희년은 언제 시작하였읍니까?

51 따라서, 「때는 가까왔다」(영문)라는 책 53면에서 저자 ‘시이. 티이. 러셀’은 열왕기 상 6:1을 지적하여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분명히 그 귀절은 580년 째 해라 해야 옳으며, 그것은 아마도 복사상의 잘못이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솔로몬’의 4년에 ‘다윗’의 40년, ‘사울’의 40년 기간, 그리고 ‘애굽’을 떠날 때부터 그 땅을 분할할 때까지의 46년을 더하면 130년이 되는데, 480년에서 그것을 빼면 사사 기간은, 이상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사사기」에 언급되고 ‘바울’이 언급한 백 오십년이 아니라, 단지 삼백 오십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히브리 글자 “달렛”(4)은 “하이”(5)라는 글자와 흡사하며, 그리하여 아마 복사자의 잘못으로 오류가 생긴 것 같이 생각된다. 그러므로 열왕기 상 6:1백 팔십년이라야 하며, 그래야 다른 진술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러므로, 성서 연대중 사사 기간에 100년을 더하면 인간의 창조는 기원전 4128년까지 소급하며 지상에 인간이 존재한 육천년은 기원 1872년에 끝났읍니다. (「때는 가까왔다」[영문], 42면) 또한 죄가 들어오기까지 2년이 걸렸다고 보아 인류에게 죄가 들어온 후 육천년이 끝나고 그리스도의 통치에 의하여 죄가 제거되는 일곱째 천년이 시작되는 해는 1874년으로 산출되었읍니다. 그러므로 대희년은 그 때에 시작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52. 가장 오래된 희랍어 사본에 의하면 사도 행전 13:20의 450년은 현대 성서 번역판들이 지적하듯이, 사사 시대 이전 기간에 적용됩니까, 그 기간 중에 적용됩니까?

52 그러나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가장 오래된 사본에 의하면, 사도 행전 13:20의 내용은 「엠패틱 다이어글롯역」과 「‘제임스’왕 흠정역」에 나와 있는 내용과 다릅니다. 그러므로 가장 오래된 사본에 의하면, 사백 육십년은 사사기간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신 영어 성서」(1970년판)는 이를 확증하여, 사도 행전 13:20을 이렇게 번역하였읍니다. “약 사백 오십년간 ··· 그 후, 예언자 ‘사무엘’ 시대까지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이 임명되었읍니다.” 「예루살렘 성서」(1966년 영문 번역판)에는 이렇게 되어 있읍니다. “약 사백 오십년간 ··· 이 후에 그는 그들에게, 예언자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사사들을 주셨읍니다.” 1952년판 「개역 표준역 성서」는 이와 비슷하며, 기원 1901년에 나온 「미국 표준역 성서」도 그와 비슷하게 번역하였읍니다.

53. 고대 ‘히브리’어 성서 사본은 수자를 대신하는 ‘알파벳’ 글자를 사용하였읍니까?

53 더우기, 사해 두루마리와 같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사본은 성서의 수자를 또박 또박 정식으로 썼고, 수자를 대신한 ‘알파벳’ 글자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복사자가 열왕기 상 6:1에서 눈에 뚜렷이 보이는 오류를 범했을 리가 없읍니다. *

54. (ㄱ) 성서 연대를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이면 지금 토론하는 어떠한 기간의 시작이 영향을 받을 것입니까? (ㄴ) 「파수대」 잡지명에서 “임재”를 뺀 것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였읍니까?

54 따라서 성서 연대에서 사사 기간에 100년을 첨가하는 것은 성경적 근거가 없읍니다. 그러므로, 첨가한 햇수를 빼고 연대에 관하여 말하는 성서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가피하게, 이것은 신랑 예수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가 시작되는 연대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1939년 1월 1일호 「파수대」(영문)지로부터 제목이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왕국의 전령」으로, 1939년 3월 1일호부터 「파수대, 여호와의 천국 선포」로 바뀌었읍니다. 이것은 본 잡지의 발행인들이 그리스도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가 당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더 이상 믿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왕국 곧,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여호와 하나님의 왕국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여호와의 우주 주권을 입증할 그리스도에 의한 여호와의 왕국이기 때문입니다.

55. (ㄱ) 사사 기간에 100년을 첨가하는 일은 언제 어떻게 중지되었으며, 그리하여 인간 존재의 6,000년은 언제 끝나게 되어 있었읍니까? (ㄴ) 이것은 기원 1874년이라는 연대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으며, 어떠한 질문이 일어났읍니까?

55 1943년에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책(영문)을 발행하였읍니다. 그 책은 제 11장 “때의 계산”에서, 사사들의 기간에 100년을 첨가하지 않고 사도행전 13:20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믿을 만한 본문에 따랐으며, ‘히브리’어 성경의 정식으로 또박 또박 쓴 수자를 받아들였읍니다. 그 결과, 인간 존재의 육천년의 끝은 1970년대로 옮겨졌읍니다. 물론 이와 함께, 기원 1874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돌아오심과 그의 보이지 않는 임재 혹은 ‘파로우시아’가 시작된 해라는 생각은 제거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사단’ 마귀가 결박되어 무저갱에 감금되고 144,000명의 공동 후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영광 가운데 통치하는 것으로 시작될 천년기는 아직 미래사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임재)는 어떠합니까? 이상에 언급한 책 324면은 단정적으로 “왕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는 1914년에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1949년 7월 15일호 「파수대」(215면, 22항)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 인자이신 메시야는 주후 1914년에 왕국의 권능을 잡으셨으며, ··· 이것이 그의 두번째 오심과 그의 두번째 ‘파로우시아’ 즉 임재의 시작을 이룬다.”

