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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

오늘날 수백만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에베소 2:12) 금세기에 인간이 더 나은 장래를 열렬히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문제 많은 세상 상태가 해결되는 것을 보리라는 희망을 잃었다. 그들은 세상의 영에 휩쓸려서 냉담해지고 절망적이며 냉소적으로 되었다. 좌절감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은 폭력, 마약, 성적 부도덕, 범죄에 빠지고 심지어 자살까지 한다. 그러므로 ‘뉴우지일랜드’로부터의 한 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이토록 난잡해지고 인간 정부에 대해 이처럼 불만을 가진 적이 전에는 없었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예외가 있다. 200여개 나라와 바다의 섬들에 흩어져 있으며, 이백만명 이상 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장래에 대한 ‘산 소망’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왜냐 하면 그들은 창조주께서 그분이 정하신 때에 문제들을 바로잡으실 능력과 의도를 가지고 계심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그 정하신 때가 매우 가까왔다는 것을 믿을 만한 강력한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속에서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경험해 왔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로마 15:13; 베드로 전 1:3.

그들의 희망

그들의 희망은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들에 근거해 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그분의 약속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에 하신 말씀과 그분이 그의 추종자들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치신 기도 가운데 강조되어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여기서 그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을 들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셨다. (마태 6:9, 10; 7:7) 왜냐하면 이러한 간구를 드리는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입증되고, 의가 승리하고, 지상에서 종교적 위선과 기타 모든 악이 제거될 것을 믿음으로 고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뜻이 지상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게 하실 것을 의미한다. (계시 21:4) 그러한 말씀은 사실상, 살아있거나 죽어 있는 수십억의 ‘아담’의 후손들에게 지상 낙원에서 완전하고 행복한 가운데서의 영원한 생명을 약속한다. 더우기 이러한 일들이 실현될 때가 매우 다가왔다. 마태복음 24, 25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 디모데 후서 3:1-5 및 계시록 6:1-8에서 볼 수 있는 예언들의 성취로서 실제 발생한 사건들이 이 점을 알려 주고 있다.

모든 애통하는 일과 눈물이 제거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자들도 무덤에서 돌아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무덤속에 있는 자가 다” 그리고 “의인과 악인”이 부활되리라는 희망이 주어졌다. 이러한 희망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애통해 하지 않는다.—요한 5:28, 29; 사도 24:15; 데살로니가 전 4:13.

희망을 위한 튼튼한 기초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들의 그리스도인 희망에 대해서 그처럼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무엇보다도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실존하시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그분의 모든 창조물이 그 점을 증거한다. 그분의 존재만이 아니라 그분의 여러 가지 놀라운 특성들과 속성들 이를 테면, 지혜, 능력 및 사랑 등을 증거해 준다. (로마 1:20) 더 나아가 그분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그분이 인류와 관계하신 일은, 그분이 충실하신 하나님이시며, 결코 거짓말하실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디도 1:2; 히브리 10:23)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앞에 있는 소망을 얻[도록] ·⁠·⁠· 큰 안위를 받”는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약속하신 것을 이루신다.—히브리 6:18.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취해 오신 조치들 자체가 그리스도인들의 강력한 희망을 위한 기초를 보강해 준다. 이러한 조치들 중 으뜸되는 것은 그분의 아들을 땅으로 보내시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게 하신 것이다. 인류는 ‘아담’의 죄로 인하여 죄와 사망의 노예로 팔렸기 때문에 우리가 왕국 아래서 영원한 생명을 즐길 수 있으려면, 죄와 사망의 굴레가 제거되어야만 할 것이다. (로마 5:12)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읍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축복할 ‘아브라함’의 씨로서 예수와 연합할 기름부음받은 예수의 추종자 144,000명을 선택하시고 훈련시키심으로써 왕국 축복을 위한 준비를 진전시켜 오셨다.—요한 3:16; 갈라디아 3:16, 29; 계시 14:1; 20:6.

희망의 힘

희망과 믿음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희망을 단순히 믿음의 일면으로 보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성서 필자들은 고린도 전서 13:13에서와 같이 그 두 가지를 구별한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니라].” 믿음은 희망의 바탕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사물에 대한 보증된 기대”라는 말도 있다. 반면에, 희망은 믿음을 강화시켜 준다.—히브리 11:1, 신세.

희망은 고대 충실한 사람들을 유지시켜 주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덴’에서 하신 예언은 ‘아벨’에게 희망을 위한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내가 너[뱀]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약속으로 인해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할 수 있었다. “피조물[인류 세상]의 고대하는 바는 [비록 모를지라도] 하나님의 아들들[그리스도의 기름부음 받은 몸의 성원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창세 3:15; 로마 8:19-22.

