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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리라’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예수께서 누가복음 11:28에 있는 이 말씀을 하실 때, 그분은 시편 112:1에 있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한 말씀을 염두에 두고 계셨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아버지의 계명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일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셨다. 여러 세대를 통하여 여호와의 순종적인 종들은 여호와의 율법과 그분의 명령과 계명과 규례를 지키면 “상이 크”다는 사실을 인식해 왔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이 그분을 대표하게 된 특권에 대하여 크게 감사하고 있다. 그분의 말씀은 그들의 귀에 항상 즐거우며, 그들은 단호한 태도로 그 말씀을 고수하고 귀중히 여긴다.—디모데 전 1:11; 6:15; 시 19:7-11.

여호와께서 ‘모세’의 율법하에 설정하신 마련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 역할을 하였다. (히브리 10:1) 그 요구 조건들을 따르던 사람들은 여호와로부터 축복을 받았으며, 그들은 장차 올 축복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독립적인 행로를 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우리의 첫 조상과 같은 태도를 나타내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들었어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 (히브리 3:18, 19) 예수께서는 그들의 태도를 한마디로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마태 13:15; 이사야 6:10) 반복해서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그들에게 상기시키셨다. 예를 들어, 그분은 자기의 예언자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48:17, 18.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그분은 그리스도교 마련을 설정하셨다. 그분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고착하는 사람들만이 참으로 행복할 수 있음을 아셨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 밤,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 가운데서 그분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얻는 것이 생명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임을 말씀하셨다. (요한 17:3) 성서에 들어 있는 그 지식은 실로 생명을 주는 지식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령을 사용하시어 그것을 기록시키셨기 때문에 그것은 신뢰할 수 있다. 그것은 무한히 가치있는 것이다. 역사가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사람들은 생명을 걸고 그것을 번역하고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것을 보존하였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종종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모든 민족과 방언의 사람들에게 그 말씀을 전하는 일을 위해 전념해 왔다.

고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의 호소에 무관심하다. 또 다른 사람들은 성서를 기피하거나 성서의 배부를 공공연히 반대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데서 그들은 행복을 맛보지 못하며, 오히려 불행을 맛보게 된다. 이러한 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옹호하는 그들의 즐거운 일을 계속 수행해 왔다. 그들은 단순히 말씀을 읽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주신 자신의 계시 가운데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라].”—계시 1:3.

성서에 기초한 조직

제자 ‘야고보’는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혹시 ‘이스라엘’ 백성의 그릇된 행로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 무관심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 1:22)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함으로써만이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명할 수 있다. ‘마게도니아’의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였으며, 그리하여 ‘누가’는 그들을 ‘마음이 넓은’ 즉 고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 묘사하였다. “그곳[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마음이 넓어서 열심히 말씀을 받아들였으며, 그것이 다 사실인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자세히 공부했읍니다.” 그들은 연구생들이었고 탐구자들이었다. 그들은 「히브리어 성경」이 자기들이 들은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지 알아 보기를 원하였다. 그들은 모두가 따를 만한 훌륭한 본을 세웠다.—사도 17:11, 새번역.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러한 훌륭한 본을 따른다. 그들은 현대의 ‘베뢰아’인들, 즉 성서 연구생들이다. 그들이 열성적으로 성서 연구를 하였기 때문에 한 때는 실제로 “성서 연구생들”이라고 불리운 적도 있었다. 1931년에 성경적인 이름인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름을 채택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러한 이름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여전히 “날마다 성경을 자세히” 공부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명령하신 일 즉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고 예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며, 누구에게든지, 그리고 기회가 그들에게 좋든 나쁘든 모든 적절한 기회에 여호와의 말씀을 부지런히 전파한다.—마태 28:19, 20; 디모데 후 4:2.

‘여호와의 증인’의 조직은 참으로 성서에 기초한 조직이다. 과거 일백년 동안, 그 조직은 생명의 말씀을 전파해 왔다. 그 조직은 진리로부터 이탈한 일이 없다.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진리를 믿는 체만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고, 여러 가지 박해가 그들 위에 쏟아졌지만 진리를 활동적으로 옹호해 왔다. 그동안 그들은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고착하였기 때문에 혼란된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것처럼 ‘세계에 구경거리’가 되어 왔다.—고린도 전 4:9; 사도 17:6.

‘여호와의 증인’들은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으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다.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이 사람들에게 “무기력”하고 ‘믿기 쉬운 종교’를 제공해 온 것과는 달리, 그들은 성서 진리에 물을 타지 않았다. (고린도 전 15:58; 고린도 후 11:14, 15)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제공하는 것이란 눈가림이요 겉치레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들의 눈을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에 돌린다. 왜냐 하면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린도 후 4:18) “보이는 것” 중 어떤 것은 바람직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은 ‘사탕발림’을 한 것일 것이다. 사람들은 유용한 것을 쉽게 얻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 예수께서는 “보이는 것”으로 시험을 받으셨다. ‘사단’은 자기에게 한번만 경배를 한다면 “천하 만국”을 주겠다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단호히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고 대답하셨다. 예수께서는 그 시험의 성격 즉 그것이 그로 하여금 거룩한 봉사 및 아버지와 가지는 귀중한 관계를 타협시키려는 술책임을 올바로 인식하셨다. 성실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현재 동일한 이해를 가지고 유혹을 직시해야 한다.—마태 4:8-10; 요한 1서 2:15, 16.

자, 주위를 돌아 보라. 무엇이 쓸모있는 것인가? ‘사단’이 유혹물로 제공하는 것이 무엇인가? ‘여호와의 증인’들을 거룩한 봉사로부터 이탈시킬 수 있기 때문에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한 가지는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다. 현재 ‘여호와의 증인’이 된 어떤 사람들은 한때 세상의 길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들은 소위 ‘좋은 세월’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면 이러한 과거의 인생 행로를 경멸해야 할 일로 보게 된다.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베드로 전 4:3.

이전의 세상 벗들은, 과거에는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민족하던 사람이 이제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일에 종사하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러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여, 그들에게 유익한 생명의 소식에 그들의 귀를 닫아 버린다. ‘베드로’는 이렇게 부언하였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느니라].” (베드로 전 4:4; 갈라디아 4:9)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 가운데서 그가 얼마나 많은 벗들을 얻게 되는지 보라! 더 이상 세상과 한 무리가 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새로이 발견한 여호와 및 그분의 가족과의 귀중한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지 않는다.—마가 10:30; 베드로 전 1:22; 빌립보 3:12-16.

