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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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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와 인근 섬들

아프리카 대륙은 수십 개의 나라로 나뉘어 있다. 이 나라들은 또 부족과 언어로 나뉘어 있다. 종족간의 폭력 사태는 특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라와 부족과 언어 그룹에서 나와서, 참 하느님 여호와께 대한 숭배로 연합되어 있는 사람들이 63만 6000명 이상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려라” 하고 강력히 권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권고에 인식 깊은 반응을 보인다.—계시 14:6, 7.

지방적 미신과 마술 행위에 빠져 있던 일부 사람들은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그 모든 일에서 벗어났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증인들이 어느 집 대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리더니 상고마(주술사) 예복으로 차려 입은 한 여자가 나왔다. 증인들은 빨리 떠나고 싶었지만, 이 여자는 증인들에게 가져온 소식을 말해 보라고 강권하였다. 그 중 한 증인이 신명기 18:10-12을 펴서 영매 행위에 대한 성서의 견해를 보여 주었다. 주술사는 성서 연구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성서 연구를 통해 상고마로서의 행위가 여호와의 뜻에 어긋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면 그 일을 그만두겠노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책 10장을 성서를 사용하여 연구한 다음, 그는 마술 행위와 관련된 소지품 일체를 태우고 나서 왕국회관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법적으로 혼인을 한 사람이었지만 17년 동안 남편과 별거하고 있었다. 이제 그 상황을 바로잡을 필요를 깨달았다. 그 부부는 현재 헌신하고 침례받은 증인이다.

지난 봉사 연도를 전후해서 말라위로부터 가장 고무적인 소식 몇 가지가 들어왔다. 1993년 8월 12일에 말라위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26년간의 금지령이 해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전세계의 여호와의 증인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뒤이어 1993년 11월 15일에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가 법적으로 등록되었고, 1994년 2월 25일에는 여호와의 증인의 서적에 대한 금지령이 해제되었다. 흥미롭게도, 협회가 등록된 지 불과 몇 주 만에, 여호와의 증인을 그토록 잔혹하게 학대해 오던 ‘말라위 청년 파이오니아’(MYP) 본부가 파괴되었다. 그들의 모든 사무실이 폐쇄되고 그들 중 다수는 군대에 의해 색출되어 살해되었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모잠비크로 도망한 사람들도 있었다.

말라위의 형제들은 또다시 집집으로 방문하여 서적을 전하고 가정 성서 연구를 시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협회 서적에 대한 금지령이 해제된 직후인 4월에 전국적인 운동이 마련되어, 전도인들은 그 달에 「여호와의 증인은 무엇을 믿는가?」 전도지를 세 가지 언어로 배부하였다. 100만 장이 넘는 전도지가 배부되었다.

아프리카 서해안 앞바다의 상투메프린시페에 있는 소수의 참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여 성서 연구를 한다는 이유로 30여 년 동안 박해와 구타와 투옥을 당하였다. 그러나 1993년에 종교의 자유가 이 곳 여호와의 증인에게 허용되었다. 그 후 1994년 1월, 그들은 사흘간의 “하느님의 가르침” 지역 대회를 현대식 에어컨 시설이 갖추어진,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강당에서 즐겼다. 대회 프로를 발췌한 내용이 국영 라디오로 방송되기까지 하였다.

자이르의 대법원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법적 지위가 회복된 후, 이 나라에서 또다시 지역 대회를 갖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어떤 반응이 있었는가? 봉사 연도 초에 킨샤사에서 열린 한 대회에서는 경기장이 만원을 이루었으며 참석자 수가 7만 명을 넘었다. 1994년에 열린 처음 여섯 번의 “경건한 두려움” 지역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수는 총 12만 127명이었고, 침례받은 사람들의 수는 1155명이었는데, 이 일련의 지역 대회는 앞으로도 열아홉 번 더 열릴 계획이다.

코트디부아르에 있는 쿠마시프로도모 회중에는 매우 온화한 기질을 가진 형제로 알려진 봉사의 종이 있다. 그러나 그가 언제나 그런 평판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진리를 받기 전에, 그는 과음과 흡연에 나쁜 교제를 하며 문제를 주먹으로 해결하기 일쑤였다. 그를 알던 사람들은 그의 친구가 되든가 아니면 아예 그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와 함께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점차 그는 생활을 변화시켰으며, 얼마 후 침례를 받았다. 그러면 그 변화는 어느 정도였는가? 침례받기 한 달 전에 몇 사람에게 공격을 당하였을 때, 그 점이 시험을 받았다. 그는 보복하지 않았다. 침례받은 지 몇 주 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다시금 그는, 이전의 행로를 따르던 옛 인간성을 벗어 버리고, 정신을 움직이는 힘에서 새롭게 되어, 여호와의 영을 반영하는 새 인간성을 실제로 입었다는 증거를 제시하였다.—갈라디아 5:22-24; 에베소 4:22-24.

