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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새 질서에 합당한 자임을 증명함

하나님의 새 질서에 합당한 자임을 증명함

하나님의 새 질서에 합당한 자임을 증명함

전세계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즐거움을 가져왔다. (디도 2:11) 1975 봉사년도 보고에 의하면 295,073명의 남녀와 어린이들이 모든 민족으로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헌신하였음을 알려 준다. 이들 각자는 전세계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38,256개 회중과 연합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배운 것을 전해 주는 데 매우 바쁜 날을 보냈다.

그들은 무엇을 배웠는가? 하나님의 왕국만이 인류를 위한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러므로 이들 새로 침례받은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서 다른 증인들과 함께 부지런히 성서를 연구하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성품을 입고 있다. 그렇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교훈한 훌륭한 충고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심령[정신, 신세]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 4:22-24.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들 개개인들이 회중에 있는 연로자들 즉, 장로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보살피신다. 여러 세기 전에 사도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두어 그로 결함을 시정하고 여러 도시를 방문해서 연로자들을 임명하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올바른 인도를 베풀 수 있게 하였다. ‘디도’는 여러 회중을 방문하면서 건전한 가르침에 맞는 교훈을 하였다. 장로들의 선한 인도로 말미암아 회중 성원들은 유익을 즐길 수 있었다. 그것이 ‘바울’이 바라는 것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라고 편지하였던 것이다. 진리 안에서 그리고 신체적으로 연로한 분에게 격려를 베풀었다. 그들은 이제 막 진리 안에 들어와서 여호와의 조직과 연합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훌륭한 본을 세워야 하였다. 디도서 2장에서 ‘바울’은 이 장로에게 다음과 같이 교훈하였다.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에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디도 2:1, 2, 6-8.

‘바울’은 회중에 있는 모두에게 예리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디도’ 역시 동일한 염려를 나타냈다. 그 사도는 늙은 여자들은 행위를 거룩하게 가져 젊은 여자들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도록 하기를 원하였다. 그리고 나서 이들 젊은 여자들이 나타내어야 할 것들 중에 그들의 남편과 자녀들에게 사랑을 나타내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또한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디도 2:3-5.

그 당시에는 노예들 즉, 종들 중에도 회중과 연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디도’는 그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다. ‘바울’의 충고는 이러했다.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디도 2:9, 10.

‘그레데’ 회중을 돌보도록 사도 ‘바울’에게 임명받은 이 훌륭한 장로는 회중에 있는 모두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그와 같아야 한다. 모든 장로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여호와의 조직과 연합하고 있는 모두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동시에 장로들 자신도 선한 일을 하며 건전한 말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훌륭한 본을 세워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언어는 그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나타낸다. 가정에서나 회중에서의 그의 행위는 그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게 한다. 모든 면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습관은 본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다른 사람을 돕고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관찰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찬란하게 한다. 왜 그러한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새 사람”을 입게 하였다는 사실을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리를 깊이 인식하게 되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변화를 가져 오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변화시키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 일부에 사는 사람들에게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좋은 소식을 온 땅에 전파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전세계에 있는 ‘왙취 타워 협회’의 여러 지부는 수많은 경험담들을 보내왔다. 그러면 그중 몇 나라로부터 온 경험담을 살펴보기로 하자.

‘오스트레일리아’: 지부 감독자는 이렇게 편지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우리의 사랑을 확대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여러 항구에서 정박하고 있는 1,121개의 선박에서 봉사하였다.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이 금지된 여러 나라로부터 온 많은 선원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서적들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광대한 나라에서 많은 형제 자매들은 편지로 증거한다. 한 자매는 어린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사망한 기사를 읽고 그 부모에게 부활의 희망에 관하여 편지를 썼다. 아무런 회답이 없이 얼마 동안 지나갔다. 그후 ‘크리스머스’ 때가 되자 그 어머니는 그 자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의 엽서를 보냈고 또 편지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 후에 그분의 남편이 또 사망하였으며 그것을 알게 된 이 자매는 성서 진리에 관한 더 자세한 편지를 그 부인에게 써 보냈다. 아무런 회답이 없이 6개월이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날 그 자매는 그 부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 내용은 그 부인과 맏아들이 침례를 받았고 그 아들은 ‘파이오니아’ 봉사를 생활의 목표로 삼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당신은 그 자매의 기쁨이 어떠하였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 이 부인의 어머니도 진리를 받아들였다.

‘오스트리아’: 어떤 젊은 형제들은 세속 직업을 갖기 위해 1년에 8주일간 특별 훈련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안된다. 한 형제가 집을 떠나게 되자 그의 부모는 그에게 “너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라고 훈계하였다. 이 젊은 형제는 기사에게 자기는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어떤 학교 행사에 참여할 수 없음을 말하였다. 그의 교우들은 이 젊은이가 너무 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은 곧 그들의 견해를 바꾸었다. 어느날 선생은 그들에게 종교에 관하여 자유로운 토론을 하라고 말하였었다. 이 젊은 형제는 반 전체에게 고해성사, 예수 그리스도, 성령 및 그가 연합하고 있는 조직에 관하여 약 1시간 동안 이야기하였다. 이제 학우들은 이 젊은이에 대하여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성서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의 그의 행실이 그의 믿음을 더욱 빛나게 했던 것이다.

여호와에 대한 사랑은 이 젊은 형제에게 이 특별 훈련 기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에 관하여 더 말할 기회를 갖게 하였다. 그는 자기 방짝과 함께 매일 성서를 읽을 수 있었다. 얼마 안있어 그의 학우 중 하나는 그와 함께 회중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다. 이 젊은이가 그의 부모의 말씀 즉 “네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라는 말씀을 결코 잊지 않은 것이 참으로 훌륭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바아베이도즈’: 이 섬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주 보수적이어서 그들이 진리에 관하여 행동하기로 결심하기 전에 상당히 오래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난해에 한 충실한 자매는 한 사람에게 「왕국 소식」 한부를 전하였다. 그는 그 자매를 집으로 초대해 들여 여호와의 증인과 이야기하기를 원하였었다고 말하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나도 여호와의 증인이 되기를 원한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물론 이 자매는 지식과 연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그로 왕국회관의 집회에 참석하도록 초대하였다. 그가 처음으로 집회에 참석한 후에 그는 “내가 생전 이와 같이 행복감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라고 말하였다. 8개월이 되기 전에 이 사람은 자기와 동거해 오던 여자와의 관계를 합법적인 결혼이 되게 하였고 침례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전 생애를 변화시켰으며 그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빛나게 하는 선한 행실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벨기에’: 여호와의 증인의 탁월한 태도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참 숭배를 받아들이게 도왔다.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이 벽돌 쌓는 사람들의 ‘그룹’에 속하여 있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증인들과 마주 서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은 이 일에 경험이 없었고, 벽 모퉁이를 쌓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에게는 도움을 요청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벽이 높이 쌓여 올가감에 따라 자기가 한 일이 더욱 나빠지자 땀을 흘려가며 어찌할 줄 몰랐다. 그 증인은 그것을 보자 자기 일을 멈추고 그것을 시정해 주랴고 물었다. 그 일을 바로 잡아 준 후에 이 형제는 두시간마다 그를 도와 주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여러 주일 동안 그는 이 새로운 사람에게 매우 유익한 제안들을 해 주었다.