여러 세기 동안 즉 ‘아담’과 ‘하와’가 유혹자의 충동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며 그것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행복을 상실한 때에 이르기까지 내내 여호와의 이름이 모독을 받아왔다. 특히 이것은 그분께서 자기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으로 삼기 위해 선택된 자들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출애굽 6:7)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기의 이름을 무가치하게 또는 헛되이 취급하여 그로 말미암아 그분과 그분의 이름에 모독을 가져오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명하셨다. 이 명령에 불순종한다면 무시무시한 결과가 그들 위에 닥칠 것이었다. (출애굽 20:7)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였느니라].”—예레미야 7:25, 26.

드디어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천적 아들을 보내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의 행동을 보고 마음 아파하셨다.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생활하셨으며, 인간으로서의 생애가 끝날 때가 가까와졌을 때, 그분은 자기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고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분은 자기 아버지를 대신하여 종교적인 반대자들에게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누가 13:34, 35)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함께 배척하였다. 그들은 그 아들에 대한 행위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자기와 자기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경멸한다는 점을 인식하셨다. 그분은 한 비유에서 “한 사람”(여호와)이 회계하기 위하여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면서,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고 말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상속자인 그 아들을 보고 “자 죽이자”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그를 실제로 죽였다!—마가 12:1-11.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지키’는 데 동의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회중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제 ‘이스라엘’이 여호와와 그분의 이름에 불경을 나타낸 것을 보아 온 이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어떻게 행할 것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지지하며, 여호와를 크게 모독하는 ‘사단’ 마귀에게 여호와께서 대답할 수 있으시게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하셨다.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겠노라.” (잠언 27:11) 증명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채택한 남은 자들만이 그러한 대답을 할 근거를 제시하였다. 여호와의 이름에 모독을 돌리지 말라는 명령은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들에게도 동일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을 기뻐한다.

오늘날 거의 전세계적으로 성서의 하나님은 인류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름은 저속하게 사용되고 있다.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서는 일종의 신화이며 아동들을 위한 ‘재미있는 이야기 책’에 불과하다. 그러나 거기에 들어 있는 예언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성서를 연구하고 그것을 ‘진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데살로니가 전 2:13.

올바른 동기

오늘날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은, 우주의 하나님께 그처럼 불명예가 돌려지고 있는 판국에도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성서적인 명칭을 기꺼이 채택하였다. (이사야 43:10) 그들의 생의 목표는 그 거룩한 이름을 지지하는 것이다. 설령 그들이 그 이름과 관련을 갖게 됨으로써 외면적으로 그리스도의 추종자로 보이는 사람들과 기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할지라도 그러하다. 그들의 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한 14:15; 15:10)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즐거움과 행복을 얻었기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누가 11:28.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를 증거하고 하나님의 설립된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데서 올바른 동기를 가짐으로 그러한 행복과 진정한 즐거움을 발견하였다. (계시 12:17) 그들의 동기는 “내로다” 하는 사람이 되려는 욕망으로 더럽혀 있지 않다. 그들은 예수께서 아첨하는 말을 듣지 않으시고 칭호를 받으시지 않으신 것처럼 사람들의 영적인 필요를 위해 봉사할 때 아첨하는 표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칭호는 그것을 받아들일 정도로 자만심을 가진 사람들의 전용물일 것이다. 여호와의 백성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운’ 즉 자기의 명성을 내지 않은 분과 함께 동료 종이 되는 것을 기뻐한다.—빌립보 2:7.

‘베드로’는, “멸망케 할 이단을” 조용히 혹은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할 거짓 선생들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베드로’는 부가하여 어떤 자들이 그들을 좇아감으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게 되리라고 경고하였다. (베드로 후 2:1, 2) 이러한 교묘한 올무에 빠져 들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일부 사람들은 실제로 자기 주를 부인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주이신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정도까지는 가지 않지만, 그들의 언행과 ‘진리 안에서 행’하는 부주의한 방식을 보면 사실상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들은 ‘바울’이 고린도 전 15:34에서 한 말을 명심하여야 한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물질주의를 피하는 일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가 금은 아니다’라는 옛말이 있다. 이 말은 영적인 의미로도 적용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유익한 일에 참여하고 있다. 그 유익을 뚜렷이 볼 수 있다. 여호와의 은총을 얻는 것은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다. 그러나 때때로 그들은 재물의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지속적인 부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자신들을 위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둔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마태 6:19, 20; 디모데 전 6:10.

소수 ‘여호와의 증인’들도 때때로 물질주의의 희생물이 되어 그들의 견해가 흐려지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물질주의는 사람과 그 사람이 여호와를 숭배하는 것 사이에 끼어 드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고급 자동차, 호화로운 주택, 은행에 예금한 많은 돈만을 반드시 가르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시간과 주의를 빼앗아 여호와께 바쳐야 할 숭배를 소홀히 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나 해당될 수 있다. 그러한 서글픈 상태가 발전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종의 발을 인도하는 “등”이요 그의 길에 “빛”인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일일 수 있는가? (시 119:105) 그러한 인도가 없다면 우리는 쉽사리 물질주의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기도를 들으시는 분과 대화를 하는 극히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한다면 물질주의가 슬며시 침투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여호와와 꾸준히 통신을 함으로 그분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깊어지고 강화된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 16:8.

‘여호와의 증인’들은, 우주의 통치자의 꾸준하고 끈기있는 증인으로 활동하고 물질주의에 빠지지 않음으로써 지난 해에 많은 축복을 받았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슬픔]을 겸하여 주시지 아니하시느니라.” (잠언 10:22) 일부 사람들이 심한 박해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박해가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중단시키지 못하였다는 것은 신권적 그리고 세속적인 역사가 함께 알려 주고 있다. 박해는 이들 증인들이 믿음을 상실할 정도로 고통이나 슬픔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그들은 실패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으며, 부하게 되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담대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보호가 필요하였다. 왜냐 하면 그들이 진리를 굳건히 그리고 양심적으로 두려움이 없이 계속 옹호해 왔기 때문이다. (디모데 전 3:15) 그들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영적 낙원에서 축복을 받아왔으며,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데서 행복을 느꼈다. 그들은 ‘사단’이 하나님께 도전한 것에 대하여 대답하는 데 일익을 담당해 왔다.—고린도 후 4:8, 9; 잠언 27:11.

