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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히 여기십시오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히 여기십시오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히 여기십시오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존중히 여기고, 연합된 형제들 전체를 사랑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공경하십시오.”—베드로 첫째 2:17.

1, 2. 오늘날 사람들은 권위를 어떻게 여깁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권한이 아이들에게 있어요. 도무지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없습니다.” 한 어머니의 한탄 섞인 말입니다. 또 어떤 자동차에는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라”는 문구가 적힌 범퍼 스티커가 붙어 있기도 합니다. 당신도 잘 아는 바와 같이,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세태의 일면을 보여 주는 일들 중 단지 두 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부모와 교사와 고용주와 정부 관리들에 대한 전반적인 존경심의 부족은 세계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2 어떤 사람들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면서 ‘솔직히, 권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존경할 만한 인물이 못 돼’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때로는 그런 말을 부인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패한 정부 관리들, 탐욕스러운 고용주들, 자격 없는 교사들, 자기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들에 대한 보도에 끊임없이 접합니다. 다행스럽게도, 회중 내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보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습니다.—마태 24:45-47.

3, 4. 그리스도인들이 권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나타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는 세속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권고하였습니다.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하십시오. 하느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권위는 없기 때문입니다. 현존하는 권위는 하느님에 의하여 그들의 상대적 지위에 놓여 있습니다.” (로마 13:1, 2, 5; 베드로 첫째 2:13-15) 바울은 또한 가정 내에서 권위에 순종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주 안에서 어울리는 일입니다. 자녀 여러분, 모든 일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 안에서 큰 기쁨이 되는 일입니다.” (골로새 3:18, 20) 회중 장로들도 우리의 존중을 받아 마땅한데, 그 이유는 ‘성령이 그들을 감독자들로 임명하여, 하느님의 회중을 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도 20:28) 우리는 여호와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히 여깁니다. 따라서 당연히, 여호와의 권위를 존중히 여기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생활에서 첫째 자리에 오게 됩니다.—사도 5:29.

4 여호와께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신 분이라는 점을 기억하면서, 권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존경한 사람들의 예와 존경하지 않은 사람들의 예를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존경심 없는 태도를 나타내면 승인을 받지 못한다

5. 미갈은 어떻게 다윗에게 존경심 없는 태도를 나타냈으며,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5 다윗 왕에 관한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하느님께서 주신 권위를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여호와께서 어떻게 보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에 가지고 왔을 때, 그의 아내 미갈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면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그를 업신여겼”습니다. 미갈은 다윗을 가장으로서만 아니라 그 나라의 왕으로도 인정했어야 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갈은 비꼬는 말로 자신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왕께서, 무지한 사람들 중에 하나가 자기 몸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 종들의 여종들의 눈에 몸을 드러내셨으니, 오늘 참으로 스스로를 영광스럽게도 하시더군요!” 그 결과 미갈은 자녀를 하나도 낳지 못하게 되었습니다.—사무엘 둘째 6:14-23.

6.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기름부으신 자들에 대한 고라의 존경심 없는 태도를 어떻게 여기셨습니까?

6 하느님께서 임명하신 신권적인 인도 마련을 존중히 여기지 않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예로 고라가 있습니다. 고핫 자손으로서, 고라는 장막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참으로 큰 특권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도자로 기름부으신 모세와 아론에게서 결점을 찾았습니다. 고라는 이스라엘의 다른 수장들과 합세하여, 뻔뻔스럽게도 모세와 아론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총회가 다 거룩하고,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오]. 그런데 어째서 당신들은 여호와의 회중 위에 자신을 높이는 거요?” 여호와께서는 고라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어떻게 여기셨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행동을 여호와 자신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셨습니다. 고라와 250명의 수장은 그들의 편에 섰던 모든 사람들이 땅속으로 삼켜지는 것을 목격한 후에,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불로 멸망되었습니다.—민수 16:1-3, 28-35.

