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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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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보고

오세아니아

나라 수: 30

인구: 33,773,304

전도인 수: 92,691

성서 연구 수: 44,999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주 시골 벽촌의 한 철도역에서, 두 명의 전도인은 두 대의 주간(州間) 열차 중 한 대가 도착할 때면 언제나 서적 진열대를 설치하였습니다. 그 열차들—인디언 퍼시픽—은 최고 두 시간까지 그 역에 정차하기 때문에, 그 전도인들은 승객들과 유익한 대화를 많이 나누고 서적도 많이 전해 왔습니다. 사실상, 돌아오는 여행 길에는 몇몇 승객이 전도인들을 “재방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일상적으로, 의 차장은 열차가 여러 곳에 정차하는 동안 승객들이 즐길 만한 구경거리를 광고합니다. 왕국 전도인들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한지라, 차장은 이제 광고 사항 가운데 증인들의 서적 진열대를 포함시킵니다. 그렇습니다. 이 벽지 증인들의 기지 덕분에,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오는 여행객들이 훌륭한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미크로네시아의 코스라에에서 한 선교인 부부는 나이가 80대인 침례교 교역자에게 「지식」 책을 전하였습니다. 그 책은 사용 인구가 1만 명도 채 안 되는 코스라에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교역자는 그 책에 대해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그 부부가 재방문하였을 때, 그는 자기 교회 신도들에게 우리의 서적을 받아 볼 것을 권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당연히 선교인들은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야 우리 종교에서는 우리 말로 된 책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지요”라고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선교인 부부는 지금 이 연로한 교직자와 정기적으로 토의하고 있습니다.

마셜 제도에서 한 선교인 자매는 무활동 자매와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도록 요청받았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선교인은 그 여자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누군가가 댁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어떤 느낌이 드세요?” 어리둥절해하며 그 여자는 대답하였습니다. “아무도 내게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요.” 그때 선교인은 몸을 기울여 그 여자를 껴안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훨씬 더 사랑하시고요.” 그 무활동 자매는 흐느끼기 시작하였고, 그 후로 여호와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영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매일 성서 읽기 마련을 시작하고 모든 집회에 참석하더니, 보조 파이오니아 활동에까지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더니 2002년 1월에는 정규 파이오니아로 봉사하기 위하여 신청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 후로 성서 연구를 여러 건 시작하였고, 더 크게 필요한 한 외곽 섬에서 증거하면서 한 달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친구들과 해변에서 여가 시간을 갖던 중, 뉴칼레도니아의 한 선교인 자매는 프랑스에서 친척들 방문차 그 제도에 와 있던 한 젊은 여자에게 비공식 증거를 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군인이었고, 사라예보에서 복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선교인은 그 여자에게 참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싶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여군은 그렇다고 하면서도, 능률적인 군대를 거느린 막강한 정부만이 참다운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선교인은 자신의 증인 친구들은 국적이 다양하지만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연합되어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즐거운 대화를 나눈 뒤, 두 사람은 그 다음날 만나 토의를 더 갖자고 약속하였습니다. 그 여군은 약속을 지켰고, 첫 성서 연구를 즐겼습니다. 그 뒤로 모든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영적 식욕은 자라서, 휴가가 끝나 가면서는 매일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대회에 참석하고 그곳 지부를 견학한 다음 프랑스로 돌아갔는데, 거기서도 계속 영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지니는 파푸아뉴기니에 사는 청소년 전도인입니다. 이 자매는 종종 학교에 「청소년은 묻는다—질문과 효과있는 대답」 책을 가지고 갑니다. 하루는 영어 교사가 반 학생들 모두에게 각자 정한 제목으로 짧은 연설을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지니는 마약과 알코올을 제목으로 택한 다음, 「청소년은 묻는다」 책 제8부의 내용에 근거한 골자를 만들었습니다. 교사는 지니의 연설에 감동한 나머지, 원한다면 “수업 시간을 전부 사용”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니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교사는 그 다음날 10학년 교실에서도 연설해 줄 수 있겠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지니는 그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연설을 한 뒤, 영어 교사는 만약 학교에서 연설의 밤을 열게 되면 지니를 연단에 세우도록 주선해 보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두 번의 연설 결과, 지니는 「청소년은 묻는다」 책 64권을 요청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두 여학생이 「요구」 팜플렛을 요청하였고, 지니는 그 두 학생과 성서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 제도에서는 인종간의 폭력이 발생하여, 많은 형제들이 재산을 잃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가옥이 파괴된 한 부부는 임명되지 않은 구역에서 봉사하는 데 참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얼마 안 남은 돈을 다 써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여행을 위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카누를 제공해 가면서, 그들 자신이 나중에 표현한 말로, 생애 최고의 증거 활동을 경험하였습니다. 벌써 그들은 나타난 관심자들을 계속 돌볼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재정적으로 어떻게 감당할 것입니까? 거의 봉사되지 않은 그 구역에서 그들이 돌아온 지 1주일쯤 뒤, 필요한 재원을 가진 한 남자가 그들을 찾아와서는 그들이 교전 중에 피난 나온 집을 사겠다고 제의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누아투의 산토 섬에서는 보통 그곳 왕국회관이 지역 대회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2001년에 와서는 전도인 수가 회관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은 작은 경기장을 빌렸는데, 그때까지는 스포츠 행사에만 사용되던 곳이었습니다. 대회 참석자들이 시설을 훼손할지 모른다고 우려한 관리인은 높은 사용료를 부과하였습니다. 형제들이 경기장을 대회 전후에 청소하고 또 일부 보수까지 하겠다고 확언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 관리인은 그 지역에 가게를 하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증인들이 경기장을 청소하고 보수하는 용품을 사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호기심이 생긴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가 보았습니다. 경기장에 도착해서 보니, 100명이 넘는 자원 봉사자들이 문지르고, 닦고, 칠하고, 변기를 수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금세 경기장은—티 하나 없이 깨끗해지고 보수되어—그 소도시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형제들이 대회 후에 사용료를 지불하러 갔을 때, 그 관리인의 태도는 180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80퍼센트나 할인을 해 주면서 말하기를 앞으로 여호와의 증인은 경기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300명의 전도인들은 832명이 대회에 참석하고, 13명이 침례받는 것을 보고서 감격하였습니다.