족장들 즉 ‘아브라함’, ‘이삭’ 및 ‘야곱’은 참다운 토대를 가진 “성”, 즉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희망으로 힘을 얻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더 나은 곳 즉 하늘에 속한 곳으로 향할 수 있었다. 희망은 또 예언자 ‘모세’에게도 힘이 되었다.—히브리 11:10, 13-22, 24-26, 35.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힘을 준 것은 희망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그가 그처럼 많은 인내를 하고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해서 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분의 모범적인 기도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분은 의가 마침내 승리하리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계셨다. 그분은 또한 원래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영화를 다시 누릴 희망도 가지고 계셨다.—히브리 12:2; 요한 17:5.

예수의 사도들과 기타 제자들은 자기들의 주가 처형되었을 때 몹시 비참하였을 것이다! 그 때 그들은 희망없는 절망 상태에 빠져 두려워하였고 무활동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되심으로써 그들의 희망이 되살아났을 때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누가 24:17, 32.

그 이후로 그들의 생활에서 소망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특히 그들은 주의 재림과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사실상 그들의 희망은 통치자들과 그러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논쟁점이 되었다. 그리하여 한 때 사도 ‘바울’은 법정에서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라고 진술하였다.—사도 26:6, 7; 23:6; 3:21.

희망이 견디게 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시련을 겪을 때, 시험과 실망을 직면할 때 우리를 지원해 준다.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점을 실증하였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데살로니가 전 1:3.

희망은 또 보호 역할도 한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투구에 비유되었다.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데살로니가 전 5:8; 에베소 6:17) 마치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드는 고대의 투구가 육적인 전투에 참여한 군인을 보호해 주었듯이, 영적 투구인 희망은, 우리의 가르침들에 대한 의심 및 성서 원칙을 범하게 하려는 유혹 등의 공격으로부터 우리의 정신을 보호해 준다.

희망은 또한 안전에 기여하기 때문에 닻에 비유되었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니라].” (히브리 6:19) 닻이 사나운 폭풍우 속에서 배를 견고하고 안전하고 흔들리지 않게 지켜 주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실망, 불공평, 질병, 재난 혹은 박해 등 어떠한 인생의 폭풍우도 생존할 수 있게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그리스도인 소망을 강화함

의심의 여지 없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앞서 말한 모든 것을 그분의 말씀에 기록시키셨으며 그렇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하셨다. (로마 15:4)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섭취함으로써 우리의 소망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 일에는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사실상 그것은 우리가 평상시에 다른 일을 하는 데 바치는 시간을 떼내어서 성서를 읽고 연구하는 데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베소 5:11, 15, 16) 어떤 그리스도인도 혼자서는 부족하기 때문에,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모여야 한다. 그러한 모임에서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공개적으로 선포함으로써 사랑과 선행을 주고 받을 수 있다. (고린도 전 12:14-26; 히브리 10:23-25) 사실상 기회가 생기면 언제나 우리는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자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할수록 우리의 소망은 점점 더 밝아지고 튼튼해진다.—히브리 3:6.

그러나 희망은 또한 “인내를 통해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 것이다. 희망은 우리가 인내하도록 도와 줄 뿐 아니라 반대로 인내는 우리의 희망을 강화시켜 준다. 그러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하니라].” 그렇다, 우리가 계속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반대와 시험을 저항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인하시며 우리가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것은 다시 우리의 희망을 강화시켜 준다. (로마 5:3-5) 그것은 또한 이러한 기록과 같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을 기업으로 받 ·⁠·⁠· 게 하려는 것이니라.”—히브리 6:11, 12.

그 외에 우리의 희망을 강화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비이기적인 사랑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사랑은 ·⁠·⁠·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기” 때문이다. (고린도 전 13:4, 7) 사랑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에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믿으며 그렇게 하여 희망을 강화시켜 준다. 사랑은 우리가 낙관적이고 적극적이고 기대를 갖게 해 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최선의 것을 기대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희망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발전하리라는 전망을 쉽게 포기하게 만들지 않는다. 희망은 그들을 기꺼이 선의로 해석하게 한다. 사랑은 그리스도인 배우자로 하여금 믿지 않는 배우자가 결국은 신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계속 갖게 한다는 것이다. 누차 재삼재사 그러한 희망이 25년이 지나서 결실을 보는 일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가지고 집집을 다닐 때 사랑은 우리에게 의에 굶주리고 목말라 있는 양같은 사람들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선한 양심을 유지하는 것, 우리 자신에 대하여 정직한 것 및 우리의 천적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갖는 것 역시 우리의 소망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다’는 그의 입장을 절망적인 것으로 보고는 자살하였다. (마태 27:3-5)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는 그의 주인을 세번이나 부인하고도 회복할 수 있었다. (마태 26:75; 요한 21:15-17)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희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할 수 있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 확신하노[라].”—히브리 13:18.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기도는 사실상 희망의 표현이다. 우리는 희망을 기도로 표현함으로써 강화한다. 그리고 또한, 예수께서 항상 우리가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희망을 강화시켜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한다. (누가 18: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우리의 희망이 실현되기를 계속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의 소망은 점점 더 튼튼해질 것이므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고, “기도에 항상 힘쓰”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데살로니가 전 5:17; 로마 12:12.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러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1979 봉사년도 중 희망에서 우러나온 그들의 활동에 관한 보고에서 볼 수 있다.

