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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간 계승자 없이 다스릴 왕들

천년간 계승자 없이 다스릴 왕들

제4장

천년간 계승자 없이 다스릴 왕들

1. 누구의 시대 이후로 인간이 세운 왕국들은 불만족스러웠읍니까?

인간이 세운 왕국들은 결국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였읍니다. 적어도 통용 기원 22세기 즉 4,150여년 전부터 인류 가족은 인간이 세운 왕국들을 가지게 되었읍니다. 기록에 나타난 첫 인간 왕의 이름은 방주 건축자 ‘노아’의 증손 ‘니므롯’이었으며, 창세기 10:8-12의 기록에 의하면 ‘니므롯’은 스스로 왕이 된 것 같습니다.

2. (ㄱ) 왕국에 대한 ‘노아’의 태도는 어떠하였읍니까? (ㄴ)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분명히 어떠한 정부 형태를 더 좋아합니까?

2 ‘니므롯’의 왕국 초기까지 살아있던 ‘노아’는 그를 ‘바벨’(즉 ‘바벨론’)의 왕으로 삼지 않았읍니다. ‘노아’는 심지어 자기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지 않고 단순히 확장하는 인류 가족의 족장으로 머물러 있었읍니다. (창세 9:28, 29; 10:32에서 11:9) 오늘날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한 가문의 상속자들로 왕이 계승되는 체제를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일반 선거에 의한 대통령을 갖는 공화 정체 혹은 민주 정체와 같은 국민의 정부 형태를 분명히 더 좋아합니다. 이러한 민주 정체하에서 사람들은 주로 한 정당에서 나온 일단의 통치자들에게 곧 싫증을 내게 되며 또 다른 정당이 내세우는 입후보자들을 선출함으로써 정권 교체를 추구합니다.

3. 누가 인간이 세운 왕국에 싫증을 느끼며, 그분은 인간이 처음으로 왕국을 세운 곳에서 무엇을 선언하셨읍니까?

3 인간들만이 상속자들로 이어지는 인간 왕국에 싫증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지상에 존재하는 인간이 세운 어떠한 정부에도 싫증을 내십니다. * 사람들은 아직 그렇게 느끼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느끼십니다. 사실 인간이 세운 이들 여러 가지 정부들은 바로 하나님의 소유물(지구)에서 그릇된 통치, 불만족스러운 통치, 부적당한 통치를 계속하여 왔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세운 첫 왕이 집권한 곳, ‘바벨론’에서, 자신이 정하신 때에 인간이 세운 이 모든 정부를 멸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의 길을 여시겠다고 선언하셨읍니다. 그는 예언자 ‘다니엘’을 통하여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다니엘 2:44.

4, 5. (ㄱ)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인류의 통치자들은 누구입니까? (ㄴ) 사도 ‘요한’에 의하면 그러한 통치자들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또한 그 외의 누구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보증합니까?

4 하늘의 지존하신 하나님의 목적에 의하면 그분은 지상의 그러한 왕들과 정치적 통치자들을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그들 중 다수는 그리스도교국의 왕들과 정치적 통치자들이지만 그들도 그분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분을 사랑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첫째로 구”할 것이며 오늘날 인간이 세운 정부에서 정치적 직책을 맡지 않을 것입니다. (마태 6:33) 인류가 하늘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왕을 갖는다는 것은 극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한 왕의 보조자들 역시 그러합니다. 즉 인류의 유익을 위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은 그들을 그 직책에 머물러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들이 그러한 직책을 갖게 된 것이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은 살아계시고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앞으로도 사랑할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그들이 지상에 있는 사람들도 사랑할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바로 이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읍니다.

5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요한 1서 4:20, 21.

6. 통치자들이 자기들의 국경과 주권을 고집하여 왔기 때문에 인류는 어떠한 영향을 받았읍니까?

6 인간 왕들과 기타 인간 통치자들은 국가들과 백성들을 갈라놓는 역할을 하는 국경 혹은 주 경계를 지키는 데 여념이 없었읍니다. 각 통치자는 자기 영토 내에서의 지배권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그 영토 내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충성하기를 기대합니다. 현 사물의 제도하에서 땅은 많은 국가 혹은 주 영토로 구분되어 그 안에서 국가 주권을 주장하여 그 결과 온 인류는 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읍니다. 국가간의 적대 관계가 야기되었읍니다. 따라서 이제 흥미있는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7. 땅을 다스리는 천적 통치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며, 계시록 14:1-5은 이 점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7 하나님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간 홀로 왕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이 아들은 정부의 자리인 천적 ‘시온’ 산에서 왕으로 홀로 서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시 14:1-5.

8.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에게 영토를 임명하는 일 및 언어 문제와 관련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8 이와 같이 땅을 다스릴 충성스러운 통치자가 144,001명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지구가 144,000개의 영토로 분할되고 144,000명 각자는 자기에게 할당된 영토를 다스리며 그 안에 있는 백성은 수석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는 그 특정한 왕 앞에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지상의 거민을 그와 같이 나누면, 그 결과는 비록 경계가 보이지는 않지만 경계선이 생기게 될 것이며, 경계선으로 분단된 거민 사이에는 어느 정도 대립이 있을 것이 아닌가? 또한 이전에 중국어를 사용하던 왕국 후사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에 임명이 되고 ‘러시아’어를 사용하던 왕국 후사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주민을 다스리도록 임명되고 영어를 사용하던 왕국 후사는 영어를 사용하는 주민을 다스리도록 임명되는 등 언어 집단별로 임명이 있을 것인가? 분열을 일으키는 언어 장벽이 계속 존재하여 상호 이해를 방해할 것인가?

