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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이며 전체 육지 면적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적도를 따라가다 보면 열대림과 코끼리, 기린, 사자 등 매우 다양한 야생 동물들이 눈에 띕니다. 북쪽으로는 지상에서 가장 큰 사막인 사하라 사막이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검은 대륙이라고 불러 왔던 이 대륙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의 빛은 점점 더 밝게 비치고 있습니다.—마태 4:16.

가나에서, 여섯 살 된 마리는 급우들에게 이끌려 교사 앞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급우들은 마리가 학급이 함께 기도할 때 눈을 감지도 않고 “아멘”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고 일러바쳤습니다. 교사는 마리에게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설명을 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마리는 침착하게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학급이 함께 기도할 때는 예수에게 기도하는데, 저는 가족과 함께 성서 연구를 하면서, 기도는 예수를 통해 여호와께만 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그러니 학급이 기도할 때 어떻게 제가 ‘아멘’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교사는 깜짝 놀라며 학급 학생들에게 “마리를 그냥 두렴. 마리는 여호와의 증인이란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나중에 마리의 어머니는 교사에게 「나의 성서 이야기 책」을 한 권 보내 주었습니다. 교사는 성서 수업 시간에 그 책을 학급을 가르치는 교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니에 살고 있는 앨프레드는 1996년에 진리에 관해 약간 듣고 성서 출판물을 몇 부 받았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그는 자신이 사는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비록 짧기는 하였지만 여호와의 증인과의 만남을 통해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는 바를 알려 줄 책임이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앨프레드는 증인들에게 보낸 자신의 편지에 대한 응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왕국회관을 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998년에 그는 수수한 회관을 한 채 지었는데, 마을 주민들은 그 회관을 부서뜨려 버렸습니다. 그는 다시 회관을 지었는데, 그 회관 역시 파괴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세 번이나 일어났습니다.

앨프레드는 그 문제를 촌장에게 가지고 갔습니다. 앨프레드와 그를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인 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촌장은 회의를 주의 깊이 경청하더니, 앨프레드에게 왕국회관을 지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마을 입구의 대로변에 있는 매우 좋은 부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앨프레드와 그의 성서 연구생인 대니얼은 대나무를 비롯하여 숲에서 구할 수 있는 다른 여러 가지 자재를 사용해서 14일간에 걸쳐 새로운 왕국회관을 지었습니다.

회관이 완성되자 그들은 그곳에서 집회를 열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팜플렛들을 검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집회에는 촌장도 정기적으로 참석하였습니다. 지부 사무실에서는 그 소식을 듣자, 특별 파이오니아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그들에게 성서 연구를 적절하게 사회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가르치도록 마련하였습니다. 순회 감독자가 그 마을을 방문하였을 때는 400명의 주민 가운데 69명이 그의 연설을 들으러 왔습니다.

케냐 서부에 사는 조슈아와 수전은 심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은 그들을 문병 와서는, 그 사고가 하느님이 내리신 형벌임에 틀림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부부는 여호와의 증인으로부터 받은 잡지들을 성서와 함께 읽고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사고들을 일으키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부부는 문병 온 그 친구들에게 달리 위로가 될 만한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니라면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 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부부는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여호와의 증인과 연락을 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11월에 야외 봉사를 시작하였으며 2000년 2월에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조슈아는 현재 정기적으로 보조 파이오니아를 하고 있으며 수전은 4월에 보조 파이오니아를 하였습니다.

오티스는 라이베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났을 때 참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와 그의 “친구”는 자기들이 훔친 차를 팔기 위해 이웃 나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친구”는 고의적으로 오티스를 차로 쳐서 그의 다리와 등골을 다치게 해 놓고는 차를 가지고 가 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오티스는 사지 중 일부를 절단하게 되었으며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오티스는 종종 자살을 할 생각도 하곤 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한 특별 파이오니아와 성서 연구를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오티스는 몸이 마비되어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아버지의 방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소식을 듣고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에서 연구를 해서 자기도 연구에 참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자신이 들은 내용에 감동을 받은 오티스는 여러 가지 면으로 변화를 하였습니다. 그는 담배를 끊었으며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오티스는 더 이상 자신의 신체 장애에 대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현재 그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전도인이며, 틈만 나면 자기 집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살펴보다가 자신이 갖고 있는 희망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진정으로 참 종교를 찾았다고 확신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자, 증인들이 자신에게 보여 준 개인적 관심 때문이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오티스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형제들은 날마다 나를 보러 들렀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다시 사람 대우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모잠비크에서, 아벨리노라는 남자는 우리의 잡지를 예약해서 보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사는 지역에는 증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편지를 통해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벨리노는 자신이 새로 알게 된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한 집단이 형성되어서, 함께 모여 「파수대」지의 기사들과 「성경을 사용하여 추리함」 책에 나오는 내용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형제들 몇 명이 이 사실을 알고는 전파 활동을 하기 위해 그 지역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그 집단에 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공개 강연이 마련되었는데, 연설을 들으러 온 사람이 9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 다음 대회가 남풀라에서 열렸을 때는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 열 명이 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남풀라 시에 남아서 일주일 만에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식」 책을 다 읽었습니다. 이처럼 관심을 나타냈기 때문에 두 명의 정규 파이오니아가 그 지역으로 이사하였습니다. 그 집단은 지금 잘 발전하고 있습니다.

