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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전역에서 수행되는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

지상 전역에서 수행되는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

지상 전역에서 수행되는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

오래전에 사도 요한은 예언적 환상을 통해 “모든 나라와 부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셀 수 없이 많은 거대한 무리를 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큰 환난”을 생존하여 하느님의 신세계로 들어갈 사람들이었습니다. (계시 7:9, 14) 이어지는 내용에 나오는 여러 수치와 경험을 살펴보면 큰 무리가 현재 모아들여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수가 이전 어느 때보다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여호와께서 하신 약속들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당신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지 않습니까?

아프리카

나라 수 57

인구 949,533,064

전도인 수 1,267,314

성서 연구 수 2,819,310

편지가 위안을 가져다주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사는 아이리스라는 자매는 사랑하는 사람을 사별한 이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모든 고난—곧 끝날 것이다!」 전도지와 「사망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희망이 있는가?」 전도지를 편지와 함께 보냅니다. 최근에 이 자매는 시드니라는 남자로부터 답장을 한 통 받았는데, 그는 38년 동안 행복하게 함께 살아왔던 아내를 사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의사들은 사랑하는 내 아내가 결국 죽게 될 거라고 미리 알려 주었지요. 그래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아내가 죽고 나니 화가 치밀기도 하고 혼란스럽고 막막한 생각이 들더군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 주님께 정말 감사해야겠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하느님의 약속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것은 정말 훌륭한 일입니다. 당신의 믿음을 표현해 준 이 내용을 앞으로 있을 어려운 시기 내내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당신이 보내 준 편지와 전도지를 읽고 나서야 안정을 되찾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낙태를 막다. 베냉에 사는 젊은 자매인 글로리아는 아르노라는 대학생에게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르노의 휴대폰이 울렸고, 전화를 받은 그는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있다며 가 봐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글로리아는 재빨리 가방에 손을 넣어 처음으로 손에 잡히는 잡지를 꺼내 그에게 주었습니다. 아르노는 잡지를 보지도 않고 받고서는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아르노가 조금 전에 전화를 받았을 때 그의 친구는 자기 여자 친구가 임신을 해서 낙태를 하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아르노는 자매가 준 잡지를 슬쩍 한번 봤습니다. 후에 그는 “표지에 ‘낙태’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글로리아가 그에게 준 잡지는 “낙태—논란이 되는 이유는?”이라는 표제의 2009년 6월호 「깨어라!」였던 것입니다. 아르노의 친구는 그 잡지를 읽고 나서 낙태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의 여자 친구는 나중에 예쁜 여자 아기를 출산했습니다.

주술사라고 겁낼 필요가 없었다. 정규 파이오니아인 킹은 짐바브웨의 도움이 더 필요한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몇몇 자매들과 야외 봉사를 하다가 한 유명한 주술사의 집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자매들은 주술사인 그 여자와 이야기하기를 주저했지만 킹은 그에게 가정 성서 연구를 제안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술사는 전도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고객인 줄 알고 무엇을 원해서 왔는지 물었습니다. 킹은 그에게 「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책을 보여 주면서 가정 성서 연구를 제안했고 주술사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여자가 질문을 정말 많이 해서 놀랐습니다. 그래서 재방문과 성서 연구를 할 마련을 했지요.” 3주 뒤에는 이 주술사를 회중 집회에 초대했고 그는 초대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여자는 영매술과 관련된 모든 물건을 없애 버렸고 영적으로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에는 침례받은 자매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저를 방문하게 해 달라고 기도 좀 해 주세요!” 패트릭은 10년 전에 앙골라에서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 후에도 그는 어머니인 펠리시다드와 계속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서로를 보면서 영상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어머니 방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인 그의 어머니는 “우리 회중 자매가 나를 보려고 와 있단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패트릭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증인들은 왜 우리 집에는 안 오는 거죠? 여기 온 지 10년이 되었는데 한 번도 온 적이 없어요. 그 사람들이 저를 방문하게 해 달라고 기도 좀 해 주세요!”

패트릭의 어머니와 회중 자매는 조금 놀랐지만 “그래. 우리가 너를 위해 기도해 줄게” 하고 대답했습니다.

불과 3일 뒤에 한 여호와의 증인이 패트릭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깜짝 놀란 패트릭은 어머니에게 혹시 미국에 있는 증인이 자기를 방문하도록 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패트릭은 증인이 방문한 것이 하느님의 응답이라고 결론 내리고는 성서 연구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즉시 모든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패트릭은 다음번에 어머니와 영상 통화를 할 때, 「성서의 가르침」 책에서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장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었고 집회 때 입을 양복을 샀다는 말도 했습니다.

어느 특이한 침례 지원자. 콩고 인민 공화국의 브라자빌에서 2010 지역 대회가 시작되었을 때 에드바르라는 한 젊은이가 자신도 침례를 받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회중에서 왔냐는 질문에 그는 “모사카”라고 대답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그 마을에는 증인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형제들은 그가 어떻게 해서 침례를 받으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에드바르가 장로들에게 설명해 준 내용에 따르면, 그는 2007년에 브라자빌에 있을 때 외할아버지와 함께 「요구」 팜플렛과 「성서의 가르침」 책 열네 개 장을 공부했습니다. 그 후 에드바르는 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해 모사카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활동적인 증인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성서의 가르침」 책의 나머지 장들을 연구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아버지에게 부탁했습니다. 아버지가 책에 나와 있는 질문을 하면 에드바르가 대답을 하는 식으로 연구가 진행되었고 그렇게 그는 그 책을 다 마쳤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알게 된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009년 10월에 「요구」 팜플렛을 사용하여 모사카 지역에서 혼자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봉사에 바친 시간을 기록한 다음 브라자빌에 사는 외할아버지에게 정기적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그 봉사 보고를 회중에 한 번도 전해 주지 않았습니다.