9. (ㄱ) 예수의 어떠한 명령에 따라, 누구 가운데서 144,000명의 왕국후사들이 나왔읍니까? (ㄴ) 그들의 언어상의 차이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9 이러한 것은 당연하고 적절한 질문들입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성서는 그리스도의 144,000명의 공동 후사들 각자에게 수석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왕으로 돌보아야 할 어떠한 임무가 부여될지 알려 주지 않고 있읍니다. 기원 33년에 그리스도인 회중이 설립된 이후 지난 19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이들 144,000명의 공동 후사들은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들과 민족과 부족 가운데서 택함을 받았읍니다.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하시기 며칠 전에 ‘갈릴리’에 모인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침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8:19) 우리는 144,000명의 보조 왕들이 하늘에서, 왕국 영광 가운데서, 언어의 차이로 분열되고 통역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읍니까? 사도 ‘바울’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에 대하여 기술한 바 있읍니다.—고린도 전 13:1.

10. 하늘의 144,000명의 언어는 무엇일 것이며, 그들의 이전의 지적 언어는 어떻게 됩니까?

10 의문의 여지 없이, 부활받고 영광스럽게 된 144,000명은 모두 하나의 천적 언어를 사용할 것이며, 이 언어의 선물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될 때 받는 새로운 영의 몸을 가진 그들에게 수여될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이전의 지적 언어가 그들의 정신 가운데서 키워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들은 바로 그들의 이전의 언어에 의하여 자기 자신들을 식별하고 자기가 이전에도 존재하였던 바로 자신임을 인정할 수 있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적 부활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언어를 사용할 것이며, 예수께서는 그의 천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언어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단일 인종, 단일 언어

11. 천년 왕국 하에서 지상에 존재하는 현재의 언어 장벽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며,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될 것입니까?

11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그의 144,000명의 보조 왕들의 천년 통치 하에서 지상에 존재하는 현재의 언어 장벽은 인류에게서 제거될 것입니다. 지구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목적을 지구가 하나의 공통 언어, 그들의 첫 지적 아버지인 완전한 인간 ‘아담’의 언어를 사용하는 피조물로 적절히 채워지는 것이었읍니다. ‘에덴’ 동산에서 인류는 하나의 언어로 출발하였읍니다. ‘노아’ 시대의 세계적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하나의 언어, ‘아담’의 십대손인 의로운 ‘노아’의 언어로 의로운 새 출발을 하게 하셨읍니다. 그 하나의 언어가 ‘바벨’탑을 건축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까지 존속하였읍니다.

12. 하나님께서는 ‘바벨’탑 건축 시에 취하신 행동으로부터 오게 된 언어의 결과를 어떻게 제거하실 것입니까?

12 그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악한 일에 힘을 합치고 있던 건축자들의 연합을 깨뜨리셨읍니다. 어떻게? 언어를 혼잡게 하고 그들을 여러 언어 집단으로 갈라지게 하고 지구상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함으로써 그렇게 하셨읍니다. (창세 11:1-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원래 목적과 일치하게 인류 전체를 그분이 인류의 첫 인간 조상에게 주신 언어, 단일 계통의 언어로 돌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단, 아마도 하나님께서 ‘바벨’탑 건축시에 창안하신 기타 언어들로부터 유래한 말들이 부가되어 어휘가 훨씬 더 많아질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누구에게 일시적이나마 언어 문제가 있을 것이며, 그러나 어떠한 유익한 결과가 있을 것입니까?

13 이것은 ‘노아’ 홍수를 생존한 여덟명을 포함하여 홍수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천년 왕국 하에서 지상에 부활될 때 그들에게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인류 대다수는 새로운 언어, 즉 하나님께서 온 인류가 사용하도록 목적하신 언어를 배워야 함을 의미할 것입니다. 왕국이 훌륭한 언어 강사들을 사용할 것을 생각한다면 이로 인한 큰 문제는 없을 것임을 이해할 수 있읍니다. 부활되는 아기들도 어려서부터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서로 직접 의사소통을 하게 될 것이며 서로 언어상의 용어와 표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 가족을 연합시키는 놀라운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들 모두는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 *을 각자 혼자의 힘으로 읽을 수 있게 되고 그 예언들이 모두 성취되었으며, 예언자 ‘말라기’까지 이르는 정확한 역사적 기록을 또한 포함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게 될 것임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 때에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사람은 다 거짓되어도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참되십니다” 하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로마 3:4, 새번역.

14. 현재의 인종간, 국가간, 부족간의 장벽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의 경우에 어떻게 제거될 것입니까?

14 언어 장벽 뿐 아니라, 인종, 국가, 부족으로 인한 현재의 장벽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에게 이러한 장벽들은 모두 과거지사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장벽들은 모두 육체에 딸린 것입니다. 그들의 부활은 그들이 이전에 지상에서 가졌던 육체의 부활이 아닐 것입니다.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형제들아, 내[사도 ‘바울’]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린도 전 15:50) “비록 우리[그리스도인들]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린도 후 5:16) “첫째 부활”에서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은 현재의 인종, 국가, 부족 간의 장벽이 있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신의 성품”을 받게 됩니다. (베드로 후 1:4) 그들은 모두 특별하고 천적인 가족 안에서 형제들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것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라].” (로마 8:17) 그러므로 “신의 성품”에 따라 그들 사이에 연합이 있을 것입니다.

15, 16. (ㄱ)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은 연합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떻게 인간적이고 지적인 장애물들을 극복합니까? (ㄴ)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신 어떠한 간청에 고착합니까?