박해하에서도 믿음을 유지함

일부 여호와의 증인들은 아주 어려운 환경하에서 생활하고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믿음을 타협시키려는 박해와 위협과 압력이 있을지라도, 그들은 성실을 지킨다. 그들은 세상에 있는 ‘다른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알기 때문에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에 대항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들은 약속을 유업으로 받기 위하여 인내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군사로서 고난을 받는 데 참여한다.—베드로 전 5:8, 9; 디모데 후 2:3; 히브리 6:12.

‘사단’은 하나님의 증인들이 이 사물의 제도의 다가오는 멸망을 선포하는 일에서 계속 충실히 봉사하는 데 대하여 매우 분노하고 있으며, 중단시키지 못한다면 활동을 감소시키기라도 하기 위해 그는 세상의 통치자로서의 자기의 영향력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때때로 그가 적의를 일으켜 활동에 금지령이 내려지게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작년에 그러한 일이 ‘콩고’ 공화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났으며, 다른 곳에서도 그러한 소음이 들리고 있다. 이것은 그러한 곳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포기하거나 중단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성령으로 심고 그 결과를 위대하신 보상자에게 맡김으로써 선한 일을 계속 행하고 있다. (갈라디아 6:8, 9) 예수께서는 자기의 추종자들이 오늘날에 있을 일들에 대하여 예비하도록 하셨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마태 10:22-26.

지난 봉사년도 초에 수백명의 우리 ‘말라위’ 형제들이 그 때까지도 그 나라의 북쪽에 있는 수용소, 즉 ‘드잘레카’에 있는 구치소에 있었다. 그곳은 이전에 정치범들을 수용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몇개월이 지나면서 일부가 석방되었다. 이들 형제들은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어떠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인가?

어떤 경우에 촌장들은 우리의 형제들이 집에 정착해서 형제들이 감옥에 가 있는 동안 씨를 뿌리지 못하던 그들의 농토를 다시 갈게 하였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증인들의 믿지 않는 친척들이 그 땅을 차지하고 그 땅을 경작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 형제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을 경찰과 그 지방의 정당 관계자에게 신고하였다. 그 사람들은 당원증 문제를 가지고 우리의 형제들을 다시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일부 형제들은 아무런 혐의 사실이 없이 아직도 경찰에 억류되어 있다. 종교적인 반대자들도 일부 형제들에게 그들이 다른 종교에 연합하지 않으면 그들의 집에 살도록 허용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형제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일부 지방에서는 자기 가정에 정착하여 토지를 경작하도록 허용된 증인들이 청년 연맹과 정당 간부들에 의해 고통을 받았다. 그들은 형제들이 곡식을 수확하였기 때문에 정당증을 살 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난 봉사년도가 끝났을 때에도 ‘말라위’에 있는 우리의 많은 형제들은 집도 없고 직장도 없이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생계비를 벌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을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울 수 있었고, 우리의 ‘말라위’ 형제들이 이러한 사랑의 도움에 대하여 여호와와 다른 곳에 있는 형제들에게 매우 감사한다는 것을 보고할 수 있어서 기쁘다.

그러한 불리한 환경하에서 일을 수행하지 않으면 않되는 형제들은 여호와의 ‘기록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잊지 않으신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보증을 받고 있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그들의 형제들 역시 기도를 들으시는 분께 드리는 매일의 간구에서 그들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 있는 우리의 형제들이 박해를 받을 때 그들과 함께 고통을 느낀다. ‘엠파틱 다이아글롯’ 성경은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그 고통을 함께 한다”고 말한다. 그처럼 ‘함께 하는 것’은 그들을 물질적으로 도와 주는 일에서만이 아니라 ‘느슨한 자들을 붙들고’, 전파 활동에 ‘더 많은 힘’을 들이는 데서도 나타났다.—히브리 6:10; 13:5; 고린도 전 12:26.

금지령하에 있지 않는 곳에서도 일부 ‘여호와의 증인’들은 국가주의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가이사”를 더 높이도록 요구를 받는다. 그들은 이러한 일은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반정부” 세력으로 거짓된 낙인이 찍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그들로부터 즐거움을 빼앗아 가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그들은 사도들과 더불어 예수께서 국가에 대한 순종이 여호와께 드려야 하는 순종과 배치되지 않을 때는 순종하여야 하지만 더 우선적인 순종은 당연히 여호와께 속해 있다고 말씀하신 바와 같은 동일한 입장을 취하는 것을 일종의 특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누가 20:25; 사도 4:19, 20; 로마 13:1.

“위협자”들은 쉽게 굴복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어린이들을 이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 어린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데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누가 11:28)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도록 부모들과 함께 회중에 모이라는 말씀에 유의해 왔다. (신명 31:12) 그들은 ‘두라’ 평지에서 있었던 충실한 세 ‘히브리’인들의 경험(다니엘 3:18)과 예수의 초기 그리스도인 추종자들의 단호한 결정(사도 5:29)에서 유익을 얻었으며 그러한 “위협자”들을 저항할 수 있다.

한 경험담은 이 점을 잘 알려 준다. ‘아프리카’에서 12세된 증인은 양심에 따라 국가를 부르기를 거절하였다. 못마땅하게 생각한 교장은 그에게 이유를 말하라고 하였다. 그 소년은 ‘말씀을 듣’고 ‘지키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그 국가는 국가주의라고 불리우는 거짓 신에 대한 찬송가이며 자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자기가 거짓 신을 찬양하면 노하실 것이라고 말하였다. 교장은 그 소년의 성실성과 양심적인 결정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다. “네가 내게 좀더 일찍 그런 이유를 밝혔더라면 너를 교실에서 쫓아내지 않았을게다. 왠고하면 우리가 참 하나님을 조롱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지.” 어린 전도인들이 합당하게 하나님을 대표할 특권을 인식하는 것을 보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이것은 또한 여호와에게 자기를 욕하는 자에게 대답할 부가적인 재료를 제시하는 것이다.

어떤 환경하에 있든지간에 여호와의 백성이 그분을 섬기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듣고 읽은 말씀이 그들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명령한다. (사도 1:8) 그들은 그러한 말을 즐거이 지킨다. 그들은 여호와의 주권을 옹호하고,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유일한 구원의 마련으로 인도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의 배후에는 첫째 계명에 근거한 여호와께 대한 사랑과 그들의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있다. (마태 22:37-39) 그러면 그들이 기대하는 보상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열렬히 기대하셨던 동일한 보상이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형주]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었다].” 여호와를 섬기는 데서 얻는 그들의 즐거움은 그들의 힘이다.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악한 자에게서 구하여 여호와의 찬양자가 되도록 그들을 돕는 것은 마음에 커다란 즐거움을 주게 된다.—히브리 12:2; 느헤미야 8:10.