에드바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지부에서는 후에 모사카로 임시 특별 파이오니아들을 보내 3개월간 봉사하게 했습니다. 모사카를 떠나기 바로 이틀 전, 임시 특별 파이오니아 중 한 명인 대니얼은 에드바르가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팜플렛으로 성서 연구를 사회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니얼은 에드바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에드바르는 “지금 봉사하는 중이에요. 저는 전도인이거든요. 우리 아버지한테 확인해 보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대니얼은 에드바르의 아버지를 만났고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임시 특별 파이오니아들은 곧 그곳을 떠나야 했지만 남아 있는 짧은 시간을 사용하여 에드바르에게 봉사하는 법에 대한 훈련을 베풀었습니다. 그들이 떠난 뒤 에드바르는 더욱더 열심을 내어 계속 전파했으며 열 건이 넘는 성서 연구를 사회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께 헌신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지역 대회가 열린 금요일,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두 명의 장로가 에드바르와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질문들을 함께 토의했습니다. 에드바르가 대답을 매우 잘했기 때문에 장로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또한 모사카에서 봉사했던 특별 파이오니아들은 에드바르의 행실이 매우 훌륭하며 그가 이미 9개월간 비공식적으로 전파 활동을 해 왔다고 장로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이 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주말에 링갈라어 지역 대회가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장로들은 에드바르가 주 중에 침례 문답을 할 수 있도록 마련했고, 그가 진리를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에드바르는 2010년 7월에 링갈라어 대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가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으로 승인된 지 정확히 일주일 후, 장로들은 에드바르가 침례받은 형제가 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는 침례받은 후에 브라자빌에서 두 달간 보조 파이오니아로 봉사했습니다. 장로들은 그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도록 자신을 지키십시오’」 책을 연구할 수 있도록 마련했으며 그 후 그는 모사카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최근에는 이 구역에 특별 파이오니아 형제 한 명이 임명되었습니다. 4월에 에드바르는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면서 특별 파이오니아 형제와 함께 총 182명의 관심자를 기념식에 초대했습니다. 그는 현재 16건의 연구를 사회하고 있으며 그중 일곱 명이 집회에 참석하는데, 집회는 특별 파이오니아 형제와 에드바르 두 사람이 사회합니다. 2011년 현재 에드바르는 열다섯 살입니다.

아메리카

나라 수 55

인구 941,265,091

전도인 수 3,780,288

성서 연구 수 4,139,793

“내가 전화를 잘못 건 게 아니었네요.” 미국에 사는 선디라는 자매가 집에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한 여자였는데 자매가 모르는 어떤 사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선디는 전화를 잘못 건 것 같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자기가 시각 장애인이어서 가끔씩 실수를 한다고 했습니다. 대화가 이어졌고, 그 여자는 안 좋은 소식이 있어서 아들과 통화를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의사로부터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습니다. 몹시 상심한 그 여자는 자신이 그런 일을 겪도록 허락하신 하느님이 원망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선디는 이 여자에게 성서의 소식을 전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용기를 달라고 짧게 기도한 뒤 위로와 희망을 줄 만한 몇몇 성구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에게 이름이 있다는 점을 설명해 주면서 그 이름을 사용해서 구체적으로 기도해 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여자는 선디가 자신의 말을 잘 들어 주고 격려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면서 “내가 전화를 잘못 건 게 아니었네요” 하고 말했습니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선디는 「성서의 가르침」 책 오디오 자료를 보내 주었고 그 여자와 같은 지역에 사는 파이오니아 자매가 그를 방문하도록 마련했습니다. 선디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랑 많으시게도 우리가 온갖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많은 훈련을 베풀고 계시지요. 그 점에 대해 그분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전도지 덕분에 의문이 풀리다. 푸에르토리코에 사는 몇몇 자매들은 큰 종합 의료 센터에서 정기적으로 가두 증거를 합니다. 한번은 그 자매들 중 한 명이 어느 병원 건물로 빠르게 걸어가고 있는 두 남자를 보고는 증거하려고 말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바빠 보였기 때문에 자매는 「사람에게 불멸의 영이 있는가?」 전도지를 전했습니다. 평소에는 가두 증거를 할 때 그 전도지를 잘 전하지 않는데, 그날따라 가지고 있던 전도지가 그것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 두 남자는 다른 자매에게 와서는, 가족 중에 몹시 아픈 사람이 있어서 병문안을 가던 길에 그 전도지를 받았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람이 죽고 난 후에도 영이 계속 살아 있는지 이야기하던 중이었는데 그 전도지를 받게 되어 의문이 풀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전도지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여호와께 보내는 편지. 조슈아는 미국에 사는 일곱 살 된 학생입니다. 12월에 학교 선생님이 조슈아의 반 학생들에게 산타클로스에게 편지를 쓰라는 과제를 내 주었습니다. 조슈아가 산타클로스에게는 편지를 쓸 수 없다고 공손하게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그럼 다른 사람한테라도 써 보렴” 하고 말했습니다. 조슈아는 여호와께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쓴 편지 내용은 이러합니다. “낙원을 약속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아들에 대해서도요. 아들 이름은 예수이고 그분은 생명을 바치셨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즐겁게 살 수 있게 많은 것을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호와 하느님, 사랑해요.” 조슈아가 쓴 편지는 다른 학생들의 편지와 함께 지방 신문에 실렸습니다.