15 그러나 이들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은 그들이 지상에서 시험을 받으며 육체로 있는 동안에도 일반 인류의 인종, 국가, 부족적 장벽으로 인하여 분열되지 않았읍니다. 육체상으로는 그들은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제자들’입니다. (마태 28:19) 그러나 그들은 첫째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며, 그들이 어느 인종, 어느 국가, 어느 부족에 속하여 있는가 하는 것은 단지 이차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침례받은 제자들이라는 사실이 그들을 지상에서 연합시키게 하며 모든 육체적, 인간적 장애물들을 극복하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이 세상의 인종, 국가, 부족간의 투쟁에 대하여 엄정 중립을 선언하고 그 중립을 유지하며 지방적이든, 국가적이든, 국제적이든, 정치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 관한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께 간청하신 것에 고착합니다.

16 “내가 그들을 위하여 구하옵니다. 내가 세상을 위하여 구하옵는 것이 아니옵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하여 구하옵니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의 사람이옵니다. ··· 내가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사온데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였사옵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옵니다. ···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사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옵고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고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는 것이옵니다.”—요한 17:9-23. 새번역.

국제적 평화가 지켜지다

17. (ㄱ) 144,000명은 전쟁과 관련하여 어떻게 그리스도교국과 ‘유대’인 사회의 종교가들을 본받지 않았읍니까? (ㄴ) 천적 왕들인 그들은 땅의 백성에게 어떠한 성경적 법칙을 시행할 것입니까?

17 이 때문에,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은, 지상에서, 파멸적인 전쟁에 가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정부 하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로마 가톨릭’교인이 ‘로마 가톨릭’교인과, 정교회 신도가 정교회 신도와, ‘프로테스탄트’ 교도가 ‘프로테스탄트’ 교도와, 육적 ‘유대’인이 육적 ‘유대’인과 육체의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을 본받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한 손에는 하나님의 소식 혹은 성서를 들고 다른 손에는 칼 혹은 기관총을 들고 가서 제자를 삼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여러 나라 출신이지만 이사야 2:4의 예언에 있는 원칙을 실천하였읍니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만일 그들이 지상에 있는 동안 이 하나님의 법칙에 고착하였다면 그들이 왕으로 땅을 다스릴 때 지상에 있는 신민에게 동일한 평화로운 법칙에 따라 살 것을 요구함으로써 그것을 시행할 것입니다.

18. 사도 ‘요한’이 미리 본 바와 같이 지상의 어떠한 다른 국제적 무리가 이 동일한 행동 법칙에 따라 살고 있읍니까?

18 이 신민의 행복한 선구자로서 지금 이들 왕국 후사들의 남은 자와 연합하고 있으며 그 동일한 평화로운 행동 법칙에 따라 살고 있는 국제적인 큰 무리가 있읍니다. 그들은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묘사한 대로, 세계 역사상 바로 오늘날 모여들 것으로 예언된 놀라운 무리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도다 하니[라]. ···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라].”—계시 7:9-15.

19. 하나님의 새 제도는 서로 이미 어떠한 관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로 출발할 것이며, 그들은 오랜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낸 ‘베드로’의 어떠한 말을 따라야 합니까?

19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날의 이 “큰 무리” 위에 보호의 장막을 치시고 다가오는 “큰 환난”을 안전히 통과하게 하실 것이므로 하나님의 지상의 사물의 제도로 살아서 들어갈 사람들은 평화로운 국제적인 무리일 것입니다. 그때에는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들은 이미 없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 질서의 인간 사회는 모두 이미 서로 평화로운 관계를 가지고 있는 환난 생존자들인 “큰 무리”로 출발할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사랑함으로 사도 ‘베드로’가 인용한 말과 일치하게 계속 행동할 것입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여, 악한 말을 못하게 혀를 붙들며 거짓 말을 못하게 입술을 다물라.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평화를 구하고 그것을 찾으라.”—베드로 전 3:10, 11, 새번역; 시 34:12-14.

20. (ㄱ)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 관한 어떠한 성서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그 평화가 교란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실 것입니까? (ㄴ) 어떻게 그리스도의 통치는 ‘솔로몬’의 통치와 같을 것입니까?

20 “큰 환난”의 폭풍이 지나면 무지개와 같은 세계적 평화가 깨끗하여진 땅에서 빛날 것입니다. 여호와의 천년기 왕이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평화가 교란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을 허락하신다면 그분은 오래 전에 그에 대하여 선언된 예언을 이루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다윗’의 왕좌와 그 왕국 위에, 신세] 앉아서 그 나라[왕국]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9:6, 7) 예수 그리스도는 “‘솔로몬’보다 더 큰 이”이심을 기억합시다. (마태 12:42)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40년간의 통치는 “평화를 애호하는”을 의미하는 ‘솔로몬’이라는 이름과 일치하게 평화로 특징을 이루었읍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년간의 평화를 유지하실 것입니다.

“‘다윗’의 왕좌와 그 왕국 위에”

21. 평화의 왕의 정사와 평화는 누구의 왕좌 및 왕국과 분리될 수 없읍니까?

21 이사야 9:6, 7을 다시 읽어 보면, 평화의 왕의 “정사”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있을 것이라고 하였음에 유의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원전 1070-1037년에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통치한 ‘다윗’의 왕좌와 왕국으로부터 이 약속된 끝없는 평화를 분리시킬 수 없읍니다. 그 평화는 미합중국의 어떠한 대통령이나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해 인간이 만든 기구인 국제 연합에 의존하여 이룩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22. (ㄱ) 여호와의 열심은 무엇을 근거로 그 예언을 성취할 것입니까? (ㄴ) ‘다윗’은 종교면에서 어떠한 사람이었읍니까?