이러한 친절한 도움을 받은 후에도 이 사람이 계속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증오감을 가질 수는 없었다. 더우기 그는 이 형제가 같은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태도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면 증인은 기꺼이 가르쳐 주었다. 그는 또한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건축 공사장에서 아무 것도 훔치는 일이 없다. 이 새로운 사람이 이 일을 하는 동안 여호와의 증인에게 진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여호와의 증인의 태도는 그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도록 격려하였다. 마침내 이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형제의 선한 행실이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한 것이다.

‘볼리비아’: “이동 특별 ‘파이오니아’”들에 의하여 지난 봉사년도에 사랑을 베푸는 일이 크게 행해졌다. 그들은 4개월간 격지 구역에서 일하였다. 따라서 ‘볼리비아’에 봉사되지 않은 20개 도가 처음으로 왕국의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선한 사업으로 말미암아 일부 광산 지역에 훌륭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많은 겸손한 ‘볼리비아’ 광부들은 진리를 배운 후에 그들의 생활을 크게 변화시켰다. 이러한 광부들의 생활은 이교 미신에 푹 젖어 있다. 그들은 춥고 높은 산에서 일하기 때문에 굶주림과 극심한 추위의 고통을 덜기 위하여 ‘코코아’ 잎을 씹는 것이 보통이다.

이들 특별 ‘파이오니아’들 중 얼마는 해발 5,100‘미터’ 높이에 있는 ‘초롤키’ 회중을 방문해서 일하였는데 거기에서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를 연구하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여 이교 습관을 버리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볼리비아’ 광부들은 동료 광부들과 공동생활을 하고 있으며 전통을 지키는 압력이 뿌리깊이 박혀 있다. 많은 광부들은 갱도에 들어가기 전에 ‘파자맘마’(땅의 여신)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여신을 노하게 하면 사고가 나거나 생명을 잃는 일까지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운데서 혼자 굳건한 태도를 갖기에는 담대함과 하나님의 영이 필요하다. 이 지역에는 여호와의 증인의 조그만 집단이 하나님의 길에 따라 그들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있다.

‘싼 비센테’라는 또 다른 광산촌에는 단지 4명의 침례받은 형제들이 있었다. ‘파이오니아’들이 10개월 후에 다시 방문하였을 때 21명의 침례받은 전도인들이 있음을 보고 매우 놀랐다. 하나님의 “양”이 어디에서 발견될 수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또한 하나님의 소식이 들어 있는 한부의 서적이 어디에서 어떠한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협회의 ‘포켓’용 크기의 서적들은 여러 가지 훌륭한 결과를 가져왔다. 한 대학생은 여러 해 동안 성서에 관하여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는 집 안에 있는 「성서는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책을 집어 읽게 되었다. 이것은 그의 집안 식구 한 사람이 받아 놓은 것이었다. 이 젊은이는 이 책의 내용에 도취된 나머지 끝까지 다 읽고야 손에서 놓았다. 왕국 전도인이 다시 돌아 왔을 때 연구가 이 대학생과 시작되었다. 이 젊은이는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으며 그가 하나님에 관하여 새로 알게 된 지식을 자기의 여자 친구에게 알려 주었다. 그가 좋은 소식의 전파자가 될 자격을 갖기 위하여 그들의 관계의 도덕적 변화가 있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젊은 여자와 결혼하였으며 최근 순회 대회에서 그들은 둘이 다 여호와께 대한 헌신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버어마’: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는 어린 자녀들까지도 마음을 보호하고 성서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아버지가 회중의 장로인 여섯살 된 한 손녀는 며칠 동안 조부모와 함께 지내기 위하여 조부모 댁에 가 있었다. 점심식사를 위하여 상앞에 앉았을 때 이 손녀는 할머니가 준비한 음식에 통체로 구은 조그만 고기가 있음을 보게 되었다. 이 손녀는 “이 고기를 어떻게 잡았나요?” 하고 물었다. 이 손녀는 이 고기가 올바로 피를 뽑았는지를 알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할머니는 피를 빼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이 어린 손녀는 그러면 자기는 그것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 물론 조부모는 놀라서 왜 먹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이 여섯살 된 손녀는 “아버지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로 잡지 않은 고기는 먹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고 하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 어린 손녀에게 “그렇지만 아버지는 여기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먹어도 모를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어린 손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아버지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예요. 아버지는 여기에 계시지 않아서 보지 못하지만 제가 숭배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계시지요.” 이 대화는 이들 노인들에게 진리에 관심을 갖도록 길을 열어 놓았다.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가끔 그리스도인의 한 가정 내에서 진리에 대한 강한 반대가 있는 경우가 있다. (마태 10:36) 그러나 진리를 위하여 굳건한 태도를 가지고 영의 열매를 나타낸다면 그 사람의 행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빛나게 한다. 한 조그마한 마을에서 한 부인이 여호와의 증인과 함께 성서를 연구하게 되었고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다. 그 부인은 여호와께 헌신하고 물의 침례를 받을 때까지 이 일을 충실하게 해 왔다. 그러자 그 남편은 매우 반대하게 되었고 아내가 지역 대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여행 준비를 하자 그는 여비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대회에 참석하면 결혼 증서를 찢어 버리겠다고 하였다. 이 자매를 도와 준 근처에 사는 특별 ‘파이오니아’는 그가 대회에 참석할 수 있게 자기 월 수당의 반을 기꺼이 사용하였다. 이 부인이 돌아오자 남편은 매우 노하여 집을 나갔다. 그리고 다른 여자를 데리고 들어와 그의 첫째 아내와 함께 살았다. 이것이 그 자매에게 굉장한 감정적 압력이 되었지만 그 자매는 충실하게 남편에게 복종하면서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나타냈다.—베드로 전 3:1, 2.

마침내 남편은 둘째 여자를 내어 보냈다. 이렇게 한 후 그는 특별 ‘파이오니아’에게 아내의 충실한 인내가 자기로 하여금 그가 참으로 진리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를 받아서 주의깊이 연구하였다. 이제 이 남자도 아내가 나타낸 바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같은 성실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아내의 행실은 우리의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얼마나 빛나게 하였는가!

