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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주요 활동

지난해의 주요 활동

지난해의 주요 활동

“나는 평생토록 여호와를 찬양하고, 내가 존재하는 한 나의 하느님께 노래하겠노라.” (시 146:2) 여호와께서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찬양을 받고 계시는 것을 시편 필자가 지금 살아서 본다면 얼마나 감격하겠습니까! 「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책은 하느님께 그처럼 찬양이 돌아가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에 관한 진리를 찾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사도 17:27.

여호와께 더욱 찬양을 돌리기 위해, 많은 지부에서는 전도인들과 파이오니아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언어 학습반을 마련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다른 언어를 배워서 봉사의 직무를 확장하는 것에 관해 생각해 본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또한 약 155개국에서 열린 “임박한 구출!” 지역 대회를 알리는 특별 광고지를 배부하는 3주간의 세계적인 운동을 통해서도 여호와께 찬양이 돌아갔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시행된 이 운동에는 9만 9000개가 넘는 회중과 연합하고 있는 수백만 명의 왕국 전도인들이 참여했습니다. 한 대회 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이 운동 덕분에 새로운 전도인들이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무활동이 되었던 사람들이 격려를 받아 다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35년 동안 무활동이었던 한 형제는 집에서 광고지를 받은 후로 한 번도 집회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여러 지부에서 보내 온 경험담들이 많지만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프랑스

한 가톨릭교인 여자는 남편과 함께 친척 집에 갔다가 광고지를 보고서 거기에 나온 질문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세 자녀를 데리고 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들이 대회장에 도착하자 안내인은 그들을 따뜻하게 환영하면서 성서를 주고 한 증인 가족과 함께 앉게 해 주었는데, 그 가족은 그 부부의 집에서 불과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날 두 가족은 함께 시간을 보냈고 성서 연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대회 다음 주에 이 관심자 가족은 회중 집회에 참석했는데, 그때는 마침 순회 감독자의 방문 기간이었습니다.

인도

수니타라는 유명 여가수는 캐나다에 공연을 하러 갔다가 증인들을 만났습니다. 증인들이 펀자브어 집회에 초대하자 초대를 받아들여 집회에 참석했는데, 무엇보다도 집회가 성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에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회 광고지를 받고는 사흘 동안 다 참석하기 위해 그 주말에 계획된 공연을 즉시 취소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날 대회가 끝난 후에는 “이것은 진리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도로 돌아가서, 어머니와 아들, 조카와 친구 한 명과 함께 왕국회관에 갔습니다. 전에 다녔던 교회의 목회자들이 찾아오자, 여호와의 증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밝히면서 그들도 왕국회관에 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세르비아

메이 리 *라는 중국인 여자는 베오그라드에 살고 있습니다. 2006년에 그는 「파수대」를 모국어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메이 리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리는 중국어 대회에 초대하는 광고지를 받고는, 베오그라드에서 라이프치히까지 약 1000킬로미터나 되지만 대회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흘짜리 비자를 받아서, 뮌헨까지 비행기로 가서 라이프치히로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이 여행을 하는 데는 두 달분 급료가 들었습니다. 그는 대회 프로그램을 듣고 다른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배운 내용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베오그라드로 돌아온 후 메이 리와 그의 어머니는 가정 성서 연구를 하기로 하였으며 중국어 서적 연구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한 대회 위원회는 이렇게 보고하였습니다. “사흘 내내 청중석 여기저기에서 광고지를 받고 온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여자는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난 다음 날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그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두 시간 동안 차를 몰고 와서 대회에 참석했으며 성서 연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보고서에는 이런 경험담도 있습니다. “한 형제가 어떤 집에서 자녀에게 초대장을 전하고 나왔는데, 아버지가 형제를 뒤쫓아 길을 막 뛰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는 웬일일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집으로 가자고 정중하게 부탁하는 것을 보고는 매우 기뻤습니다. 그 사람은 성서를 손에 들고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형제는 건축 공사장에서 한 남자에게 광고지를 전했는데, 그 사람은 “이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려 줘도 될까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이지요!” 하고 형제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사람은 토요일 오전에 방송되는 한 라디오 프로의 진행자였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말한 대로 했습니다. 방송 중에 대회에 초대하는 광고지 내용을 읽어 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방송을 듣고 광고지에 관해 문의해 왔습니다.

열두 살 된 소녀인 모건은 보조 파이오니아로 봉사합니다. 특별 운동 기간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에 모건은 성서에 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공개 강연에 초대했습니다. 그 사람은 가족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곧바로 떠나야 했는데도 왕국회관에 왔습니다. 특별 운동이 시작되자, 모건은 이 관심자에게 광고지를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꼭 참석하겠지만, 금요일에는 일을 해야 한단다”라고 말하면서, 그런 경우에 증인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대개는 휴가를 내지요. 하지만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모건이 말했습니다.