아시아와 태평양의 섬들

동양과 태평양의 섬들에서는 51만 4847명의 여호와의 찬양자들 가운데 15만 2343명이 파이오니아로 일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매월 100건의 재방문을 하려고 노력하는 한 파이오니아가 첫 방문에서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재방문하기로 작정하였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서, 그는 호별 봉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기록한 다음, 7일 이내에 다시 방문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호별 증거에 참여할 때마다 재방문도 다섯 건씩 하려고 노력하곤 하였다. 그는 어떤 말을 할 것인지 철저히 준비하여, 전하는 소식에 대한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봉사를 수행하였다. 월말에 보니 재방문 수가 241건이 되었다. 한번은 그와 연구를 시작한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여러분들을 늘 돌려보냈습니다. 내가 들어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사랑에 찬 끈기가 좋은 결과를 거둔 것이다. 월말에 그는 총 열 건의 성서 연구를 보고하였다.

지난 몇 해 동안 많은 외국인들이 특히 아시아로부터 뉴질랜드계속 들어오고 있다. 최근에 한국어 및 타이어 연구 집단이 형성되었으며, 형제들은 얼마 안 있어 오클랜드에 중국어 회중이 형성될 것을 기대한다. 이 곳의 중국계 주민은 5만 명 이상으로 증가하였다고 한다. 웰링턴이나 파머스턴노스 같은 노스 섬의 다른 도시에도 중국인 사회 내에 많은 관심자가 있다고 한다.

일부 성서 연구생들은 진리를 가족과 친척에게 권유하라는 제안에 호응함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타이완의 타이난에서는 한 젊은 주부가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의 집은 대가족인데, 가족 중 여러 사람이 특출한 장로교인이었다. 그는 다니던 교회에서 증인들이 ‘다른 종교를 공격’한다고 비난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그리스도인 특성을 나타내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집회에 가려면 오토바이로 16킬로미터를 가야 했지만 정기적으로 참석하였다. 얼마 안 있어 식구들은 그의 성품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그의 재치 있는 증거의 결과로 올케가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남편이 아내가 배우고 있는 것을 알아보는 데 동의하였다. 다음에는 시동생과 조카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시어머니도 여러 식구들이 배우고 있는 것에 관심을 나타냈다. 이제, 이 젊은 주부는 3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친정 부모에게도 증거하였다. 부모 역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 젊은 주부와 남편 그리고 두 친족이 현재 침례를 받았고, 그 외에 여러 명의 친족이 진리를 배우는 데 잘 발전하고 있으며, 같은 교회에 다니던 한 부부는 전파 활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얼마 전에 교회를 탈퇴하였다. 말과 훌륭한 행실 양면으로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로부터 참으로 축복을 받은 것이다!

1912년에 워치 타워 초대 협회장인 C. T. 러셀이 스리랑카 즉 당시의 실론을 방문하였을 때, 마틸다는 12세에 불과하였다. 「선포자」 책 239면에 있는 사진에서 보면 그가 오른쪽에서 두 번째로 땅에 앉아 있다. 후에 그는 몇 해 동안 남편과 함께 특별 파이오니아로 봉사하였다. 현재 94세이지만 아직도 열심히 증거하고 있다. 최근에 그는 일년 연속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완수하였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약간 걸을 수 있어서, 이웃 사람이나 친구, 친척, 외판원, 우편 집배원 등 누가 찾아오든지 주어지는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증거 활동을 대부분 편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신문의 부고란에서 이름과 주소를 찾아, 그 중 몇 사람에게 편지를 보낸다. 감사를 표하는 답장을 받게 될 때 그는 매우 행복해한다!

한국에서는 증인의 31퍼센트가 정규 파이오니아이며, 또 수천 명이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에 참여한다. 일부 구역은 자주 돌아지고 있다. 하지만 요점 잡힌 한 문장의 말로, 전도인들은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집에서도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듣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가톨릭교인 여자에게 어느 자매는 이렇게 말하였다. “무슨 희망을 가지고 계신지 모르지만”—「평화로운 신세계에서의 생활」 전도지를 가리키면서—“저는 이러한 평화로운 신세계에서 살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연로한 부인이 자기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였을 때 한 자매는 같은 전도지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물었다. “이 그림에서 보여 주는 낙원에서 살도록 초대받으신다면, 그러한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러한 방문은 두 경우 다 가정 성서 연구로 이어졌고, 그 후 집회 참석이 있은 다음, 현재 두 부인은 침례를 목표로 발전하고 있다.

하와이에서는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만날 수 있든 간에 사람들을 만나고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즉 출입을 제한하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사업 구역에 있는 사람들, 거리나 공원이나 해변 등 어디에 있는 사람이든 모두 찾아가려고 한다. 그 결과 회중 구역 지도가 더 필요하며 구역을 더 철저히 돌게 된다. 전화 증거가 결실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한 자매는 출입이 제한된 아파트 건물에 사는 해군인 젊은 남자와 접촉하게 되었다. 자매는 이 남자가 상당한 관심을 보이자 팜플렛을 받아 보게 하였다. 그 후 한 형제가 방문해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책으로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남자는 자기 방짝과 동료 선원들에게 증거하기 시작하였다. 실로, 그는 (한 번에 한 사람씩) 자기 연구에 동석하도록 동료들을 초대하기도 하였다. 몇 주간 연구가 진행된 뒤 그 남자는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는 끝이 오기 전에 어떻게 진리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실까요?” 그 형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접근할 수도 없고 한번도 봉사한 적이 없는 건물에서 당신이 집에 있는 시간에 전화로 당신과 접촉하게 된 것이 우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남자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흥미로운 일이군요. 전화를 받기 바로 전에 저는 성서의 내용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는 길이 있는지를 알고 싶어했거든요.”