르완다에서는 전도인 수가 6월에 신기록인 7435명에 달하였습니다. 금년 봉사 연도에는 매달 평균 전도인 다섯 명당 한 명이 어떤 형태로든 파이오니아 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현재 사회되고 있는 성서 연구는 1만 2000건이 넘으며, 기념식에는 3만 716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또한 지난 4년 동안 51채의 왕국회관이 건축되어 봉헌되었으며, 115채의 왕국회관이 앞으로 더 건축될 계획입니다. 건축으로 인해 요구되는 일이 많지만, 전도인들은 야외 봉사에 매달 평균 20시간가량을 바치고 있습니다.

감비아에 사는 한 젊은 남자는 캐나다로 이주하여 오순절 교회 교역자가 되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동안 그는 그 지방에 있는 오순절 교회의 총무로 일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와 그의 아내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팜플렛으로 연구를 시작하는 데 동의하였습니다. 연구를 하면서 그들은 「신세계역 성경」의 뒷부분에 나오는 “대답을 위한 성서 제목”을 비롯하여, 그 성경의 여러 가지 특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들은 이전처럼 매일 아침 성가를 부르는 대신, “대답을 위한 성서 제목”에 나오는 제목을 하나씩 고려하면서 참조된 성구들을 모두 찾아보았습니다. 교회에서 캐나다에 있는 한 신학교에 가서 2년제 과정을 밟도록 그를 초대하는 편지가 도착하였을 때, 그 젊은 남자는 이러한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내가 왜 이걸 필요로 한단 말인가? 우린 이제 진리를 알게 되었는데 말이야!” 그 부부는 6개월간 성서 연구를 한 후 침례를 받았으며, 지금은 자신들이 이제까지 배워 왔으며 또한 자신들에게 그토록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준 놀라운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활동적으로 전해 주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아메리카에는 두 개의 대륙이 있습니다. 그 대륙들은 몹시 추운 북극에서부터 무덥고 습기가 많은 열대 지방을 거쳐 남극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남아메리카에서는 지구상 그 어느 지역에서보다도 많은 종의 동식물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대륙에서도 좋은 소식은 열심히 전파되고 있습니다.

볼리비아의 한 남자는 아내와 두 자녀를 몹시 소홀히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과음을 하거나 코카 잎을 씹는 것 등, 인이 박여 버린 나쁜 버릇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서 연구를 받아들였으며, 점차 자신의 나쁜 습관들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함께 성서 연구를 하는 것을 고집 세게 거부하자 그는 화가 나서, 아내에게 자신이 성서 연구를 그만두고 이전 생활 방식으로 되돌아가 버릴 수도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에 아내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달라진 모습을 훨씬 더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에게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왕국회관에 가족도 없이 혼자만 가고 싶지 않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성서 연구를 하는 데 동의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는 남편이 침례를 받은 지역 대회에 참석하기까지 하였습니다.

17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 브라질의 청각 장애인들에게 전파하는 일은 2000 봉사 연도 중에 더욱더 활기를 띠었습니다. 브라질 수화(BSL)를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아는 18명의 특별 파이오니아가 꽤 큰 청각 장애인 공동체들이 있는 도심 지역에서 봉사하도록 임명되었습니다. 그에 더해, 1999년 9월에 브라질 수화 번역팀이 구성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 지역 대회에서는 성서 드라마, 주요 연설, 왕국 노래 등을 처음으로 비디오를 통해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협회는 현재 청각 장애인들이 성서 진리에 대한 인식에서 자라 가도록 돕기 위해, 브라질 수화로 여러 가지 비디오 출판물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현재 브라질 전역에는 16개의 수화 회중과 87개의 수화 집단이 있습니다.

