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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주요 활동

지난해의 주요 활동

지난해의 주요 활동

고난이 가득한 세상 상태 가운데서도, 여호와의 증인은 신성한 봉사를 드리며 이번에도 생산적인 한 해를 보냈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으로 진리의 좋은 소식은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어 증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 1:5, 6) 여러분이 올해의 보고를 통해 큰 격려를 받고 믿음이 강화되리라 확신합니다.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위한 새로운 마련

4월에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목표 시간을 30시간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50시간으로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모두들 크게 기뻐했습니다. 평소에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에 참여하기 힘들었던 많은 사람이 열정적으로 이 기회를 활용했습니다. 매우 많은 수의 전도인들이 처음으로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 대열에 가담했으며, 과거에 이 봉사를 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도 다시 한번 참여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또한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에 참여할 수 없는 많은 전도인들도 전파 활동을 더 많이 수행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어떤 결과가 있었습니까?

대부분의 지부에서는 이전 신기록을 훨씬 뛰어넘는 증가가 이루어졌다고 보고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265만 7377명의 전도인이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에 참여했는데 이것은 지난해 신기록의 약 다섯 배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세계 전역의 베델 가족 성원 2만 290명 중 80퍼센트에 해당하는 1만 6292명이 이 봉사의 특권에 참여했습니다. 지난 4월에 여호와의 종들이 과거 그 어느 달보다도 더 많은 전파 활동을 수행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참으로 기쁘지 않습니까!

약 30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간 파괴적인 지진이 있은 지 겨우 1년이 조금 넘은 때인 4월에, 아이티에서는 전파 활동에서 사상 최고 신기록들을 보고했습니다. 총 1만 7009명의 전도인 가운데 6185명이 보조 파이오니아로 봉사했습니다. 아이티 크레올어로 최근에 발행된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 팜플렛을 배부하는 특별 운동이 전개되어, 슬픔에 잠겨 있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위로와 희망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나이지리아의 우리 형제 자매들은 4월에 독특한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정부에서 나흘(그중 사흘은 토요일이었다)을 선거일로 지정하여, 그날들에는 선거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통행할 수 없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파이오니아 영은 식지 않았습니다. 한 회중에서는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이번 달에 정말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과 기쁨을 가득 담아 이 편지를 씁니다.” 다른 회중에서는 침례받은 전도인 127명 가운데, 모든 장로와 봉사의 종을 포함하여 92명이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베델에서는 전체 성원 688명 중 555명이 보조 파이오니아로 봉사했습니다.

그들은 어려움을 이겨 냈다. 부룬디 시골의 산간 지방에 사는 자네트는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고 싶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만성적인 심장 질환이 있어서 장시간 걸어 다니거나 가파른 언덕을 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4월의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 요구 시간이 줄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네트는 무척 기뻤습니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파이오니아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장로들은 자네트가 집 가까이에 있는 구역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마련해 주었습니다. 또한 파이오니아들과 전도인들은 자신들의 성서 연구생을 자네트의 집으로 데려와 함께 연구했습니다. 4월 말이 되었을 때 그는 네 건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음에도 또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고 싶어요. 여호와께서 반드시 저를 도와주실 거예요.”

그레나다 섬에 사는 한 젊은 청각 장애인 자매는 신체장애가 있어서 잘 걷지 못하는데도 파이오니아 봉사를 했습니다. 그는 “야외 봉사를 하러 가려면 버스 타는 곳까지 먼 거리를 걸어가야 했지요. 정말 힘들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 자매는 직업도 없는 상황이어서 기도로 여호와께 간절히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뜨개질한 물건들이나 손으로 만든 장신구를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가면서 기도와 일치하게 행동하려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후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전파 활동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었고 형제들은 나를 지원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행복했지요!”

일본에 사는 101세 된 자매인 도시는 열의에 차서 4월에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신청했습니다. 요양원 밖으로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는 편지를 쓰거나 자신의 방에 오는 도우미들에게 증거하는 방식으로 봉사를 합니다. 도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귀가 잘 안 들려서 아주 큰 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보니 근처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내가 하는 말을 듣게 되지요.”

코스타리카에 사는 펠릭스는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사지 마비 환자인 그가 어떻게 파이오니아 봉사를 할 수 있었습니까? 그의 집 밖에 출판물을 놓는 탁자를 마련했고 그리하여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달 말에 펠릭스는 몸은 피곤했지만 영적으로 새 힘을 얻었다고 느꼈으며 네 건의 성서 연구를 갖게 되어 매우 행복했습니다.

4월의 특별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 한 사람들 중에는 어린 전도인들도 많습니다. 일례로, 스페인에 사는 열한 살인 산드라와 일곱 살인 그의 남동생 알레한드로는 전파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회중 성원들의 열심과 부모님의 열정적인 모습에 자극을 받은 이 두 어린이는 자신들도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침례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보조 파이오니아를 한단 말입니까? 두 어린이는 부모님과 똑같은 시간을 야외 봉사에 바치기 위해 계획표를 짠 다음, 저녁 가족 숭배 때 제공 방법을 연습하여 봉사 준비를 했습니다. 두 아이의 부모는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이 지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어린 전도인의 열심은 전혀 식지 않았습니다. 4월 30일이 되었을 때 다른 모든 식구들은 목표로 한 30시간을 달성했지만 어린 알레한드로는 3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4월의 마지막 날인 그날, 알레한드로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봉사를 나갔습니다. 이 가족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열심히 일하면서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진은 “나는 우리 남편 필립과 내가 30시간을 봉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했어요” 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한때 지역 감독자로 봉사했던 필립은 뇌동맥류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후로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채로 스페인의 한 병원에 있는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눈을 통해서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는데, ‘예’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한 번, ‘아니요’라고 하고 싶을 때는 두 번 눈을 깜박였습니다.

진은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남편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더군요.” 그러면 필립은 어떻게 목표를 달성했습니까?