증인은 장기간 입원해 있으면서도 계속 증거할 수 있는가? 태평양 한복판에 있는 키리바시의 타라와 섬에 사는 한 자매가 그러한 도전에 직면하였다. 즉시 그는 「“보라”」 팜플렛을 같은 환자들 가운데 받기 원하는 모두에게 전하기 시작하였다. 한 환자는 우리 자매에게 문병객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것을 보고서, 그 사람들이 모두 친척이냐고 물었다. 그 사람들은 회중 장로들을 포함하여 영적 형제 자매들이라고 설명해 주자, 그 여자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여자는 입원해 있는 석 달 동안 자기가 몹시 앓고 있다는 것을 교인들이 알면서도 아무도 자기를 찾아올 만큼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몹시 실망하였다고 솔직히 말하였다. 그 여자는 성서 연구를 요청하였다. 얼마 후에 그 여자의 남편과 어머니도 연구에 동의하였다. 우리 자매는 병원에서 잠시 나와 순회 대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 대회에 같은 환자 한 사람과, 다른 환자들의 가족 몇 명이 함께 참석하였을 때 그 자매는 참으로 기뻤다!

유럽

지난해에, 우랄 산맥 너머 동양까지 뻗어 있는 러시아를 포함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하느님의 왕국에 관해 증거하는 데 2억 4876만 3468시간을 바쳤다. 세계의 이 지역에서 8만 9578명이 여호와께 대한 헌신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았다. 좋은 소식을 가지고 어떻게 이러한 사람들을 찾아가고 있는가?

근년에 수많은 난민들이 벨기에 입국 허가를 받고자 애썼다. 이 때문에 벨기에 형제들에게는 새로운 활동의 밭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지난 삼 년 동안, 480명의 난민을 수용한 곳에서 형제들은 43개 국에서 온 사람들과 160건의 성서 연구를 사회해 왔다. 열 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이 참석할 때도 있다. 관심이 대단하였기 때문에 수용소장은 형제들이 성서 연구를 사회할 수 있도록 특별한 사무실을 마련해 주기까지 하였다.

가톨릭교인으로서 슬로바키아에서 온 한 젊은 난민은 일 주일에 두 번씩 성서 연구를 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어 증거하자,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슬로바키아에 있는 회중을 찾아갔다. 의외로 좋은 인상을 받은 그의 어머니는 성서 연구를 받아들였으며 누이도 그렇게 하였다. 그 청년은 약혼녀에게도 편지하였다. 약혼녀의 언니가 동생을 만류하려고 하였지만 얼마 안 있어 두 사람 다 연구를 하게 되었다. 그 청년이 난민 수용소에서 가족에게 계속 편지를 보냄에 따라, 가족이 모두 그의 편지를 읽게 되었다. 현재 열 건의 성서 연구가 슬로바키아에 있는 친척과 사회되고 있다.

참을성에는 보상이 따른다. 이것은 체코 공화국의 한 자매가 내린 결론이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 년 전에 한 젊은 부인과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부인이 성서 내용을 고려하는 데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지속 시간이 처음 두 달 동안은 10분 내지 15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부인은 연구 날짜와 시간을 여러 번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간이 없는데요’라든가 ‘오늘 연구는 너무 짧군요’라고 부인에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제게도 시간은 매우 귀중하고, 불과 10분 동안 이 연구를 하기 위하여 일 주일에 종종 이틀 저녁이나 소비했음에도 말입니다. 그러나 참을성에는 보상이 따랐습니다. 두 달 뒤, 이 젊은 부인은 연구를 반시간 동안 하자고 하였고, 나중에는 한 시간 동안이나 하자고 제안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즈음에는 모든 집회에 참석하고, 집회 준비를 해서 해설을 하기도 합니다. 부인은 거짓 종교에서 나왔으며 침례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협회의 여호와의 증인—그 이름을 지닌 조직 비디오가 유익하게 사용되고 있다.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사이에 있는 페로스 제도에 사는 한 파이오니아 부부는 그 비디오카세트를 두 개 가지고 있으면서 빌려 주고 있다. 한번은 그 비디오를 보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열네 명이나 되었다. 비디오를 빌려 가는 일부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도 하였다. 여러 해 동안 「파수대」와 「깰 때이다」를 예약해 온 어느 퇴직 교사가 그 비디오를 빌려 갔다. 그 형제가 비디오를 회수하려고 다시 찾아갔을 때, 그 남자는 매우 열정적으로 자기가 마을 주민 열네 명에게 비디오를 보여 주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형제는 비디오를 받아올 수 없었는데, 그 남자가 이미 이웃 마을에 사는 여자에게 빌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후에, 형제는 그 여자가 자기 마을 주민 열다섯 명에게 비디오를 보여 주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부활절 때, 이 퇴직 교사는 또 여섯 명에게 비디오를 보여 주었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한 어부가 비디오를 빌려 갔다고 한다. 이 전직 교사는 그 어부에게 동료 선원 열한 명 모두에게 보여 준다는 조건으로 비디오를 건네 주었던 것이다.