가족이 관심을 보이다. 콜롬비아에 사는 알레한드로라는 형제는 가족들에게 진리의 소식을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멀리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그는 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파수대」와 「깨어라!」 잡지도 보내 주었습니다. 친척 중 한 명인 파블로는 그 잡지를 읽고 성구를 찾아보고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매우 기뻐하면서 다른 식구들에게도 그 점을 이야기해 주었으며 그들 역시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깨닫고 더는 가톨릭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가족 중 15명은 자기들이 받은 잡지를 가지고 매일 밤 함께 모여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많은 점을 알고 싶었기 때문에 인근 지역들에서 증인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알게 된 내용을 이웃에게 전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동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마을에 왕국회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그곳으로 가서 형제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현재 한 정규 파이오니아 형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 그들을 방문해서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으며, 알레한드로의 가족과 11명의 관심자를 합하여 총 26명이 이 연구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차도 한 대 빌려서 공개 강연과 「파수대」 연구 집회에 그들 대부분이 참석합니다.

집을 정말 잘못 찾아간 것이었을까? 하루는 한 자매가 몸이 아파서 자기 대신 성서 연구를 사회해 달라고 다른 증인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자매가 연구를 사회하던 가족의 집은 에콰도르 시골 지역의 키추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형제들은 그 집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집에 들어가 혹시 성서 연구를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가족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형제들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연구를 다 마치고 나서야 형제들은 그들이 전에 연구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들은 가족이 함께 성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좋아서 원래 연구를 하던 사람들처럼 행동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형제들이 찾지 못했던 그 자매의 성서 연구생들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컵케이크 때문에 증거할 기회가 생기다. 캐나다에 사는 케일러브는 여섯 살입니다. 케일러브가 학교에 간 첫 날, 반 친구 중 한 명이 생일이었고 그래서 그 아이의 어머니인 내털리가 컵케이크를 가져와서 반 전체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케일러브는 공손한 태도로 사양했습니다. 그러자 내털리는 그에게 와서 음식 알레르기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케일러브는 “아니요”라고 대답하면서 “저는 여호와를 섬기거든요” 하고 이유를 말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에 내털리는 케일러브의 어머니에게 와서 “혹시 여호와의 증인이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케일러브의 어머니가 그렇다고 하자 내털리는 흥분하며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십 대 시절에 증인들과 연구를 했었는데 가족이 심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중단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성서 연구를 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고 내털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다. 페루에 사는 랄리는 날 때부터 청각 장애인이었습니다. 자기가 왜 청각 장애인으로 태어났냐고 묻자 그의 어머니는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랄리는 상심하게 되었고 하느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랄리는 청각 장애인인 한 젊은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에게는 다운 증후군이 있었습니다. 랄리는 걱정이 되고 속이 상해서 도움을 좀 받아 보려고 어머니에게 갔습니다. “왜 우리 아이가 이렇게 태어난 거죠?” 하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랄리를 한 사제에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사제는 이전에 어머니가 했던 대답처럼 “그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른 랄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느님은 왜 이렇게 잔인하신 거죠? 내가 청각 장애인이고 하느님이 이런 식으로 내게 벌을 주시는 건 참을 수 있어요. 그런데 왜 내 아들한테까지 벌을 주시는 거죠? 이제 막 태어난 아이가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다는 거예요?” 그 후로 랄리는 하느님에 대한 어떤 이야기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몇 해 후, 수화를 할 줄 아는 한 여호와의 증인 자매가 랄리의 집을 방문했고 성서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거절하면서 자기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매는 랄리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그 하느님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이 있으며, 그분은 랄리가 듣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되찾도록 기회를 주고 싶어 하신다는 점을 참을성 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랄리는 믿을 수 없어 하면서 한번 증명해 보라고 했습니다. 자매는 이사야 35:5을 펴서 “눈먼 사람들의 눈이 뜨이고, 귀먹은 사람들의 귀도 열릴 것이다”라는 성구를 보여 주었습니다. 깜짝 놀란 랄리는 성서 연구를 시작했고 잘 발전하여 침례를 받았습니다. 랄리의 아들은 수화를 배웠으며 어머니와 함께 모든 집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랄리는 성서의 약속들에 대한 인식을 계속 키워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정규 파이오니아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중동