아시아와 중동

나라 수: 47

인구: 3,869,881,970

전도인 수: 561,276

성서 연구 수: 390,151

인도 지부는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비디오를 통해 그 나라의 많은 지역에 훌륭한 증거가 행해졌다는 보고를 하게 되어 기뻐하였습니다. 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여호와의 증인이 제작한 「성서—당신의 생활에서 발휘하는 힘」이라는 비디오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던 것입니다. 그 후에 방송국측은 뉴욕에 있는 세계 본부에 편지를 보내, 그 비디오를 홈 샨티(가정의 평화)라는 프로와 연계해서 방송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허락을 받았고, 인도 지부는 그 비디오가 2002년 초에 “전파를 타고 전국의 각 가정으로 방송”되었다고 알려 줍니다.

이스라엘에서, 수화를 할 줄 아는 한 자매는 길거리에서 청각 장애인 부부인 베니와 샤론 곁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대신 멈추어 그 부부에게 증거하자, 그 부부는 우리의 자매를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베니의 처음 호기심은 왕국 소식에 대한 진정한 관심으로 변화하였고, 이내 회중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들을 수 없는데다, 시력마저 극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로서는 집회에 오가는 일과 수화 통역을 알아듣는 일이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력하였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생활과 인간성을 계속 성서 원칙과 일치시켜 나갔습니다.

베니의 장애 정도에 비추어 볼 때, 그의 발전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집회에서 해설을 하고, 신권 전도 학교에서—통역자를 통해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생기 있게 학생 연설을 하며, 최근에는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이 되었습니다. 시력과 청력이 역시 제한된 그의 아내 샤론은 나중에 연구를 시작하였지만, 훌륭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해할 만하게도, 베니와 샤론은 새로 발견한 믿음을 동료 청각 장애인들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후쿠에라는 자매는 자신의 특별 구역은 세 자녀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의 구역에는 유치원과 학교 그리고 학부모 회의에서 만나는 가까운 이웃과 부모들이 포함됩니다.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성서가 자녀들을 키우는 데 자신에게 귀중한 도움이 된다는 간단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말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슬기롭게 다른 화제로 옮겨 갑니다. 그러나 일단 분위기가 조성되면, 성서를 이어지는 대화로 끌어들이기가 훨씬 수월해짐을 느낍니다. 후쿠에의 방법은 효과적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제까지 그는 열두 사람이 침례를 받도록 도와 왔는데, 그중 다섯 사람은 지금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후쿠에가 비공식 증거에 열심인 것은 자신도 그런 방법으로 진리를 배워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카자흐스탄의 한 작은 읍에서, 한 부인에게 한 자녀가 있었는데 병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도 태어나자마자 죽었습니다.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고통을 당하던 부인은 결국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밤에 병상에 누워 있는데, 한 간호사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귀기울여 들어 보니까, 여호와의 증인인 간호사가 실제로 자기를 위하여, 자기 이름까지 들어가며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 간호사는 부활의 희망으로 그 부인을 위로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부인은 퇴원하였습니다.

