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희망은 확실하다!
부활 희망은 확실하다!
“나는 하느님께 향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사도 24:15.
1. 우리가 부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부활 희망을 가질 합당한 이유들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죽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다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는 그분의 말씀이 있습니다. 죽어 잠들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목적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이사야 55:11; 누가 18:27) 사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사람을 일으킬 능력이 있음을 이미 보여 주셨습니다.
2. 부활 희망은 어떻게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까?
2 하느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죽은 사람들을 일으킬 마련을 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은 심한 압력을 받는 시기에도 우리에게 견딜힘을 줄 수 있습니다. 부활 희망의 확실성은 또한 우리가 하늘의 아버지께 죽기까지 충절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생명을 다시 얻게 된 일들에 관한 성서 기록을 고려해 본다면, 아마 우리의 부활 희망이 더 강해질 것입니다. 그러한 기적들은 모두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의 능력을 통해 일어났던 것입니다.
자기의 죽은 사람을 부활로 받은 사람들
3. 사르밧에 살던 한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야는 무슨 일을 할 능력을 받았습니까?
3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이전 시대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나타낸 믿음에 관한 감동적인 내용을 검토하면서,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사람을 부활로 받았”다고 썼습니다. (히브리 11:35; 12:1) 그러한 여자들 가운데는 페니키아의 도시 사르밧에 살던 한 가난한 과부가 있습니다. 그 과부는 하느님의 예언자 엘리야를 후대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과 아들의 생명을 빼앗길 뻔하였던 기근의 때에 기적으로 가루와 기름을 계속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후에 아이가 죽자, 엘리야는 그 아이를 침상에 누이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 위에 세 번 자기 몸을 펴고 이렇게 간청하였습니다. “오 나의 하느님 여호와여, 부디, 이 아이의 영혼이 그 안으로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실제로 그 아이의 영혼 즉 생명이 그 안으로 돌아오게 해 주셨습니다. (열왕 첫째 17:8-24) 그 과부가 기록상 첫 번째 부활—자신의 소중한 아들의 부활—로 그의 믿음에 대해 상을 받았을 때 기쁨이 얼마나 컸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4. 엘리사는 수넴에서 무슨 기적을 행하였습니까?
4 자기의 죽은 사람을 부활로 받은 또 다른 여자는 수넴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연로했던 그 여자는 예언자 엘리사와 그의 수종에게 친절을 나타냈습니다. 그 여자는 그에 대한 상으로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 후에 그 여자가 예언자를 부르러 왔고, 예언자는 그 여자의 집에서 소년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엘리사가 기도를 하고 몇 가지 조처를 취하자, “아이의 몸이 점점 따뜻해졌”습니다. “소년은 일곱 번이나 재채기를 한 다음에 눈을 떴”습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이 부활은 그 어머니는 물론 그의 아들에게도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열왕 둘째 4:8-37; 8:1-6) 하지만 그들이 “더 나은 부활”—결코 다시 죽지 않을 전망이 그들 앞에 있는 부활—로 땅에서 일으킴을 받아 생명을 누리게 될 때는 얼마나 더 행복하겠습니까! 그것은 부활의 하느님이신, 사랑이 많은 여호와께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히브리 11:35.
5. 엘리사는 심지어 죽은 후에도 어떻게 기적과 관련을 갖게 되었습니까?
5 심지어 엘리사가 죽어서 장사된 후에도 하느님께서는 성령으로 그의 뼈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하셨습니다.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어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 사람을 장사지내다가, 보라, 그들이 [모압 사람들의] 약탈대를 보고서, 곧바로 그 사람을 엘리사의 매장지에 던져 넣고 떠나갔다. 그 [죽은] 사람은 엘리사의 뼈에 닿자, 즉시 살아나서 자기 발로 섰다.” (열왕 둘째 13:20, 21) 그 사람은 얼마나 놀랐겠으며 또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여호와 하느님의 결코 실패하지 않는 목적과 일치하게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으킴을 받아 생명을 누리게 될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의 아들이 일으키신 죽은 사람들
6. 예수께서는 나인이라는 도시 근처에서 어떤 기적을 행하셨으며, 이 일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6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가지고 부활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만한 합당한 이유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나인이라는 도시 근처에서 있었던 일은 그러한 기적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장사를 지내기 위해 한 젊은이의 시신을 도시 밖으로 운구하면서 애도하는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그 젊은이는 과부에게 하나뿐인 자녀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그만 우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운구대를 만지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 내가 그대에게 말하는데, 일어나시오!” 그러자 그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였습니다. (누가 7:11-15) 이 기적은 분명히 부활 희망이 확실하다는 점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강화시켜 줍니다.