그 전 여러 달 동안 진과 필립은 환자들과 환자를 방문한 가족들 그리고 병원 직원들에게 증거하곤 했습니다. 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4월에 바로 우리 병실 안에서 하루에 한 시간 정도씩 봉사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필립이 깨어 있어 눈을 깜박이는 것으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 중에 봉사를 하기로 한 것이지요.”

그런데 3월에 필립이 격리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하지만 진과 필립은 하루 중 다양한 시간대에 병원 직원들과 몇 분씩 대화를 나누면서 원래 계획했던 대로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책을 받은 한 간호사는 필립의 눈을 보며 다음 날에도 성경을 읽으러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간호사가 다시 왔을 때 진은 요한복음 17:3을 읽도록 권한 뒤 그 성구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대화가 그런 방식으로 계속되는 동안, 필립은 눈을 깜박여서 간호사의 대답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려 주곤 했습니다. 간호사는 필립의 병실에서 근무하는 때가 아닌 경우에도 그에게 와서는, 자신이 여호와께 그분과 가까워질 수 있게 도와 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종들은 이처럼 자신들의 활동을 증가시키는 것이 이웃에 대한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자신들의 정성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는 2012년 3월에도 그들은 목표 시간을 30시간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50시간으로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들은 그때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길을 가르치는 학교들

여호와의 조직은 이사야 2:3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예언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 왔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산으로, 야곱의 하느님의 집으로 올라가자. 그러면 그분이 우리에게 그 길을 교훈하실 것이다.” 예를 들어 제2차 세계 대전이 계속되던 와중에도,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반열은 사탄의 세상 제도가 끝나기 전에 모든 나라 사람들이 여호와께 가르침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워치타워 길르앗 성서 학교와 신권 전도 학교와 같은 교육 과정을 마련했습니다. 최근에 통치체는 특별한 훈련을 베푸는 다양한 학교들과 관련하여 몇 가지 사항을 추가로 조정하기로 했습니다.

2010년 10월에 봉사 훈련 학교가 독신 형제 성서 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장로나 봉사의 종으로 섬기는 독신 형제들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이 두 달 과정의 학교에 등록할 수 있습니다. 이 교육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3만 7445명이 유익을 얻었으며 그중 많은 수가 파이오니아, 여행하는 감독자, 선교인, 베델 봉사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새로운 마련인 그리스도인 부부 성서 학교가 2011년 7월에 시작되었습니다. 두 달간의 교육 과정으로 이루어진 이 학교는 우선 뉴욕 주 패터슨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만 25세에서 50세 사이의 건강 상태가 양호한 부부로서, 결혼한 지 적어도 2년이 되었고, 지난 2년간 중단 없이 전 시간 봉사를 해 왔으며, 남편이 지난 2년간 장로나 봉사의 종으로 중단 없이 섬겨 온 경우라면 이 학교에 등록할 수 있습니다. 2012년부터는 현재 독신 형제 성서 학교가 열리는 장소들에서 그리스도인 부부 성서 학교 교육이 베풀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부부 성서 학교가 마련된 목적은 부부들이 여호와와 그분의 조직에 의해 더 온전히 사용되도록 특별한 훈련을 베풀기 위한 것입니다. 졸업생은 대부분 자국 내의 도움이 더 필요한 곳에서 정규 파이오니아로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 졸업생들은 임시 특별 파이오니아로 임명될 것이며, 순회 활동을 위한 훈련을 받게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격을 갖추고 있고 임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수의 졸업생들은 다른 나라에서 봉사하라는 임명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학교에 신청하는 사람들은 희생정신을 가진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독신 형제 성서 학교의 강사들이 이 새로운 학교에서도 가르치게 될 것이며, 두 학교의 교육 과정은 기본적으로 동일할 것입니다. 교육 과정 중 일부 단원은 형제들과만 고려할 것이며, 그런 경우 자매들은 야외 봉사에 참여할 것입니다. 이 학교에 신청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지역 대회 때 열리게 될 모임에서 더 자세한 점들과 요구 조건에 대해 알게 될 것입니다.

통치체는 워치타워 길르앗 성서 학교와 관련해서 어떠한 조정이 있는지 알려 주었습니다. 2011년 10월 24일에 시작하는 제132기 학급부터는 이미 특별 전 시간 봉사를 하고 있는 부부들에게만 교육이 베풀어질 것입니다. 야외에서 일하는 선교인 가운데 아직 길르앗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특별 파이오니아, 여행하는 감독자, 베델 성원이 그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러한 부부 중에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부 위원회는 그들이 교육을 받도록 추천할 수 있습니다.

길르앗 학교 졸업생들은 야외에서 봉사하는 선교인이나 여행하는 감독자나 베델 봉사자로 일하면서, 야외에서의 활동과 지부 조직을 강화하고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임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야외에서 섬기도록 임명받는 부부들은 전파 활동과 회중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서 일하게 될 것입니다. 종전과 마찬가지로 지부 위원회는 관할 구역에 특정한 필요가 있을 경우 길르앗 졸업생들을 보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부 관할 구역에서 섬기는 특별 전 시간 종들 가운데 자격을 잘 갖춘 사람들을 길르앗 학교에 추천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 지부 위원회는 졸업생들이 학교 과정을 마친 후 본국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지부 위원 부부 학교는 패터슨에서 1년에 두 번 열릴 것이며 수업은 영어로 진행될 것입니다. 전국 위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초대받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이 학교에 참석했던 지부 위원들도 다시 초대를 받게 될 것이며 처음으로 참석하는 형제들과 함께 교육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부 위원의 아내도 남편과 함께 대부분의 수업에 참석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조직상의 절차와 관련된 일부 단원은 형제들과만 고려할 것이며, 그런 경우 아내들은 여러 가지 베델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행하는 감독자 부부 학교가 패터슨에서 매년 두 차례 열릴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 학급에는 이전에 이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형제들도 참석해 있으며, 그런 형제들이 각 학급의 절반 정도를 차지합니다. 여행하는 감독자의 아내도 대부분의 교육 과정에 참석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이러한 교육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정말 기쁜 일이 아닙니까! 예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자들의 글에 ‘그리고 그들은 모두 여호와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 6:45; 이사야 54:13) 끝이 오기 전에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긴급한 활동이 이러한 조정들로 인해 더욱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일본 대지진

