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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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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 사는 청소년 학생인 에디트는 자신의 침례와 학교 시험이 같은 날에 겹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에디트는 용기를 내어 교사에게 시험 보는 날에 학교를 빠질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며, 교사는 그렇게 하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에디트의 급우들은 그를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라고 부르면서 놀려댔습니다. 한 남자아이는 에디트가 침례를 받으러 갔던 것이 아니라 수영 대회에 나갔던 것이라고 말하여 반 아이들을 웃겼습니다. 에디트는 그에 대한 반응으로 그 아이에게 여호와의 증인의 신앙에 대한 전도지를 전하였습니다.

그 남자아이는 전도지를 읽고 나서는 에디트를 조롱하는 것을 중단하였으며 자기도 증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식」 책을 연구하였으며, 가족이 얼마간 반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에디트는 자신의 삶에서 여호와에 대한 헌신을 첫째 자리에 둔 것과 그로 인해 또 다른 한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도운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습니다.

서아프리카의 한 선교인은 이렇게 보고합니다. “여호와로부터 오는 축복 중 하나는 훌륭한 평판을 지닌 조직의 일원이 되는 것인데, 그 조직은 심지어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마을들에서도 그러한 평판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곳 가나에서 그 점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았는데, 여호와의 증인은 가나에서 잘 알려져 있으며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한번은 시골에 있는 일부 회중에 매월 보내는 서적 공급품을 배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서, 우리는 서적 공급품을 항상 받아가던 증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운전을 하던 형제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더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에 트럭을 세우고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더니, 길가에서 생선을 팔고 있던 소녀들 중 하나를 불렀습니다. 그는 그 소녀에게 서적 상자를 주면서, ‘이 상자를 여호와의 증인에게 좀 전해 주렴’ 하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소녀는 아무 말 없이 상자를 머리에 이더니 돌아서서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차를 타고 다음 마을로 가는 동안, 나는 운전을 하는 형제에게 그 소녀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요. 하지만 그 아이는 우리를 알아요.’ 형제들이 정말로 서적을 받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형제들은 바로 그날 서적을 받았습니다.”

라이베리아의 그볼로보 마을에서, 형제들은 마을의 촌장에게 편지를 써서, 연중 가장 중요한 종교 모임을 그 마을에서 열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촌장은 형제들이 그 행사를 위해 그 마을에 있는 축구장을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주었으며 자신이 관할하는 일곱 개의 마을에 있는 모든 교회에 광고를 하였습니다. 그 광고를 통해 사람들은 기념식에 참석하라는 초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많은 증인들이 그 마을에 와서 축구장 한가운데에 기념식을 위한 연단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랑과 행복의 영이 가득 찬 분위기 속에서 함께 일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볼로보에는 전도인이 다섯 명뿐이지만, 기념식 참석 수는 636명이었습니다!

르완다 북부에 사는 열 살 된 한 소년은 어린 암염소를 한 마리 키웠는데, 그 염소는 자라서 세 마리의 새끼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는 최근에 자신과 그 암염소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지부 사무실에 보냈습니다. 그는 동봉한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저를 정말 많이 축복해 주셨어요. 그래서 마태 24:14에 언급된 세계적인 전파 활동에 이 암염소를 기부하는 거예요.” 그는 그 염소를 팔아 달라고 회중의 장로들에게 맡겼습니다. 장로들은 염소를 판 다음, 염소 판 돈을 지부로 보냈습니다.

