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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년 동안의 주목할 만한 일들

지난 일 년 동안의 주목할 만한 일들

지난 일 년 동안의 주목할 만한 일들

최근 몇 년 동안 자연재해가 증가하였고, 많은 나라들에서는 2005 봉사 연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처럼 가슴 아픈 일들이 벌어지면, 우리 형제들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시련이 닥치면 형제들은 그리스도인 사랑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며, 그러한 사랑으로 인해 형제 관계가 강화되고 마음이 진실한 사람들이 진리로 이끌리게 됩니다.—말라기 3:18; 요한 13:35.

또한 재해가 증가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깨어 있으십시오!」 팜플렛 특별 배부 운동에 참여하여 그러한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의미를 파악하도록 도운 것은 참으로 큰 특권이었습니다! 많은 나라들에서, 그 배부 운동은 2004년 10월 18일에 시작되었고 훌륭한 결과가 있었습니다.

「깨어 있으십시오!」 배부 운동

아르헨티나: “재해가 일어나면 누가 살아남을까요? 악한 사람일까요, 선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경고를 따른 사람일까요?” 한 자매는 반응이 아주 냉담한 구역에서 「깨어 있으십시오!」 팜플렛을 배부하면서 그와 같은 효과적인 서론을 사용하였습니다.

후안이라는 형제는 16살 된 청소년에게 팜플렛을 전하였는데, 그 청소년은 팜플렛을 읽고서 알게 된 내용을 아버지에게 열띤 어조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청소년의 아버지는 더 알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팜플렛을 읽고 성구까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아 가족과 함께 팜플렛을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후안은 다시 방문하여 그에게 무료 가정 성서 연구를 제의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가정 성서 연구 말입니까?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프랑스: 조슬린은 알리샤에게 「깨어 있으십시오!」 한 부를 주었는데, 알리샤는 이전에 연구를 한 적이 있는 젊은 여자였습니다. 알리샤는 기쁘게 팜플렛을 받고 그 팜플렛으로 조슬린과 연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알리샤는 성서를 정기적으로 읽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조슬린은 이렇게 말합니다. “불과 2주가 지난 후에, 알리샤는 예수의 생애에 관한 성서 기록을 읽고 눈물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알리샤는 동거하던 남자에게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합법적으로 결혼하기를 원하며 여호와의 증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남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좋아요. 하느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당신이 못하게 막고 싶지는 않아요.” 그 이후에 알리샤는 처음으로 순회 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마다가스카르: 나나는 두 명의 어린 딸을 둔 어머니입니다. 십 대 시절에 나나는 부모와 함께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였지만, 부모가 여호와를 섬기기를 중단하자 자신도 집회 참석을 그만두었습니다. 특별 운동 기간에 나나는 선교인 자매로부터 팜플렛을 받고 성서 연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현재 나나는 두 딸을 데리고 모든 집회에 참석하고 있으며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나의 부모도 그 팜플렛을 가지고 연구하기로 하였습니다. 나나의 남동생인 열네 살 된 조시아는 친구와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습니다. 조시아의 친구는 현재 정기적으로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합니다.

나이지리아: 한 파이오니아 형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특별 운동 기간에 어머니가 사망하셨는데, 그 때문에 마을에서 증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장례식 전에 친척들은 땅에 엎드려 통곡을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이러세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우리 모두 마음이 아프지만 어머니는 죽어서 잠들어 계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부활되실 것입니다.’ 저 자신도 눈물이 났지만 「깨어 있으십시오!」 팜플렛의 8면을 펴서 부활에 관한 삽화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45부의 「깨어 있으십시오!」 팜플렛을 포함하여 총 195부의 팜플렛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장례식 때는 형제들과 함께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 것인가?’에 대해 다루는 「파수대」 2005년 5월 1일호를 100부나 전하였습니다.”

러시아: 젤레노그라드스크에서 특별 파이오니아로 봉사하는 이리나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한 자매와 함께 알라라는 여자에게 「깨어 있으십시오!」 팜플렛을 전하였습니다. 알라는 우리를 안으로 초대하였습니다. 알라는 삶의 의미를 모두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도 매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재방문을 할 마련을 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 나는 같은 자매와 함께 걸어가다가 어떤 여자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여자는 바로 알라였습니다. 알라는 팜플렛을 주어서 고맙다고 하면서, 팜플렛을 가방에서 꺼내 밑줄을 그어 놓은 요점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현재 알라는 「요구」 팜플렛을 가지고 정기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다른 곳에서 있었던 일인데, 베라와 그의 남편 비탈리는 길가에 있는 매점에 잠깐 들렀습니다. 그 매점에는 베라와 알고 지내던 류다가 일하고 있었습니다. 전에 류다가 증인들과는 성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베라는 팜플렛을 제공할까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베라는 남편의 격려를 받고 팜플렛을 제공하였으며, 놀랍게도 류다는 그 팜플렛을 받았습니다. 이틀 후에 류다는 전화를 해서 “팜플렛 한 부를 보고 이렇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면, 정기적인 성서 연구로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친척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류다는 즉시 연구와 집회 참석을 시작했습니다. 류다의 아들과 딸도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베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몇 해 전에 류다가 「지식」 책을 받고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깨어 있으십시오!」 팜플렛이 류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베네수엘라: 한 순회 감독자의 아내는 한 부부와 그들의 네 자녀와 함께 문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자매는 「깨어 있으십시오!」 팜플렛의 16면과 17면에 있는 낙원 그림을 가리키면서 가족 모두가 하느님에 관해 배울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자매는 여섯 명 모두를 목요일 밤 집회에 초대하면서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자매는 남편과 함께 약속 시간에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몰랐지만, 그 가족은 먼저 온 버스를 타고 이미 왕국회관에 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가족 중 다섯 명은 현재 정기적으로 성서 연구를 하고 있으며, 버스를 타고 오래 가야 하고 요금도 비싸지만 집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한 파이오니아 자매는 어느 집을 방문했는데 집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자매가 나중에 다시 와서 보니 한 노인이 막 집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귀가 어두워서 사람들이 문을 두드려도 소리를 듣지 못하고 또 걸음이 너무 느려서 문에 나가 보면 사람들이 이미 가 버리고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자매는 그 노인에게 「깨어 있으십시오!」 팜플렛을 한 부 주고 회중 집회에 초대하였습니다.