지진, 쓰나미, 토네이도, 허리케인, 홍수, 화재, 화산 폭발 등 자연재해에 대한 보도가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에 발생한 모든 재해에 대한 보고를 지면에 다 실을 수는 없지만, 일본에 있는 우리 동료 숭배자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여호와의 증인들이 어떻게 그러한 고난을 꿋꿋이 이겨 내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2시 46분, 진도 9.0의 지진이 일본을 강타했습니다. 이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태평양 연안의 여러 도시와 마을을 휩쓸었습니다.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거나 실종된 사람이 약 2만 명에 달했습니다. 재해 지역에 있는 왕국회관 중 네 채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다른 네 채의 왕국회관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235채나 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의 집이 쓸려 가 버리거나 심하게 파손되었으며 보수가 필요하게 된 집도 1000채가 넘었습니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원자력 발전소가 심하게 손상을 입어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으며 하룻밤 사이에 많은 곳이 텅 빈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 지역에 살고 있던 형제 자매들이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떠나면서, 회중 두 개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피해가 가장 큰 지역에 살고 있던 1만 4000명 이상의 여호와의 증인 가운데 12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5명이 중상을 입었고 2명은 실종 상태입니다. 이 끔찍한 경험을 한 사람들 중 다수는 집과 소유물을 잃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 이들도 많습니다.

오후나토에 사는 기요코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장애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간신히 차에 태워 대피소로 정해진 곳을 향해 차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연기 냄새가 나더군요. 그래서 차에서 내렸는데, 거대한 물 벽이 우리 집을 삼켜 버리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물은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어요! 나는 어머니가 기찻길이 있는 둑으로 기어 올라가실 수 있게 도와 드렸지요. 우리 차는 바로 우리 눈앞에서 쓸려 가 버렸습니다.”

고이치라는 젊은 형제는 지진이 있은 뒤 부모님이 사는 곳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이시노마키에 살고 있었는데 해변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곳 가까이에 이르러 보니 그 지역 전체가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는 “보트 없이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어요” 하고 말합니다. 지진이 있은 지 3주 후에 그는 시체 안치소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또 3주 뒤에는 어머니의 시신 역시 그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지진이 멈추었을 때, 시치가하마에 사는 마사아키는 해변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왕국회관에 차를 주차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곳에 가니 한 자매가 이미 대피해 있었습니다. 나는 쓰나미가 그곳까지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내 시커먼 물이 땅을 덮기 시작하더군요! 내 차와 그 자매의 차가 물에 뜨기 시작했지요. 나는 창문을 통해 차 밖으로 빠져나와 자동차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그 자매의 차는 쓸려 가서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여호와께 그 자매를 도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눈이 오고 있었고 나는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벌벌 떨고 있었지요. 눈이 멈추고 나서도 공기는 살을 에는 듯이 차가웠습니다. 그리고 곧 해가 지고 어두컴컴해졌어요. 하늘에는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더군요. 나는 내 차 지붕 위에 서 있었지요.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 한가운데 떠 있는 섬 위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파편 더미나 건물 지붕 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어요. 아침까지 내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좀 힘을 내 보려고 바로 2주 전에 내가 했던 공개 강연을 기억나는 대로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설 주제가 ‘고난의 때에 어디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가?’였으니까 상황에 딱 맞는 연설이었지요. 연설을 하고 나서는 내가 유일하게 외우고 있던 노래인 ‘내 아버지, 내 하느님, 내 벗’을 불렀습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불렀지요. 노래를 부르면서 내가 여호와를 섬기며 살아온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눈물이 흐르더군요.

그런데 길 건너편에 있는 집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괜찮으세요? 가서 도와 드릴게요!’ 하고 소리쳤습니다.” 소리를 친 그 남자는 떠다니는 목재를 가지고 뗏목을 만들어서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구조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도움으로 마사아키는 어느 집의 2층 창문을 통해 그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른 차에 있던 자매 역시 구조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마사아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고헤이와 유코는 3월 12일 토요일에 리쿠젠타카타에 있는 왕국회관에서 열릴 자신들의 결혼식을 앞두고 기쁨에 차 있었습니다. 금요일에 그들이 시청에서 혼인 신고를 마친 뒤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고헤이는 시에서 발령한 쓰나미 경보를 듣고는 높은 지대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그때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온 도시가 뿌옇게 보였습니다. 큰 건물 몇 개 말고는 남아 있는 게 없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날 처리해야 할 일들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걸 곧 깨닫게 되었지요.”

고헤이와 유코는 토요일 내내 회중 형제 자매들을 도왔습니다. 고헤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근의 여러 회중에서 구호품을 보내 주었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힘을 형제들을 돕는 데 사용할 수 있어 기쁘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짝을 주신 데 대해 여호와께 감사드렸지요. 쓰나미 때문에 새집과 자동차와 우리의 전 재산이 쓸려 가 버렸지만 형제들은 우리에게 사랑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신체적·영적·감정적 필요를 돌보기 위한 구호 활동. 일본 지부는 신속히 세 개의 재해 구호 위원회를 조직했으며 지부 사무실의 대표자들을 재해 지역으로 여러 차례 파견했습니다. 지구 감독자로 5월에 일본을 방문한 세계 본부의 제프리 잭슨과 이삭 머레이 역시 피해가 매우 심각한 지역 중 한 곳을 방문하여 그곳 형제 자매들을 만났습니다. 피해를 입은 회중들을 위해 특별 모임이 마련되었습니다. 약 2800명의 형제들이 21곳의 왕국회관에 모여 전화선을 통해 모임을 즐기면서, 전 세계 형제 자매들의 사랑과 관심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재해 구호 위원회와 자원봉사자들은 구호품을 공급하는 일을 바쁘게 수행했습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음식과 물과 연료였습니다. 또한 구호 위원회는 피해 지역의 회중들에 다양한 치수의 옷을 보낼 마련도 했습니다. 집회 장소들에는 형제 자매들이 필요한 옷을 찾아 입어 볼 수 있도록 임시로 옷 진열대와 거울이 설치되었습니다.