모건이 다시 방문했을 때, 그 사람은 사장에게 금요일 휴가를 신청하면서 휴가를 내주지 않으면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장은 그가 놓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일꾼이라며, 금요일뿐만 아니라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아예 목요일까지 휴가를 내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사흘 내내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만 대회에 참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직계 가족 8명과 12명의 친구와 친구들의 가족도 와서, 총 35명이 함께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처음에 모건은 30명 정도가 함께 참석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렇게 많은 자리를 잡아 둘 수는 없는데요”라고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자리가 없으면, 어디엔들 못 앉겠니?”라고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물론, 그의 일행은 모두 편안한 자리에 앉아 대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대로 가르치는 책’

보고에 따르면, 성서 연구 보조서인 「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책은 전파 활동에 유용한 시기적절한 도구로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몰랐던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정신과 마음을 살찌게 해 줍니다”라고 한 성서 연구생은 말했습니다. 한 지역 감독자는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이 책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대로 가르치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의를 끕니다. 말이 장황하지 않고 직접적이고 명료하면서도 매우 격려적입니다.” 다음의 경험담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오스트레일리아

한 형제는 몸이 아픈 여자의 집을 수리하면서 그 여자에게 왕국 희망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며칠 후 형제가 파이오니아 자매와 함께 그 여자를 방문하자, 그 여자는 마지막 날에 관해 질문을 했습니다. 그 형제와 파이오니아 자매는 「성서의 가르침」 책 제9장 “우리는 ‘마지막 날’에 살고 있는가?”를 펴서 그 여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여자는 성서에 그런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내가 까맣게 모르도록 내버려 두었군요”라고 그 여자는 말했습니다.

형제는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우리는 재방문을 해서 제1장 ‘하느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와 부록 중에서 하느님의 이름이 일부 성서에 나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제1장 관련 부분을 연구했습니다. 그 여자는 자기 성서의 머리말에서 번역자들이 ‘여호와’를 ‘주’로 대치했다는 말을 읽고는 화를 내더군요. 그 성서가 좋은 번역판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 여자는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고 싶어 합니다.”

벨기에

잉그리드라는 자매는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편견이 있는 아프리카 여자를 만났습니다. 잉그리드가 친절하게 「성서의 가르침」 책을 보여 주자, 그는 태도가 누그러졌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서 연구도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성구를 다 찾아보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현재 이 관심자는 집회에 참석하고 있으며 종종 해설도 하고 왕국 전도인이 되고 싶어 합니다.

브라질

파울루는 십 대 초반에 증인들과 성서 연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열여섯 살 때 그의 부모가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파울루는 어머니와 함께 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삼바 악단에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도덕한 생활과 과도한 음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진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부두교 집회 장소에서 연주를 해야 할 때 부두교가 악귀 숭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마음이 꺼림칙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얼마나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2005년에 한 젊은 형제가 「성서의 가르침」 책을 보여 주자, 파울루는 즉시 다시 관심이 되살아났고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악단에서 나왔으며, 지금은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영국

메릴린은 호별 방문을 하던 중 성서에 관심을 나타내는 멜러니라는 젊은 엄마를 만났습니다. 메릴린은 전도지를 전하면서 다시 방문하겠다고 했습니다. 몇 차례 방문을 한 끝에 메릴린은 멜러니를 집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메릴린은 이렇게 말합니다. “곧바로 「성서의 가르침」 책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그 결과, 잘 발전하는 성서 연구를 사회하게 되었어요. 크리스마스 직전에는 멜러니에게서 앞으로는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놓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진도보다 앞서서 책을 읽고 있어서 크리스마스에 관한 진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콜롬비아

콘수엘로는 지역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직장 상사로부터 휴가를 받았습니다. 콘수엘로가 대회를 보고 직장에 나오자, 상사는 대회에 관해 물었고, 그로 인해 흥미로운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콘수엘로가 「성서의 가르침」 책을 보여 주자, 상사는 책을 빌려 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틀 뒤에 상사는 책을 돌려주면서, 읽어 보니 흥미로운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콘수엘로는 “이 책은 읽기만 하는 책이 아니고 연구를 하는 책인데요”라고 말하고는, 연구하는 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나도 이 책으로 연구를 할 수 있단 말인가요?”라고 상사가 말했습니다. 물론, 연구가 마련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사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으며, 때때로 아들과 할머니도 함께 집회에 참석합니다.