집회 중에 자매는 그 노인이 청중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이 경험담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노인은 현재 한 형제와 정기적으로 성서 연구를 하고, 모든 집회에 참석하고 있으며,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처음 집회에 참석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는 「깨어 있으십시오!」 팜플렛을 집어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팜플렛 때문이지요!”

성서 번역

1800년대 말부터 여호와의 조직은 성서를 대량으로 구입하여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배부하였으며 때때로 정가의 35퍼센트 가격으로 배부하기도 하였습니다. 1926년부터 형제들은 자체 인쇄 시설에서 「임패틱 다이어글롯」, 「킹 제임스 성경」, 「미국 표준역」을 포함하여 몇 가지 성서를 인쇄하고 제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61년에는 한 권으로 된 영어 「신세계역 성경」이 발표되었습니다.

다른 언어들은 어떠합니까? 20세기 초에 지부들은 여러 출판사로부터 성서 번역판들을 구입하여 그 가격 그대로 배부하였습니다. 이 성서들 중 몇몇은 성실한 번역자들에 의해 번역되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된 성서에 하느님의 이름 여호와를 사용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의 번역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자기들의 번역판에서 빼 버렸습니다. 현재 어떤 번역판들에서는 심지어 하느님의 이름이 현지인들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바뀌어 있기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 말라위, 모잠비크, 잠비아에서 사용하는 치체와어 성서 「부쿠 로예라」에서는 테트라그람마톤을 “차우타”로 번역해 놓았는데, 이 이름은 “위대한 활잡이”라는 뜻을 가진 부족 신의 이름입니다.

그 외에도 원문과 다르게 번역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아프리카 번역판에서는 누가를 주술사로 언급합니다. 투발루어 성서는 유다 23절을 제멋대로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남성 동성애자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보이십시오. 다만 그들의 남성 동성애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하지만 원문에는 남성 동성애자나 남성 동성애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성서 공회들이 성서를 생산하고 배포하는 일을 주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부 성서 공회들이 인쇄 및 배포 권한을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교회들에 넘겼습니다. 어떤 나라들에서 교회들은 성서의 가격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들의 성서를 구입해 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일례로, 키르기스스탄에서는 한 프로테스탄트 종파에서 현대 키르기스어로 된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서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은 성서를 사려고 하면 종종 “당신 여호와의 증인이요?” 혹은 “하느님의 이름을 알고 있소?”와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성서 구입을 거절당하게 됩니다.

통치체에서는 이런저런 요인들을 감안하여, 성서 번역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도록 지시하였습니다. 현재 「신세계역」 전역은 35개 언어로 나와 있으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신세계역」은 그 외의 20개 언어로 나와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는 33개의 성서 번역 팀이 있는데, 그 가운데 19개 팀은 히브리어 성경을, 11개 팀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그리고 3개 팀은 「참조주 성서」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보통 성서 번역 팀은 세 사람에서 여섯 사람으로 구성됩니다. 컴퓨터를 사용한 번역 도구와 개선된 절차 덕분에 2년도 안 되어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번역을 완료한 팀들도 있습니다.

형제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된 「신세계역」을 받고 어떻게 느꼈습니까? 알바니아의 한 파이오니아는 많은 사람들이 느낀 기분을 이렇게 요약해서 말했습니다. “눈물이 나오더군요. 전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이 들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성구를 음미해 보고 싶습니다!”