핀란드에서 한 장로는 어느 날 아침에 야외 봉사를 위한 모임을 사회하면서 집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 봉사할 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실지 모르지만, 우리가 봉사한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여호와께서 우리를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구역에서, 이 장로는 자기들이 지나치고 있는 어떤 집을 방문해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일었다. 봉사 짝은 그 집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말하는데도 장로는 어쨌든 가고 싶어졌다. 그들은 한 부인을 만났는데, 그 부부는 불과 얼마 전에 이사 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형제들이 부인에게 자기들은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말하자, 부인은 형제들에게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청하면서 남편이 곧 집에 돌아올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형제들이 들어가자 부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이제 막 이 마을로 이사 왔기 때문에, 저는 하느님께 여호와의 증인 한 사람을 우리에게로 인도해 달라고 방금 기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쩌면 그렇게 빨리 올 수 있었습니까? 불과 10분 전에 기도했는데요.” 집에 들어온 남편 역시 관심을 보였으며, 즉시 그 부부와 연구가 시작되었다. 발전이 빨랐다. 그 부부는 1994년 5월에 침례를 받았다.

영적 관심사를 물질적인 관심사보다 앞세우기로 확고하게 결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장성으로 자라가는 데 중요한 단계이다. 지중해의 어느 항구에서 일하는 프랑스의 어부 자크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자크는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를 연구해 온 지가 불과 얼마 안 되었다. 그는 여름 지역 대회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마침 그 시기가 연중 성어기의 한창 때와 겹치게 되었다. 그 시기에는 대부분의 어부들이 어획고를 올리기 위해 밤낮으로 일한다. 더욱이 자크는 자기 배에 열두 사람을 고용하고 있었다. 한철에 며칠 동안 고기를 잡지 않겠다는 점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자크는 바보 취급을 당하고 많은 조롱을 받았지만, 확고하게 영적인 것을 첫째 자리에 두고서 아내와 두 어린 아들을 데리고 대회에 참석하였다.

대회가 끝난 뒤 월요일에, 자크는 배에 선원을 다시 태우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그물을 끌어당겼을 때, 그들은 평소의 어획량인 300킬로그램 정도의 정어리가 아니라, 일 톤에 가까운 도미를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 매우 비싼 고기여서 값어치도 대회 기간에 빠뜨린 며칠 동안 잡았을 고기 값의 다섯 배나 되었다! 그 마을 어부 중 아무도 이전에 그만한 어획고를 올린 사람을 기억할 수 없었다!

한 젊은이가 겨울철 스키 휴가 중에 증거를 받았다. 별 관심은 없었지만, 그 젊은이는 네덜란드의 자기 고향에 가면 집회에 참석해서 과연 어떠한 곳인지 좀 알아볼 결심을 하였다. 몇 주 동안 회중 서적 연구 집회에 참석하고 나서, 그 젊은이는 「영원히 살 수 있다」 책을 사용하여 성서 연구를 하기로 동의하였다. 몇 달 후에는 일요일 집회도 참석하였다. 하지만 여호와를 섬기려는 결심에 있어서는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 그 젊은이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이 성장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성서—정확한 역사, 믿을 만한 예언 비디오를 보았을 때 큰 영향을 받았다. 그 젊은이는 비디오를 한 주간 더 빌릴 수 있는지 물었다. 마침내 그 젊은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은 참으로 계시며, 성서는 그분의 말씀입니다.” 그 때부터 발전이 빨랐으며, 지금은 열심 있는 여호와의 증인이다.

중앙 및 남아메리카

세계의 이 지역은 참으로 제자를 삼는 열매를 많이 맺는 밭이 되었다! 지난해에, 161만 3268건의 가정 성서 연구가 이 지역에서 사회되고 있었으며 9만 1126명의 연구생이 발전하여 물침례를 받았다.

볼리비아의 안데스 산맥 고지에 있는 티티카카 호 근처에서 증거한 결과, 우리 형제들은 몇 가지 매우 훌륭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타왈파니라는 시골 마을에서 형제들은 자신들을 여호와의 증인으로 소개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말하곤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름을 갖게 된 이유를 물었을 때 그들은 사도 1:8을 언급하면서 대답하였다. 이 그룹의 목회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여호와의 증인이란 이름의 성경적 근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적극적인 토의가 있은 다음, 전도인들은 이 그룹을 코르파에 있는 왕국회관으로 초대하였다.