22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윗’ 왕의 통치 초기에 ‘예루살렘’에서 그에 대하여 파기할 수 없는 언약 즉 거룩한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다윗’은 무신론자도, 불가지론자도 아니었읍니다. 그는 종교심이 매우 강하였지만 당시 비‘이스라엘’ 나라의 우상 숭배자들이나 다신교도들과 같지 않았읍니다. ‘다윗’이 지었고 성서 「시편」에 포함된 많은 시 혹은 서정시를 당신이 직접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다윗’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적인 숭배자였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윗’의 가장 유명한 시에 속하는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 23:1, 6) 또한 시편 40:8, 9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내가 대회 중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23, 24. (ㄱ)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에 그 궤를 둘 장소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를 원하였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건축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3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자기의 수도로 삼은 후 몇달이 경과하였을 때 그는 거룩한 언약궤,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왕궁 근처에 친 천막 안에 두었읍니다. ‘다윗’은 자기의 궁전 곧 “백향목 궁”과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는 곳이 차이가 많음을 절감하였읍니다. 마침내 그는 예언자 ‘나단’에게 여호와의 언약궤를 위하여 합당한 성전을 건축할 것을 제안하였읍니다. (사무엘 하 7:1-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이러한 말씀을 전하셨읍니다.

24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찌라.”—역대 상 22:8-10.

25. 여호와께서는 인식의 표시로 ‘다윗’을 위하여 어떠한 집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읍니까?

25 이것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이름에 영예를 돌리기 위하여 숭배의 전을 건축하려는 ‘다윗’의 사랑에 입각한 욕망을 인식하지 못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인식하셨으며, 그러한 인식의 표시로 그분은 언약 즉 ‘다윗’을 위한 집을 세울 것이라는 엄숙한 약속을 하셨읍니다. 그 집은, 문자적인 주택이 아니라, ‘다윗’의 가문에서 나올 역대 왕가(王家)입니다. 이 말씀은 예언자 ‘나단’을 통하여 ‘다윗’ 왕에게 전달되었읍니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하라.”—사무엘 하 7:11-16.

26. ‘다윗’은 깊은 감사의 표시로 여호와의 이름과 “집”에 대한 여호와의 목적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기도하였읍니까?

26 ‘다윗’은 이 하나님의 언약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이렇게 기도하였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확실케 하옵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사람으로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사무엘 하 7:25-29.

27. 여호와께서는 ‘다윗’과 맺으신 왕국 언약에 고착하고 계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사야’를 통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으며, 후에 ‘에스겔’을 통하여 ‘시드기야’ 왕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7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그 기도에 응답하셨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3백여년 후에 그분은 그의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있는 평화의 왕의 정사를 굳게 세울 것이며 “자금 이후 영원토록”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읍니다. (이사야 9:6, 7, 신세 참조) 1세기 이상이 경과한 후에 ‘예루살렘’의 ‘다윗’의 후손의 왕국이 멸망당하기 직전에 여호와께서는 왕권이 ‘다윗’의 집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심으로써 ‘다윗’과의 왕국 언약에 고착하고 계심을 나타내셨읍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의 ‘다윗’의 보좌에 앉은 마지막 왕 ‘시드기야’에게 예언자 ‘에스겔’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찌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에스겔 21:25-27.

28. (ㄱ) ‘다윗’의 집의 왕국은 언제 전복되었으며, ‘스룹바벨’은 칠십년 후에 ‘유다’를 다스리는 어떠한 직책에 있게 되었읍니까? (ㄴ) ‘스가랴’는 ‘다윗’의 집을 깨끗하게 하는 데 대한 어떠한 예언을 하였읍니까?

28 ‘다윗’의 보좌는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 멸망시에 전복되었으며, 생존한 ‘유대’인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갔읍니다. 칠십년 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 남은 자들은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유다’ 땅으로 돌아와 ‘예루살렘’에 ‘솔로몬’ 왕이 건축한 처음 성전이 있던 곳에 또 다른 성전을 건축하였읍니다. ‘다윗’ 왕의 후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총독이 되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를 일으켜 성전 재건 사업을 하는 총독 ‘스룹바벨’을 격려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아직도 ‘다윗’과 맺은 왕국 언약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여 예언자 ‘스가랴’에게 영감을 주시고 이렇게 말하게 하셨읍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스가랴 13:1.

29. ‘예루살렘’과 ‘유다’에는 언제 ‘에돔’ 사람 왕이 있게 되었으며, ‘다윗’과의 왕국 언약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있을 수 있었읍니까?

29 사백여년이 경과하고 ‘팔레스티나’ 땅은 제국주의적인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읍니다. ‘유대’인이 아닌 ‘에돔’인 ‘헤롯’ 대왕이 ‘로마’ 원로원의 임명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읍니다. 그처럼 여러 세기가 지난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평화를 끝없이 유지할 영원한 왕국을 위하여 ‘다윗’과 맺은 그 언약에 대하여 완전히 잊으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맺으신 때로부터 도합 천여년이 지났고 그 때까지는 언약이 폐해지고 시효가 지나고 소멸 상태에 있는 것 같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언약이 존속할 아무런 증거도 없지 않았읍니까? 믿음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하십니까?

‘다윗’ 왕의 영원한 후사의 탄생

30, 31. (ㄱ) 여호와께서는 ‘다윗’ 왕의 어느 후손 계열을 주시하셨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그 후손 계열의 어느 딸을 주목하셨으며, 그는 누구와 약혼하였읍니까?