법적 진척 상황

아르메니아: 열다섯 번이나 신청을 한 끝에, 여호와의 증인은 마침내 2004년 10월 8일에 등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젊은 형제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 때문에 계속 투옥되고 있습니다. (이사야 2:4) 우리는 이 등록으로 인해 우리 형제들이 종교적 자유를 누리게 되어 출판물을 수입하고 대회를 열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실 2005년 6월에는 아르메니아에 공식적으로 수입된 최초의 출판물이 세관을 통과하여 형제들에게 배부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 30여 년 동안 이 나라의 여호와의 증인은 온전한 종교적 인정을 받기 위해 법적 투쟁을 벌여 왔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유럽 인권 재판소 앞으로 다섯 건의 소송을 신청하였습니다. 2005년 2월 1일에 이 재판소는 여호와의 증인이 종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성직자에 대한 병역 면제 판정을 받지 못한 형제들이 관련된 두 건의 소송을 심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7월 5일에 이 재판소는 소송 신청을 검토하기로 하였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에리트레아: 2004년 1월 24일에 당국은 아스마라의 사바 회중과 연합하고 있는, 6세부터 94세까지, 38명의 남녀와 어린이를 체포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침례받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사흘 밤을 경찰에 구금되어 있다가 풀려났습니다. 나머지 28명은 아스마라 교외에 있는 교도소로 이송되어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철판으로 만든 선박용 컨테이너에 감금되었습니다. 일곱 달도 더 지난 2004년 9월 2일에 94세와 87세로 가장 나이가 많은 형제 두 명이 풀려났습니다. 그 후로 다른 사람들도 석방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섯 명은 아직도 수감되어 있으며, 그들과 함께 수감되어 있는 16명의 형제들 중 세 명은 11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습니다. 기도할 때, 잊지 말고 이 소중한 형제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사도 12:5.

프랑스: 「2001 연감」에 보고된 바와 같이, 당국은 우리 형제들의 헌금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면서 지난 4년(1993-1996년)의 헌금에 대해서도 소급하여 세금을 부과하였습니다. 그러한 세금은 모두 세율이 무려 60퍼센트나 되었으며 거기에 벌금까지 부과되어 있었습니다! 형제들은 소송을 제기하였지만 하급 법원, 항소 법원, 대법원에서 패소하였습니다. 2005년 2월 25일에 형제들은 명백한 종교적 차별을 이유로 유럽 인권 재판소에 소송을 신청하였습니다.

그루지야 공화국: 폭력적인 박해는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출판물을 수입할 수도 있고 그리스도인 모임들도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에 있었던 학대와 관련된 여러 건의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은 유럽 인권 재판소에 그루지야 정부를 상대로 4건의 소송을 신청하였는데 현재 소송이 계류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소송은 우리 형제들이 폭력적인 박해를 겪은 것과, 우리 법인체의 해체 그리고 그 이후로 사법적 구제책이 없었던 것에 관한 것입니다. 2004년 7월 6일에 유럽 인권 재판소는 여호와의 증인의 글다니 회중 대 그루지야의 소송 사건을 심리하기로 하였습니다.

독일: 독일이 통일되었을 때 형제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종교 단체가 공법상 법인체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인정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2년간의 법적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2000년에 연방 헌법 재판소는 호의적인 판결을 내려, 국가가 여호와의 증인에게 그들의 그리스도인 양심에 위배될 정도까지 충성을 요구할 수 있다는 개념이 부당한 것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그 후로 진행된 일들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2005년 3월 24일에 베를린 고등 행정 법원은 여호와의 증인에게 공법상의 법인체가 가지는 권리를 부여하라고 베를린 주에 명령하였습니다. 현재 베를린 주는 그 판결에 항소하려고 하는 중입니다.

러시아: 「2005 연감」에 보고된 바와 같이, 골로빈스키 지구 지방 법원은 2004년 3월 26일에 모스크바에서 우리의 모든 활동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때 이후로 회중 집회나 대규모 모임을 가질 장소를 임대하기 위한 계약을 맺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들은 다섯 개의 홀이 있는 왕국회관 건물 하나를 가지고 있어서 44개 회중과 2개 집단이 그 건물을 함께 사용합니다. 모스크바의 회중들 중 17개 회중은 상당한 비용과 불편을 감수하면서 시외에서 모임을 가지며, 31개 회중은 전체 또는 일부 집회를 개인 아파트에서 소규모로 봅니다. 경찰의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다소 있었지만 체포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3월 26일의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를 하였습니다.

2004년 9월 9일에 유럽 인권 재판소에서 쿠즈네초프 등 대 러시아 연방의 소송 사건에 대한 구두 심리가 있었습니다. 10월 4일에 그 재판소는 만장일치로 그 사건을 심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소송은 2000년 4월에 첼랴빈스크에 있는 수화 회중의 집회를 해산시키라고 경찰에 명령한 한 관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소송은 심리 초기에 극도로 변칙적인 일이 벌어져서 복잡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투르크메니스탄: 만수르 마샤리포프, 아타무라트 수프하노프, 베파 투바코프. 이 세 형제는 양심적 병역 거부로 인해 각각 18개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베겐치 샤흐무라도프도 1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05년 2월 16일에 여호와의 증인의 법률 사무실은 워싱턴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 편지를 보내어 이 네 형제를 무조건 석방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4월 16일에 그들은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의 특별 사면을 받아 모두 석방되었습니다. 2005년에 경찰은 많은 형제 자매들을 구금하고 심문하면서 압력을 가하여 믿음을 포기하게 하려고 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자연재해가 많았던 해

일부 나라들에서는 2004년에 자연재해와 관련하여 신기록이 세워졌습니다. 이러한 가슴 아픈 일들은 우리 형제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카리아쿠, 그레나다, 프티트마르티니크: 2004년 9월 7일에 허리케인 아이번이 이 섬들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가옥의 90퍼센트 이상이 파손되거나 완파되었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극심한 약탈이 자행되었으며, 그 피해가 허리케인 자체보다 심각할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형제들은 이 재해로 인해 대부분의 소유물을 잃었고, 그레나다에 있는 여섯 채의 왕국회관 중에 두 채가 심하게 파손되었습니다. 중상을 입은 형제들은 없었습니다.