가이아나

정규 파이오니아인 조지프는 여러 해 전에 수도인 조지타운에서 증인을 만난 적이 있는 관심자와 「성서의 가르침」 책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조지프가 첫 연구를 하러 가 보니, 그 관심자가 두 아들 내외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아들 내외도 「성서의 가르침」 책을 받았습니다. 다음 주에 그 관심자는 학교 교사가 「성서의 가르침」 책을 빌려 가서 읽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사는 “이 책의 내용은 진리”라며 연구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웃 사람 하나가 그들이 연구를 한다는 말을 듣고서 자기도 와서 보아도 되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 무렵에 조지프는 모두를 기념식에 초대했습니다. 가장 먼저 연구를 시작한 관심자는 아파서 참석할 수 없었지만, 그의 가족과 학교 교사 그리고 교사의 가족은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모두가 계속 잘 발전하고 있습니다.

폴란드

루치안은 가두 증거를 하던 중 학창 시절의 친구인 얀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여러 해 동안 서로 만나지 못했는데, 얀은 50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서의 가르침」 책의 내용을 포함해서 성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얀은 자기가 아내와 사별했고 담배도 피우기 시작했고 술에 중독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뒤에 친구 한 명과 함께 방문을 했는데, 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얀이 연구를 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곧바로 「성서의 가르침」 책으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루치안의 말입니다. 진리가 얀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재 그는 술과 담배를 끊고 상스러운 말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혈액 전문의가 우울증에 걸린 환자에게 성서를 연구해 보라고 조언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전에 두 명의 병원 교섭 위원이 그 의사를 방문하여 「성서의 가르침」 책을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의사와 환자는 둘 다 심각한 병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있었습니다. 의사는 「성서의 가르침」 책에 깊은 감동을 받아서, 환자에게 책을 보여 주면서 증인과 연구를 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그 환자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해 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환자는 가두 증거를 하는 파이오니아 자매를 만나게 되어 연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의사도 연구를 시작했으며 이미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잠비아

골리앗은 마을의 촌장이었고 두 명의 아내와 열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는 거인이 아니지만, 가족과 함께 영적인 면으로는 거보를 내디뎠습니다. 골리앗은 「성서의 가르침」 책을 읽고 나서 곧바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1월에 그는 가족과 함께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2월에는 둘째 부인과 관계를 정리했고 본부인과 법적으로 결혼했습니다. (마태 19:4-6; 디모데 첫째 3:2) 3월에는 촌장직을 그만두고, 4월에는 아내인 에스터와 함께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섬기기로 결심하자 악귀들이 화가 난 것 같습니다. 악귀들이 에스터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터는 야고보 4:7에서 명령하는 것처럼 악귀들을 대적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남편과 나는 이제 자유로워졌어요.” 에스터의 말입니다.

다른 언어로 증거하기 위해 노력하다

여러 나라에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었습니다. 그중에 많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전파 활동을 할 수 없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 결과, “활동으로 인도하는 큰 문이 ··· 열”리게 되었으며, 많은 형제 자매들이 다른 언어를 배움으로 그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고린도 첫째 16:9) 또한 일부 나라에는 사용자가 많지 않은 언어를 쓰는 원주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왕국 전도인들은 이 언어들도 배워서 보람 있는 결과를 많이 거두고 있습니다.

그러한 지역에서 전파 활동을 진척시키기 위해, 여러 지부에서는 언어 학습반을 조직했습니다. 강의는 언어를 더 빨리 배울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으며, 대개 봉사를 하다가 생기게 되는 실제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알바니아어를 배우고 있는 일라이자의 말에 따르면 ‘학습 과정이 언어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벨기에

지부에서는 10개 언어의 17개 학급에 300명 이상이 참석했으며 학생들의 나이는 9세부터 71세였다고 보고합니다. ‘터키어를 배우면서 터키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커졌다’고 이노라는 말합니다. 중국어를 공부하는 아넬리스는 전국 규모의 텔레비전 방송국 기자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기자는 살아가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방송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아넬리스는 중국어를 배우는 이유도 설명했습니다. 1년 뒤에 그 기자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아넬리스는 봉사를 하면서 거둔 좋은 결과를 설명했습니다. 그 기자는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황금 시간대에 전국적으로 방송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아넬리스와의 인터뷰와 버스 정류장에서 중국어로 봉사하는 장면이 방영되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