나라 수 47

인구 4,194,127,075

전도인 수 664,650

성서 연구 수 629,729

그들이 대답할 없었던 두 가지 질문. 우리의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 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24세 된 한 청년이 증인들의 가르침은 잘못되었고 자기가 믿는 가톨릭 신앙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성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그는 여호와의 증인이 가르치는 것이 진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의 가족은 그가 성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가족 회의에 그를 불러 가톨릭교회에 다시 나오라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청년이 그럴 수 없다고 하자 그들은 마을에 살고 있는 모든 친족들을 불러 모아, 새로 갖게 된 신앙을 포기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친족들이 그를 구타했지만 청년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의 가족은 사제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사제는 교구 위원회로 그를 데려갔습니다. 교구 위원회 앞에 선 청년은 만일 사제가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교회로 돌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두 가지 질문은 ‘하느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성서에서 피를 먹는 것을 금하는데도 신도들이 피를 먹도록 교회에서 허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제는 그중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속에 있는 악귀를 쫓아내야” 한다면서 청년의 뺨을 때렸습니다. 모임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 후 그의 가족은 자신들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 놓고 청년에게 마리아 상 앞에서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했습니다. 청년은 또다시 구타를 당했지만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의 가족은 아주 매력적인 젊은 여자를 시켜서 교회로 다시 돌아오면 그와 결혼해 주겠다는 말을 하게 했습니다. 청년은 여자에게 자신이 사제에게 했던 두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다면 교회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는 청년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그 마을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7개월 뒤에야 그곳에서 도망할 수 있었고, 원래 있던 도시로 돌아가 형제들을 만났습니다. 한 달 후에 그는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3월에 열린 순회 대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구치소 직원이 자매 편을 들다. 한국에 사는 한 정규 파이오니아 자매는 그리스도인 중립 문제로 수감되어 있는 아들을 면회하러 갔습니다. 자매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옆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전도지를 건넸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이 사이비들이 어디 여기까지 와서 전도를 하는 거야” 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3, 4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의 주의가 온통 그들에게 쏠렸습니다. 바로 그때 구치소 직원 한 명이 자매를 두둔해 주면서 그 남자에게 이렇게 호통을 쳤습니다. “이 사람들 종교가 참종교이고 나머지는 다 사이비예요. 내가 여기서 수년 동안 겪어 봤지만, 이 사람들이야말로 배운 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고함을 쳤던 그 남자는 잠잠해졌습니다.

벽에 붙인 글자. 하린드라는 고향 마을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네팔에 있는 큰 도시에 와서 일을 했습니다. 도시에서 혼자 생활한 지 10년이 되었을 때 그는 성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글을 몰랐기 때문에 연구를 사회하는 형제는 「땅에서 영원히 사는 길」 팜플렛을 사용하여 성서 연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팜플렛이 네팔어로 나와 있지 않아서 영어판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하루는 하린드라의 아내가 그를 만나러 고향 마을에서 왔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영어로 된 팜플렛을 공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게다가 그는 술도 끊었고 더는 아내를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남편이 달라진 이유가 다 성서 연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내 역시 연구를 시작했고 고향 마을에서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린드라는 여호와에 대해 더 많은 점을 알고 싶었기 때문에 읽고 쓰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연구 사회자에게 여러 장의 종이에 네팔어 글자들을 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종이들을 자기가 사는 방 벽에 붙였는데 어찌나 많이 붙였던지 벽에 남는 공간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새로운 단어와 글자들을 읽는 연습을 해 나갔고 그렇게 해서 읽는 법을 서서히 익혔습니다. 나중에는 가족들을 자기가 있는 도시로 오게 했는데, 모두 함께 살면서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린드라는 약 2년 만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현재 그는 가족과 함께 집회에 참석하고 있으며, 신권 전도 학교에서 성서 낭독 과제도 수행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교육 덕분에 우리 가족은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20만 달러를 마다하다. 아제르바이잔에 사는 자르하눔이라는 여자는 영매술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15년 동안, 그는 초감각적 지각과 점치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이 여자가 저주를 풀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자르하눔은 유명해졌고 고위 관리들과 그 아내들이 그의 주요 고객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죽은 사람과의 교류를 시도하는 모임인 교령회를 주재해 달라고 한 번에 2000달러에서 4000달러(미화)를 지불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영매술을 행하는 능력이 있었음에도 그는 자신이 영적으로 피폐해 있다고 느꼈으며 풀리지 않는 여러 가지 의문들 때문에 괴로워했습니다. 결혼 생활은 파탄이 났고 그는 아무런 목적 없이 살았습니다. 하루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하느님께 자신의 문제들을 토로하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르하눔이 문을 열자 두 명의 자매가 서 있었고 그들은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매들은 말로만이 아니라 행실로도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자르하눔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많은 종교인들의 행실이 거룩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영매술을 행하는 것이 죄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르하눔은 성서 연구를 하기로 했습니다. 얼마 후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하여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분이 어떻게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지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매술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는데, 악귀들이 계속해서 그를 괴롭히고 때리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그는 여호와의 도움으로 악귀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영매술이나 거짓 종교와 관련 있는 많은 물건들을 없애 버렸습니다.