나이지리아의 한 특별 파이오니아는 어느 지나가던 차의 운전자가 태워 주겠다고 해서 그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그가 앉을 수 있도록 옆으로 움직이는 동안, 운전자는 형제의 손에 있는 「파수대」를 보게 되었습니다. 운전자는 형제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명령조로 말했습니다. 운전자는 왜 그러는지는 말하지 않고 무조건 내리라고 명령하듯 말하였습니다. 그 차가 그 형제를 내려 놓고 떠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형제에게 하느님께서 그를 구해 주셨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차는 납치범들의 차예요!” 그 형제는 자신이 들고 있던 “신분증” 덕분에 여호와의 보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랜트는 잠비아의 코퍼벨트 주에 사는 여덟 살 된 전도인입니다. 그는 아장아장 걷는 아기였을 때부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책에 있는 그림들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랜트의 부모는 그가 글 읽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성서의 일부를 암기하게 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랜트는 많은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는데, 얼마의 연구는 「나의 성서 이야기 책」으로 사회하며 다른 연구들은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팜플렛으로 사회합니다. 그랜트의 열심 있는 활동 때문에, 그 지역의 아이들은 그를 시마페포 무칼람바라고 부르는데, 시벰바어로 “대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성서 연구를 시작한 세네갈의 한 남자는, 「깨어라!」 1999년 9월 22일호에서, 캐나다에 사는 한 증인과 그의 어린 딸이, 어느 개인 집의 마당에서 열린 벼룩 시장에서 산 중고 손가방 속에서 1000달러를 발견하고는, 그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었다는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고 나서 얼마 후에, 이 남자는 길에서 지갑을 주웠는데, 그 안에는 몇 개의 신분증과 미화로 환산했을 때 500달러도 넘는 현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읽은 기사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으며 그날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8시에, 그는 지갑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으며 즉시 그를 만나서 지갑과 그 안에 든 돈 전부를 돌려주기로 하였습니다. 지갑 주인은 이 성서 연구생의 정직성에 매우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지갑에 있던 돈의 절반—250달러 상당의 돈—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 성서 연구생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깨어라!」 잡지 한 부 덕분에 나는 평생토록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래로 그는 성서 연구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동부에 있는 나라인 우간다에서, 열두 살 된 칸돌레는 자기 어머니가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 연구를 할 때 조용히 앉아 주의 깊이 듣곤 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어머니는 연구에 대한 관심을 잃었지만, 칸돌레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던 때를 그리워하였으며 증인이 어디서 집회를 여는지를 알아냈습니다. 다음 주 일요일에 그는 11킬로미터를 걸어서 왕국회관에 갔으며 그때 이후로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였습니다. 한 파이오니아 형제가 칸돌레와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그는 잘 발전하여 열네 살의 나이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현재 열일곱 살이며 최근에 정규 파이오니아가 되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특별 파이오니아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도 마침내 연구를 다시 시작하였으며 지금은 침례받은 자매입니다. 칸돌레는 더는 집회에 걸어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그에게는 자전거가 있으며, 그는 자전거에 어머니를 태우고 왕국회관에 갑니다.

아메리카

브라질의 마르시우는 베델에서 봉사하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브라질의 가난한 지역에서 살고 있었으며, 그의 가족 중에는 증인이 없었습니다. 그는 버스로 베델까지 여행할 돈을 모으기 위해 자신의 소유물들을 팔았으며, 그렇게 하여 생긴 돈과 인근 지역의 증인들이 준 돈으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길을 떠난 지 3일 후에, 무장한 강도들이 버스를 강제로 길가에 세웠습니다. 강도들은 각 사람의 소지품을 뒤져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빼앗았습니다. 강도들은 마르시우의 가방을 열었을 때 성경이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것도 빼앗지 않고 가방을 닫았습니다. 버스가 다음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 승객들은 배가 고팠지만, 그들 대부분에게는 먹을 것을 살 돈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강도들이 마르시우의 지갑을 빼앗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다른 승객들을 위해 음식을 사주었으며, 이 일은 큰 증거가 되었습니다.

칠레에서 여호와의 증인과 연구를 하고 있던 오스발도는, 직장에서 앞으로는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직장 상사에게 자신은 고용 계약상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하게 되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오스발도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저는 최근에 결혼을 했으며, 따라서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일요일은 제가 하느님께 뭔가를 드리기 위해 따로 떼어 놓은 날입니다.” 직장 상사는 오스발도가 그달 말에 해고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약 3000명의 직원 중에서 일요일에 출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오스발도뿐이었습니다. 그는 출근을 하는 대신 계속 집회에 참석하였으며, 여호와께 신뢰를 두었습니다.

얼마 후에 이 회사의 고위 간부가 프랑스에서 와서 회사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오스발도의 책상 앞에서 멈추더니, 성실하게 근무하는 것에 대해 그를 칭찬하였습니다. 그 간부는 말하였습니다. “컴퓨터에 전자 오락이 깔려 있지 않은 사람은 당신뿐이더군요. 게다가, 일도 체계적으로 하고요.” 오스발도는 그러한 칭찬에 대해 감사하면서, 자신이 머지않아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고 덧붙여 말하였습니다. 간부는 물었습니다. “더 좋은 일자리를 제안받았나요?” 오스발도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며칠 후에 그는 그 직장 상사 및 간부와 면담을 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긴장이 감도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면담에서 간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스발도 씨, 앞으로는 일요일에 일을 안 해도 되고, 토요일에도 일을 거의 하지 않게 될 겁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더 많은 책임을 맡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주에 오스발도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현재 그는 아내와 함께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에 갓 침례를 받은 에콰도르의 한 젊은 남자는, 처음으로 왕국회관의 주강당에서 학생 연설을 하라는 과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연설을 하는 것을 참으로 큰 특권으로 여겼기 때문에 새 양복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30달러를 모았을 무렵, 그는 회중에 있는 어느 자매가 약을 살 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모은 30달러 전부를 그 자매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제가 헌 양복을 입고 연설하나 새 양복을 입고 연설하나 저를 똑같이 사랑하실 것입니다!”