몇 주가 지나, 이 그룹에 속한 목회자 세 명이 정말로 왕국회관으로 찾아왔다. 집회 후, 그들은 장로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눈 다음 장로들에게 자기들의 집회 장소에 와서 성서의 가르침을 좀더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장로들은 ‘아마겟돈’, ‘누가 하늘로 가는가?’, ‘지상 낙원’에 관하여 심포지엄 연설을 준비하였다. 약 50명의 교인들이 참석하였다. 연설이 모두 끝나자, 그 그룹의 사회자가 입을 열어 참석자 모두에게 그들이 ‘잘못 인도되어 거짓 종교를 실천해 오고 있었다’고 알리는 것이었다. 그 모임이 끝난 뒤 목회자들과 다른 몇 사람이 형제들을 따뜻하게 에워쌌다. 이 그룹의 성원들과 여러 건의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글을 쓸 즈음에는, 그들 중 25명이 이미 침례받은 증인이 되었으며 또한 10명이 성서 연구에서 잘 발전하고 있었다. 이 그룹의 진실한 사람들이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진리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마침내 발견하였음을 깨달았을 때 그들이 느꼈을 기쁨을 상상해 보라!

엘살바도르의 동부 지역에서, 형제들은 좋은 소식을 전파하기 위하여 시골 구역의 가장 먼 곳까지 갈 계획을 세웠다. 좁은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몇 시간 걸은 후에 형제들은 전에 가본 적이 없는 작은 벽촌에 도착하였다. 한 집에서, 열한 살 된 눈먼 소년이 문간으로 나와서 잠시 귀를 기울였다. 그러더니 형제가 깜짝 놀라게도 그 소년은 “저는 여호와의 증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정말 증인이었는가? 소년이 노래 32번 “집집으로”를 부르기 시작하였을 때 전도인은 너무 놀랐다! 소년은 그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었다. 소년은 다른 노래도 할 수 있다고 하고는, 즉시 105번 “여호와의 장자를 환호하라!”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소년은 형제에게 지상 낙원에 관해 설명하였다. 그처럼 외딴 곳에 사는 이 소년이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배웠는가? 읽을 줄도 모르는 다른 어린 소년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 어린 소년의 어머니가 큰 도시에서 어느 증인 가족을 위해 일하였는데, 그 어린 소년은 어머니를 따라 왕국회관의 집회에 따라갔었다. 그들이 자기들이 사는 작은 마을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 어린 소년은 눈먼 자기 친구에게 들은 것을 전부 이야기해 준 것이다. 현재 이 눈먼 소년은 큰 마을로 이사하였고, 그 곳 형제들은 소년이 진리 안에서 더 발전하도록 열심히 돕고 있다.

브라질 북부에서 한 특별 파이오니아는, 자기들이 임지에 도착해서 알고 보니 주말에는 버스 운행이 없기 때문에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10킬로미터를 걷는 전도인이 네 명이나 있었다고 기술한다. 파이오니아들은 그 전도인들이 사는 마을에서 집회를 갖기로 하였다. 첫 일요일에 40명이 참석하였다. 두 번째 집회에는, 집 안에 있는 사람 수는 같았지만 집 밖에도 하느님의 회중 교회의 목회자가 그의 교인 15명과 함께 와 있었다. 그들은 안으로 초대받았지만 밖에서 듣기를 원하였다. 그 파이오니아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집회가 끝난 뒤, 저는 나가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질문에 대답해 주었습니다. 저는 목회자에게 저 역시 그 사람처럼 한때는 목회자였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목회자는, ‘그렇다면 어떻게 이제 와서 여호와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의 질문에 대답해 주려고 그를 우리 집으로 초대하자 그는 응하였습니다. 몇 주 만에 목회자와 그의 교인 몇 사람이 자기 교회를 탈퇴하고 우리와 함께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마을에서 가진 첫 기념식에 140명이 30분 일찍 나타났다. 유감스럽게도 확성 장치를 구할 수 없었다. 가톨릭교인인 한 부인이 자기 교회에서 장비를 빌려 보겠다고 제안하였다. 부인이 사제에게 그러한 요청을 하자, 사제는 “여호와의 증인을 위해서 말입니까?”하고 물었다. 부인은 “아닙니다. 증인은 여덟 사람밖에 없어요. 거기에 모인 100명이 넘는 가톨릭교인들을 위해서 확성 장치가 필요한 것이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한 설득은 효과가 없었다. 한 프로테스탄트교인도 비슷한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전도사는 “여호와의 증인을 위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하였다. 부인은 이렇게 주장하였다. “나와, 교회의 나머지 성원들도 그것을 위해 헌금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도 사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한 주장에 어쩔 수 없이 전도사는 장비를 빌려 가게 하였다. 그 기념식이 있은 뒤 새로운 성서 연구가 많이 시작되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이 외딴 곳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실제로 돕고 있는가를 이야기하였다.

어느 날 오후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던 한 증인 자매가 옆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전파할 방도를 찾고 있었다. 그 증인은 인간 사회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도 어떻게 적응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 부인은 호응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가 남편에게 하는 말이 바로 그 점인데, 그이는 어리석어요. 우리 아이들을 구식으로 양육하려 들거든요. 그이는 여호와의 증인이랍니다.”