곧 자르하눔은 좋은 소식을 열심히 전하는 전도인이 되었고 2011년 5월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침례를 받고 나서 곧바로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신청했습니다. 요구 시간에 달하는 것은 그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침례받기 전부터 이미 매달 70시간 이상을 봉사에 바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르하눔이 침례받기 두 달 전에 한 정부 관리의 아내는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 준다면 20만 달러(미화)를 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그 여자는 병에 걸려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저주에 걸린 탓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르하눔은 그 제의를 거절했고 대신에 두 명의 증인 자매를 병원으로 보내 그 여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게 했습니다. 현재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자르하눔은 이전에 고객이었던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증거하면서 과거에 자신이 한 일은 하느님이 보시기에 잘못된 일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결과, 이전에 고객이었던 한 사람이 성서 연구를 하게 되었으며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이전에 자르하눔을 정부 관리의 아내에게 소개시켜 주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증거하다. 인도에서 두 명의 자매가 야외 봉사를 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5일간의 구류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중 한 자매는 이렇게 말합니다. “유치장에 들어가자마자 경찰관들은 우리가 왜 그곳에 오게 되었는지 묻더군요. 증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요. 우리는 봉사를 하던 중에 경찰서로 붙잡혀 갔기 때문에 잡지와 전도지를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면서 출판물을 아주 많이 전했지요.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격려했어요. 그리고 여호와께 기도도 드리고 가지고 있던 출판물도 읽었습니다.

나중에는 그 도시에 있는 다른 교도소로 가게 되었어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수감자들은 우리가 왜 들어오게 되었는지 묻기 시작했지요. 그 덕분에 우리가 전하던 소식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것도 밝힐 수 있었지요. 교도소 책임자였던 여자가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전도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들어왔으면서 안에서도 또 전도하고 있다니!’ 하고 말하더군요.” 현재 우리 자매들은 진리에 관심을 보인 수감자들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경찰관도 알아본 사랑. 두 자매가 베들레헴의 작은 상점들에서 증거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자 두 명이 갑자기 달려오더니 흥분한 어조로 혹시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냐고 스페인어로 물었습니다. 그 여자들은 멕시코에 사는 증인들이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단체 여행으로 이스라엘을 관광하던 중에 출판물을 들고 있는 자매들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네 사람은 얼싸안고 입맞춤을 했으며 함께 사진을 찍고 주소도 교환했습니다. 그런 뒤 멕시코 자매들은 함께 여행 온 사람들과 합류했고 현지 자매 두 명은 상점들로 봉사하러 갔습니다.

몇 시간 뒤 한 경찰관이 오더니 자매들에게 스페인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자매들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경찰관은 몇 시간 전에 네 사람이 만나는 것을 보고 서로 오랜만에 만난 친구이거나 친가족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자매들은 네 사람 모두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말하면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다른 나라 출신이거나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더라도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처럼 느낀다고 설명했습니다. 매우 감명을 받은 경찰관은 출판물을 받았고 이 종교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재방문할 마련이 이루어졌습니다.

“누군가는 있을 거야.” 유스케는 일본의 영어 집단에서 봉사하고 있는 젊은 파이오니아 형제입니다. 어느 날 그는 여러 나라 사람들을 태운 유람선이 다음 날 아침 부두에 정박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두 시간을 운전하여 나가사키항으로 갔습니다. 배에서 내린 많은 승객들은 빗속에서 혼자 서 있는 유스케를 보고 안내원인 줄 알고 다가왔습니다. 덕분에 그는 30분도 채 안 되어 여러 언어로 된 70부의 잡지와 50부의 팜플렛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출판물을 더 가지러 차로 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한 젊은 승객이 혼자 서 있었습니다. 유스케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그 젊은이는 영어로 “여호와의 증인이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유스케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이 젊은이를 데리고 커피숍으로 갔습니다.

그 젊은이의 이름은 제이슨이었고 나이는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그는 부모님이 증인이며 십 대 후반이 될 때까지는 자신도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으로 활동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쯤 전에 여호와의 증인들과 연합하기를 그만두었고, 아시아에 가면 증인이 없겠지 하는 생각에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유람하는 배에 올랐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배탈이 나는 바람에 타이와 베트남과 대만에서는 배에서 내릴 수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배에서 내린 곳이 일본이었고 처음으로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이슨은 ‘여호와로부터는 절대 도망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습니다.

커피숍에 앉아 있는 동안 유스케는 제이슨과 함께 「‘하느님의 사랑’」 책의 몇 항을 고려하면서 여호와께서 여전히 그를 사랑하신다는 점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그는 제이슨에게 여호와의 조직을 떠나지 말라고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아쉽게도 두 사람은 아주 짧은 시간밖에 함께하지 못했는데, 제이슨이 타고 온 배가 그날 저녁 한국의 인천으로 떠났기 때문입니다. 제이슨은 그곳에서 며칠간 관광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유스케는 제이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한국에서 열린 국제 대회 때 만났던 한 형제가 떠올랐습니다. 그 형제는 영어를 할 줄 알았고 인천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유스케는 그 형제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물론 제이슨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제이슨이 배에서 내리는데 “제이슨,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큰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섯 명의 증인이 환하게 웃으며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습니다. 제이슨은 모든 관광 계획을 취소하고 형제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믿음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수감 생활을 하는 자기 또래 젊은 형제들의 경험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린 기념식에도 참석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제이슨은 다시 활동적인 전도인이 되었고, 장로들에게 일주일에 네 번씩 연구하자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성서의 가르침」 책과 「‘하느님의 사랑’」 책을 마치고 침례받을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유스케가 그에게 말을 건 날로부터 107일 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침례받은 다음 달에는 보조 파이오니아로 봉사했습니다.