과테말라의 어느 자매는 가두 증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집 문간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았지만, 그 집이 다른 회중의 구역에 있었기 때문에 그 남자에게 전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그 남자를 지나쳐서 걸어갔지만, 다음 순간 그에게 꼭 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되돌아가 그 남자에게 여호와의 왕국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는 귀담아 잘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제게 와서 이야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부인. 사실 오전 7시 45분에 이곳에 올 남자를 죽이려고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그는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가고 있었고, 저는 전과자의 길을 갈 참이었습니다! 부인이 이곳에 자의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부인을 제게 보내어 제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알게 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저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지금 당장 다시 집에 들어갈 겁니다. 하느님께서 부인을 축복해 주시기를 빕니다!”

2000년 12월과 2001년 1월에, 콜롬비아의 지부 사무실은 격지 구역에서의 전파 운동을 조직하였습니다. 이 나라의 증인들은 여건에 따라 격지 구역에서 일 주일 내지 두 달간 머물면서 전파하고 관심을 발전시키라는 격려를 받았습니다.

보고타의 한 젊은 자매는 이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과스카라는 읍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보낸 두 달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에, 그는 직장을 구해서 그곳에 머물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여호와께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코코넛을 사서 코코넛 쿠키를 만든 다음, 그 쿠키를 거리에서나 가게에서 판매하였습니다. 또한 옷을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직장을 구하였으며, 심지어는 소젖을 짜는 법을 배우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그는 생활비를 벌 수 있었으며 과스카에서 정규 파이오니아로 계속 봉사해 왔습니다. 그는 25건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습니다.

자메이카에 사는 자매는 어느 집주인으로부터 그 어느 누구든 자신을 납득시켜 증인이 되게 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자매는, 자신이 방문한 이유가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비롯한 성서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자매는 그 여자가 성서를 매우 깊이 존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특정한 점들에 대한 그 여자의 강한 이의에 대해서는 성서를 펴서 관련된 성구들을 읽어 줌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매는 그를 방문할 때 성서를 광범위하게 사용하였으며 나중에 성서 연구가 마련되었을 때에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후에 그 성서 연구생은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으며, 처음에는 결코 되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바로 그 부류의 사람—헌신하고 침례받은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볼리비아에 사는 자매인 캐럴은 한 부부와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 부부는 남편의 어머니의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열렬한 가톨릭교인이어서 미사나 종교 행렬에 빠지는 법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 집은 형상들로 꾸며져 있었는데, 각각의 형상들 앞에는 켜진 초가 하나씩 놓여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연구를 하고 있는데, 그 어머니가 가톨릭 성서를 손에 들고 느닷없이 방안에 들어와서는 캐럴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습니다. “성서 어디에 마리아에게 자녀가 더 있었다는 말이 나온다는 거죠?” 캐럴은 그에게 마태 12:46-50과 13:55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기가 꺾여서 방을 나갔습니다. 하지만 몇 분 후에는 그림이 있는 커다란 금박 성서를 가지고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다시 방에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성구들을 보여 주자 그는 다시 방을 나갔습니다. 조금 후에 그는 또 다른 성서를 가지고 방에 들어왔지만, 성구의 내용은 똑같았습니다. 그는 말문이 막혀 잠잠해졌습니다.

그 후로도 몇 주 동안 방해가 더 있었습니다. 그는 질문들을 하였지만, 서서히 태도가 누그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대답들에 매료되어 갔습니다. 얼마 후에는 성서 연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이전에 가톨릭교를 위해 나타내던 열심은 참 숭배를 위한 열심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는 친구들을 왕국회관에 데리고 오기 시작했으며, 때가 되자 침례를 받았습니다.

아시아와 중동

스리랑카에 사는 게리는 가톨릭교인인 한 남자와 불교인인 그의 아내에게 「당신도 하느님의 벗이 될 수 있다!」 팜플렛을 전하였습니다. 아내는 성서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할 사람은 자기 남편뿐이라고 우겼습니다. 하지만 게리가 다음번에 방문하였을 때, 그 아내는 자신도 하느님의 벗이 되는 방법을 알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다음 주에 그 팜플렛을 가지고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그 부부는 성서를 한 권 구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 아내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벗이 되려면 성서 한 권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 아내는 「하느님의 벗」 팜플렛의 3과를 연구했을 때쯤에는 연구에 대해 열정적이 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열린 연구에는 또 다른 참석자가 있었는데, 그 집에서 숙식을 하는 젊은 남자였습니다. 네 번째 연구를 하기 며칠 전에, 게리는 그들에게 성서를 갖다 주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그 성서를, 탁자 위에 놓여진 팜플렛과 함께 잘 보이게 정돈해 두었습니다. 네 번째로 연구할 날 밤이 되자, 그들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성서를 꺼냈는데, 성서 갈피에는 파란 실이 여러 개 끼워 있었습니다. 남편은 말하였습니다. “배울 내용을 미리 다 예습했어요.” 그들은 배울 과에 나와 있는 성구들을 전부 찾아서, 각 성구가 나오는 면에 파란 실을 끼워 표시를 해 두었던 것입니다.