전도인은 자신이 증인임을 밝히지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알고 있는 증인들은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말씀해 주시지요. 남편이 술주정꾼인가요?” 부인이 “아, 그렇지는 않아요!” 하고 응답하자, 우리 자매는 그 말을 받아서 정곡을 찌르는 이런 말을 연이어 하였다. “그렇다면 마약 중독자인가요?” “여자에 빠져서 늘 밤늦게 돌아오는게 틀림없군요.” “그럼, 아이들에게 나쁜 말을 가르치나요?” “알겠어요. 부인이 직장에 나가 남편을 부양해야 되고, 남편은 집에 있는 거군요?” 각 질문에 대해 단호히 “아니에요!”라는 대답과 함께, 종종 남편의 훌륭한 특성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증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도대체 남편의 잘못이 무엇인가요?”

부인은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글쎄요. 문제는 그이가 회관에서 두 시간 동안 열리는 집회에 아이들을 데려가는거죠.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다시는 그런 곳에 데려가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러한 집회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나오나요?” 하고 증인이 물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물었다. “자녀들이 그러한 집회에 가지 않으면, 무엇을 하게 될까요?” 또다시 증인은 부인이 다음과 같이 추리해 보도록 돕고자 하였다. “부인은 자녀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보다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 엄청난 폭력·전쟁·살인 장면이나 부도덕한 연속극을 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말이죠” 하면서 증인은 이렇게 말을 이었다. “주위에는 아리따운 여성, 남편감을 찾는 직업 여성이 많습니다. 그들은 남편을 있는 그대로, 즉 온갖 결점을 가진 채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남편이 술주정꾼이거나 마약 중독자이거나 성생활이 난잡한 사람이 되어 버리거나, 아내에게 에이즈 같은 질병을 옮겨 아내를 비참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부인의 남편은 성인 군자 같은데, 그런 남편을 몰라보세요? 사실, 나로서는 댁을 이해하지 못하겠군요. 그런 남편이 싫으시다는데, 저라면 좋아할 겁니다! 저는 그런 타입의 남편을 찾고 있거든요. 그런 남편이 저더러 ‘[왕국]회관에 갑시다’라고 한다면 저는 ‘갑시다!’ 할 것이고, ‘아이들도 데려가야 돼요’ 한다면, 저는 기뻐할 겁니다. 부인이 가지고 계신 것을 소중히 여기셔야지요.” 부인은 역에서 내릴 때 미소를 지으며 증인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우리는 그 부인도 집회가 어떠한 곳인지 알아보라는 제안을 따랐기를 바란다.

파라과이에 사는 한 자매의 경험은, 우리가 대회에 참석할 계획을 세울 때 여호와를 신뢰하면서 행동하는 것이 지혜로움을 예시한다. 그 자매가 참석할 대회는 580킬로미터 떨어진 수도에서 열리게 되어 있었다. 우리 자매는 어린 자녀가 다섯인데, 남편은 몇 년 전에 그를 버리고 떠났으며, 돈이 너무 없었다. 그런데도 자매는 모든 자녀와 함께 대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힘껏 저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출발할 날이 되었는데 차비가 여전히 모자랐다. 자매는 어떻게 할 수 있었는가? 사는 곳이 작은 마을이라서 인정이 통하기 때문에, 자매는 다섯 자녀를 데리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자매는 검표하는 사람에게 자녀와 함께 수도까지 여행해야 하는데 차표를 두 장 살 돈밖에 없다고 설명하였다. 기쁘게도, 검표원은 자녀들과 함께 버스에 타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버스가 출발한 후 차비를 받을 때 그는 단지 차표 한 장 값, 자매의 차비만을 내라고 하였다. 이 버스는 그 마을에서 가장 값비싼 고급 버스였다. 그 가족은 순회 대회에서 영적 양식을 섭취하는 일을 빠뜨리지 않을 수 있게 되어 매우 감사하게 여겼다!

북아메리카와 카리브 해의 섬들

세계의 바로 이 지역에서 여호와의 현대 지상 조직이 110여 년 전에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좋은 소식의 광범위한 전파 활동이 이 곳에서 수행되어 왔지만, 수확하는 주인은 그 일이 끝났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실로, 지난해에 수만 명이 이 지역에서 침례를 받았다.