허리케인이 마지막으로 이 지역을 강타한 때는 1955년이었지만, 이 섬들을 돌보는 바베이도스 지부는 미리 회중들에게 허리케인에 대비하는 것에 대한 봉사회 프로를 계획하도록 조언하였습니다. 그레나다에 사는 한 자매는 “더 중요한 일도 있는데 허리케인에 관해 이야기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아이번이 강타한 후 그 자매는 조직의 지시에 결코 다시는 이의를 달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지부는 신속하게 구호 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가이아나 지부와 트리니다드 지부에서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카리브 해 지역과 미국의 수많은 형제들이 재건축을 도와주었습니다.

자메이카와 케이맨 제도: 형제들 가운데 허리케인 아이번으로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많은 형제들이 재산 피해를 입었습니다. 날씨가 좋아지자마자 이 섬에 있는 199개 회중의 장로들은 전도인들과 연락을 취하였습니다.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여러분은 정말로 서로를 돌봐 주는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아이티: 9월 중순에 허리케인 진이 아이티 북부 지방을 덮쳐서 끔찍한 홍수를 일으켜 해안에 있는 고나이브 시와 그 주변 지역을 완전히 삼켜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피할 곳을 찾아 지붕 꼭대기로 올라갔지만 그런데도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 한 형제는 “밤새도록 집들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 홍수로 약 2900명이 사망하였고, 그중에는 83세 된 한 자매도 있었습니다.

한 형제는 “가족이 소유물을 그대로 두고 나와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여호와께 감사합니다” 하고 말합니다. 며칠 후에 이웃 도시들에서 증인들이 음식과 생수를 가지고 왔고 지부에서는 필수품들을 트럭에 싣고 와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청소도 해야 했지만 주말에는 모두가 다시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고 전파 활동을 하였습니다. 한 자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흘에 걸쳐서 40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우리 집을 보수해 주었어요. 페인트칠까지도 해 주었답니다! 증인이 아닌 가족들은 이 모든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그 이후로 한 명은 연구를 시작했답니다.”

미국: 2004년 8월과 9월에 플로리다 주는 네 개의 허리케인(아이번, 진, 찰리, 프랜시스)에 강타당하였습니다. * 4300채가 넘는 형제들의 집이 파손되었으며 왕국회관도 최소 10채가 파손되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고 나서 플로리다 비상 대책 위원회의 위원장은 비상 대책 위원회의 보급품들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하였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만큼 조직이 잘되어 있는 단체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구호 위원회에 필요한 보급품이 무엇이든 가져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회중은 집회 때마다 50달러(약 5만 원)를 주기로 하고 임시로 건물을 빌려서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빌딩도 첫 번째 허리케인이 강타했을 때 파손되었습니다. 사람들을 고용하여 수리를 했지만 그들은 일을 끝내지 못하였습니다. 형제들은 건물 주인들에게 일을 해 주겠다고 제의하였고, 허락을 받은 후 신속하게 일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러자 주인들은 3개월 동안 임대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일본: “[2004년에] 일본을 강타한 태풍의 수는 1551년에 기록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많았다”라고 한 뉴스 보도는 전하였습니다. 니가타 현과 후쿠이 현에서는 7월의 극단적인 날씨 때문에 3만 4000채가 넘는 집과 건물이 파손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왕국회관 한 채와 형제들의 집 60채도 포함되었습니다. 인근 회중들에서 수백 명의 증인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왕국회관은 2주도 채 안 되어 완전히 복구되었습니다.

또한 형제들은 회관 주위에 사는 증인이 아닌 사람들의 집을 청소하고 방역하는 일도 도와주었습니다. 왕국 소식을 반대하던 한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하였습니다. 지방 정부에서는 구호 위원회에 형제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감사장을 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9월과 10월에 두 차례의 태풍이 일본을 휩쓸고 지나갔을 때, 홍수와 산사태로 인해 형제 한 명과 자매 한 명이 사망하였고 약 100명의 증인들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효고 현의 토요오카 시가 침수되었습니다. 순회 감독자는 자신의 숙소가 물에 잠겼지만 구호 활동을 조직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그곳 전도인들은 한 파이오니아 자매의 셋방에 1미터가 넘게 차올랐던 흙탕물이 빠지자 그 방을 깨끗이 청소해 주었습니다. 증인이 아닌 집주인은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조직이 벌이는 구호 활동에 관해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직접 체험을 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하느님 여호와와 그분의 조직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10월에는 큰 지진이 일본 북부를 강타하여 40명이 목숨을 잃고 10만 명 이상이 집을 떠나 대피해야 하였습니다. 부상당하거나 사망한 형제들은 없었지만 200가족이 피해를 입었고 왕국회관 한 채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순회구의 장로들이 순회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모여 있을 때 약한 지진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지부 사무실과 지역 건축 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즉시 구호 활동을 조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장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영적인 사람들이 보는 방식으로 보도록 일깨움받았습니다.” 순회 대회가 열렸고 지진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참석하였습니다.