로위나는 필리핀에 사는 20대 초의 미혼모인데, 진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얼마 후에는 집회에도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재정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먼 곳에 있는 도시에서 직장을 구해야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독실한 가톨릭교 집안의 가정부로 취직하였습니다. 로위나는 그 도시에 있는 가장 가까운 왕국회관이 어디 있는지 물어 보았지만, 그 가족은 그가 증인들과 접촉하도록 돕기를 꺼렸습니다.

여러 달이 흘렀으며, 로위나는 증인을 만나 성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전화벨이 울려서 로위나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거기가 혹시 왕국회관인가요?”

로위나는 즉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도 왕국회관을 찾고 있어요. 왕국회관을 찾게 도와주시겠어요?” 로위나를 돕기 위한 마련이 있게 되었습니다. 로위나는 다시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지금은 침례받은 증인입니다.

러시아의 12세 된 한 소녀는 지부 사무실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소녀예요. 시베리아의 튜멘 지역에 살고요. 얼마 전에, 아주 외딴 곳에 있는 작은 우리 마을에서 처음으로 「파수대」 잡지를 받게 되었어요. 저는 학교 도서관에서 그 잡지를 보고는, 집에 가져가서 읽어 보기로 했지요. 그 잡지를 통해서 새롭고 흥미 있는 점들을 많이 배웠어요. 그저 그림을 잘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얻었지요. 더 많은 자료를 받고 싶어요. 계시록과 성서를 연구하고 싶고, 여러분의 조직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알아보고 싶어요.” 이 소녀를 돕기 위한 마련이 있게 되었습니다.

레바논에서 두 명의 증인은 호별 방문 봉사를 하는 도중에 어느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문을 두드리고 나니, 여호와의 증인을 사절한다는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남자가 나왔습니다. 그 자매들은 그와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는 그들을 안으로 초대하였습니다. 그들이 증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 남자는 문에 있는 스티커를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대답하였습니다. “보긴 봤는데, 이미 노크를 하고 난 후였어요.” 그러자 그 남자는 그 집이 자기 부모의 집이며, 부모는 여호와의 증인을 싫어한다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했으며 문에 붙어 있는 그 스티커 때문에 특히 많은 호기심을 나타냈습니다. 그 지역에는 그러한 스티커가 흔합니다.