유스케는 그 춥고 비 오던 날 아침을 떠올리며, 함께 갈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나가사키까지 그 먼 길을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거기 가면 소식을 들을 사람이 누군가는 있을 거야’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유럽

나라 수 47

인구 736,505,919

전도인 수 1,589,052

성서 연구 수 843,405

매우 특별한 것을 발견한 사람들. 불가리아에 살던 애니는 몇 달간 일을 하려고 네덜란드에 갔습니다. 어느 날 몹시 낙담한 그는 길을 가다가 멈춰 서서, 자기가 다니던 교회 사람들을 보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매 두 명이 그 옆을 지나가다가 그에게 증거하려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것이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한 애니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집회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증인들이 나타내는 사랑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불가리아에 있을 때 다니던 교회의 분열된 모습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매우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애니가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의 연구를 사회하던 자매는 애니가 소피아에 있는 증인들과 만날 수 있게 해 주려고 네덜란드에서 불가리아로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그로 인해 애니는 더 깊은 감명을 받아 자신이 참종교를 발견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애니와 남편 아이보는 함께 연구를 시작했고 집회에도 참석했습니다. 연구는 잘 진행되었고 다른 사람들도 와서 연구 내용을 듣곤 했습니다. 그중에는 한 종교 단체의 목회자인 애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니와 아이보에게 온 것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증인들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애센은 성서에 대해 여러 가지 깊이 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서 연구를 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게 되었고 그와 그의 가족은 연구를 하기로 했습니다. 애센은 자신의 종교 단체에서 한동안 계속 모임을 주재하긴 했지만 「성서의 가르침」 책에서 배우고 있는 진리를 그 모임에서 가르쳤습니다. 얼마 후, 그 종교 단체의 집사인 덴초라는 사람이 성서 연구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그 단체에 속해 있던 세 가족도 성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 단체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 여호와의 증인과 연구를 하는 사람이 매우 많아졌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 모임을 중단하고 회중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덴초는 전도인이 되었고 덴초의 친구 몇 명도 그와 성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애니가 네덜란드에서 증인을 만나게 된 결과로 지금까지 약 30명이 성서 연구를 시작하고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생활에 관한 성구를 그냥 읽어 주었다. 체코에 사는 한 형제와 그의 아내는 몽골에서 온 한 젊은 부부와 왕국회관에서 성서 연구를 했습니다. 증인 부부는 몽골어를 배우려고 애썼지만 언어 장벽을 극복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젊은 몽골인 부부는 겸손하고 참을성 있는 태도를 나타내면서 성서 진리를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남편 없이 아내만 혼자 저녁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 여자는 남편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 서로 헤어지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몇 분 뒤 남편도 도착했는데 그는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누가 봐도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형제는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남편을 왕국회관 도서실로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몽골어를 잘 몰랐기 때문에 부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고 꼭 맞는 조언을 해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형제는 남편에게 그냥 성구를 읽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결혼 생활이나 의사소통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모든 성구를 읽어 주었습니다. 이 젊은 남자는 성구 하나하나에 깊은 감동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도서실에서 뛰어나가 아내에게 달려가서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왕국회관에서 떠날 때는 아내의 핸드백을 기어이 자기가 들겠다고 했습니다. 아내를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 날 만났을 때 이들은 마치 신혼부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이 부부는 매우 행복해하면서 자신들이 여호와께 얼마나 감사하는지 그리고 결혼 생활에 관한 성경의 지혜로운 조언에 대해 얼마나 고맙게 여기는지 이야기했습니다. 후에 이들은 두 자녀를 돌보기 위해 몽골로 돌아갔습니다. 이 가족이 사는 곳에는 회중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현재 침례받은 전도인이며 남편도 침례를 목표로 계속 잘 발전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건지 이해가 안 가요.” 우크라이나에 사는 파이오니아 자매인 올하는 음식 배달용 트럭을 운전하는 한 남자에게 증거했습니다. 자매는 “우리가 믿을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운전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내 아내도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떠나 버린 판에. 대체 뭐가 부족하다고 그런 건지. 나는 매일 등골이 빠지게 일했어요. 다 아내를 위해서였죠. 반지가 갖고 싶다고 해서 사 주고, 부츠가 필요하다고 해서 또 사 주고, 목걸이도 갖고 싶다고 해서 그것도 사 줬죠!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줬는데 도대체 왜 그런 건지 이해가 안 가요.”

자매는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느냐고 친절히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정까지 일해야 하는데 같이 보낼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새벽 4시면 또 일하러 나와야 되고 주말에도 일을 나간단 말입니다.”