희망에서 우러나온 활동으로 인한 좋은 소식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잠언 25:25) 참으로 좋은 보고가 금년에 여러 나라에서 들어 왔다. 이것은 참으로 기뻐할 이유가 된다. 왜냐 하면 근년에 여호와의 백성은 심한 시련을 겪어 왔기 때문이다. 특정한 희망이 실현되지 않는 데 대한 실망으로 인해서 시험받는 일이 있었다. 점점 많은 나라에서 국가주의는 증거 사업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실직으로 인해서 경제적인 압력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물질주의, 쾌락 추구, 및 육체적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현대의 경향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예를 들면, 제명 처분만 없었더라면, 미국에서는 1.5‘퍼센트’가 아니라 약 3.5‘퍼센트’의 증가를 보았을 것이다.)

참으로 감사드릴 만한 일로서, 1979 봉사년도 중 인쇄물 배부가 약간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례받은 자 수는 약 19‘퍼센트’ 증가하여 도합 113,672명이었다. 시간도 약 4‘퍼센트’ 증가하였으며 재방문과 가정 성서 연구도 약간 증가하였다. 또한 감사할 일은 ‘나이지리아’와 ‘필리핀’ 같은 나라들의 보고이다. 수년 동안 이러한 나라들에서 증인들의 수자가 줄어들다가 최근 몇달 동안 현저한 증가를 보였다. 한 ‘아프리카’ 나라에서는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수천명의 증인들이 여러 순회 대회에 참석할 수 있었으며 수백명이 침례를 받았다. 그들의 희망은 그들의 어려운 상태에도 불구하고 밝고 튼튼하다.

‘말라위’로부터의 보고는 전반적으로 격려적이다. 우리 형제들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사야 54:17) 1979년이 전환점을 이루어, 비록 우리 형제들 수천명이 아직 국경 넘어 ‘모잠비크’의 난민 수용소에 남아 있긴 하지만, 이 나라에 있는 우리 형제들 대부분은 석방되었던 것이다. 최근에 정부 관리들은 납세를 강조하고 있어서 이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당원증 보다 세금 영수증이다. 이 일은 증인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질적으로 궁핍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 마련도 있었다. 여러 곳에서 형제들은 지역 사회 사업에서 열심히 일함으로써 선한 평판을 얻고 있다. 순회구 수와 가정 성서 연구수가 증가하였으며 침례자도 증가하였다.

‘브라질’에서는 희망에서 우러나온 활동으로 인해서 증인 수가 사상 최고로 106,970명에 달했으며 기념식 참석수도 사상 최고로 299,453명이었다. 한 해 동안 총 9,387명이 그들의 헌신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았다. ‘홍콩’은 10‘퍼센트’ 증가를 보았으며 ‘이탈리아’는 8‘퍼센트’ 증가하여 증인수는 총계 77,774명에 달하였다. 일본은 10‘퍼센트’의 증가를 보여 최고 전도인 수가 50,473명이었다. 미국과 영국 같은 나라들에서 많지는 않지만 금년에 증가한 것을 보는 것 역시 행복한 일이다. 도표를 참조해 보면 기타 여러 나라들에서도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독일에서는 작년보다 수백명이 더 침례를 받았다.

1979 봉사년도 보고에서 가장 격려적인 점은 ‘파이오니아’ 특히 보조 ‘파이오니아’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후자는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서 한 달에 60시간을 바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은 점점 탐익으로 흐르는 세상의 경향에도 불구하고 매우 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기 희생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작년에 일본에서는 ‘파이오니아’가 최고 15,194명에 이르렀으며 이 수는 그 당시 총 증인수의 30‘퍼센트’ 이상에 해당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보조 ‘파이오니아’ 수에서 작년보다 46‘퍼센트’ 증가하였다. 한 증인은 ‘택시’ 운전사로서 생계를 위해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일하지만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그는 성서 연구 보조서를 차 뒷좌석에 놓아 둔다. 종종 그 결과로 증거할 기회가 생긴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한 달에 서적을 142부나 전할 수 있었다. 또한 한국에서는 평균 매달, 중립적인 입장 때문에 투옥되어 있는 형제들 중 15‘퍼센트’가 보조 ‘파이오니아’ 활동을 하고 있다.