5년이 지난 어느 날, 이 부인은 자기 친족들이 그 간호사가 병원에서 언급했던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 낯선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하고서 그는 자기 소개를 하였고, 그리하여 성서 연구가 마련되었습니다. 5년을 또다시 허비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부인은 열심히 연구하여 영적으로 훌륭하게 발전하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 부인은 여호와께 헌신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처음 대회에 참석해서 5년 전에 자기를 위로했던 바로 그 간호사를 만났을 때, 그 부인이 얼마나 감격했겠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 부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병원에서 자매가 조용히 기도해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예요. 그때 깊은 감동을 받았답니다.”

대만의 한 은행에서 20명의 여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한 자매는 자기 동료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하여 색다른 방법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하루는 점심 때, “매주 점심 시간에 30-45분간 진행될 무료 성서 토의에 참석하도록” 초대장을 작성하였습니다. 그 토의는 “여러분이 성서에 관한 기본 지식을 얻게 해 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초대장에 서명을 해서, 사무실 책상마다 한 장씩 갖다 놓았습니다. 바로 그날 오후에 네 사람이 그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타이에서 아룬이라는 남자는 한 직장 친구를 통해서 여호와의 증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룬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 직장 동료가 증인들과 연합하기 시작한 이래 그의 생활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기에, 나도 그와 같이 되고 싶었던 겁니다.” 아룬은 도박을 하고 마약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나쁜 습관들을 중단하려고 애써 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결혼한 사람이어서, 한때는 자녀가 생기면 책임감이 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귀여운 딸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아룬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침내 아내는 더 이상 그런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던지, 딸은 아이 이모에게 맡겨 놓고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아룬의 인생이 이처럼 밑바닥에 있을 때, 그의 직장 동료가 그를 왕국회관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아룬은 따라갔는데, 연단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만큼은 즐겼습니다. 그 이후로 아룬은 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였고, 성서 연구 제의를 받아들였으며, 자신이 배운 것을 적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혼 생활을 회복할 마음이 간절했던 그는 그 문제로 아내를 찾아가 보았지만, 아내는 그가 참으로 변화하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룬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내에게 증거하면서 내 새로운 친구들을 좀 만나 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거절하면서, 내가 속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나는 계속 아내를 방문하여 격려하였습니다. 5개월가량 지나자, 아내는 마음이 누그러져서 나를 따라 집회에 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아내도 성서 연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아룬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귀여운 딸은 함께 연합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부부는 2001년에 방콕 지역 대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룬의 남동생 역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형처럼 좋은 소식에 호응하였으며 지금은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입니다.