마이클은 대학교에서 4년 동안 사회학을 공부한 후 캐나다의 토론토에 있는 한 로마 가톨릭 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는 사제가 되고 싶어하였습니다. 마이클은, 교수직을 맡고 있던 로마 가톨릭 몬시뇨르가 수업 시간에, 하느님께 기도로 가까이 가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만 가까이 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마이클은 몬시뇨르에게 요한 14:6에 나오는,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수 없습니다”라는 예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그러자 몬시뇨르는, 성서를 해석하는 일은 자기에게 맡기고 학생들은 다른 공부에나 전념해야 한다고 쏘아붙였습니다.

마이클은 협회의 캐나다 지부에 전화를 걸어 영적 도움을 베풀어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연구하기를 원했는데, 한 번 연구할 때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식」 책을 두 장(章)씩 다룰 때도 있었습니다. 그 후 마이클은 그 종교 단체를 떠났으며 한 사무실에서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1999년 10월 9일에 그는 협회의 캐나다 지부 시설을 견학하였습니다. 이 일은 그에게 아주 좋은 영향을 미쳐서, 그때 이후 그는 모든 회중 집회에 참석하고 필기를 하고 의미 있는 해설을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마이클은 2000년 2월 19일에 침례를 받았으며, 9월 이후로는 정규 파이오니아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코스타리카에 있는 한 자매는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과 압력 때문에 낙담하였습니다. 이 자매는 사고로 인해 휠체어에 앉아서 지내야만 합니다. 또한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로는, 눈멀고 정신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성인이지만 역시 정신 장애가 있는 여동생과 남동생을 혼자서 돌보고 있습니다. 이 자매는 요리를 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가족을 돌보는 그 모든 일을 휠체어에 앉아서 합니다. 그 자매는 할 수 있는 한 온전히 봉사의 직무에 참여하기를 원하였기 때문에, 회중 장로들은 이 자매가 어떤 기회들을 이용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도록 사랑에 찬 도움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한 가지 제안받은 점은, 매일 보도에서 20-30분씩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자매의 집 앞에는 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오가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자매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전도지나 잡지를 제공하고, 심지어 자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재방문을 해 보도록 격려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자매는 바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 자매는 로마 1:14, 15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이러한 말을 진지하게 고려하였습니다. “나는 그리스인과 바르바로이, 지혜로운 사람과 무분별한 사람 모두에게 빚진 사람입니다. 따라서 나에게는 그곳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좋은 소식을 선포하려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이 자매는 자신 역시 자신의 이웃 사람들에게 빚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매가 현재 자신의 봉사의 직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보면, 이 자매가 신성한 봉사에서 진정으로 기쁨과 만족감을 누리고 있음이 역력하게 나타납니다.

에콰도르에서 한 선교인 부부는 과야킬의 도심 지역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한 대규모 고층 건물에는 경비가 철저해서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고용인들과 경비원들 20명가량에게 증거할 수 있기는 하였지만 주로 인터폰을 통해서였고,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선교인 부부는 그 건물의 관리소장에게 이야기를 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선교인 부부가 자신들의 방문 목적이 가족 내의 도덕적·영적 가치관을 고양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관리소장은 “그럼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이야기를 들어야겠군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비서에게 다음과 같은 공지 사항을 받아 적어서 게시판에 붙여 놓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가비 마르츠 부인이 도덕적 가치관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교육 활동차 우리 아파트의 집들을 일요일 오후에 방문할 것입니다. 방문을 받을 만한 형편이 되지 않는 분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관리소장.”

선교인 부부는 맨 위층부터 봉사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층에서 한 학교의 교장과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그 아래층에서는 세 건의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가족은 기념식에 참석하였으며, 나중에는 지부 사무실을 방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선교인 부부는 이전에 누구도 방문할 수 없었던, 경비가 철저한 그 건물에서 모두 16건의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페루에 사는 제시카는 15세 된 정규 파이오니아인데, 가족 중에서는 유일하게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제시카는 야외 봉사할 때 신는 신이 몹시 낡았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새 신발을 사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여호와보고 신발을 구해 달라고 해라!” 하고 퉁명스럽게 말하였습니다. 제시카는 낡은 신발을 신고 봉사를 하러 나갔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구두 만드는 일을 하는 한 형제의 집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제시카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리 들어오너라. 오늘 널 주려고 만들어 놓은 것이 있단다!” 그러더니 그 형제는 제시카에게 새 신발 한 켤레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시카가 새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그 신발이 도대체 어디에서 난 것인지 물었습니다. 제시카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구해 주셨어요!”