7. 야이로의 딸과 관련하여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7 또한 가버나움 회당의 주임 관리였던 야이로와 관련하여 있었던 일을 고려해 봅시다. 야이로는 열두 살 된 그의 사랑하는 딸을 도우러 와 달라고 예수께 부탁하였습니다. 딸이 거의 죽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녀가 죽었다는 전갈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비탄에 잠긴 야이로에게 믿음을 나타낼 것을 강력히 권하시면서, 그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셨는데, 그의 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자 비웃었습니다. 그 소녀는 실제로 죽었지만, 예수께서는 깊이 잠든 사람을 깨울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일으킴을 받아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실 참이었습니다. 그분은 소녀의 손을 잡고 “소녀야, 일어나거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녀는 즉시 일어났으며, “그의 부모는” 경이감으로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마가 5:35-43; 누가 8:49-56) 사랑하는 죽은 사람들이 지상 낙원에서 일으킴을 받아 생명을 누리게 될 때에도 그 가족들은 틀림없이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될 것입니다.
8.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에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요한 11:1-45) 이 기록은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신세계에서 일으킴을 받아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우리의 마음을 부풀게 하지 않습니까?
8 나사로는 죽은 지 이미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의 무덤에 도착하셔서 그 입구에 있던 돌을 치우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그분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능력에 의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기도를 하신 후에, “나사로, 나오시오!” 하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나왔습니다! 그의 손과 발은 장사 지낼 때 감은 베로 그대로 묶여 있었으며, 그의 얼굴은 천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풀어 주어 다니게 하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의 누이들인 마리아와 마르다를 위로하러 그곳에 와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이 기적을 보고 예수께 믿음을 두었습니다. (9. 지금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킬 능력이 있으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9 침례자 요한이 감옥에 있었을 때, 예수께서는 그에게 “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 죽은 사람이 일으킴을 받”고 있다는 격려적인 소식을 보내셨습니다. (마태 11:4-6)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셨을 때에도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키셨으므로, 하느님께 능력을 받은 위력 있는 피조물이 되신 지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예수께서는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가까운 장래에 “기념 무덤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분]의 음성을 듣고 나올” 것임을 아는 것은 참으로 위로가 됩니다!—요한 5:28, 29; 11:25.
우리의 희망을 강화시켜 주는 그 밖의 부활들
10. 기록상 사도에 의한 첫 번째 부활을 설명해 보십시오.
10 예수께서는 사도들을 왕국 전파자로 내보내시면서 “죽은 사람들을 일으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10:5-8) 물론, 사도들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능력에 의지해야 하였습니다. 기원 36년에 요파에서 경건한 여자인 도르가(다비다)가 죽어서 잠들게 되었습니다. 도르가가 한 선행 가운데는 빈궁한 과부들에게 옷을 만들어 준 일이 있었으며, 그래서 그 과부들은 도르가가 죽자 몹시 울었습니다. 제자들은 도르가를 장사지내기 위해 준비하였고, 아마도 위안을 얻고자, 사람을 보내어 사도 베드로를 불러 왔습니다. (사도 9:32-38) 베드로는 모든 사람을 위층 방에서 내보낸 다음, 기도하고 나서 “다비다, 일어나시오!”라고 말하였습니다. 다비다가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아서 베드로의 손을 잡자, 베드로는 그를 일으켰습니다. 기록상 사도에 의한 첫 번째 부활인 이 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도 9:39-42) 이 일 역시 우리가 부활 희망을 가질 부가적인 이유를 제시해 줍니다.
11. 성서 기록에 나오는 마지막 부활은 어떻게 있었습니까?