자매들은 그 남자를 그의 집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그 남자 부부와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그들은 신속하게 집회에 참석하고 성서 원칙들을 적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남자는, 자기가 성서를 펼쳐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증인들이 도와준 덕분에 성서를 읽고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한국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한 자매는 성서와 여호와의 증인이 발행하는 다른 출판물들을 눈에 잘 보이게 비치해 둡니다. 그는 또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책의 오디오카세트를 자주 틉니다. 그 오디오카세트를 들은 한 여자는 그 카세트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며, 그와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목사의 부인도 그 녹음 테이프에 대해 질문하면서,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그처럼 생각을 자극하는 내용을 전혀 들어 보지 못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부인도 오디오카세트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며, 증인과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출판물을 잘 보이게 비치해 놓은 덕분에, 한 불교 신자도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지금은 성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 자매는 비공식 증거를 통해 접촉한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돌보기 위해 정규 파이오니아가 되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사는 한 특별 파이오니아 부부는 길을 걷고 있는 한 남자에게 증거하였습니다. 그 남자는 궁금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그 부부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남자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갔으며 흥미로운 토의를 나누었습니다. 그 부부는 회중 서적 연구에 참석하기 위해 그의 집을 나서면서 그에게 집회에 같이 가자고 초대하였으며, 그 남자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는 집회를 좋아하였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그 부부는 그에게 「요구」 팜플렛을 주고 다음날 그를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부부가 그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 남자는 전날 밤 집회가 끝난 후 집에 온 다음에도 새벽 4시까지 팜플렛을 읽고 기도를 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남자는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교회의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신학교에서 여러 해를 보냈지만, 삼위일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요구」 팜플렛에는 이 비성경적인 교리에 대한 진리를 밝혀 주는 성구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실제로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된 그는 기쁨에 차서 그 부부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젠 더 이상 삼위일체를 믿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교회에서 설교하기를 거절하고, 대신에 여호와의 증인의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증인에게서 구한 성서 출판물들을 연구하였으며, 그 출판물들을 자신이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필기한 공책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2주가 지나자, 그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변화시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는 싱가포르에 있는 트리니티(“삼위일체”)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고국인 인도를 떠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 학교에 가겠습니까? 심지어 학교 이름도 삼위일체인걸요!” 그는 증인들과 만나려는 열망을 품은 채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는 진리를 찾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원주민인 한 자매는 다른 카자흐스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자매는 파이오니아 봉사를 시작했을 때, 다른 민족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사는 구역에서 봉사하였습니다. 하지만 한번은 그 구역에서 뜻밖에도 카자흐스탄 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가 「깨어라!」 잡지를 한 부 전하자, 그 여자는 잡지를 받았습니다. 그 자매가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재방문을 하기까지 2주일이 걸렸습니다. 놀랍게도, 그 여자는 자매가 좀 더 일찍 찾아오지 않은 것에 대해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문자 그대로 자매를 잡아당겨서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 「지식」 책을 보여 주며 말하였습니다. “성서 연구를 합시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여자와 그의 큰아들은 순회 대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여자의 더 어린 아들은 현재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이며, 딸과 사촌과 조카도 성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중동의 어느 나라에서 활동하는 한 특별 파이오니아는, 「파수대」와 「깨어라!」 예약을 갱신하기를 원하는 요한이라는 남자를 찾아가 만났습니다. 요한은 인도에 사는 자기 할아버지가 오래된 증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요한도 인도에 있을 때는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였지만, 19년 동안 그곳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는 그 나라의 증인을 만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파이오니아가 집회에 참석해 보자고 권하였을 때, 요한은 집회가 열리는 바로 그 시간에 자신도 자신의 집에서 모임을 열고 있다고 대답하면서, 그 모임은 “성서를 연구하고 기도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요한은 「파수대」 잡지들과 「지식」 책을 사용하여, 많게는 25명이나 되는 인도 사람들과 함께 성서를 연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몇 년 동안 매주 모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편, 그 나라에 있는 영어 집단에는 전도인이 12명뿐입니다. 이 인도어 집단은 형제들의 방문을 받게 되었으며, 이 관심자들을 영적으로 돌보기 위한 조처들이 취해지고 있습니다.

네팔에 사는 한 소녀는 한국인 자원 봉사자들이 관리하는 고아원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 소녀가 고아원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교사 중 한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들”을 찾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이 소녀는 자신이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습니다. 고아원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 “진짜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보고 싶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그 교사는 여호와의 증인과 연구를 하면서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그 교사에게 말을 하여 그와 함께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소녀는 집회에서 관찰한 것에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즉시 성서 연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소녀는 빠르게 발전하였으며 4개월도 채 안 되어 침례를 받았습니다. 소녀는 침례를 받은 후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유럽

매년 영국의 런던에서는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전시회가 열립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 전시회에서 전시대를 설치해 놓고 성서와 출판물들을 전시하는데, 그 중에는 영국 수화로 촬영된 비디오인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도 포함됩니다. 한 청각 장애인 여자가 전시대를 보더니 기뻐하며 다가와서는, 자기가 청각 장애인 증인들을 백방으로 찾아 헤맸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자신이 몽골에 살 때 청각 장애인 증인 한 사람이 자신에게 자주 이야기를 했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야 부활 희망을 인식하게 되었고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6개월 후에 그 여자는 영국으로 이주하였는데, 왕국회관은 찾았지만 집회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자신이 청각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청각 장애인인 여호와의 증인을 찾게 해 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하였는데, 기도대로 된 것입니다. 현재 그 여자와 그의 딸은 성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수화 집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포르투갈에 사는 여덟 살 된 증인인 안드레이아는 자기 학급의 한 급우가 부모의 별거 때문에 무척 슬퍼하고 있는 것에 유의하게 되었습니다. 안드레이아는 며칠 후에 「깨어라!」 2001년 1월 8일호를 받게 되었는데, 그 잡지의 표제는 “우리의 결혼 생활은 회복될 수 있는가?”였습니다. 안드레이아는 매우 좋아하면서, 그 잡지에 실린 기사들이 그 급우의 부모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어머니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안드레이아는 잡지 한 부를 그 급우의 아버지에게, 다른 한 부는 그의 어머니에게 전달할 마련을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그 급우는 안드레이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이제 다시 합치셨어. 네가 우리한테 준 잡지 덕분에 우리 가족이 같이 살게 되었다는 말을 아빠가 너한테 전하라고 하셨어!” 뒤이어, 안드레이아는 그 가족에게 「가정의 행복—그 비결」 책을 주었습니다. 현재 안드레이아의 어머니는 그 급우의 어머니와 성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야외 봉사를 하던 두 증인은 그들이 만난 한 노인에게 「파수대」와 「깨어라!」 잡지를 제공하였습니다. 그 노인은 글을 읽을 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곱 살 때 목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로 그는 오로지 자기가 돌보는 양들을 벗삼아 15년 동안 산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학교라고는 전혀 다니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양을 돌보면서, 하느님을 더 잘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그는 방문한 형제들에게 “여러분의 잡지를 읽을 수만 있다면 꿈이 이루어질텐데요” 하고 말했습니다.