“지진이 남편의 마음도 흔들어 놓았어요”라고 남편이 증인이 아닌 한 자매는 말합니다. 그의 집도 파손되었는데, 남편은 구호 활동이 진행되는 동안에 그리스도인 사랑이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을 보고 생전 처음으로 회중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필리핀: 2004년 후반에 태풍들이 케손 주와 오로라 주를 휩쓸었을 때, 네 명의 자녀를 포함한 한 증인 가족이 홍수와 진흙 더미에 집이 무너져 사망하였습니다. 순회 감독자 필리먼 마리스텔라는 갑작스럽게 홍수가 일어났을 때 케손에 있었습니다. 그가 쓴 편지는 이러합니다. “왕국회관이 순식간에 물에 잠겼고 내 지프차도 떠내려갔습니다. 나는 아내와 두 명의 형제와 함께 밤새 회관 지붕에 있었는데 물이 처마까지 차올랐습니다. 다음 날 오후 세 시에 내려왔는데, 그때까지도 물이 가슴까지 올라왔습니다.”

상황이 위험하였지만, 마리스텔라 형제는 전도인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무사한지 확인하였습니다. 오로라 주 딩갈란에서는 한 장로가 헬리콥터를 타고 대피할 수 있었는데도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을 돕기 위해서 남아 있기로 하였습니다.

역사상 인명 피해가 가장 큰 쓰나미

2004년 12월 26일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북부의 서쪽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하여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쓰나미가 일어났습니다. 추산에 따르면, 사망자와 실종자 수는 28만 명이 넘습니다! 심지어 인도양 건너편에 있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에서도 해일 때문에 약 29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이 나라에서는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났지만 형제들과 관심자들 가운데는 사망자가 전혀 없었습니다. 전에 있었던 폭력 사태 때문에 많은 증인들이 가장 피해가 컸던 아체 지역을 떠나 내륙으로 이주해 있었던 것입니다. 니아스 섬 또한 피해가 심했지만 형제들은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인도: 형제들 가운데 사망자는 없지만 집과 소유물을 잃은 형제들이 많습니다. 락슈미는 퐁디셰리 시에서 야외 봉사를 하러 나와 있다가 쓰나미에 관해 들었습니다. 락슈미가 집에 가 보니 바닷가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자신의 흙집이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습니다. 형제들은 그 집의 청소와 수리를 도와주었습니다.

마드라스에서 열세 살 된 나빈은 크리켓을 하다가 거대한 파도를 보았습니다. 나빈은 어머니와 누나에게 경고하여 안전한 곳으로 함께 피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온갖 살림살이와 많은 시체들을 떠밀고 오는 거센 물살을 헤치고 걸어가야 했습니다.

일곱 살인 리니는 작은아버지와 사촌과 함께 카니야쿠마리에서 가까운 해변에 있다가 파도에 휩쓸려 육지 쪽으로 밀려가다가 나무 울타리에 끼였습니다. 물은 리니 쪽으로 계속 밀려왔습니다. 작은아버지와 사촌은 무사했지만, 작은아버지는 안경을 잃어버려 잘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리니를 계속 찾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한 물소리 가운데서 리니가 큰 소리로 여호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리니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리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말합니다.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마리와 그의 여덟 살 된 아들 알빈은 친척 집에 가 있었을 때 집이 지진으로 흔들렸습니다. 모두가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마리는 바닷물이 크게 일어서 해안 쪽으로 밀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그때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마리와 알빈은 버스에 뛰어올라 대피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물건들을 가지러 집으로 들어갔다가 물에 휩쓸려 갔습니다. 버스를 타고 조금 갔는데 버스에 탄 사람 모두가 다시 한 차례 진동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버스에서 내려 약 500명의 사람이 모여 있는 고지대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물결이 밀려와 버스를 휩쓸어 갔고 물결은 사람들이 서 있는 곳에서 1미터도 채 안 되는 곳까지 밀려왔습니다.