미국에서는 외국어 밭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 밭에서 봉사하고 있는 전도인의 수는 1만 6000명이 넘는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수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제외하고도 31개나 됩니다. 2000 봉사 연도에는 미국 최초로 설립된 캄보디아어 회중과 몽어 회중을 포함하여, 11개의 새로운 외국어 회중이 설립되었습니다.

아시아

이 대륙은 세계에서 가장 큰 대륙으로서 극지방에서 열대 지방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기후와 식물이 나타납니다. 아시아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 있는 티베트 고산 지대가 있습니다. 아시아에는 좋은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많은 활동이 수행되고 있습니다. 세계 보고의 아시아편에는 섬나라인 일본과 타이완에서 들어온 경험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나라들이 아시아 본토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수도인 다카에서 열린 “하느님의 예언의 말씀” 지역 대회에 14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형제들은 강당을 청소한 다음 꽃으로 연단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 강당에서 일하는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곳에서 14년 동안 일하면서 여러분처럼 조직이 잘 되어 있고 깨끗한 사람들은 처음 봅니다. 여러분은 이 시설을 깨끗하고 경건하게 만들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형제들이 왕국회관 건축을 지원하는 사랑에 찬 마련을 하자, 인도에서는 250채의 왕국회관을 신축하거나 개축하는 마련을 시행해 왔습니다. 이 마련이 시행되자 현지 형제들은 가능한 한 어떤 방법으로든 그 마련을 지원하려고 하였습니다. 한 연로한 형제는 왕국회관 부지로 사용해 달라며 거의 420제곱 미터나 되는 토지를 기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토지를 살펴본 형제들은 우기가 되면 홍수가 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부지로 사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연로한 형제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그는 형제들에게 자기 소유의 땅을 전부 보여 주면서 왕국회관 부지로 가장 적합한 곳이라면 어디든 좋으니 골라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죽기 전에 이 지역에 번듯한 왕국회관이 들어서는 것을 보는 것이 내 소원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한국의 서울에 사는 김효숙 자매는 파이오니아를 하면서 그다지 기쁨을 누리거나 성공을 거두지도 못하던 중에 한 순회 감독자로부터 개인 구역을 가져 보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김 자매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그 조언을 받아들였으며, 얼마 안 있어 제 구역에 사는 집주인들과 안면을 잘 익히고 친숙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집주인이 편한 시간에 찾아가려고 방문 시간을 조정하였습니다. 그러자 재방문 건수가 한 달에 35건에서 80여 건으로 증가하였고 7건의 가정 성서 연구가 생겼습니다. 이제 저는 진정한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사는 샘은 그가 다니는 학교에서 유일한 증인 학생입니다. 또한 같은 반 학생 중에서 시험을 보기 전에 시험지를 훔쳐서 만든 사본을 받기를 거부한 유일한 학생이기도 하였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서, 학교 교장은 샘을 제외하고는 그 학급 학생 전원이 부정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샘은 그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 일은 가톨릭교인과 이슬람교도가 섞여 있는 학급과 교사들에게 훌륭한 증거가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일본에 사는 83세 된 한 자매는 아들 집에 가기 위해 초고속 열차를 탈 계획을 하였습니다. 이 자매는 아들에게 줄 최근 호 잡지를 모으다가, 전하지 않은 잡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기억나 그 잡지들을 가방에 챙겨 넣었습니다. 장시간 열차를 타다 보면 승객들이 따분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이 자매는 열차에서 잡지를 몇 부 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차를 타고 가던 중, 자매 옆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읽고 있느냐고 이 자매에게 물었습니다. 그 남자는 기꺼이 잡지를 받았으며 관심을 갖고 그 잡지를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본 다른 몇몇 승객들도 자기들이 읽을 잡지를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 자매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아들이 아직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그 시간을 이용하여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증거하였습니다. 아들이 올 때쯤에는 잡지를 40부나 전해 정작 아들에게 줄 잡지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몽골에서는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불교를 믿어 왔지만, 그곳의 많은 사람들은 무신론자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 「생명은 당신에게 얼마나 소중한가?」라는 4면으로 된 전도지가 준비되었습니다. 이 전도지는 흡연의 위험성에 관해 다루는데, 이것은 일반 대중이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갖는 화제입니다. 1999년 11월과 12월에 특별 운동이 마련되었으며, 총 22명의 전도인이 참여하였습니다. 전도지를 받기를 거부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 10일 동안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거의 1만 장이나 되는 전도지가 배부되었습니다. 많은 정부 관리들이 이 운동에 대해 호의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이 특별 활동은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여러 번 광고되었으며 세 개의 신문에도 기사화되었습니다. 여러 건의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진리는 아무리 먼 곳에라도 이르게 됩니다. 카자흐스탄에는 1000여 명이 수용되어 있는 유형지가 있습니다. 1997년에 두 명의 여호와의 증인이 그 유형지의 책임자를 방문하여, 현지 증인 사무소에 편지를 쓴 수감자 몇 명과 성서 진리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20명의 수감자와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98년에는 그들 중 네 명이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이 되었으며 회중 집회를 열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습니다. 유형지 행정 당국은 여호와의 증인의 가르침이 수감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고는 전도인들에게 교도소 라디오 시설을 이용해 공개 강연을 방송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주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수감자들에게 이 방송을 들을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유형지의 행정 당국은 여호와의 증인의 종교가 편할 때나 쓰는 일종의 가면과 같은 것에 불과하지 않음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 점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된 한 가지 경험이 있었습니다. 수감자들은 돈만 있으면 마약을 포함해서 사실상 무엇이든 살 수 있기 때문에 돈을 갖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수감자는 자기 앞으로 오는 소포를 통해 정기적으로 돈을 조달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영적으로 진보함에 따라,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번은 유형지를 방문한 장로 형제에게 얼마의 돈을 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왕국 활동에 헌금하려고 한 것이지만, 그 장로 형제는 교도소 밖으로 돈을 반출하는 것은 교도소 규칙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돈을 받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 장로 형제는 그 젊은이에게 “양심에 따라 돈을 처리하라”는 말만 남겼습니다. 그 수감자는 경비대 책임자에게 가서는 그의 책상 위에 돈을 놓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상, 이곳에서 더는 이 돈을 갖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돈을 좋을 대로 처리하십시오.” 그 책임자는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20년 동안 이 유형지에서 근무하면서 자기 발로 찾아와서 돈을 내놓는 사람은 처음 보네!”