‘콩고’: 이 나라에 있는 형제들은 신권적 활동으로 가득찬 한 해를 보냈다. 그들은 전파 사업을 한 것 외에 여러 개의 왕국회관을 건축하였으며, 또 다른 왕국회관들은 완전히 새로 수리되었다. 이제 ‘브라자빌’에 있는 12개의 모든 왕국회관이 전등을 키게 되었고 11개 왕국회관에는 모두가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확성 장치가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와 발전으로 말미암아 이미 집회 참석의 증가가 현저하다.

‘콩고’에서 어느 젊은 여자가 하나님을 섬기려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수녀가 되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그 부모는 이 생각에 반대하였다. 나중에 그 여자는 ‘일군이 적다’는 성경 귀절을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마태 9:37) 그 여자는 사제들의 나쁜 행실과 교회 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보고 항상 슬퍼하였다. 어디엔가 더 나은 교회는 없을 것인가? 어느날 그 여자는 한 사람에게 종교에 관해서 더 배울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마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얼마 후에 그 여자는 종교 선생인 또 다른 이웃 사람에게 그것을 물어 보았다. 그도 역시 교회 상태에 매우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다. 진리를 발견하려는 노력으로 그들은 그 읍에 있는 모든 교회를 방문해 보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우선 여호와의 증인으로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왕국회관에 도착하자 그들은 매우 놀랐다. 그들이 이전에 이러한 후대를 받아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증인들은 참으로 우정적이고 따뜻하며 집회 자체가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집회가 끝나자 이 여자의 이웃 사람은 성서 연구를 요청하였고 둘이 다 「진리」 책을 받았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다른 교회를 방문할 필요가 없다는데 동의하였다. 그들은 진리를 발견하였고 그곳에 머물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이 여자는 매우 빠른 속도로 배웠다. 같은 주에 이 여자는 부도덕하게 동거하고 있는 남자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음행을 용납하시지 않으므로 동서하는 일을 중지해야겠다고 말하였다. 그 여자는 이 남자로 말미암아 한 아이를 갖기까지 하였다. 충격을 받은 그는 즉시 그곳으로부터 나갔다. 이 여자는 친구들과 자기의 큰 딸을 포함한 가족들에게 전도를 시작하였다. 이 열 네살 된 딸은 ‘가톨릭’ 교회에서 견진받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도 여호와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였다. 곧 이 어머니와 딸과 그 이웃 사람은 침례를 준비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충고를 적용시키는 것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하도록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다.

‘가봉’에서의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 전파 활동은 ‘콩고’에 있는 협회 지부의 지도를 받고 있다. 이 ‘아프리카’ 나라에서 사업이 금지되기는 하였지만 4월에 26명의 임시 ‘파이오니아’들이 있었다는 것은 매우 격력적이다. 이들 열심히 일한 형제 자매들은 야외 봉사에서 평균 111.6시간을 바쳤다. 이 훌륭한 일은 그들이 체포될 수도 있고 전도하는 것이 발견되었을 때 투옥될 수도 있는 상황하에서 수행된 일이다. 참으로 진정한 믿음이 필요하다!

이 나라에서도 말씀을 전파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예를 들면, 3명의 젊은 ‘가봉’ 여자들이 생활 수단으로 매음 행위를 하였었다. 성서의 도덕 표준을 알게 된 후에 그들은 성경 원칙과 일치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생활을 변화시켰다. 이것은 그들의 이전 생활 방식을 떠나서 더 힘든 세탁부와 같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들은 또한 이전에 성적 부정한 관계를 가졌던 남자들을 담대하게 물리쳐야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변화를 하였고 물의 침례로서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헌신을 상징함으로 이제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

‘키프로스’: ‘키프로스’에 ‘터어키’ 침공 후에 이 섬 남부에 있는 형제들은 북부로부터 피난 온 형제들을 도와야했다. 상당량의 헌 옷과 담요를 형제들에게 나눠줬다. 식품과 기타 필수품들이 그들을 위해 구입되었다. 지부 감독자는 이들 형제 자매들 중 아무도 천막에 거하거나 음식이나 옷이 부족한 일이 없으며 모두가 집에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고한다.

‘터어키’의 침공이 있게 되자 한 가족은 그들의 물건을 다 버리고 피난을 하였다. 부인은 임신 중이었으며 또한 1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애기가 있었다. 그들은 ‘라미솔’ 교외에 있는 조그만 집을 얻어 들기는 하였으나 아주 불행하고 절망적이었다. 그 어머니는 이러한 모든 재난들이 왜 인류에게 임하는지 궁금하게 생각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울며 세월을 보냈다. 1974년 10월에 한 젊은 여호와의 증인이 이 부인을 방문하게 되었고 세상 상태에 대하여 그에게 이야기하였고 「파수대」와 「깨어라!」지에 있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다. 후에 증인이 다시 방문하여 왕국의 희망에 관하여 설명해 주었다. 이 부인은 기꺼이 들었으나 이것이 올무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되었다. 그 부인은 한 두번 성서 토론을 하였다. 그 후 그 가족은 ‘리마솔’에 있는 더 나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 부인은 남편에게 “이제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을 피하게 되기도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무에게도 새 주소를 알리지 않고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사온 그날 아침 그들이 문을 열자 그들을 방문하던 같은 자매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바로 여호와의 증인 다음 집에 세를 들어 온 것이다. 사실상 그 여자는 자기 오른쪽 집과 왼쪽 집이 여호와의 증인의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다시 성서를 연구할 수 밖에 도리가 있겠는가? 이제 그 여자는 “나의 남편과 나는 1975년 순회 대회에서 침례를 받게 된 것을 참으로 기뻐한다”고 말하였다.

‘다오메이’: 호별 방문 전도 봉사를 하고 있던 중에 한 형제는 분명히 가족 싸움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젊은 부부를 만났다. 말할 허락을 받은 후에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에베소 4:26의 내용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연설을 계속하였다. 이 젊은 부부는 이 훌륭한 원칙을 배우게 된 것을 기뻐하며 바로 그날 왕국회관에서 있은 공개 강연 초대에 응하였다. 마침 연제는 결혼 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이것이 더욱 그들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실용적 가치를 인식하도록 도움이 되었다. 들은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들은 가정 성서 연구의 마련을 받아들였다.

불과 몇 주일 성서를 연구한 후에 그들의 생활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시킬 필요성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고 그들의 결혼 생활을 합법화시키기 위한 절차를 취하였다. 곧 아내는 야외 봉사에 참여하기 시작하였고 남편도 매우 훌륭한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 형제가 도움이 되는 성서의 충고를 보여 주므로 그들을 일깨워 준 것에 대하여 참으로 기뻐하고 있다. 이제 그들의 생활도 하나님의 말씀을 빛나게 할 수 있다.