“언어 학습반 덕분에 외국어 밭에서 일할 일꾼이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형제들이 회중에서 집회를 사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지부는 보고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루마니아어 봉사가 시작되었는데, 형제들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지부에서 마련해 준 집회가 때때로 열렸지만, 집회를 사회할 수 있는 형제가 한 명밖에 없는 데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언어 학습반 덕분에 그 형제 외에도 자격을 갖춘 형제들이 집회를 사회할 수 있게 되어, 한 형제는 주간 서적 연구를 사회하고, 다른 형제는 「파수대」 연구를 사회하고, 또 다른 형제는 벌써 네덜란드어 연설을 루마니아어로 통역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2003년부터 지부는 10개 언어로 48개의 언어 학습반을 마련했습니다. 그 결과 성서 연구 건수가 크게 증가하여 거의 5만 건에 달합니다. 특별 파이오니아로 봉사하는 후안 파스와 마리 파스 부부는 한 루마니아인 가족의 집에 초대를 받아 들어갔습니다. 조금 뒤에 16명이 이 부부의 말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중에서 19세의 마리오가 가장 열심히 들었습니다. 마리오는 스페인어를 몰랐고 파이오니아들은 루마니아어를 몰랐지만, 마리오는 루마니아어 「요구」 팜플렛을 받았습니다. 그다음 주에 그는 성서 연구를 요청하였고, 내용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데도 특별 대회일에 참석했습니다. 몇 주도 안 되어 모든 회중 집회에 참석하였고 스페인어로 간단한 해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리오는 외모를 단정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새로 알게 된 희망을 전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한 루마니아인 부부와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는데, 그 부부도 잘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편, 후안과 마리는 루마니아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루마니아어로 30건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후안은 루마니아어로 서적 연구도 사회합니다. 서적 연구가 끝나고 나면, 10명의 전도인은 루마니아어 강의를 듣습니다. 강사는 다름 아닌 성서 연구를 제일 먼저 시작한 마리오입니다.

미국

가정에서 영어 이외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5000만 명이 넘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가운데도 약 25만 4000명의 전도인이 3052개의 스페인어 회중과 53개의 스페인어 집단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2만 6000명의 전도인이 스페인어를 제외한 690개의 외국어 회중과 집단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나게 크고 다양한 구역에서 전파 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부에서는 29개 언어로 450여 개의 학급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순회구에서는 네 개의 새로운 회중이 생겼습니다. 그 가운데 세 회중은 프랑스어 학습반 덕분에 생겼습니다”라고 한 순회 감독자는 보고하였습니다.

스페인어를 배운 한 형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꿈이 이루어진 거지요. 선교인이 되는 것이 우리 부부의 오랜 염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자녀를 키워야 했지요. 이제는 자녀들도 다 성장했고 나도 직장에서 은퇴해서 석 달 전에 우리 부부는 스페인어 회중으로 옮겼습니다. 신권 전도 학교 과제도 벌써 받았습니다. 또한 여러 건의 재방문을 하고 있는데, 성서 연구가 다섯 건이 될 것 같습니다. 67세와 64세의 나이에 공부를 해 보니, 너무 나이가 많아서 외국어를 배울 수 없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현재 구역에서 새로운 관심자가 많이 나오지 않거나 환경이 허락한다면, 외국어 구역이나 원주민 언어 구역으로 옮기는 것을 염두에 두고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숙고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런 구역으로 옮긴다면 많은 열매를 맺고 의욕적으로 봉사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독일

이 나라에서는 30여 년 전에 언어 학습반이 시작되어, 1000명이 넘는 학생이 알바니아어와 베트남어를 포함하여 9개 언어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대학에서 들었던 강의보다 훨씬 낫다’고 한 자매는 말했습니다. 학생들은 외국인의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배우기 때문에, 더 호소력 있게 봉사하게 됩니다.

베트남어를 배운 파울라 자매는 현재 82세인데, 요즘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150킬로미터를 오갑니다. “언어에 소질이 없는데도, 여호와께서 이런 큰 기쁨을 맛보게 해 주신 것에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파울라 자매는 한 베트남인 가족과 연구를 했습니다. 가족 중에서 남편이 가장 먼저 진리에 관심을 보였고, 이어서 아내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부부는 현재 침례받은 증인입니다.

그 부부는 침례를 받은 후, 딸과 함께 고국에서 여호와를 섬기려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회중 집회를 볼 수 있게 집을 크게 지었습니다. 남편은 장로이자 보조 파이오니아로 봉사하고 있으며, 아내는 정규 파이오니아입니다. 파울라 자매는 이 가족으로부터 딸이 침례를 받을 때 아버지가 침례를 주었다는 편지를 받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그 딸은 파울라 자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할머니께. 할머니, 보고 싶어요. 저는 할머니 생각을 자주 해요. 멀리 있어도 할머니는 언제나 제 할머니이세요. 할머니, 사랑해요.” 연로한 나이에 어려운 언어를 배운 우리의 사랑하는 자매에게 참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캐나다

2002년부터 총 554명의 학생이 10개 도시에서 31개 언어 학습반에 참석했습니다. 장로인 폴은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지만 표준 중국어를 배웠습니다. 폴에게는 린다라는 시간제 간병인이 있는데, 중국 사람입니다. 린다는 교회에서 증인들에 대한 악평을 들었기 때문에 왕국 소식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폴은 중국어 공개 강연을 듣고 싶다며 린다에게 왕국회관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린다는 어쩔 수 없이 왕국회관에 갔지만 마음의 문을 닫고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린다는 폴을 서적 연구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연구가 가정생활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홀어버이인 린다는 주의 깊이 들었습니다. 그 후 한 파이오니아 자매가 린다에게 성서 연구를 제의하자 린다는 연구를 하기로 했습니다. 린다는 영적으로 신속하게 발전하여 지금은 자매가 되어 있습니다.