말레이시아의 한 자매는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매는 한 동료에게 여호와와 그분의 약속에 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동료는 자기가 숭배하는 신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아서 크게 실망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부처와 중국의 다양한 신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기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 여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악귀들에게 시달렸습니다. 악귀들은 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영들이 일을 방해하는 바람에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비참한 생활을 하다 보니 영매와 상의를 해 보기도 했지만, 문제가 악화될 뿐이었습니다.

자매는 동료에게 잠언 18:10에 의하면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분은 믿음으로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보호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자매는 그 여자에게 악귀들이 다시 괴롭히면 여호와 하느님께 기도하라고 권하였습니다.

바로 다음날, 그 직장 동료는 이 자매에게 여호와께 도움을 요청했더니 악귀들이 자기를 떠났다고 말하였습니다.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 직장 동료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보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거짓 숭배와 관련이 있는 물건을 모두 버렸으며, 그러자 악귀들이 더는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최근에 열린 순회 대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거의 50년 동안, 타이완의 젊은 증인 남자들은 그리스도인 중립을 유지하려는 그들의 결심 때문에 장기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군대가 효과적으로 훈련시킬 수 있는 수보다 많은 남자들이 징집되고 있었기 때문에, 병역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징집된 인력의 일부를 비군사적 봉사로 전용할 수 있게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관리들은 다른 나라들에서 양심상 군 복무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처리한 방법에 관한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투옥되기보다는 일정 기간 정부가 감독하는 비군사적 작업을 하기 원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신청서를 작성함으로 그 점을 명시해야 합니다. 이 새로운 제도에 따라 33개월 동안 그러한 형태의 대체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주말과 아마도 대부분의 저녁 시간에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인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럽