30 왕국 언약을 맺으신 분으로서 잊을 줄 모르시는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하신 언약을 이행할 뜻을 고정시키셨읍니다. 충실한 ‘다윗’ 왕을 위하여 왕가를 지으실 것을 약속하신 그분은 ‘다윗’의 남자 후손을 계속 주시하셨읍니다. 그분은 ‘다윗’의 후손 계열 하나가 ‘솔로몬’ 왕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윗’의 또 다른 아들 ‘나단’을 통해서 이어지는 것을 보셨읍니다. 이 특별한 계통은 다른 스무명을 거쳐, 예언자 ‘스가랴’ 시대에 ‘예루살렘’의 총독이 된 ‘스룹바벨’을 낳았읍니다. ‘스룹바벨’은 ‘레사’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레사’ 이후로 다른 16명을 거쳐 후손 계열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으며, 그 후에 ‘헬리’가 ‘맛닷’의 아들로 태어났읍니다. (누가 3:23-31)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남자 후손이 아니라 ‘헬리’의 딸을 주목하셨읍니다. 그 딸은 기원전 1세기 후반에 ‘로마’의 ‘유다’ 도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였읍니다. 그의 이름은 ‘마리아’였읍니다.

31 얼마 후 ‘마리아’는 북쪽으로 ‘로마’의 ‘갈릴리’ 도에 있는 ‘나사렛’으로 이사하였읍니다. 거기에서 그는 혼기에 달하여 ‘나사렛’ 주민 ‘야곱’의 아들 ‘요셉’이라는 목수와 약혼하였읍니다.

32. ‘요셉’과의 그 약혼은 왜 적절하였으며, ‘다윗’의 후사에 대한 어떠한 질문이 생겼읍니까?

32 이 약혼은 매우 적절하였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셉’은 ‘나사렛’이라는 두드러지지 않은 마을의 비천한 목수였지만 ‘나단’이 아니라 ‘다윗’의 첫 왕위 계승자 ‘솔로몬’을 통한 ‘다윗’ 왕의 후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조상 ‘다윗’ 왕의 보좌에 앉을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요셉’은 이제 오래 전에 약속된 ‘다윗’ 왕의 영원한 후사의 직계 친아버지가 될 것입니까?

33, 34. (ㄱ) 여호와께서는 왜 ‘마리아’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보이셨읍니까? (ㄴ) 그 때에 발생된 일은 임종을 맞은 ‘야곱’의 어느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읍니까?

33 결혼식이 있기 전 즉 ‘요셉’이 ‘마리아’를 위하여 마련한 집으로 ‘마리아’를 법적 아내로 데려오기 전에 매우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였읍니다. 그 일을 현 이십세기 두뇌 시대의 사람들은 믿기를 거절하고 있읍니다. 때는 기원전 3년 말경이었읍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오랫 동안 기다리신 정하신 때였읍니다. 갑자기, 하나님께서 ‘헬리’의 딸 ‘마리아’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뚜렷하여졌읍니다. 그것은 그가 단순히 품격있는 ‘유대’인 처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유다’ 지파 ‘다윗’ 왕가의 후손이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그 때에 발생한 일은 족장 ‘야곱’이 자기의 네째 아들 ‘유다’에게 선언한 영감받은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이 일은 멀리 기원전 1711년에 있었으며, 임종을 맞은 ‘야곱’은 ‘유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34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즉, 그것을 가진 분]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세 49:8-10.

35, 36. (ㄱ)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나이 많은 친척 ‘엘리사벳’에게 어떤 기적을 행하셨읍니까? (ㄴ) 천사 ‘가브리엘’은 ‘다윗’의 왕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마리아’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35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유다’ 지파의 ‘다윗’ 왕가에서 난 처녀 ‘마리아’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보이셨읍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레위’ 제사장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 곧 ‘마리아’의 나이 많은 친척에게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마리아’에게 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으로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생식력을 회복시켜, ‘엘리사벳’은 그 때에 임신 6개월이 되었으며, 침례자 ‘요한’이라고 불리울 아들을 곧 낳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목수 ‘요셉’과의 약혼 기간이 아직 차지 않은 ‘유대’인 처녀 ‘마리아’에게 어떤 일을 하셨읍니까? 의사 ‘누가’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36 “여섯달 만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 ‘나사렛’ 동네에 이르러 ‘다윗’의 가문에 속한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의 집을 찾아갔읍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읍니다. 천사가 그 집안에 들어가 ‘마리아’에게 말했읍니다. ‘은혜를 입은 이여, 기뻐하라. 주께서 너와 같이 계시다.’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몹시 놀라 이 인사가 대체 무슨 뜻일까하고 생각했읍니다. 그 때 다시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했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야, 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는 위대한 분이 될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이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며 그는 영원하도록 ‘야곱’의 후손을 다스리는 왕이 될 것이요 그의 나라는 무궁할 것이다.’”—누가 1:26-33, 새번역.

37. ‘가브리엘’은 ‘마리아’가 인간 아버지 없이 아들을 낳을 것임을 어떻게 설명하였읍니까?

37 이것은 ‘마리아’의 약혼한 남편 ‘요셉’이 ‘예수’의 직계의 친 아버지가 되지 않을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무엇이라고요? 인간 아버지 없이 아들이 탄생된다고요? 기적에 의한 이 처녀 분만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마리아’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천사 ‘가브리엘’은 계속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보라, 네 친척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기를 배었다.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이라는 소문이 났으나 그가 임신한지 벌써 여섯달이 되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누가 1:34-37, 새번역.

38. 이제 ‘마리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그의 아기는 누구의 아들이 될 것이었읍니까?

38 ‘마리아’는 이러한 방법으로 ‘다윗’ 왕의 영원하고 영구적인 후사가 될 분의 지적 어머니가 되는 데 동의하였읍니까? 누가 1:38이 대답해 줍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보십시오, 저는 주의 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말했읍니다. 천사는 ‘마리아’를 떠나갔읍니다.” (새번역) 그 후에 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감싸주셨읍니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약혼한 남편을 통하지 않고 기적으로 잉태하였읍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 예수의 아버지는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영감받은 다른 성귀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천적 독생자의 생명을 ‘마리아’의 난세포로 옮기고 잉태하게 하셨음을 알려 줍니다. (요한 3:16; 빌립보 2:5-11) 이 일이 거룩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할 아무런 이유가 없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우게 되어 있읍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발생하였읍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모세’의 율법]아래 나게”하셨다고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갈라디아 4:4.

