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프리타운의 공용 거주지에서 엄마와 살았는데 가난에 찌든 여러 가족들이 그곳에 살았지요. 낯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두렵고 수치스러웠기 때문에 18살이 되기까지 거주지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18살 때 여호와의 증인 선교인인 폴린 랜디스가 우리 집을 찾아와 성서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습니다. 읽고 쓰는 법을 모른다고 하자 폴린은 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연구를 하기로 했지요.
성서를 배우자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루는 폴린에게 한 블록쯤 떨어진 집에서 열리는 회중 집회에 참석해도 되겠냐고 물어보았어요. 나는 “나무토막을 이용해서 걸어갈 수 있어요”라고 말했지요.
폴린이 날 데리러 왔을 때 어머니와 이웃 사람들은 불안한 눈으로 나를 지켜보았습니다. 나는 몸을 앞으로 뻗으면서 두 손에 쥔 나무토막으로 땅을 디뎠지요. 그런 다음, 그네를 타듯 몸을 움직여 나무토막 앞으로 나아갔어요. 내가 마당을 지나가고 있을 때 이웃 사람들이 폴린에게 이렇게 소리치더군요. “억지로 그러지 말아요. 전에도 걸어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요.”
폴린은 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제이, 집회에 가고 싶니?” 하고 물었어요.
나는 “그럼요! 제가 결정한 일이에요” 하고 대답했지요.
이웃 사람들은 내가 입구에 다다를 때까지 숨죽이고 지켜보았습니다. 드디어 내가 문 밖으로 나서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요.
집회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후에는 왕국회관에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하려면 길 끝까지 “걸어간” 뒤 택시를 타야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형제들이 나를 들고 가파른 언덕 위로 올라가야 했지요. 도착할 때면 흔히 몸이 땀에 젖고 진흙투성이였기 때문에 회관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어요. 나중에 스위스에 사는 한 자매가 친절하게도 휠체어를 보내 주었습니다. 덕분에 좀 더 품위 있게 회관에 갈 수 있었지요.
장애가 있는 다른 증인들의 경험담을 읽으면서 여호와를 더욱 열심히 섬겨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1988년에 정규 파이오니아를 시작했지요. 내 목표는 가족 중에서 그리고 내가 봉사하는 구역에서 누군가가 여호와의 종이 되도록 돕는 것이었는데, 그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그분은 내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나는 조카 두 명과 가두 증거에서 만난 한 여자가 진리를 알도록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팔도 제대로 쓸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휠체어를 밀어 주어야만 다닐 수 있지요. 게다가 만성 통증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여호와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고통을 이기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일에서 얻는 즐거움 때문에 고통을 잊고 위로를 받게 되지요. 여호와께서 내게 힘 주시는 분이니까요. 현재 나는 목적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