유럽

나라 수: 45

인구: 727,550,200

전도인 수: 1,456,309

성서 연구 수: 647,279

알바니아의 티라나에 사는 스물다섯 살의 아버는 선천성 질병 때문에 키가 113센티미터입니다. 그렇지만 난관을 무릅쓰고 이 자매는 키가 작다고 사람들이 놀려대는데도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즐깁니다. 화를 내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버는 누구에게나 공손하고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어, 생각 있는 사람들의 주의를 끕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부인이 있었는데, 그 부인의 스물여섯 살 된 딸이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치유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딸을 데리고 병원은 물론 여러 종교 단체까지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아버의 낙천적인 기질을 관찰하게 되어, 그를 찾아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아버가 문간에 나오자, 부인은 자기 딸과 성서를 연구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아버는 그러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딸의 건강은 개선되기 시작하였고, 상태가 너무나 좋으니까 어머니도 연구에 참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버는 지금 그 어머니와 딸을 정기적으로 집회에 데려오며, 두 사람은 영적으로 훌륭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베냐민이라는 청소년은 벨기에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사춘기 초기에 베냐민은 이중생활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서 원칙에 따라 사는 척하면서, 과음을 하고 마약을 사용하고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들과 어울렸습니다. 또한 베냐민은 저속한 음악을 들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악귀의 괴롭힘과 알코올성 혼수 상태를 겪기 시작하였는데, 그런데도 마약을 계속 사용하였습니다. 신체적 청결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상실하였으며, 심하게 앓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밑바닥에서, 그는 소위 자기 친구라는 자들이 자기에게 아무 관심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베냐민은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진정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지혜롭게도 그는 자기에게 참 사랑을 나타내 줄 사람들인 가족과 여호와에게로 돌아갈 결심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베냐민의 결심은 시작부터 시험을 받았습니다. 베냐민은 악귀의 격렬한 공격을 받았고, 여자 친구는 증인들과 연합하지 말라고 졸라 댔습니다. 여자 친구는 가톨릭 사제들과 배교자들을 동원하여 그를 단념시키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와 회중 장로들의 참을성 있고 사랑에 찬 도움으로, 베냐민은 여호와에 대한 살아 있는 믿음을 발전시키기 시작하여, 하느님의 법이 참으로 “완전하여 영혼을 회복”시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 19:7) 그 결과, 그는 마침내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였습니다. 베냐민은 건강이 호전되고 참다운 행복을 찾았습니다.

영국에서, 프랑스어 회중에 나가는 한 부부는 가두 봉사를 하던 중 짐바브웨에서 온 두 여자에게 접근하였습니다. 그 증인들은 무료 가정 성서 연구를 제의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하면서, 두 여자에게 프랑스어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못한다고 하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은 연구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두 여자는 곧 회중 서적 연구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첫 서적 연구를 끝마칠 때, 한 형제가 「2002 연감」 20면에 나오는 짐바브웨의 네이선 무칭구리의 경험담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은 21면에 나오는 무칭구리 형제 자매의 사진을 보더니, 놀란 나머지 숨을 헐떡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조부모 사진이었던 것입니다! 이 여자들은 짐바브웨에서는 다른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사느라 가족과의 접촉이 끊어졌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그 「연감」을 가져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두 여자는 그들의 조부모의 충실한 모범으로 강화되어 지금 정기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체코 공화국에서, 격지 구역에서 봉사하던 중 두 자매는 인심이 후한 부인을 만나 안으로 초대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부인은 “영의 선물들”을 받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와 같은 성서의 특정 주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첫째 14:12) 그뿐 아니라, 「신세계역 성경」은 읽어 보기를 거절하고 자기의 「에큐메니컬판」만 보려고 하였습니다. 성과가 없어 보이는 한 시간의 토의가 있고 나서, 자매들은 기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 나가야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까다로운 방문을 끝내고 나오게 되어 속이 퍽 후련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매 중 한 사람이 성서와 수첩을 그 부인의 집에 두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집에 다시 가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좋은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그 자매의 성서를 주인 몰래 마음 놓고 들여다보다가 그만 그 번역의 질, 상호 참조 성구들, 색인에 감탄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신세계역 성경」을 한 권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에 더하여, 성서 연구에도 동의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그 부인의 어머니도 연구에 참여하였습니다.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에 사는 한 자매는 어업 훈련 프로그램을 관장하는 해양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여러 개발 도상국으로부터 14명이 6개월 과정에 참가하였습니다. 이 자매는 각 연수생에게 「우리에게 관심을 가진 창조주가 있는가?」 책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는 베트남어·스페인어·영어·중국어·포르투갈어로 책을 구했던 것입니다. 열네 명 모두가 그 책을 받았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자신들의 언어로 된 출판물을 보자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그 남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믿을 수가 없군요! 너무 놀랐습니다. 어떻게 구한 겁니까?” 한 우간다 사람은 이미 그 책에 대해 알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책을 추천하였습니다. 쿠바에서 온 여자도 한 부를 원하였는데, 열세 살인 자기 딸이 생명에 관한 어려운 질문들을 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연수생들이 각기 본국으로 떠나기 전에, 그 자매는 그들이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읽도록 가져가라고 교실 탁자 위에 얼마의 출판물(「지식」 책 10부, 잡지 30부, 팜플렛 10부)을 갖다 놓았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떠난 뒤 월요일 아침에 자매가 한 첫 번째 일은 그 탁자로 가 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식」 책과 잡지는 몇 부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탁자에는 아무것도 없더군요!” 자매의 말입니다.