왕국 언약의 영원한 후사

39. (ㄱ) 누가 ‘마리아’의 아들 예수를 ‘야곱’의 집을 다스리는 왕으로 삼게 되어 있었읍니까? (ㄴ) 예수는 ‘마리아’를 통하여 어떠한 권리를 상속받았읍니까?

39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한 말로 볼 때에 그의 아들 예수께서 ‘다윗’ 왕의 영원한 후사가 될 것이 분명하였읍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누가 1:32, 33) 19세기 전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의 육적 ‘유대’인들이 이 예수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게 되어 있지 않았읍니다. 천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왕국의 그 왕위를 주게 되어 있었읍니다. ‘다윗’의 경우에, 그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의 족장이며 아버지인 “‘야곱’의 집”만을 다스리는 보좌였읍니다. 그러므로 ‘유대’인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마리아’의 첫 아들이 ‘다윗’ 왕가에 태어났으며, ‘마리아’에 의하여 예수께서는 ‘다윗’의 왕국에 대한 육적 권리를 가지고 태어나셨읍니다. 이 사실에 대한 증거로 사도 ‘바울’은 영감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의 이 좋은 소식에 관하여 기록하였읍니다. “그 아들은 인간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고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사심으로 그 권능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확인되셨읍니다.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로마 1:1-4, 새번역.

40. (ㄱ) ‘요셉’은 ‘마리아’의 아들 예수에 대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의무라고 느꼈으며, 따라서 예수에게 무엇을 갖게 하였읍니까? (ㄴ) ‘누가’는 ‘요셉’을 누구의 아들이라고 불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40 ‘마리아’가 잉태하였음이 드러난 후에, 그의 남편이 될 사람은 그 경위를 알게 되었고 ‘마리아’를 집으로 데려다가 아내로 삼으라는 명령을 들었읍니다. ‘요셉’은 그곳 ‘나사렛’에서 그렇게 하였읍니다. 그는 ‘마리아’에 의한 하나님의 아들을 자기의 첫 아들로 입양하고 그렇게 하여 예수께 ‘다윗’의 보좌에 앉을 정당한 권리를 갖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의무임을 인식하였읍니다. ‘요셉’은 ‘솔로몬’ 왕을 통한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입니다. * (사무엘 하 7:13-16) ‘요셉’은 예수에게 생후 8일째 되는 날에 할례를 베풀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으며 생후 40일째 되는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자신과 ‘마리아’를 위해 깨끗하게 하는 의식에서 아기 예수를 바침으로 그렇게 하였읍니다. (마태 1:17-25; 누가 2:21-24) 그러기 때문에 그는 “‘요셉’의 아들”이라고 불리웠읍니다. (요한 1:45; 6:42) 또한 그러기 때문에 의사 ‘누가’가 제시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그는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헬리’의 아들, 신세]”라고 말한 것입니다. (누가 3:23) ‘요셉’이 실은 ‘야곱’의 아들이었지만, 그는 또한 ‘헬리’의 딸 ‘마리아’와 결혼하여 ‘헬리’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헬리’의 아들”이라고도 불리웠읍니다.

41.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운 분이 기원전 2년에 어디에서 탄생하였읍니까?

41 예수 그리스도는 후에 “‘나사렛’ 예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 예수”라고 불리웠읍니다. (요한 19:19; 마태 21:11) 이것은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탄생하셨음을 의미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마리아’의 남편 ‘요셉’도 ‘유다’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였는데, 그들은 예수가 탄생하기 전에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칙령에 따라 등록하기 위하여 기원전 2년에 ‘베들레헴’으로 이전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였는데, 그 도시는 ‘이새’의 아들 ‘다윗’의 출생지였으므로 “‘다윗’의 동네”라고 불리웠읍니다.—누가 2:1-7.

42, 43. ‘마리아’의 아들이 하나님의 메시야가 될 분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증언 외에 또 어떠한 천사의 증언이 있읍니까?

42 ‘마리아’의 아들, 이 예수가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 즉 ‘다윗’의 보좌와 왕국의 영원한 상속자로 기름부음받은 자가 될 분이라는 증거는 천사 ‘가브리엘’의 증언 외에 또 있읍니다. 또 다른 천사가 기원전 2년 10월 초에 예수께서 탄생하신 밤에 증언하였읍니다. 이 영광스러운 천사는 바로 그 절기에 ‘베들레헴’ 근처 들에서 아직 양떼를 치고 있던 목자들에게 나타났읍니다.

43 두려움에 질린 목자들에게 천사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라].” 이것이 평범한 출생이 아니었음은 다음에 발생한 일로 증명되었읍니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누가 2:8-14.

44. 아기 예수를 왜 ‘애굽’으로 데리고 갔으며, 어떻게 그는 ‘나사렛’의 목수가 되셨읍니까?

44 ‘사단’ 마귀는 “그리스도 주”가 되실 이 하나님의 아들의 출생을 알았읍니다. ‘사단’ 마귀는 이 세상에 대한 자기의 통치권을 잃지 않으려고 어린 아기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쳐진지 얼마 후에 죽이려고 하였읍니다. 의심많은 ‘헤롯’ 대왕을 이용하여 그렇게 하려고 하였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사는 ‘요셉’에게 지시하여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도망하여 다음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라고 명하였읍니다. ‘헤롯’ 왕의 사후에 하나님의 천사는 ‘요셉’에게 그의 백성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였읍니다. 그러나 ‘헤롯’ 왕의 아들 ‘아켈라오’가 ‘베들레헴’을 포함한 ‘로마’의 ‘유다’ 도를 통치하고 있었으므로 ‘요셉’은 ‘베들레헴’을 지나 ‘갈릴리’ 도의 ‘나사렛’으로 돌아왔읍니다. 예수께서는 거기에서 자라셨으며, ‘나사렛’인이라고 불리우게 되셨읍니다. 그곳에서 이 장래의 왕은 목수로 일하셨읍니다.—마태 2:1-23; 13:55; 마가 6:1-3.