11 성서 기록에 나오는 마지막 부활은 트로아스에서 있었습니다. 바울은 세 번째 선교 여행 도중에 그곳에 머물렀을 때, 한밤중까지 연설을 길게 하였습니다. 유두고라는 젊은이가 피로에 지쳐서 그리고 아마도 많은 등불과 집회 장소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가 삼층 창문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를 “일으켜 보니 죽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유두고 사도 20:7-12) 오늘날 하느님의 종들도 이전에 함께 하느님을 섬겼던 동료들이 부활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기에 큰 위로를 얻습니다.
위에 엎드려 끌어안고는,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에게 “더는 떠들지 마십시오. 그의 영혼이 그 안에 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의 말은 그 젊은이의 생명이 회복되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부활—오래 전부터 있었던 희망
12. 바울은 로마 총독 펠릭스 앞에서 어떠한 확신을 표현하였습니까?
12 바울은 로마 총독 펠릭스 앞에서 심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나는 ··· 율법에 기술되고 예언자들의 글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께 향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희망은 ··· 의로운 사람들과 불의한 사람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사도 24:14, 15) 하느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율법”과 같은 부분들이 어떻게 죽은 사람들이 일으킴을 받을 것을 지적합니까?
13. 하느님께서 최초의 예언을 하시면서 부활에 대해 암시하는 말씀을 하셨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하느님께서는 에덴에서 최초의 예언을 하시면서 친히 부활에 대해 암시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원래의 뱀”인 사탄 마귀에게 선고를 내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너의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둘 것이다. 그는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고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계시 12:9; 창세 3:14, 15) 여자의 씨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후에 그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려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되시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입니다.
14.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죽은 사람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사람의 하느님”이십니까?
14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일으킴을 받는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덤불에 관한 기록에서 밝혔는데, 그는 여호와를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분은 죽은 사람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사람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에게는 그들이 모두 살아 있습니다.” (누가 20:27, 37, 38; 탈출 3:6)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부활시키려는 하느님의 목적이 성취될 것이 너무나 확실하므로, 그분에게는 그들이 살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15. 아브라함에게는 왜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15 아브라함에게는 부활 희망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매우 늙었고 자녀 출산 능력과 관련해서는 죽은 것과 같았을 때, 하느님께서 기적으로 그들의 생식력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것은 부활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창세 18:9-11; 21:1-3; 히브리 11:11, 12) 그들의 아들 이삭이 25세쯤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희생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이삭을 쳐서 죽이려고 하는 그 순간에 여호와의 천사가 아브라함의 손을 막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삭을]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시적으로 그 가운데서 그를 받았습니다.”—히브리 11:17-19; 창세 22:1-18.
16. 아브라함은 현재 죽음의 잠을 자면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16 아브라함은 약속된 씨인 메시아의 통치 아래 부활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인간이 되시기 전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유의해 보셨습니다. 그 때문에 그분은 인간 예수 그리스도로서,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 보기를 기대하면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요한 8:56-58; 잠언 8:30, 31) 아브라함은 현재 죽음의 잠을 자면서 하느님의 메시아 왕국 아래 지상에서 부활되어 생명을 누릴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히브리 11:8-10, 13.
율법과 시편의 증언
17. ‘율법에 기술된 것’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지적하였습니까?
17 바울의 부활 희망은 ‘율법에 기술된 것’과 일치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 너희 수확의 첫 열매인 곡식단을 제사장에게 가져와야 한다. [니산월 16일에] 그는 너희가 승인을 얻도록 여호와 앞에 그 곡식단을 이리저리 흔들어야 한다.” (레위 23:9-14) 바울은 아마도 이 율법을 염두에 두고,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아 죽어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라고 썼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첫 열매”로서, 기원 33년 니산월 16일에 부활되셨습니다. 그 후에 그분의 임재 중에 ‘나중 열매’—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이었습니다.—고린도 첫째 15:20-23; 고린도 둘째 1:21; 요한 첫째 2:20, 27.
18.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이 시편에 예언되어 있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하였습니까?
18 시편 역시 부활을 뒷받침해 줍니다. 사도 베드로는 기원 33년 오순절 날에 시편 16:8-11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다윗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합니다. ‘나는 한결같이 여호와를 내 눈앞에 모시고 있습니다. 나를 결코 흔들리지 않게 하시려고 그분이 내 오른편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내 마음은 유쾌해졌고 내 혀는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더욱이, 내 육체도 희망 속에 거할 것입니다. 당신이 내 영혼을 하데스에 버려 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충성스러운 자가 부패함을 보지 않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덧붙여 말하였습니다. “[다윗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내다보고 말하기를, 그가 하데스에 버려지지도 않고 그의 육체가 부패함을 보지도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 부활시키셨[습니다].”—사도 2:25-32.