이곳에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태 9:36) 어느 일요일 아침 ‘가톨릭’ 신자가 교회에 갔으나 사제는 참석자들에게 오늘은 설교를 준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그 사람에게 교회와의 최후의 인연이 되게 하였다. 그는 교회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얼마 동안 이 문제에 대하여 기도하였다. 그는 때때로 여호와의 증인과 이야기하던 일을 생각하게 되어 왕국회관에 나가 보기로 결정하였다. 이 사람은 집회에서 몇 형제들과 이야기를 하고 성서 연구를 시작하도록 하였다. 「진리」 책 2장이 끝난 후에 그는 교회에 탈퇴서를 보냈다. 사제는 그를 방문하였으나 이 관심자는 그 사제에게 자기는 33년간의 “굶주리고 목말랐”던 끝에 이제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연구는 계속되었다. 여러 주일 후에 그 사람은 연구를 사회하는 형제에게 자기는 부도덕한 일들이 자행되는 장소로 유명한 여관을 소유하고 있음을 말하였다. 그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형제는 그에게 관련된 성서 원칙을 보여 주었고 그 사람은 여관을 팔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얼마 후에 그 사업을 떠나서 깨끗한 양심으로 매우 심중하고 열성적인 전도인이 되었다. 이와 같은 생활의 변화를 하는 사람들은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고 있다.

‘엘살바도르’: 약 15년 전에 한 선교인은 왕국 소식에 얼마의 관심을 나타낸 한 부부를 만난 일이 있었다. 가정 성서 연구를 시작하려는 반복된 노력은 남편의 ‘트리오’ 연주자로서 세속 직업 관계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여러 해가 지났고 ‘트리오’ 연주는 번영하였으며 그들은 ‘댄스’, 연회, 및 기타 행사에서 연주하게 되었다. 그러한 생활을 함에 따라 그 남자는 더욱 세속적인 생활로 빠져 들어갔다. 이것이 그의 결혼 생활에도 문제를 야기시켰다. 명목상 ‘가톨릭’ 신자였지만 그는 항상 숭배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는 것을 중단하였다. 얼마 후에 그의 아내는 7개월간 ‘캐나다’에 있는 딸을 방문하기 위하여 그를 떠났다. 그 기간의 고독함은 그로 하여금 그의 생활을 반성해 보게 하였으며 목적의 결핍을 인식하고 영성이 부족함에 기인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기로 하였다. 그는 생전 처음 무릎을 꿇고 참 종교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바로 그날 아침 그는 여러 해 전에 자기를 찾아오던 선교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선교인의 종교가 무엇인지는 기억하지 못하나 그 선교인은 자기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여러 해를 거쳐서 그는 거리에서 이 선교인을 항상 만났었다. 매일 그는 그곳으로 가서 이 선교인을 만나려고 하였다. 네째날 마침내 그 선교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는 실제로 “부인, 부인” 하고 소리치며 그 자매를 불렀다. 이 자매는 희미하게 이 남자를 기억하였고 이 남자는 즉시 성서 연구를 부탁하였다. 그와 그의 열 여덟살 된 아들과 함께 연구가 시작되었다. 수개월 후에 이 남자의 아내가 남편과 아들로부터 그들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를 발견하였다는 편지를 받고 ‘캐나다’로부터 돌아왔다. 이 가족은 회중 모든 주간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성품이 곧 변화되었으며 그 아들은 침례를 받고 임시 ‘파이오니아’를 시작하였다. 부모는 전도 봉사에 활동적이 되었고 1975년 12월에 있을 지역 대회에서 침례를 받을 계획을 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여호와와 그의 길을 알게 된 특권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연발하고 있으며 그들은 이제 그들의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깃들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다.

한 여자는 어렸을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려는 욕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여자는 ‘가톨릭’ 지방에서 자라났으며 아무런 열매도 없이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하나님을 찾아 다녔다. 젊은 여자로서 자기보다 매우 연장자인 결혼한 남자와 살기 시작하였다. 그의 생활은 이 남자에 예속된 것이었다. 14년이 흘러갔다. 아직도 이 여자에게는 여호와를 알려는 욕망이 성취되지 않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 남자가 사망하였다. 그의 생활이 그 남자와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었으므로 그 여자는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 여자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때때로 그 여자는 불면증에 걸려 식욕도 없고 체중은 점점 줄어들었다. 생활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가 살려면 참 하나님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루는 이 여자가 성당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의 기도는 눈물로 변하였고 그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그 여자는 네시간이나 머물렀으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책방으로 가서 성서를 한권 구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을 주셨으므로 누군가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다니며 자기에게 성서의 신비를 풀어 줄 만한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어느날 저녁 이 여자는 이웃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집에 있자 어느 젊은 여자가 집 문을 두드렸다. 이웃 사람은 그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것을 알고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진리 탐구자는 문으로 달려가서 그 젊은 여자에게 “나로 성서를 이해하도록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과연 그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성서 연구가 매일 밤 사회되었다. 바로 그날 밤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 여자는 진리를 배우는 것에 굶주렸기 때문에 매일 열흘간 연구가 사회되었다. 하루하루 그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을 마셨다. 그의 생활은 변화하였다.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그 여자는 단잠을 잘 수 있었으며 구미를 얻게 되었다. 얼마 있지 않아 그 여자는 새 사람과 같이 되었다. 얼마 후에 그 여자는 침례를 받았으며,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찾고 있던 것을 마침내 발견하게 된 것이다.

‘피지’: ‘타이티’ 형제들에게 매우 흥분케 하는 일은 1975년 2월에 있었던 ‘엔. 에이치. 노워’ 형제와 ‘에프. 더불류. 프랜즈’ 형제의 방문이었다. ‘타이티’의 형제들의 유익을 위하여 집회가 마련되었지만 널리 광고되지는 않았으며 749명이 참석하였다. 다음날 저녁에 500명이 왕국회관에 모여 ‘노워’ 형제가 보이는 천연색 환등을 구경하였다. 이 방문 중에 ‘노워’ 형제는 ‘왙취 타워 협회’의 새로운 지부의 설립을 마련하였으며 1975년 4월 1일에 ‘타이티’는 ‘피지’로부터 분할된 새로운 지부가 되었다. 지부 감독자는 이렇게 말한다. “단지 16년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세 가족이 더 크게 필요한 곳에서 봉사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이사온 이래 ‘타이티’에서 봉사가 시작되었고 그때 이래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성취이다.”

지부 감독자는 이렇게 계속한다. “‘피지’가 감독하고 있는 9개 나라들 중 하나를 잃자마자 다른 한 나라가 추가되었다. ‘서부 사모아’ 북쪽으로 430‘키로미터’ 떨어진 곳인 세 조그마한 산호초로 이루어진 ‘토켈라우’ 제도로서 인구 2,000명이 있는 곳이다. 이 섬들 가운데 두 섬에 전도인들과 관심자들로 이루어진 두개의 조그만 집단이 있다. 이곳에서 어떻게 봉사가 시작되었는가? 이 지방에 있는 두명의 의사가 ‘피지’에서 의과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 진리를 받아들였고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집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젊은이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진리의 지식을 알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렇게 해서 왕국 소식은 이 세상 구석구석에 전파되고 있다.