재해로 고통당하던 형제 자매들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의 물질적 필요와 감정적 필요를 돌보아 주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특히 그리스도인 집회를 통해 큰 힘을 얻었습니다. 피해 지역에 사는 한 자매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집회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고 있어요. 집회는 나에게 영적 생명선과도 같습니다.”

희망의 소식. 일본 형제들은 깊이 상심해 있는 이웃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위로의 소식을 전해 주려고 신속히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재해의 영향을 입지 않은 한 도시에서는 일단의 전도인들이 “비극—왜 일어나는가? 답은 성서에 있다”라고 쓰인 큰 표지판을 들고 가두 증거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으며 형제들은 불과 하루 반 사이에 「성서의 가르침」 책을 177부 전했습니다.

재해가 휩쓸고 지나간 지역에서 증인들은 먼저 성서 연구생들의 집과 재방문하던 사람들의 집을 방문한 다음 이웃 사람들을 방문하여 위로를 베풀었습니다. 아키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집을 방문하여 한 여자에게 마태복음 6:34을 읽어 주었는데 그 여자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걱정거리가 많아 보였어요. 성서가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설명했더니 즉시 내 말에 동의하면서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성경에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한 남자는 “여러 가지 종교가 있지만 이런 난리 통에도 우리를 찾아와 주는 사람들은 여러분뿐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남자는 존경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힘든 시기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활동을 계속하시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한 장로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의 방문을 환영했지요. ‘재해가 있은 뒤로 우리 집에 온 사람은 여러분이 처음이에요. 다음에도 꼭 오세요’ 하고 다들 말하더군요.”

106개 언어로 발행되는 「신세계역」!

2011년 7월 15일 금요일은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에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날이었으며, 그곳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의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가 된 날이기도 했습니다. 두 나라가 중계를 통해 동시에 들을 수 있었던 연설에서 통치체 성원인 스티븐 레트가 라트비아어와 리투아니아어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신세계역」을 발표한 것입니다. 이 두 언어는 「신세계역」이 번역된 99번째와 100번째 언어가 되었습니다. 지난 7년간 통치체는 성서를 번역하는 일에 큰 비중을 두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신세계역」이 2004년에 비해 두 배나 많은 수의 언어로 발행되며, 세계 전역에서 번역자들은 더 많은 언어로 성서를 번역하기 위해 계속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짐작할 수 있듯이, 형제들은 모국어로 된 성서를 받게 되면 기쁨에 넘칩니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한 형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 책을 가질 수 있는 것만도 좋은 일이죠. 하지만 모국어로 성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더없이 기쁜 일입니다. 상고어 「신세계역」은 정말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젠 복음서를 읽을 때 성서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고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가 있지요.” 에티오피아의 한 젊은 자매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다음과 같은 말로 대변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는 제 마음을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우리말로 된 「신세계역」이 있으면 좋겠다고 여호와께 늘 기도했는데, 오늘 제 소원을 들어주셨네요!”

세계에서 들어온 특별한 소식들

러시아에서 한 난폭한 남자가 잠잠해지다. 베라라는 연로한 자매는 여호와의 증인을 싫어하는 한 이웃 남자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남자는 자매를 위협하고, 자주 찾아오는 자매의 외손녀들 앞에서 욕설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베라는 로마서 12:18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늘 차분한 태도로 대응했고 그와 언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2011년 1월에 그 이웃 남자는 특히 더 공격적인 태도를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베라는 지역 경찰관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경찰관은 2010년 3월에 지역 공무원과 함께 베라의 집을 방문하여, 베라와 그의 집에서 모임을 갖는 증인들이 극단주의적인 활동에 연루되어 있는지 확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그 경찰관은 문제를 제대로 파악했습니다. 경찰관은 그 이웃 남자에게 호통을 치면서 자매를 위협한 일에 대해 3000루블(미화로 약 100달러)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그 후 이웃 남자는 더는 자매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베라는 감사의 뜻을 전하려고 경찰서에 편지 한 통을 써 보냈습니다. 뜻밖에도 경찰서장이 자매에게 답장을 보내 주었습니다. 서장은 도움을 준 경찰관에 대해 친절한 말을 써 주어 고맙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경찰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귀하가 보내 주신 따뜻한 마음이 담긴 편지를 통해 우리에 대한 귀하의 신뢰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베라의 말에 따르면, 그 경찰관은 베라의 집에 정기적으로 들러서 별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준다고 합니다.