유럽은 오랫동안 대륙으로 분류되어 왔지만, 사실은 유라시아에서 서쪽으로 삐죽 튀어나온 거대한 반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거의 2000년 전에 유럽 남부에 좋은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진리의 활기 찬 소식은 세계의 이 지역에서 계속 융성하고 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에 사는 한 자매가 어느 날 공원에 앉아 있었습니다. 자매는 관목 숲 뒤에 한 젊은 남자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는 창백해 보이고 몸을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몸이 아파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자매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실례합니다만, 몸이 안 좋으시면 의사에게 데려다 드릴게요.” 그러자 그 남자는 여전히 몸을 떨고 있으면서도 괜찮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자매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배가 고프세요? 먹을 걸 좀 갖다 드릴까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뇨. 제발 저한테 가까이 오지 마세요. 경찰이 절 찾고 있어요. 우리가 함께 있는 걸로 경찰이 의심할지도 몰라요.” 자매는 “무슨 일을 했는데 그러시죠?”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자기가 한 상점을 털었다고 시인하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훔친 돈은 전부 제 주머니 속에 있습니다. 경찰에게 붙잡혀서 교도소에 가게 될까 봐 너무 겁이 납니다.” 자매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에게 자기 옆에 앉아서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고 권하였습니다. 자매는 그 남자에게 그가 턴 상점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여호와 하느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남자는 주의 깊이 잘 들었지만, 여전히 두려워서 떨고 있었습니다. 자매는 그에게 이렇게 조언하였습니다. “책임자를 찾아가서, 돈을 훔쳤는데 이제는 돌려주고 싶다고 털어놓으세요.”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이웃 사람이 지나가면서 자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남자는 자매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자매는 지방 신문에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바리차 부인에게, 친절하게 조언해 주신 데 대해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은 제가 교도소에 가지 않도록 구해 주신 은인입니다. 주소를 몰라서 직접 감사를 표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관해 읽고, 도움을 베푸시는 참 하느님 여호와께로 향할 수 있도록 이런 식으로나마 편지를 씁니다! 그 돈은 돌려주었습니다. 그 상점 책임자는 도난당한 돈이 1500쿠나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호주머니에서 1700쿠나를 꺼냈습니다. 그러자 그는 없어진 현금이 1500쿠나밖에 안 되니까 200쿠나는 가져도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제 주머니에는 1쿠나도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빵 한 개를 살 돈도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책임자는 저에게 식품을 좀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200쿠나는 자네 걸세’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더해서 저에게 500쿠나와 빵 두 덩어리, 우유 2개, 요구르트 작은 것으로 5개, 500그램 정도 되는 소시지 1개, 유아용 식품 등을 주었습니다. 그 책임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이러는 것은 자네가 정직한 사람이고 실수를 인정했기 때문이네.’ 저는 교도소에 가지 않은 데 대해 하느님과 당신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시 한 번,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는 유럽의 주요 항구 중 하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연락선들 외에도, 매년 2000여 척의 선박이 그 항구에 정박합니다. 형제들이 한 배에 들어가 몇몇 선원들에게 여호와의 증인을 아느냐고 묻자, 그들은 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배 안에 여호와의 증인이 한 사람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들은 자기들의 동료 신자를 만나고 싶어하였습니다. 형제들이 그를 만나서 알아보니 그는 아직 침례를 받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인구가 2000명밖에 안 되는 태평양의 한 조그만 섬이 고향이었습니다. 그 섬에는 증인이 아무도 없었지만, 그는 세계 전역에 있는 여러 항구에서 받은 출판물을 통해 진리에 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직접 출판물을 읽어 보았고 집으로 가져가 아내에게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진리를 발견했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배워 알게 된 것에 대해 동료 선원들에게 열심히 증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잡지 예약을 한 건 맡았습니다. 형제들은 가장 가까운 회중에 그와 그의 아내에 관해 알려서 돕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독일 브레머하펜의 전도인들은 정기적으로 항구에 가서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트럭에 짐을 싣거나 트럭에서 짐을 내리는 운전 기사들에게 출판물을 제공합니다. 