당신은 현대 도시에 침실이 다섯개 있는 편리한 집을 떠나서 아내와 여덟 자녀를 데리고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개발되지 않은 섬으로 이사해서 더 크게 필요한 곳에서 기꺼이 봉사하겠는가? 1973년에 ‘통가’ 제도의 시민인 ‘데이비드 월프그람’ 형제가 이러한 질문을 하였었다. ‘월프그람’ 형제가 “나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한가?”라는 집회를 다루었을 때 그는 자기의 책임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월프그람’ 가족은 ‘통가’로 이사 와서 그곳에서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있는 집단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그들은 150여개 섬으로 그들의 활동을 추진시키는 데 참여해 왔다.

‘프랑스’: 1975년은 ‘프랑스’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역사 가운데 기념할 만한 해가 될 것이다. 가장 기억할 만한 일은 「파수대」 금지령이 22년 만에 해제된 것이다. 여러 해를 통하여 이 금지령 해제를 위해서 노력하였지만 지금까지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였었다.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이 있은지 수주일 후에 ‘프랑스’ ‘여호와의 증인회’는 대통령에게 (1974년 6월 10일자) 직접 편지를 보냈다. 그것은 「파수대」 금지령을 해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 회는 그 문제가 검토될 것이라는 회신을 받았다. 마침내 ‘프랑스’ 공화국 보도국은 1952년 12월 19일자로 「파수대」의 배포 판매를 금지한 명령을 1974년 11월 26일자로 해제령을 내렸음을 1974년 12월 1일자로 발표하였다. 그리하여 ‘프랑스’ 형제들은 1975년 1월 1일호 「파수대」 ‘프랑스’어 판을 개인 연구와 집회의 연구를 위하여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수주일 후에 그들은 이 잡지를 호별 방문에서 제공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얼마나 행복하였는가!

이 즐거움에 더하여 1974년 12월에 ‘프랑스’에서 1,000번째 회중이 조직되었다. 1975년 5월에는 ‘프랑스’에서 64,091명의 전도인의 신기록을 달성하였다. “하나님의 주권” 대회가 연도말에 개최되었으며 ‘프랑스’에서 개최된 17개 대회의 총 참석수는 82,349명에 달하였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점령된 월남은 이제 협회의 ‘파리’ 지부 감독하에 있게 되었다. 우리가 알기로는 약 100명의 형제들이 ‘사이공’에 남아 있다. 지난 해를 회고해 볼 때 여호와의 증인들 모두는 그 나라에 있는 동료 신자들에게 전능하신 우주 주권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보호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4월에 그 나라를 점령하기 전에 월남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6개월간의 연속적인 전도인 신기록을 경험하였다. 그들은 120명의 좋은 소식의 선포자들의 신기록에 이르렀다. 세개의 회중이 지부와 선교인 집에서 집회를 열었다. 일요일 평균 집회 참석자는 180명에 이르렀다. 지난 봉사년도 중에 ‘사이곤’에서 지역 대회가 열렸다. 공산주의자가 점령하기 전에 ‘노워’ 형제의 ‘사이곤’ 방문은 그 해의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그때에 그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수행하는 일들에 관한 환등을 보여 준 다음 매우 격려적인 연설을 하였다.

‘사이곤’이 함락된 후 지방 형제들과의 모든 통신은 끊어졌다. 그들은 전년에 좋은 충고와 성경적 도움을 받았으므로 우리는 그들의 믿음이 들어날 것을 확신한다. 처음으로 선교인들의 도움 없이 전파하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상황을 아시고 계시며 우리는 여호와께 충실한 자들을 계속 보호하시고 돌보실 것을 확신한다.

월남을 철수할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나라들 특히 미국으로 왔다. 한 선교인 부부가 월남을 빠져나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피난민 수용소 중 하나에서 지금 전도하고 있다. 그들은 ‘사이곤’에서 알던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이들 선교인들은 천막들을 방문하여 듣는 귀를 가진 사람들에게 성서 진리를 전하고 있다. 정기적 회중 집회가 한 피난민 수용소에서 열리고 있다. 전세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틀림없이 월남에 있는 그들의 형제들을 위하여 계속 기도할 것이다.

‘온드라스’: 1974년 9월 18일은 ‘온드라스’에 재난이 있었던 날이다. 태풍 ‘피이피이’호의 내습은 그 나라 역사상 가장 심한 천재였다. 수시간 사이에 약 1,600명의 형제들—(그 나라의 증인 전체의 3분의 2)이 재난 지구에 갇히게 되었다. 태풍은 통신, 도로, 교량, 집들을 파괴하여 잔해만 남게 하였다. 참으로 큰 재난이었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지방 증인들과 다른 나라에 있는 동료 신자들로부터 사랑의 구조의 손길이 뻗쳐왔다. 수시간 내에 그리스도인 사랑이 나타났으며 ‘온두라스’ 여러 곳으로부터 구호품이 도착하였다. 그달이 지나기 전에 63,000‘파운드’의 공급품이 가난한 형제들과 가족 및 벗들에게 공급되었다.

11월 6일 수요일에 ‘온두라스’의 형제 자매들과 관심자들은 태풍으로 인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가장 심하게 태풍의 피해를 입은 지역 한 복판에서 열린 하루의 순회 대회에 모였다. 그날 저녁에 4,000명이 참석하였다. 그들은 물질적인 것을 회복시키는 데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영적 양식을 필요로 하였다. 감정이 높이 솟았으며 우리 형제들은 그들 주위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만나고 그들의 소식을 듣자 눈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많은 형제들은 수천명이 사망하였고 심하게 파괴된 여러 읍과 마을에서 왔지만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가 살아서 보존되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태풍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잃은 증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든 형제들은 그들에게 나타낸 사랑에 대해서 감사하였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에서의 여호와의 증인들의 건실한 활동은 종교 지도자들의 분노를 사게 하였다. ‘모슬렘’ 교도들은 호별 방문 전도를 “가택 침입”으로 간주한다. 명목상 그리스도교 교직자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혼란을 일으키려고 다닌다고 말한다.