7. “탁월한 사도들”에게는 실제로 바울의 권위를 비평할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7 1세기의 그리스도인 회중에는 신권 권위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회중의 “탁월한 사도들”은 바울에 대해 존경심 없는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연설 능력을 비평하면서, “[그와] 직접 함께 있어 보면 약하고, 그의 연설은 멸시할 만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고린도 둘째 10:10; 11:5) 바울이 뛰어난 연사였든 그렇지 않았든, 그는 사도로서 존경받아 마땅하였습니다. 그러면 바울의 연설이 정말 멸시할 만하였습니까?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의 공개 연설은 그가 얼마나 설득력 있는 연사였는지를 잘 증명해 줍니다. 사실, 바울은 “유대인들의 모든 ·⁠·⁠· 논쟁에 대하여 정통한” 사람이었던 헤롯 아그리파 2세와 아주 간단한 토론만 하고서도 그 왕이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짧은 시간에 나를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오”! (사도 13:15-43; 17:22-34; 26:1-28) 그런데도 고린도의 탁월한 사도들은 바울의 연설이 멸시할 만하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의 태도를 어떻게 여기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에베소 회중의 감독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가운데서, “자칭 사도라고 하지만 사도가 아닌 자들”에게 미혹당하지 않은 사람들을 칭찬하셨습니다.—계시 2:2.

불완전하지만 존경하라

8. 다윗은 여호와께서 사울에게 주신 권위를 존중히 여긴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냈습니까?

8 성서에는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권위를 오용하거나 남용할 경우에도 그들을 존중히 여긴 사람들의 모범이 많이 나옵니다. 다윗도 그러한 훌륭한 모범 중 하나입니다. 다윗이 섬겼던 사울 왕은 다윗이 이룬 업적에 대해 질투하게 되었고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 첫째 18:8-12; 19:9-11; 23:26) 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들이 있었는데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손을 뻗어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관점에서, 나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오!” (사무엘 첫째 24:3-6; 26:7-13) 다윗은 사울이 그릇되게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울을 심판하는 일을 여호와께 맡겼습니다. (사무엘 첫째 24:12, 15; 26:22-24) 다윗은 사울에 대해 말할 때나 사울에게 말할 때 모욕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9. (ㄱ) 다윗은 사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어떻게 느꼈습니까? (ㄴ) 다윗이 사울에 대해 진정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9 다윗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괴로움을 느끼지 않았습니까? 다윗은 “포학한 자들이 내 영혼을 찾고 있”다고 말하면서,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시 54:3) 다윗은 여호와께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내 적들에게서 나를 구출해 주[십시오], 오 나의 하느님, ·⁠·⁠· 강한 자들이 나를 공격하는데, 내게는 아무런 거역 행위도, 내게는 아무런 죄도 없습니다, 오 여호와여. 잘못이 없는데도 그들이 달려와서 준비합니다. 내가 부르짖을 때에 일어나서 보아 주십시오.” (시 59:1-4) 당신도 그렇게 느낀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가 계속 당신을 힘들게 만든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다윗은 사울에게 존경을 나타내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사울이 죽자 다윗은 크게 기뻐한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비가를 지었습니다. “사울요나단, 살아 있는 동안에도 사랑스러운 이들이요 즐거움을 주는 이들이더니, ·⁠·⁠·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힘이 세었네. 이스라엘의 딸들아, 사울을 위하여 울어라.” (사무엘 둘째 1:23, 24) 사울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그렇게 한 것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에 대해 진정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참으로 훌륭한 모범입니다!

10. 바울은 하느님께서 주신 통치체의 권위를 존중히 여기는 면에서 어떤 훌륭한 모범을 세웠으며,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10 그리스도인 시대에도 하느님께서 주신 권위를 존중히 여긴 뛰어난 모범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을 고려해 봅시다. 바울은 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통치체가 내린 결정을 존중하였습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있는 동안, 통치체는 바울에게 그가 모세의 율법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자신을 의식상으로 깨끗이 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추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형제들은 이전에 나의 생명이 위험해지자 나에게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지. 이제는 내가 모세의 율법을 존중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보여 주기를 원하는군. 나는 이미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들에게 율법을 지키는 일로부터 자유롭게 되라고 썼지. 내가 성전에 간다면, 사람들이 나의 행동을 오해하여 내가 할례받은 사람들과 타협한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바울은 그런 식으로 추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 원칙을 타협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바울은 1세기 통치체의 권고를 존중하였고 그에 따랐습니다. 그 일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바울은 유대인 폭도로부터 구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어서 2년 동안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하느님의 뜻대로 되었습니다. 바울은 카이사레아에서 고위 관리들 앞에서 증거하였고, 그 후 정부 비용으로 로마로 이송되어 직접 카이사르 앞에서 증거하게 되었습니다.—사도 9:26-30; 21:20-26; 23:11; 24:27; 갈라디아 2:12; 4:9, 10.