증거 사업의 이 분야에서 격려적인 보고를 보내는 기타 나라들 중에는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이 있다. 영국에서는 몇명의 어린 자녀가 딸린 어머니들이 가사를 조정하여 년 중 6내지 9개월을 이 봉사에 바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자녀를 여섯, 일곱, 심지어는 열명까지 둔 어머니들이 이 봉사를 해 내고 있다. ‘뉴우펀들랜드’에서 한 어머니는, 남편이 실직자이고 7명의 자녀들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세속 직장에서 하루에 여덟 시간씩 일하는 데도 불구하고, 한달간 그러한 봉사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인쇄된 지면이 희망을 제시하다

한 장의 전도지가 진리에 굶주린 사람으로 하여금 증인이 전하는 성서의 소망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가? 실제로 그렇다. 남‘아프리카’의 ‘세소타’에서 한 증인은 호별 방문을 하던 중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전도지를 읽고, 그 결과 증인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던 한 여인을 만났다. 그는 증인들의 “교회” 성원이 되고 싶어했는데, 그 이유는 그 전도지를 읽어 보니 증인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였기 때문이다. 그와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고, 일년 후에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고 침례를 받았다.

잡지 한 부를 읽는 것이 사람에게서 소망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는가? 이 역시 그렇다. ‘포르투갈’의 한 죄수는 우연한 기회에 「깨어라!」 잡지를 처음으로 받게 되었다. 그의 반응은 어떠하였는가? 그는 그 곳 지부에 이렇게 편지하였다. “친애하는 선생님들: 나는 「깨어라!」 잡지를 처음으로 읽어 보았읍니다. 그래서 이 훌륭한 잡지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 잡지는 비정치적이고, 인도주의적이고, 일백 ‘퍼센트’ 현실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읍니다. 참으로 내가 느낀 바를 모두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내가 여가 시간을 「깨어라!」와 같은 잡지를 읽는 데 바쳤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겠는가를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그랬더라면 나는 나를 교도소 철창 안으로 들어오게 만든 행로와는 다른 행로를 걸었을 것입니다. ·⁠·⁠· 여하간에 나는 「깨어라!」지의 귀중한 도움으로 내 인생을 위해서 새로운 행로를 걷기 시작하는 일에 성공할 것을 확신합니다.”

다음의 경험담을 보면 단 한 부의 서적을 읽는 것 역시 사람들에게 성서에 기초한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멕시코’에서, 마약 상용자로서, 신체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비참한 모습이 된 한 젊은 여인이 형무소를 방문하고 있던 한 증인에게 담배를 좀 달라고 부탁하였다. 담배 대신에 그에게 「진리」 책 한 부를 주었다. 사정상 그를 재방문 할 수 없었지만 그에게 서적을 준 증인은 일년 후에 그를 길에서 만났다. 그는 매우 행복해 하였다. 그는 마약 습관을 극복하였었으며 이제 증인과 연합하고 있었다. 그는 그 책을 대단히 좋아했었기 때문에 그 책 발행인들에게 연락을 했고 증인들과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으며, 오래지 않아 헌신하고 침례를 받았던 것이다.

특히, 아름다운 그림이 들어 있는 「나의 성서 이야기 책」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는 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가 되어 왔다. 그에 관하여 중앙 ‘아메리카’의 ‘벨리즈’에서 온 이러한 보고가 있다. “「나의 성서 이야기 책」이 ‘벨리즈’에서 선풍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80세 된 한 노인은 그가 배운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최근 나는 내가 아직 소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사람들이 증인에게 다가와서 ‘우리 이웃이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책 한 권’을 달라고 하는 일을 흔히 볼 수 있읍니다. 전에는 전혀 듣지 않던 사람들이 책을 달라고 하고 있읍니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것은 갖고 싶은 책이 되었읍니다.” 경험이 많은 한 ‘나이지리아’ 증인은 비슷한 취지로 이렇게 말하였다. 그것은 “벗과 원수 모두에게 흥미를 끄는 책입니다 ·⁠·⁠· 나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들 집에 찾아와서 책을 달라고 하는 것을 보았읍니다 ·⁠·⁠· 전에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기네 집 문 앞에도 서지 못하게 하던 사람들까지도 찾아와서 책을 달라고 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 구역에서 그것은 ‘갖고 싶은 책’으로 알려졌읍니다. 학교 교사들이 그 책을 좋아합니다 ·⁠·⁠· 문맹자들까지도 그것을 갖고 싶어합니다.”