터키의 “쓰레기 청소부.” 성서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두 남자가 지역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썼습니다. “정말 동화에나 나올 법한 광경이었습니다. 다들 웃는 얼굴에 정말 친절하고 예의 바르더군요. 점심 휴식 시간에 대회장을 이리저리 다녀 보았는데 사람들은 우리를 낯선 사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는 형제가 다가오더군요. 한 손에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말이지요. ‘이 사람이 쓰레기 청소부였나?’ 하고 생각한 우리는 그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쓰레기나 치우는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의 친구로 알려지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방향을 돌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몸을 숨기려고 했지요. ‘연단에서 연설하는 사람도 있는데 하필 쓰레기 청소부랑 성서 연구를 하고 있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연구가 계속 진행되면서, 우리의 연구를 사회하는 그 ‘쓰레기 청소부’가 지부 위원 중 한 명이고 여호와의 증인 지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계속 잘 발전하여 여호와께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자 형제가 겸손하게 ‘작은 자’로 처신한 것이었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지요. (누가 9:48) 처음 참석한 큰 모임에서 그러한 값진 교훈을 배우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아르메니아에 퍼진 거짓말. 한 젊은 남자가 세반 시에서 부모를 살해한 사건이 있은 뒤, 그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거짓 정보가 알려지면서 여호와의 증인을 비방하는 운동이 대중 매체를 통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을 즉시 언론에 전달했지만, 증인에 대한 중상은 계속되었고 그 젊은이가 여호와의 증인임을 주장하는 특별 보도가 텔레비전에 방영되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말할 때 모욕적이고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여호와의 심판을 집행하는 잔인하고 의지가 박약한 사람들”이라는 자막을 내보냈습니다. 심지어 시청자들에게 증인들이 방문하면 완력을 사용하도록 부추기기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 아르메니아에서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적개심이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그 텔레비전 방송국에 소송을 제기하여, 잘못된 보도를 정정하고 그에 대해 사과할 것과 명예 훼손에 대한 보상을 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2012 연감」이 인쇄되는 시점까지는, 방송국 측에서 아직 정정 보도를 내보내지 않았으며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건축 꿈나무들. 산호세데과리베 시에서 유치원에 다니는 몇몇 아이들은 매일 아침 왕국회관 건축 현장을 지나가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항상 그곳에 멈추어 서서 건축 현장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매우 신기해했습니다. 하루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앞으로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깜짝 놀랐는데,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여호와의 증인 같은 건축 기술자”가 되고 싶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의아하게 생각한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 한 명과 함께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증인들의 건축 현장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견학 마련을 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했는데 특히 여러 색깔의 안전모를 써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은 많은 질문을 했고 훌륭한 증거가 이루어졌습니다.

캐나다에서 많은 잡지가 생산되다. 통치체는 버뮤다, 가이아나, 캐나다, 미국 그리고 카리브 해의 대부분의 섬들에 있는 모든 회중에서 사용할 「파수대」와 「깨어라!」를 캐나다 지부에서 공급하도록 요청했습니다. 형제 자매들이 기부한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이러한 조정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2011 봉사 연도가 시작되면서, 캐나다 지부는 잡지 생산량을 12배로 증가시켰습니다. 현재 캐나다 지부는 30개 언어로 잡지를 인쇄하고 있으며 그 생산 부수는 전 세계 잡지 생산량의 거의 4분의 1에 해당합니다.

핀란드에서 열린 공개 견학 행사. 핀란드에서는 통치체의 승인을 받아,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지난 100년간 핀란드에서 전해 온 소식에 대해 알리는 특별 운동이 조직되었습니다. 형제들은 “여호와의 증인—그들은 누구인가?”라는 표제로 여러 기사들이 실린 2010년 8월호 「깨어라!」를 열정적으로 배부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의 활동에 대한 좋은 대화가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후 8월 말에 형제들은 지부 사무실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견학 행사를 조직했습니다. 베델 가족 전체가 참여해서 그곳에서 수행되는 일을 설명해 주었고, 방문객들에게 우리의 활동에 대해 알려 주기 위해 전시물도 설치했습니다. 일부 베델 봉사자들은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의상을 입고 당시에 형제들이 샌드위치 광고판을 사용하여 공개 강연을 광고하던 모습을 실제로 보여 주었습니다. 몇몇 부서들에서는 방문객에게 줄 조그마한 기념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약 1500명의 방문객이 공개 견학 행사에 다녀갔습니다. 그 이후로 신문, 라디오, TV에서는 우리의 활동에 대해 호의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코트디부아르의 소요 사태.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앞으로 더 많은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2011 봉사 연도를 맞이했습니다. 8656명의 전도인이 2만 3019건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10년 11월 말, 선거와 관련된 논란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혼란과 소요 사태에 휩싸였습니다. 3월경에는 상업 중심지인 아비장으로 내전이 확산되어 2011년 4월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시민들은 대규모로 그 도시를 빠져나갔고 외국으로 도피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형제들도 집과 소유물을 뒤로하고 걸어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그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한 덕택에 보호를 받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번은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들과 상담원들이 세미나를 열고 있는데 군인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군인들은 모두에게 바닥에 엎드리라고 명령하고 귀중품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한 형제가 우리 출판물이 가득 든 봉사 가방을 내놓자 군인들은 즉시 그가 여호와의 증인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증인들은 해가 되는 사람들이 아니지” 하고 말하며 가방과 돈과 휴대폰을 돌려주었습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 지부 봉헌식

2006년 12월 18일, 칠레 지부의 확장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2층으로 된 사무동과 3층으로 된 숙소동이 새로 지어졌고 창고 공간도 상당히 확장되었습니다. 2010년 10월 16일에 있었던 봉헌식 프로그램에 5501명이 참석했으며 통치체 성원인 데이비드 스플레인이 스페인어로 연설했습니다.

2011년 2월 19일, 부르키나파소에서는 확장된 전국 사무실의 봉헌식에 210명이 참석했습니다. 세계 본부에서 일하는 존 키콧이 봉헌사를 했습니다. 이곳의 전파 활동은 2011년 5월까지 코트디부아르 지부에서 관할하다가 그 후로 베냉 지부에서 감독하게 되었습니다.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훌륭한 행실 덕분에 여호와의 이름에 많은 찬양이 돌아갔습니다. 한 대형 공급업체의 직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리 지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군요. 사람들이 이렇게 차분하고 즐겁게 일하는 공사 현장은 처음 봅니다.”