형제들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글 읽는 법을 배우기에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습니다.” 다음날, 목동이었던 그 노인은 왕국회관에 갔습니다. 그는 증인들의 도움을 받아 읽고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현재 그 노인은 성서를 정기적으로 읽으며 지칠 줄 모르는 좋은 소식의 전도인입니다.

이번 보고에서 유럽에 포함시킨 그린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지만, 인구는 모두 합해도 대략 5만 6000명밖에 안 됩니다. 이 나라에는 일곱 개의 회중이 있으며, 그 중 얼마는 매우 작습니다.

하랄은 침례받지 않은 15세의 전도인으로, 그린란드에 있는 회중들 중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그의 학급이 현장 답사 여행을 떠났을 때, 하랄은 그 여행에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하랄은 그 대신 다른 학급의 수업에 참석하였는데, 그 학급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 발표하라는 과제를 받았습니다. 학생들은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을 약 두 달 정도 받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학생은 거의 없었으며, 그나마 발표를 한 학생들마저도 고작 몇 분간만 발표하였습니다. 아직 수업이 끝나려면 반 시간 정도가 더 남아 있었기 때문에, 교사는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남은 수업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그러자 그 수업을 참관하고 있던 하랄이 손을 들어, 자신의 종교에 대해 발표하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교사가 말하였습니다. “진심이니? 네겐 준비할 시간도 없었을텐데.” 하랄은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으며, 이어서 학급 학생들에게 훌륭한 증거를 하였습니다. 하랄이 속한 학급의 교사는 그가 한 일을 알고 나서는, 하랄에게 그의 학급에서도 같은 발표를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준비를 하도록 일주일간 여유를 주었습니다. 그는 얼마의 성서 출판물을 가지고 가서 자기 반의 급우들과 교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덴마크에 사는 피아는, 갓 태어난 자기 아이를 교회로 데려가 세례를 받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피아의 남편은 유아 세례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부부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그 문제를 교회의 목회자와 토의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교직자는 유아 세례가 성경적이 아니라고 그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피아는 교회와 교회의 목회자에게 화가 났습니다. 32년 동안이나 잘못된 것을 믿도록 가르침받았기 때문입니다. 피아는 자기 아이가 세례를 받게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직접 성서를 읽어서 옳고 그른 것을 알아내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2000년 5월에 한 증인이 피아를 방문하였으며, 피아는 성서 연구를 받아들였습니다. 피아는 지역 대회에 참석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직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국립 교회에 진리가 없다는 것은 이제 분명히 알아요.” 피아는 현재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이며 침례를 향해 빠르게 진보하고 있습니다.

슬로베니아의 어느 형제는 공원에서 아들과 함께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던 중, 한 여학생이 한 무리의 학생들로부터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는 그 여학생과 영적인 주제들에 대해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 그 형제 부부는 실비아라는 이름의 그 학생과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실비아는 성서 연구에 참석하도록 남자 친구를 데려 왔으며, 지금은 그 남자 친구도 성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실비아는 자기 어머니에게도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였으며, 그 어머니 역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현재 이들 세 사람은 모두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실비아는 현재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입니다. 흥미롭게도, 실비아는 공원에서 그 형제를 만났던 날에, 이 세상이 이처럼 지각 없는 곳이 된 이유를 이해하게 도와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다고 회고합니다.