아르투르라고 하는 라트비아의 한 젊은이는 하느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하였다는 점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1996년에 아르투르는 심각한 문제에 개입되었다가 교도소에 감금되었습니다. 교도소에서 그는 인생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부모는 면회를 왔다가, 그에게 성서를 읽어 보라고 권하였습니다. 성서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후 1998년 어느 날 아르투르가 편지를 쓰고 있는데, 같은 감방 동료가 그에게 종이를 받치라고 책을 하나 건네 주었습니다. 그 책이 공교롭게도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였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아르투르는 그 책을 펴보다가 열중하는 바람에, 첫 장부터 끝 장까지 3일 만에 읽어 버렸습니다. 또 다른 수감자가 자기 감방에 「지식」 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서에 대한 아르투르의 관심을 관찰하고는, 그 책을 주었습니다. 그는 또한 자기가 알고 있는 증인의 주소도 건네 주었습니다.

아르투르는 그 증인에게 편지를 썼고, 그 이후 서신 왕래로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000년 4월에 석방되자, 그는 즉시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 앞서 그에게 성서를 읽어 보라고 권했던 그의 부모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연히 아르투르는 부모에게 자신이 새로 발견한 믿음에 관한 내용을 알렸습니다. 결과는 어떠하였습니까? 그 부모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002년 3월, 세 사람 모두가 같은 특별 대회일에 침례를 받을 때 그들의 기쁨이 어떠하였겠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스페인의 한 정형 외과 의사는 젊은이로서 교역자가 되려고 신학교에서 공부하였습니다.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3년 후에 그는 무신론자가 되어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그처럼 ‘단순한’ 사람들이, 신학 대학에서 여러 해를 보낸 자기 같은 사람도 거의 모르는 성경을 그처럼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궁금하였습니다. 증인들에 대한 그의 관심은 언젠가 병원 직원들이 자신에게 편견을 보였을 때 더욱 커졌습니다. 그로 인해 증인들이 때때로 받는 대우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경험이 있고 나서, 이 외과 의사는 무료 가정 성서 연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는 자신이 배우고 있는 내용에 깊은 감동을 받은 나머지 연구를 한 주에 세 번이나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모든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하였고, 신권 전도 학교에도 등록하였습니다. 최근에 그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아프리카

나라 수: 56

인구: 739,543,571

전도인 수: 915,262

성서 연구 수: 1,550,572

베냉에서, 왕국회관 건축은 형제들 사이에 대단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훌륭한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한 왕국회관의 봉헌식에서, 한 저명한 지방 유지는 여호와의 증인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네 교회가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숭배 장소인데, 앞으로도 내내 그럴 겁니다. 열렬한 가톨릭 신자인 내가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요? 아주 최근에 우리 가톨릭 지역구는 1950년대에 시작한 우리의 교회 건축을 완성하라고 1700만 CFA[약 2800만 원]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교직자들이 다른 데 써 버렸지요. 시내 다른 지역에서는 그곳에 교회를 짓기 위해서 300만 CFA[약 500만 원]를 저축했는데, 그 돈도 ‘증발’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건물이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이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 될 것이라고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주물 숭배에 대한 집착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이 성서 진리의 편에 서기가 어렵습니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주물 앞에서 매일 의식을 거행하던 한 가족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한 딸이 성서 진리의 편에 서서 거짓 숭배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였을 때, 그 가족은 그 딸에게 저주가 내릴 까 봐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딸은 계속 확고부동하였는데, 그 때문에 반대를 받고 집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가족에게 원한을 품지 않고, 계속 가족을 찾아갔습니다.