2011년 8월 27일, 모두가 기뻐하는 가운데 홍콩 지부의 새로운 시설이 봉헌되었습니다. 새로운 사무실들은 빅토리아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37층 건물의 19층에 있습니다. (아래 화살표 참조) 통치체 성원인 스티븐 레트가 봉헌사를 했으며, 290명이 식당과 사무실과 발송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앉아 연설을 주의 깊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사무실들에는 업무 공간이 필요했던 번역부, 봉사부, 오디오/비디오부, 구매부, 발송부, 회계부가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법적 진척 상황

충실한 예언자 예레미야에게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결코 자신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틀림없이 너를 대적하여 싸울 것이지만,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고 너를 구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15:20) 다음에 나오는 보고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오늘날 여호와의 종들 역시 반대에 직면해서도 전파 사명을 수행하면서 그분의 후원과 지원을 경험해 왔습니다.—마태 24:9; 28:19, 20.

아르메니아 여호와의 증인인 바한 바야탼은 양심적 병역 거부로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아르메니아 법원의 1심 재판과 상소심에서 패소한 후 이 사건은 유럽 인권 재판소(ECHR)의 심리를 받았습니다. 2009년 10월 27일에 유럽 인권 재판소의 7명의 판사는 바야탼 형제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면서 아르메니아 정부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심리에 참여한 한 판사는 동 재판소의 그러한 결정이 “양심적 병역 거부권에 관한 유럽의 최신 표준과 맞지 않다”며 반대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한 유럽 인권 재판소는 17명의 판사로 구성된 대재판부에 이 사건을 회부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2011년 7월 7일, 이 재판부의 17명의 판사는 16대 1로 아르메니아 정부가 바야탼 형제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결했습니다. 동 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청구인이 군 복무를 거부한 것이 종교적 신념 때문임을 의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가 진실하게 고수해 온 종교적 신념은 군 복무를 이행할 의무와 심각하게 상충되며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이 역사적인 판결을 계기로, 아르메니아에 수감된 69명의 형제들을 비롯해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에서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 형제들이 마침내 석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불가리아 2011년 4월 17일, 부르가스의 한 왕국회관에서 여자와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하여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의 기념식을 평화롭게 거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60명가량의 남자들로 이루어진 성난 폭도들이 왕국회관 주변으로 모여들어 입구에 서 있던 증인들에게 큰 돌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폭도들은 왕국회관 안으로 난입하려 했지만 형제들이 그들을 막아섰습니다. 즉시 경찰을 불렀지만 경찰은 신속히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폭도들의 공격으로 여러 명의 증인이 부상을 입었고 다섯 명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회중은 기념식을 계속해서 진행했습니다. 불가리아에서 증인들이 일반적으로 존중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공격은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실상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습니다. 통치체는 13개의 지부에 연락하여 해당 국가에 있는 불가리아 대사관 측에 이 문제를 주지시키게 했습니다. 그 후 불가리아 정부는 이러한 공격을 범죄 행위로 규정했으며, 그 지역 검사는 가해자 중 여덟 명을 기소한 상태입니다.

한국 한국에서는 800명이 넘는 여호와의 증인이 종교적인 이유로 양심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했기 때문에 여전히 수감되어 있습니다. 군 복무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1950년 이래 1만 6000명 이상의 여호와의 증인이 도합 3만 1000년이 넘는 기간의 투옥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처럼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입장을 타협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군 복무를 거부하는 젊은 형제들은 각자의 양심에 따라 개인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예를 들어 김지관 형제는 재판 중에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더 이상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것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와 같은 성서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원칙에 근거한 사랑이 있으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러한 가르침과 그 밖의 성경 구절들에 기초하여 확고부동한 신념을 형성하게 되었고 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이사야 2:4; 마태 5:43, 44; 22:36-39.

현재 한국에는 젊은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체 복무 마련이 없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한국의 헌법 재판소에 10개의 헌법 소송 사건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11월 11일에 헌법 재판소에서 구두 변론이 열렸는데, 한국 정부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위해 대체 복무를 마련하지 않은 것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 것인지의 여부도 논의되었습니다.

한편 2011년 3월 24일에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UNHRC)는 한국 정부가 여호와의 증인인 100명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투옥한 것이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인권에 관한 표준을 위반한 것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이 100명의 형제들은 자신들이 투옥된 것에 대해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에 상소한 상태였다.) 그리고 계류 중에 있는 통합된 10개의 사건을 심리할 때 검토할 수 있도록, 바야탼 형제 사건과 관련된 유럽 인권 재판소 대재판부의 호의적인 판결문(34-35면의 아르메니아 보고 참조)이 한국의 헌법 재판소에 제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 8월 30일, 헌법 재판소는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의 결정을 완전히 무시하고, 현행 병역법이 합헌이며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계속 투옥시킬 수밖에 없다고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9명의 재판관 중 2명은 병역법이 헌법에서 명시한 양심의 자유와 충돌하므로 위헌이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대체 복무 제도를 마련하도록 제안했습니다.

터키 2007년 7월 31일, 터키의 우리 형제들은 종교 단체로서 법적 인가를 받게 되어 기뻐했습니다. 중립 문제나 왕국회관 사용과 관련하여 아직 어려움이 있지만, 이 나라에서 신권 권익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1년 4월 26일, 터키의 국가 교육부는 ‘여호와의 증인은 학교의 필수 종교 수업에서 면제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습니다. 교육부는 “여호와의 증인은 기독교의 공통 신앙 중 일부를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기독교의 한 종파이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교육부의 결정은 학교에서 종교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러 해 동안 낙제점을 받은 청소년 형제 자매들에게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미국 2011년 5월, 캔자스 주 항소 법원에서는 ‘메리 D. 슈타인메츠 대 캔자스 보건 정책국’ 사건에서 슈타인메츠 자매에게 호의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동 법원은 슈타인메츠 자매가 캔자스 주 밖에서 무수혈 수술을 받도록 주 당국이 허가하지 않은 것은 연방과 주에서 그 자매에게 부여한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캔자스 주에서는 슈타인메츠 자매에게 필요한 무수혈 수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법원은 캔자스 주가 우리 자매에게 다른 주에서 수술을 받도록 허가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 결정은 슈타인메츠 자매뿐 아니라 정부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의료 서비스를 받는 미국의 다른 전도인들에게도 법적인 승리를 의미했습니다.