56. (ㄱ) 1950년에 어떠한 새로운 성서 번역판이 발행되었으며, 사도 행전 13:20을 어떻게 번역하였읍니까? (ㄴ) 또한 믿을 수 있는 성서 연대에 따라, 그리스도의 임재는 어떻게 설명되었읍니까?

56 1950년에 사도 행전 13:20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본문을 실은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 신세계역」이 발행되었는데, 이 번역판은 ‘파로우시아’를 매번 “임재”(presence)로 번역하였읍니다. 그 직후에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라는 책이 나왔읍니다. 그 책 제 21장의 제목은 “생명의 수석 대행자의 두번째 임재”였읍니다. 믿을 수 있는 성서 시간표에 따라 그 문제를 논한 장이었읍니다. 220-222면의 내용을 인용하면 이러합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증거는 주후 1914년에 하나님의 왕국이 탄생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철장으로 원수 중에 다스리기 위하여 권능을 잡으시고 즉위하셨다는 것을 증명하여 줍니다. 결국 예수께서는 그들을 질그릇 부수듯이 부셔서 하나님의 의로운 주권에 대항하여 싸우는 모든 원수들을 우주 가운데서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시 2:8, 9.

그러므로 주후 1914년은 예수께서 영으로 보이지 않게 재림하신 해입니다 ··· 1914년에 예수께서 왕국에 임하심은 그의 두번째 임재 즉 파로우시아의 시작입니다. 이 희랍어는 임재라는 뜻입니다.

··· 영으로 오시므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그의 두번째 임재는 지상에 사는 모든 인간에게 너무나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결코 비밀에 부쳐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비밀에 부쳐져 있지 않을 것입니다. ···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재[‘파로우시아’]도 그러하리라.”—마태 24:26, 27, 신세.

1914년 이래 임재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두번째 임재 즉 파로우시아의 징조를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내어 그것을 이해하게 하셨읍니다.

57. (ㄱ) 그리스도께서는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나기 전에 그의 원수 가운데서 통치를 시작하셨읍니까? (ㄴ) 신랑은 언제 한 밤의 외침이 들리게 하였으며, 그 때 이래 발생한 일은 어떠한 중요한 사실들의 증거입니까?

5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1914년에 이방인의 때의 끝이 오기 전에 40년간 통치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영감받은 성경과 완전히 조화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께서 그리스도의 발등상으로 되게 하시는 지적 원수 가운데서 통치를 시작하기 위하여 그 때까지 그의 천적 아버지의 우편에서 기다리셨읍니다! (시 110:1, 2; 히브리 10:12, 13) 그러므로, 왕으로서의 그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는 그 해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1919년에, 그는 한 밤의 외침이 땅에 울리게 하셨고 잠자는 “처녀들”을 긴급한 사태에 직면하도록 일깨웠읍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그 외침은 천적 신랑의 임재를 그들에게 확신시켜 주었읍니다.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그 이래 그를 맞으러 나와 있읍니다. 그들은 이 캄캄한 세상에서 발광체로 빛을 발하고 있읍니다. 이것 자체는 그리스도의 약속된 임재가 지금 진행 중이라는 증거입니다.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천년 왕국이 다가왔다는 증거입니다!

58. 왜 우리는 왕국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징조”를 고려함에 있어서 “열 처녀”의 비유로 여기에서 중단할 수 없읍니까?

58 “열 처녀”의 비유에 성취는 그 축복된 천년 왕국의 가까왔음을 알리는 “징조”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비유로 중단할 것이 아니라 그 놀라운 “징조”의 다른 면들도 고려해야 합니다.

[각주]

^ 10항 「그 때에 하나님의 신비가 끝난다」 책(영문) 274면 마지막 항 참조. 또한 ‘밀워어키’ 대회와 ‘러더포오드’의 편지에 관해 1918년 8월 15일호 「파수대」(영문) 249면 참조.

^ 53항 성서 시대 후에, ‘히브리’인들이 수자 대신에 ‘알파벳’ 문자를 사용하였을 때 0을 나타내는 기호가 없었다. 그들의 기록 방식에는 0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400은 ‘달렛’이라는 글자 다음에 0을 두개 붙여서 나타내지 않았고 500은 ‘헤’라는 글자 다음에 0을 두개 붙여서 나타내지 않았다. 400이라는 수자는 하나의 ‘히브리’ 글자(‘타우’)로 나타내었고, 500이라는 수자는 두 개의 ‘히브리’ 글자(‘타우 코프’)로 나타내었다. 80이라는 수자는 ‘히브리’ 글자 ‘페’로 나타내었고, 열은 한 글자 ‘요드’로 나타내었다. 그러므도 ‘타우 코프 페’(580)와는 뚜렷이 다른 ‘타우 페’(480)를 착각할 가능성이 없었다.

[연구 질문]

[175면 삽화]

시이. 티이. 러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