그 결과 할머니가 성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니, 심지어 손녀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까지 하였고, 그래서 소녀는 다시 들어갔습니다. 할머니는 영적으로 계속 발전하여 62세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할머니가 배운 것에 감동을 받은 소녀의 어머니도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그 어머니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삼 대가 거짓 숭배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한 소녀가 여호와께 충절을 지키면서 자기 가족에게 사랑을 나타내기를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잠비크에서, 형제들은 정기적으로 교도소들을 방문하여 재소자들의 성서 연구반을 사회합니다. 2001년에 그 교도소 중 한 곳에서 탈옥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연구반에 참석해 온 수감자들은 탈출을 거부하였습니다. 당국은 이 사실을 관찰하고서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을 칭찬하였습니다. 지금은 당국에서 수감자 전원이 형제들과 연구할 것을 권장합니다. 행실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기 때문에, 두 명의 수감자는 벌써 감형을 받았습니다. 그 두 명 중 한 명은 다음 지역 대회에서 침례받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나미비아에 사는 27세의 주디스는 자동차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목부터 그 아래로 마비가 되었습니다. 이 여자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자살할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여러 교회에서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가 다시 걷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자, 그들은 하느님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에게 벌을 주고 계신 것이 틀림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주디스는 더욱더 자살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먼저, 왜 하느님이 자기에게 벌을 주시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어머니에게 그곳에 있는 교회의 목회자를 집으로 초대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주디스가 목회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여호와의 증인들이 찾아왔습니다. 주디스는 「지식」 책을 사용하여 가정 성서 연구를 하자는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성서가 자기를 괴롭히는 질문들에 대답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제8장 “하느님께서는 왜 고난을 허락하시는가?”를 연구하면서, 그는 자신의 사고가 하느님의 처사가 아니라는 것을 배워 알게 되었습니다. “악한 일들이 여호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얼마나 안도감을 느끼며 기뻐했겠는지 상상해 보세요!”라고 그는 외쳤습니다. 주디스는 계속 연구하여 여호와께 헌신하였으며, 지금은 자신이 다시 한 번 건강이 온전해질 새 제도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1994년 르완다의 종족 말살 기간 중에, 찬탈이라는 젊은 여자가 이웃 나라인 부룬디로 도피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책을 발견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르완다로 돌아온 뒤에, 그는 증인들이 있는 곳을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가족은 외딴 지역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마침 시장에서 증거하고 있는 왕국 전도인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찬탈과 만나기 위하여, 그들이 그 시장에 오기로 계획된 날짜를 쪽지에 적어서 찬탈의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지정된 날짜 중 어느 날, 찬탈은 시장 입구에 앉아 통행인들이 다 볼 수 있게 그 쪽지를 쳐들고 있었습니다. 형제들이 그를 보고서 자기 소개를 하였을 때 그는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그의 진정한 관심을 알아보고서 형제들은 그를 다가오는 기념식에 초대하였고, 찬탈은 참석하였습니다. 그 모임 장소까지 가려면 이틀간을 걸어가야 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때부터 찬탈은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집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의 가족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한번은 오빠가 벌채용 칼을 들고 그를 집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찬탈은 계속 확고부동하였습니다. 1년 후에는 집회가 집에서 더 가까운 곳에서 열렸는데, 그래도 여전히 여덟 시간 정도는 걸어가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탈은 이제 처음 정식으로 성서 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는 여호와께 헌신하였고, 지금은 정규 파이오니아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도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를 집에서 쫓아냈던 오빠는 지금 정규 파이오니아이고, 남동생은 최근에 침례를 받았으며, 어머니는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입니다. 게다가 격지 집단이 그 지역에 형성되어, 이제 그 가족은 집회에 5분만 걸어가면 됩니다.

템비실레는 열심 있는 자매로, 스와질란드에서 왕실 가족이 사는 주택 단지인 크랄 중 한 곳의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이 자매는 크랄 거주자들에게 증거하고 싶었지만, 경계가 삼엄해서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 문제로 기도한 다음, 있는 용기를 다 내어 크랄로 다가갔습니다. 경비원들에게 증거를 하였는데, 한 경비원이 「당신도 하느님의 벗이 될 수 있다!」 팜플렛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매에게 질문을 하고 몸수색을 한 다음 들여보내 주어, 자매는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템비실레는 그 거주자들의 우호적인 태도에 더욱 놀랐습니다. 지금은 그 구역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하며, 세 건의 성서 연구도 시작하였습니다. 게다가 경찰이 지금은 그를 따뜻이 환영합니다. 하루는 한 경비원이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려워하지 마십시오. 부인. 그냥 들어가십시오. 부인은 여기서 놀라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메리카