끊임없는 압력으로 말미암아 지방에 따라 조직을 금지하거나 적어도 호별 방문 전도를 포함한 제한을 한 지방들이 있다. 이제 정부는 서적을 가지고 호별 방문 하는 것을 금지하였으며 또한 이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였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새로운 사태에 순응하고 있다. 그들은 전에 관심을 나타냈던 모든 사람들을 찾아가며 우연한 기회에 증거를 하고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한 다른 방도를 취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경험은 참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커다란 믿음을 나타내야 함을 증명한다. ‘파이오니아’ 부부가 저녁 성서 연구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자매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자매는 상당한 양의 피를 흘렸으며,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의사들은 정맥 주사를 놓았으며 즉시 수혈을 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고 애기가 태안에서 사망하였기 때문에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였다. 이 부부는 수술에 동의하였으나 수혈은 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였다. 그러나 의사들은 그러한 것은 의학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거절하였다. 이 ‘파이오니아’ 부부는 다른 병원으로 갔다. 여기에서도 그들은 같은 이유로 거절당하였다. 그들은 세째 병원으로 갔으며 의사는 즉시 수혈을 하지 않으면 그는 죽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아내는 그들의 입장을 고수하고 하나님의 법을 범하기보다 죽는 편이 낫다고 설명하였다. 의사들과 병원 직원들은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믿음에 놀랐다. 그러나 그들은 노해서 그런한 종교를 욕하며 도움을 베풀기를 거절하였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병원 침대에 누어 있는 동안 이 자매는 기도하였고 그 남편도 여호와께 도움을 간구하였다. 그날 밤 병원에서 이 산모는 병원 직원의 아무런 도움도 없이 사망한 애기를 출산하였다. 다음날 아침 의사들은 산모가 아직도 살아 있고 출산한 것을 보고 놀랐다. 한 의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산모의 강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께서 죽음으로부터 그를 구하기 위해서 행하신 기적이다.” 불과 한달 반만에 그 자매는 다시 전 시간 전파 활동으로 돌아왔고 7월에 열린 지역 대회에 남편과 함께 참석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라 하리라]”는 1975년 연표어를 생각나게 한다.—시 91:2.

‘이스라엘’: 많은 문제들이 있는 이 나라는 회중 발전에 또 다른 현저한 해를 즐겼다. 그들은 전도인 21‘퍼센트’의 증가를 하여 1975년 4월에는 263명의 신기록을 달성하였다. 기념 축하에는 444명이 참석하였다. 이 수자는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큰 것이 아니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하에서 발전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지부는 전과 기록을 가지고 있는 한 젊은이에 관한 경험을 보고한다. 그의 고모는 한 회중과 연합한 자매이다. 이 자매는 가끔 이 젊은이에게 증거하였으나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어느 날 그는 방문 중인 지구(地區) 감독자의 강연에 참석하는데 동의하였다. 그 연설에 그는 매우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곧 가정 성서 연구 제안을 받아들였으며 그의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이 어찌나 컸던지 그는 이전 생활 방식을 떠나서 야외 봉사에 활동적이 되었고 여호와께 헌신하였다. 그의 사생활에 일어난 큰 변화는 또한 그의 결혼생활을 구하였다. 그와 그의 아내는 의견 대립 때문에 이혼 단계에까지 이르렀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둘이 다 좋은 소식의 전파자들이 되었으며 성서 원칙에 따라 생활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 회중의 행복한 성원들이 되었다.

지난해에 ‘이스라엘’에서는 중립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으며 형제들은 그들의 그리스도인의 입장으로 말미암아 형 언도를 받고 복역 중에 있다. 그들의 가족들은 생계의 길이 막히는 일이 있다. 이러한 젊은이들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중 형제들은 이들 가족들에게 도움을 베풀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었다. 이들 투옥된 형제들 중에 얼마는 장로들, 혹은 봉사의 종들이었다. 회중 성원들은 이러한 지위를 또한 채웠다. 그러므로 이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봉사년도를 통하여 훌륭한 발전이 유지되었다.

‘레바논’: 이 세상 다른 여러 곳에서와 만찬가지로 ‘레바논’에서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1975년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에 이른 지금까지 수도 ‘베이루트’와 그 근처에서 정적들 사이에 심한 싸움이 있었다. 이 도시 전역에서 밤낮으로 폭탄이 터지고 기관총이 난사되는 데도 물질적인 것을 상실한 일은 있지만 여호와의 백성 중 아무도 사상자가 있었다는 보고는 없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심한 전투가 있는 지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총탄과 ‘로케트’ 공격을 통하여 간신히 도피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한 집회 장소는 심하게 파손되었고 회중은 의자들과 다른 물건들을 잃었다. 때로는 전투가 밖에서 치열한 동안 가족 단위로 집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두는 이 연속적인 혼란기를 통하여 영적 양식을 공급받고 있다. 전파 활동 역시 형제들이 무서움에 질린 이웃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그리고 전쟁이 다시는 없을 때에 관하여 전해줌으로써 수행되고 있다.

얼마 전에 ‘시리아 알렉코’에 있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한 위원회는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을 반대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기 위하여 모임을 가졌었다. 많은 토론이 있은 후에 한 연로자는 증인들에 관하여 여러 가지 상반된 생각들이 있는 것 같다는 견해를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위원 중 몇 사람이 그들과 직접 이야기해 봄으로 그들이 믿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아 보는 것이 공정한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는 이 생각을 적극 반대하였다. 그러므로 이 신사는 그들이 위원 중의 얼마를 임명하기를 원치 않으므로 자기 자신이 그렇게 해 보기로 하였다.

1년이라는 기간을 걸쳐서 증인들과 여러 번의 토론을 한 끝에 그는 교회 위원에게 여호와의 증인에 대하여 반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여호와의 증인들로부터 배워야 하고 그들의 일을 도와 주어야 하겠다고 말하였다. 이것으로 그는 위원회에서 추방당하기에 충분하였다. 이것은 지금까지 여러 해를 교회에 바쳐온 봉사를 고려할 때 큰 충격이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증인들의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회중 내의 감독의 직책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참다운 형제애와 협조가 어떠한 것인가를 보았다. 그는 곧 좋은 소식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는 왕국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하여 이전 교회 친구들을 방문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가족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더욱 반대와 박해를 받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확고하였으며 최근에 하나님께 헌신을 상징하는 침례를 받았다. 이 사람은 노년에 여호와를 기쁘시게 섬기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을 참으로 행복하게 여기고 있다.

‘말레이지아’: 이곳에 있는 많은 젊은 형제 자매들은 진정한 인내를 나타내고 부모로부터 심한 반대를 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17세와 18세된 친 형제는 그들의 할머니의 사망과 관련된 이교 관습과 의식에 참여하기를 거절하기 때문에 심한 반대를 경험하였다. 이 소년들은 매를 맞고 다리를 부러뜨리겠다는 위협과 집에서 쫓아내고 소년원에 감금시키겠다는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타협하지 않았다. 이 소년들의 두 친구들 역시 괴롭힘을 당하였다. 그들의 부모는 이따금 왕국회관에 와서 모인 형제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며 한번은 두 소년을 끌어 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들 네 소년들은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였으며 야외 봉사에 참예하였다. 이들은 이따금씩 주먹으로 맞고 발길질을 당하고 심한 학대를 받지만 잘하고 있다. 그들은 매 집회를 위하여 철저히 준비하며 자주 해설에 참여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볼 수 있는 열심과 성실을 나타내고 있다. 기쁜 일은 그들의 친 형제 자매들 중 얼마가 이제 진리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모잠비크’: 1975년 6월 25일에 ‘모잠비크’는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였다. 이 때 축제 정신은 온 나라를 덮었으며 어느 곳에 가나 “비바 프렐리모!”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러한 국가주의 감정이 있게 되면 중립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일어난다.