8세된 ‘오스트리아’ 소녀는 협회에 이렇게 편지하였다. “「나의 성서 이야기 책」을 제가 얼마나 재미있게 보았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특히 인상적인 그림들을 몇번이고 들여다 보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어요. 이야기들은 모두 훌륭해요. 저는 책 전체를 다 읽었고 이제 성귀들을 모두 찾아 가며 다시 읽기 시작했지요. 저는 또 선생님에게 그 책을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 또 여자 친구 아이들에게도 읽어 주고 있답니다. 그 책에 대해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드리고 싶어요.”

일본의 한 증인은 직장에 같은 차를 타고 출근하는 그의 회사 사장에게 「성서 이야기」 책을 소개하였다. 그 책을 주의 깊이 읽어 본 후에 그는 종업원들을 위해서 300부를 주문하였다. 그는 그 책을 종업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가족들과 함께 읽어 보라고 권하였다.

‘나이지리아’에서 한 증인은, 그가 일하고 있는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성서 이야기」 책을 37부 전할 수 있었다. 15세 된 한 증인 소녀는 교사들과 동료 학생들에게 400부 이상을 전하였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어떤 ‘프로테스탄트’교 목사는 「성서 이야기」 책을 대단히 좋아하여 그의 교회 성원들을 위해서 그 책 50부를 주문하였다. ‘뉴우요오크’에서는 일요 학교의 한 여교사가 그의 학생들과 벗들을 위해서 60부를 주문하였다.

‘피지’에서 한 젊은이가 「성서 이야기」 책을 한 부 구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섬으로 가지고 갔다. 몇주일 후에 한 증인이 방문하였을 때, 15명의 일단의 어린 아이들이 그 젊은이에게 배운 것을 자기에게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라디오’의 성서 ‘퀴즈 프로’ 제작자 한 사람은, 이 책을 읽어서 유익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제 사람들은 그 ‘퀴즈’를 맞추기 위해서 책들을 주문하고 있다.

「청소년기—보람있게 사용해야 할 시기」 책 역시 ‘피지’에서 잘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가족을 거느린 한 자매는 협회의 영어 출판물들을 자국어로 번역하여 지방 ‘라디오’ 방송국에 제공함으로써 얼마의 증거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당신의 의복과 태도는 당신의 인격을 나타낸다”라는 장이 번역되어 방송이 되자, 그 자매는 이 내용의 출처인 「청소년기」 책을 보내 달라는 40건의 주문을 받았다. 사람들은 이제 그 자매 집을 찾아와서 성서 연구를 부탁하고 있다.

‘에쿠아도르’의 두명의 선교인은 늘 학교들을 방문하여 학생들과 이야기할 수 있게 해 달라는 허락을 청한다. 9개월 동안 그들은 「청소년기—보람있게 사용해야 할 시기」와 「사람은 진화되었는가 혹은 창조되었는가?」 책들을 5,817부 전하였다.

인쇄된 지면들은, 진리에 굶주린 사람들이 견고한 기초를 가진 희망을 얻도록 돕는 일에 활기차게 계속 사용되고 있다.

성서의 소망이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시키다

왕국 희망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은 성서 시대의 사람들을 온갖 악행에서 “씻”겨 주었다. (고린도 전 6:9-11) 다음의 경험담들이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오늘날도 그러하다.

‘스웨덴’에서, 한 증인은 문간에 “부재자” 쪽지를 남겨 두었던 집의 주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 사람은 집안에 있었지만 너무나 침울한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문에서 찾는 소리에 응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건강하게 영원히 산다”라는 제목의 쪽지를 읽어 본 후, 그는 증인에게 즉시 방문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 사람은 그 날 아침에 대단히 침울한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연발 권총을 장전하고 증인이 방문하였을 때는 자살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건강하게 영원히 계속 사는 것’에 관한 그 쪽지를 읽고 나자 그의 생각이 달라졌던 것이다. 그 증인은 그를 왕국 소망으로 위로해 줄 수 있었으며, 그는 「파수대」와 「깨어라!」 잡지를 예약하였다.