그레나다에서 한 파이오니아는 지난달에 몇 차례 봉사한 구역을 또다시 돌아야 한다는 생각에 좀 낙심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었는가? 그 자매는 이렇게 기술한다. “그 날 아침에 로셀(16세 소년)을 방문하였을 때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가 어디가 불편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후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것은 자기의 기도가 그토록 빨리 응답될 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글쎄, 일 주일 전에 그가 하느님께서 올바른 숭배 방법을 보여 주시기를 진실하게 기도하였는데, 그 때 제가 여호와에 관해 이야기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 달 내에, 그는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모든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독서를 좋아해서, 두 달이 지날 무렵에는 「‘당신의 뜻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이다’」(영문), 「‘열국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어떻게?」(영문), 「계시록—그 웅대한 절정은 가까왔다!」, 「하나님을 찾으려는 인류의 노력」, 「추리」 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1991 연감」과 「1992 연감」, 구할 수 있는 대부분의 팜플렛, 그에 더하여 최근호 「파수대」와 「깰 때이다」 잡지도 다 읽어 보았습니다. ·⁠·⁠· 그는 지난 7월 지역 대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실로 시편 145:18에 나오는 시편 필자의 말이 참됨을 깨달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흥미롭게도, 로셀은 그 건물의 지하실에서 이 년 동안 살고 있었다. 그 기간에 구역을 자주 돌고 있었는데도 로셀이나 그의 큰 이모는 증인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구역을 철저히 도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안티과에서 열린 “경건한 두려움” 지역 대회장에 마지막 날 도착한, 새로 연합한 한 여자는 대회 회관 입구 근처에서 승용차에서 내리게 되었다. 얼마 후 그 날 오전에 그는 동부 카리브 해의 화폐로 2000달러(약 60만 원)가 든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에서 내리기 바로 전에 지갑을 마지막으로 본 기억이 났다. 걸어온 길을 주의 깊이 되돌아가 보고 주차 안내인과 함께 살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를 초대한 증인 자매는 “여호와의 증인은 정직하고 사랑을 나타내기 때문에 지갑이 주차장이나 대회 회관에서 발견된다면 증인들은 돌려줄 것”이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이튿날 아침, 이 여자는 자기가 수취인으로 되어 있는 수표가 지갑 속에 있었던 생각이 나서 수표를 발행한 사업체로 전화를 걸었다. 깜짝 놀라게도, 그 여자 실업가는 이렇게 감탄하는 것이었다. “한 여호와의 증인 남자가 전화를 걸어 왔는데, 내가 댁을 아는지 그리고 자기가 댁을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어제 댁의 지갑을 자기네 대회장 밖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 여자는, 여호와의 증인은 참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전보다 더 확신하게 되었다.

병에 걸린 식구를 돌보는 일은, 전 시간 봉사를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든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다. 알래스카에 사는 한 자매는 언제 도움을 필요로 할지 모르는 딸의 건강 문제가 있었지만 계속 파이오니아 봉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 때문에 야외 봉사가 집에서 하는 전화 증거로만 제한받게 되었다. 그 후,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한 끝에 야외 봉사를 하는 동안 무선 전화를 휴대하기로 작정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집에서 나와 있으면서도 원할 때 “통화”할 수 있었다. 그는 28년간 파이오니아 봉사를 즐기고 있으며, 그 귀중한 특권을 내놓고 싶어하지 않는다.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제도의 세인트크로이 섬에 사는 한 자매는 갓난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푸에르토리코로 데려가야 하였다. 어느 날 수간호사는 그 자매를 자기 사무실로 들어오게 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어떻게 석 달 동안이나 매일 아이를 보러 와서 이렇게 할 수 있으시죠? 호텔 비용이 엄청날 텐데요. 다른 어머니들은 모두 섬에서 와서 아이를 여기에 남겨 두고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답니다.” 그 자매는 병원 교섭 위원회에 관해 알려 주었고, 어느 부부가 자기를 데려다가 그 집에 머물게 해주고, 돌봐 주며, 병원까지 차편을 제공한다는 것 등등을 설명해 주었다. 그 간호사는 자매가 전부터 그 사람들을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자매가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형제들이지요”라고 대답하자, 간호사는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실로, 의료진 모두가 감명을 받았다. 수간호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종교야말로 오늘날 세상에 필요합니다.”

‘보십시오! 밭이 희어져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봉사의 직무를 훈련시키시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그 직무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그것을 수확에 비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십시오. 희어져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요한 4:35)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습니다. 그러므로 수확하는 주인에게 수확하는 일에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십시오.” (마태 9:37, 38) 그러한 말씀은 오늘날 참으로 적절하다!

지난 봉사 연도의 보고는 많은 나라에서 기쁨에 넘친 여호와의 찬양자들을 풍성하게 수확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20퍼센트 이상의 증가를 보고한 나라들 가운데는 알바니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앙골라, 모잠비크가 있다.

여러 가지 유리한 사태 발전이 모잠비크에서 1994 봉사 연도 중에 크나큰 신권적 확장을 촉진하였다. 그 중에서 주된 요인은 이웃 나라들, 특히 말라위에서 돌아오는 난민들의 대량 유입(流入)이었다. 모잠비크 전국에 순회구가 열 개밖에 없던 1993년 중에 네 개의 온전한 순회구가 돌아온 셈이다. 다른 요인은 전시 상황 때문에 조직으로부터 통신이 두절된 회중들을 재조직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더 많은 관심자들이 헌신과 침례의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잠베지아 주 밀란제 시에서 1993년 11월에 순회 대회가 열렸다. 기쁘게도, 토요일 오전에 참석한 2023명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505명의 침례 지원자가 일어서서 연사가 제시하는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하였다. 그런 다음, 아름다운 음라녜 산을 바라보며 이 큰 무리가 왕국 노래를 합창하면서, 도심을 통과하고 가톨릭 교회를 지나 길을 따라 6킬로미터를 행진해 내려가서, 가장 가까운 강에 이르러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침례를 받았다.