세상적인 습관을 버리면 즐거움을 얻게 된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만사를 잊어 버리고자’ 하는 유혹이 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알코홀’을 사용하고 마약을 사용하여 그렇게 하려고 한다. 마약 사용이 점점 더 많이 증가하는 것이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되어 가고 있다. 의사들은 전국적으로 마약 중독자들을 다루어야 할 전망 때문에 당황해 하고 있다. 누구나 마약을 사용하면 문제만 증가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세상 습관과 동조하지 않는다. 그들은 구제책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성서를 듣고 지킬 수 있도록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인 성서에 의지하여야 할 필요성을 교육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 중에는 이전에 그러한 악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마약에 심히 중독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길을 위하여 길을 곧게’ 하도록 도움을 받았다. (히브리 12:13; 고린도 전 6:11) 이제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께 헌신하였으며 설립된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고 있다. 때때로 ‘여호와의 증인’들과 접촉하여 의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 사람이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는 것을 잊고 자기의 나쁜 습관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고린도 전 15:33) 그는 곧 자신이 비참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형제들과 다시 연합하는 것을 원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필리핀’에서 한 형제가 거리에서 증거 활동을 하다가 어떤 수염을 기른 한 청년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젊은 청년은 약간 낯익은 사람같았다. 그 사람은 이전에 ‘여호와의 증인’들과 연합한 일이 있었는데 좋지 않은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지금은 마약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혐오감을 이야기하면서 다시 돌아오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그와 연구 마련을 하게 되었고 이제 그는 자기의 친구들도 역시 연구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진리는 ‘캐나다’에 있는 어떤 사람을 변화시켰다. 그는 마약 밀매를 하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그에 대한 지명수배령이 내려졌다. 여러 해 동안 그는 수사망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진리」 책으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제 성서로 교육을 받은 그의 양심은 자수하도록 움직였다. 그의 변호사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유하였으나 그의 결심을 꺾지는 못하였다. 재판정에서 판사는 그의 정직함과 ‘여호와의 증인’들과 교제를 통하여 그가 완전히 변화되었음을 알고 그에게 아주 짧은 기간의 집행 유예를 선고하였다. 이제 그는 여호와를 섬기면서, 말씀에 열렬한 주의를 돌리고, 그의 생각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아들일 만하시고 완전한 뜻을 배우고 있다.—로마 12:2.

우리가 여호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동시에 부정직하게 행동할 수는 없다. ‘리베리아’에서 항공사에서 일하는 한 자매는 고용주로부터 어떤 방문객에게든지 자기가 나가고 없다고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자매는 그것이 정직하지 못한 것이며 자기의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는 화가 나서 그를 다른 부서로 옮기게 하였다. 거기서도 그 자매의 정직성이 시험을 받았다. 새로운 책임자는 사소한 현금의 부족을 눈감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자매는 그날 밤에 여호와께 기도하였고 아침에 그 책임자에게 자기가 그 전 책임자에게 말한 그대로 또 이야기하였다. 화가 난 그는 어떠한 부서에서도 그와 같은 태도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며칠 후에 그는 그 자매에게 수천 ‘달러’를 맡겼다. 더욱 중요한 점으로서 그 자매의 선한 행실로부터 감동을 받은 동료 직원이 그와 함께 집회에 참석하고 야외 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성서가 말하게 함

북부 ‘타일랜드’에서 한 젊은 자매는 이발소에서 현금 출납을 맡아 보고 있었다. 그 자매는 세금을 위한 허위 신고를 하라는 것을 거절함으로 자기의 양심을 어기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 자매는 해고되었다. 그래서 자유로와진 그 자매는 ‘파이오니아’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후에 그 주인은 항상 현금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자매를 찾아와서 다시 일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자기의 정직성을 그처럼 인정해 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였지만 그 자매는 자기가 선택한 전 시간 전파 활동을 계속하는 것을 더 좋아하였다. 그 자매는 자기가 이해력을 가지고 말씀을 듣고 지켰으며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그에 따라 행동한 것을 진정으로 기뻐하였다. 성서가 그 자매의 지침이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호별 방문이나 가두 증거에서나 혹은 가정 성서 연구에서나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성서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 조직이 발전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나라들에서는 성서가 적어도 처음으로 사람들을 가정으로 방문할 때에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서를 사용하는 데 숙달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성서를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 그것이 성공적이라는 것은 ‘벨기에’에서 보내 온 한 보고에 의해서 잘 알 수 있다. 그 나라에 사는 이전에 ‘바벨론’ 교회에 열심히 나갔던 성실한 한 가족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성서를 잘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이제 연구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교회의 찬양대원이었다. 다른 식구들이 성서 연구를 하게 되자 교직자와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여호와의 증인’들이 집에 오면 몰아내라고 권고하였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사제에게 자기 집에 와서 식구들을 시정해 주도록 요청하였다. 그 사제와 몇명의 대리 사제가 성서는 사용하지 않고, 온당치 않은 말을 사용했을 때 그 아버지는 화가 났다. 그는 지역 대회에 참석하여 형제들의 친절함, 청결함, 질서와 성서를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여호와의 증인’들과 연합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집회 내용을 녹음하여 그에게 교회를 떠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틀어 준다.

우리가 성서를 잘 사용하면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그들도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새로 침례 받은 한 형제는 이전에는 소위 “인생의 재미”를 보는 데 온전히 빠져 있는 젊은이들의 집단에 속해 있었다. 그러한 쾌락 추구에는 마약을 피우고, 삼키고, 술취하고 사실상 각종 형태의 부도덕한 행위가 포함되었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과 연구하는 한 친구의 생활이 크게 변화된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다. 그는 그 친구에게 어떻게 해서 그렇게 변화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말하기를 “그 친구는 나에게 자기가 여호와의 목적에 관하여 배우고 있는 바를 성서에서 이야기해 주었다”고 하였다. 이 17세된 소년은 불행하고 공허한 생활에서 여호와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찬 생활로 전환하였다. 이제 그는 자기 앞에 영원한 생명 즉 의미와 목적이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지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진리의 지식을 깨닫고 다가오는 큰 환난과 ‘아마겟돈’ 전쟁에 관해 사람들에게 경고할 시간이 짧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자신의 세속적인 직업과 관련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고려해야 한다. 결혼한 남자라면 자기 가족을 부양할 의무가 있으며, 따라서 그가 현재의 직장을 계속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디모데 전 5:8) 어떤 사람들은 세속 직업을 바꾸지 않고도 왕국 봉사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선포할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얻기 위하여 직업을 바꾸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 직장에 바치는 시간을 조절하여 정규 또는 보조 ‘파이오니아’를 할 수 있었다. 예를들어, 일본에서는 지난 봉사년도 봄철의 넉달 동안 연속적으로 전체 ‘파이오니아’ 수가 전체 전도인의 25‘퍼센트’를 상회하는 10,000명 이상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파이오니아’를 하기 위해 직장 일을 조절하였던 장로들과 가장들이었다.