‘캐나다’에서, 최근에 증인이 된 한 부인은 옥살이를 하고 있는 자기 아들에게 누군가가 증거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는 난폭한 ‘알코올’ 중독 범죄자임이 판명되어 무기 징역을 선고받아, 그가 감옥에서 나올 가망은 없어 보였다. 교도관들은 증인 장로들에게 그 사람에 대해서 조심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왕국 소망에 대해 매우 좋은 반응을 나타내었으며, 그리하여 그는 옥살이 19년만에 가석방되었다. 그는 가석방 사무실의 심사를 항상 받게 되어 있다. 이제, 그는 결혼하여 매우 조용하고, 명랑하고 행복한 아버지가 되어, 아무도 그가 한 때 난폭한 ‘알코올’ 중독자였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된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 한 증인은 호별 방문을 하다가, 늦은 오후가 되었는데 아직도 잠자리에 누워 있는 한 젊은 남자를 만났다. 그는 인생살이에 실망하여, 자살을 하는 대신 ‘알코올’과 마약을 사용해 왔었다. 그와 정기적으로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두번째 연구를 하고 나자 그는 흡연을 중지하였다. 세번째 연구 후에는 덥수룩한 수염을 깎아 버렸다. 얼마 후 그는 다른 문제들도 극복하였다. 최근의 한 순회 대회에서 그는 생애에서 언제가 최상의 순간이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어제 침례받는 순간이었다고 대답하였다.

‘산 소망’이 사람들로 하여금 결혼 생활을 바로 잡도록 어떻게 돕는가를 중앙 ‘아메리카’의 ‘벨리즈’에서 들어온 두 가지 경험담이 알려 준다. 증인들이 호별 방문을 하던 중 한 남자와 동거 생활을 하고 있는 여인에게 「행복한 가정 생활을 이루는 길」이라는 책을 전하였다. 즉시 그들은 그 책을 함께 읽기 시작하였으며, 성귀들을 찾아 보는 데 많은 시간을 바쳤다. 그 다음 방문 때 증인들은 「가정」책이 방 가운데 있는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여자는 창세기 2:24 전체 즉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라는 귀절을 베껴 놓았다. 증인들이 다시 방문하였을 때 그 여자는 자기가 이제 ——의 부인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의 남편은 기쁘게 증인들을 환영하였으며, 가정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역시 이 나라에서, 25년 동안 한 남자와 동거하면서 아홉 명의 자녀를 낳은 한 여자가 있었다. 왕국 소망과 그 요구 조건을 알게 되자, 그 여자는 남자에게 자기와 정식으로 결혼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가 거절하자 아홉명의 자녀를 전부 데리고 그 남자에게서 나왔다. 회중의 장로들은 그를 영적으로 계속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그가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들을 양육할 수 있는 길도 마련해 줄 수 있었다. 성서에 소망이 사람들의 생활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박해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널리 전파됨

오늘날 많은 여호와의 증인들은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의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리라].”—고린도 후 4:8, 9.

여호와께서 우리 시대에 그러한 도움을 베풀고 계심을 박해가 매우 심한 ‘아프리카’의 한 나라로부터 들어 온 다음과 같은 보고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체포되었을 때 경찰은 우리 인쇄물, 성서, 서적 및 잡지들을 모두 압수하였읍니다. 후에 다른 지역에서 온 정치범들이 우리 수용소로 이감되었을 때, 우리는 놀랍게도 그들이 우리 출판물 얼마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뻤읍니다. 경찰은 그들이 형제들에게서 압수한 서적들을 이득을 보기 위해 팔기로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이 정치범들도 그 서적들을 우리에게 기꺼이 팔고자 하였읍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나는 인쇄물을 상당히 공급받을 수 있었읍니다. 표지 뒷 면에 내가 아는 형제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제 그곳 옥 중에서 그에게서 압수한 인쇄물로부터 유익을 받게 되었을 때 내가 얼마나 행복해 하였겠는가 상상해 보십시오!’

지난 해에 한 ‘아프리카’ 나라에서는 새로운 법이 통과되어 승인받지 않은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엄격한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의 증인들은 두려워하여 중단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지난 한 해 동안 2,000여명의 새로 헌신한 사람들이 침례를 받았으며, 전 시간 전파자들 수는 신기록에 달하였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근 30,000건의 성서 연구가 사회되고 있다.

증인들의 활동이 금지되어 있는 또 다른 나라에서는 네 명의 형제들이, 통치자로서 인간보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이유로 넉 달 동안 옥살이를 하였다. 석방된 후에 그들 중 두 명은 직장을 잃었다. 이 중 한 사람은 소규모 식료품업을 시작하였으며 그것으로 그는 현재 보조 ‘파이오니아’를 정기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회중의 다른 네 사람이 그의 이러한 본에 자극을 받아 그와 함께 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박해가 매우 극심하여 수백명이 투옥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 자유로운 사람들은 두려움없이 활동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 지역에서는 침례받은 사람이 단 세명 밖에 없는데도, 7명의 전도인이 증거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집회에 60명이 참석한다. 한 형제는 약 40명씩을 한 집단으로 묶어 168명의 사람들과 연구를 하고 있다.