캐나다에는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는 원주민들이 많습니다. 블랙풋족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카마라는 파이오니아 자매는 몇 년 전에 블랙풋족 인디언 남자에게 증거한 일이 있었습니다. 카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에게 영어로 증거를 하려고 했더니, 들으려 하지 않더군요. 그러면서 내가 백인의 종교를 믿고 있고 성서는 백인의 책이라고 하더군요. ‘내가 블랙풋족의 언어와 문화를 더 알고 있으면, 이 사람이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마는 그 언어를 배우기로 결심했으며 나중에 매주 블랙풋어 학습반에 참석하는 23명의 전도인을 돕게 되었습니다.

학생 중 한 명이 어느 블랙풋족 부부에게 증거를 했는데, 그 부부는 아파서 입원한 아들을 보러 병원에 잠시 와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 부부는 자매가 그들의 언어에 관심이 있는 것에 감동하여 주소를 알려 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남편은 카마가 일 년 전에 만난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카마는 자매와 함께 재방문을 갔습니다. 카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부부는 잘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성서의 말씀에 수긍하기까지 하더군요. 자매는 그들에게 성서와 성서 연구 보조서를 주었습니다. 부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두 출판물을 가슴에 안았고, 남편은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현재, 부인은 연구를 하고 있고 남편도 주의 깊이 잘 듣습니다.”

지부에서는 언어 학습반이 성공적이었음을 언급하면서, 블랙풋어로 열린 2006년 기념식에 34명의 블랙풋족이 참석했다고 보고합니다!

이탈리아

약 7200명의 전도인이 18개 언어의 학습반에 참석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학생은 왕국 활동이 금지되어 있는 나라에서 온 샘슨을 만났습니다. 샘슨은 24세 때—그의 말을 빌리자면—‘희망의 길’을 나서서, 먼저 사막을 건넌 다음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왔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샘슨은 자신의 언어를 배운 이 형제를 만났습니다. 샘슨은 관심을 갖고 들었으며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기까지 했습니다. 두 사람은 열 달 동안 서로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났고,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연구는 패스트푸드점이나 지하철역 또는 주차장에서 했습니다. 샘슨은 기념식에 참석한 후 생활을 바로잡기 시작했으며, 약 1년간 동거했던 여자와도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그는 현재 형제가 되어 있습니다.

니카라과

2006년에 형제들은 처음으로 마이앙나족 원주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마이앙나족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일파인 모라비아 교회를 믿고 있으며, 각각의 소도시에서는 대개 교직자가 비공식적으로 시장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교직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전통을 깨고 특별 파이오니아들인 해밀턴과 애브너가 도시에 머물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에 더해, 숙소를 구해 주고 마이앙나어로 된 완역 성서를 주기까지 하였습니다. 형제들은 그 언어를 배워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건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파이오니아들은 순회 감독자가 처음으로 방문하여 열린 집회에 13명이 참석했을 때 통역을 했습니다. 기념식에는 90명이 참석했는데, 형제들이 두 곡의 노래를 마이앙나어로 번역한 덕분에 모두가 노래를 열정적으로 부를 수 있었습니다.

관심을 보인 사람이 대단히 많았으므로, 지부에서는 파이오니아들이 그곳에 계속 머물면서 임명을 수행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지방 당국이 승인해 줄 것인지가 의문이었습니다. 시의회에서 일부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이 적그리스도라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시의회 의원 중에는 증인과 연구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두 젊은이가 우리 시에 온 때부터, 나는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거나 세탁을 해 주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말을 배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서를 사용해서 우리가 몰랐던 것을 가르쳐 주기까지 했습니다. 만일 이 사람들을 하느님이 보내시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이쯤 해서 포기했을 것입니다.” 형제들은 계속 머물 수 있었습니다.