당신은 존경을 나타내는가?

11. 우리는 세속 권위에 대해 어떻게 존경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11 당신은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합당한 존경을 나타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주[고], ·⁠·⁠· 존중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존중을 나타내”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하는 것에는 단지 세금을 내는 것만 아니라 우리의 행실과 말로써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포함됩니다. (로마 13:1-7) 하지만 정부 관리들이 가혹하게 행할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멕시코, 치아파스 주의 한 지역에서 당국자들은 여호와의 증인 57가구의 소유인 농지를 압류하였습니다. 그 그리스도인들이 특정한 종교 축제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린 모임들에서, 깨끗하고 단정하게 차려 입은 증인들은 항상 품위 있고 존경심 있는 태도로 말하였습니다. 1년 남짓 후에 증인들에게 유리한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증인들은, 그들이 나타낸 태도로 인해 일부 관찰자들 역시 여호와의 증인이 되고 싶어 할 정도로 사람들의 존경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당신은 가정 내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권위에 대해 어떻게 존경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고난을 견디신 예수의 모범에 대해 설명한 후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아내 여러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리하면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말이 아니라 아내의 행실을 통하여 얻은 바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깊은 존경심과 순결한 행실의 목격 증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첫째 3:1, 2; 에베소 5:22-24) 여기에서 베드로는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복종하는 것이—일부 남편들이 그러한 존경을 받을 만한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아내의 존경심 있는 태도는 믿지 않는 남편의 마음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13. 아내들은 어떻게 남편을 존중히 여길 수 있습니까?

13 이 성구의 문맥을 살펴보면, 베드로는 믿음의 뛰어난 모범인 아브라함을 남편으로 둔 사라의 예에 우리의 주의를 이끕니다. (로마 4:16, 17; 갈라디아 3:6-9; 베드로 첫째 3:6) 믿는 남편을 둔 아내들이, 믿지 않는 배우자를 둔 아내들이 남편을 존중히 여기는 것보다 남편을 덜 존중히 여겨야 하겠습니까? 어떤 문제에 대해 남편과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해 주신,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권고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권위 있는 어떤 사람이 당신을 일 마일의 봉사에 징발하거든, 그와 함께 이 마일을 가십시오.” (마태 5:41) 당신은 남편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 줌으로써 남편을 존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보인다면, 그 문제에 대한 당신의 감정을 남편에게 알리도록 하십시오. 당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남편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당신의 생각을 남편에게 알릴 때, 존경심 있는 태도로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성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말을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로운 것이 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골로새 4:6.

14. 부모를 공경 즉 존중히 여기는 것에는 무엇이 포함됩니까?

14 자녀 여러분, 여러분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하느님의 말씀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자녀들이여, 주와의 결합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의로운 일입니다.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말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입니다.” (에베소 6:1-3)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여러분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간주되고 있는 것에 유의하십시오. “공경하다” 혹은 “존중히 여기다”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단어는 “높이 평가하다” 혹은 “가치를 평가하다”라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따라서 순종하는 것에는 여러분에게 합리적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부모의 규칙들을 마지못해 따르는 것 이상이 요구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부모를 높이 평가하고 부모의 인도의 가치를 인식할 것을 요구하십니다.—잠언 15:5.

15. 자녀들은 부모가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될 때에도, 어떻게 존경심을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까?

15 부모가 하는 행동 때문에 부모에 대한 여러분의 존경심이 약해지는 경우에는 어떠합니까? 부모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부모는 여러분을 ‘낳아 주’었고 여러분을 부양해 오지 않았습니까? (잠언 23:22) 부모의 동기는 여러분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까? (히브리 12:7-11) 존경심 있는 태도로 부모에게 말하면서, 여러분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온화한 영으로 설명하십시오. 부모가 여러분의 마음에 들지 않는 방법으로 대답한다 하더라도, 부모에게 존경심 없는 태도로 말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잠언 24:29) 사울 왕이 하느님의 교훈을 따르는 일에서 빗나갔을 때에도 다윗이 어떻게 사울에 대한 존경심을 계속 유지하였는지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자신의 감정을 제어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여호와께 요청하십시오.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아라. 하느님은 우리를 위한 도피처이시다.”—시 62:8; 애가 3:25-27.