45. (ㄱ) 예수께서 참으로 그리스도 혹은 메시야가 되시기 위하여 ‘다윗’과 같이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하셨읍니까? (ㄴ) 언제 그리고 왜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기 위하여 ‘요단’ 강으로 가셨읍니까?

45 그러나 기름부음받은 자를 의미하는 그리스도 혹은 메시야라는 말은 예수께서 실제로 기름부음받은 자가 되기까지 그에게 적용될 수 없었읍니다. 그의 조상, ‘베들레헴’의 목자 ‘다윗’은 그가 실제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기 여러 해 전에 하나님의 예언자 ‘사무엘’에 의하여 기름부음을 받았읍니다. (사무엘 상 16:1-13; 사무엘 하 2:1-4; 5:1-3) 예수의 경우도 비슷하였읍니다. 예수께서 완전한 인간으로 30세가 차갈 때에 그의 친척 침례자 ‘요한’은 침례 주는 일을 시작하였읍니다.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마태 3:1, 2) 이 선포를 듣고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관심사에 전적으로 자신을 바칠 때가 되었음을 아셨읍니다. 그는 인간 생활 30년째 해의 끝에 가까왔을 때에 ‘나사렛’을 떠나, ‘요단’ 강에서 사람들에게 침례를 베풀고 있는 ‘요한’에게로 가셨읍니다. 왜? 그분은 무죄하였으므로 죄에 대한 회개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국” 곧 하나님의 왕국과 관련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제공하는 것을 상징하는 침례를 받기 위해서였읍니다. ‘요한’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46. (ㄱ) 예수께서는 침례시에 어떻게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가 되셨읍니까? (ㄴ)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왜 침례받은 예수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부르셨읍니까?

46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침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 3:13-17) 이렇게 하나님의 영이 침례받으신 예수께 내려 옴으로써 그분은 침례자 ‘요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기름부음받은 자가 되었읍니다. 이리하여 그분은 메시야, 그리스도, 기름부음받은 자가 되셨읍니다. 이 일은 기원 29년 초가을에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분을 그때에 자신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셨읍니다. 왜냐 하면 그 때의 그의 성령이 예수를 그의 영적 아들로 낳았기 때문입니다. (요한 1:32-34) 그분은 이제 인간 메시야보다 더 높은 영적 메시야 즉 영적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47. 예수께서는 단순한 인간 메시야가 될 수 있는 어떠한 기회를 거절하셨으며, 그는 자기가 기름부음받은 사실과 일치하게 어떠한 사업을 시작하셨읍니까?

4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야곱’의 집”을 다스릴 지적 왕으로 높임을 받으려고 하셨읍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광야에서 유혹을 받을 때에 자신을 ‘야곱’의 집 뿐 아니라 이 세상 만국을 다스릴 왕이 되라는 ‘사단’ 마귀의 제안을 물리치셨읍니다. (마태 4:1-11; 누가 4:1-13) 후에 그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으로 음식을 먹게 하자, 음식을 잘 먹은 수천명의 ‘유대’인들이 그를 지적 왕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을 피하셨읍니다. (요한 6:1-15) 그분은 자기를 메시야 왕으로 기름부으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왕국이 올 것임을 아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이 자기에게 부과한 예비적인 사업을 인식하시고 “‘야곱’의 집”의 땅 전역에 하나님의 왕국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평화로운 사업을 시작하셨읍니다. 특히, 기원 30년에 침례자 ‘요한’이 투옥된 후에 그렇게 하셨읍니다.

48. 그분은 ‘나사렛’ 회당에서 ‘나사렛’ 사람들에게 ‘이사야’의 어느 예언을 읽어 주셨으며, 지상 생애의 나머지 기간에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셨읍니까?

48 ‘나사렛’ 회당에서 그분은 ‘나사렛’인들에게 이사야 61:1, 2에 있는 예언을 읽어 주셨읍니다. “주[여호와]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침례받으신 예수께서는 그것을 연설 주제로 삼으시고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는 말씀으로 연설을 시작하셨읍니다. (누가 4:16-21)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는 자기의 이전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가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 메시야, 그리스도임을 이해시키려 하셨읍니다. 그분은 지상 생애의 나머지 전 기간을 통하여 자기가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음으로써 권한받고 위임받은 일을 성취하고자 노력하였읍니다.

49, 50. (ㄱ)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설립하시려고 군대를 조직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왕이시지만 왕국을 위하여 싸우지 않는 이유를 ‘빌라도’에게 어떻게 설명하셨읍니까?

49 따라서, 그분은 이 세상 정치에 간섭하지도 않으셨고, ‘마카베’인들과 같이 군대를 조직하여 ‘로마’인들을 그 땅에서 몰아내고 ‘다윗’ 왕국을 다시 설립하려고 하지도 않으셨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50 예수께서는 자기가 그렇게 하시지 않은 이유를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설명하셨읍니다. 예수의 종교적 적들이 그를 ‘로마’ 제국에 대한 선동자로 처형하도록 ‘빌라도’에게 넘겼을 때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는 ‘빌라도’의 질문을 받고 마침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내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내 부하들[나의 측근자들, 신세]이 싸워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그러면 네가 왕이냐?” 하고 말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진리를 증거하시면서 “네가 말한 대로 나는 왕이다” 하고 대답하셨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당시 세계 강국이었던 ‘로마’ 제국을 포함한 세상에 속하지 않은 왕국의 왕이셨읍니다.—요한 18:33-37, 새번역.