‘말라위’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리스도인 중립을 지키기 때문에 즉 정당 가입을 거절하기 때문에 ‘말라위’로부터 도망하여 ‘모잠비크’ 서부 국경 지대의 여섯개의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제 본국으로 송환되고 있다. 이들 중 얼마는 ‘트럭’에 실려 ‘말라위’ 국경으로 보내졌으며 거기에서는 ‘말라위’ 중부 지역 지방 장관이 “환영” 연설을 하였다. “그대들은 자의로 ‘말라위’를 떠났다가 이제 자의로 돌아오고 있다. ‘말라위’의 의회당인 여당은 아직도 존재한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대들의 지방 당 간부들과 협조하도록 하라.”

‘모잠비크’로부터 ‘말라위’로 송환되는 이 일은 8월 19일에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1975년 봉사년도가 마칠 때에는 수천명의 우리의 ‘말라위’ 형제들은 고향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 중 얼마는 320‘킬로미터’ 혹은 그 이상을 걷지 않으면 안되었다. 고향에 도착하자 많은 형제들은 고향 사람들이 정당 간부들의 보복을 두려워서 도움을 베풀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한 지방에서는 모든 당 대표자들에게 회람을 돌려서 여호와의 증인들이 당원증을 살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한, 그들을 마을에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였다. 많은 경우 그들은 안전을 위하여 산속으로 도피해야 하였다. 그들 중 얼마는 타협을 거절한다는 이유로 심한 매를 맞았다. 다른 보고에 의하면 같은 이유로 형제들 중 얼마는 옷을 벗기우고 나체로 마을 사람들 앞에 끌려 다녔다고 한다. 다만 여호와께서만 우리의 송환된 ‘말라위’ 형제들에게 ‘피할 길을 주실 수 있’다. (고린도 전 10:13) 그들은 모국에서도 원치 않고 ‘모잠비크’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들이 갈 곳은 아무데도 없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연합하고 있으며 2천여명이 지난 해에 침례를 받았다.

지난해에 협회는 ‘모잠비크’ 북부 수용소에 있는 우리의 ‘말라위’ 형제들에게 많은 도움을 계속 베풀어 왔다. 1975년 6월까지 20만 ‘달러’(미화) 이상을 그들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가장 많이 사용된 단일품목은 식량이었다. 20‘톤’의 의류 중 대부분은 남‘아프리카’로부터 우송해서 이들 형제들에게 공급되었다. 그들에게 또한 의약품이 공급되었다.

그뿐 아니라 협회는 ‘신얀자’어로 「진리」 책과 역시 ‘신얀자’어 「위대하신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음」 책을 수용소 안에 있는 매 전도인이 각 1부씩 무료로 받도록 마련하였다. 또한 그들에게 정규적으로 「파수대」지가 무료로 공급되었다. 우리의 피난 형제들은 이러한 구호품들을 갖게 된 데 대하여 전세계에 있는 형제들에게 그들의 사려깊음과 관대함에 대해서 매우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상태는 매우 심각하며 형제들 대부분은 갈 곳 없이 할 수 없이 ‘말라위’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말라위’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야고보 5:16-18.

‘노르웨이’: 우연한 증거는 결과를 얻는다. 한 순회 감독자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기차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 한 젊은이가 앉아서 정치 서적을 읽고 있었다. 이 형제는 이 청년에게 정치가 세계를 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 청년은 이 세계는 어떠한 수단으로서도 구함을 받을 수 없다고 믿는다고 말하였다. 이 형제는 그에게 성서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이 청년은 ‘마곡’의 ‘곡’, 「계시록」에 나오는 음녀 등등에 관하여 많은 질문을 하였다. 그는 주의 깊이 들었으며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하였을 때에 주소를 교환하였다.

다음주 이 청년은 40‘킬로미터’나 떨어진 ‘오슬로’에 있는 지부 사무실에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8권의 서책을 받아갔다. 계시록 17장의 뜻을 읽고 나서 그는 국교회에 가서 탈퇴서를 제출하였다. 이 젊은이와 성서 연구가 마련되었다. 그는 자기 가족에 대한 염려를 진정으로 나타내고 그들과 다른 친척들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여러 번 집으로 다니러 갔다. 그의 친형제와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그는 현재 훌륭한 발전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4개월 동안에 일어났으며 이것은 복음 전파자의 정신을 나타낼 필요가 있음을 잘 증명하는 것이다.

‘파키스탄’: 28년간 ‘파키스탄’에는 전도인이 있었다. 비교적 새로운 이 나라는 1947년 8월 15일에 탄생하였다. 그때부터 두명의 선교인과 여러 명의 다른 형제들이 이 나라의 6천 6백만 인구에게 부지런히 봉사하였다. 난관이 많지만 전도인들의 즐거움은 이 ‘모슬렘’ 나라의 발전과 함께 뚜렷하다. 당신이 여러 해 동안 열정적으로 일을 계속해 왔다면 전국에서 1년 동안에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이 26명이라는 것을 알 때 말할 수 없이 기뻐하지 않겠는가? ‘파키스탄’에 선교인들과 ‘파이오니아’들 및 회중 전도인들은 이제 184명의 전도인 신기록을 갖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다.

정부에서 일하는 한 여인이 진리를 배워서 침례를 받게 되었다. 지난해의 계약 기간이 끝나자 한가지 질문이 생겼다. ‘나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더 크게 필요한 곳에서 계속 봉사해야 할 것인가?’ 이 여자는 직장을 그만두고 그가 진리를 배운 회중에 머물기로 하였으며 이제 정규 ‘파이오니아’로서 등록되어 있다. 전국에 걸쳐 다섯 회중 밖에 없는 이 나라에서 ‘파키스탄’의 형제 자매들은 전년의 최고 17명에 비해 1년에 26명의 새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생겨나게 된 것을 참으로 기뻐하고 있다.

‘자이레’: 이 나라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 대부분에서는 그리 박해가 있지는 않지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상당한 난관이 있다. 대회가 열릴 수 없다. 회중 집회들은 흔히 지방 당국에게 주목을 받고 있으며 증인들은 공개적 전파를 막기 위한 위협을 받고 있다. 형제 자매들이 중립을 지키기 때문에 일부는 직장을 잃었고 구타와 투옥을 당하는 경험을 하였다. 그들의 자녀들은 학교로부터 퇴학을 당하였다. 이러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왕국 전도인들은 실망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전도 활동을 늦추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이레’에서는 1975년에 이전 어느때 보다도 더 큰 증거 활동이 있었다.