나라 수: 56

인구: 807,517,534

전도인 수: 3,023,062

성서 연구 수: 2,676,288

아르헨티나의 한 소도시에서, 두 명의 특별 파이오니아는 한 부부가 손수레에 다친 개를 싣고서 밀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파이오니아들은 그들과 그 개를 차에 실어 수의사에게 실어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부부는 고맙게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그 이웃에서는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하였습니다. 파이오니아들은 그 남자가 가톨릭 교리 문답 교사인데다 그 지방에서 열리는 성인 추모 행렬에도 아내와 함께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부부는 가톨릭 교회에 깊이 연루되어 있으면서도 「파수대」와 「깨어라!」 잡지를 받기를 거절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부부를 약 2년 동안 방문한 뒤, 파이오니아들은 그들을 기념식에 초대하였습니다. 그날 밤에는 비가 대단히 많이 왔는데, 그런데도 그 부부는 왔으며, 따뜻한 환영을 받고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생전 처음으로 주의 만찬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지금 성서 연구를 정기적으로 즐기고 모든 집회에 참석하고 있으며, 이웃의 가톨릭교인들이 뭐라고 말하든 그런 것은 개의치 않습니다.

바베이도스에서, 한 파이오니아 자매와 또 한 증인은 증거를 하면서 거리를 따라 걸어가다가, 자기집 문간에 서 있는 한 여자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여자에게 증거를 시작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들어오세요. 내 성서를 가지고 올게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매들은 들어가서 집주인과 함께 앉아, 「요구」 팜플렛 제1과를 사용해서 연구 마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여자는 이 파이오니아 자매에게, 그가 전화를 걸어서 무료 가정 성서 연구를 바로 그날 아침에 하자고 제의한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파이오니아 자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그건 내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걸었든지 그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건 분명했지요. 그런데 다행인 것은 연구를 시작하게 되어 있는 오전 11시 30분 정각에 우리가 온 거예요.” 이 부인은 잘 발전하고 있으며, 벌써 집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노천 시장도 증거의 열매가 많은 구역이 될 수 있습니다. 볼리비아에 있는 한 선교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농산물 시장에서 수레에다 물건을 놓고 파는 한 부인에게 남편이 전도지를 전하였습니다. 우호적이기에, 나는 재방문해서 그 부인에게 「요구」 팜플렛을 사용해서 성서 연구를 제의했습니다. ‘여기서 연구를 하자는 거예요?’ 부인이 물었습니다. ‘문제 없어요. 늘 그렇게 하는 걸요.’ 내가 말했지요. 그래서 이제는 내가 도착하면 그 부인은 내게 자기의 작은 걸상을 내주어, 우리는 바로 그 수레 곁에서 연구를 한답니다. 손님이 오면 손님을 상대하고, 그런 다음에 연구를 다시 하고요.”

캐나다에서 한 여자는 친구로부터 「신세계역 성경」을 받았습니다. 그 여자는 그 성경을 읽는 일이 아주 재미있어서, 더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의 공식 인터넷 사이트(www.watchtower.org)로 가서, 성서 연구와 「지식」 책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두 자매가 방문해서 그 책을 주니까, 그는 그 책을 움켜쥐더니 다음날 아침까지 다 읽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저녁에는 첫 집회에 참석하였으며, 즉시 형제 자매들 사이에 있는 것을 편하게 느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빠르게 발전하여 지금은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이며, 머지않아 침례받을 계획입니다.

콜롬비아에서, 솔이라는 여자는 신체 장애로 인하여 계속 누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가족 외에는 어느 누구도 만나려 들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여호와의 증인인 한 이웃이 솔에게 전해 주라고 솔의 어머니에게 「파수대」와 「깨어라!」를 몇 부 주었습니다. 결국 솔은 그 이웃을 만나보겠다고 하였고, 증인은 성서 연구를 제의하였습니다. 솔은 이를 받아들였고, 1년쯤 뒤에는 기념식에 참석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7년 만에 처음으로 집 밖을 나간 것이었습니다. 이틀 후에는 처음으로 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솔은 앉아 있을 수도 없지만, 야외 봉사에도 참여합니다. 어떻게 하느냐고요? 형제들이 솔을 위해 특수 침대를 만들어 가지고 집집으로 밀고 다닙니다. 솔의 본과 격려에 힘입어, 그의 어머니는 지금 침례를 받았고, 친형제자매 중 두 사람은 파이오니아입니다.