2011년 8월 10일, 캔자스 주 대법원은 여호와의 증인인 모니카 맥글로리에게 아들에 대한 양육권을 인정하는 호의적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자신이 양육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맥글로리 자매가 아들을 맡아서는 안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1) 아들에게 수혈이 필요할 때, 그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2) 집집으로 전도하는 데 아들을 데리고 나갔다. (3) 아들에게 아마겟돈에 대해 가르침으로써 아버지와 지역 사회로부터 아들을 단절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캔자스 주 대법원은 1957년에 헌법과 관련하여 이미 제시된 바 있는 원칙을 지지하여 다음과 같이 명시했습니다.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되어야 하며, 자녀에게 베푸는 종교적인 가르침이 자녀 양육권 명령을 내리는 근거로 결코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동 법원은 수혈 문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수혈이] 필요할 수 있는 미래의 가상적인 사고나 질병을 근거로 [양육권] 문제를 결정할 수 없다.”

프랑스 2011년 6월 30일, 유럽 인권 재판소가 프랑스 여호와의 증인 협회에 승소 판결을 내렸을 때, 우리 모두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프랑스 지부에 들어오는 헌금에 무려 60퍼센트라는 터무니없는 중과세를 부과한 것에 대해 16년간 법적 투쟁을 한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중과세가 부과된 주요 종교 단체는 여호와의 증인뿐이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여호와의 증인에게 총 5800만 유로(미화로 8200만 달러가 넘는 금액)를 부과했으며, 이 금액은 프랑스 여호와의 증인 협회의 자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었습니다. 프랑스의 모든 상·하급 법원은 이러한 과세를 지지했습니다. 따라서 2005년 2월에 이 문제를 유럽 인권 재판소에 상소했습니다.

2011년 6월 30일, 유럽 인권 재판소의 판사 7명은 만장일치로, 동 재판소가 프랑스 정부의 조처를 지지한다면 여호와의 증인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이 직접적인 방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동 재판소는 유럽 인권 협약의 보호 규정이 여호와의 증인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확증했습니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이 판례는 아르메니아, 불가리아, 조지아, 러시아 등 동 재판소의 관할하에 있는 다른 나라에서 숭배의 자유를 추구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이번 판결은 프랑스 정부에게 유럽 인권 협약의 종교의 자유 관련 조항을 위반한 죄가 있다고 최초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프랑스 정부는 이 판결에 대해 상소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2010년 6월 10일, 유럽 인권 재판소에서 심리한 ‘모스크바 여호와의 증인 대 러시아’ 사건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러시아 정부를 상대로 역사적인 법적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2010년 12월 13일에 동 재판소의 대재판부에 재심리를 요청했지만, 17명의 판사로 구성된 대재판부는 이를 기각했고, 따라서 6월 10일에 내려진 결정이 최종 판결이 되었습니다. 판결문에서는 러시아 정부가 “재판소가 확인한 위법 행위를 중단하고, 그로 인해 초래된 결과를 최대한 바로잡을 ··· 법적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러시아 정부는 그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증인들을 괴롭히고 그들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방해할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1년 8월 25일 이른 아침, 경찰은 타간로크 시에 있는 우리 형제들의 집 19군데를 급습하여 종교 서적과 컴퓨터와 회중 기록을 압수했습니다. 이 일은 그 전에 내려진 러시아 연방 대법원의 판결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그 판결에서는 타간로크 지역의 여호와의 증인 종교 단체가 해산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34종의 우리 출판물을 극단주의 서적으로 규정했습니다. 러시아 법원의 판결에 근거하여 정부는 63종의 우리 출판물을 연방에서 정한 극단주의 서적 목록에 올려놓았습니다.

또한 우리의 형제 자매들은 적어도 950건의 급습, 폭행, 체포, 구금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러시아 당국은 우리 형제들을 상대로 11건의 형사 소송을 제기했으며, 여러 채의 왕국회관이 공격을 받아 파손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당국은 반극단주의법을 어겼다는 혐의를 조작하기 위해 많은 사람의 전화를 도청하고, 이메일 계정을 감시했으며, 적어도 한 가정집에는 여러 대의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기까지 했습니다.

그처럼 조작된 혐의로 기소된 사람 중에는 고르노알타이스크 시에 사는 35세의 알렉산드르 칼리스트라토프가 있습니다. 그는 여러 인권 옹호자들의 비난을 받아 온 반극단주의법에 의해 “종교적인 증오심과 적대감을 부추긴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2010년 10월 7일부터 2011년 3월 18일까지 이어진 법정 소송에서, 심문을 받은 법정 증인 71명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알렉산드르의 범죄 행위를 입증할 수 없었으며 그가 범죄할 의도가 있었는지조차도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법원은 여호와의 증인의 서적과 가르침을 철저히 조사했고, 2011년 4월 14일에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검사는 이 결정에 대해 상소했고, 2011년 5월 26일에 알타이 공화국 대법원은 새로운 판사가 재심리하도록 이 사건을 하급 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따라서 칼리스트라토프 형제는 이미 혐의를 완전히 벗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면적으로 새로운 법정 심리를 받게 되어 또다시 부당하게 극단주의자로 몰릴 수 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활동을 위험하다고 간주하는 그러한 소송 사건으로 인해, 작은 도시인 고르노알타이스크에서는 증인들의 활동이 자연히 많은 사람의 주의를 끌게 되었습니다. 같은 문제로 기소될 가능성이 있는 그 지역 증인들은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인나라는 자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성서를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우리 형제 자매들을 더 가족같이 느끼게 되었고, 이전 어느 때보다 여호와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우리 출판물 가운데 일부가 금지되었지만, 성서만을 사용하여 많은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알타이 공화국의 전도인 수는 지난해에 비해 24퍼센트 증가했고, 야외 봉사에 사용한 시간도 33퍼센트 늘어났습니다. 기념식 참석자 수는 지난해에 비해 16퍼센트 증가했는데, 이것은 그 나라 전체 전도인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였습니다!