주의깊은 계획과 조직을 함으로써, 방금 졸업을 했거나 방학 중인 사람들을 포함하여 젊은이들과 가정 주부들(자녀가 있거나 없거나 간에) ‘파이오니아’ 봉사에서의 가치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한 전도인들도 더 많은 봉사 시간을 바치고 있다. 진리를 배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시간을 허송하는 일에 노예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 이들은 변화를 하게 되었다. 그들은 믿음으로 ‘여호와를 시험’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기대 이상으로 그들 위에 실제로 축복을 내려 주셨다.—말라기 3:10.

‘프랑스’에서, 이전에 ‘발레’ 무용가였던 한 형제가 일단의 증인들과 함께 ‘오페레타’를 구경가기로 하였다. 그가 매표소에서 표를 집어드는데 그 봉투 속에 ‘카아드’가 한장 있었다. 그것은 그 ‘오페레타’ 주연 배우로부터 보내온 것인데, 그 형제에게 막간에 자기를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찾아가 그 형제가 여러 해 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을 새삼스럽게 만나게 되었다. 그 배우는 자기 아내를 잃었는데, 그들의 과거의 우정을 생각하고 이 형제로부터 위안을 얻고자 하였다. 그 형제는 자기가 지금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에게 성서 연구를 제안하였다. 그의 연구는 곧 그에게 배우로서의 생활이 건전치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그는 자기의 20년간의 무대 생활을 계속해 나아가기 위한 계약을 갱신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곧 다른 직업을 찾았으며, 더구나 중요한 일은 이제 그가 충실한 왕국 전도인이 된 것이다.

이 경험은 ‘스페인’의 한 직업적인 ‘플라맹코 댄서’의 경험과 비슷하다. 그 여자의 어머니는 그들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하나님과 성서에 관해 어느 부인과 나눈 흥미있었던 대화에 관하여 딸에게 들려 주었다. 그 대화는 다음날 아침 그 ‘댄서’와 계속되었다. 그 대화는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았기 때문에 그는 즉시 자기 단원들에게 증거하기 시작하였다. 모욕과 조소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그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집회에 참석하고, 결국에 가서는 헌신을 하였다. 그는 계약을 취소하였다. 그후 고정적인 직업을 찾기까지에는 9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그가 찾은 새로운 직장에서는 여호와를 섬기기 위한 자유가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그는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되었다.

씨를 뿌리는 일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전도 11:6) 이러한 점은 ‘칠레’에서 사실로 나타났다. 1936년으로 소급하여, 두명의 전도인들이 기차길을 따라 걸어서 ‘볼리비아’로 들어갔다. 그들은 물을 먹기 위해 한 외딴 집에 잠간 들렸다. 그들은 그 대가로 「하나님의 거문고」 한권을 주었다. 12년이 지난 후, 그 책을 받은 사람의 아들—그 당시 24세—이 이 책이 귀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 8년동안 비록 ‘여호와의 증인’들을 발견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변함없는 흥미를 가지고 그 「거문고」 책을 공부하고 또 공부하였다. 얼마 후 한명의 ‘여호와의 증인’이 그의 집을 방문하여 그에게 「파수대」 예약을 제공했다. 그는 기꺼이 예약을 하였으며 당장 성서 연구를 받아들였다. 발전함에 따라 그는 자기의 생명을 여호와께 바쳤고 활동적인 말씀의 전파자가 되었다. 기쁨에 넘쳐 그는 자기 부모가 계시는 집을 방문했으며, 8명의 자기 식구들에게 자기의 기쁨을 전해 주고, 그들도 헌신하도록 도와 주었다.

남‘아메리카’에 있는 나라에서 들어온 또 다른 경험담은 씨를 뿌리는 일이 ‘여기 저기’서 어떻게 성공을 거두었는지를 알려 준다. 한 어린 소녀는 자기가 받은 「진리」 책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후에 그는 연구를 중단하게 되었지만 그 책을 귀중히 여겨, 자기 어머니에게 보냈다. 그 어머니는 그 책이 좋은 선물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여행을 하게 된 자기 언니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 언니는 자기 아들 집의 ‘트렁크’ 속에 그것을 넣어버렸다. 거기서 그의 며느리가 그 책을 발견하고는 공부를 하였다. 그의 남편은 그 책을 태워 버리라고 위협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 책을 자기 친구에게 주었는데, 그 친구는 그것을 다시 자기 언니에게 주었다. 그 뿌려진 씨 즉 이리 저리 돌아다니던 그 「진리」 책으로부터 어떠한 결과가 있었는가? 그 “친구”는 여호와께 자신의 생명을 헌신하였다. 그 며느리는 다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침례받을 날을 고대하고 있다. 그렇다, 실로 그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 책은 지금도 그 놀라운 배부가 계속되고 있다.

「청소년」 책—은혜로운 선물

1976년 지역 대회에서 발표된 「청소년기—보람있게 사용해 할 시기」라는 책은 지금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이 책을 잘 받아들여져온 점은 사람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경우 그것은 곧 커다란 수요를 불러 일으킨다는 사실을 예시해 준다.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여 지난 봉사년도 중 ‘브루클린’에서는 「청소년」 책 9,003,062권을 인쇄, 발송하였다.

여호와께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을 통하여 마련하신 이 놀라운 도구는 젊은이들이나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모두 크게 감사하는 책이다. ‘브라질’의 지역 대회에서 이 책이 발표되었을 때, 한 17세 소년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은 여러분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점입니다. 이 책은 이제까지 제가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좋은 선물이었읍니다. 저는 우리에게 이 책을 마련해 주신 데 대하여 여호와께 그리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영국에서 젊은 파이오니아들이 보고하는 바에 의하면, 그들은 나이많은 사람들로부터 흔히 거절을 받는 호별 방문 증거에서는 어려움을 느끼지만, 가두 증거에서는 젊은이들을 택하여 접근할 수 있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 크게 격려가 된다고 하였다.