수화 번역

미국

2006년에 미국 수화판 「마태에 의한 책」이 DVD로 나왔습니다. 처음으로 청각 장애인들이 「신세계역」의 모든 장을 자신들의 언어로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청각 장애인 장로는 “이것은 내가 이제까지 여호와 하느님에게서 받은 최고의 편지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장로는 “이제는 성구 하나하나가 어떻게 문맥과 조화를 이루는지 이해가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자매는 하루에 한 장씩 읽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깜빡했다가 약속 시간에 늦을 뻔했어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네다섯 장을 읽었으니까요!”

브라질

수화 구역에서 전파 활동이 놀라운 속도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현재 232개 수화 회중이 있으며, 10개의 순회구와 1개의 지역구가 조직되어 있습니다. 1000명이 넘는 장로와 봉사의 종 그리고 청각 장애인 8명이 포함된 146명의 특별 파이오니아가 수화 회중과 구역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장로와 봉사의 종들 중 100여 명의 형제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 부분 여호와의 조직이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마련해 주는 훌륭한 출판물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연구 보조서 가운데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식」, 「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깨어 있으십시오!」,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와 「파수대」가 있습니다. 2006년부터는 신권 전도 학교가 수화의 상황에 맞게 마련되었으며, 수화로 나와 있는 출판물을 교재로 사용합니다.

“나는 여러 교회의 예배에 참석해 보았는데, 오직 여호와의 증인만이 청각 장애인에게 성서를 가르칠 능력을 진정으로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30세 된 교사의 말입니다. 그가 다니던 교회에서 가르쳐 준 것은 비논리적이었고 효과도 없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친구들의 압력이 있지만, 그리스도인 집회에 계속 참석하겠다는 그의 결심은 굳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처럼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을 계속 아들에게로 이끄시기를 바랍니다!—요한 6:44; 계시 14:6.

법적 진척 상황

에리트레아

우리 형제들이 국민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1994년에 대통령령에 의해 여호와의 증인은 시민권이 박탈되었습니다. 그 결정으로 인해 우리 형제들은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며, 수백 명이 국외로 도피하였습니다. 에리트레아에 남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학교에 다닐 나이의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에리트레아에서는 중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학년이 되면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학생이 군사 훈련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청소년들이 중학교 3학년 이후의 교육을 받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회중 집회에 참석하고 전파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회중 전체가 체포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용감한 우리 형제 자매들은 계속 “사람들보다 통치자로서 하느님께 순종”하고 있습니다. (사도 5:29) 현재 31명의 형제 자매들이 투옥되어 있으며, 그중에는 73세의 네덜란드 시민인 형제도 있습니다. 군 복무를 거부하여 투옥되어 있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파울로스 이야수, 이사크 모고스, 네게데 테클레마리암, 이 세 명의 형제는 1994년부터 수감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2005년 2월 25일에 여호와의 증인 협회에 대한 불공정한 세금 부과에 대해 유럽 인권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전국에서 87만 4000명이 넘는 사람이 그러한 불공정한 조처를 시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탄원서에 서명했으며, 그 탄원서는 유럽 인권 재판소에 제출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세무 당국은 2006년 1월에 형제들에게 미납된 세금을 낼 것을 독촉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유럽 인권 재판소와 긴급 접촉을 가져 이러한 상황을 알렸습니다. 재판소는 즉각 이 소송에 대한 예비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2006년 5월 4일에 재판소는 프랑스 정부에 이 소송에 대한 입장을 서면으로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목적은 여호와의 증인의 종교적 자유를 침해하거나 어떤 차별을 한 사실이 있었는지를 판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독일

2006년 2월 10일에 라이프치히에 있는 연방 행정 법원은 베를린 주가 독일 여호와의 증인 종교 협회를 공공 법인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로써 15년간의 법정 투쟁이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여호와의 증인 종교 협회는 주요 종교들에게 부여되는 면세를 비롯한 혜택을 받게 됩니다. 베를린 주는 2006년 6월 13일자로 공식 인가를 하고 7월 5일에 두 명의 지부 위원에게 인가증을 주었습니다.

그리스

여러 해 동안 왕국회관의 건축 및 사용 허가가 지연되거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법률상 그리스 정교회의 주교에게 먼저 승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2006년 5월 30일에 의회는 정교회를 제외한 종교들의 민원을 국가 교육 종교부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법률로 정했습니다.