올하는 “성공적인 가정생활—그 비결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특별 기사들이 실린 「깨어라!」 2009년 10월호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비결은 “올바른 우선순위”라고 알려 주는 기사에 주의를 이끌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내용을 함께 살펴보았고 남자는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돈만 있으면 가정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건 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제 돈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겠네요. 뭐가 잘못되었고 아내가 필요로 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일주일 뒤 올하는 그 운전사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는 잡지를 읽고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점에 대해 다시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고 서로 화해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올하는 그에게 「가정의 행복」 책을 전했습니다. 그다음 주에 올하는 그 남자가 몰던 배달용 트럭을 보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이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운전사에게 물어보니, 이전에 그 트럭을 운전했던 남자는 일을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남자는 올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올하 씨, 당신과 당신이 믿는 여호와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신 덕분에 나는 가족을 되찾게 되었어요. 다시 여호와의 증인을 만나게 되면 꼭 그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징표를 보여 주시기를 바랐다. 라트비아에 사는 한 젊은 남자는 약 15년 전에 증인이 전도하는 내용을 듣고 성서의 소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가끔씩 성서 연구를 하긴 했지만, “그저” 책 한 권에 불과한 성서가 하느님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어떤 초자연적인 방법이나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직접 자신을 드러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성서 연구를 중단했고 나중에는 증인들과 전혀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몇 해 뒤, 그는 점점 늘어 가는 문제들로 고심하다가 하느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전히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창밖을 보니 자매 두 명이 봉사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몇 주 뒤에 다시 기도를 드렸는데 창밖으로 그 자매들이 또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한 주 뒤에 기도를 했을 때에는 그 자매들이 봉사 중에 지나가는 모습을 세 번째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자신에게 징표를 보여 주시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달려 나가, 놀란 기색이 역력한 자매들에게 자기가 여러 해 전에 성서 연구를 중단했는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마침내 이 남자는 자기가 겪던 문제들을 극복할 힘을 얻었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바로 성서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2010년에 열린 지역 대회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작은 냄비에도 귀가 있다. 덴마크의 이 속담은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은 내용을 귀담아 듣는다는 뜻입니다. 약 16년 전에 덴마크의 한 자매가 아들 셋을 둔 여자와 성서 연구를 했습니다. 여자가 그 자매 부부의 집에 연구하러 올 때면 아들 셋도 자주 함께 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막내아들인 로니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연구를 중단했습니다. 로니는 커 가면서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22세가 되었을 때인 2008년에 그는 어머니의 집에서 우리 잡지를 보고는, 갑자기 어릴 때 연구를 사회해 주었던 증인 부부를 찾아가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15분 뒤 그 부부의 집 앞에 선 그는 초인종을 눌렀고 형제가 문을 열어 주자 집 안으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형제가 그를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들은 서로 다시 만나게 되어 정말 기뻐했습니다. 로니는 「성서의 가르침」 책을 받았고 연구를 하기로 했습니다. 연구는 잘 진행되었지만, 로니는 컴퓨터 게임에 등장하는 환상의 세계에 푹 빠져 있었고 그러한 게임 중 일부는 신비술과 관련이 있거나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연구 중에 자주 게임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증인 부부가 게임 내용을 바탕으로 영적인 문제를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주자, 로니는 그 말을 받아들였고 “제가 또 엉뚱한 소리를 하면 그만하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 그는 잘 발전해 나갔습니다. 마치 ‘귀가 달린 작은 냄비’와도 같았던 어린 시절에, 성서 연구를 하는 어머니 곁에서 처음으로 진리를 들었던 이 젊은이는 현재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입니다.

성경을 통해 위로를 얻다. 영국의 어느 공동묘지에서 한 형제는 어떤 남자가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형제가 옆에 앉아도 되겠냐고 묻자 그는 그렇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알프라는 이름의 그 남자는 자기 사정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 딸이 죽었어요. 겨우 마흔두 살밖에 안 되었는데 말입니다. 이제 집사람과 딸이 모두 여기 묻혀 있네요.” 알프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기관에 상담을 요청했지만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재산도 많고 이런저런 사업을 많이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가족이 없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가진 걸 다 바쳐서라도 가족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알프는 자신이 하느님을 믿고 성서를 존중하는 사람이며 교회에도 다니지만 만족스러운 답을 전혀 얻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위로를 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교회에서는 촛불을 피워 보거나 쪽지를 써서 나무에 걸어 보라고 말했고, 그래서 그는 화를 내면서 “그 조그마한 쪽지에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다 씁니까”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는 성경을 사용하여 알프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현재 그는 성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오세아니아

나라 수 29

인구 38,162,658

전도인 수 94,309

성서 연구 수 58,465

그들은 남편도 초대했다. 뉴질랜드에 사는 한 형제는 성서 연구를 하러 가는 아내를 태워다 주려고 연구생의 집까지 함께 갔습니다. 아내의 연구생은 자녀가 있는 젊은 여자였는데 그 집에 도착해 보니 여자의 남편도 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부는 남편도 연구에 초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집에 있을 때 연구를 또 하기로 했습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일요일 집회에 참석하여 따뜻한 환영을 받고 영적 양식을 즐겼습니다. 그다음 집회 때는 「파수대」 연구 중에 남편이 해설에 참여했습니다. 연구 기사는 가족 숭배를 하도록 격려하는 내용이었는데, 남편은 어떻게 하면 아내와 네 살 난 아들과 함께 연구를 할 수 있을지 질문했습니다. 그는 또한 집회에서 배운 다른 내용들도 적용하려는 열의를 보였습니다. 이 관심자 부부는 계속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회에도 계속 참석하면서 영적으로 잘 발전하고 있습니다. 형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에게 함께 연구하자고 초대하길 정말 잘했습니다!”