인도하는 사람들을 존중히 여기라

16. 거짓 선생들과 천사들의 예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6 회중 장로들이 성령에 의해 임명되기는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불완전하며 실수를 저지릅니다. (시 130:3; 전도 7:20; 사도 20:28; 야고보 3:2) 따라서 일부 회중 성원들은 장로들에 대해 불만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회중 일이 올바로 처리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적어도 그렇게 보일 경우,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1세기의 거짓 선생들과 천사들 사이의 대조점들에 유의해 보십시오. “그들[거짓 선생들]은 대담하고 자기 고집대로 하여 영광스러운 이들에 대하여 떨지 않고 도리어 모욕적으로 말합니다. 반면에, 천사들은 힘과 능력이 더 크면서도 여호와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모욕적인 말로 그들을 고발하지 않습니다.” (베드로 둘째 2:10-13) 거짓 선생들은 “영광스러운 이들”—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권위를 받은 장로들—에 대하여 모욕적으로 말하였지만, 천사들은 거짓 선생들이 형제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고 있었는데도 그들에 대해 모욕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천사들은 인간들보다 더 탁월한 위치에 있고 공의에 대해서도 더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회중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사들은 “여호와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심판을 하느님께 맡겼습니다.—히브리 2:6, 7; 유다 9.

17. 장로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문제들에 접하게 될 경우, 우리의 믿음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됩니까?

17 어떤 문제가 순리대로 처리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인 회중의 살아 있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은 자신의 세계적인 회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분이 상황을 다루시는 방법을 존중하고 문제들을 처리하는 그분의 능력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이지, ‘우리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 4:12; 고린도 첫째 11:3; 골로새 1:18) 그보다는 기도로 당신의 염려를 여호와 앞에 가지고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18, 19. 장로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될 경우,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18 인간 불완전성 때문에, 어려움이나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장로들이 잘못을 저질러서 일부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경우도 때때로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 우리가 조급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문제를 더 악화시키기만 할지 모릅니다. 영적 분별력을 가진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상황을 바로잡아 주시고 징계가 필요하다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그분 자신의 때와 방식에 따라 징계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릴 것입니다.—디모데 둘째 3:16; 히브리 12:7-11.

19 당신이 어떤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회중 내의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존경심 있는 태도로 장로들에게 가서 도움을 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판적인 태도를 나타내지 말고, 당신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설명하십시오. 항상 장로들에게 “동료감”을 가지고, 그들에게 마음을 털어 놓으면서 존경심을 계속 유지하십시오. (베드로 첫째 3:8) 비꼬는 투로 말하지 말고, 그들이 장성한 그리스도인임을 신뢰하십시오. 장로들이 친절하게 성경적인 격려를 베푼다면 감사하게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다른 시정 조처가 필요한 것처럼 보일 경우, 장로들이 선하고 옳은 일을 하도록 여호와께서 인도하실 것임을 확신하도록 하십시오.—갈라디아 6:10; 데살로니가 둘째 3:13.

20.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무엇을 고려할 것입니까?

20 하지만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히 여기고 존경하는 것과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권위 있는 위치에 있게 된 사람들도 자신들의 돌봄을 받게 된 사람들을 존중히 여겨야 하지 않습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 그 점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우리에게는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히 여겨야 할 무슨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까?

● 여호와와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주신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여기십니까?

● 권위를 받은 사람들을 존중히 여긴 사람으로 어떤 훌륭한 모범들이 있습니까?

● 우리에 대해 권위를 가진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보일 경우,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연구 질문]

[12면 삽화]

사라는 아브라함의 권위를 깊이 존중하였고, 행복을 누렸다

[13면 삽화]

미갈은 다윗이 가장이자 왕으로서 가진 권위를 존중히 여기지 않았다

[15면 삽화]

“손을 뻗어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치는 것은 ·⁠·⁠· 나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오!”

[16면 삽화]

기도로 당신의 염려를 여호와 앞에 가지고 가는 것이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