19, 20. 베드로는 언제 시편 118:22을 인용하였으며, 그 구절은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되신 것과 어떤 관련이 있었습니까?
19 며칠 후에 베드로는 산헤드린 앞에 서서 시편을 다시 인용하였습니다. 그 사도는 다리가 불구인 거지를 어떻게 고쳤느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모두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기둥에 못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그분에 의하여 이 사람이 여기 여러분 앞에 성하게 서 있는 것입니다. [이 예수는] ‘여러분 건축자들에 의해 하찮은 것으로 취급되었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입니다. 더욱이,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주어진 이름들 중에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받아야 할 다른 이름이 하늘 아래 없습니다.”—사도 4:10-12.
20 베드로는 여기에서 시편 118:22을 인용하여, 그 구절의 내용을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적용하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부추김을 받은 유대인들은 예수를 배척하였습니다. (요한 19:14-18; 사도 3:14, 15) ‘건축자들이 그 돌을 버림’으로 인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게 되었지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것은 그분이 영으로 일으킴을 받아 하늘에서 영광을 누리게 되시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시편 필자가 예언한 대로, “이것은 여호와에게서 난 것”입니다. (시 118:23) ‘그 돌’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는 것에는 그분을 왕으로 지명된 분으로 드높이는 것이 포함됩니다.—에베소 1:19, 20.
부활 희망으로 견딜힘을 얻음
21, 22. 욥기 14:13-15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욥은 어떤 희망을 표현하였으며, 이 희망은 오늘날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위로가 될 수 있습니까?
21 우리는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전혀 없지만, 부활을 확신시켜 주는 얼마의 성경 기록을 검토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올바른 사람인 욥이 표현한 것과 같은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욥은 고난을 당하고 있었을 때 이렇게 탄원하였습니다. “오, 당신[여호와]이 저를 스올에 감추시고, ··· 저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저를 기억해 주신다면!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있겠습니까? ··· 당신은 부르시겠고 저는 당신에게 대답할 것이며, 당신은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그리워하실 것입니다.” (욥 14:13-15)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그리워하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욥을 부활시키기를 간절히 원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참으로 놀라운 희망을 줍니다!
요한 11:35) 하지만 하느님께서 부르실 것이고 그분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이 대답할 것임을 아는 것은 참으로 위로가 됩니다! 그것은 마치 여행에서 돌아오는 것, 그것도 병이나 장애가 없이 매우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22 욥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우리의 가족 성원 중 누군가가 중병에 걸릴 수 있으며, 심지어 우리의 적인 죽음에게 굴복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었을 때 우신 것처럼, 비탄의 눈물을 흘릴지 모릅니다. (23. 일부 사람들은 부활 희망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표현하였습니까?
23 충실했던 한 연로한 그리스도인이 죽자 동료 신자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를 여의신 데 대해 심심한 조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정말 조금만 있으면 어머니가 돌아오는 것을, 그것도 아름답고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우리가 환영하게 될 것입니다!” 아들을 잃은 어느 부모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제이슨이 깨어날 날을 얼마나 손꼽아 고대하는지 모릅니다! 제이슨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자기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낙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요. ··· 그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그 애를 사랑했던 우리 역시 반드시 낙원에 가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활 희망이 확실하다는 점에 대해 참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들을 일으킬 마련을 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까?
●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부활 희망을 가질 이유를 제시해 줍니까?
● 부활이 오래 전부터 있었던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죽은 사람들과 관련하여 우리는 견딜힘을 주는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까?
[연구 질문]
[10면 삽화]
엘리야는 여호와께 받은 능력으로, 과부의 어린 아들의 생명을 회복시켜 주었다
[12면 삽화]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일으켜 살아나게 하시자, 그 소녀의 부모는 경이감으로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었다
[15면 삽화]
기원 33년 오순절 날에 사도 베드로는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으셨음을 담대히 증언하였다