어떤 나라들에서는 형제들이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시험에 더하여 반대자들은 국가주의 뿐 아니라 미신과 조상 숭배 문제에 있어서도 형제들을 타협시키려고 한다. 한 형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권총 손잡이로 머리 부분을 주로 얻어 맞았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나에게 힘을 주셨읍니다. 나를 기쁘게 한 것은 그 다음날 박해한 사람들이 우리 집에 다시 찾아 와서 인쇄물을 달라고 하고는 그에 대한 헌금을 한 것입니다.’

왕국 사업이 금지되어 있는 또 다른 나라에서 학교 교사인 한 자매는 학생들의 부모 모두를 자주 방문한다. 그는 자녀들이 보이고 있는 발전, 품행 문제들과 같은 것들을 그들과 토의한다. 이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증거할 많은 기회를 열어 주었으며, 그 결과 그는 가정 성서 연구를 몇건 가지고 있다.

“산 소망” 대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년 세 차례 절기에 함께 모이라고 명령하셨다. 그분은 그러한 모이는 일이 그분의 백성에게 크게 믿음을 세워 주고 희망을 북돋아 준다는 점을 잘 알고 계셨다.—신명 16:16.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러한 본을 따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호와의 백성들은 1979년 중에 순회 대회를 위해서 두 번, “산 소망” 대회를 위해서 한 번 모였다. 각 나라에서는 “산 소망” 대회를 한 대회 내지 90개 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러한 대회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 목적을 이루어 여호와의 백성의 믿음을 세워 주고 소망을 북돋아 주었다. 대회들은 또한 여호와의 이름과 왕국에 대해 웅대한 증거를 하였다. 사실상 그 결과 신문, ‘라디오’, 및 ‘텔레비젼’에서는 호의적인 보도를 해 주었다. 그 보도들은 진리가 사람들의 생활에서 어떤 유익한 변화를 하게 하였는가, 어떻게 “죄수들까지 증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는가를 알리는 이야기들을 특집으로 냈다. ‘텔레비젼’ 방송국들은 침례식을 특집 방송으로 보도했으며 신문들은 그에 관한 사진들과 기사들을 실었다. 한 신문은 ‘여호와의 증인’의 신앙을 받아들여 침례를 받음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연방 교도소의 한 수감자의 사진을 실었다.

참석한 모두는 그들의 영적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풍부한 축복을 받았다. 그리하여 열정적인 한 ‘파이오니아’ 부부는 첫 번째 ‘밀워키’ 대회가 끝나는 날 이렇게 외쳤다. “정말 이번 대회는 우리가 참석하였던 가장 훌륭한 대회였읍니다. 우리는 굉장히 힘을 받았으며 격려를 받았읍니다!” ‘스웨덴’에서 온 한 보고는 이러하다. “대회 중이나 후에 ‘프로그램’의 가치에 대해서 저절로 입에서 나오는 찬사를 이처럼 많이 들은 적이 전에는 없었읍니다. 그것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의 마음에 미쳤으며 명백하고 정곡을 찌르는 충고를 주었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 명백한 지침이다!” 등과 같은 찬사를 누차 들었다.

물론, “산 소망” 대회에 대해서 성서 필자들이 나타내었던 바와 같이 솔직하게 보고하자면, 참석자 모두가 동일한 인식을 나타낸 것은 아니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직도 ‘프로그램’ 중에 복도 주위에서 배회하거나, 형제들이 연단에서 연설을 시작하였는데도 대화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좋은 자리 때문에 몰려드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의 특징이 되어야 하는 사랑과는 조화되기 힘든 일이다.—요한 13:34, 35.

물론, 대회의 가장 큰 축복 중에는 출판물 발표가 있었다. 금요일 아침에 대회 참석자들은 「야고보서 주해」를 받았다. 야고보서를 한 귀절씩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대단한 흥분을 야기시켰다. 그것은 여러 나라에서 오는 이년 동안 신권 학교 교재로 사용될 것이다. 토요일에 대회 참석자들은, 주로 사도 ‘베드로’의 두 서신을 기초로 한 훌륭한 충고를 많이 담고 있는 「가장 가치있는 생활의 선택」이라는 책을 받고 무척 기뻐하였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대회 참석자들은 「사도행전」의 녹음이 담긴 두개의 새로운 ‘카세트’를 받고 뜻 밖의 일에 기뻐하였다.