물이 밀려 나간 뒤에 마리는 잠깐 집에 들렀습니다. 마리는 성서와 「날마다 성경을 검토함」 소책자를 찾을 수 있었는데, 이후로 며칠 동안 그것을 보고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배가 와서 사람들을 섬에서 데리고 나갈 것이라는 뉴스를 듣고는 수백 명이 배에 타려고 해안까지 달려가서 바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마리와 알빈은 주위에 시체들이 떠다니고 허리까지 물이 차는 곳에서 매일 여러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쓰나미가 일어나고 나서 6일 후에 마침내 보트가 와서 그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탓을 하였기 때문에 마리는 훌륭하게 증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마리의 올케가 현재 성서 연구를 하고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프라산티는 다섯 살 된 아들 제호아스를 데리고 연로한 아버지인 프라사드 라오 형제를 보러 허트 만(灣)에 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있다가 지진을 감지하고 파도를 보고는 고지대로 대피하였습니다. 파도는 도로보다 5미터나 높게 솟아올라 프라사드의 집을 덮쳐 버렸습니다. 프라사드의 침대, 냉장고, 텔레비전, 그리고 회중에서 사용할 「위대한 인물」 책이 모두 떠내려갔습니다. 후에 생존자들은 그 책들 몇 권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5일 동안 프라사드와 프라산티와 제호아스는 주운 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구름 같이 몰려오는 모기떼와 파리떼를 견뎌야 하였습니다. 배가 도착했을 때 프라산티와 제호아스는 구조를 받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곳을 걸어서 가야 했는데, 근처에는 악어들이 헤엄쳐 다니고 있었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프라산티는 당시 임신 6개월이었습니다. 프라산티의 아버지는 얼마 후에 그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테레사 섬에 있던 집들은 모두 쓸려 가버렸습니다. 13명의 형제 자매는 카모르타 섬으로 피난하기 전까지 정글 속에서 6일 동안 배고픔을 겪고 물어 대는 벌레들에 시달렸습니다. 카모르타 섬에서 그들은 마르크 파울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마르크 파울 형제의 집은 고지대에 있었고 왕국회관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앞서 쓰나미가 일어난 날, 그곳에는 평소처럼 10명 내지 12명이 회중 집회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 300명이 참석해 있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18명의 새로운 성서 연구생이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있으며, 여호와의 백성이 서로에게 베푸는 사랑에 찬 지원을 직접 경험하고 있습니다.

스리랑카: 파도가 이 섬나라 전체 해안의 3분의 2를 강타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쓰나미가 강타한 일요일 아침에 대부분의 형제들은 위험 지역 밖에서 회중 집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10개 회중이 피해를 입었고, 자매 한 명은 집이 바다로 휩쓸려 가면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형제들은 이 훌륭한 자매의 죽음을 매우 애통해하였습니다. 여러 명의 관심자들도 사망하였으며 많은 형제들이 친족을 잃었습니다. 한 장로는 가족 가운데 사망자가 27명이나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들은 이러한 비극을 겪으면서도 영적으로 ‘약해지지’ 않았습니다”라고 지부에서는 편지하였습니다.

베델은 구호물자로 꽉 차게 되었고 베델 가족들도 대부분 구호 활동에 주력하였습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현지 형제들은 구호물자를 재해 지역으로 운반하였습니다. 나흘이 채 안 되어 모든 형제들과 연락이 되었으며 그들에게 식품과 옷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서와 서적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은 모두 물에 떠내려갔습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즉각 공급되었습니다.

순회 감독자 제라드 쿡은 그때 콜롬보에 있었습니다. 제라드는 어두워지면 야생 코끼리들 때문에 위험한 도로를 일곱 시간 동안이나 차를 몰고 달려왔습니다. 제라드는 밤 10시 30분에 도착하여 즉시 가족들을 방문하고 구호품을 나누어 주기 시작하여 다음 날 새벽까지 계속 그렇게 하였습니다. 현지 형제 한 명은 자신의 집도 물에 잠겼지만 그와 함께 이 모든 일을 하였습니다.

타이: 현지 형제들 중에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은 없으며 생계 수단을 잃은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휴가를 즐기러 온 외국인들 가운데 몇 명이 실종되었으며,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들 중에는 핀란드 형제 한 명, 스웨덴에서 온 한 부부, 오스트리아 형제 한 명, 그리고 한 자매의 믿지 않는 남편이 있습니다. 스웨덴에서 온 두 부부는 해안에서 떨어져 있는 곳에서 현지 집단과 함께 야외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호텔로 돌아왔을 때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죽은 사람들과 끔찍하게 황폐된 모습뿐이었습니다.

지진이 있고 나서 월요일 아침에 푸켓 회중의 주임 감독자는 타이 지부로부터 휴대 전화로 크리스티나라는 핀란드 자매가 9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병원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형제 한 명과 함께 즉시 그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 주임 감독자는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평생 그렇게 비참한 광경은 처음 보았습니다. 배우자를 잃은 사람들, 자녀를 잃은 부모들, 부모를 잃은 자녀들 천지였습니다. 도와 달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장이나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찌나 가슴이 아픈지 우리는 때때로 방을 나가서 평정을 되찾고 힘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하였습니다.”

형제들이 가서 보니, 크리스티나는 다리가 부러져서 수술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크리스티나는 서류를 모두 잃어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수술 후에 두 명의 현지 형제가 크리스티나와 함께 기도하였고 한밤중까지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 크리스티나는 비행기 편으로 핀란드로 돌아갔습니다. 불행한 일을 겪었지만 “크리스티나는 용감하고 강”했다고 형제들은 보고합니다. 안타깝게도 크리스티나의 남편은 쓰나미로 사망하였습니다.