그사이, 러시아의 여호와의 증인은 정부를 상대로 하여 13개의 새로운 청원서를 유럽 인권 재판소에 제출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2009년 12월 8일에 러시아 대법원이 내린 판결에 대해, 다른 하나는 18종의 우리 출판물을 극단주의적이라고 규정한 알타이 공화국의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각주]

^ 67항 1965년 이래 여호와의 증인과 관련하여 유럽 인권 재판소에서 심리한 사건은 총 49건이며, 동 재판소는 그중 두 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증인에게 호의적인 판결을 내렸다. 이번 바야탼 형제 사건의 승소는 그 두 건 중 한 건의 판결을 뒤집는 것이다.

[14면 삽입]

“예언자들의 글에 ‘그리고 그들은 모두 여호와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5면 삽입]

“‘감사합니다’라는 말로는 제 마음을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12면 네모]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에 대해 사람들이 한 말

• “난생 처음으로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마련을 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 “이 새로운 마련에 대해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 “우리 회중 역사에 오래오래 남을 만한 일이 되었습니다.”

• “보조 파이오니아가 아주 많아지니까 회중에 평화와 연합의 영이 더욱 고무되었습니다.”

• “정말 아마겟돈이 금방 오려나 보군요!”—4월에 우리의 증가된 활동을 보고 증인이 아닌 어떤 사람이 한 말.

[43면 네모]

“기뻐 외치다”

사탄의 분노에 찬 통치를 받고 있는 이 세상에는 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계시 12:12) 그와는 뚜렷이 대조되게도, 여호와의 종들은 “마음이 유쾌하여 기뻐 외치고” 있습니다. (이사야 65:13, 14) 그들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참하느님을 숭배하도록 초대하는 일을 쉬지 않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도피하는 자들은 모두 기뻐하겠고 한정 없는 때까지 기뻐 외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시 5:11.

[26면 도표와 그래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106개 언어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신세계역」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전역: 62 성경: 44

아프리칸스어 미국 수화

알바니아어 암하라어

아랍어 아제르바이잔어

아르메니아어 아제르바이잔어 (키릴 문자)

불가리아어 브라질 수화

세부아노어 캄보디아어

치체와어 치통가어

중국어 (간체자) 콜롬비아 수화

중국어 (번체자) 에스토니아어

시벰바어 에웨어

크로아티아어 피지어

체코어 군어

덴마크어 아이티 크레올어

네덜란드어 힐리가이논어

에픽어 힌디어

영어 히리모투어

핀란드어 이탈리아 수화

프랑스어 칸나다어

조지아어 카자흐어

독일어 키카온데어

그리스어 키리바시어

헝가리어 라트비아어

이보어 리투아니아어

일로카노어 루간다어

인도네시아어 루발레어

이탈리아어 말라얄람어

일본어 멕시코 수화

키냐르완다어 미얀마어

키르기스어 네팔어

키룬디어 팡가시난어

한국어 파피아멘토어 (퀴라소)

링갈라어 펀자브어

마케도니아어 러시아 수화

말라가시어 상고어

몰타어 실로지어

노르웨이어 스라난통가어

오세트어 타밀어

폴란드어 타이어

포르투갈어 토크피신어

루마니아어 통가어

러시아어 툼부카어

사모아어 우크라이나어

세페디어 우즈베크어

세르비아어 베트남어

세르비아어 (로마자)

세소토어

쇼나어

싱할라어

슬로바키아어

슬로베니아어

스페인어

스와힐리어

스웨덴어

타갈로그어

총가어

츠와나어

터키어

트위어 (아콰펨)

트위어 (아샨티)

코사어

요루바어

줄루어

[그래프]

◀ 76% ◁ 24%

2011년을 기준으로, 세계 인구 중 적어도 76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신세계역」(전역 또는 부분역)을 모국어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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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면 그래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전 세계에서 265만 7377명의 전도인이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250 (만)

200

150

100

50

0

2008 2009 2010 2011

[35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미국

프랑스

불가리아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러시아

한국

[6면 삽화]

위: 파이오니아들과 전도인들은 자신들의 성서 연구생을 자네트의 집으로 데려와 함께 연구했습니다. (8-9면 참조)

[7면 삽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정규 파이오니아들과 보조 파이오니아들이 봉사하러 가는 모습

[10면 삽화]

도시가 요양원에서 도우미에게 증거하는 모습

[11면 삽화]

알레한드로가 아버지와 함께한 모습,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산트셀로니에서 4월의 마지막 날에

[13면 삽화]

미국 뉴욕 주 패터슨에 있는 워치타워 교육 센터

[18면 삽화]

일본 리쿠젠타카타의 왕국회관

[22면 삽화]

위: 미야기 현 시바타에 있는 한 형제의 집에서 파편을 치우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22면 삽화]

왼쪽: 리쿠젠타카타에 있는 한 형제의 집에서 지부 위원이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22면 삽화]

아래: 재해 지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특별 대회 참석자들을 위해 점심을 만드는 모습

[24면 삽화]

리투아니아어와 라트비아어 「신세계역」

[31면 삽화]

미국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 옆에 있는 역사적인 표시, 1958년 여호와의 증인 대회 때 경기장 역사상 최다 관중이 모였다는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32면 삽화]

부르키나파소 사무실에서 건축 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32면 삽화]

부르키나파소 사무실

[32면 삽화]

칠레 지부

[33면 삽화]

홍콩의 새로운 지부 시설

[34면 삽화]

유럽 인권 재판소,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38면 삽화]

종교 수업에서 면제된 학생들이 기뻐하며 학교 성적표를 들고 있는 모습

[41면 삽화]

알타이 공화국의 고르노알타이스크에서 전파하고 있는 증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