‘트리니다드’에서 한 자매는 자기 남편을 따라 어느 만찬에 참석하였다. 그날 저녁 비그리스도교 종교 단체의 한 간부는 그 자매에게 ‘여호와의 증인’들에게는 혹시 청소년 범죄로 인한 골치 아픈 일이 없느냐고 질문하였다. 그 자매는 대답하기를, 그런 일은 극히 드문 일이며, 만일 그러한 일이 있다면 성서 원칙에 따라 처리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자매는 「청소년」 책을 언급하여, 그 책의 목적과 가격을 말해주었다. 깊은 인상을 받은 그 사람은 그 지역의 빈곤한 형편과 많은 젊은이들은 소량의 금액이나마도 지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이 책이 그 곳 청소년들에게 배포될 수 있도록 100‘달러’를 헌금하겠다고 하였다.

‘네델란드’에서 들어온 한 보고에 의하면, 어린 전도인들이 어떻게 이 가치있는 책에 자기 급우들의 관심을 쏠리게 할 수 있었는지를 알려준다. 15세된 한 자매는 자기 반 급우 둘에게 이 책을 보여주었다. 한명이 즉시 한부를 달라고 하였다. 우리의 자매는 “혹시나 해서” 여분으로 세권을 더 학교에 가지고 갔다. 네권 모두가 전해졌고, 소녀들은 휴게 시간에 그 책을 부지런히 읽었다. 다른 아이들도 이것을 보고, 그 책의 목차를 살펴보고 나서 자기들도 그 책을 달라고 하였다. 우리의 어린 자매는 순회 대회에서 이러한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네명의 다른 어린 전도인들도 그 자매가 한 대로 해 보기로 결심하였으며, 얼마 안되어 자기 학급에서 20권을 전하였다.

‘바아베이도즈’에서 증인인 한 학교 선생은 표창 위원회의 대표를 맡으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위원회는 상으로 책을 주고자 하였다. 그 대표는 「청소년」 책을 추천하였다. 그 위원회는 그 책 내용을 보고나서 가장 훌륭한 상이라고 생각하였다. 상으로 약 50권이 주어졌으며, 각 위원들도 한권씩 받았다.

크게 필요한 곳에서 봉사하는 일

세계 여러 곳에 있는 전도인들은 아직도 ‘‘마게도냐’인의 부름’에 응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시간, 노력, 능력 및 재력을 가장 가치있게 사용하기를 원하며, 또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의 밭은 이미 잘 돌보아지고 있기 때문에 더 필요한 곳으로 가기로 하였다. 이들은 놀라운 일을 수행하고 있다. 많은 경우에 그들은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였다. 전도인 수가 증가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회중에서 장로로서 봉사하는 일에 귀중히 사용되어 왔다. 그들은 새로운 회중들을 설립하였으며, 왕국회관을 건축하는 일을 도아 왔다. 어떤 사람들은 순회 감독자 및 지부 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많은 곳에서 그들은 조직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한 “자진 봉사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말하기를, 자기와 자기 가족이 그렇게 사용되는 데서 누려온 특권에 대해 여호와께 감사할 뿐이라고 하였다. 그는 “우리의 생활은 진정으로 의미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공식적 증거

왕국 소식의 정규적인 선포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비공식적인 증거를 통하여 진리를 알게 되었다. 입으로든 또는 편지로든 그러한 증거는 계속해서 진리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포루투갈’에서 들어온 한 보고에서는 이 점을 잘 알려 준다. 집안 일로 인하여 한 ‘파이오니아’는 봉사를 못하게 되었다. 그 자매는 신문에서 가까운 친척을 잃은 어느 여인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이 여인에게는 위안이 필요하였으며, 그리하여 그 자매는 그 여인에게 위안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희망에 관하여 알려 주는 우정적인 편지를 써 보냈다. 그 자매는 답장을 받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7개월이 지난 후 이 전혀 낯선 사람으로부터 뒤늦게나마 자기가 받은 편지에 대하여 감사한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 여인은 말하기를, 자기는 그 편지를 받고, 다음번 ‘여호와의 증인’이 자기 집을 방문하면 이야기를 들어 보겠다고 결심을 하였다고 한다. 이제 그 여인은 다음 일요일 자기가 침례를 받을 때 그 ‘파이오니아’ 자매보고 참석해 달라고 초대하기 위해 전화를 건 것이었다! 비공식적 증거는 믿지 않는 배우자에게, 또는 다른 식구에게, ‘담장 너머’ 이웃 사람에게, 직장 동료에게, 학교 급우에게, 그리고 여행할 때 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적인 예로서는 예수께서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증거하신 일, 그리고 전도자 ‘빌립’이 ‘병거’를 타고 가던 ‘에디오피아’ 관리에게 증거한 일이 있다.

지부 위원회 모임

봉사년도 초에, 통치체는 지부 조정위원들과 기타 지부 위원회 위원들이 10월과 11월(1976년)에 여러 가지 지부 활동과 전반적인 왕국 봉사를 고려하기 위해 ‘브루클린’ 본부에서 개최된 일련의 모임에 참석하도록 마련하였다. 그 모임은 많은 사실을 알게 해 주었으며 유익하였다. 토의는 통치체로 하여금 ‘여호와의 증인’들에 의하여 전세계에서 수행되고 있는 사업에 대하여 좀더 명백한 실상을 알게 해 주었고 본부가 어떻게 여러 지부들에게 좀더 나은 인도와 지도를 줄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그 회기는(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열렸다. 강의와 문답식 회기를 가진 외에도 ‘벧엘’ 집과 공장도 시찰하였으며, 아주 즐거웠던 여행은 ‘브루클린’ 북서쪽으로 16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왙취 타워’ 농장에 다녀온 일이었다.

이 보고가 만들어지고 있을 때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지부 위원들을 ‘브루클린’에서 있을 학교에 참석시키는 마련이 완성되어가고 있으며, 좀더 큰 주의가 각 지부의 필요에 기울여지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구 방문

또한, 봉사년도 중 통치체 성원들과 기타 형제들은 모든 지부들에 대한 지구(地區) 여행을 하였다. 지부 위원들 및 지역과 순회 감독자 그리고 기타 전 시간 종들과 가치있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로 말미암아 통치체 성원들은 각 지부의 상태에 관하여 직접적인 사실들을 알 수 있었고, 일어났던 어떤 문제들이건 토론할 수 있었다. 또한 지구 방문을 하는 형제들이 형제들과 관심자들이 모인 큰 모임에서 연설할 수 있는 마련도 있었다. 얼마의 예외는 있었지만, 모든 선교인들을 지부로 오게 하여 방문하는 형제와 만나도록 하고, 그와 지부 ‘벧엘’ 가족의 기타 성원들과 함께 모이는 데 참여할 수 있는 마련도 처음으로 있었다. 이러한 선교인들과의 모임들은 상호 격려적이고 유익하였다.