지부 봉헌

앙골라, 2005년 1월 8일: 이 특별한 날은 거의 40년 동안 내전에 휘말려 있었던 앙골라에서 전파 활동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스티븐 레트는 한 번에 두 가지 특권을 누렸는데, 그것은 앙골라 지부 시설을 위해 봉헌사를 한 것과 앙골라를 방문한 최초의 통치체 성원이 된 것이었습니다. 11개 나라에서 온 약 730명의 대표자가 봉헌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새로운 지부 건물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975년에 지부는 3055명의 전도인 신기록을 보고하였습니다. 그런데 2004년 말에는 그 수가 18배로 증가하여 5만 4000명을 넘어서게 된 것입니다!

불가리아, 2004년 10월 9일: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150명의 국제 건축 자원 봉사자들과 약 300명의 현지 형제들이 소피아의 새로운 지부 시설 건축을 도왔습니다. 통치체의 게리트 뢰시 형제가 24개 나라에서 모인 364명의 청중에게 봉헌사를 하였습니다.

에티오피아, 2004년 11월 20일: 2004년 초까지 60명의 베델 가족은 아홉 군데에 흩어져서 지냈는데, 매우 불편하였습니다! 훌륭한 새 베델은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의 동쪽 끝에 있는 경사지에 위치해 있으며 그곳은 해발 2400미터가 넘습니다. 어떤 날 밤에는 가끔씩 하이에나의 울음소리만이 적막을 깨뜨립니다. 게리트 뢰시 형제는 29개 나라에서 온 200명의 외국 대표자들을 포함하여 2230명의 청중 앞에서 연설을 하였습니다. 회견한 사람들 중에는 믿음을 위해 투옥을 당하고 고문까지 인내한 사람들이 여러 명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형을 당한 어느 형제의 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부활되시면 제가 경건한 정성을 나타낸 아버지의 모범을 따랐고 베델에서 봉사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실 거예요.”

가나, 2005년 3월 5일: 나이지리아 지부의 맬컴 J. 비고가 3243명의 청중에게 봉헌사를 하였습니다. 기존의 지부에 증축하여 새로 봉헌한 건물들 중에는 세 동의 숙소 건물, 50개의 사무실, 영선부 건물, 왕국회관, 그리고 식당과 주방과 세탁실이 있는 건물이 있습니다.

괌, 2005년 6월 25일: 이 봉헌식은 1980년 이후로 세 번째로 있은 봉헌식이었습니다. 그때에는 괌에 회중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10개의 회중이 있습니다. 이번 공사는 개수 작업뿐만 아니라 새로운 왕국회관과 2층짜리 숙소 건축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00명의 국제 건축 자원 봉사자들이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에서 왔는데 모두 자비를 들여 이곳에 왔습니다. 지부에서 보낸 편지에 따르면, 현지의 건축 감리관 한 사람은 이 이야기를 듣고 또 질 높게 시공한 것을 보고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페루 지부의 로렌스 세프 형제가 봉헌사를 하였습니다.

모리셔스, 2004년 11월 6일: 기존 지부에 확장된 시설이 봉헌되었으며, 봉헌사는 게리트 뢰시 형제가 하였습니다. 추가된 건물에는 12개의 새로운 번역부 사무실과 새 영선부 건물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레위니옹, 마다가스카르, 마요트, 세이셸, 유럽에서 손님들이 왔습니다.

니카라과, 2004년 12월 4일: 330명이 넘는 국제 건축 자원 봉사자들과 수백 명의 현지 형제들은 지부의 새로운 사무실과 숙소, 그리고 벽이 트인 2400석의 대회 회관을 건축하였습니다. 통치체 성원인 새뮤얼 허드 형제가 봉헌사를 하였습니다. 참석한 대표자들 가운데는 니카라과에서 봉사했던 선교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전에 성서 연구를 사회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손자녀들까지 보고는 얼마나 감격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파나마, 2005년 3월 19일: 새뮤얼 허드 형제가 2967명의 청중에게 연설을 하였는데, 그들 중 대다수는 20년 이상 여호와를 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 형제들은 창고로 쓸 트레일러를 옮기기 위해 크레인을 빌리고 크레인 기사를 불러왔습니다. 기사는 공사장에 도착해서는 공사장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서 그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형제들은 그 기사를 설득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막 떠나려고 하면서 그는 “그런데, 여러분의 종교는 무엇이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형제들은 “여호와의 증인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좋습니다. 일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갑자기 마음을 바꾼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매 두 명이 그의 자녀들과 성서를 연구하고 있었고, 그는 자매들이 연구를 해 주는 것에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슬로바키아, 2005년 4월 16일: 통치체의 시어도어 재라스 형제가 21개 나라에서 온 448명의 손님들에게 봉헌사를 하였습니다. 다음 날에는 운동 경기장에서 특별 모임이 열려서 많은 대표자들이 버스를 타고 왔습니다. 한 운전기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상냥하고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저에게 인사를 합니다! 저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믿음 때문입니다. 제가 운전하는 차에는 대개 학생들이나 교사들이 탑니다. 학생들에게는 제가 먼저 인사를 해야 하고, 교사들은 귀찮아하며 인사를 받지도 않습니다!”