51, 52. (ㄱ) 예수께서는 “측근자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교훈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열 두 사도들에게, 다음에 70명의 복음 전도자들에게 정치 활동을 하라고 말씀하셨읍니까, 아니면 복음 전도 사업을 하라고 말씀하셨읍니까? 어떻게?

51 “나의 측근자들”이라는 예수의 말씀은 누구를 가리킨 말씀이었읍니까? 그 말은 자기의 열 두 사도들(“보냄을 받은 자들”)을 포함한 무장하지 않은 자기의 제자들을 의미하였읍니다. 이들에게도 그분은 이 세상에 정치와 폭력적 투쟁에 참여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된 왕국의 좋은 소식을 평화롭게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교훈하셨읍니다.

52 한 때 그분은 열 두 사도들을 내보내실 때에 그들에게 비밀 정치 운동을 조직하여 ‘유대’인들 간에 반란을 선동하라고 교훈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1-8) 예수께서 후에 70명의 다른 복음 전도자들을 보내실 때에 그분은 그들에게 비슷한 교훈을 말씀하시고 무엇을 전파할 것인지를 그들에게 알리는 이러한 말씀을 하셨읍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누가 10:1-9.

53, 54. (ㄱ) 예수께서는 자신의 임재와 이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대한 예언에서 무슨 전파 활동을 예언하셨읍니까? (ㄴ) 그들이 전파 활동을 계속하면서, 그들이 전파하는 정부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알기 때문에 그들은 무엇에 간섭하지 않습니까?

53 예수께서 유월절날에 죽으시기 조금 전인 기원 33년 ‘니산’월 11일에 그분은 자기의 장래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대한 놀라운 예언을 하셨읍니다. 이 예언 가운데서 그분은 측근자들 곧 제자들이 수행해야 할 탁월한 사업을 예언하셨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 (마태 24:3-14, 신세) 이 사물의 제도의 완전한 끝이 오기 전에 이 왕국 전파는 그분의 제자들에 의하여 전세계적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마가 13:10) 그들은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왕국을 평화롭게 전파하였기 때문에 세상 정치에 간섭하거나 국제적 투쟁에서 편드는 일이 없었읍니다.

54 그들은 인도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바와 같이, 단지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들은 땅을 다스릴 때 그 왕국을 세울 권한도 능력도 받지 않았읍니다. 그것은 지적 정부가 아니며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온 인류에 대한 초인적 능력을 가진 천적 정부였읍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하늘의 지존하신 하나님만이 땅의 모든 거민을 다스릴 그 메시야 정부를 세우실 수 있읍니다.

55.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의 일을 이행하는 것과 성서 예언을 성취시키는 면에 있어서 예수께서 온 인류를 다스릴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반대할 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읍니까?

55 하늘이나 땅에 있는 자로서 누가 천년간 왕으로 온 인류를 다스릴 자로 기름부음 받은 분, 메시야,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생활을 흠잡을 수 있겠읍니까? 누가 그분이 부적격자나 무자격자인양 그분이 천년기의 왕이 되시는 것을 반대할 수 있겠읍니까?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읍니다. 사도 ‘베드로’는 지상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흠없는 생활을 지적하여 ‘로마’ 백부장 ‘고넬료’와 그의 이방인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 말씀은 ‘요한’이 [침례]를 선포한 후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 지방에 퍼진 것임을 여러분이 알고 있읍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읍니다. 이 예수는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귀신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한 증인입니다.” (사도 10:37-39, 새번역) 모든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시던 동안 기름부음에 의하여 위임된 모든 일을 성취하셨음을 알려 줍니다. 그분은 순교당하실 때까지 자신에 관한 모든 성서 예언들을 성취시키셨읍니다.

[각주]

^ 13항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새 사물의 질서의 하나의 공통 언어가 현대 ‘히브리’어 ‘알파벳’의 사각형 자모로 인쇄되고 기록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영어에서 사용되는 ‘라틴’식 ‘알파벳’ 자모로 철자된 ‘히브리’어 출판물이 남아 있다. 예를 들면, 1949년에 남‘아프리카’에서 발행된 교본인 「타랴그 밀림」, 1927년에 ‘예루살렘’에서 발행된 일대기 「아비」, 1933-1934년에 ‘텔아비브’에서 발행된 신문 「데로르」지의 일부 기사가 있다.

^ 40항 만일 ‘다윗’ 왕 계열의 ‘요셉’이 ‘다윗’의 보좌에 앉을 “정당한 권리”를 기다렸다가 자기의 직계 친 아들, 이를테면 ‘야고보’, ‘요셉’(2세), ‘시몬’ 혹은 ‘유다’에게 주기를 원하였다면 이 정당한 권리는 효력을 발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에스겔 21:27)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 하면 ‘요셉’은 ‘여고니야’(혹은 ‘고니야’ 혹은 ‘여호야긴’)를 통한 ‘솔로몬’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22:24-30의 기록은 이러하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너 ‘고니야’가 나의 오른 손의 인장 반지라 할찌라도 내가 빼[리라]. ···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다윗’의 보좌에 앉을 후사에 있어서]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 (마태 1:11-16; 13:55) 따라서, ‘요셉’이 그의 양자 예수에게 정당한 권리를 갖게 하는 것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처녀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여고니야’(‘고니야’)의 후손이 아니라 ‘다윗’이 ‘밧세바’를 통하여 낳은 아들 ‘나단’의 계열을 통한 ‘다윗’ 왕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3:23-38에 기록된 예수의 족보에는 ‘여고니야’(‘고니야’ 혹은 ‘여호야긴’)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연구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