근년 들어 남아메리카와 중앙 아메리카 출신의 이민자들이 스페인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한 파이오니아 자매는 호별 방문 봉사를 하다가 콜롬비아에서 온 한 여자에게 증거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귀 기울여 들었고 성서 연구를 받아들였습니다. 다음 번 방문 때, 그 파이오니아 자매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성서 연구를 제의하였습니다. 그들 중 몇 사람이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끊임없이 이사를 하였기 때문에, 그 자매는 그곳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든 증거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그 자매는 20건의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들 중 얼마는 이사를 갔으며, 그들이 계속 연구를 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10건의 연구가 정기적으로 사회되고 있으며, 일부 연구생들은 이미 집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크레타에 사는 82세 된 한 여자는 왕국 소식을 지난 40년 동안이나 들어왔지만, 최근에 와서야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이 되었습니다. 한 특별 파이오니아 자매가 그에게 개인적 관심을 보인 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침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다른 가족 성원들도 이 연로한 여자의 본을 따랐습니다. 그 여자의 86세 된 남편은 60년 동안 담배를 피웠지만, 성서 연구를 시작하고 나서 담배를 끊고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부부의 55세 된 딸도 연구에서 잘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집회에 참석하고 있고 흡연을 중단하였습니다. 또한 이 부부의 증손자들 중 한 사람도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신권 전도 학교에 등록하려는 열망을 표현하였습니다.

에스토니아에 사는 한 선교인 자매는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바로 옆 아파트 건물에서 증거하다가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는 자매에게 남편이 사랑 많은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자매는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자매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자매는 바로 옆 건물에 산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그 말을 듣더니 흥분한 듯 목소리를 높이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 그렇다면 그 사람이 바로 댁이군요. 댁이 틀림없어요. 종종 발코니에서 식사를 하는 것 같던데, 그렇죠?”

자매가 대답했습니다. “네, 남편하고 같이요.”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맞아요, 두 분을 유심히 관찰했어요. 남편이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나르는 모습을 자주 보았지요. 두 분은 정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계시는군요! 우리 집에서는 두 분이 보이지 않지만, 저는 항상 제 친구 집의 발코니에 가서 두 분을 유심히 관찰한답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는 항상 기도를 하시더군요.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에요. 어서 안으로 좀 들어오지 않으시겠어요?” 그때 이래로, 그 부인은 정기적인 재방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오세아니아

지구상에서 이 지역은 태평양의 남부와 서부와 중부 지역에 있는 섬들을 망라하는데, 그 중에는 멜라네시아와 미크로네시아와 폴리네시아가 포함됩니다. 또한 여기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말레이 군도, 하와이 제도 등도 포함됩니다.

뉴질랜드에서 두 자매는 어느 날 한 여자가 정원을 손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자매들은 발길을 멈추고 그 여자가 정원에 있는 대나무를 뽑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자매들이 베푼 친절에 놀란 그 여자는 커피를 대접하였으며, 자매들은 그 여자에게 증거를 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한 지방 신문에 이 일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그 신문사에서는 회중에 연락하여 그 자매들에게 그들이 베푼 친절에 대한 상으로 아름다운 꽃다발을 받게 되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 신문에 실린 기사의 내용은 이러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과부의 골칫거리인 대나무를 파내 주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에게는 당연한 일 즉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일을 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베푼 친절은 그 과부를 무척 기쁘게 해 주었다. 그 여자는 너무나 고마웠기 때문에 이 모든 일에 대해 본지에 알린 것이다. 이 이야기는 8월의 꽃다발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그 여호와의 증인들이 베푼 친절이 그러했듯이 이 꽃다발도 그들에게 기쁨을 주기를 바란다.”

바누아투의 섬들 가운데 하나에서 두 파이오니아는 상점에서 일하는 한 젊은 여자에게 증거를 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요구」 팜플렛을 받았을 뿐 아니라 성서 연구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아버지는 강하게 반대하였고 자기 딸이 증인과 연구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딸이 가진 성서 출판물을 못쓰게 만들어 버리고 딸을 심하게 구타하였으며 결국에는 집에서 나가라고까지 말하였습니다. 그러한 와중에도 그 여자는 지식이 증가하였고 집회에도 참석하였으며 영의 열매를 나타냈습니다. (갈라디아 5:22, 23) 그 여자가 나타내는 존경심 어린 태도는 마침내 아버지를 감동시켰으며, 아버지는 노여움을 가라앉히고는 딸에게 집으로 다시 들어올 것을 권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신권 전도 학교에 등록하였으며 가까운 섬인 산토에서 열리는 순회 대회에 처음으로 참석하였습니다. 그 여자에게 어떻게 여행 경비를 마련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배표 살 돈을 주셨어요.”