여러 해에 걸쳐 선교인들은 외국 임지에서 굳굳하게 봉사해 왔으며, 어디에 살고 있든지 하나님의 백성 모두는 이에 대하여 크게 감사히 여긴다. 그들은 자기들의 아낌없는 봉사에 대하여 여호와의 축복을 받아 왔으며,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지식을 알게 하는 데 크게 성공을 거두어 왔다.

지부 조정위원들 중 한 형제는 지구 방문은 오랫 동안 기억된다고 말하였다. 그와 기타 조정위원들은 지구 감독자들이 사업에 대하여 좀더 적극적인 견해를 갖도록 지부들을 열심히 도와 주려 할 때 그들이 나타내는 겸손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모든 지구 감독자들은 형제들의 종으로서 예수의 본을 받고자 노력한다.

확장

봉사년도 중 사업의 확장을 가리키는 기타 축복들도 있었다. 진리에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는데 대단히 필요로 하는 서적 즉 이 서적에 대한 야외로부터의 주문을 충당하기 위하여 상당수의 지부들은 그들의 시설을 확장시켰다. 기타 지부들은 그 시설들 및 운영을 확장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 가운데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 ‘콜럼비아’, ‘프랑스’, ‘그리이스’, 일본, ‘케냐’, ‘뉴우칼레도니아’,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 ‘스웨덴’, ‘스위스’, ‘네델란드’, ‘베네수엘라’ 및 ‘잠비아’ 등에 있는 지부들이 포함된다. 이 모든 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일에 힘쓰는 종들을 여호와께서 축복하신다는 증거이다.

미국에서는 서적과 잡지의 수요에 충당하기 위하여 ‘브루클린’ 공장에서 두대의 ‘옵세트’ 윤전기를 설치하였다. 그 밖에도 증가하는 사업을 더욱 효과적으로 돌보기 위하여 회계부에는 ‘컴퓨터’를 설치하였다.

지부 시설 확장과 더불어, 전세계에서 왕국회관 건축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새로운 회중들이 형성되기 때문이며 또한 참석자들이 증가함에 따라서 시설들이 비좁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역 대회들의 축복

“즐거운 봉사자” 지역 대회에서 형제들은 그들이 수혈 문제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지고 의사들과 병원들을 대하는 일에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마련이 있었던 것에 대하여 감사하였다. 「여호와의 증인과 피에 관한 문제」라는 소책자의 발표가 있었으며, 참석하였던 사람들은 각 회중이 모든 의사, 병원 행정 요원, 간호원 및 변호사들에게 한부씩 전할 수 있도록 이 소책자를 충분히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형제들은 그러한 사람들 및 전도인의 개인 의사에게 소책자와 ‘팜플렛’을 한부씩 전해 주는 특별 운동을 예리한 기대를 가지고 고대하여 왔다.

모두는 또한 대회에서 발표된 두 가지 ‘포켓’용 서적 「인생에는 분명히 목적이 있다」와 「우리의 다가오는 세계 정부—하나님의 왕국」을 받고 기뻐하였다. 이 두 가지 책은 성경에 밀접히 주의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한 지식을 알리는 데 있어서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대단히 훌륭한 보조 서적이 될 것이다.

대회에서는 또 다른 놀랄 만한 일들이 있었다. 이러한 일은 회중 조직과 관련하여 수행된 일이었으며, 이 점은 「우리의 왕국 봉사」 삽입물에 더 자세히 설명되었다. 거기에서 알려 주는 바와 같이, 회중 기록들과 철들을 더 잘 돌보기 위하여, 이제 영구적인 서기가 임명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세밀한 일에 대하여 언제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서기는 회중을 대신해서 모든 통신을 취급하며, 야외 봉사 보고를 집계하며, 전도인 기록 ‘카아드’를 보관한다.

그 외에도, 각 회중에는 이제 한명의 「파수대」 연구 사회자와 신권 학교 감독자가 있게 될 것이며, 그들 각자는 계속하여 봉사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을 돕도록 또는 때때로 자기들을 대신하여 일하도록 다른 장로들을 임명할 수 있다.

또 다른 의미심장한 조정은 사법 문제를 다루는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가 일정한 세명의 위원(이전에는 주임 감독자, 야외 감독자 및 성서 연구 감독자들로 구성되는)에 의하여 다루어지는 대신, 이제는 장로의 회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사법적인 일이 발생할 경우 그 문제를 다루기에 가장 적합하며 성경적으로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장로들을 선택할 것이다.

가장 위대하신 교육자이신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종들을 훈련시키고 가르치는 점과 관련해서 그들을 분명히 돌보시고 계시다. 그분의 최고의 교육—그분의 자녀들의 마음에 이르게 하는 교육, 그분과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정확한 지식에 견고히 기초한 교육을 베푸신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그분께서는 모든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해와 사랑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 마련을 해 오셨다. 모든 회중에서 실시되고 있는 신권 학교 외에도, 사단법인 ‘뉴우요오크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가 그 종교 활동의 일부로 운영하고 있는 ‘길르앗 학교’가 있다. 지난 봉사년도 중 ‘왙취 타워 길르앗 성서 학교’ 62기 및 63기의 도합 51명의 학생들이 종교적 선교 봉사를 위한 훈련을 받았다. 크게 필요로 하는 여러 나라로 임명된 이들 학생들은 가서 여러 나라에 있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가르쳐서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에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일에 자격을 갖추었다.