미국 뉴욕 월킬, 2005년 5월 16일: “우리 모두는 이 아름다운 새 인쇄 시설과 숙소 건물의 A, C, D동을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느님 여호와께 봉헌하기로 결의합니다”라고 통치체 성원인 존 바 형제는 봉헌사 가운데 말했습니다. 2003년 5월 1일에 새 인쇄 시설의 기초 공사가 시작되었고 그 후 불과 8개월 만에 기존의 인쇄기들 중 첫 번째 인쇄기를 새로운 인쇄실로 옮겼습니다.

미국 전역의 지역 건축 위원회에서 기술자들을 보내 주었으며, 그중에서도 인근의 주들에 있는 지역 건축 위원회에서 주로 그렇게 해 주었습니다. 일부 작업은 외부 업체가 하였습니다. 한 업체의 사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일꾼들에게 돈을 아무리 많이 주어도 여러분처럼 일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성심성의껏 일하는군요.” 다른 공사 책임자 한 사람은 “5년 동안 학교에 다닐 때보다 몇 달 동안 워치타워에서 일하면서 일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컨베이어 시스템을 납품한 회사의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이번 설치 공사는 이제까지 한 공사 중에서 가장 빨리 끝났습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분들은 아주 행복한 분들이고, 그래서 저 역시 행복합니다! 이곳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몇 해 전에 미국 지부는 브루클린에 11대, 월킬에 4대, 이렇게 해서 15대의 오프셋 윤전 인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인쇄기가 5대뿐인데, 좀 더 능률적인 기술을 도입하였고 지역별 인쇄 마련에 따라 다른 지부들에 일을 나누어서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인쇄 시설에는 또한 인쇄실과 제본실에서 나오는 자투리 종이를 천장에 있는 덕트를 통해 자동 압축기가 있는 곳으로 보내는 종이 수거 시스템도 있습니다. 이렇게 압축한 종이는 외부 회사에서 가져가 재활용하며, 지부에서는 매년 약 20만 달러(약 2억 원)를 절약합니다!

잠비아, 2004년 12월 25일: 확장된 시설의 봉헌식에 참석한 7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 중에 374명은 40년 이상 여호와를 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스티븐 레트 형제는 봉헌사를 하면서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한 가지 비유에 나오는 종들과 같이 ‘잘하였다!’라는 진심 어린 말을 마땅히 들을 만하다고 말했습니다.—마태 25:23.

형제들은 또한 공사 기간 중에 훌륭한 증거도 하였습니다. 한 외부 업체의 사장은 “여러분들은 낙원에 살고 있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형제들은 “문자적인 낙원 말입니까, 아니면 영적 낙원 말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양쪽 다 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각주]

^ 40항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자세한 보고는 차후에 있을 것이다.

[29면 네모와 삽화]

“경건한 순종” 지역 대회

“경건한 순종” 지역 대회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하느님을 알고’ “좋은 소식에 순종”하는 사람들만이 여호와의 복수의 날을 생존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둘째 1:6-9)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에 관해 혼동하고 있는 사람들과, 더 나아가 세상에 고난이 많기 때문에 하느님에게 반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기 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훌륭한 새로운 도구인 「모든 고난—곧 끝날 것이다!」 전도지와 「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책이 마련되었습니다.

전쟁, 가난, 재난, 불공정,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새로운 전도지를 통해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러한 일들을 일으키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서적은 영적인 진리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문체가 따뜻하고 간단명료하며, 삽화나 예를 통해 주요점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가지고 사람들과 연구를 하기 전에, 부록에 나오는 14개의 가외의 주제들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2, 13면 도표와 삽화]

2005 봉사 연도에 있었던 일들

2004년 9월 1일

10월 8일: 아르메니아에서 여호와의 증인이 법적으로 등록되다.

10월 9일: 불가리아 지부 봉헌.

10월 18일: 「깨어 있으십시오!」 팜플렛 배부 운동이 시작되다.

11월 6일: 모리셔스 지부 봉헌.

11월 20일: 에티오피아 지부 봉헌.

12월 4일: 니카라과 지부 봉헌.

12월 25일: 잠비아 지부 봉헌.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근처에서 규모 9.0의 지진이 일어나 사상 최악의 쓰나미가 발생하다.

2005년 1월 1일

1월 8일: 앙골라 지부 봉헌.

3월 5일: 가나 지부 봉헌.

3월 19일: 파나마 지부 봉헌.

3월 24일: 베를린 고등 행정 법원에서 베를린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법인체가 가지는 권리를 부여하라고 명령하다.

4월 16일: 슬로바키아 지부 봉헌.

2005년 5월 1일

5월 16일: 뉴욕 월킬의 인쇄 시설과 숙소 건물 봉헌.

6월 25일: 괌 지부 봉헌.

2005년 8월 31일

[20면 삽화]

홍수 피해를 입은 왕국회관을 청소하는 장면, 일본 니가타 현

[24면 삽화]

구호물자를 내리는 장면, 스리랑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