하와이에 사는 클래런스는 전도인들이 집에 찾아오면 언제나 잡지를 받는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클래런스를 만난 한 파이오니아는 그가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책을 갖고 있는 것을 눈여겨보고는 그에게 성서 연구를 제의하였습니다. 클래런스는 기꺼이 그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은 언제나 성서에 관해 알고 싶었다고 말하였습니다. 클래런스는 성서 연구를 잘 준비하였으며 얼마 있지 않아 회중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클래런스에게는 변화해야 할 부면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로서 축일에 퍼레이드에 참가하여 다른 참전 용사들과 함께 자랑스럽게 행진을 하곤 하였습니다. 또한 크리스마스 때에는 자원하여 구세군 자선 냄비 옆에서 종을 울려 주었습니다. 사탄의 세상의 일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가 깨닫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그는 봉사의 직무에 참여할 자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클래런스는 85세에 침례를 받았으며 봉사의 직무에 계속 활발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권 전도 학교에서 학생 연설을 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워치타워 도서실」 CD롬을 이용하여 연구 조사를 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법까지 배웠습니다. 클래런스는 굳은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제 나는 진리를 발견했으니 그 어떤 것도 여호와를 섬기는 일로부터 나를 돌아서게 할 수 없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한 자매는 전화 증거를 하면서 어떤 남자에게 성서에 대해 토의하기 위해 일주일에 15분씩만 떼어놓을 수 있겠는지 물었습니다. 이 남자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자매는 “그럼 5분씩은 어떨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이 남자는 마지못해 그렇게 하는 데 동의하였습니다. 그 다음 주에 두 사람은 5분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이 남자는 생각 깊은 질문들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연구를 정확히 5분 만에 끝내다 보니 그 자매는 이렇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참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다 되었으니 그 문제는 다음 연구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이 남자가 어느 종교가 올바른 종교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질문하였을 때에도 그 문제는 다음 연구 시간에 다룰 점이 되었습니다. 다음 연구가 끝나자 이 남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분명 올바른 종교를 믿고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믿고 개종할 수는 없지요. 내게는 좀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남자의 관심이 발전하면서 연구 시간은 5분에서 점차 늘어나서 30분이 되었습니다.

「요구」 팜플렛을 끝마친 후 그 자매는 이 남자에게 자기와 자기의 남편이 그의 집에서 그를 만나 이제까지 배운 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이 남자는 그렇게 하는 데 동의하였습니다. 그 자매 부부는 이 남자를 방문하여 지난 6개월 동안 그를 돕는 특권을 누릴 수 있어서 기뻤음을 밝히고 이 남자가 계속 발전하도록 격려하였습니다. 지금은 그 자매의 남편이 이 남자의 집을 방문하여 매주 연구를 사회하고 있습니다.

파푸아뉴기니에는 좋은 소식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지역이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마을들이 찾아가기 어려운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도시로 물건을 사러 나올 때 만나는 것입니다. 외딴 마을에 사는 한 남자는 그런 방법을 통해 「파수대」를 한 부 받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남자는 잡지를 읽은 후 지부 사무실에 더 많은 점을 알려 달라고 편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 선교인이 이 남자와 접촉해 보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와 접촉하는 유일한 방법은 편지를 통한 것이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관심 있는 사람들과 편지를 통해 여러 건의 연구를 사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지역을 방문하기로 굳게 결심한 몇몇 선교인들은 사륜 구동 자동차를 타고 길을 떠났습니다. 여섯 시간이나 걸린 그 여행은 대부분 좁은 산길을 지나고 강을 가로질러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위험천만하고 험한 도로를 따라 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강바닥이 “도로”가 되었습니다.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정상이 구름으로 덮인, 식물이 무성하고 정글로 뒤덮인 산들 한가운데 면적이 10에서 12제곱 킬로미터 정도 되는 아름다운 저지 평야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곳은 마치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집은 수백 년 전과 마찬가지로 대나무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선교인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자 사람들은 흥분에 들떠 몰려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전에 한 번도 여호와의 증인을 만나 본 적이 없었지만, 이미 매주 두 번씩 「파수대」를 연구하고 있었고 그들 가운데 거의 모두가 루터 교회에서 탈퇴한 상태였습니다.

선교인들은 집회를 사회하는 방법을 직접 보여 주었으며 또한 이튿날 아침 8시에 공개 강연이 있을 것임을 널리 알렸습니다. 다음날, 어떤 사람들은 새벽 4시 30분부터 일어나 근처에 있는 마을들로 가서 사람들을 공개 강연에 초대하였습니다.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집회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큰 나뭇가지는 긴 의자로 사용하였고, 잎이 많은 가지는 그늘을 만드는 데 썼습니다. 연탁은 대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흥분에 들떴습니다. 집회에는 44명이 참석하였고 새로운 사람 11명이 편지를 통해 연구하겠다고 이름을 알려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선교인들은 기진맥진해 있었지만 그동안 할 수 있었던 일에 대해 더없이 깊은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45면 삽화]

잠비아에 사는 여덟 살 된 그랜트는 많은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다

[57면 삽화]

영국의 청각 장애인 전시회에서 사용되는 전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