모두가 크게 감사한 것은 성서 주제들에 기초한 세 개의 ‘드라마’였다. 첫째 것인 “당신은 어떤 행로를 선택하고 있는가?”라는 ‘드라마’로서 ‘애굽’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과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 사이에서 ‘모세’가 결정해야 하였던 선택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두번째 드라마는 “당신은 아버지 없는 아이를 도울 수 있는가?”였다. 그 ‘드라마’를 관람한 모든 사람은 마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의심의 여지 없이, 이 드라마의 교훈의 결과로 회중들은 앞으로, 문자적인 그리고 영적인 과부와 아버지 없는 아이들에게 보다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상적이고 시기에 적절하고 생각을 크게 자극한 ‘드라마’는 “정신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였다. 그 ‘드라마’는 자신들이 오늘날 선택하고 있는 오락의 종류에 대해 조심성이 점점 부족해 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정말로 자신을 분석해 보게 하는 소식이었다.

주어진 연설들 중 훌륭하고 세워 주는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지면 관계상 그 중 몇가지만 다루고자 한다. 「파수대」 및 ‘소망의 사자들’로서 「파수대」와 함께 연합해 온 사람들의 백년간의 기록은 계몽적이었을 뿐 아니라 지극히 격려적이었다. 우리의 양심을 다룬 연설에서는 “그것은 내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일”이라고 경솔하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충고가 주어졌다. 그 연설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그것이 우리 형제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일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로 불결한 세상의 영이 침식해 들어 오고 있기 때문에 기타 연설들은 그리스도인 요구 조건들 즉, 순결함, 자제 및 “거룩한 행실” 등을 강조하였다.

“혼란된 세상에서의 건전한 정신”을 다룬 ‘심포지움’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연설들은 인생에 대한 현실적인 견해를 기르는 일,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형제들과 신임받는 관계를 맺는 일, 우리의 성서에 기초한 소망과 삶의 의지를 강화하는 일 및 자기 생활에서 다양성과 오락을 갖는 일 등의 가치를 강조하였다. “가장 가치있는 생활의 선택”이라는 연설에서 지적된 훌륭한 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발’이 오만함을 나타내었을 때 ‘다윗’을 구원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장애물로부터 건져 주실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우리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형제들은 또한 이 연설에서 상당수가 1975년에 대해 실망한 것에 대해 협회가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 것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하였다.

“그리스도와 같은 겸허—지혜의 길”은 겸허란 자기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겸손하시지만 그분은 한계가 없으시기 때문에 겸허란 말을 그분께 적응시키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어떤 그리스도인이 겸손할지는 모르지만, 사도 ‘베드로’의 경우에서 처럼 자기의 한계를 온전히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시 18:35; 마가 14:27-31, 66-72.

공개 강연, “인류의 유일한 소망—하나님의 흔들리지 않는 왕국”에 담겨진 고무적인 소식 역시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매우 명백하고 격려적인 내용으로 대회를 마치게 한 것은 마지막 연설 “우리는 산 소망으로 고무되다”였다.

금요일 아침에 집집에서 그리고 노상에서 증거하는 일,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 및 대회를 광고한 것 역시 또 하나의 절정을 이루었다. 또한 그것이 증거 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행한 교훈들과 매우 잘 일치하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새로운 전도인들이 호별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으며, 기타 모든 사람들도 왕국을 전파하는 일을 맛보도록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러한 야외 봉사는 특별한 효과가 있으며 그로 인해서 인식이 높아진다. 많은 곳에서, 수천명이 이 활동에 동시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신문과 TV 모두에서 호의적인 평판을 많이 받았다. “「파수대」가 100년 동안 복음을 전함”,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는 일은 사랑의 수고” 및 “15,000명의 증인들이 오늘 「파수대」로 이 지역을 덮다” 등과 같은 표제하에 이 활동을 설명하는 광범위한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어떤 나라들에서는 축소된 ‘프로그램’을 제공해서 더 많은 형제들이 대회 ‘프로그램’을 즐기도록 마련했음도 아울러 알리는 바이다. 더우기, 각 아침 회기와 오후 회기가 시작되기 전에 녹음으로 들려 준 왕국 노래의 훌륭한 편곡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대단한 즐거움을 표시하였다.

“산 소망” 대회는 참으로 “때를 따라 양식”을 제공해 주었다. 증인이든 아니든, “자기들의 영적 필요를 의식하”여 대회에 왔던 모두는 믿음과 소망이 강화되었으며 ‘산 소망’은 더욱 뚜렷해지고 실제적인 것이 되었다.—마태 24:45-47; 5:3, 신세.

[20-27면 도표]

전세계 여호와의 증인의 1979 봉사년도 보고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