2005년 7월 15일에 코린트 루트라키의 공설 운동장 관리 사무소는 형제들이 지역 대회를 보도록 시설을 임대해 주기로 한 결정을 번복했습니다. 관리 사무소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이 “알려진 종교”인가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정부 기관인 고충 처리 위원회가 개입하였으며, 2006년 2월에 운동장 관리들은 앞으로 여호와의 증인이 공인된 종교라는 것을 명심하고 신청을 고려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네팔

2005년 10월에 마침내 여호와의 증인은 종교 협회로 등록되었습니다. 정관에 명시된 이 법인의 목적 중 하나는 “영적 교육을 증진”시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법인으로 등록되었으므로 대다수 주민이 힌두교를 믿는 이 나라에서 좋은 소식을 널리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루마니아

여호와의 증인은 1990년에 종교로 등록되었는데도, 1997년에 정부에서 발행한 공인된 종교 목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결과, 형제들은 왕국회관을 건축할 수도 없었고 군 복무를 면제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인된 종교들은 이러한 권리를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루마니아 대법원은 정부에 여호와의 증인을 종교로 인정하도록 명령했지만 정부는 거듭해서 그 명령에 반발했습니다. 2006년 3월에 유럽 인권 재판소의 도움으로 정부와 여호와의 증인 간의 협상이 원만하게 타결되었으며, 이로써 9년간의 법정 투쟁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여호와의 증인이 공인된 종교들에게 “법률에 의해 부여되는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터키

정부는 지부에서 종교로 등록해 줄 것을 신청하자 법률이 유럽 연합의 표준에 따라 수정되었어도 등록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 이 문제는 터키 국내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결국 유럽 인권 재판소로 가게 될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군 복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형제들은 군 복무연한을 넘길 때까지 일 년에 서너 차례씩 소집되고 매번 형을 선고받습니다. 여러 차례 벌금형을 받은 형제들도 있고 투옥된 형제들도 있습니다. 2004년에 유누스 에르체프 형제는 유럽 인권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여러 차례 벌금형을 받았는데도 에르체프 형제는 2005년 10월에 투옥되어 12개월의 형기 중 5개월을 복역한 후 석방되었습니다. 그는 석방된 날 다시 법정으로 소환되어, 이전에 군 복무를 여러 차례 거부한 것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지난 4년 동안 우리 형제들은 기록상으로 1100건 이상 체포나 구금, 벌금형 또는 구타를 당했습니다. 이 가운데 800건 이상이 2005년과 2006년의 기념식 때 벌어졌습니다. 경찰들이 버스를 타고 와서는 곤봉을 휘두르며 참석자 모두를 체포한 사태가 여러 곳에서 벌어졌습니다. 많은 형제들이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심한 구타를 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형제들은 훌륭하게 증거했습니다.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고 증거를 했다는 이유로 형사 고발된 한 형제와 한 자매의 경우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들의 변호사는 체포될 때 압수된 출판물을 법정에서 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지식」 책과 「요구」 팜플렛을 낭독하게 되었으며, 판사도 낭독에 참여했습니다. 판사는 「지식」 책 제5장 “하느님께서는 누구의 숭배를 받아들이시는가?”에 특히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되었는데도 계속 낭독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마태 28:19, 20이 인용된 부분이 낭독되자, 판사는 큰 소리로 “여러분이 전도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판사가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여호와의 증인을 박해한 이유를 물었을 때에는, 세 개의 비디오테이프—「보라색 삼각형」, 「나치의 공격에도 굴하지 않은 여호와의 증인들」, 「성서—정확한 역사, 믿을 만한 예언」—를 주었습니다. 우리 형제와 자매는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법원 관리들과 경찰관들에게 아주 뜻밖의 방법으로 증거를 할 수 있었습니다.—누가 21:12, 13.

수단

2006년 6월 현재 여호와의 증인은 여덟 개의 주에서 종교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지역에서는 형제들이 왕국회관을 건축하고 공개적으로 큰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우리 출판물을 자유롭게 수입할 수 있으며, 하르툼에는 형제들의 사무실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러시아

2006년 4월 12일, 성원이 200명인 모스크바의 한 회중이 임대한 시설에서 기념식을 보고 있는데, 50명이 넘는 무장 경찰관이 나타났습니다. 류블리노 경찰서의 서장은 집회를 중단시키면서 모스크바에서 여호와의 증인에게 내려진 금지령에 따라 그러한 모임은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찰은 참석자들의 신분증을 검사했고, 서적을 압수했으며, 14명의 형제들을 류블리노 경찰서로 연행하여 4시간이 넘게 가두어 두었습니다. 한 형제가 법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경찰서에 오자, 그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칼을 들이대면서 위협했으며, 소송을 걸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4월 17일에 14명의 형제 중 네 명의 형제들이 류블리노 경찰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5월 16일에 모스크바 류블리노 지방 법원에서 Z. V. 주브코바 판사의 심리로 재판이 열렸습니다. 그날 출동한 경찰관은 한 명도 재판에 나오지 않았으며, 재판에 나온 사람은 그들의 변호사뿐이었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판사는 형제들의 변호사들이 제기한 50건의 이의 신청을 기각했으며 그들의 요청을 대부분 거절했습니다. 반면에, 경찰서 측 변호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모스크바에서 여호와의 증인을 금지한 골로빈스키 지구 지방 법원의 판결문 사본과 전에 있은 그 재판에서 여호와의 증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심리학자 L. V. 쿨리코프의 소견을 증거로 인정했습니다.