한 형제는 48개국에서 온 트럭 운전 기사들을 만난 경험에 관해 보고합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39개 언어로 된 출판물을 차 안에 비치해 둡니다.” 몇몇 러시아인 트럭 운전 기사들은 항구에 머물러 있는 동안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 프레트와 크리스티안은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선 중 하나가 건선거 즉 큰 배를 만들거나 수리할 때 해안에 배가 출입할 수 있을 정도로 굴착하여 만든 구조물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950명에 달하는 그 배 선원들의 출신국 수를 모두 합하면 50개국이나 되었습니다! 형제들이 일단 배에 오르자 태평양상에 있는 한 섬이 고향인 한 선원이 그들에게 다가와서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다채로운 그림이 들어 있는 노란 책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는 「나의 성서 이야기 책」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들은 그 책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선원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출판물을 다 전한 후에 프레트는 왕복 적어도 10시간은 걸리는 젤터스에 있는 베델까지 차를 몰고 가서 추가로 출판물을 받았습니다. 이튿날, 그들은 선원들에게 잡지 900부, 팜플렛 300부, 서적 850부를 전하였습니다! 프레트는 또한 그 우호적인 선원을 만나서 그가 갖고 싶어한 노란 책을 주었습니다. 프레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우리가 그 책을 구하기 위해 차를 몰고 1000킬로미터가 훨씬 넘는 거리를 갔다는 사실을 알고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1998년 초에 룩셈부르크에 있는 한 소규모 사설 라디오 방송국이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인생의 목표와 기대에 관해 묻는 전화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무작위로 전화번호를 골라서 통화를 하였습니다. 그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던 사람은 한 번호로 전화를 걸다가 지역 번호를 잘못 누르는 바람에 4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독일 뉘른베르크 근처에 사는 한 여자와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여자가 가지고 있는 인생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긍정적인 태도로 인해 감명을 받은 나머지 어떻게 그러한 훌륭한 견해를 갖게 되었는지 그 여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자신이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일이 왕국의 씨를 뿌릴 수 있는 뜻밖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인터뷰를 하던 그 사람은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으며, 자매는 나중에 그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두 달 동안 자매는 자주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느님과 인생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에 관해 더 설명해 주었고, 많은 질문에 답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 방송인은 관심에 불이 붙어 더 많이 알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는 룩셈부르크에 있는 한 회중에 전화를 걸어 가정 성서 연구를 요청하면서 집회에 관해 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왕국회관에서 따뜻한 분위기와 자기를 친근감 있게 환영해 주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순조롭게 가정 성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에 사는 그 자매와 처음으로 전화 통화를 한 지 13개월이 지난 후에, 그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99년 10월에는 정규 파이오니아가 되었습니다. 독일의 그 자매가 자신을 증인으로 밝히고 그 기회를 이용하여 왕국의 씨를 뿌림으로 참으로 훌륭한 결과가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에 사는 안토니우는 여호와의 증인인 친형제가 그를 방문한 동안에 성서에 관해 즐거운 토의를 하게 되면서 성서 소식에 관한 관심에 불이 붙게 되었습니다. 안토니우는 성서에 관해 더 배우기를 열망하였습니다. 그는 도움을 구하는 열렬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후 오래지 않아, 두 증인이 그의 집을 찾아가 그와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안토니우는 지식이 늘어 감에 따라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게 생활을 변화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스포츠로 사냥을 무척 즐겼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자 그만두었습니다. 나중에 그리스도인 중립 문제를 이해하게 되자, 그는 15년간 맡고 있었던 직책인 매우 존경받는 시장 직에서 사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사임을 재고해 보라는 압력을 받았지만, 야고보 4:4의 교훈을 통해 그러한 압력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여호와와의 관계가 깊어지고 회중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매우 빠른 속도로 진보하였습니다. 얼마 안 있어 그 부부는 야외 봉사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침례를 받았습니다.