전세계: 당신의 편의를 위하여 전세계의 왕국 전파 연례 보고가 20-27면에 실려 있다. ‘왙취 타워 협회’ 모든 지부가 가나다 순서로 열기 되어 있으며 각 지부 밑에 있는 여러 나라들이 실려 있다. 이것은 참으로 격려적인 보고이다. 이 보고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도하셨음과 지난 1975 봉사년도에 거대한 증거가 이루어졌음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왕국의 좋은 소식을 알릴 특권을 즐긴 사람들은 2,179,256명으로서 이 수자는 지난해에 하나님의 왕국을 광고한 사람들의 수보다 157,824명이 더 많은 수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알지 않으면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라고 선언하셨다. (마태 24:14, 신세) 그러므로 이 좋은 소식의 세계적 전파는 부지런히 행해지고 있으며 이들 여호와의 종들은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데 382,296,208시간을 사용하였으며 이것은 전년보다 일천 일백만 시간이 더 많은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또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알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읽을 것을 남겨놓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전세계에서 지난 12개월 동안 그들은 야외 봉사에서 28,410,783부의 서책과 성서 및 12,163,807부의 32면 혹은 64면 소책자와 「파수대」와 「깨어라!」 잡지 2,111,730건의 예약 외에도 293,705,005부를 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서적을 전하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러한 서적을 읽고 그리스도인의 출판물의 도움으로 성서를 연구하도록 격려하고 재방문한다. 사실상 여호와의 증인들은 매주 관심자들의 가정에서 1,411,256건의 가정 성서 연구를 사회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 봉사년도에 155,336,481건의 재방문을 하였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하여 얼마나 놀라운 노력을 바친 것인가!

여호와의 증인들이 왕국 전파를 하는 일을 돕기 위하여 미국, 독일, ‘필랜드’, 및 희랍에 있는 그들의 인쇄 공장과 그외 다른 나라들에 있는 인쇄 공장에서 그들은 63,305,420부의 서책 및 성서와 513,705,582부의 「파수대」 및 「깨어라!」 잡지 그리고 22,190,340부의 소책자를 생산하였으며,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기를 원하는 모든 나라 사람들이 이러한 출판물의 도움으로 그렇게 할 수 있게 하였다.

전세계에는 평균 2,456명의 ‘펜실베이니아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선교인이 있으며 그들은 15,734명의 특별 ‘파이오니아’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이들 특별 ‘파이오니아’들은 매달 전도 봉사에 150시간을 바치고 있다. 이 외에 또 114,491명의 정규 및 임시 ‘파이오니아’들이 야외 봉사에서 한달에 100시간 정도로 바치고 있다. 12개월을 통하여 매달 평균 야외 봉사에서 10-20시간을 사용한 회중 전도인들이 1,932,224명이 있었다. 이 훌륭한 일군들을 합치면 매달 야외에 나간 평균 전도인은 2,062,449명에 달한다. 지난 봉사년도에 어느 한달에 있었던 최고 전도인 수는 2,179,256명이었다.

1975 봉사년도 중 여호와의 증인들은 295,073명이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하고 그 헌신을 상징하기 위해 물 침례를 받는 데 필요한 일들을 돌보아 줄 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 210개국에 있는 38,256회중과 연합하여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이들 만이 아니다. 매년 주의 만찬 즉 기념일 축하 때에는 그들이 사회하는 성서 연구생들 중 많은 사람들과 다른 관심자들이 여호와의 증인들과 함께 전세계에 있는 그들의 왕국회관에 모인다. 1975년 3월 27일 저녁 6시 후에 4,925,643명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함께 모였다. 이것은 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형주에 달리신 예수의 죽음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의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하여 그들은 여호와와 그의 아들의 약속된 새 질서에서 그들에게 생명의 축복을 가져다 줄 하나님의 수단인 왕국에 대한 실패하지 않는 믿음을 실천해야 한다.

전세계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지상 나라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 예수께서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다. (마태 10:22) 이것이 사실이지만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그들이 박해를 당할 것을 알고 있으며 그들은 “너희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희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라”는 성서의 말씀을 믿고 있다. (시 55:22) 그러므로 이들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있지만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그들은 우주의 주권 통치자 여호와 하나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분의 편에 굳게 서 있다. 예수께서는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요한 16: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은 성실하게 걸어가고 여호와의 위대하신 이름을 선양할 헌신한 목적으로부터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에 제자를 삼는 일이 ‘포르투갈’에서 지하 활동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행하여졌다. 정부가 여호와의 증인을 그 나라의 종교 단체로 인정한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여호와께 감사한다. 희랍에서도 좋은 소식을 선포할 수 있도록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더 큰 자유가 주어졌다.

여호와의 백성이 여러 나라에서 박해를 받고 있지만 그들은 중단하지 않았다. 심지어 철의 장막 배후와 다른 난관이 있는 여러 나라에서도 177,861명의 왕국 전도인들이 있다. 이것은 지난해보다 8.8‘퍼센트’의 증가이다. 그것은 1975 봉사년도 중 매달 평균이다. 그들이 달성한 전도인 신기록은 185,804명이었다. 그들은 지하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공산주의 나라들과 이미 금지 상태에 있는 여러 나라에서 비교적 잘 숨겨져 있으며 이러한 나라에서 기념식에는 291,460명의 참석자가 있었다. 잠간 생각해 보라. 지난해에 이들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나라에서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데 19,003,812시간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왜냐 하면 지금은 전세계에 왕국을 전파할 하나님의 때이기 때문이다. 상태가 그들에게 악화될지 모르지만 또한 이 세계 나라들에게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이러한 나라들은 하나님과 그의 주권에 대항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만이 인류에게 유일할 희망이라는 것을 거절한다. 그 결과는 모든 나라들과 그들의 종교 제도에게 이 현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멸망이 임할 때 큰 환난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왕국의 이 좋은 소식이 모든 나라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땅의 모든 거민에게 전파될 것이며 그 다음에 끝이 올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마태 24:14) 그것은 현 사물의 제도의 끝을 의미한다.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천년 통치가 뒤따를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해 온 그 메시야 왕국이다. (마태 6:10) 그러므로 그날이 오기까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에게는 할 일이 있고 하나님의 지도 아래 그들은 그 일을 계속할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께 온 땅에 왕국 소식을 선포할 특권을 받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실로써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할 수 있음을 기뻐한다. (디도 2:10) 박해와 기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75 봉사년도 중 이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데 여호와 하나님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한 단체로서 함께 일해 온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20-27면 도표]

1975 봉사년도 보고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