진리를 신속히 받아들이는 양 같은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 캄보디아에 임명된 한 선교인은 이렇게 보고한다. “어느 토요일에 집집으로 증거하다가 젊은 여자에게 팜플렛을 전하였습니다. 성서 연구 마련을 보여 주고 나서, 이틀 후에 다시 만나 토의를 계속하자고 약속하였습니다. 월요일에 연구를 마친 후 집회에 관해 설명한 다음 집회 초대장을 주었습니다. 그는 초대장을 보더니 ‘내일 봅시다’라고 하더군요. 그는 과연 화요일에 서적 연구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집회가 끝날 때 ‘그러면 언제 다시 만날까요?’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내일 만날까요?’ 하고 그는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좋지요’라고 대답하였고, 그래서 우리는 수요일에 세 번째 연구를 가졌습니다. 그 연구가 끝날 때 ‘그러면, 언제 다시 만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청하면서 ‘내일 집회에서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 만난 주간에 그는 세 번 연구하였으며 세 가지 집회에 모두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들어온 1993년 8월 보고와 1994년 6월 보고를 비교해 보면 전도인이 49퍼센트, 가정 성서 연구가 87퍼센트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사람들은 대부분 개인별로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일부 지역에서는 꽤 큰 그룹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근처의 도시에 사는 한 남자는 그루지야 공화국에 사는 친척에게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책을 받았다. 이 젊은 남자는 자기가 알게 된 것을 전하였기 때문에, 한 그룹이 모여서 그 책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은 배운 것을 근거로 우상을 없애고 세속 일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자기들의 지역에서 전파하는 일을 조직하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하여 여호와의 증인을 찾아 나섰다. 파이오니아 몇 명이 도우러 왔으며 나흘 만에 50건의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지금 그 도시에는 22명의 전도인이 있는데, 그 중 일곱 명은 침례를 받았고, 전도인 각자는 9건 내지 10건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다. 멀리 동쪽에 있는 사할린 섬에서도 훌륭한 반응이 있다. 1991년 1월에 그 섬에는 여덟 명의 전도인이 있었다. 지금은 300명이 넘는 열심 있는 전도인이 여섯 개의 회중과 연합하고 있다.

콜롬비아 지부는 해마다 구역을 철저히 돌며, 임시 특별 파이오니아들을 사용하여 벽지에 있는 마을을 더 많이 찾아가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해에 특별 파이오니아들이 그 나라의 외딴 지역에 있는 33개 마을로, 특히 동부 평야에 있는 마을로 임명되었다. 이 곳은 외딴 마을들과 연결되는 도로가 거의 없는, 대부분이 정글인 광대한 지역이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노력한 결과, 22개의 새로운 집단이 형성되었다. 어느 마을에서 형제가 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 남자는 자기 아내가 성서를 읽기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중에 그 남자는 자기 이웃 사람도 방문해 보라고 제안하였다. 이번에는 그 이웃 사람이, 연구하고 싶어하는 다른 가족을 소개하였다. 6개월 만에 이 세 가족 중에서 다섯 사람이 침례를 받았으며, 현재 그 중 두 명은 정규 파이오니아이다. 다른 친척과 이웃 사람들도 몇 명 연구를 시작하였다. 18개월 전에는 증인이 한 사람도 없던 곳에, 지금은 80명이 자체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공개 강연에 참석하고 있다.

최근까지 가이아나의 오지에 있는 한 격지 집단에는 침례받은 전도인이 자매 한 사람뿐이었다. 그 자매는 카리브족 인디언 주민들 가운데서 매우 열심히 봉사하였다. 이들은 500명 이상을 수용하는, 벽이 트인 매우 멋진 왕국회관을 지었다. 이 왕국회관에는 배터리로 가동되는 이동식 마이크를 갖춘 확성 장치가 있다. 일요일에는 오전 8:30부터 회중 서적 연구와 「파수대」 연구 집회를 갖는다. 오후에는 신권 전도 학교와 봉사회를 갖는다. 모든 프로는 문자가 없는 언어인 카리브어로 통역되어야 한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부 사람들은 전날에 40킬로미터를 걷는다. 모든 사람이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자리에 앉아 있으며, 좌석은 등받이가 없는 긴 의자인데도 몸을 움직이는 일이 극히 적다. 수요일 밤에는, 약 1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읽기와 쓰기 학습이 영어로 진행된다. 이 내용을 집필할 당시에, 네 쌍의 부부가 지역 대회를 앞두고 법적으로 결혼할 예정이다. 또 다른 열여섯 쌍도 여호와의 헌신한 종이 되기 위하여 생활을 바르게 정리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참으로 자기 백성이 번성하게 하신다. 이사야 9:3에 이렇게 예언된 바와 같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 ·⁠·⁠·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나이다].”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든,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든, 유일하신 참 하느님 여호와의 종들인 우리 모두는 현재 수행되는 웅대한 왕국 선포 활동에 가능한 한 온전히 참여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