머나먼 섬에서 열린 기념식. 타히티의 18개 회중 가운데 하나인 바이에테 회중 구역에는 주민이 362명밖에 안 되는 레이애우 섬이 있습니다. 레이애우는 타히티에서 동쪽으로 약 135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섬입니다. 멀리 떨어진 이 섬에서는 기념식이 한 번도 열린 적이 없고 30년 동안 증인들이 방문한 적도 없었습니다. 바이에테 회중의 봉사 감독자인 머노아는 작은 그룹을 조직하여 그 섬에 가고자 했는데 그곳에서 기념식 주간 동안 봉사를 하고 기념식도 거행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그의 아내가 레이애우까지 가려면 비행기 값이 약 6만 5000프랑(미화 740달러)이었고 그들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머노아가 직장에서 보너스를 받게 되었는데 그 금액은 6만 5000프랑이었습니다! 즉시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 일을 축복하시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일곱 명의 전도인이 레이애우로 갔고 47명이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현재 타히티의 전도인들은 레이애우에 있는 관심자들과 전화로 성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아침 먹을 시간도 없다. 바누아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한 회중은 앰브림이라는 멀리 떨어진 섬에 있는 집단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그 집단에는 전도인이 열한 명이었습니다. 회중의 장로들은 경험 많은 전도인들에게 앰브림으로 가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면서, 기념식이 있기 전 며칠 동안 그곳에 머무르며 그 집단과 함께 봉사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퇴직한 교사이자 경험 많은 정규 파이오니아인 마리넷이 그러한 초대에 응했습니다. 이 자매와 몇몇 사람들은 그곳에 가서 새로운 성서 연구를 시작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곳에서 야외 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묵고 있던 곳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마리넷은 그때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침에 씻을 시간도 없고 식사할 겨를도 없었어요. 사람들이 일찍부터 와서 성서 연구를 하려고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하루 종일 그곳에 머무르면서 봉사해야 했지요! 그 한 주 동안 31건의 성서 연구를 사회했습니다.” 이 전도인들은 앰브림에 일주일간 머무르면서 부지런히 좋은 소식을 가르쳤으며 158명이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떠날 때가 되자 그들은 정말 슬펐습니다. “성서 진리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그들을 두고 떠나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하고 마리넷은 말했습니다. 지부 사무실에서는 이 지역의 관심자들을 돌보기 위해 임시 특별 파이오니아들을 보낼 마련을 했습니다.

교장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다. 솔로몬 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남태평양 복음 교회의 찬송가를 부르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그러한 노래를 부르는 것은 그 학교 학생인 어린 두 자매의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찬송가를 부르는 일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교장 선생님에게 정중히 요청했습니다. 교장은 학생들이 예의를 나타내어 자신을 찾아와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면서, 이 자매들과 다른 증인 학생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교장은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서 그리고 교육에 대해서 자신에게 이야기해 줄 회중 사람을 한 명 초대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선교인이 교장을 방문했으며 두 사람은 우리의 신앙과 청소년이 직면하는 문제들에 관해 약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교장은 자신이 「깨어라!」를 즐겨 읽는다고 하면서 교무실에도 몇 부 놓아둔다고 말했습니다. 선교인은 「청소년은 묻는다—질문과 효과있는 대답」 책 제2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교장은 교사들에게 줄 16권과 학생들에게 줄 367권을 더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리하여 400권이 학교에 전달되어 배부되었습니다.

두 어린 자매가 용기를 내어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서 이야기한 결과 훌륭한 증거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자신들이 받은 책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부모가 최근에 별거한 한 소녀는 그 책이야말로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처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두 자매는 계속해서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고 있으며 교장은 그들을 통해 정기적으로 잡지를 받아 보고 있습니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충절을 지키다. 솔로몬 제도의 다른 곳에서 한 선교인 자매가 리사 *라는 여자와 성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리사는 쌍둥이 남자 아이들과 어린 딸 둘을 데리고 두 시간 이상을 걸어 왕국회관에 와야 했지만 잘 발전했습니다. 그는 남편의 심한 박해도 인내해야 했습니다. 남편은 그를 신체적으로 학대했으며 집회 때 입는 옷과 성서와 신권 서적들을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자와 간음을 범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리사는 침례받은 증인이 되었고 계속 확고하게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지난해에 리사의 남편은 자신과 불륜 관계를 맺고 있던 여자와 헤어졌으며 성서 연구를 요청했습니다. 아내가 그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자신을 어떻게 대해 주는지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입니다. 당연히 리사는 남편의 변화를 보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그리고 리사에게 좋은 일이 또 있었는데, 집 근처에 격지 집단이 형성되어 이제는 걸어서 집회에 가는 데 한 시간이 채 안 걸리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는 남편의 지원 덕분에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각주]

^ 91항 가명임.

[66면 삽입]

“하느님은 왜 이렇게 잔인하신 거죠? ··· 왜 내 아들한테까지 벌을 주시는 거죠? 이제 막 태어난 아이가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다는 거예요?”

[68면 삽입]

교구 위원회 앞에 선 청년은 만일 사제가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교회로 돌아오겠다고 말했습니다

[72면 삽입]

“전도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들어왔으면서 안에서도 또 전도하고 있다니!”

[84면 도해와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타히티 → → → 1350킬로미터 → → → 레이애우

[56면 삽화]

위: 콩고 인민 공화국에서 성서 연구를 사회하는 모습 (59면 참조)

[61면 삽화]

에드바르(오른쪽)와 대니얼, 시장에서

[64면 삽화]

나리뇨 주 사마니에고, 콜롬비아

[67면 삽화]

수화 출판물은 현재 59개 언어로 생산됩니다

상파울루, 브라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