코스타리카에서, 새로 임명받은 특별 파이오니아 부부가 그들의 구역에 사는 한 부인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부부는 그 집에 가서, 미국에 사는 증인인 며느리로부터 누군가가 시어머니를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여호와의 증인의 이곳 지부 사무실이 전화로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파이오니아 부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이 65세의 노부인은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 부인은 우리가 벌써 찾아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최근에서야 며느리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인데,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증인들의 말을 들어 보라고 권하였습니다. 그 부인은 우리가 그렇게 빨리 나타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입니다.”

이 파이오니아들의 말에 의하면, 그 부인이 증인들과 기꺼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부인은 독실한 가톨릭교인인데다, 사람들을 가르칠 목적으로 지난 12년 동안 가톨릭 교리에 대한 심층 연구까지 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파이오니아들은 성서와 여호와의 증인에 관한 부인의 많은 의문을 해소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그러고 나서 부인은 성서 연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남편과 딸도 하느님의 말씀을 더 배우고자 합니다.

푸에르토리코 베델 가족의 한 성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경찰—왜 그들이 있어야만 하는가?’라는 제목의 「깨어라!」 2002년 7월 8일호를 경찰 본서 서장에게 전할 마련을 했습니다. 서장은 그 기사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그 잡지를 시장과 그 지역의 다른 경찰서들에도 갖다 줄 것을 권했습니다. 실제로, 경찰 한 명이 나를 경찰차에 태워 다른 모든 경찰서로 데려다 주도록 마련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찰 서장은 앞으로 나오는 기사들도 자기 휘하의 경찰들에게 갖다 주도록 승인해 주었습니다. ‘이 기사는 경찰 조직이 필요로 하는 것—심리적·정신적 도움—을 줄 것입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한 달 내에 이 베델 가족 성원은 8개소의 경찰서를 방문하였는데, 여러 경찰관이 잡지를 더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총 164부의 잡지를 전하였고, 그의 잡지 통로에 다섯 사람을 추가하였습니다.

섬나라인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는, 25년간 나사렛 교회에서 이름난 성원이던 여자가 직장 동료의 권유에 응하여 순회 감독자의 연설을 들으러 갔습니다. 집회가 끝난 뒤에, 순회 감독자는 그 여자에게 다가가서 우호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 여자는 놀랐는데, 그의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인종과 신분에 근거하여 서로 교제하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여자는 남편과 인종이 달라서, 교회 동료들은 그 여자에게 불친절하게 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왕국회관에서 경험한 일과 순회 감독자로부터 개인적으로 받은 격려에 감동을 받은 그 여자는 성서 연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여자는 6개월이 못 되어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이 되었는데, 매달 봉사에 70시간 내지 100시간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2002년 “열심 있는 왕국 선포자” 지역 대회에서 침례를 받았으며 정규 파이오니아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일곱 살인 딸을 돕고 있는데, 그 딸은 지금 신권 전도 학교에서 연설을 합니다.

우루과이에서, 십자가상이 달린 목걸이를 파는 방문 판매원이 한 증인의 집에 왔습니다. 자매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자기가 그러한 제품을 구입할 수 없는 이유를 성서를 사용하여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판매원은 자매의 설명을 존중하였을 뿐 아니라 영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도 표명하였습니다. 사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여러 종교에 속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교회들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돕는 일보다는 돈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가 떠나기 전에 자매는 그를 왕국회관에 초대하였습니다.

그 사람을 본 것이 그때가 마지막이었는데, 한 1년쯤 지나 그가 다시 문간에 나타났습니다. 대단히 놀랍게도,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물건 팔러 온 것이 아니라, 제가 「지식」 책을 15장까지 마쳤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는 온 가족이 연구하고 있고 집회에도 참석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떠나면서 그는 “다음 주말에 대회장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하였습니다.

[43면 삽화]

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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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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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뉴기니

[47면 삽화]

타이

[47면 삽화]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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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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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51면 삽화]

알바니아

[51면 삽화]

스페인

[56면 삽화]

나미비아

[56면 삽화]

베냉

[56면 삽화]

콩고 (킨샤사)

[60면 삽화]

캐나다

[60면 삽화]

토바고

[60면 삽화]

볼리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