천국 전도 학교 및 ‘파이오니아’ 학교

전세계에 있는 회중들의 대부분의 장로들은 천국 전도 학교에 참석하였었다. 그러나 그들이 천국 전도 학교에 참석한 이후 여러 가지 조직상의 변화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참석해 보지 못한 장로들과 마찬가지로, 이전에 참석한 일이 있든 없든 모든 장로들에게 새로 개정된 과정에 대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지역 대회에서의 발표를 환영하였다. 이것은 매우 압축된 과정이다. 먼저 여행하는 감독자들에게 참석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자신과 온 양떼에 유의하라’는 새로운 교재가 마련되었다. 이 과정이 끝나면 각 장로에게 장차 감독자로서의 자신의 책임들을 돌보는 데 유익하게 사용하도록 각자의 교재를 가지고 가는 것이 허용된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광범위하게 하나님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매우 부지런히 일해왔지만, 아직도 이르지 못한 구역들이 있다. 어떤 나라들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는 큰 마을들이나 도시들이 있다. 지역 대회 결론 연설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이곳들에 이르기 위하여 ‘파이오니아’들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도 자주 방문하지 못하는 구역에서 왕국 봉사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정규 ‘파이오니아’들과 특별 ‘파이오니아’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목적으로 1977년 12월부터 미국에서는 ‘파이오니아’ 봉사학교가 마련되었다. 그 과정은 2주간이다. 사용되는 교재의 이름은 「세상에서 빛을 비추는 자들이 되라」이다.

‘브루클린 벧엘’의 ‘신입자 학교’는 ‘벧엘’ 가족 성원이 되는 모든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 학교가 지난 봉사년도에도 운영되었다. 주기적으로 새로운 가족 성원들의 ‘그룹’이 일년 동안 계속되는 성서 읽기 및 성서 연구 과정을 이수한다. 각 ‘그룹’은 연구와 강의를 받으며, 이러한 교습은 ‘벧엘’ 가족 중 오래 된 성원들에 의하여 베풀어진다. 이에 따라 이들 학생들은 성서 지식에 대한 훌륭한 배경과 하나님께서 인류를 다스리는 일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얻게 된다.

여호와의 백성을 위한 정규적인 교육 마련으로서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는 순회 및 지역 대회들이 있다. 이러한 대회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데에는 많은 조사와 연구가 행해진다. 여호와의 영이 자기의 백성 위에 작용하는 일은 참으로 놀랍다. 그러므로 본부에 있는 형제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려한 후에 만들어진 이들 ‘프로그램’을 위한 지식과 제안들은 대단히 시기에 적절하고 실용적인 제공이 된다. 그리하여, 예를 들면, “즐거운 봉사자” 지역 대회에서 받은 여러 가지 축복들에 대한 여러 나라에 있는 형제들로부터 들어온 감사의 표시들이 있다. 북‘아메리카’에 있는 밭에서만도 참석자들이 도합 1,060,747명이었으며, 물침례로 자신의 헌신을 표상한 사람이 8,563명이었다.

여호와께서는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최초로 500만명 이상이 모이게 한 점에서 1977봉사년도에 그분의 회중을 축복하셨다. 협회에 의하여 생산된 출판물들을 읽고 진리를 배웠으며, 기념식에 참석한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처음으로 기념식의 목적을 이해하였음을 나타내었다.

‘온두라스’에는 3,300명의 전도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 나라에 있는 모든 관심자들을 기념식에 초대하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이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15,000명이 참석하였다! 그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일부 회중들은 10번 이상의 기념식을 가졌다.

전세계 보고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중대한 시기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고 예언하셨다. (마가 13:10)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현재 전세계에서 수행하고 있는 일이다.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도표를 보면 1977봉사년도 중 사업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수행되었는가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도처에서 그분의 왕국을 선포하는 일에 얼마나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가를 알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참으로 즐겁다. 그들이 “큰 환난”에서 구원을 얻도록 “양”들을 충실하게 모으는 동안 그들의 열정적인 증거 사업에는 풍성한 축복과 열매가 수반되어 왔다.

실려있는 도표에 자세한 보고들이 나와있다.

세계적인 왕국 봉사 활동

1977봉사년도 중, 진리의 전파가 ‘사단’의 조직을 더욱 폭로시킴에 따라, 그가 분노함으로 인하여 금지령하에 들어가게 된 나라들이 얼마간 있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거나 제한을 받게 된 나라가 46개가 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얼마간 전파 사업을 감소시키게 만들긴 했지만, 그 반면 그러한 나라들에 있는 우리의 형제들은 ‘선한 일을 행하는 일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설립된 여호와의 왕국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하려는 결심은 우리 모두에게 고무가 된다. 어떤 경우에는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특권을 깨어 살피게 하고 여호와께서 비방자에게 대답하실 수 있게 하는 일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사업이 증가하였다. 집회 참석을 소홀히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공개적인 집회가 금지된 곳에서 작은 집단으로 함께 모이도록 자기 집을 기꺼이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약한 손’과 ‘떨리는 무릎’이 여호와에 의하여 강화되었다.—갈라디아 6:9; 데살로니가 후 3:13; 잠언 27:11; 이사야 35:3.

96개 지부 산하의 216개 나라로부터의 왕국 전파 활동은 최고 전도인 2,223,538명에 달하였다. 이것은 1976년에 비하면 감소된 것이다. 그러한 감소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보고자 수의 감소를 고려할 때 보고자들의 시간(321,424,305)이 낮으리라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다행히 ‘파이오니아’ 봉사에 종사한 사람들의 수는 지난해보다 증가하였는데, ‘파이오니아’ 전도인이 지난해에는 113,926명이 있었는데 비하여 금년에는 평균 119,289명이 있다. 회중으로부터 보내온 보고들에 의하면, 많은 형제 자매들이 새로운 보조 ‘파이오니아’ 마련을 환영하고 있다. 건강, 연령 및 기타 이유로 제안된 시간 목표에 도달할 수 없는 얼마의 정규 ‘파이오니아’들은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로 전환하였다. 전세계에서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에 대한 지지가 훌륭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등록하여 이 봉사로부터 오는 여호와의 축복을 기대한다.

앞에 있는 보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의 백성은 출판, 인쇄 및 전파하는 조직(마태 24:14; 디모데 후 4:2), 가르치는 조직(마태 28:19, 20; 골로새 3:16), 복음을 전하는 조직(디모데 후 4:5), 그리고 증거하는 조직이다. (이사야 43:10; 사도 1:8) 이 모든 점은 1977봉사년도 중 매우 만족스러운 ‘여호와의 증인’의 사업 보고 가운데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대적의 낡은 제도의 끝이 임박한 이 때에 영원하신 왕을 대표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특권이다! 우리는 여호와의 왕국의 축복이 더욱 확실해짐에 따라서 예리한 기대를 가지고 여호와의 계속적인 은총을 바라보고 있다.

[20-27면 도표]

1977 봉사년도 보고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