스페인의 한 형제는 오래 전에 자신의 믿음 때문에 직장 동료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직장 동료는 여러 달 동안 형제의 종교를 비웃고 비판하였습니다. 형제는 더는 인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고, 그래서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그리스도와 같은 방법으로 그 어려운 상황을 인내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직장 동료의 태도가 변하는 바람에 형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사과를 하면서 두 번 다시 형제 앞에서 하느님에 관해 나쁘게 말하지 않겠다고 형제에게 다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그 직장 동료는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로부터 24년 후, 형제는 이전에 직장 동료였던 그 사람을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그 형제가 연설을 하도록 임명된 왕국회관에서 만났습니다. 이전에 직장 동료였던 그 사람은 형제에게 자기가 성서 연구를 하여 침례받은 증인이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여러 해가 지나긴 했지만, “자신과 자신의 하느님을 끊임없이 비웃어도 그토록 참을성 있게 인내한 그 증인”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전세계의 섬들

전세계의 섬들은 크기가 매우 다양하며, 규모가 훨씬 더 큰 대륙들과는 구분됩니다. 섬 대륙인 오스트레일리아를 여기에 포함시키기는 했지만, 가장 큰 섬은 면적이 220만 제곱 킬로미터인 그린란드입니다. 가장 작은 섬의 면적은 도시의 한 구획보다도 작습니다. 크기 면에서 그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섬이 있습니다. 그러한 섬들 중 몇 군데에서 들어온 경험담을 몇 가지 고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자매는 호별 방문 활동을 하다가 하느님의 말씀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은 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 여자가 전도지를 받긴 했지만, 자매는 재방문을 해 봐야 별 소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도 자매는 그 여자의 집을 찾아가 그를 만나려고 끈기 있게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마침내 자매가 그 여자를 다시 만났을 때, 그 여자는 자매의 첫 방문을 받고 나서 값비싼 성서를 한 권 구입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자매는 그 여자와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그 여자는 그리스도인 원칙을 따르기 위해 생활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으며 모든 집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한 형제는 호별 방문 전파 활동을 하다가 60세가량 된 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형제는 대화를 마치고 나서 손을 들어 인사를 하였습니다. 집주인이 손을 들어 인사하지 않는 것을 보고 형제는 그 여자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형제는 다시 방문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형제가 다시 방문하자, 그 여자는 자기 딸에게 자기가 앞을 보지 못하는데도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이야기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자기가 시력을 회복할 희망은 전혀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형제는 희망의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하고는 예수께서 어떻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는지에 관한 성서 기록의 일부를 그 여자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마태 9:27-30) 그 내용을 듣고 이 여자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형제는 그 여자가 시력을 회복할 방법은 없는지 맹인 재단에 문의해 보았습니다. 진찰을 받을 마련을 했는데, 그 여자는 진찰을 받으러 가서 수술을 하면 아마 시력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동안 내내 그 여자는 성서 지식을 계속 섭취하였습니다. 수술 후에 그 여자는 「나의 성서 이야기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몇 주 만에 그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팜플렛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식」 책을 연구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수술을 받기 전부터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했으며, 시력을 회복한 후로는 한 번도 집회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배우고 있는 것에 대해 그리고 시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1999년에 열린 지역 대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레위니옹 섬에 사는 한 자매는 증거를 하던 중 한 여자에게 잡지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그걸 주셔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글을 모르거든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매가 그 여자에게 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제의하자, 그 여자는 그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자매는 「읽기와 쓰기를 배워 봅시다」와 「땅에서 영원히 사는 길」 팜플렛을 가지고 재방문을 하였습니다. 30분간 글을 가르쳐 준 다음, 30분간 성서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글을 배우고 진리를 이해하는 면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진보하였습니다.

연구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자녀들이 노력했지만, 그 여자는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얼마 안 있어, 그 여자는 「지식」 책으로 연구를 하게 되었으며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최근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그 여자는 글을 배웠기 때문에 성서와 출판물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뉴질랜드의 북섬에 사는 한 자매는 히나라는 젊은 여자와 가정 성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히나는 「요구」 팜플렛으로 두 번 연구하고 나더니 여호와의 증인이 되고 싶으며 그 지역 폭력단의 유명한 단원인 남자 친구와 헤어지겠다고 자매에게 말하였습니다. 히나는 용기를 내어 남자 친구에게 자기의 계획에 관해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히나의 남자 친구는 “그 계획을 계속 밀고 나가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 친구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고는, 히나만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에게 보복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왕국회관에 총을 쏴서 벌집처럼 만들어 놓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동료였던 한 사람이 그러한 과격한 행동을 하기 전에 집회에 참석하여 증인들에 관해 알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 남자 친구는 그 말에 동의하였고, 그날 밤 신권 전도 학교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깊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단원 회의를 소집하더니 자기는 이제 여호와의 증인이 되고 싶다고 단원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나중에 한 묘지에서 열린 공식 단원 모임에서 그는 자신의 수장(단원임을 나타내 주는 표시)을 묻어서 마약 사용과 불법 주류 사업 등 과거의 생활 방식을 청산한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냈습니다. 그와 히나는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현재 법적인 부부이며, 히나는 최근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히나의 남편 역시 침례받을 자격을 갖추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트리니다드 지부는 「깨어라!」 2000년 2월 8일호와 22일호를 전하는 특별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첫 번째 호에서는 아버지 없는 가족에 관한 표지 기사를 특별히 다루었으며, 두 번째 호에서는 자살에 관해 다루었습니다. 이 운동의 주요 대상에는 사회 복지 단체, 경찰의 사회봉사 기구, 학교, 정부 각료, 국회의원, 비정부 기구 그리고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에 특히 관심이 있을 만한 그 밖의 사람들이 포함되었습니다.

보고가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1만 4941부의 잡지와 1374부의 서적 그리고 90부의 팜플렛이 전해졌다고 합니다. 그 특별 운동의 결과로 860건의 재방문을 하고 29건의 가정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그 대상은 대부분 종래의 증거 방법으로는 만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몇몇 정부 각료들과 부서는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서신을 보내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법무부에서 보낸 것과 같은 서신을 보내 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러한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깨어라!」지를 보내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 ·⁠·⁠· 내용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따라서 법무부 내의 여러 부서에 전달할 여섯 부를 추가로 보내 주실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가정생활 분야에 관한 우리의 정책을 입안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그 자료도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서신에는 법무부 장관의 친필 서명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