2006년 6월 15일에 판사는 원고들을 가둔 것이 불법이라고 판결했지만 기념식을 중단시킨 것에 대해 불리한 판결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판결문에서는 또한 임대한 시설이 예배를 보는 데 요구되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2006년 6월 30일에 여호와의 증인은 모스크바 시 법원에 항소했으며, 무엇보다도 재판 중에 류블리노 지방 법원이 여러 차례 절차를 위반한 것을 언급했습니다. 류블리노 지역을 제외하고 모스크바의 22개 장소에서는 기념식이 방해 없이 열렸습니다.

‘지난해의 주요 활동’ 첫 항에서는 “내가 존재하는 한 나의 하느님께 노래하겠노라”라는 시편 필자의 열망을 언급했습니다. (시 146:2) 오늘날, 수백만 명의 여호와의 종들은 그와 같은 강한 열망을 품고 있다는 증거를 풍부하게 제시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현 제도가 존속하는 동안, 감옥의 담장도, 법령도, 언어의 장벽도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노래하는 것을 막지 못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각주]

^ 10항 가명임.

[9면 네모와 삽화]

초대장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이 광고지에는 성서 연구나 「성서의 가르침」 책 또는 두 가지를 모두 요청할 수 있는 쿠폰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의 지부 사무실들에는 작성된 쿠폰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지부에서는 거의 2000장에 달하는 쿠폰이 왔으며 그중 300건은 성서 연구 신청이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우리 형제 자매들이 광고지를 배부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분명 계속해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12, 13면 네모와 삽화]

「성서의 가르침」 책이 많이 필요하다!

2006년 7월 말까지 「성서의 가르침」 책은 155개 언어로 4700만 부 이상 인쇄되었습니다. 그에 더하여, 10개 언어로 점자판도 발행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한 달 동안에만 회중들에서 매일 평균 4만 2000부를 신청했습니다. 그중에 3분의 1은 긴급 주문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베델 가족은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이러한 출판물을 공급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28, 29면 네모와 삽화]

지부 봉헌

알바니아

우리의 활동은 50년간 금지되어 있다가 1992년에 해제되었습니다. 티라나 외곽에 있는 새 지부의 봉헌식에 참석한 325명의 형제 자매 가운데는 금지령 기간에 하느님을 섬긴 네 명의 연로한 증인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32개국에서 온 대표자들이 참석했습니다. 1992년에 선교인들이 왔을 때 이 나라에는 침례받은 전도인이 9명뿐이었습니다. 현재는 3617명의 전도인이 있습니다. 통치체 성원인 시어도어 재라스와 게리트 뢰시가 2006년 6월 3일에 열린 봉헌식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으며, 다음 날 노천 운동장에서 5153명의 청중에게 연설을 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데도 청중은 연설을 주의 깊이 들었습니다.

크로아티아

작년에 크로아티아에는 두 가지 축복된 일이 있었습니다. 지역 대회에서 크로아티아어 「신세계역 성경」 전역이 발표되었고, 자그레브에 있는 지부의 확장 공사가 끝나 봉헌식이 있었습니다. 8월 11일 금요일에 142명의 청중이 재라스 형제의 봉헌사를 들었습니다. 기존 건물은 7년 전인 1999년에 봉헌되었습니다.

슬로베니아

8월 12일 토요일에 재라스 형제는 캄니크에 있는 새 지부에서 봉헌사를 하였습니다. 지부가 있는 캄니크 시는 수도인 류블랴나에서 북쪽으로 약 2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는 서쪽으로 약 130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수도에 있는 여러 아파트에서 살았던 베델 가족들은 마침내 하나의 가족으로 함께 살게 되어 참으로 기뻤습니다! 봉헌식에는 20개국에서 온 144명이 참석했습니다.

[삽화]

알바니아 지부 사무실 건물

특별 모임에 5153명이 참석하였다

확장된 크로아티아 지부 시설

슬로베니아 지부

[6면 삽화]

청각 장애인에게 증거하는 모습, 브라질

[17면 삽화]

최초의 힌디어 학습반, 독일

[19면 삽화]

린다와 폴

[19면 삽화]

블랙풋어로 증거하는 카마

[20면 삽화]

스페인어 학습반, 이탈리아 로마

[20면 삽화]

샘슨에게 증거하는 장면

[21면 삽화]

마이앙나어로 성서를 가르치는 해밀턴과 애브너

[27면 삽화]

왕국회관, 수단 북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